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 6:15-7:4 예루살렘 성벽 공사 완공, 그 이후
하나님의 도우심과 느헤미야의 지도력에 힘입어 드디어 성벽 공사가 52일 만에 기적적으로 완성된다. 이 소식을 들은 대적들과 주위 민족들은 큰 두려움과 상실감에 빠진다. 그들은 성벽 재건 공사 과정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를 인정한다.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 것이다. 성벽 공사에 이어 느헤미야는 성문을 달고 성벽 경비 책임자를 세우는 등 성읍 경비에 관한 구체적인 절차를 진행해 나간다.
고대 세계의 성벽은 성안과 성 밖을 구분하는 기능을 했다. 성안은 삶의 안정성을 제공하지만, 성 밖은 삶의 취약성을 드러낸다.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이해할 때 회복된 공동체에 있어 성벽 건축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경제적 안정을 의미했다. 귀환 공동체는 성벽이 세워짐으로써 이제 하나의 완전한 사회의 기능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성벽은 귀환 공동체에 중요한 신학적 의미가 있다. 성벽은 공동체의 중심인 성전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성전 건물의 확장을 의미한다. 레위인들이 성문을 지키는 것은 이것을 잘 드러낸다(느 7:1; 13:22). 그러므로 성벽 또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상징이며, 성벽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표시로 이해될 수 있었다.
1. 성벽 완공과 대적들의 반응(15~19절)
성벽 공사의 완성을 보도하는 15~16절은 내용상 1절과 연결된다. 대적들의 집요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는 성벽 공사를 시작한 지 52일 만인 엘룰 월 25일(주전 445년 10월 2일)에 완공한다. 예루살렘이 파괴된 이후로 140여 년 동안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성벽 재건 사업을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도착한 지 100일도 채 되지 않은 기간 동안 이루어낸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이토록 짧은 기간에 완성된 것에 회의적인 견해를 밝히기는 하지만 3장의 기록을 근거로 보면 중건한 지역의 대부분은 주로 북쪽의 양문에서 남동쪽의 샘문까지의 지역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예루살렘 동쪽 지역은 보수에서 거의 빠져 있다. 여러 골짜기가 위치한 동쪽 지역이 크게 훼손된 곳이 적어서 공정의 상당 기간을 줄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도착 직후 밤에 성벽을 탐사하는 과정에서 이것을 파악했을 가능성이 크다. 확실하지 않지만, 성벽의 둘레는 약 2.6km로 추정한다. 또한 아닥사스다 왕 초기 예루살렘 성읍이 어느 정도 재건되고 있다가 중단되었었기에,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은 공사의 처음 시작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52일간의 공가 기간에 완성된 것은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본문은 52일이라는 숫자를 언급하며 하나님의 기적적인 도움으로 이루어졌음을 강조한다.
16~19절은 대적들의 반응을 소개한다. 성벽 재건 공사가 완공되었다는 소식은 대적들과 이방 족속들에게 두려움과 낙담을 안긴다(16절).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다”라는 표현은 대적들이 느끼는 절망감을 잘 표현해 준다. 정치적인 배경으로 보면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 공사는 페르시아 제국의 요새화 정책의 하나로 추진되었다. 강 서편 지역이나 애굽의 지속적인 반란, 그리고 그리스의 유다도(예후드) 지역 침공의 가능성으로 인해 팔레스타인 지역을 안정시키고 유다를 요새화할 필요성이 생겼고, 이에 그 책임자로 느헤미야를 예루살렘에 파견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유다의 요새화는 자연스레 주변 지역, 즉 사마리아, 암몬, 아라비아 지역의 유다에 대한 영향력 약화를 가져오게 된다. 이런 배경에서 산발랏을 비롯한 주변의 총독들과 민족들이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 공사를 중단시키려 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손길이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한 귀환 공동체와 함께함으로 대적들의 음모와 방해 공작을 무력화했다. 그리고 대적들은 공사가 그토록 빨리 진행된 배경에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손길이 함께하셨음을 알게 된 것이다(16b절). 결국 대적들의 방해가 오히려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귀환 공동체와 주변 백성들에게 알리는 기회가 된 것이다.
하지만 17~19절은 성벽 공사의 완공으로 대적들의 공격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님을 밝힌다. 성벽 공사는 완공되었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참조, 7:1~4). 17a절의 “그때에”는 성벽 공사가 완공된 후에도 대적자들이 느헤미야를 다시 모함하려 한 사건을 소개한다. 암몬 사람 도비야는 대제사장을 비롯하여 예루살렘의 지도자들과 돈독한 유대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참고, 13:4). 도비야와 유다의 귀족들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었다(17절). 본문은 이들 사이의 친밀한 관계의 배경에 도비야가 유다 지도층 인사들과 맺은 혼인 관계가 자리 잡고 있음을 밝힌다. 그는 스가냐의 사위였고, 그의 아들 여호하난도 므술람의 딸을 아내로 맞이했다(18b절). 도비야는 그 외에도 많은 유다 사람과 정치, 경제적인 동맹을 맺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a절의 “그들이 도비야의 선행을 내 앞에서 말하고”라는 표현은 도비야가 예루살렘의 지도층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그룹이 있음을 시사한다. 이들은 아마도 주변국들과 경제적인 교류를 맺는 등 개방 정책을 지향하며 느헤미야의 지도력과 갈등을 맺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도비야는 자신이 맺고 있는 유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최대한 이용하여 느헤미야를 어려움에 빠뜨리고자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18b절).
2. 성벽 완공 후 조치들(7장 1~4절)
성벽 공사가 완성된 후에 느헤미야는 마지막 남은 공사인 성문에 문짝을 다는 일을 마친다(1a절). 그렇다고 해서 성벽 재건의 모든 일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제부터는 예루살렘 성읍과 성전을 잘 지키고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다. 이를 위해 느헤미야는 성전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운다(1절). 아직도 대적들의 위협이 상존하는 만큼 예루살렘의 경계를 지속할 필요가 있었다. 느헤미야는 앞으로 있을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여 세부적인 방어 체계를 확립한다.
그는 자신의 동생인 하나니와 영문의 관원(성전 경비 책임자)인 하나냐를 예루살렘 성읍의 경비 책임자로 세운다(2a절). 느헤미야는 자신의 동생을 책임자로 세운 이유를 밝히는데, 그가 충성스러운 사람이요, 하나님을 경외함에 있어 본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밝힌다(2b절). “충성스러운 사람(에메트)”은 그가 중요한 일을 맡을 만큼 신실한 사람임을 의미한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문 경비와 관리에 대한 지침을 하달한다(3절). ‘파수할 때 문을 닫는 것’은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성문을 닫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지시한 이유는 대적들의 위험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함이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주민도 경비를 서는 일에 참여하도록 하고, 성벽 접경 지역 주민들은 자기 집 맞은편 성벽을 경비하도록 지침을 내린다(3b절).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을 지키는 일에 책임감을 느끼고 참여하도록 한 것이다.
4절은 여전히 남이 있는 문제를 지적한다. 그것은 성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적었고, 가옥도 부족한 상태였다는 점이다. 유다 사람들은 대적들의 위협이 여전히 건재한 상태에서 안전상의 이유로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것을 꺼렸을 것이다. 게다가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머물렀던 사람들이 공사가 끝난 후 각자 집으로 돌아가면서 성읍의 인구는 더 줄어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루살렘 성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의 거주민 숫자를 늘려야 할 필요가 있었다. 느헤미야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귀환민들의 계보와 숫자를 파악하게 한다. 느헤미야는 전체를 볼 줄 아는 포괄적인 안목과 더불어 세밀한 부분까지 살피는 섬세함을 겸비한 인물이었다.
나는?
-예루살렘 성읍은 하나님께서 완성하셨다. 성벽 재건 공사가 마무리되어 단 한 곳도 빈틈없이 허물어진 곳이 다 메워졌다. 아예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은 조건이었지만, 두 달도 못 되어 신속하게 성벽을 쌓았다. 그러니 백성은 환호했고 대적들은 두려워하고 낙담했다. 그들도 이것이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였다고 인정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에 하나님의 도움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때를 좇아서 감당할 때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 하나님이 높아지고 찬양이 된다.
-성벽 건축은 하나님의 백성이 회복되는 것을 보여주는 표지였다. 수많은 방해와 위협에도 불구하고 성벽이 완성된 것은 하나님께서 도우셨음을 증거한다. 52일 만에 성벽이 완성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하심과 공동체의 연합이 얼마나 놀라운 일을 이룰 수 있는지 보여준다. 산발랏과 도비야 주변 민족들은 이제 조롱과 위협 대신에,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결국 두려움과 수치심에 사로잡힌 것은 그들이었다. 성벽 완공의 궁극적인 의미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그분의 백성과 함께하신다는 것이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성벽 공사가 완공되기까지 많은 난관이 있었지만, 핵심적인 대적자 도비야의 방해도 그중 하나였다. 유대의 많은 귀족들이 그의 친구이고 친척이었다. 그들을 통해 그는 예루살렘의 속사정을 잘 알고 있었고, 효과적인 위협을 가할 수 있었다. 특히 성벽 건축의 핵심 사역자인 므술람은 그와 혼맥을 통해 친족이 된 사람이었다. 겉으로 보면 느헤미야의 지도력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조건과 상황이 분명하다. 하지만 도비야는 예루살렘 사정을 환히 알았으나, 하나님은 그의 속마음과 계략까지 다 아시고 폐하셨기에(4:15) 성벽 공사는 완공되고 공동체도 안전하게 보호된 것이다.
-성벽 완성이 공동체 내부의 문제가 모두 해결되게 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전히 유다의 귀족들 가운데 여러 사람들이 도비야와 혼인 관계로 얽혀 있었고, 귀족들은 도비야의 행적을 좋게 포장하기 일쑤였다. 또한 그들은 느헤미야의 말을 도비야에게 전하기도 했다. 한편, 도비야는 느헤미야를 흔들기 위해서 편지를 보내고 있었다. 귀족들은 언약 공동체를 회복하는 일보다 인간적인 이해관계를 앞세웠다.
-이처럼 교회가 세상 속에서 신뢰를 잃는 이유는 종종 외부의 공격보다는 내부에서 일어나는 분열과 불의 때문이다. 공동체를 세워 나갈 때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말씀 위에 흔들림 없는 교회로 세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느헤미야는 성문에 문짝을 달고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인들을 세운다. 실무와 신앙을 겸비하고 신망에 두터운 두 사람 하나니와 하나냐를 세워 도시 행정을 담당하게 한다. 성벽은 견고하게 쌓았지만, 성안의 인구가 적어 안전에는 취약했다. 이에 느헤미야는 제한된 시간에만 문을 열게 하고, 보초를 세워 지키되 자기 집 앞은 스스로 지키게 하였다. 공동체의 본질은 사람이다. 지도자는 적절한 은사와 자격을 갖춘 사람을 적소에 두어 공동체를 세우는 역할을 해야 한다.
-성벽은 하나님의 백성이 구별될 수 있도록 지켜주는 울타리 역할을 했다. 느헤미야는 그 안에서 하나님 백성을 위한 질서를 세운다. 성벽 문이 세워지자, 가장 먼저 문지기, 레위인, 찬양대를 세운다. 레위인과 찬양대를 세운다는 것은 예루살렘 공동체의 목적이 도시 재건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성벽 문을 닫는 시간을 규정하고, 각자가 자기 집과 연결된 근처 성벽을 지키도록 했다. 성벽은 어떤 사람들만의 책임이 아니라 모든 공동체가 함께 지켜야 하는 것이었다. 지도자와 백성 모두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각자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
*주님, 성벽 완공이 끝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진정한 시작인 것을 깨닫습니다. 눈에 보이는 일보다 그 일을 통해 이루어지는 주님의 역사를 더욱 함께 호흡하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