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 4:1-23 위기와 두려움이 몰려와서 방해할 때
느헤미야가 성벽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외적인 방해를 보도한다. 1차 귀환 이후 성전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대적들(그 땅의 백성들)의 반대가 있었듯이 성벽 재건에도 산발랏과 도비야를 중심으로 한 적대자들에 의해 반대에 부딪힌다.
4장 전체는 성벽 재건 과정에 있었던 대적들의 반대와 느헤미야 대응의 모티브로 구성된다. 대적들의 반대는 지속적이어서 재건이 지속되면서 점차 확대되어 가는 양상으로 묘사된다(1b절 – 7b절 – 8a절). 이에 대해 느헤미야는 먼저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대응한다(4~5, 9a절). 기도하는 느헤미야의 모습은 느헤미야서의 전체에서 여러 군데 등장한다. 느헤미야의 시작은 예루살렘의 형편을 들은 그가 슬퍼하며 금식하며 기도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1:5~11a절). 이후에도 중간마다 어려움에 부닥칠 때 기도하는 느헤미야의 모습이 소개된다(2:4; 4:4~5, 9; 5:19; 6:14). 또한 느헤미야의 마지막 장(13장)은 네 번에 걸친 느헤미야의 짤막한 기도문을 담고 있다(14, 22, 29, 31절). 이와 같은 기록은 대적들의 집요한 방해를 극복하고 과업을 완수하게 된 배후에 느헤미야의 기도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1. 대적들의 반대(1~8절)
성벽 재건을 반대하는 세력의 중심인물로 산발랏이 등장한다(1절). 그는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성벽을 재건한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와 조롱으로 반응한다(1b절). 그는 이전에도 암몬 사람 도비야와 함께 찾아와 느헤미야를 조롱하고 협박했었다(2:10, 19). 그는 자신의 군대(2a절, ‘사마리아 군대’)를 동원하여 군사적인 시위를 하며 위협을 가한다(2절). 산발랏에 이어 암몬 사람 도비야도 나서서 유다 사람을 조롱한다(3절). 도비야는 유다 사람들과 그들이 하려는 시도(성벽 재건)를 비아냥거리며 조소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산발랏과 도비야의 위협과 조롱에 대해 느헤미야는 즉각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한다(4~5절). 그의 기도 내용은 시편의 탄원시(시 17, 54편)나 저주시(시 35, 38, 39, 69, 83, 109, 137편) 혹은 예레미야의 기도(렘 11:18~20; 15:15; 17:18; 18:19~23)를 연상케 한다. 느헤미야는 대적들의 조롱과 욕설이 그들에게 돌아가길 기도하면서(4절),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에 이 문제를 맡긴다(5a절).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을 방해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거스르는 행동으로 간주한다(5b절). 대적들의 방해에도 느헤미야와 백성들은 공사를 진행해 나갔고, 짧은 시간에 상당한 진척을 이루게 된다(6절).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간다는 소식을 들은 주위의 대적들은 다같이 모여 또 다른 음모를 꾸민다(7절). 아라비아 사람, 암몬 사람, 아스돗 사람들도 대적들의 무리에 합류한다(7절). 이들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있어(북쪽:산발랏, 동쪽:도비야와 암몬 사람, 남쪽:아라비아 사람들, 서쪽:아스돗 사람들), 예루살렘이 대적들 때문에 사방으로 포위된 형국이다. 주위의 대적들은 모두 예루살렘 중심의 유다 공동체가 재건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곳을 치고 요란하게 할 것을 결의한다(8절). 즉, 조롱이나 협박만으로는 효과가 없다고 판단하고, 직접 행동으로 성벽 재건을 저지할 계획을 세운 것이다(시 2:2).
2. 느헤미야와 공동체의 대응(9~23절)
이 상황을 파악한 느헤미야는 다시 하나님께 기도하고(9a절), 곧바로 대응책을 생각한다. 먼저 대적들의 공격에 대비하여 파수꾼을 세워 주야로 방비하게 한다(9b절). 한편, 대적들의 계략이 알려지자, 공동체 안에 동요하는 사람들도 생기게 된다. 대적들이 금방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소식(11절)은 공동체 내부에 위기의식과 좌절감을 불러일으켜, 백성들로 하여금 공사를 할 수 없다는 비관론에 빠지게 한다(10b절). 느헤미야가 상대해야 할 대상은 이제 외부의 적뿐만 아니라 내부의 불평, 패배 의식, 내부 분열이라는 적이었다.
이런 상황에 느헤미야는 두 차원으로 위기를 극복해 나간다. 첫째, 다가오는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칼과 창으로 무장한 민병대를 편성하는 것이다(13절). 의도적으로 적들의 눈에 잘 띄는 곳인 성벽 뒤 낮고 넓은 장소에서 군대를 소집한다. 둘째는 지도자들과 백성들을 격려하고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다(14절). 느헤미야는 백성들이 자신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고, 그분만을 의지하여 싸우도록 한다. 느헤미야는 지금 대적들을 상대로 거룩한 전쟁을 치를 군대를 소집한 것이다(참조, 신 20장).
느헤미야의 전략은 즉각적으로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대적들은 느헤미야의 신속한 대응으로 자신들의 시도가 실패할 것을 알아차리고, 스스로 계획을 철회한다(15a절). 본문은 이 배후에 ‘하나님의 손길’이 작용하고 있음을 밝힌다(15b절). 이는 이전에 느헤미야가 했던 기도의 응답이기도 하다(9절). 이후에도 느헤미야는 대적들의 공격에 대비하여 다양한 조처를 한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수하에 있는 사람들을 둘로 나누어 절반은 성벽 공사에 참여하게 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무장한 상태로 현장을 지키게 한다(16절). 그리고 일하는 사람들도 무장한 상태에서 일하도록 하고(17a절), 나팔수를 두어 위기 상황을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신호 체계를 세운다(20절).
이것은 마치 옛적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거룩한 전쟁을 준비하는 것과 같다(민 10장). 구약 성경에서 나팔을 부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상징이며, 거룩한 전쟁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삿 3:27). 나팔 신호를 통해 느헤미야는 백성들이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고, 그들의 싸움이 거룩한 전쟁임을 상기시키려 한 것이다.
이러한 느헤미야의 대응은 효과적이어서 전에 낙심했던(10b절) 백성들이 이제 다시 일어나 공사에 참여하게 된다(21절). 느헤미야는 그의 형제와 신하들과 더불어 공사를 마칠 때까지 옷을 입은 채 잠을 자고,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무기를 지니고 다녔다(23절). 이런 설명은 느헤미야의 대응 장면에 거룩한 전쟁의 용어와 사상이 나타나 있음을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대항할 능력이 없어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백성들의 모습(9~10절)”,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셔서 대적들의 의도를 좌절시키는 장면(15절)”, “나팔을 불어 하나님의 임재를 선포하는 것(19~20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신다는 고백(20b절)” 등이다.
옛적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지도력으로 가나안 땅에서 거룩한 전쟁을 치름 같이 느헤미야는 귀환 공동체를 위협하는 대적들을 향해 거룩한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나는?
-느헤미야가 온 것만으로 불편해하고(2:10) 이 사실을 왜곡하며 조롱하던(2:19) 산발랏과 도비야는 성벽 재건이 시작되자 더욱 노골적으로 방해한다. 예루살렘 성의 재건은 예루살렘 공동체의 재건을 의미하며, 그것은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가 약화하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하나님의 교회가 올바로 세워지는 것을 환영할 사탄은 없다. 교회가 올바로 서 나가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
-대적의 방해에 맞서는 느헤미야의 방법은 흔들림 없는 기도와 중단없는 공사 진행이었다. 느헤미야는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에 근거하여(창 12:1~3), 하나님의 정의로우심에 기대어,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하는 자들에게 저주를 내리시도록 간청했다. 동시에 느헤미야는 성벽 높이가 절반쯤 이를 때까지 흔들림 없이 하던 일을 계속 추진했다.
-느헤미야는 성벽을 재건하는 일과, 성을 대적으로부터 지키는 일을 동시에 진행했다. 돌을 나르는 자의 한 손에는 무기가 들려 있었고, 건축하는 자도 칼을 차고 있었으며, 위험할 땐 언제든 모일 수 있도록 나팔을 사용했다. 성을 지키는 일에는 밤낮이 따로 없었다. 백성이 잠드는 동안에도, 느헤미야와 최측근들은 못을 벗지도 않고 백성을 지켰다. 지도자로부터 백성까지, 한순간도, 단 한 곳도 적에게 틈을 주지 않은 공동체였다.
*조롱과 비난 속에서 느헤미야는 기도로 이 상황을 돌파했다. 예루살렘 성벽 재건 소식이 주변에 퍼지자, 산발랏과 도비야는 유다 백성의 사기를 꺾기 위해 조롱과 비난을 퍼부었다. 그들의 비난은 성벽을 세우려는 의지와 동기를 무너뜨리려는 것이었다. 산발랏은 유다 백성의 수적 열세와 군사적 무력함을 느끼게 해서 재건 의지를 꺾으려 한다. 도비야는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라는 말로 성벽 재건을 깔보고 과장되게 조롱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느헤미야는 그들과 논쟁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다.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세워 나갈 때, 위협을 받을 수 있고 조롱과 비난도 받을 수 있다. 그럴 때 느헤미야의 결연하고 의연한 모습을 떠올려야 할 것이다. 문제와 충돌하고 싸우려 하지 말고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긴 그의 믿음의 실제를 따라가야 할 것이다.
*산발랏과 그 무리는 조롱과 비난으로는 성벽 재건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곧 깨닫는다. 그러나 물러서지 않고 이번에는 무력으로 위협한다. “예루살렘으로 가서 치고 그곳을 요란하게 하자”라며 음모를 꾸민다. 이에 대한 느헤미야의 대응은 단호하고 분명했다. 첫째는 하나님께 기도한다. 둘째로, 밤낮으로 파수꾼을 세운다. 이렇게 외부의 위협에 민감하게 대응한다.
*그러나 위기를 내부에서도 일어났다. 백성들이 체력이 고갈되었고 사기가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느헤미야는 지혜롭게 대처한다. 성벽이 낮고 취약한 부분에는 무장한 사람들을 배치한다. 그리고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싸우라고 격려한다. 그 결과 위협하던 무리의 계획은 무산되고 백성은 다시 성벽 재건에 힘쓸 수 있었다. 어려움을 만날 때 기도와 함께 현실적 준비도 해야 하며 서로 격려해야 한다.
*지혜롭게 대응한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에 철저히 준비하고 헌신한다. 백성의 절반은 건축에, 절반은 무장 경계에 투입했다. 또 언제든지 전체를 모을 수 있도록 나팔수를 곁에 두었다. 공동체 전체를 하나로 모을 수 있게 하는 조치들이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라고 선포하며, 백성의 영적 사기를 드높인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확신은 백성들의 두려움을 몰아내고 다시 사역에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느헤미야도 옷을 벗지 않고 언제든 싸울 준비를 했다. 그는 군중과 함께 똑같이 무거운 짐을 지고 서 있었다. 위기의 순간일수록 공동체는 한마음이 되어야 한다. 또한 공동체의 지도자는 말로만 이끄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희생하는 본을 보이는 사람이다. 지도자의 헌신이 성도들의 마음을 강하게 세우는 힘이 된다.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사람들의 비웃음 소리가,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음성보다 더 크게 들린다면 그때는 하나님께 집중해야 할 때다. 하나님을 바라는 기도와 지혜로운 삶의 방식으로 담대하게 세상의 비웃음을 맞서야 하리라.
*무엇보다 대적들은 백성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하나가 되지 못하게 지속적으로 도발했다. 두려움을 심어주기도 했고, 끝없이 자존감을 깎아내렸다. 그 과정에서 내부의 분열이 가장 큰 적일 수밖에 없다. 외부의 핍박보다 더 두려운 것은 하나님의 공동체가 하나 되지 못하는 것 아니겠나.
*하나님의 일이 방해를 받긴 했지만, 절대 중단되지 않았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서신을 통해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무장하고 주님을 섬길 것을 당부한다(엡 6:10~11). 우리 공동체는 영적으로 잘 무장되어 있는가? 규칙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가? 백성들이 성벽을 쌓으면서 적에 대한 경계도 소홀히 하지 않았음을 기억하며 깨어 있는 자세로 주님을 섬겨야 하지 않겠는가!
*백성들의 헌신과 집중력이 돋보인다. 백성들은 동틀 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창을 잡았다. 파수하는 사람은 파수하는 것으로, 성을 쌓는 사람은 성 쌓는 일에 최고의 헌신을 보여주었다. 전심으로 주의 일에 헌신할 때 영적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다.
*주님, 믿음으로 살아가는 일상에서 반대를 만났을 때 능력의 하나님을 의뢰하고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날마다 깨어 주님과 동행함으로 영적 전투에서 승리로 이끌어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