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산헤립의 어리석음, 하나님의 열심 [왕하 19:20-37]
 – 2024년 10월 07일
– 2024년 10월 07일 –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는 살아계신 분이시다. 산헤립의 침략 앞에 기도로 하나님께 나간 히스기야에게 예루살렘을 구원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각 인생에 대한 계획을 가지셨고, 그 계획을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 안에서 이루어 가시는 전지전능한 분이심을 알리신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약속하신대로 산헤립과 그의 군대를 심판하셨고, 유다에게는 구원과 평안을 허락하셨다.
 
 
 
1. 앗수르 왕의 오만함을 고발하며 심판을 선언하다(20~28절)
20절부터는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드린 기도에 대한 응답이 시작된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 그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을 들려 주신다. 먼저 앗수르 왕에 대하여 고발하는 부분이 본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시온의 처녀 딸이 앗수르 왕을 멸시하고 비웃을 것이며, 예루살렘의 딸이 머리를 흔들 것이라고 하신다. 즉, 앗수르 왕이 여자들에게 비웃음을 당하고 조롱당하는 치욕을 겪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와같은 묘사는 고대 근동에서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면 여성들이 나아와 승리를 축하하며 노래하는 풍습이 있는데, 이 장면은 그와 반대로 전쟁에서 진 후 적의 여성들에게 조롱당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머리를 흔들다”는 표현은 그 대상을 경멸하고 조롱한다는 의미이다. 여호와를 조롱했던 앗수르 왕이 가장 먼저 받을 벌은 “경멸과 조롱”이었다.
 
22절은 앗수르 왕에 대한 하나님의 불쾌감이 잘 나타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일단 자신을 비방하고 꾸짖은 앗수르 왕의 오만함에 대해 꾸짖으신 뒤, 그 오만함의 대상이 바로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인 자신이라고 말씀 하신다. 23~24절은 앗수르 왕의 말을 직접화법으로 인용하며 그의 오만함을 강조한다. 앗수르 왕이 많은 전차를 가지고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를 정복하고 그곳을 전부 파괴하고 수풀만 무성한 숲의 가장 깊은 곳까지 갔다는 표현은 앗수르 왕의 군대가 땅의 모든 곳을 정복했다고 자랑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이어 등장하는 땅을 파서 이방의 물을 마셨다는 것과 나의 발바닥으로 애굽의 모든 강들을 말렸다는 표현도 자신의 군대가 그 지역을 점령하면 완전히 초토화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마치 자신이 하나님의 능력과 같이 신적인 능력이 있음을 자랑하는 것이다. 오만하기 짝이 없다.
 
이런 앗수르 왕의 오만한 말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으로 25절은 “듣지 못하였느냐?”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남들은 다 알고 있는데, 너만 모른다는 뉘앙스의 조롱이다. 그러면서 산헤립이 자랑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행하시고 옛날부터 정하신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앗수르 왕이 아무도 침략할 수 없었던 강한 성읍들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정복당한 백성들은 두렵고 부끄러워 마치 시든 풀처럼 되었다고 한다. 이는 정복 당한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 앞에선 시든 풀 같은 연약한 존재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시며 인간은 하나님의 계획을 실행하는 존재라는 것을 분명하게 나타낸다. *온 세상의 진정한 왕은 세상을 정복했다고 자랑하는 앗수르 왕이 아니다. 그가 세상을 정복하게끔 계획하시고 실행하신 하나님이신 것이다.
 
27절에서 하나님은 다시 앗수르 왕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고 말한다. 심지어 그가 하나님께 분노를 품고 있다는 것도 알고 계신다. 앗수르 왕이 말한 분노와 교만한 말을 하나님께서 다 듣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의 악한 말을 들으신 하나님의 판결은 갈고리를 네 코에 꿰고 재갈을 입에 물려 오던 길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앗수르가 포로를 다루던 모습이었다. 그가 포로들에게 행한 것처럼 앗수르 왕이 이런 치욕을 당할 것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하나님은 오만하고 악한 산헤립에게 벌을 내리심으로써 산헤립의 정복은 실패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2. 유다를 지키실 것을 약속하심(29~31절)
두 번째 하나님의 약속은 앗수르에 의해 파괴된 유다의 초목과 과실들이 3년에 걸쳐서 회복된다는 것이다. 올해와 내년은 씨를 뿌리지 않았는데도 그냥 자란 곡물들을 먹을 것이고, 3년째가 돼서야 비로소 농사지은 것을 먹을 것이라고 하신다.
 
30절에서도 농사 이미지를 통해 유다의 남은 자들도 회복될 것을 약속하신다. ‘남은 자들’은 앗수르의 침략에서 살아남은 사람들로 이들은 예루살렘에서 나오고, 시온으로 도망간 사람들도 다시 유다로 돌아올 것을 약속하신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에 대한 보증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거신다. “하나님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자신이 직접 이 모든 일을 성취하실 것이라는 의미다.
 
 
 
3. 앗수르가 쳐들어오지 못할 것을 약속하심(32~34절)
세 번째 약속은 앗수르 왕이 예루살렘으로 쳐들어 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성에 오지 못하고, 화살도 쏘지 못하고, 방패도 성을 향하여 세우지 못하고, 토성을 쌓지도 못한다고 선언하신다(32절). 33절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공격은 고사하고 성에 오지도 못하고 되돌아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확인하여 주신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예루살렘 성을 보호하시는 이유는 여호와 자신과 여호와의 종 다윗 때문이다. 하나님과 다윗이 세운 언약때문에 예루살렘으로 대표되는 유다를 보호하시고 구원하시겠다는 것이다. 유다의 악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자신이 세우신 언약에 충실하신 분이라는 것을 드러내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모습은 우리의 신앙 기반이 우리 각자의 마음이나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 어니라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한다.
 
 
 
4. 하나님 예언의 성취(35~37절)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신다.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앗수르 군대를 치기 위해 나왔고, 여호와의 전쟁으로 십팔만 오천 명이 하룻밤 사이에 죽었다. 어떤 방식으로 이 일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하지만, 이것이 구약성경이 여호와의 전쟁을 서술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룻밤 사이에 자신이 자랑하던 군대를 잃은 산헤립은 앗수르로 돌아갔고 그곳에서 아들들에게 살해당한다.
 
이로써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들이 성취되면서 유다에 대한 앗수르의 위협이 사라진다. *히스기야는 결국 기도로 앗수르의 무서운 군대를 물리치고 유다와 예루살렘을 지켰다.
 
 
 
나는?
-하나님은 다 듣고 계신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간절한 기도소리를 들으시고, 앗수르 왕의 모든 행적과 말과 심중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분노까지 모두 듣고 보아 알고 계신다. 하물며 자기 백성의 부르짖음을 못들으시겠는가?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간구에 사랑과 긍휼로 반응하시고 악인들의 교만에 대해서는 심판으로 응징하신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섭리를 굳게 신뢰하며 나의 문제도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야 하리라.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야 할 것이다.
 
-지나친 성공은 자신이 하나님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하나님의 자리를 넘보는 앗수르 왕의 기고만장이 선명하다. 하지만 그는 창조주 하나님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단지 자신의 군대를 너무 믿었고, 지신이 이룩한 과거의 전과(戰果)를 믿었다. 업적을 자랑스러워 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정하신 일이었고, 하나님이 세우셨기에 앗수르가 견고한 성들을 돌무더기로 만들만큼 가공할 만한 세력이 된 줄 몰랐다.
 
-교만은 나의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역사임을 인정하지 않을 때 찾아온다. 그때 내 힘과 자원을 나를 위해 키우는 데만 사용하게 된다.
 
-하나님은 구원하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앗수르의 침공과 그들의 무자비한 파괴 때문에 땅이 회복되어 열매를 맺기까지 3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피하고 남은 자가 반드시 그 열매를 보게 해주실 것이다. 다윗에게 하신 언약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으로 꼭 이약속을 성취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결코 앗수르가 예루살렘 성을 넘보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반면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향해 꾸짖고 비방하고 눈을 높이 뜨고 소리를 높인 앗수르는 그들이 조롱하는 자들에게 멸시를 받고 수치를 당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오만한 인생이 추락하는 것은 하루아침에도 가능하다.
 
-산헤립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두 아들(대하 32:21)의 배신으로 비참하게 죽게 된다.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이었다. 어떻게 죽느냐는 어떻게 살았느냐와 연관된다. 오늘 나의 삶이 훗날 나의 평가 자료이다.
 
-“네가 감히 누구를 모욕하고 멸시하였느냐? 네가 누구에게 큰소리를 쳤느냐? 나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감히 네 눈을 부릅떴느냐?”(19:22) 이렇게 오만 방자한 지도자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주님, 산헤립의 교만한 모습이 오늘 나와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싶어 두렵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가장 절정의 자기교만의 시대인듯 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이제 무시합니다. 이런 세상속에서 꿋꿋하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증거하며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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