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 ㅣ 묵상을 함께 나눕니다
바울이 이렇게 명령하며 당부하는 부탁이 무엇일까?
1. 흔들리지 않는 믿음, 모든 일에 사랑함으로(13,22절)
바울의 고린도교회를 향한 마음이 느껴진다. 굳이 요약하자면 “굳게 서서 용감하게 믿어라, 그러나 사랑하라” 라고 할 수 있겠다. 그때나 지금이나 용감한 믿음으로 사는 것, 사랑으로 행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특히나 당시 고난과 핍박의 시기를 지나는 교회들은 더더욱 그랬다.
하나님 나라 복음이 노골적으로 무시 받고 핍박 받는 시대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용감하게 사는 것”과 예수님처럼 사랑하며 서로 격려하여 견디어 내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었다. 그때 살아내 주셔서 지금 내가 안전하게 믿음을 누릴 수 있다. 그 세대가 용감하게 믿음으로 살아내서 다음세대가 평안 가운데 믿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 복음을 소유한 살아내야 할 길은 분명하다. 어느 시대보다도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권위가 흔들리는 시대 속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의 힘이 커지는 상황 가운데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용감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집단화, 세력화보다 내 자신이 이렇게 굳게 서서 용감하게 믿음으로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다.
하나님 나라 복음은 온 간데 없이 집단화와 세력화만 추구하여 가장 조롱받는 이익집단처럼 되어버린 교회가 다시 회복하는 길은 이 길밖에 없다. 내가 선 곳 바로 그곳에서부터 “믿음에 굳게 서서 용감하게 살아가되 사랑하며 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하며 사는 것은 지체,공동체, 사회를 사랑하는 것 뿐 아니라 가장 중요한 사랑, 바로 주님을 사랑하며 살기를 당부한다. 오죽하면 저주 선언까지 곁들이며 주님을 사랑하라고까지 한다. “누구든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저주를 받으라!……(새번역_22절)”
모든 일에 사랑하는 삶은 주님을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낼 수 있다. 주님의 사랑을 깨달아 알기에 그 사랑을 따라 모든 일(관계)를 사랑으로 행할 수 있는 것이다.
2. 마라나타의 소망으로(22절)
이런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마라나타!(22절_우리 주여 오시옵소서!)”이다.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하며 ‘모든 일에 사랑으로 행하며’ 용감하게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이 소망이 믿음에 굳게 서서 사랑하며 살게 한다.
3. 공동체들와 함께(15-21절)
그러나 홀로 “굳게 선 믿음과 사랑안에서” 살 수 없다. 그래서 바울은 늘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가치를 상기시킨다. “문안하라”는 것이다. 즉 공동체안에서 사랑으로 행하는 것의 지표는 서로의 안부를 마음을 다해 묻고 축복하는 것이다. 아시아의 교회들이, 아굴라와 브리스가가, 모든 형제들이, 그리고 나 바울도 “문안”한다고 격려한다.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기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음으로 생각한다는 거다. 늘 생각하던 존재들이니 편지라는 형식이라도 빠짐없이 안부를 묻는 것을 빼놓지 않는다. 이것이 공동체다.
또한 교회를 섬기는 이들, 수고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순종함으로 그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고 그들을 알아주라고 권면한다(15-18절)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스데바나의 집 사람들은 상당히 먼 거리를 달려와 바울에게 교회의 편지를 전달하고 교회의 상황을 알려준 사람들이기에 그들의 수고를 알아주기를 부탁한다.
당시 가정교회의 지도자들은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와 재력을 가지고 있어서 늘 섬기 받는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교회를 섬기기로 작정하고 기꺼이 수고와 헌신을 마다하지 않았다. 지체들을 위해 섬기고 있으니 이제 지체들이 그들을 섬겨주라는 의미이다. 공동체안에서 신앙이 일구어 지기에 서로 섬기는 “모든 일에 사랑으로” 행할 것을 당부하는 것이다.
나는?
-고린도 교회를 향한 바울의 마지막 권면은 분명하고도 단호하다. “깨어 있으라, 믿음에 굳게 서라, 용감하게행동하라,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는 권면이다(13~14절). 마지막을 기다리는 성도는 영적인 무방비 상테로 있지 않고 늘 깨어 근신하며살아야 한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왜곡하고 교회와 신앙을 흔드는 그 어떤 가르침이나 사상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 또 부활 소망이 확실하기에, 자기만 위해 살지 않고 타인을 위해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으며, 환난 중에 인내하여 세상의 유혹에 굴하지 않고 담대히 살아가야 한다.
-깨어 있으라는 분명하고도 단호한 당부는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늘 깨어 있어, 십자가의 도를 부정하는 거짓 복음에 미혹되지 말라는 것이다. 진리(믿음) 위에 굳게 서서, 어떤 시련과 유혹에도 굴하지 말라는 거다. 그리하여 담대하게 극복하라는 당부였다.
-바울은 아가야 지방의 첫 회심자이자 자신이 세례를 준(1:16) 스데바나와고린도 교회의 사절단으로 바울을 찾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를 지도자로 천거한다. 교회와 성도를 위한 그들의 남다른 수고와 헌신을 소개하며 그들을 존중하고 자발적인 마음으로 순종하기를 요청한다(15~18절). 지도자는 내외적인 자격 요건도 갖추어야 하겠지만, 동시에 ‘성도들을 섬기려고 자원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지도자의 권위는 ‘주장’하여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마음으로부터 ‘부여’되는 것이다.
-바울은 결국 은사를 자랑하고 인간 지도자를 중심으로 파당을 형성하고 형제를 고소하던 고린도 교회를 향해,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하라”고 간곡하게 부탁한다. 이는 곧 성령을 의지하여 십자가의 원리를 깨달아 자기를 버리는 사랑으로, 선물로 주신 은사를 사용하여, 공동체를 세워가라는 명령이었다.
-바울은 아시아 교회들의 문안에 이어 고린도에서 함께 사역했던 아굴라 부부와 에베소 교회의 모든 햐ㅕㅇ제들의 문안을 전한다(19~21절).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1:2)은 한 형제요 한 지체다. 교회는 주를 믿음으로 한 가족을 이루고 형제의 친밀함을 나누는 교제 공동체요, 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 사랑을 나누는 사랑 공동체다.
-그런 사랑의 공동체에게 바울은 격려(13~14절)와 함께 준엄한 경고로 편지를 마무리한다.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들에게 저주를 선포한다. 고린도 교인들에게 ‘주님의 오심’이 두려운 일이 되지 않기를 바라고, 거짓 위안을 심어주기 보다는 영적 교만과 허세의 자리에서 내려와 주를 사랑하는 데 이르기를 바라는 아비의 심정(4:15)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우리 공동체도 주님과 지도자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고 후회 없이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고백하고 요청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사모한다.
-고린도 전서 긴 묵상이 마무리되었다. 16장을 30회에 나누어 묵상하였다. 결국 정리되는 것은 “사랑”이다. “모든 일에 사랑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사랑함으로”…. 교회의 모든 문제가 사랑으로 행하지 않음으로 인해 일어난 문제들이었다. “사랑”, 이미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형언할 수 없는 놀라운 사랑을 덧입었지만, 세상 가치, 방식, 지식으로 이를 믿지도, 누리지도 못하여 일어난 문제들이었다.
-주님의 사랑을 받았으니 그 사랑이 나의 방식과 가치과 지식의 모든 것이 되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해 일어나는 문제들이다.
-그래서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명령한다. “깨어 있어라”, “믿음에 굳게 서라”, “남자답게 강건하라(용감하라)”,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무엇보다 주님을 더 깊이 사랑하라!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니 사랑 앞에서 어떤 문제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는다.
*요즘 우리 공동체에게 주시는 확연한 말씀이다. “모든 일에 사랑으로 행하라”
*문제가 없는 교회는 없다. 의인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라 죄인들이 모이는 곳이기에 문제는 당연히 있다. 차고 넘친다. 하지만 이런 교회를 사람들은 문제투성이로 보지 않고 “사랑이 넘치는” 그 곳으로 본다는 것이 문제다. 실제 사랑이 넘쳐나는 곳이 교회다. 하지만 이미 이렇게 세워진 교회가 완전한 모습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기에 부족함이 있을 수 있다. 분쟁과 여러 문제가 발목을 잡고 힘들게 할 수 있다.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이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사랑에의 순종”이 늘 요청된다. 그래서 그런지 바울은 명령했다! 선택하는 것도, 권면하는 것도 될 수 없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명령이다.주님 다시 오실때까지.. 그 끝까지 살아내야 할 명령이다.
*믿음으로 용감하게,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삼고, 모든 일에 사랑으로 행하는 구체적인 첫 걸음, 지표들이 바로 이끄는 이들에게 순종, 그들의 수고를 알아주고 격려함, 모든 공동체와 지체들이 서로 ‘문안’함 등으로 나타나는 “공동체성”이다. 주님 안에서 공동체된 우리들에게서 마땅히 나타나야 할 것이라는 의미다.
*고린도전서를 묵상하며 문제없는 교회가 없음을 다시 확인했다. 그 문제들은 2천년전 교회들만의 문제가 아닌 지금 여기 이곳에 속한 교회들의 문제였다. 하지만 문제들이 넘쳐남에도 결국 교회는 “모든 일에 사랑으로 행하는” 용감한 믿음이 있고,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보는 찬란한 소망이 있기에 굳게 설 수 있었다. 어떤 핍박과 박해,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다음 세대에게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전수했다.
*오늘 나와 교회공동체도 어떤 상황에서도 다음세대에게 “믿음, 소망, 사랑”을 전수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백성의 의무이다. 내가 먼저 “용감한 믿음으로”, 내가 먼저 “다시 오실 주님을 향한 소망으로”, 내가 먼저 “모든 일에 사랑으로” 행하여 믿음이 굳게 서게 하겠다.
*용감한 믿음, 재림의 소망, 모든 일에 사랑…. 특히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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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3차 전도여행 중에 이방 교회들로부터 헌금을 걷어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성도들을 구제하는 일에 힘썼다. 고린도 교회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들에게 헌금을 미리 준비하여 예루살렘의 형제들을 돕는 일에 힘쓸 것을 요청한다. 또한 바울 자신의 방문 계획을 언급하고, 그 방문에 앞서 디모데를 먼저 고린도 교회에게 보내며 그를 멸시하지 말고 환영해 줄 것을 부탁한다.
1. 연보(1-4절)
당시 기근으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한 바울의 연보(헌금) 요청은 그가 전도여행을 다니며 새운 교회들에게 공통적인 것이었다. 이 일은 그가 전도 여행을 시작하기 전 안디옥 교회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연보로 번역된 단어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구제 헌금’이었다. 고린도 교인들인 교회를 세우면서 바울에게 들었던 예루살렘교회의 상황에 대한 질문이 있었을 것이고, 바울은 그들을 위해 ‘구제헌금’을 해주도록 요청하고 있다.
그것도 매우 구체적으로 요청하고 있는데, “매주 첫날에, 여러분은 저마다 수입에 따라 얼마씩을 따로 저축해 두십시오. 그래서 내가 갈 때에, 그제야 헌금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새번역_2절).” 이런 방법은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에게도 요청한 동일한 방법이었음을 함께 언급한다(1절)
구제헌금은 어떤 이벤트를 통한 “쇼 헌금”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제서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다. 구제헌금은 ‘매주 첫 날’에 정기적으로 곤란중에 있는 성도와 교회를 생각하며 마음으로 떼어 드리는 것이다. 구제헌금은 ‘저마다 수입에 따라’ 얼마씩을 따로 저축하여 돕는 것이다. 즉, 도움이 될 수 있게 돕기 위해 현실적인 재정을 모은 것이다.
이렇게 모은 구제헌금을 고린도 교인들이 신뢰하는 한 사람의 성도에게 맡겨 예루살렘으로 전달하게 하든지, 성도들이 원하면 자신도 함께 가든지, 가서 전달하겠다는 계획을 밝힌다. 사사로이 구제헌금을 관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바울이 세운 교회들마다 동일한 원리 하에 구제헌금을 드리도록 한다. ‘시간을 정하여(매주 첫날), 꾸준히(모아 두어), 성도들로 하여금 전달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여러 상황들 속에 이웃 교회들 가운데 “예루살렘 교회와 같은 교회들”이 늘어간다. 특히 개척교회들을 거의 고사 직전이라고들 한다. 사역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선교사와 선교지도 예외는 없다. 지금 우리도 여러 겹쳐진 전쟁과 그로 인한 경제 위축으로 인해 재정이 위축될 수 밖에 없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인 교회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는 없다.
2. 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5-8절)
바울이 고린도 방문계획을 알리면서 “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 고린도에 좀 더 머물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이는 현재 바울이 에베소에 머물고 있는 중요한 이유인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은” 것에 따라 이루어질 것이다.
이미 15:32에서 밝힌 것처럼 “맹수와 싸우는 것 같은” 대적하는 자가 많은 에베소에서 신기하게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문이 활짝 열려 있음을 알기에 하나님의 선한 인도하심을 더욱 의지하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원하는대로, 마음먹은 대로가 아니라 복음,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그의 걸음을 정하였다.
나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에게는 늘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려 있다. 하지만 오늘날 복잡한 국제 정세 상황 하에 처한 교회의 상황처럼 “대적하는 자가 많은” 상황은 피할 수 없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오히려 “복음의 문이 더욱 활짝 열려있고, 대적자들은 더욱 많아진” 이와 같은 상황에서 복음과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주저함 없이 선포하며 나갈 때가 아닌가 싶다. 이러한 때에 내가 하고 싶은 사역과 계획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허락하시는대로, 주의 인도하심을 따라 여야 한다.
바울도 자신의 계획은 현재 에베소에서 육로로 빌립보 교회 등이 있는 마게도냐 지역을 거쳐 고린도로 가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이런 저런 일들로 인해 진행되지 못했다. 한참 후에야 전혀 다른 계획하지 않는 대로 인도하심을 따라 고린도에 갈 수 있었다.
지금 내가 세운 계획대로가 아닌 주께서 허락하시는 대로, 주께서 인도하시는대로 받들이며 신뢰하며 기다리는 마음이 필요하다. 호흡을 가다듬고, 주께서 허락하실 그때 주저하지 않고 감당하기 위해 오늘을 살아야 한다. 나의 힘을 쏟아부어 계획대로 진행하여 자기 만족감에 주의 뜻을 놓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만족함이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나타나기를 인내하며, 절제하며 기다려야 한다.
주님은 반드시 주의 뜻대로 허락하실 “그 때”를 열어주신다. 주님이 허락하신 “그 물때”를 기다리며 인생의 배위에서 기다려야 한다. “물 때는 반드시 다시 온다”
3. 디모데를 먼저 보내며(10-12절)
자신이 방문 하지 못하는 형편(8절)이어서 고린도 교회를 손놓고 놔두지 않는다. 디모데 편에 이 편지를 보내며 교회가 든든히 회복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당부한다. 디모데가 “아무 두려움 없이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기를(10절)”, “업신 여기지 않기를”, “평안히 다시 돌아오도록”(11절) 부탁한다.
바울이 교회의 문제들에 대한 권면들을 작성한 편지를 들고 가는 디모데가 평안히 다녀 오기를 기원한 것이다. 여기에 ‘형제 아볼로’에게 고린도 교회를 함께 다녀 오라고 권면했지만 아볼로는 그럴 계획이 없음을 밝힌다. 이로 보건데 몇몇 교인들이 아볼로가 다시 고린도 교회로 와 주면 어떻겠냐고 질문한 것 같다. 아볼로는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한 교회 내의 분쟁과 경쟁 상황이 악화 되기를 원치 않은 듯 하다. 그래서 상황이 정리되면 다시 갈 수 있을 것이라며 여운을 남긴다.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이런 아볼로의 판단은 매우 유익한 것이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일부 성도들의 요청도 있으니 디모데와 함께 방문할 것을 요청했지만, 그렇게 되면 자신을 추구하며 따르는 이들에게서는 열렬한 환영을 받는 반면, 이로 인해 분쟁과 경쟁의 골이 더 깊어 질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공동체의 유익을 바라보는 아볼로의 판단이 참 감사하다.
자신의 영광보다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자신의 지도자도 함께 갈 것을 요청했는데 이를 거부하면서 경쟁이 더 악화되는 것보다 화해와 평안이 더 중요한 것을 알았다. 역시 “주님의 선하신 인도하심과 그 뜻”을 분별하며 결정하는 안목이 있기에 가능했다. 나에게도 이런 통찰력과 결단력이 더 선명하게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에베소에 열린 복음의 문을 바라보면서 바울은 그의 복음 전도 여정을 크게 구상한다. 마게도냐를 두루 거쳐 고린도에서 어느 정도 머문 다음,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이었다. 이것이 그가 세운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의 계획대로 그 걸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발걸음을 뗀 것은 순전히 “주님께서 허락하실 때”였다. 주께서 인도하실 때 분별하고 믿음으로 걸음을 떼었다.
-좀 더 넓게 바라보자면 에베소에서만 열린 “크고 광대하며 유효한 문”이 아니었다. 이미 마게도냐에서, 고린도에서, 예루살렘까지 복음은 점점 더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그만큼 대적자들의 강력한 반발도 가시화 되었다. 실제로 바울은 복음 전도의 여정 중에 그가 당했던 수많은 대적들의 핍박을 오롯히 온 몸으로 견디어 냈다.
“…..나는 수고도 더 많이 하고, 감옥살이도 더 많이 하고, 매도 더 많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습니다. 유대 사람들에게서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맞은 것이 다섯 번이요,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이요, 돌로 맞은 것이 한 번이요,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요, 밤낮 꼬박 하루를 망망한 바다를 떠다녔습니다.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는, 강물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 사람의 위험과 도시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의 위험을 당하였습니다. 수고와 고역에 시달리고, 여러 번 밤을 지새우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고, 헐벗었습니다(새번역_고후 11:23-27).”
-아.. 어찌 따라갈 수 있을까? 바울, 그의 길… 예수님의 길… 그럼에도 연약하지만 따라갈 수 있는 힘은 “만일 주님께서 허락하시면”에서 나온다. 내가 세운 계획의 틀이 아니라, 세운 계획이라도 “주님의 허락하심과 인도하심, 지켜주심과 보호하심”을 신뢰하며 따라가야 한다. 이것이 아니면 어찌 그 길을 따라갈 수 있으리오.
-“만일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바울은 에베소의 3년 사역을 마친 후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여 그곳에서 좀 더 길게 체류할 계획을 세우면서 이렇게 고백한 것이다. 이 상황은 현재 에베소에서는 ‘맹수와 싸우는 것 같이(15:32)’라고 할 만큼 바울을 대적하는 자가 많았지만, 동시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문이 활짝 열린 것을 보고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더 머물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이 부분에서 큰 도전이 된다. 바울의 고린도 방문 계획과 예루살렘 연보 전달 계획은 평탄하고 형통할 때 결정한 것이 아니라 고단한 상황이었지만, 하나님의 뜻이 이렇게 결정한 근거였다는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연보”에 관한 묵상이 은혜가 된다. 정기적으로 헌금을 모은다는 것은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한 공동체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형제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면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이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이 고린도교회에 있었다. 문제들도 많았지만 하나님 나라 공동체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는 것에 감사가 된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 어떤 상황속이든 어려움을 당할 하나님 나라 공동체가 얼마나 많을까? 그들에게 하나님의 마음과 같은 사랑이 공동체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할까!
*나라나 지역이나, 개인이나 살림살이(경제)가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고통받는 분들이 있다. 특히 이런 상황이 자신들의 환경에서 온 것이 아니라 자연현상으로 인해 이루어진 일이라면, 그야말로 벙어리 냉가슴 앓는 것이다. 그 냉가슴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부어 다시 심장이 뛰게 하는 것, 다시 따뜻한 온기가 채워진 가슴이 되게 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 나라 공동체가 하는 일이다.
*어떤 사역보다 중요한 냉가슴을 뜨거운 가슴 되게 하는 것, 그것은 뜨거운 사랑을 부어주면 된다. 이를 하나님 나라 공동체가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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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은 구원의 종말적 완성을 배경으로 한다. 그 과정의 핵심은 주님의 재림이고, 최종 결과는 하나님 나라의 온전한 회복이다. 성도의 부활은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새 언약 안에 있는 자로서의 미래 상태이고, 삼위 하나님과 온전히 교제할 수 있는 몸이 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심판 결과이자 어둠의 통치 세력 중 하나인 죽음에 대한 완전한 해방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온 피조물이 죽음의 과정에서 벗어나 심판과 저주에서의 구속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다.
본문은 부활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마지막 권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부활은 주님의 재림 때 일어날 것이다. 변화와 옷 입는 표현을 통해 썩어질 현재 몸이 신령한 몸으로 변화하고 새로운 몸을 입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때는 어둠의 통치 세력 중 하나인 사망을 이기고 모든 것이 완성될 것이다. 그렇기에 성도는 그때를 기대하고 지금 더 정성스럽게 주님 안에서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1. 부활 과정에 대한 설명(50절)
바울은 부활 과정 설명에 대해 그것이 왜 필요한지를 언급한다. 살과 피로 구성된 몸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썩는 것은 썩지 않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50절). 앞 부분에서 설명한 현재의 몸과 부활의 몸의 차이를 전제로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또한 하나님 나라와 그를 대적하는 반역의 나라라는 두 영역의 개념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도 한다. 또한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배경으로 삼고 있기도 한데, ‘유업을 받다’라는 표현이 가지는 언약 관계 용어에 담긴 그 관계 안에 있는 자가 상속 받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 받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통치 영역 안에서 그분과의 언약 관계 결과를 누린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썩지 않음을 상속받는다는 것도 같은 개념이다. 결국 성도에게 부활 과정이 필요한 이유는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관계를 누리려면 썩어짐의 과정을 경험하는 살과 피로 된 현재 몸이 아니라 불멸의 몸, 곧 영이신 하나님과 온전히 교제할 수 있는 신령한 몸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2. 부활 과정_변화, 세 옷을 입음(51~53절)
52~53절은 몸의 부활에 대한 설명이다. 죽임 모든 성도(‘우리’)의 마지막 상태가 아니라고 한다. 마지막 나팔은 주의 나타나심과 관련된 표현으로 주님의 재림의 때를 의미한다(15:23). 부활 과정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 데살로니가전서 4:14~17과 비교하여 본문은 두 가지 표현을 사용하여 부활 과정을 묘사한다. 먼저, ‘변화’, 곧 ‘바뀐다’는 표현이다. 이 단어는 부활과 고나련하여 청므 사용하는 단어다. 이 단어를 통해 부활 과정은 죽은 자들이 이전 몸으로 다시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부활은 완전히 다른 새로운 몸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것도 순식간에 바뀐다. 그리고 바울은 52절에서 이 변화 과정을 앞서 언급한 부호라의 몸의 본질에 대한 것과 연결해 다시 묘사한다. 주의 강림 때 나팔 소리와 함께 죽은 자들이 썩지 않는 몸으로 다시 살고, 살아 있는 ‘우리’ 몸도 순식간에 신령한 몸으로 바뀔 것이다. 물론 이 바뀜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부활 과정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은 ‘옷 입는다’는 것이다(53절). 마치 옛 옷을 벗고 새 옷을 입듯, 새로운 몸이라는 옷을 입는 것으로 부활 과정을 묘사한다. “약하고 영광스럽지 않고 썩어 없어질 것”이 ‘강하고 영광스럽고 썩지 않을 것으로 입어 새롭게 된다’는 말이다. 이 두 표현은 새롭게 된다는 것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나’라는 신자는 없어지지 않는다는 공통점도 있다. 다시 말해, 부활은 ‘나’가 없어지고 또 다른 새로운 ‘나’가 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몸이 바뀌는 것이지만, ‘나’라는 존재는 없어지지 않는다.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맺고 지낼 언약 관계의 상대자이기 때문이다. 단지 이전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하나님과 관계할 뿐이다.
이런 면에서 부활 과정은 하나님께 온전히 반응할 수 있고 사랑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몸으로 변화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이 부활의 과정을 성령(롬 8:9~10; 고후 3:18)이나 예수의 일하심(빌 3:21)으로 된다고 밝히지만 구제적인 과정은 자세하게 알 수 없다. 사실 구체적 설명 자체가 중요하지도 않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변화의 과정을 경험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부활은 그렇기에 감사할 신비요 비밀이다(51절).
3. 부활 과정_사망에 대해 승리함(54~57절)
54~57절은 부활 과정과 관련하여 사망에 대한 승리를 다룬다. 바울은 부활이 ‘사망이 승리 안으로 삼켜진다’는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말한다(54절).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부활 과정이 온전히 실현되는 것(51~53절)을 이사야 25:8의 성취로 표현한 것이다. 이 표현에는 두 가지의 함의가 있다. 부활을 통한 죽음에 대한 승리는 하나님의 오래전 계획의 일부라는 것과 그 일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하나님이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구원에 대한 구약 약속을 이루셨기에 부활을 통한 완성의 약속 또한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호세아 13:14을 인용하며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으며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55절)”라고 외친다.
그러나 이러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사실 사망을 이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죄와 사망과 율법과의 관계성 때문이다. 바울은 이 관계성을 사망이 쏘는 것이 죄이고 죄의 능력이 율법이라고 말한다(56절). 율법은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통로다. 사람들은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를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앎과 지식이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관계를 거절하는 죄를 막지 못한다. 오히려 사람은 그 뜻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더 거절한다. 이 과정에서 율법은 죄의 죄됨을 더 심각하게 보여주고, 그 죄로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를 받게 됨을 더 분명하게 말해준다. 이것이 율법이 죄의 능력이라는 말의 의미다. 그 심판과 저주의 결과는 죽음이다. 그렇기에 사망이 찌르는 무기는 죄다. 마치 사람을 죄로 찔러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 말이다. 사람은 누구도 이 죄와 죽음의 카르텔을 이길 방법이 없다.
그러나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승리의 길을 연 것이다. 십자가에서 사람들을 향한 자신의 심판을 예수에게 쏟음으로 죄에서 해방되는 길을 열었고, 부활을 통해 그 심판이 끝났음과 죽음의 통치에서 해방되는 길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믿는 자는 주의 재림 때 몸이 부활하는 과정을 통해 그 해방을 실제로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울이 전한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내용(15:1~8)이다. 그가 ‘우리 주 예수 메시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고백하는 이유이기도하다(57절).
4. 권면(58절)
부활에 대한 설명에 근거하여 성도들에게 권면한다. 메시아의 사역으로 인해 죄와 죽음의 통치에서 하나님의 생명의 영역으로 옮김을 받은 성도는 장차 부활을 통해 참 해방의 완성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그 실제를 경험하고 있지만, 예수를 통해 보여준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함은 미래에 있을 그 완성의 보증이다. 그러니 흔들리지 말고 굳게 서서 항상 주의 일에 더 힘쓰라고 바울은 권한다. 주님께서 역사를 완성하시는 그 때가 있고, 성도는 부활의 몸으로 그분과 영원한 교제를 하게 될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본문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죽은 자는 부활의 몸을 입을 것이고 살아 있는 자들도 썩지 않을 몸으로 변할 것임을 선명하게 밝힌다. 죄의 결과인 사망은 끝나고 성도의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말이다.
-혈과 육은 땅에 속한 것이다. 육의 몸은 썩어 없어질 것이기에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다(50, 53절). 이 땅에서 성도는 썩어 없어지겠지만, 썩지 않을 영광의 몸으로 부활할 것이다. 그러니 ‘육신의 썩음과 영혼의 생명’, ‘현재의 고난과 장래의 영광’, ‘보이는 순간과 보이지 않는 영원’을 분별할 수 있는 영적인 안목으로, 있다가 사라질 이 세상의 소유, 명예, 권력에 흔들리지 말자.
-부활의 몸을 입지 않고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될 수 없다. 자연인으로서 사람은 죽어 썩지만, 성도는 썩지 않을 영광의 몸으로 부활하여 피조물의 한계를 벗고서야 썩지 않을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가 될수 있다. 부활의 소망 없이 오로지 썩을 세상에만 몰두한다면, 썩지 않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주께서 마지막 나팔 소리와 함께(계 11:15) ‘순식간에’ 재림하실 것이다. 우리가 살아 있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때 이미 죽은 자는 부활의 몸을 입을 것이고, 살아서 공중에서 주님의 영접을 받는 자들은 영원히 썩지 않는 몸으로 변할 것이다. 육신적인 삶과 죽음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영원한 죽음과 영원한 삶이라는 엄을 수 없는 경계가 생길 것이다.
-부활의 소망이 확실하게 이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고난을 인내하는 삶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을 부인하는 거짓 가르침이나 이세상이 전부인 듯 유혹하는 세계관에 흔들리지 말고 주께서 맡기신 소명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부활이 흔들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었듯이 우리의 부활 또한 견고하고 확실한 약속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최후의 승리와 부활의 소망을 확신한다면 이 세상이 전부인 양 미혹하는 가르침에 흔들리지 않아야 할 것이다. 또한 나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안다면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우리의 신앙의 전후를 완전히 바꾸는 부활의 진리를 확신하기에 부활 소망 굳게 붙잡고 나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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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는 현실적인 문제는 인지능력의 범위 안에서 얼마든지 설명하고 조언하며 논리적인 변증도 할수 있다. 하지만 부활은 다르다. 현실속의 인지능력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영적인 영역의 것인데, 이미 일어난 “역사”와 “사실”이다.
본문은 부활의 몸에 대한 질문에 대한 설명이다. 부활에 대한 실제적인 묘사다. “어떻게” 다시 살아나서, “어떤 상태”의 몸인지에 대한 질문(35절)에 대한 대답이다. 바울은 부활한 자가 어떤 몸과 어떤 존재로 나타나게 될 것인지를 설명하면서 두 가지 비유를 사용한다.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 부활한 몸은 이 세상에서의 육체와 다른 변혁된 몸이라고 언급한다. 또한 자연적인 인간은 땅에 속하지만, 부활한 자는 하늘에 속한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부활을 어떻게 통과하여 어떤 상태로 부활할까?
1. 어떻게_부활에 대한 씨의 비유(35~38절)
바울은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의 주장에 대해 직접 언급한다. 그들은 두 가지 질문을 던졌는데, 그것 모두 부활의 불가능성을 강조하는 본질적으로 같은 질문이다. 첫째, ‘죽은 자들이 어떻게 살아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은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냐는 말이다. 둘째, 만약 부활한다면 어떤 몸으로 나타나느냐는 질문이다. 시체가 땅 속에서 썩어 없어지는데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바울은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해서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설명한다.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도 농사 짓는 자들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들이 곡식을 기대하면서 씨를 뿌리는 행위가 사실은 부활에 대한 증거인데, 그것을 보고도 부활을 믿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들이 어리석은 이유는 스스로 영적인 지식을 가졌다고 주장하면서도 영적인 복음에 따라 생각하지 않고 육체적인 경험에 따라서만 판단하기 때문이었다. 영적인 지식을 자랑하면서도 그들의 사고방식은 불신자들과 별반 다를 바 없었으며, 사실은 부활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어리석은 자들이었다.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이냐고 반문하는 이들에게 바울은 일상에서 늘 하고 있는 씨 뿌리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보라고 한다. 씨를 뿌리는 자들은 그 씨가 그대로 자라서 열매를 낼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 뿌려진 씨는 썩어 없어지지만, 대신 거기서 새로운 식물이 자란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뿌린 씨앗이 죽은 후에 새로운 생명으로 자라난다는 것은 인간의 육체도 죽은 후에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예)가 된다.
그리고 뿌려진 씨가 썩은 후에 다시 똑같은 씨로 되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를 가진 식물로 자라나서 아름다운 꽃과 열매를 맺는 것처럼 부활의 몸도 그러할 것이다. 씨앗이 모두 비슷해도 그것이 썩은 후에 자라는 식물은 각기 다르듯이 부활의 몸은 하나님께서 각자 주신 대로 일것이다. 그러므로 부활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으며, 모든 사람이 죽을 때는 같은 몸으로 죽지만 부활할 때에는 그들의 믿음과 행위에 따라 각기 다른 영광으로 할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이여! 그대가 뿌리는 씨는 죽지 않고서는 살아나지 못합니다.(새번역_36절)” 바울은 부활의 관점에서 육체는 “씨”라고 비유한다. “씨”자체만 보고 자라서 열매 맺히게 될 것을 설명할 수 없다. 땅에 뿌려진 씨앗이 썩지 않으면 싹은 틔우지 못한다. 그 씨가 죽은 곳에서 새 몸이 태어나는 것이다. 부활을 소망하는 삶은 그래서 썩어가는 시간, 죽어가는 시간이다. 육체는 죽어가나 부활이 기다림을 알고 기꺼이 죽어가는 것이다. 어디 육체 뿐이겠는가? 하나님 나라 삶의 방식으로 살아내기 위해 옛 삶의 방식을 끊임없이 죽이며 나가야 한다. 그것이 부활로 가는 여정이다. 그런데 여전히 옛 삶의 방식을 썩히지 않는다면 미이라가 될 뿐, 거기에서 생명의 새로운 몸이 나오지 못한다. 오늘도 옛 삶의 방식을 계속 버리고 썩어가야 한다.
2. 어떻게_부활한 몸의 영광(39~41절)
이 단락은 38절에 대한 보충 설명이다. 즉 부활한 몸이 어떤 몸을 가지고 나타나겠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대답한다. 바울은 하나님이 자기 뜻에 따라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셨듯이 부활한 몸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각각 다른 영광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씨 뿌리는 비유를 이어간다. 씨앗이 죽은 후에 각기 다른 식물로 자라나듯, 부활한 몸도 각기 다른 영광을 가지고 나타나게 될 것이다.
부활한 몸에 대한 바울의 설명은 간단하고 명쾌하다. 첫째, 부활한 몸은 이 세상에 있던 육체와 같지 않다. 새롭게 변화된 몸을 입게 될 것이다. 바울은 이것을 땅에 속한 몸과 하늘에 속한 몸의 차이로 대조하여 설명한다. 당시 헬라적 세계관에서 땅은 일시적이고 멸망하여 없어질 것이고 하늘은 영원히 존재하는 이상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의 몸은 썩어지고 없어지겠지만, 부활한 몸은 썩지도, 늙지도, 없어지지도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새로운 몸이 될 것이다.
둘째, 부활한 자는 각각 다른 영광으로 부활하게 될 것이다. 바울은 이것을 하늘에 있는 각종 천체들에 비유한다.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이 각각 다른 영광을 가지고 있듯이, 부활한 몸도 하늘에 속한 것으로서 각기 다른 영광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은 부활한 몸이 어떤 몸으로 나타날 것이냐고 반문했지만, 바울은 그들에게 획일적인 대답을 하지 않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에 따라 각자에게 정하신 대로 영광을 주실 것이라고 말한다. 바울의 대적자들은 부활한 몸을 구성하는 재료의 질에 대해서 질문했지만, 바울은 부활한 몸의 영광에 대해서 설명한다. 바울은 몸이 이 세상의 육체와 다른 천상적인 몸으로 부활할 것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거기서 끝나지 않고 부활한 몸의 영광의 다양성에 대해 설명한다. 이를 통해 이것을 너희가 각각 어떻게 심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영광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즉, 바울은 부활에 대해서 질문하는 대적자들의 질문을 통해 그들 각자가 지금 어떤 신앙의 씨앗으로 심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하는 기회로 삼는다.
3.어떤 상태_그분의 형상(41~49절)
바울은 부활에 대해 비유적으로 설명했던 것에 근거하여 이제 세상적인 육체와 부활한 몸이 어떻게 서로 다른지 대조하여 설명한다. 네 종류의 대표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첫째, 썩을 것과 썩지 않을 것의 대조를 통해 부활한 몸은 영원히 죽지 않을 새로운 몸이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둘째, 욕된 것과 영광된 것의 대조는 부활한 몸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으로 드러날 것인지 강조한다. 셋째, 약한 것과 강한 것의 대조를 통해 ‘능력’은 부활한 몸에 속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고린도 교회의 신령한 자들은 스스로 강한 자라고 자랑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부활을 믿지 않는 그들은 약한 것에 속한 자다. 강함은 부활을 믿는 자들의 것이다. 넷째, 육의 몸과 신령한 몸의 대조가 등장하는데, 이것은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의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은 스스로 신령한 자라고 주장하지만, 신령한 것은 부활한 몸과 관계된 것이다. 만약 부활을 믿지 않는다면, 그들은 신령한 자들이 아니라 육에 속한 자들임을 알아야 한다.
45~46절은 육과 영에 대한 대조를 아담 기독론을 통해 설명한다. 먼저 첫 사람 아담은 육적인 존재인 반면에 둘째 아담인 그리스도는 영적인 존재로 묘사한다. 아담은 우리를 육적인 존재로 태어나게 했지만, 그리스도는 우리를 영적인 존재로 살려주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먼저 육적인 존재로 태어났지만,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비로소 영적인 존재로 부활하게 되는 것이다.
47~49절에서 첫 사람인 아담은 땅에서 나왔지만, 마지막 아담인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내려와 성육하신 분으로 설명한다. 아담의 기원은 땅이며, 그리스도의 기원은 하늘이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아담의 후손으로 육의 몸을 입고 땅에 속한 자로 태어났지만, 그리스도에게 속할 때 하늘에 속한 자가 된다. 육체적인 출생으로 땅에 속한 자가 되었지만, 부활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자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부활 없이 우리는 영적인 존재가 될 수 없다. 바울의 이러한 논리는 신령한 존재라고 스스로 말하면서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에게 충격으로 다가갔을 것이다. 부활을 부인하는 자는 결코 영적인 존재가 될 수 없다.
나는?
-죽어야 살아난다. 씨가 썩지 않고는 열매로 살아나지 못하듯이, 육신이 죽어야 부활할 수 있다. 하지만 땅에 심기는 것은 미래의 몸이 아니라 ‘알갱이’에 불과하다. 아무도 심긴 알갱이만으로 열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듯이 부활의 몸은 현재 우리의 몸과는 전혀 다른 모습일 것이다.
-부활에 대해 의심하는 자들의 의문은 두 가지다. 죽은 자가 어떻게 다시 살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떤 몸으로 다시 살아나는가? 이다(35~37절). 이에 바울은 씨를 예로 들어 설명해주었다. 씨를 심으면 썩고 죽지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열매로 다시 산다. 하지만 심겨진 씨와 열매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동일하게 우리 몸도 썩지만, 현재 몸과 전혀 다른 썩지 않는 몸으로 부활할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이나 어류나 조류, 짐승의 형체를 각각 다르게 지으셨다. 또 하늘에 속한 형체(해, 달, 별)는 땅에 속한 형체와 크게 다르게 지으셨다. 각각의 기능에 맞게 지으셨고, 각기 다른 영광을 갖게 하셨다. 이처럼 부활 이전의 몸과 부활 이후의 몸도 다를 것이다. 그 목적에 맞게, 그 형편에 맞게, 서로 다른 몸이 있고 서로 다른 영광이 있다(38~41절).
-이처럼 우리 이성과 상식과 경험으로 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부활의 신비’다. 부활의 약속은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약속하신 일이고, 예수님을 통해서 이미 보여주신 일이다.
-죽은 자의 부활은 육의 몸(썩음, 욕됨, 약함)이 영의 몸(썩지 않음, 영광, 강함)으로 변화되는 것이다(42~44절). 지금 우리 몸은 죄의 권세아래 있는 연약하고 욕된 몸이지만, 부활의 몸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하여 썩지 않는 영광스러운 몸이다. 언젠가 썩어 없어질 육의 몸이 존재하듯, 썩지 않는 영의 몸도 존재한다. 그러니 썩어질 육신의 생명을 좀 더 연장하는 일보다 주님 만나기에 합당한 영혼으로 준비하는 일에 힘써야 하겠다. 잠깐 나를 만족시켜주는 것을 위해 영원한 가치를 버리는 선택은 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사람은 흙으로 빚어진, 흙에 속한 자다. 주를 믿는 성도 역시 흙에 속한 자지만,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이기에 하늘에 속한 자가 되었다(45~49절). 더 이상 사망의 창시자인 첫 사람 아담이 아니라, 생명과 부활의 창시자인 마지막 아담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다. 이 육신의 장막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죽지 않고 썩지 않을 부활의 몸을 입혀주실 것이다. 육신을 벗고 싶을 만큼 힘겨운 삶이라면, 부활의 약속을 소망으로 삼아 오늘의 고단한 현실을 이겨내야 하리라.
-우리는 첫 사람 아담이 가진 생명을 가진 혼(생령, 산 영)이며 땅에서 나서 다시 흙으로 빚어진 존재이기에, 아담처럼 죽을 숙명을 지고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생명을 주는 영이신 마지막 아담 예수님께 속했기에, 하늘에 속한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형상 혹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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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망이 끊어졌다(20-23절)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시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분에게 속한 모든 성도에게 ‘부활의 보증’이 되신다. 예수님의 부활은 아담의 죄로 시작된 사망의 세력을 이기고 주님께 속한 모든 자에게 새 생명을 주신 사건이다. 모든 사람이 아담 때문에 죽음을 피할 수 없듯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부활은 필연적인 일이다.
아담 이후 지어진 죽음의 행렬이 예수님에게서 끊어졌다! 예외 없이 죽어간 인생들이었다. 그런데 주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죽음이 끊어졌다. 이제 죽음이 생명에게서 떨어졌다.죽음이 떨어진 내가 생명되신 예수께 붙어 있으면 나도 생명이 된다.
나에게서 사망이 끊어지고, 생명이 붙었다. 그리스도께서 사망을 끊어내고 생명 되셨기 때문이다. 생명의 삶을 사는 것, 그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된 삶이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각각 제 차례대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첫째는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요,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입니다(새번역_22-23절).”
내가 구원 받아 늘 그리스도 안에 속하여 부활의 열매가 될 것을 확신한다. 이제 부활은 구원받은 성도에게 막연한 기대나 환상이 아니라 확실한 약속이자 소망이다.
2. 주권 회복(24-28절)
예수님은 사망을 멸하시기까지 하나님 나라에서 왕노릇 하실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이 다시 오셔서 사탄의 모든 권세를 멸하고 하나님께 전리품으로 바치는 그날에, 죽은 자들이 살아나고 산 자들이 부활의 몸을 입고 주를 영접할 것이다. 만물을 그 발아래 두실 때까지 대적하는 세력들이 있지만, 아무도 그리스도의 주권과 통치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리스도가 살아계셔서 지금도 말씀으로 통치하고 계심을 믿는다면 내가 사는 이유와 삶의 태도가 달라질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부활하신 주님께서 죽음이라는 수단으로 생명을 다스린 사탄을 쫓아냈다. 주권 회복, 왕권 회복을 이루었다. 그리고 진정한 하나님 나라 왕이 되신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여전히 가짜 왕권을 휘두르며 몸부림치는 잔재세력(사탄, 대적하는 세력들)을 멸하시고 이들에게서 회복된 왕권을 하나님 아버지께 올려 드릴 것이다. 사탄은 죄로 물든 이 땅의 환경을 볼모삼아 마지막 힘을 부리지만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예수의 부활로 주어진 영원한 생명을 빼앗을 수 없다.
또한 주님께서도 하나님의 만유의 주 되심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하나님께 굴복 당할 그 때에는, 아들까지도 모든 것을 자기에게 굴복시키신 분에게 굴복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만유의 주님이 되실 것입니다(새번역_28절).”
이 모든 과정은 정하신대로 진행된 것이다. “성경대로”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주님의 부활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부활, 세상 권세에 대한 심판으로 이어져 이루어진다. 이 모든 일들을 틀림없이 이루실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예수님의 부활처럼 반드시 이루어지기에 구원의 확신 안에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대하며 믿음을 굳게 지키며 살 수 있다.
3. 삶의 의미를 찾아(29-34절)
29~32절은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고 산 소망을 주셨기에 바울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고, 극심한 박해애도 굴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이처럼 부활을 확신한 성도는 모든 고난을 견뎌내고 죽음의 두려움조차 극복하면서 믿음의 길을 걸어간다. 주님은 내가 영원한 부활에 참여하리라 믿으며 죽음 앞에 결코 타협하지 않는 백성이 되기를 바라신다.
바울은 부활로 인해 무엇이 생명다운 생명을 누리며 사는 것인지 분명하게 말한다. 부활이 없다면 죽음을 무릅쓰며 복음을 증거하지 않았을 것이며, 오늘이 전부인양 먹고 마시며 즐기는 것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당시 세계관에 함몰되어 그저 몸과 마음의 쾌락만 추구하며 살아가는 인생에서 주님의 부활을 믿고 바라보며 왕 되신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사는 것, 하나님 나라의 삶을 누리는 가장 지혜로운 삶이다. 하나님 나라의 삶을 지금 누리며 살 수 있는 믿음과 용기는 부활하신 주님을 굳게 믿으며 그 안에 살 때 충분히 가능하다. 부활의 첫 열매되신 주님의 존재는 내가 지금 이곳에서 부활을 소망하며 굳게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33~34절에서 바울은 거짓 교사에게 미혹되어 몸의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어서 깨어나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고 경고한다. 부활의 진리는 마치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는 이들을 향해 삶의 바른 이정표를 제시하고, 불의하고 느슨해진 삶과 현실에 질식되어버린 신앙을 일깨운다. 부활을 믿는다면 이 세상의 불의한 요구에 나의 생명을 넘겨줄 수는 없는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 때문에, 부활을 기대하며 하나님 나라의 삶을 이곳에서 살아낼 수 있다. 하나님 나라의 구체적인 삶인 복음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30절), 날마다 주님 때문에 나의 자아를 죽이며(31절), 이 땅의 삶의 방법을 거부하고(32절), 깨어 의를 행하므로 죄를 짓지 않는(33-34절) 삶을 추구하며 살아낼 수 있다. 부활의 주님이 계시기에…
나는?
-나의 사망이 주님의 부활로 끊어졌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류의 조상 아담이 그 후손에게 지워준 죽음의 운명을 뒤집는 사건이다. 아담의 불순종은 이 세상에 죽음을 가져왔지만, 그리스도의 순종은 삶을 가져왔다. 첫 열매가 있으면 나머지 수확이 있듯이, 그리스도께서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여 첫 열매가 되셨으니 우리도 영원히 무덤에 있지 않고 분명히 부활의 옷을 입을 것이다.
-나에게 사망으로 왕 노릇하던 사탄의 영향력이 이제는 끊어졌다. 주님이 나의 왕 되셔서 나와 이 세상을 통치하신다. 나는 그 통치 안에 이미 있다. 그렇기에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낼 수 있다. 주님의 부활이 나를 그렇게 살게 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사망이 멸망당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하나님 나라 왕 노릇을 하실 것이다. 예수님은 다시 오셔서 사탄과 함께 대적하는 세력들을 멸하시고 이양 받은 왕권을 돌려드린 후 자신도 아버지께 복종하실 것이다. 여전히 사탄이 활개를 치고 사망이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된 부활의 첫 열매를 반드시 우리도 맛 볼 수 있다.
-내 안에 부활이 이미 들어와 있다. 여전히 세상방식에 유혹받고 세상 가치에 흔들릴 수 있으나 기필코 극복할 수 있다. 내 안에 있는 부활은 생명이기에 생각과 의지와 행동을 분명히 다스리셔서 주님 안에 살게 한다.
-주님의 오심으로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는 주님의 부활로 그 왕권의 완전한 회복을 드러내고 다시오실 그때 이를 완성하실 것이다. 주님의 부활은 하나님 나라가 이미 시작되어 일상에서 그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삶을 꿋꿋히 견뎌내려는 이들에게 일어나는 고난과 핍박을 충분히 견디게 하고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살아가도록 힘과 의지를 공급해 준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바울과 그 일행이 죽음을 무릅쓰면서 복음을 증거하지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오늘이 전부인 듯 먹고 마시며 즐기는 것이 가장 지혜로웠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먹고 사는 일보다 주님을 더 기쁘시게 하기 위해 묵묵히 시련을 인내하는 이들을 결코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세상의 미련한 자로 내버려 두지 않고 가장 지혜로운 자로 세우실 것이다. 그러므로 미혹을 이기고 깨어나야 한다.
-주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에, 나도 부활의 대기순번을 받았다는 확고함에 굳게 믿음을 지키게 한다. 오늘도 부활 신앙으로 하나님 나라를 꿋꿋히 살아가련다. 이 세상 나라에서….
매일묵상 ㅣ 묵상을 함께 나눕니다
고린도 교회의 문제들을 살펴보면서 그 저변에 있는 “세상방식과 지식, 그리고 경험”이 얼마나 믿음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않으려는 몸부림을 무력화 시키는지 모른다. 부활에 대한 자세도 그렇다. 앞서 바울은 “내가 전해 받아 믿었고, 전해 준 그 말(복음)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않을 때 이로 인해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했다(2절). 고린도교회는 지금 “세상 지식이 혼합된 헛된 믿음”이 “전한 말(복음)대로” 믿음 믿음을 훼손 시키고 있는 것이다.
“부활이 없다”라고 교회 안에서 공공연하게 이야기하여 전해 준 복음대로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않으려는 성도들을 영적으로 혼란스럽게 하는 그들을 향한 바울의 “부활 변증”을 살펴보자.
1.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12~15절)
바울은 고린도 성도 중 일부가 부활이 없다고 한 것에 대해 부활의 필요성을 논증한다. 조건문을 통해 부활이 없는 상황에 대한 추론의 꼬리 물기 형식으로 설명한다. 부활이 없다면 바울이나 독자 모두 비참해진다. 심지어 하나님도 거짓말쟁이가 된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부활은 있다.
12절은 1~11절에서 부활이 복음의 핵심 내용임을 설명한 후 교회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을 일부 성도가 믿지 않는 것을 지적하며 문제를 제기한다. 만일 메시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전파되었다면 왜 ‘너희 중에 어떤 이는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하는가?’ 라고 묻는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것은 그리스 철학에 의하면 몸은 영에 비해 열등하고 속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또한 여전히 복음의 증거보다 자기 생각과 세상의 사고를 더 우선시 했기 때문이다.
13절은 그런 일부 성도들의 생각이 적절치 않다는 사실을 조건문 형식으로 보여준다. ‘만일’ 그렇다면(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예수도 사람 몸으로 존재했고 십자가에서 죽었기에,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얘수의 부활 역시 없을 것이다. 바울은 이런 상황을 전제로 14~15절에서 그에 대한 논리적 결론을 보여준다.
세 가지 상황을 표현하는데, 첫째, 바울을 포함한 전도자(‘우리’)의 선포는 헛 것이 된다(14절). 메시아가 부활하지 않았는데 부활했다고 전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바울은 거짓말쟁이가 된다. 둘째, 성도들의 믿음도 헛 것이 된다(14절). 부활이 없는데 있다고 전한 거짓말을 믿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죽은 자의 부활 뿐일까? 메시아의 부활도, 부활 없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도, 이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도 모두 헛 것이 된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죽음은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된 교회 공동체가 붙드는 예수님을 통한 영생의 계시가 사실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즉, 부활하신 예수가 없는 상황에서 예수를 믿는 것이 죄 사함과 하나님과의 새 언약 관계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구원을 보증할 수 있을까? 셋째, 바울을 포함한 ‘우리’는 하나님을 대적하여 거짓말한 것이 된다(15절). 바울은 하나님이 예수를 다시 살리셨다고 선포했다. 그런데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어 메시아의 부활도 없다면, 하나님이 그를 다시 살리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바율은 하나님이 하지 않은 것을 했다고 전한 것이 된다. 단순한 거짓말을 넘어 하나님을 기만하고 이용한 것이 된다.
이렇듯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하는 것은 단지 생각이나 신념의 차원에서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 복음과 관련하여 바울과 성도에게는 물론 하나님에게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모든 것이 거짓말이 된다.
2.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16~19절)
이 단락은 ‘왜냐하면(가르)’라는 표현을 통해 13~15절 내용은 부연 설명한다. 16~17a절은 13~14a절의 내용과 같다. 하지만 이후 14b~15절은 철저히 성도 상태에만 집중한다. 예수의 부활이 없다면 그들의 믿음은 쓸모없게 된다. 그들이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부활과 죄 사함의 관계에 대해 설명이 필요하다. 예수의 십자가는 모든 사람의 죄를 위해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대신 받은 것이다. 심판의 결과인 죽음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활은 그 십자가의 대속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이 끝났고 더는 심판 받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자동적으로 그것을 경험하지는 않는다. 오직 회개와 믿음을 통해 얻게 되지만, 부활은 하나님의 심판이 끝났고 예수로 인한 죄 사함의 길이 열렸음을 확증한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4:25에서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위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논리적으로 만일 예수의 부활이 없다면 죄의 대속이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고, 예수 믿는 성도들의 죄가 처리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즉, 부활이 없으면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상황이라면 예수 안에서 자는 사람, 곧 죽은 사람들은 구원을 알 수 없는 채로 죽은 것이 된다(18절). 바울은 그러한 상태를 ‘멸망’이라고 표현했다.
그렇다. 부활이 없다면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라는 말이 되는데, 모든 성도는 이 땅에서 온전한 삶을 누리지 못하고 죽는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예수 믿지 않고 죽기 전에 호의호식하며 사는 것이 더 낫다. 그렇기에 바울은 예수 안에 있으면서도 부활의 소망 없이 이 땅만을 소망한다면 모든 사람 가운데서 우리가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19절)
3. 정리
바울의 변론에 의하면 죽은 자의 부활은 몇 가지 면에서 꼭 필요하다. 첫째, 바울의 증거가 거짓이 되지 않기 위해 필요하다. 부활이 있다고 이미 전했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의 증거가 거짓이 되지 않기 위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도 역시 부활을 말씀하셨고 이행하셨기 때문이다. 셋째, 예수의 메시아됨을 위해 필요하다. 부활이 없으면 십자가의 죽음은 아무 의미 없다. 신자들의 죄를 용서하는 통로인지 알 수 없고, 죄 사함이 이루어졌는지도 알 수 없다. 더 나아가 예수가 메시아인지도 확실치 않을 수 있다. 설사 메시아가 맞다 하더라도 부활 없는 메시아의 사역은 실패다. 넷째, 신자들의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 부활 없는 복음은 죄 사함을 보증할 수 없다. 또한 이 땅에서의 삶을 넘어 영원한 생명도 확증할 수 없다. 그것 믿고 이 땅에서 다르게 사는 것은 인생 낭비다.
바울이 부활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 논리적인 귀결이지만, 반대로 부활이 있다면 이 모든 것이 긍정적으로 바뀐다. 감사하게도 부활은 사실이다. 부활을 목격한 증인들이 보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린도 성도들 중 일부가 단순히 “부활”을 믿지 않거나 거부하는 것은 마치 “도미노”처럼 신앙의 핵심체계가 스르르 무너져 버리게 되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내 생각은 이렇다는 작은 왜곡이 불러올 헛된 믿음의 결과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또, 구원 받은 삶이 의미가 없어진다. 모든 것이 다 거짓이 되어버리면 “부활의 생명을 소망하며 나그네처럼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불쌍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아주 사소한 한 가지에 대한 헛된 믿음이 결국 하나님 나라 복음이 도미노처럼 붕괴되게 한다.
왜 이렇게 믿을까?(12, 19절) 바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전했으나, 고린도 성도 중의 일부는 그 중에서 “죽은 자의 부활을 부정(13, 15, 16절)”하였다. 당시 사회를 지배하던 헬라철학의 영향이 몸의 부활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 세상에만 해당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새번역_19절).”
일부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세상에서만 해당하는 것을 바랬다는 거다. 당시 헬라 세계의 세계관이 그대로 투영된 것이다. 익숙하고, 거부감이 없으며, 심리적으로 합당하고, 보편적인 사고로 받아 들일 수 있는 것만 받아들였다는 것이 된다. 고린도 교회의 문제의 핵심이다. 어찌 고린도 교회 뿐이겠나? 오늘 나의 문제이며, 교회의 문제다.
나는?
-기막히다. ‘나는 부활을(이것만은) 믿지 않는다!’는 영향력이 교회안에 문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생활속에서 부딪히는 문제가 아니라 생활을 이끄는 핵심가치의 흔들림이다.
-더 기막힌 것은 이런 흔들림, 헛된 믿음의 추구가 헛된 믿음을 버리지 못해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헬라세계의 보편적인 삶과 죽음의 인식을 벗어나지 못하여, 하나님 나라 복음의 세계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세상방식의 믿음을 버리지 못하니 하나님 나라의 믿음이 헛되게 되어버린 것이다.
-단지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못한 것이 하나님 나라 복음이 와르르 무너지게 되어 세상 가치와 다를 바 없는 이 땅에서의 삶에만 천착하는 종교집단이 되어 버렸다. 문제는 이것이 영향력을 끼쳐서 교회 안에 문제가 되었다.
-문제는 늘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더 문제다. 내 안의 많은 문제점이 있더라도 이것을 주장하지 않고 삭이며 해결해 주시는 성령님의 만져주심 안에 있다면 별 문제가 안되겠지만, 내 자아를 드러내고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그것도 순전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아닌 세상 방식을 따라 적절하게 섞어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었으니 심각한 문제가 된 것이다.
-결국 자기 이름, 자기 지식, 자기 방식, 세상 방식을 하나님 나라 가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 것이다. 세상 가치를 불변의 기준으로 삼았지만, 하나님 나라 가치는 선택사항이 된 것이다. 취사선택의 대상이 잘못됐다.
*고린도 교회 일부 성도는 자신들이 이해하고 따르는 삶의 사상 체계에 맞게 “복음을 수정하였다” 사실 이 문제는 오늘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나의 가치관, 정치색, 행동양식에 따라 말씀의 가치를 부분적으로 교묘히 수정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왜곡된 말씀으로 익숙하게 살아간다.
*하나님 나라의 삶은 말씀을 나의 가치관에 따라 수정하는 삶이 아니라 말씀에 나의 가치를 바꾸어 가는 삶이다.
*나도 역시 수정하고 왜곡하는 것에서 자유로울까? 결코 그렇지 않다!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는 얼마든지 수정하고 왜곡하고 싶은 상황이나 여건을 만날 수 있다. 그러니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전해 들은 대로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않기 위해 몸부림 쳐야 한다. 그것은 나의 세계관(지식, 경험, 주관)과 하나님 나라 복음이 충돌(?)할 때 “전해 들은 대로”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않기”위해 몸부림 쳐야 한다.
*나의 신앙을 스스로 도미노처럼 무너뜨리는 사소한 왜곡이 얼마나 위험한지 자각하는 것도 중요하겠다. 버리지 못하는 세상 방식과 세상 지식이 하나님 나라의 삶을 누리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가?
*하나님 나라 복음, 나의 지식, 방식을 버리면 누릴 수 있다. 그러나 고집하면 나의 나라에 사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하나님 나라 복음도 없다!
매일묵상 ㅣ 묵상을 함께 나눕니다
1. 전한 복음, 받은 복음(1-2절)
바울은 이 복음을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이라고 말한다. 전한 그것을 “받아 그 가운데 서서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않았으면” 복음으로 인해 구원을 받을 것을 확고하게 전한다. 전한 복음을 받아서, 삶 속에 세워지고, 이를 굳게 지켜 스스로 헛되게 하지 않음으로 누리는 구원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이 복음을 굳게 지키지 못하고 헛되이 만들고 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이 어떤 것이었는지 다시 정확하게 다룬다(3-4절).
복음은 알게하려고 전하여 받은 것이다. 받은 복음에 가치를 두고 믿음으로 이를 지켜 나가면서 스스로 헛되게 만들지 않으면 ‘그 믿음이 구원의 통로가 된다.’ 구원의 은혜 안에 거하게 하는 바울이 전한 복음은 무엇일까?
2. 복음(성경대로 이루어 죽음과 부활) 그리고 수많은 증인들(3~8절)
성경대로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신 것과 장사 되신 후 사흘 만에 살아나신 것”이 바울이 전한 복음이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기록된 대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이셨다. 인간의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해서, 또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이다. 이 놀라운 성경대로의 성취를 목격한 증인들이 있다. 게바, 열두 제자들, 오백여 형제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 그리고 바울 자신에게까지 부활한 주님의 모습을 보이셨다.
말씀하신대로 이루어진 십자가의 죽음과 사흘만의 부활, 이를 목격한 증인들의 증언이 오늘날 부활의 확고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부활은 바울이 스스로 고백했듯이, ‘받은 것을 전해 주었다’라는 표현을 통해 고린도 성도들이 이미 받은 것이며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다. 더구나 그는 교회를 핍박하던 자였다. 하지만 그에게도 주님은 찾아오셨고, 죽음과 부활을 목격한 증인들을 통해 “복음”을 전해 들었다. 그 역시 ‘전해 들은’ 그대로 믿고 그 안에서 굳게 섰다.
성경대로 이루어진 일을 목격한 증인들의 확고한 증언을 ‘전해 들은’ 대로 믿고 또 자신도 그대로 전해 주었다. 이것이 부활의 복음을 고린도교회에게 전한 바울의 실상이다. 그도 역시 직접 보지 못했으나 직접 목격한 그들의 증언을 전해 듣고 그 복음 안에서 믿음을 굳게 지키고 더 나아 여러 지역에서 복음을 전해 주었다.
복음은 “성경대로 이루어진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다. 이것을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자신에게도 다메섹으로 내려가는 길에서 직접 보여주시고 증인들의 증언들을 통해 믿게 하신 것임을 묵묵히 들려준다. 이 복음을 전하는 것에 바울은 조금도 망설임이 없었다.
3.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라(9-11절)
바울은 누구보다 확실한 증인이 바로 자신임을 스스로 밝힌다. 가장 강력한 반대자로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데 앞장 선 그였기에 부활의 주님을 만나 이후 수많은 역경을 감내하며 부활의 증인의 삶을 사는 것은, 이 부활이 확고한 사실이였기 때문이다. 또한 부활하신 주님을 확실하게 만났기 때문이다. 바울에게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결코 “더 많이 수고하면서(10절)” 부활의 증인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바울은 이것을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한다. 박해 하던 자에서 사도라 칭함 받은 것을, 부활의 증인되어 (나나 그들이나) 함께 증언하는 것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라(10-11절) 절절히 고백한다.
나는?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을 의심하거나 부인하는 자들에게 그가 전한 복음을 상기시키고 부활의 증인들을 거론하며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이 확실함을 증언한다.
-바울은 그가 전한 복음을 “다시” 기억나게 한다(1~2절). 바울이 전한 복음을 굳게 붙들지 못하고 죽은 자의 부활을 의심하여 요동하는 이들(12절)이 있기 때문이다. 전한 대로 받지 않고 헛되이 가르치고 헛되이 믿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복음을 바르게 알고 굳게 지키는 것이 구원의 길이다. 구원에 대한 새로운 진리, 아무도 몰랐던 비밀스런 진리, 아무나 알 수 없는 특별한 진리가 있다는 말에 미혹되지 않아야 한다. 처음부터 들은 것으로 충분하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복음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계시 받았으나, 복음의 구체적인 내용은 사도들이 전해준 것을 받아서 알게 되었고 그것을 전했다.
-복음은 ‘예수 사건’이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은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라 ‘성경의 약속대로’ 성취된 사건이다(3~4절). 오직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봐야 믿는 현실적인 세상에서, 여전히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소식(복음)은 정신 나간 소리로 들릴 것이다. 그러니 이 성경의 진리를 마음 속 깊이 새기지 않는다면 무수한 은사와 영적 체험이 있더라도 우리 신앙은 쉽게 흔들리고 말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론이나 풍문이 아니다. 신자들의 신념도 아니고 꾸며낸 속임수도 아니다. 부인할 수 없는 증거가 있고 거부할 수 없는 증인이 있다(5~8절). 바울은 성경의 증거(3~4절)와 함께 부활의 증인들로 열두 제자, 오백 여 형제,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 그리고 교회를 박해하던 자신을 소개한다. 지금도 세상은 갖은 방법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려고 황당한 가설들을 쏟아낸다. 하지만 성경의 교회의 존재, 부활의 소망과 능력으로 세상과 다르게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삶 자체가 부활의 확실한 증거다.
-부활은 흔들 수 없는 증거가 있고 거부할 수 없는 증인이 있는 명백한 사실이다. 믿는 자들의 자기 신념도 아니고 꾸며낸 속임수도 아니다. 바울은 부활의 증인 중에 ‘다수가 지금도 살아있다’고 하면서 필요하면 언제든 증인을 부를 수 있다고 자신한다.
-이어서 바울은 부활의 가장 확실한 증거가 자신이라고 고백한다(9~11절). 교회를 핍박하던 그가 예수의 증인이 되고 교회를 위한 사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오늘을 살 수도 없고, 내일을 보장할 수도 없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은혜를 아는 자에게 복음을 위한 수고는 짐이 아니라 기쁨이요 영광이다. 이 은혜를 안다면, 우리도 우리를 회유하고 위협하는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는 확신으로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할 수 있다.
-성경대로 이루어진 예수님의 십가가의 죽음과 부활, 이를 목격한 수많은 증인들의 증언들… 바울도 그들의 증언을 듣고 동일하게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그 복음은 시대나 상황이나 여건에 따라 변하고 각색되어진 것이 아니라, “성경대로…. 전해 받은 대로…. 전해 들은 대로” 굳게 지키며 헛되이 믿지 않은 증인들에 의해 계속 증언(전파)되었다. 그 증언들이 나에게까지 들려지고, 나 역시 그 복음을 증언하는 삶을 살고 있다.
-고린도교회의 문제는 “성경대로 이루어진 이 복음을 전해 받은 그대로” 믿은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15장을 통해 “부활”이라는 주제를 심도있게 다루는 가장 큰 이유는 “전해 듣고, 받은 대로 성경대로 이루어진 복음의 사건”을 믿지 않거나, 왜곡한 것에 있었다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시대와 상황은 늘 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완성하신 구원의 복음은 이미 완성되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적용되고 가미되는 부분이 아닌, “이미 완성된 복음”에 시대와 상황의 가변성 속에서 “전해 듣고 받은 대로”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내가 믿는 하나님에 대하여 이런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전해 받은, 들은 대로”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않는 것은 내가 하나님이 되어 시대와 상황을 빗대어 마음대로 조작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대로, 이루신 대로 “전해 받고, 들은 대로” 굳게 지키며 살며, 역시 그대로 “전해 주는”것이 구원의 삶을 사는 것이라는 거다.
-그런데 바울은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라!”라고 분명히 고백한다. 그가 복음의 사도 된 것도,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도로서 수고한 것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한다. 그 은혜를 알기에 “자신이나 그들(증인들)이나 이 복음을 전파한 것이다”라는 것이다. 고린도 교인들도(지금의 우리들도) 그래서 믿은 것이다.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이 복음을 전하는 그들(증인)의 소리가 이찌 들릴 수 있었겠으며, 그들처럼 나도 소리를 내어 전할 수 있었겠나? 오히려 그들보다 더 수고하여 전할 수 있었게나? 너희가 어떻게 믿을 수 있었겠나?
*묵상하면서 “전해 들은 복음, 전해 받은 복음,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않음”을 당부하는 바울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각인된다. 더 나아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묵직한 믿음의 고백이 감동이 된다.
*성경대로 이루어진 복음, 이를 전해 들은 대로(내가 직접 보지 못했으니 증인들의 신실한 증언들을 통해 들려지는) 이 복음안에 굳게 나의 마음을 지키고 살리라. 헛되이 믿지 않으리라!
*특히 전해 들은 대로 전해주는 사명을 받은 나에게 사명따라 사는 삶을 굳게 지켜야지 라는 마음을 다시 확인한다. 누구보다 더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않도록 마음을 다지고 또 다져야겠다. 그래서 나는 “전해 받은 대로” 성경대로 이루어진 복음을 “전해 주는”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하겠다.
*나의 힘으로 하는 수고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고 느끼는 만족감 속에서 사역하고 싶다. “복음” 전하는 것이 이렇게 은혜의 힘으로 되어지는 것임을 늘 누려야 하겠다.
*복음은 굳게 지키는 것, 헛되이 믿지 않는 것, 은혜 안에서 누리는 것임을 나의 삶이 증명했으면 좋겠다. 바울처럼, 예수님처럼, 더 예수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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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온누리교회 #전주교회 #전주 #스마트앱 #베타테스터 #교회앱 #교회소식 #다음세대 #예배 #디지털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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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안내]
우리가 붙들고 있는 믿음은
막연한 희망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을 이기신 하나님의 승리이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흔들리지 않는 소망이 됩니다.
세상은 우리의 수고를 잊을지라도
주님 안에서 드리는 삶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이번 주일,
고린도전서 15:50-58 말씀을 통해
부활의 소망으로 살아가는 성도의 삶과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무엇인지 함께 묵상합니다.
“부활 신앙,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죽음을 이기신 주님을 바라보며,
오늘도 믿음 안에 굳게 서서
주님의 일에 더욱 힘쓰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적용찬양 : 살아계신 주(주 하나님 독생자 예수)
이번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함께 만나요.
—
#더온누리교회
#주일예배
#예배안내
#고린도전서
#부활신앙
#결코헛되지않습니다
#부활의소망
#살아계신주
#예수그리스도
#주일말씀
#말씀묵상
#신앙생활
#SundayService
#FirstCorinthians
#ResurrectionHope
[주일 예배 안내]
우리가 붙들고 있는 믿음은
막연한 희망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을 이기신 하나님의 승리이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흔들리지 않는 소망이 됩니다.
세상은 우리의 수고를 잊을지라도
주님 안에서 드리는 삶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이번 주일,
고린도전서 15:50-58 말씀을 통해
부활의 소망으로 살아가는 성도의 삶과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무엇인지 함께 묵상합니다.
“부활 신앙,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죽음을 이기신 주님을 바라보며,
오늘도 믿음 안에 굳게 서서
주님의 일에 더욱 힘쓰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적용찬양 : 살아계신 주(주 하나님 독생자 예수)
이번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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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더원공동체 수련회 START!
BUILD UP 🧱✨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우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집으로 세워가시는 주님.
에베소서 2장 20-22절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모퉁잇돌로 삼아
함께 지어져 가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금은 수련회의 첫 시작,
개회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께 마음을 올려드립니다. 🙏
말씀 : 김지훈 목사
이번 수련회가
한 사람 한 사람의 믿음을 세우고,
공동체를 더욱 견고하게 세워가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함께 기도해주세요! 🤍
더온누리교회 더원공동체
#더온누리교회 #더원공동체 #대학부 #수련회
#빌드업 에베소서 예배 공동체
전주 청년사역 🏕️✨
📌 유튜브 태그
더온누리교회, 더원공동체, 대학부, 수련회, 빌드업, 에베소서, 예배, 공동체, 전주교회, 청년사역
🏕️ 2026 더원공동체 수련회 START!
BUILD UP 🧱✨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우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집으로 세워가시는 주님.
에베소서 2장 20-22절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모퉁잇돌로 삼아
함께 지어져 가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금은 수련회의 첫 시작,
개회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께 마음을 올려드립니다. 🙏
말씀 : 김지훈 목사
이번 수련회가
한 사람 한 사람의 믿음을 세우고,
공동체를 더욱 견고하게 세워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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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안내]
우리는 종종
내가 누릴 수 있는 권리와 자유를 먼저 생각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때때로
내 권리를 내려놓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 길을 선택하게 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해
누릴 수 있었던 권리를 기꺼이 포기했습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일,
고린도전서 9:1-23 말씀을 통해
내 권리보다 복음을 앞세우는 삶이 무엇인지,
복음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제자의 길을 함께 묵상합니다.
“권리보다 복음이 먼저!”
내 만족보다 하나님의 뜻을,
내 자유보다 복음의 유익을 선택하는
믿음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적용찬양 : 주님 말씀하시면
이번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함께 만나요.
—
#더온누리교회
#주일예배
#예배안내
#고린도전서
#권리보다복음이먼저
#복음의능력
#제자의삶
#사도바울
#주님말씀하시면
#말씀묵상
#하나님나라
#신앙생활
#SundayService
#FirstCorinthians
#GospelFirst
[주일 예배 안내]
우리는 종종
내가 누릴 수 있는 권리와 자유를 먼저 생각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때때로
내 권리를 내려놓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 길을 선택하게 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해
누릴 수 있었던 권리를 기꺼이 포기했습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일,
고린도전서 9:1-23 말씀을 통해
내 권리보다 복음을 앞세우는 삶이 무엇인지,
복음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제자의 길을 함께 묵상합니다.
“권리보다 복음이 먼저!”
내 만족보다 하나님의 뜻을,
내 자유보다 복음의 유익을 선택하는
믿음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적용찬양 : 주님 말씀하시면
이번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함께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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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안내]
신앙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앞에
나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말씀보다
경험을 앞세우고,
말씀보다
자신의 생각을 더 신뢰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기준은
언제나 말씀 위에 세워집니다.
이번 주일,
고린도전서 4:6-21 말씀을 통해
말씀의 경계를 넘어
스스로 높아지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겸손히 말씀 앞에 서는
참된 제자의 삶을 함께 묵상합니다.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내 생각보다 말씀을,
내 주장보다 복음을,
내 감정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신뢰하는 믿음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적용찬양 : 말씀 앞에서
이번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함께 만나요.
—
#더온누리교회
#주일예배
#예배안내
#고린도전서
#말씀밖으로넘어가지말라
#말씀앞에서
#말씀묵상
#성경적삶
#복음의능력
#제자도
#하나님의말씀
#신앙생활
#SundayService
#FirstCorinthians
#BibleStudy
[주일 예배 안내]
신앙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앞에
나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말씀보다
경험을 앞세우고,
말씀보다
자신의 생각을 더 신뢰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기준은
언제나 말씀 위에 세워집니다.
이번 주일,
고린도전서 4:6-21 말씀을 통해
말씀의 경계를 넘어
스스로 높아지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겸손히 말씀 앞에 서는
참된 제자의 삶을 함께 묵상합니다.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내 생각보다 말씀을,
내 주장보다 복음을,
내 감정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신뢰하는 믿음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적용찬양 : 말씀 앞에서
이번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함께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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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하합니다! 🏅
지난 5월 30일,
호남권 어와나 교회들이 함께 모여
어와나 올림픽을 개최했습니다 🙌
말씀 안에서 함께 배우고,
함께 뛰며,
믿음의 우정을 쌓아가는 특별한 시간 ✨
더온누리교회 어린이들도 멋진 열정과 도전으로 참여하여
🥇 TNT팀 금메달 1개
🥈 TNT팀 은메달 1개
🥉 TNT팀 동메달 1개
그리고
🥉 Sparks팀 동메달 2개를 획득했습니다!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
어와나는 어린이들이 말씀을 배우고 암송하며,
예수님을 닮아가는 제자훈련 공동체입니다 📖❤️
메달의 색보다 더 귀한 것은
하나님 안에서 성장하고 함께 기뻐하는 믿음의 걸음입니다.
열심히 준비하고 참여한 모든 어린이들과
섬겨주신 교사, 부모님들께 감사드립니다 🙏
앞으로도 말씀 안에서 더욱 자라가는
더온누리교회 어와나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
#더온누리교회 #어와나 #어와나올림픽 #전주교회
#전주 #TNT #Sparks #다음세대
#말씀암송 #제자훈련 🏅✨
🏅 축하합니다! 🏅
지난 5월 30일,
호남권 어와나 교회들이 함께 모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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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우정을 쌓아가는 특별한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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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arks팀 동메달 2개를 획득했습니다!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
어와나는 어린이들이 말씀을 배우고 암송하며,
예수님을 닮아가는 제자훈련 공동체입니다 📖❤️
메달의 색보다 더 귀한 것은
하나님 안에서 성장하고 함께 기뻐하는 믿음의 걸음입니다.
열심히 준비하고 참여한 모든 어린이들과
섬겨주신 교사, 부모님들께 감사드립니다 🙏
앞으로도 말씀 안에서 더욱 자라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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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안내]
삶이 여전히 애굽 같고,
현실이 여전히 광야 같아 보여도
하나님의 약속은 멈추지 않습니다.
창세기의 마지막 장에서
요셉은 자신의 성공이나 업적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를 붙들었습니다.
아직 출애굽은 시작되지 않았고,
약속의 땅도 보이지 않았지만
요셉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미래를 바라보았습니다.
이번 주일,
창세기 50:15-26 말씀을 통해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하나님의 언약을 더 신뢰하는 믿음이 무엇인지 함께 묵상합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돌보시리니”
세상에 익숙해지기보다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순례자의 믿음을 회복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적용찬양 : 여기에 모인 우리
이번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함께 만나요.
—
#더온누리교회
#주일예배
#예배안내
#창세기
#하나님이반드시돌보시리니
#요셉
#하나님의언약
#약속의땅
#하나님나라
#믿음의여정
#여기에모인우리
#말씀묵상
#신앙생활
#SundayService
#Genesis
#GodWillSurelyTakeCareOfYou
[주일 예배 안내]
삶이 여전히 애굽 같고,
현실이 여전히 광야 같아 보여도
하나님의 약속은 멈추지 않습니다.
창세기의 마지막 장에서
요셉은 자신의 성공이나 업적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를 붙들었습니다.
아직 출애굽은 시작되지 않았고,
약속의 땅도 보이지 않았지만
요셉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미래를 바라보았습니다.
이번 주일,
창세기 50:15-26 말씀을 통해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하나님의 언약을 더 신뢰하는 믿음이 무엇인지 함께 묵상합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돌보시리니”
세상에 익숙해지기보다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순례자의 믿음을 회복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적용찬양 : 여기에 모인 우리
이번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함께 만나요.
—
#더온누리교회
#주일예배
#예배안내
#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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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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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리빛키! 😆✨
우연이 아닌 은혜 🙌
아이들을 위한 축제
더온누리 홀리빛키가
많은 성도님들의 기도와 후원 가운데
은혜롭게 마무리되었습니다 🤍
웃음이 가득했고
행복이 넘쳤던 하루
마음껏 뛰어놀고
함께 웃으며
사랑을 나누었던 그날의 모습을 전합니다 ✨
아이들의 웃음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했던 시간 🫶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더온누리교회
#더온누리교회 #전주교회 #전주 #홀리빛키
#어린이축제 #다음세대 #은혜 #교회행사
#플리마켓 #키즈페스티벌 😆✨
홀리빛키! 😆✨
우연이 아닌 은혜 🙌
아이들을 위한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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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넘쳤던 하루
마음껏 뛰어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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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했던 시간 🫶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더온누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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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안내]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기대하지 않았던 장소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풍요의 중심이 아니라,
구별된 자리.
눈에 띄지 않지만
하나님의 뜻이 머무는 곳.
이번 주일,
창세기 46:28~47:12 말씀을 통해
왜 하나님께서 야곱의 가정을
고센으로 이끄셨는지 함께 묵상합니다.
“왜 고센이어야 할까요?”
하나님의 계획은
언제나 가장 안전하고,
가장 은혜로운 자리로
우리를 이끄고 계십니다.
적용찬양 : 은혜
이번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함께 만나요.
—
#더온누리교회
#주일예배
#예배안내
#말씀나눔
#창세기
#고센땅
#하나님의인도하심
#은혜
#주일말씀
#신앙묵상
#Jesus
#SundayService
#Genesis
#Grace
#FaithJourney
[주일 예배 안내]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기대하지 않았던 장소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풍요의 중심이 아니라,
구별된 자리.
눈에 띄지 않지만
하나님의 뜻이 머무는 곳.
이번 주일,
창세기 46:28~47:12 말씀을 통해
왜 하나님께서 야곱의 가정을
고센으로 이끄셨는지 함께 묵상합니다.
“왜 고센이어야 할까요?”
하나님의 계획은
언제나 가장 안전하고,
가장 은혜로운 자리로
우리를 이끄고 계십니다.
적용찬양 : 은혜
이번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함께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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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더 깊은 선교학교]
복의 통로로 살아가는 삶 🙏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듯
오늘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세상을 향해
복을 흘려보내는 사람으로 ✨
2026 더깊은 선교학교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배우고
선교의 비전을 함께 품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
📖 2026 더깊은 선교학교
🗓 06.20 - 07.25 매주 토요일 (6주간)
📍 굿윌센터 2F
🎤 이효재 목사
🎤 주누가 선교사
🎤 김종홍 목사
✈ 단기선교
8월 1일(토) - 8월 4일(화), 일본
🎓 수료식
8월 23일(주일) 2부 예배
—
하나님이 찾으시는
복의 통로로 함께 세워지길 바랍니다 🙌
더온누리교회 THE MISSION
#더온누리교회 #전주교회 #전주 #더깊은선교학교
#선교 #더미션 #복의통로 #단기선교
#일본선교 #mission 🙏✨
[2026 더 깊은 선교학교]
복의 통로로 살아가는 삶 🙏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듯
오늘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세상을 향해
복을 흘려보내는 사람으로 ✨
2026 더깊은 선교학교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배우고
선교의 비전을 함께 품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
📖 2026 더깊은 선교학교
🗓 06.20 - 07.25 매주 토요일 (6주간)
📍 굿윌센터 2F
🎤 이효재 목사
🎤 주누가 선교사
🎤 김종홍 목사
✈ 단기선교
8월 1일(토) - 8월 4일(화), 일본
🎓 수료식
8월 23일(주일) 2부 예배
—
하나님이 찾으시는
복의 통로로 함께 세워지길 바랍니다 🙌
더온누리교회 THE MISSION
#더온누리교회 #전주교회 #전주 #더깊은선교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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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선교 #mission 🙏✨
...
진정성,
목자의 힘 🙏
사람을 세우는 힘은
화려함이 아니라
진심에서 시작됩니다
함께 웃고
함께 기도하며
다시 붙드는
목장의 본질
주님이 맡기신 영혼을 위해
오늘도 걸어갑니다 🤍
—
더온누리교회
2026 목자수련회
“진정성, 목자의 힘, 목장의 본질”
#더온누리교회 #전주교회 #전주 #목자수련회
#목장 #목자의삶 #공동체 #진정성
#리더십 #기도 🙏✨
진정성,
목자의 힘 🙏
사람을 세우는 힘은
화려함이 아니라
진심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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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기도하며
다시 붙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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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맡기신 영혼을 위해
오늘도 걸어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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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온누리교회 #전주교회 #전주 #목자수련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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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기도 🙏✨
...
[주일 예배 안내]
낮아진 자리,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억울함과 외로움,
그리고 반복되는 현실 속에서도
믿음은 시선을 다시 하늘로 향하게 합니다.
이번 주일,
창세기 39:1-10 말씀을 통해
바닥 같은 인생의 순간에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묵상합니다.
“바닥에서 하늘을 보다”
무너진 자리에서도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다시 길을 여십니다.
이번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함께 만나요.
—
#더온누리교회
#주일예배
#예배안내
#말씀나눔
#창세기
#요셉의믿음
#하나님을바라보다
#믿음의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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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안내]
낮아진 자리,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억울함과 외로움,
그리고 반복되는 현실 속에서도
믿음은 시선을 다시 하늘로 향하게 합니다.
이번 주일,
창세기 39:1-10 말씀을 통해
바닥 같은 인생의 순간에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묵상합니다.
“바닥에서 하늘을 보다”
무너진 자리에서도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다시 길을 여십니다.
이번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함께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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