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롬 5:12-21]
 – 2023년 06월 05일
– 2023년 06월 05일 –
인류의 두 대표자인 아담과 그리스도(둘째 아담)를 대비하여, 어떻게 죄와 사망과 구원이 온 인류에 게 미치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1.아담에서부터(12-14절)
아담이 시작했으나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고, 그 결과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이르렀다(12-14절). 아담이 범죄했다는 것은 대표의 원리 일 뿐 아니라 실제적으로도 모든 사람이 다같이 아담의 길에 서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육체의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있다는 죄의 실제적인 영향력을 보여 주는 것이다.
 
아담의 범죄를 틈타 사망이 세상에 들어와 아담의 후손들을 장악했다. 그 결과 모든 사람이 죄를 짓고 죽음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아담에서부터 모세 때까지 율법이 없어서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음에도 사망이 지배한 것은 죄가 율법의 기준에 상관 없이 본질적으로 죄였기 때문이다. 
 
*인간이 이 죄와 사망의 세력을 스스로 이길 수 없다는 자각이 있을 때 회개의 가능성이 시작된다.
 
*대표성의 원리로 볼 때 오늘 나의 걸음이 불순종하는 길에 서지 않도록 두려운 마음으로 돌아보아야 한다. 특히 목사의 직을 감당하며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을 늘 염두하여 언행심사를 돌아보아야 하니 않겠나….
 
 
 
2.그러나 예수님을 통해(15-19절)
아담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 반면 예수님의 은혜로 많은 사람에게 선물이 넘쳤다. ‘아담 안’에서 인류는 많은 것을 잃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그와 비교할 수 없는 많은 것을(영광된 것을) 얻게 되었다(15-17절). 하나님의 은혜는 아담에게서 흘러나온 어떤 것이라도 능히 정복할 수 있기 떄문이다. 바울은 우리가 아담 안에서 잃어버린 것이 당연하다면 예수 안에서 받는 은혜와 선물, 은사와 능력도 또한 당연한 것이다.
 
아담이 가져온 죄와 사망의 영향력은 막강했으나 예수님을 통해 오는 생명과 은혜의 영향력은 더욱 강력했다. 죄와 사망의 위력을 여전하나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인해 더 강한 하나님의 은혜와 영생의 영향력으로 인해 우리가 죄에 얽매이지 않게 되었다.
 
*믿음의 삶은 아담의 범죄와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 사이에서 누구의 영향력을 허용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통한 구원은 더 나아가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해방에만 머무르지 않고 예수님께서 주신 생명 안에서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왕 노릇할 수 있는 새 사람으로 창조하신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받는 은혜의 통치 안에서 담대하게 서 있을까?
 
아담의 신실하지 못한 불순종이 인류를 사망의 세력 아래 떨어지게 했지만, 둘째 아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운 행위가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고 생명에 이르게 하였다(18-19절). 단지 의롭다고 선언 받는 존재에 그치지 않고 순종하며 살아내는 의인이 되게 하셨다.
 
*구원 자체에 만족하여 구원의 문을 열어 구원의 삶을 살게 하는 순종의 삶을 외면하게 하는 값싼 은혜, 값싼 구원을 더 이상 맹신해서는 안 된다.
 
*둘째 아담을 통해 구원 받은 새 사람, 새 백성된 그리스도인은 첫째 아담의 불순종의 길이 아니라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의 순종의 길을 당연히 따라 나서는 삶을 산다. 순종의 길을 꿋꿋히 감당한다.
 
 
3.율법과 은혜(20-21절)
1-19절을 통해 믿음의 법을 통해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을 설명하면서 이에 대해 생기는 의문 곧 율법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재 확인한다. 율법은 정죄(죄를 정하는 것)의 기능이 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까 넘친다. 왜냐하면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한 것 같이, 은혜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우리 주 예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믿음의 법이 생명을 가져다 준다는 말씀은 유대인들에게 율법의 기능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한다.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이 생명을 가져다 주는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에 대하여 율법은 죄를 더하게 하는(부각하게 하는) 기능이 있다고 설명한다. 이에 대한 것은 7장에서 더 자세하게 다룰 것이다. 또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다고 말한다.
 
믿음의 법으로 하나님과 함께 하게 되었다는 것, 하나님을 믿는 자가 되었다는 것, 의를 얻는 다는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생명을 누린다는 의미이다. 율법은 정죄하고 은혜는 용서한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영생에 이르게 하기 위해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는 것이 당연하다.
 
 
 
나는?
-대표성의 원리이다. 아담의 엉터리 대표성이 인류를 절망으로 이끌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또 그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온 것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떄문에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되었습니다(12절_새번역)” 아담이 인류 대표가 되므로 개인의 범죄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다 죄인이 되었다. 이것을 원죄라고 일컫는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죄인이 되었으나 예쑤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통해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한 사람으로 인해 사망의 길에 놓였으나, 한 사람으로 인해 생명의 길로 나아가게 되었다. 한 사람으로 인해 악인의 길에서 의인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통해 생명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 그렇다면 이 길에 들어서게 한 예수님을 본받아 이 시개의 순종하는 “한 사람”으로 살아내는 이가 곧 그리스도인,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다.
 
*나는 그리스도인의 이름에 걸맞게 순종의 삶을 살고 있을까?
 
 
*20절의 새번역은 “율법은 범죄를 증가시키려고 끼여 들어온 것입니다”라고 번역했다. 율법이 범죄를 증가 시키려고 끼여 들어온 것이라는 번역에는 “범죄를 증가 시키려고”라는 의미가 분명히 들어있다. 이는 율법이 없을 때 죄를 인식하지 못하는 기에(13절) 자신이 죄인인줄도 알지 못한다는 맥락을 함께 한다.
 
*그런데 율법이 들어오고 나서는 율법을 기준으로 자신의 죄된 상태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율법이 범죄를 증가시킨다는 번역의 의미는 죄를 죄로 인식하는 것이 늘어났다는 뜻이겠다. 율법의 역할은 딱 거기까지이다. 모든 사람은 죄인임을 깨닫게 하고 그 죄의 결과 죽을 수 밖에 없음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선물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더욱 더 넘쳐나게 되었습니다(15절_새번역)”  그런데 자신이 아담의 후손으로 죄인이라는 것, 그 죄된 삶은 절망 뿐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면 예수님의 은혜를 깊이 통감하지 못한다.
 
*내가 죄인임을 깊이 깨달을 수록, 그 사실이 마음이 시리도록 아프고 절망스러워서 아무런 소망이 없는 존재임이 절실해질 수록 예수 그리스도라는 은혜이 선물이 너무도 귀하고 귀한 것임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 감격과 기쁨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주님, 예수님의 은혜가 어떤 것보다 가치있고 감격스러움을 잊지 않는 삶을 살겠습니다.
*주님, 그리스도인의 이름에 걸맞는 순종의 삶을 감사하며 살아내겠습니다.

Leave a Comment

매일성경 묵상

스데반의 설교_모세 이야기 [행 7:17-36]

스데반은 출애굽의 이야기 가운데 중요한 대목을 요약하는 방식으로 모세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는 모세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 바로 공주의 아들로 입양된 이야기로 시작하고, 청년 시절 애굽

자세히 보기 »
매일성경 묵상

2차 투옥과 하나님의 적극 개입 [행 5:12-26]

산헤드린 공회의 엄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교회의 신자들은 솔로몬의 행각에 모이고 하나님은 사도들의 사역을 통해 지속적으로 표적과 기사를 일으키신다. 이에 시기로 가득한 사두개인들은 사도들을 다시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