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 6:1-14 이어지는 두렵게 하는 상황들, 끝까지 기도로!
예루살렘 성벽이 거의 다 완성되어 가자, 대적들은 다른 방법으로 성벽 재건을 중단시키려고 시도한다. 산발랏과 게셈은 느헤미야를 오노 평지의 한 촌으로 유인하여 죽이려고 한다. 결국 이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게 되자, 도비야와 산발랏이 스마야에게 뇌물을 주고 거짓으로 예언하게 하여 느헤미야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시도한다.
6장 전체는 느헤미야에게 해를 끼치고자 대적들이 시도한 세 번에 걸친 음모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산발랏과 게셈이 느헤미야를 오노 평지로 불러내 해치려고 한 시도이고(2~9절). 두 번째는 스마야를 이용해서 느헤미야가 성전에 들어가도록 하려는 것이고(10~14절), 세 번째는 도비야가 느헤미야에게 봉하지 않은 편지를 써서 위협하는 것이다(15~19절). 각각의 단락 끝부분은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했다”는 구절로 끝을 맺는다(9, 13~14, 19절). 16절은 두려워하는 주체가 대적들로 바뀌어 있다. 즉, 하나님께서 그들을 두렵게 하신 것이다. 이처럼 6장은 “두렵게 하다”라는 말로 연결되어 하나의 통일된 내러티브를 구성하면서(9, 13, 14, 16, 19절), 독자들로 하여금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를 돌아보게 한다.
1. 산발랏과 게셈의 음모(1~9절)
성벽 재건이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자 산발랏과 그 일당은 전략을 수정하여 공격의 대상을 전적으로 느헤미야 한 개인으로 집중시킨다(3~4장에서는 성벽 건축자들에게 향했었다). 그리고 대적들의 방해도 지금까지 조소, 공갈, 협박 등 이었지만, 더욱 교활하고 치밀한 방식으로 바뀌어 간다. 먼저 산발랏과 게셈은 느헤미야에게 사람을 보내서 오노 평지의 한 마을에서 만날 것을 제안한다(2a절). 오노 평지는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약 25마일쯤 떨어져 있는 지역으로 사마리아(산발랏 통치 지역)와 아스돗(블레셋 지역)의 중간에 있었다. 그들이 오노 평지를 선택한 이유는 그 지역이 산발랏의 고향(벧 호론)과 지리적으로 가까웠기 때문이거나, 중립지역이기 때문에 느헤미야를 안심시킬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에서 그들은 평화 회담을 제안한 것처럼 위장해서 느헤미야를 은밀하게 해치려 했다(2b절).
그렇지만 느헤미야는 이들의 회담 제의를 즉시 거절한다(3a절). 공사 완공을 앞둔 중요한 시점에서 책임자인 자신이 현장을 떠날 수 없다는 이유였다(3b절). 느헤미야는 그들의 제안에 의심을 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3c절). 산발랏과 게셈이 네 차례나 초청장을 보냈지만(4절) 느헤미야는 흔들리지 않는다. 이렇게 느헤미야가 응하지 않자, 산발랏은 다른 방법을 사용한다. 이번에는 신하를 시켜 느헤미야에게 ‘봉하지 않은 편지’를 전달한다(5절). ‘봉하지 않은 편지’란 누구나 읽어볼 수 있는 흑색선전용 편지를 가리킨다. 산발랏은 이 편지를 이용하여 느헤미야에게 위기감을 불러일으키려 한다. 즉, 유언비어, 가짜뉴스를 퍼뜨려서 성벽 재건을 중단시키려 한 것이다.
봉하지 않은 편지의 내용은 느헤미야가 유대인의 왕이 되고자 아닥사스다 왕에게 반역을 꾀하고 있다는 소문이 유다와 이방 사람들 가운데 떠돌고 있다는 것이다(6절). 그리고 느헤미야는 이미 예언자들의 지원 아래 유다 왕으로 즉위할 준비를 마쳤다는 것이다(7a절). 이렇게 아닥사스다 왕에게 편지를 써서 유다 지도자들을 참소하는 것은 수년 전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가 예루살렘 재건 공사를 멈추기 위해 사용한 방식이기도 했다(스 4:7~16). 산발랏은 당시 아닥사스다 왕이 강 건너편 영지의 불안정한 정세에 매우 민감하다는 사실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산발랏은 느헤미야에게 이 소문이 머지않아 아닥사스다 왕에게 알려질 수 있음을 알리면서, 함께 만나 이 문제를 해결하자고 제안한다(7b절). 그러나 느헤미야의 반응은 단호했다. 그 소문은 산발랏이 지어낸 허구임을 알았기에 묵살한다(8b절). 느헤미야는 이미 산발랏이 자신과 유다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주어 공사를 중단시키려 한다는 사실을 간파한 것이다(9b절). 느헤미야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한다(9b절).
2. 도비야와 거짓 예언자들의 음모(10~13절)
느헤미야를 해치려 한 음모가 수포가 되자 대적들은 내부의 인물들(스마야와 여 선지자 노아댜)을 통해 느헤미야를 제거하려는 방법을 사용한다. 도비야의 이름이 먼저 언급된 것으로 보아(12b절), 이번에는 도비야가 주도적으로 행동한 것 같다. 산발랏과 도비야는 당시 유다의 지도층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느 13:4~5, 28). 도비야는 예루살렘 제사장들과 유대 관계에 있는 것을 활용하여 느헤미야와 제사장들을 이간질하게 하려고 한다. 그는 예루살렘에 거주하고 있는 스마야라는 사람을 시켜서 느헤미야를 성전 안으로 유인하려고 한다. 스마야는 성전 예언자로 추측되며 10b절의 말을 예언자 선포 형식으로 느헤미야에게 전한다.
느헤미야는 스마야가 두문불출하자 그를 찾아간다(10a절). ‘두문불출’은 정황상 스마야가 예언자적 황홀경 상태에 있는 것을 가장해 느헤미야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느헤미야가 이런 스마야의 소문을 듣고 찾아오자, 스마야는 느헤미야에게 대적들의 암살 음모를 알리며 성전에 숨어 있을 것을 제안한다(10b절). 그러나 느헤미야는 곧바로 스마야의 예언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님을 알아차리고 그의 제안을 거절한다(11절). 그리고 자신이 성전에 숨을 수 없는 이유를 제시한다(11a절).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라는 말은 “사명을 맡은 자가 자신의 신병을 위해 그 자리를 피할 수 없다”는 의미다. 또,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라고 말하며 제사장이 아닌 자가 성전에 들어감으로 제의 규정을 어길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결국 스마야가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자신을 속이려고 했다는 것이 느헤미야에게 알려지게 된다(12b절). 이를 통해 느헤미야가 제의 규정을 어기도록 해서 제사장들의 적대감을 사도록 의도했던 것 같다(13절).
3. 느헤미야의 기도(14절)
이번에도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대적들을 하나님의 심판에 맡긴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았던 느헤미야의 신앙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그러면서 느헤미야는 자신을 공격하는 일에 가담한 여 선지자 노아댜와 다른 선지자들을 언급한다(14b절). 산발랏, 도비야, 게셈의 위협이 외부로부터의 공격이라면, 여 선지자 노아댜와 성전 내 거짓 선지자들은 내부의 적들이었다.
대적들은 페르시아 왕의 재가로 시작된 성벽 재건 공사를 공식적으로 방해하는데 한계가 있어 공동체 내부 인사들과 연계하는 방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과업을 이루기 위해 안팎의 방해 세력과 싸운 것이다. 꿋꿋하게 하나님만 바라보고 맡은 일을 이루어가는 느헤미야의 지도력이 남다르다.
나는?
-틈을 막지 못하면 결국 붕괴한다. 성벽을 쌓는 일도, 공동체를 세우는 일도, 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성벽의 허물어진 틈을 다 메우고 서문 문짝만 남았을 때, 이젠 다 됐다고 마음 놓을 만한 때부터 방해와 위협은 더 교묘해지고 거세졌다.
-성벽을 틈새 없이 잘 쌓았듯이 그의 마음에도 악이 들어올 만한 조그마한 틈새도 허락하지 않은 느헤미야였다. 아주 작은 틈이라도 보이면 악은 거세게 밀고 들어와 무너뜨린다. 그렇기에 악과는 단 한 번이라도 타협해서는 안 된다. 지혜로운 순수함과 어리석은 순진함을 잘 분별하여야 한다. 분별없이 인정에 끌려 “이번 한 번만”의 유혹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분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대적들은 속임과 위협을 그칠 줄 몰랐다. 그러나 자기 손의 힘을 하나님께 맡기며 기도하기를 쉬지 않는 느헤미야를 당해낼 수 없었다. 산발랏은 봉하지 않은 편지를 보내서 느헤미야의 안전을 염려하는 듯하였지만, 실제는 느헤미야를 공포에 떨고 낙심하게 하여 공사를 중단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떳떳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청했다. 그를 어찌 이길 수 있을까!
-대적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느헤미야와 연결된 선지자 스마야까지 이용한다. 느헤미야가 율법을 어기게 함으로써 백성의 신망을 잃게 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하려는 계략이었다. 하지만 철저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며 겸손한 느헤미야는 거짓 예언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 때로 사탄은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의 가장 신뢰할 만한 예언까지 공동체와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는 데 이용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느헤미야는 선지자들의 거직 예언을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분별했다. 외부의 암살 위협에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피하자는 예언 자체가 하나님의 명령을 하나님께서 깨뜨리시는 것임을 알았기에 스마야의 거짓을 쉽게 분별할 수 있었다. 말씀을 선명하게 알고 지킬수록, 유혹을 담대하게 떨칠 수 있다.
-느헤미야의 대적들은 갖가지 방법으로 느헤미야를 공격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흔들리지 않는 용기와 지혜, 하나님만 바라보는 신앙으로 이를 대처했다. 대적들의 공격은 집요했지만, 느헤미야는 단호하고 간단하게 거절했다. 계속된 유혹을 거절하는 것이 꽤 어렵지만, 느헤미야의 단호함은 대단하다. 한 번의 타협으로 ‘삼킴’을 당할지 모른다.
-무엇보다 느헤미야는 외부와 내부의 위협을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로 돌파했다. 그는 산발랏의 편지를 받았을 때나, 스마야의 거짓 예언을 들을 때, 당황하거나 성급하게 하지 않고 어김없이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려는 걸음에 힘든 시험들이 연속해서 올 수 있다. 시험이 다가올수록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다. 경험과 생각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한다.
-사탄은 나를 염려하고 보호한다고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도록 유혹한다. 사리를 잘 분변하는 지혜가 하늘의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끈질기게 이어지는 두렵게 하려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만 바라보며 기도하는 것은 그래서 가장 먼저이어야 하고, 가장 끝까지 이어야 한다.
*주님, 여러 시험이 다양한 관계와 상황으로 몰려올 때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가정 먼저, 그리고 끝까지 구하고 의지하겠습니다.
*주님, 느헤미야의 분별력이 결국 말씀에 근거하여 판단한 것임을 보게 됩니다. 주님의 뜻을 말씀을 통해 분별하도록 늘 말씀을 가까이 하겠습니다.
*주님, 느헤미야의 단호한 대처는 “늘 기도하는” 그의 태도에서 왔음을 봅니다.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삶은 결국 “주님과 기도의 자리에서,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임을 다시 확인합니다. 말씀과 기도로 더욱 주님 뜻을 분별하여 따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