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 10:1-8 단호한 처리, 세밀한 부르짖음
에스라의 기도에 대해 백성들이 반응한다. 지금까지 일부 지도자들만이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다면, 이제부터는 공동체 전체가 에스라와 마음을 같이하여 회개 운동에 동참한다. 이 일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대표적인 인물은 스가냐다. 스가냐는 그 어떤 일보다 ‘율법을 지키는 것’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우선순위를 둔 인물이다. 백성들의 범죄로 애통해하고 있는 에스라에게 율법에 따라 이 문제를 처리할 것을 제안한다. 스가냐의 제안을 받아들인 에스라는 제사장 여호하난의 방에 들어가 밤새 금식하며 중보기도를 한 후에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불러 모은다.
1. 에스라의 애통과 백성들의 반응, 스가냐의 제안(1~4절)
1절에서 에스라는 공개된 장소인 예루살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면서 백성들의 죄를 자복한다. ‘하나님의 성전 앞’은 예루살렘 성전 바깥뜰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소문을 들은 백성들은 남녀와 어린아이까지 성전 바깥뜰에 모인다. 이들은 귀환 후 시간이 흐르면서(약 80년 동안) 느슨해진 자신들의 신앙 재정비하기를 열망했다. 이는 에스라의 “설교 기도”가 효력을 발휘한 것이다. 지도자 한 사람의 회개가 불씨가 되어 순식간에 공동체 전체의 회개 운동으로 퍼져 나가게 된 것이다. 이 회개는 결코 강요된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에스라의 경건과 헌신이 그 어떤 메시지보다 설득력 있는 설교로 백성들에게 다가오게 된 것이다.
2~4절은 스가냐의 제안을 다룬다. 백성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불러일으킨 인물은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였다(2절). 스가냐는 엘람 자손으로 소개되는데, 엘람 자손은 1차 귀환에 속했던 가문이었다(스 2:7). 그 후 2차 귀환 때에도 엘람 자손 70명이 에스라와 함께한다(스 8:7). 엘람 가문 중 6명의 사람은 이방 여인과 결혼한 사람들로 소개되는데(스 10:26), 그중 한 사람의 이름이 스가냐의 부친 여히엘이다(두 인물이 동일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만약 동일인이라면 스가냐는 부친의 잘못까지도 지적한 셈이 된다. 즉, 이 문제에 대해서는 사적인 관계를 떠나 공동체 전체의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스가냐는 공동체의 죄와 자신이 속한 가문의 죄를 자기의 죄로 동일시하면서(2절:’우리가 하나님께 범죄하여’), 에스라에게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2절에서 “하나님께 범죄하다(마알)”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신실하지 못한 행동을 가리킨다. 이는 스가랴를 포함하여 자신들이 이방 여인과 통혼함으로 언약 백성으로서의 본분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스가냐는 어쩌면 이 상황을 아간 한 사람의 죄(마알)로 백성 전체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던 과거의 사건과 연관시키고 있는지 모른다.
스가랴가 에스라에게 한 제안은 율법에 따라 이방인 아내들을 다 내보내기로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는 것이다(3절). 스가냐가 의미하는 “내 주의 교훈”과 “하나님의 명령”은 가나안 백성과 통혼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정(출 23:32; 신 7:1~5)뿐만 아니라, 이혼에 관한 규정(신 24:1~4), 그리고 언약 체결에 관한 규정(신 29:10~13)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스가냐는 이방 민족과 통혼하는 것을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기는 행동으로 이해한 것이다. 스가랴가 에스라에게 언약을 세울 것을 제안하는 것이나 후에 에스라가 백성들에게 맹세하게 하는 것(5절)은 이런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부분에서 스가랴와 에스라의 생각이 일치했을 알 수 있다. 그는 에스라가 공동체의 개혁을 추진할 수 있도록 도운 훌륭한 조력자다(4b절 :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 에스라의 개혁 운동이 스가냐와 같은 훌륭한 조력자들이 함께함으로 가능하게 되었음을 강조한다.
2. 백성들의 맹세와 에스라의 공적 선포(5~8절)
에스라는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 생각한 바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긴다. 먼저 지도자들의 지원과 백성들의 동의를 얻어 언약을 새롭게 하도록 한다(5절). 5절의 ‘맹세’는 언약의 내용을 확고히 하는 의미를 지닌다. 스가냐와 동일하게 에스라도 이방인과의 통혼을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위협하는 심각한 죄로 간주했다. 스가냐와 에스라가 공히 백성들의 죄를 “하나님께 신실치 못한 행동”을 가리키는 “마알”로 표현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2, 6, 10절).
이어서 에스라는 엘리아십의 아들 여호하난의 방으로 들어가서 홀로 금식하며 중보기도를 드린다(6절). 여호하난을 느헤미야 12:23의 요하난과 동일 인물로 본다면, 그는 대제사장의 아들 혹은 손자다(느 3:1; 12:10~11). 당시 예루살렘 성전에는 여러 개의 방이 있었고, 그중 일부는 제사장들의 공간이었다. 백성들의 죄를 대신해서 금식하며 중보하는 에스라의 모습은 위기에 빠진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기도했던 성경의 인물들을 연상케 한다(출 32:9~14; 렘 14:7~9; 겔 22:30; 암 7:1~6; 롬 9:3).
에스라는 모든 귀환자에게 3일 이내에 예루살렘으로 모일 것을 명령하고, 이를 어기면 그 사람의 재산을 몰수하고 귀환 공동체에서 축출할 것을 경고한다(8절). 이로써 에스라를 중심으로 이스라엘 총회가 소집된다. “모임을 소집하고 재산을 몰수하고 공동체로부터 추방할 수 있는 권한”은 에스라가 페르시아 왕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다(스 7:26). 에스라는 왕의 위임을 받은 페르시아 관료로서 자신이 갖고 있던 법적 권위를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다(스 7:26). 8b절에서 “적몰하다(하람)”로 번역된 단어는 신명기에서 자주 등장한다(신 7장; 20:16). 동사 ‘하람’은 거룩한 전쟁 문맥에서 전리품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을 가리키는데, 명사 ‘헤렘’으로 사용될 때는 ‘지극히 거룩한 것’ 혹은 ‘진멸할 물건’을 의미한다. 예를 들자면, 여호수아의 아간 이야기에서 “훔친 물건”을 가리킨다(수 7장). 아간은 ‘진멸한 물건’을 취함으로써 스스로 진멸의 대상이 된다. 에스라가 특히 ‘하람’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아간의 경우를 염두에 둔 것 같다.
8b절의 “사로잡혔던 자의 모임에서 쫓아내리라”를 직역하면 “그는 골라의 회중으로부터 분리될 것이다”의 뜻이다. 즉, 공동체로부터의 추방을 의미한다. “골라”는 회복된 이스라엘을 가리키며 “골라” 공동체로부터의 분리는 언약 백성으로서의 자격 상실을 의미한다.
나는?
-에스라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은혜를 베푸는 지금이야말로 백성들이 깨닫고 갱신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지도자의 모범은 책망보다, 설교보다, 논리적인 호소문보다 더 감동적인 외침이었다. 백성 중 스가냐가 일어나 지도자 에스라를 위로한다. “이스라엘에게는 아직 소망이 있습니다.” 백성들이 이제라도 잘못을 깨닫고 율법의 요구대로 이방인 아내와 아이들을 보내겠다고 맹세했기 때문이다. 힘껏 도울 테니 어서 일어나 이 문제를 맡아 처리해달라고 부탁한다. 긍정적인 사고, 실행력, 지도자를 격려하고 세우는 모습, 이 얼마나 든든한 동역자인가?
-직접 나서서 영적 위기를 타개해달라고 요청을 받고 에스라가 맨 먼저 한 일은 홀로 여호하난의 방에 들어가 금식하는 일이었다. 자신이 나서면 영적 혼돈이 해결되리라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엎드렸다. 자신은 할 수 없으니, 주께서 나서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으로 금식했다. 기도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그 능력을 신뢰하는 것이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자격이다. 반대로 기도가 필요 없을 만큼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이 가장 위험한 지도자다.
-기도 끝에 에스라는 3일 안에 모든 귀환자를 예루살렘에 소집하기로 한다. 이에 불응하면 재산을 뺏고 공동체에서 쫓아내겠다고 공포한다. 그는 기도할 때와 하나님의 권위로 행동에 나설 때를 잘 아는 지도자였다. 율법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모범적인 삶과 기도로 얻은 권위로 공동체를 갱신하고, 희망을 현실로 바꾸는데 나선 것이다.
-하나님의 집에서 쓰러져 울며 기도하는 에스라의 회개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어떤 가르침이나 설교보다 큰 영향력을 낳았다. 그의 눈물 어린 기도에 동참한 것이다. 나는 지도자로서 내가 섬기는 공동체에 이런 감동의 영향력을 미치는지 돌아볼 일이다. 또한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지도자의 고통에 깊이 참여하고 있을까?
-스가냐는 이스라엘 자손의 죄를 인정하고, 계명이 따라 이방 여인과 결혼한 죄를 분명히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고백하며 에스라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기 위해 어떤 희생이라도 치르겠다는 스가냐의 고백은 슬퍼하는 에스라의 무릎을 일으켜 세워 주는 힘이 되었다. 무엇보다 “아직 우리에게 희망이 있습니다”라는 말로 위로하며 동역해야 할 사람이 있을까?
-에스라는 백성들에게 그들이 약속한 일을 지킬 것에 대한 맹세를 받은 후에, 다시 자리를 옮겨 금식하며 이 일을 위해서 기도했다. 백성들의 죄가 그만큼 깊었고, 그 죄로 인한 아픔도 컸기 때문이다. 백성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큰 도전이 된다. 다른 이를 위한 중보기도에 이토록 깊은 사랑으로 행하고 있을까?
-죄에 대하여 단호하게 선포하고, 하나님 앞에 나가서 세밀하게 부르짖는 에스라의 모습이 내 목양의 모습이기를 소망한다.
*주님, 백성의 죄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되, 타인의 죄가 아니라 자기의 죄로 받아들이며 회개하는 에스라의 모습에서 교회 공동체를 품고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배웁니다. 주님, 더욱 사랑하겠습니다. 힘을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