매일성경 묵상
아하스와 이렇게 다르다니! _ 다윗의 길과 같았던 히스기야의 길 [왕하 18:1-16]
 – 2024년 10월 04일
– 2024년 10월 04일 –
온갖 우상숭배와 악행을 저지른 아하스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히스기야는 놀랍게도 다윗이 행한 모든 길을 따라간다. 그는 우상만이 아니라 산당까지 제거하여 유다 백성을 하나님께 이끈다. 18~25장은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후 유다 왕국이 더 버틸 수 있었던 이유를 말해준다. 히스기야가 개혁의 왕으로 등장하여 아하스의 통치 아래 유다에게 엄습했던 재앙의 위험이 잠시나마 유보된다.
 
 
 
1. 히스기야의 등극과 평가(1~4절)
히스기야는 이스라엘 왕 호세아 3년에 유다의 왕으로 등극한다. 25세에 왕이 되어 29년간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비’요 스가랴의 딸이었다. 히스기야가 왕이 되던 시기는 이스라엘이 전체적으로 앗수르의 지배를 받던 시기였다. 히스기야는 아버지 아하스와 달리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고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처럼 정직하게 행했다는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저자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결국 멸망하게 된 이스라엘의 왕들과 대조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한 것이 동시대에 이스라엘이 망하는 사이에 유다는 망하지 않은 이유임을 밝힌다.
 
4절에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한 구체적인 일을 열거하는데, 먼저, 산당을 제거한 것이다. 그동안 많은 왕들이 우상은 제거하였으나 산당을 제하지 않아 백성이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게 만듦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가장 문제가 되었던 산당을 제거했다. 그리고 주상을 깨뜨리고 아세라 목상을 잘라냈다. 이는 이스라엘이 섬기던 바알과 아세라와 같은 우상을 제거했다는 것이다. 아세라의 경우 이스라엘 초기부터 신앙의 대상이 되어 왔던 우상이었다. 그리고 모세가 만든 놋뱀을 부순다. 이 놋뱀은 민수기 21:6~9에 등장하는 것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불뱀에 물려 죽게 되었을 때 놋뱀을 보면 치료되었다. 이후로 백성은 놋뱀을 병을 치료하는 능력이 있는 우상으로 섬기며 분향하였던 것 같다. 놋뱀은 민수기에서 등장한 이후 “이때까지” 매우 오랜 시간동안 전승되어 섬기던 우상이었다. 하나님이 아닌 놋뱀을 섬기는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은 사람들이 자꾸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어떤 물건이나 제도나 의식 등 눈에 보이는 것에 의존하는 것으로 대체하려는 유혹에 자연스레 응답한 것이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 대한 신앙은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2. 여호와를 의지한 히스기야(5~8절)
본문은 히스기야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었는지 설명한다. 당시 우상을 섬기고 놋뱀을 의지하던 이들과 달리 그는 여호와를 믿었다. “의지하다(바타흐)”로 번역된 단어는 “믿다”라는 뜻으로 여호와 신앙에 바르게 서 있었음을 의미한다. 6절은 “들러붙다”와 “떠나지 않다”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사용되며 히스기야의 여호와를 믿는 태도를 보여준다. 또한 6절 하반절에서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다는 신명기적 강조점으로 그의 믿음이 말씀을 지키는 행함이 동반된 것이었음을 나타낸다.
 
7~8절은 하나님을 믿는 결과이다. 히스기야가 이렇게 하나님을 믿음으로 여호와께서 그와 항상 함께 하셨고 그가 전쟁하는 모든 곳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이는 신명기 20:1~4에서 약속하신 것처럼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면 전쟁에서 이길 것이라는 말씀대로 성취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여호와를 의지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왕과 달리 앗수르를 섬기지 않았고, 오히려 블레셋과 싸워 이기기까지 하였다.
 
 
 
3. 사마리아(북이스라엘)의 멸망(9~12절)
히스기야가 여호와와 함께하며 형통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이 단락에서는 사마리아의 멸망을 다시 한 번 언급하고 있다. 히스기야 4년 곧 이스라엘 왕 호세아 7년에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포위하였고 3년 동안 버티다 결국 호세아 9년 그리고 히스기야 6년에 사마리아가 함락된다(10절).
 
11절은 앗수르 왕이 이스라엘 백성을 고산 강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성읍에 포로로 끌고 갔다는 것을 보고한다. 12절은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함락당한 이유를 설명하는데,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았고 언약과 모세가 명령한 것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 멸망한 사마리아는 현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전쟁에 이긴 히스기야와 대조를 이룬다. 열왕기 저자의 관점에서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면 형통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멸망한다고 말하는 신명기적 관점을 충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4.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친 히스기야(13~16절)
그런데 히스기야 14년에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유다에 쳐들어와 유다의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점령한다. 산헤립이 쳐들어온 이유는 블레셋에 대한 통제권을 다시 얻고 유다의 요새화된 성읍들을 파괴함으로써 블레셋 평야의 동쪽에 가해지는 유다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산헤립의 기록에 따르면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채들과 수많은 마을들을 비롯해서 유다의 요새화된 성읍 46개를 점령했다고 하는데, 이 성읍들은 대부분 해안 평야에 있는 것들이었다. 이렇게 산헤립의 공격이 강력해지자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 산헤립에게 항복하고 그에게 조공을 바치겠다고 약속한다. “죄를 지었다”라는 표현은 왕의 말을 어겼다는 의미이다. 
 
산헤립은 은 3천 달란트와 금 30달란트를 내놓으라고 했다. 히스기야는 이 돈을 충당하기 위해 다른 왕들처럼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의 은을 주었다. 그런데 이것으로도 모자라서 성전 문의 금과 기둥에 입힌 금까지 모두 벗겨서 앗수르 왕에게 주었다. 그만큼 앗수르 군대는 강력했고, 이런 상황은 남유다가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같은 운명에 처해질 수 밖에 없음을 예상하게 한다.
 
히스기야에게 가장 막막한 위기가 엄습했다. 과연 어떻게 이것을 타파해 나갈 것인가?
 
 
 
나는?
-히스기야는 철저하게 우상과 단절하였다. 질기고 질긴 우상숭배의 역사가 한 사람 히스기야를 통해 단절되었다. 믿음의 사람 다윗 이후로 이만한 왕은 없었다. 모두 당연시하던 산당이 무너졌고, 주상과 아세라 목상도 깨졌다. 한때는 구원의 상징이었지만 이미 숭배의 대상이 되어버린 모세의 놋뱀도 과감하게 깨뜨렸다. 히스기야는 전통과 관행과 관습과 풍습의 이름으로 자행되던 악을 조금도 허용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걸음은 과감하고 단호하며 철저한 결단이 필요할 때가 있다. 히스기야의 모습 속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종교개혁을 철저하게 시행한 것 뿐 아니라 그의 삶의 전 영역에 걸쳐 철저하게 하나님을 신뢰하며 따라간 것이다. 어떤 일을 잘하는 것보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꾸준히 유지해 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내 삶의 뒤틀린 부분을 회복하는 첫 단추는 어떤 행동을 먼저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런 히스기야와 하나님께서 동행하여 주신다. 전례없이 여호와를 의지하고 그분과 연합하여 그분을 떠나지 않은 왕 히스기야에게 여호와께서도 늘 동행하여 주셨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고, 대담하게 앗수르 왕을 섬기지 않기로 결단할 수 있었다. 언제나 골치거리였던 블레셋도 히스기야의 시대에는 유다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지금 여기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동행하는 걸음에 하나님이 함께하여 주신다. 형통의 문을 열어주시고 세상의 강력한 권세에 눌리지 않도록 보호하신다. 우리를 짖누를수 있는 것을 우리가 짖누를수 있게 하신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던 북이스라엘은 앗수르 살만에셀 왕의 포위 공격에 3년간 항전하였으나 결국 멸망하고 만다. 왕과 백성이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는 데 한마음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언약을 멸시하고 율법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멸망한 이스라엘은 이제 이방의 땅 어느곳에서 여호와와 철저히 단절된 곳에서 살아야 한다. 이제껏 하나님의 소리를 듣지도, 실천하지도 않은 것에 대한 심판이었다. 철저한 개혁을 통해 재앙을 유보시킨 히스기야의 유다와 대조해보면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살 길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개혁 밖에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을 떠나고서 하나님 나라는 설 수 없다. 말씀이 말씀 대접을 받을 때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가 되고 성도는 성도다운 성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히스기야에게도 위기가 엄습한다.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하고 유다 여러 성읍들도 차례로 앗수르에게 점령당하자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신뢰하던 마음을 접고 가장 현실적인 대안을 찾게 된다. 앗수르에게 항복하고 그를 만족시키기 위해 은 3천달란트와 금 30달란트를 바치기로 한 것이다. 가장 위기의 시간에 아쉽게도 가장 신뢰하고 의지해야 할 하나님을 망각하고 말았다.
 
-히스기야의 이런 결정으로 하나님은 무기력하고 초라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곰곰히 되짚어 보아야 한다. 내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은 가장 위기와 고난의 순간에 내게 어떤 분이신가? 더욱 붙잡고 신뢰해야 할 분이신가? 아니면 나의 현실적인 결정으로 가장 초라하고 무기력한 존재가 되어 버리는가?
 
-앗수르의 엄청난 위협 앞에 절망적인 처지가 된 히스기야도 산헤립에게 무릎을 꿇고 만다. 이런 모습은 멸망당한 이스라엘의 비슷한 모습과 함께 이방과의 타협이 얼마나 무모한 것이며, 그런 결정이 얼마나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강조한다. 어려운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상의 가치와 방법을 따라 타협하려 한다면, 이와 같은 결과를 예상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과 타협하면, 세상은 여호와 신앙을 보호하고 배려하지 않고 결국 깨뜨릴 것이다.
 
-막막하여 세상과 타협하려던 것은 없는지 돌아보고 그럼에도 믿음으로 살아내기 위해 쉽지 않겠지만, 충성스럽게 서 있으면 어떻겠는가!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느냐가 중요하다.
 
-혼란한 시대에 믿음으로 통치한 히스기야 왕이다. 하지만 굳건한 신앙으로 통치했지만, 강력한 앗수르에게 치욕을 당한다. 믿음이 좋다고 세상만사가 모두 형통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믿음이란 삶의 성공을 이끄는 것이기보다 이렇게 예측할 수 없는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가도록 제시하는 ‘방향’이자, 그 좁을 길을 걸어가도록 돕는 ‘힘’이다. 신앙적인 상식과 기대가 종종 무너지려는 상황에 직면할 때 당혹해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상황이 나의 주관대로가 되는 것이 아니지만, 그 상황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신뢰해야 한다. 상황속에서 견뎌내어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야 한다.
 
 
 
 
*주님, 히스기야의 단호하며 명료한 하나님 중심의 신앙 회복이 도전 됩니다. 하나님보다 더 앞서 의지하려는 우상을 먼저 깨뜨리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신앙을 늘 다지겠습니다.
*주님, 막막하고 절망적인 순간, 한 번 더 하나님만 찾고 구하며 의지해보겠습니다. 세상의 방법과 가치와 쉽게 타협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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