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기야가 병이 들었다. 이사야는 그에게 죽음을 선고한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좌절하지 않고 겸손하게 하나님께 나아가 눈물로 간구한다. 이에 하나님은 병의 치료뿐 아니라 생명을 15년 연장해주신다. 또한 다가오는 앗수르의 위협에서 예루살렘을 건지고 보호하실 것도 약속하신다.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치유에 대한 징표를 구하자 히스기야에게 해시계의 그림자를 10도 물러가게 하심으로 약속을 지켜주실 것을 확인시켜 주신다.
20장에서 하스기야가 병 고침을 받은 사건은 18~19장의 앗수르 산헤립의 침공 이전에 일어난 사건이다. 시간순으로 보면 히스기야의 회상에 해당한다. 장래 예루살렘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6절), 브로닥 발라단의 사절단에게 보여준 많은 재물(13절)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저자의 이런 배치는 이전부터 계속된 앗수르의 공격에 대해 히스기야가 어떻게 신앙으로 잘 넘겼는지에 집중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관점에서 20장은 히스기야가 어떻게 여호와에 대한 확고한 신앙을 가질 수 있게 되었는지를 알려준다. 이 내용은 이사야에 거의 같은 내용으로 나온다(사 38:9~22; 대하 32:24).
1. 죽을병에 걸린 히스기야(1절)
20장은 “그때에”로 시작한다. “그때”는 앗수르의 산헤립이 쳐들어오기 전이지만 정확히 언제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대략적으로는 히스기야가 죽기 15년 전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때 히스기야가 걸린 병은 죽을 정도로 심각했다. 본문은 그 어떤 병에 걸렸는지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무화과 반죽을 성처에 놓으니 나았다(7절)’는 보고에 근거하면 일종의 피부 질환이 아닌가 싶다. 이런 상황에서 선지자 이사야가 히기야를 찾아온다.
19장에서는 히스기야가 이사야 선지자를 불렀으나 본문은 이사야가 먼저 여호와의 말씀을 전달하기 위해 온다. 이사야 선지자는 히스기야에게 죽음을 선언하며 집을 정리하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전달한다. “짐을 정리하라”는 말은 다음 왕을 지명하여 알리라는 의미로 이사야는 히스기야에게 반드시 죽을 것이니 후계자를 지명하여 왕권에 혼란이 없게 하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전달한 것이다.
2. 히스기야의 기도(2~3절)
하나님께 죽음 선언을 들은 히스기야는 얼굴을 벽으로 돌리고 여호와께 기도한다. 이는 이사야를 통해 들은 죽음의 선언에 매우 상심했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낙심하고만 있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실현될 것을 알고 있었지만, 혹시 여호와께서 마음을 돌리실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이 엿보인다.
3절에서 히스기야는 제발 지금 여호와께서 기억해달라고 간구한다.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간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이 그 사람에 대한 구원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며 고역에 시달리던 이스라엘 백성의 간구를 들으시며 아브라함과 하셨던 약속을 기억하셨던 하나님이셨다. 그 기억 때문에 출애굽의 구원을 실행하셨다. 히스기야는 자신이 그동안 하나님 앞에서 진실함과 온전한 마음으로 행했던 것과 하나님의 눈에 선하게 행동한 것은 하나님의 언약에 충실한 것이었음을 믿음으로 호소한다.
히스기야가 자신이 하나님만을 성실하게 섬겼다는 것을 기억해달라는 것은 자신이 이렇게 산 것을 기억해주셔서 불쌍히 여겨주시라는 간구이다.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 주신다면 좀 더 살 수 있는 시간을 주실 수 없겠는지 하고 매우 겸손하게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또, 이런 상황에서 큰소리로 울면서 살려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자신의 살고 죽는 문제를 여호와의 손에 철저히 맡겼기 때문이다.
*이렇듯 기도란 하나님의 뜻 앞에 겸손히 서는 시간이며, 나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가며 순종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나의 뜻을 하나님께 강요하여 무엇인가를 얻어내려는 것이 아니다.
3. 하나님의 응답(4~7절)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에 즉각 응답하신다. 4절은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 이르지 못했을 때 말씀이 임했다고 기록하는데, 이는 이사야가 말씀을 전하고 성읍을 빠져나가기 전에 매우 신속하게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는 의미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돌아가서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라고 명령하신다. “주권자(나기드)”라는 표현은 사사 시대 말기와 초기 왕정시대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지도자의 칭호이다. “너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라는 호칭도 초기 왕정 시대의 다윗 언약을 기억하게 한다. 사무엘하 7:8에서 여호와께서 다윗 왕조 언약을 내리실 때 다윗을 부르신 용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였다.
이는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와의 관계를 다윗 언약을 근간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기도를 듣고 눈물을 보았다고 하셨다. 이 말은 19:16에서 히스기야가 기도할 때 “들으시고 보소서”라고 한 것의 근거가 된다. 히스기야는 이 말을 통해 하나님이 자신의 말과 행동을 듣고 보신다는 것을 더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병을 낫게 해주고, 3일 만에 성전에 올라갈 수 있게 하며 15년을 더 살게 해주겠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며 예루살렘 성을 보호하겠다고 약속하셨다. *특히 하나님과 다윗을 위해 예루살렘 성을 보호하시겠다는 말은 19:34에서도 반복되어 나타난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 전달한 이사야는 염증 부위에 무화과 으깬 것을 얹어놓았다. “무화과 반죽(데벨레트 테에님)”으로 번역된 단어는 “으깬 무화과”를 가리킨다. 무화과가 상처를 치료하는 데 어떤 효능이 있기보다는, 상처를 낫게하는 상징적인 행동으로 예수님께서 눈에 침을 뱉고 안수하신 행동(막 8:23), 진흙을 눈에 바르는 행위(요 9:6) 등과 유사하다.
4. 징표를 구하는 히스기야와 하나님의 응답(8~11절)
8절은 히스기야가 이사야의 말을 믿지 못하고 징표를 구하는 장면이다. 히스기야는 아직 여호와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이런 모습은 전쟁에 나가면 이길 것이라는 약속을 주신 하나님께 징표를 구한 기드온과 유사하다. 이런 모습의 히스기야는 참 어색하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여호와에 대한 온전한 믿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이런 하나님과의 경험들을 통해 앗수르 대군 앞에서도 오직 여호와만을 의지하는 담대한 믿음으로 성장한 것이다.
놀랍게도 히스기야의 이런 요청을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이루어질 때 징표가 임할 것인데, 해 그림자를 십도 나아가게 할 것인지, 아니면 해 그림자를 십도 뒤로 가게 할 것인지 선택하라고 한다. 그러자 히스기야는 해 그림자가 십도 앞으로 가는 것은 쉬우니 뒤로 가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즉 시간이 뒤로 돌아가는 초자연적인 일을 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시간이 뒤로 가는 초자연적인 일을 해달라고 하나님께 요청한 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천지를 주관한다는 의미이고 천지를 창조했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임을 눈으로 보게 해달라는 말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정말 해 그림자가 십도 물러가게 하셨다.
이 사건의 서술은 여기서 마무리된다. 히스기야가 병이 나았다는 말은 없다. 그러나 해 그림자를 십도 뒤로 가게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생명을 연장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기에 당연히 히스기야의 병은 나았다. *과연 오늘의 우리는 해도 뒤로 가게 하실 수 있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있는지, 아니면 구조와 현실속에서 아무것도 못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나는?
-히스기야는 이른 나이 39세에 죽을 병에 걸렸다.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에게 다시 살지 못할것이니 신병을 정리하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자 히스기야는 홀로 하나님과 대면한다. 심히 눈물을 흘리고 통곡하면서 하나님께 진실하고 전심으로 행하려 했던 지나온 삶을 기억해 달라고 요청한다.
-죽음을 선포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여 조용히 죽음을 준비할 수 있었겠지만, 간절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한 것은 개인의 생명과 더불어 민족의 미래도 소생함을 얻기 위해서였다. 개인의 삶과 나라와 민족의 위기 앞에서 절대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절실한 때가 바로 이때다.
-히스기야에게 죽음을 선포하시며 삶을 정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히스기아의 질병은 왕에 대한 심판이 아니었다. 그저 하나의 사실로 제시될 뿐이다. 이는 그의 삶이 매우 의로웠다는 평가가 있기에 타당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에게도 치명적인 질병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통해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 그러므로 요즘 나와 우리 공동체에 일어난 환난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일을 행하시는지 분별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히스기야의 눈물을 보시고 통곡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그를 고치시고 15년을 더 살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그리고 이사야를 보내 무화과 으깬 것으로 상처 위에 올려놓고 그를 치유하여 주셨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치유는 앗수르의 손에서 유다를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이나 다름없었다. 하나님은 이 일은 여호와 하나님 자신을 위한 일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종 다윗을 위한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이런 기도의 응답은 단지 히스기야의 눈물에 감동해서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결정이었고, 다윗에게 하신 언약에 신실하기 위한 것이었다. 히스기야의 간절한 기도에 마음을 움직이신 하나님은 지금도 역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눈물을 보신다.
-히스기야는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징표를 구한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해 그림자가 십도 뒤로 가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그 요청에 하나님은 신속하게 응답하신다. 하나님은 시간이 주인이심을 스스로 증명하셨다.
-이 증표의 기적은 히스기야의 15년 생명 연장과 맞물려 시간의 방향도 역전시킬 수 있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의 능력을 증거한다.
*하나님은 시간의 주인이시다. 히스기야의 생명은 이미 죽음이 선고됐다(1절).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시간을 연장시켜 주셨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우리는 이미 사망 선고를 받았었다. 하지만 예수님을 통해 영원한 생명의 은혜를 베푸셨다. 이 은혜를 기억하여 생명과 시간의 주인되신 하나님의 이름을 증거 하는 삶이어야 하리라.
*주님, 죽음 선고라는 선언 앞에 그토록 담담하게 히스기야의 모습이 결연합니다. 하나님을 믿게 하실 뿐 아니라 확신까지 확보해주시기 위해 거듭 징표를 주시는 하나님께 정작 나는 무엇을 구하고 있을까요?
*주님, 다윗과의 언약을 지키기 위해서 히스기야의 간구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처럼 약속하신 말씀대로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지금, 여기 하나님 나라를 이끌어가는 힘인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