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 ㅣ 묵상을 함께 나눕니다
이사야는 하나님 백성 이스라엘의 반역을 신랄하게 고발한다. 이스라엘은 배은망덕한 자식이요 소와 나귀보다 못한 자들이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죄악의 백성이 됐다. 멀리해야 할 죄가 이스라엘의 본성과 성품의 중심에 주인처럼 자리잡고 말았다.
이사야는 이처럼 패륜적인 행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유다를 강하게 비난하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으면 유다는 완전히 멸망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회개와 순종으로써 회복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음을 명확히 알린다.
1. 이스라엘을 고발하시는 하나님(1~3절)
이사야는 주전 8세기 중반부터 7세기로 넘어가는 어간까지, 어림잡아 40년 동안(학자에 따라 주전 740~686년경으로 보는 견해가 있고 이에 따르면 50~60여년 동안) 예언자로 활동했다.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는 민족들의 신탁을 포함해 이사야에 수집된 모든 말씀은 그가 본 하나님의 계시(환상)이고, 그 내용이 유다와 예루살렘의 운명과 관련되었음을 알려준다.
2절에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죄악에 관한 증인으로 가장 확실한 ‘하늘과 땅’을 불러 세우신다. 땅은 피 흘림과 황폐함을 초래한(7절) 이스라엘의 죄악을 직접 경험한 증인이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배반을 두 개의 잘 알려진 비유를 통해 고발하신다. 첫 번째는 아버지와 아들의 비유다. 이스라엘은 키워주고 돌봐주신 아버지의 사랑을 배반한 파렴치한 아들이다. 신 21:18~21에 따르면 아버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아들은 죽음에 처해진다. 여호와를 배반한 이스라엘의 행태는 아버지를 거역한 아들의 패역과 같기에 멸망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두 번째는 주인과 주인이 키우는 짐승의 비유다. 소나 나귀도 먹을 것을 주고 키워준 주인을 알아보고 따르는데,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3절).
“내가 기르고 키운 자식이 나를 거역했다(2절)” “소, 나귀도 주인을 알아보는데, 이스라엘은 나를 알지 못한다! 깨닫지 못한다!(3절)” 하나님의 마음에 깊은 한탄이 베어있다. 자식이 부모를 거역하는 것 만큼 낙심되는 상황은 드물 것이다. 가축들도 알아보는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스라엘이 기가 막힐 것이다!.
2. 이스라엘의 완악함과 심판 구형(4~17절)
4-9절은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4절) 이스라엘의 구체적인 상태를 부연한다. 중요한 것은 이미 심판을 받았으나 깨닫지 못한다는 특징을 보인다. 심판 받았던 소돔과 고모라처럼 될 뻔 했지만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는데, 이마저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지 않으셨다면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라 하신다(9절).
“범죄한 나라, 허물진 백성, 행악의 종자, 행위가 부패한 자식”인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리고 업신여기며 등을 돌렸다(4절). 여기서 멈추지 않고 패역을 거듭하여 온통 상처투성이고 속은 골병이 들었다(5절). 성한 곳이 한 곳도 없으나, 치료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6절). 철저하게 “황폐해진 땅(7절)”이 되었고 도성은 오두막처럼 서 있다(8절).
이어서 10-17절은 하나님과의 관계적인 측면에서 상세하게 다루며 황폐해진 이유를 설명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데는 관심없고 종교적인 제의만 열심이다. 어느 정도였냐면, “너희들이 가져오는 제물 지겹다” “너희들이 바치는 피도 싫다” “나에게 보이러만 오는 것 다 쓸모없다!” “분향도 역겹다!” “절기 지키는 것, 참을 수 없다! 견딜 수 없다! 싫다!” “그런 것들은 나에게 짐만 된다! 나는 지쳤다!” “기도? 거들떠보지도 않겠다! 듣지 않겠다!” 왜냐하면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저지른 수많은 악행을 덮고자 “더 많은 제물들”을 가져와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고자 한 것을 직시하고 계셨다.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단지 제물들의 피를 드림으로 자신들이 흘리게한 사람들의 피는 가증스럽게 외면했다. 그러니 기도하여도 응답하지 않으셨다. 그러니 “황폐함”이 온 땅에 드리웠다!
삶의 황폐함은 우연히, 어느 순간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죄악의 향기를 맡고 멀리서부터 살며시 엄습해 온다.
3. 그러나 살아날 길이 있다(18-20절)
불쑥 뒤덮은 황폐함이 결말일까? 결코 아니다. 살아날 길이 있다. 선택하면 된다. 이미 황폐함이 몰려 올 때 그 징조를 보여 주셨다. “만군의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얼마라도 살아 남게 하시지 않으셨다면…..(새번역_9절)” 원두막 같이 남아있는 도성도 없어졌을 것이다. 또한 손에 가득한 피를 “너희는 씻어라. 스스로 정결하게 하여라. 내가 보는 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을 버려라. 악한 일을 그치고, 옳은 일을 하는 것을 배워라. 정의를 찾아라. 억압받는 사람을 도와주어라. 고아의 송사를 변호하여 주고 과부의 송사를 변론하여 주어라(새번역_16-17절).”라고 명령하신다.
황폐함 속에 썩어질 심판이 결정된 백성이라면 굳이 이런 명령을 하실 이유가 없다. 살리시려는 것이다. 비록 그들의 손에 피가 가득하고 죄악의 위선이 역겹고 견딜 수 없이 지쳤을 지라도 끝까지 심판이 아니라 살리시고 싶으신 것이다.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고 싶으신 것이다. 지금까지 역겹고 역겨운 죄악의 피내음 가득한 삶에서 돌이키기를 원하신다. “씻어라!”, “버려라!”, “그쳐라!”, “배워라!”, “찾아라!”, “도우라!”, “변호하라!”라고 쉴새없이 촉구하신다. 그 쉼 없는 촉구속에 담긴 살아날 길이 있다.
그것은 변론과 순종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오너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빛과 같다 하여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며, 진홍빛과 같이 붉어도 양털과 같이 희어질 것이다(새번역_18절)” 변론은 직역하면 “결정하다, 판단하다, 입증하자, 꾸짖다, 징계하다”라는 의미들이 있다. 본문은 “논증해 보자!”라는 의미다. 자기들 마음대로 행하는 제의들에 대하여 회개하도록 촉구하면서 이런 것들이 얼마나 큰 죄인지 서로 논증해 보자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뜻(말씀)을 매우 잘 알아야 ‘논증’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전제되어야 서로 논증하며 자신들을 감싸고 있는 죄악의 꺼풀들을 벗겨낼 수 있다. 그래야 주홍같은 죄를 바라보고 발견하여 벗겨내고 눈과 같이 회복되는 길을 깨우칠 수 있다. 그래야 산다.
또, 순종하면 산다고 하신다. 그런데 순종도 그냥 순종이 아니다. “즐겨 순종하면” 이다. “기꺼이 하려는 마음으로”이다. “너희가 기꺼이 하려는 마음으로 순종하면, 땅에서 나는 가장 좋은 소산을 먹을 것이다(새번역_19절).” 적극적으로 순종하는 것이라는 의미다. 이것 역시 “기꺼이 혹은 적극적으로” 순종하려면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매우 신뢰하는 것 뿐 아니라 해박하고도 올바르게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되어야 한다.
잘 알아야 기꺼이 순종할 수 있다. 지식적으로 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경험적으로도 잘 알고 있어야 기꺼이 순종하며 살 수 있다. 적어도 때를 따라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내리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땅에서 “가장 좋은 소산”을 얻어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의 능력임을 알고 “기꺼이” 그 뜻에 순종해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 그 은혜를 누리며 살 수 있다.
반면, 황폐함 속에 더 완전한 진멸로 빠질 길도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거역(거절)과 배반이다. 이 길은 그들이 경험했던(히스기야 시대, 앗수르 군대의 예루살렘 포위) 칼의 춤사위에 던져 지는 것이다. 결코 물려지지 않을 칼춤이 벌어지는 길이 “거역과 배반”이다.
이 두 가지 길중에서 선택하라 하신다. 살아날 길과 칼춤이 벌어질 길 중에서 살아날 길을 제발 선택해다오! 이스라엘아! 라고 간절히 염원하시는듯 하다.
나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이자 거룩한 백성이며 자식으로서(출 19:6) 언약의 특권을 남용하였다. 주인과 구유를 알아보는 고집 센 소와 나귀보다 못하게, 사랑으로 자식을 양육한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말았다(1~4절). 거룩하신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등을 돌렸다.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이 안전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하신 새 언약의 은총에 합당하게 살아내야 한다.
-이에 하나님은 사랑의 매를 드신다. 발바닥부터 머리끝까지 성한 곳 없고 마음까지 멍이 들었다. 백약이 무효일 만큼 심각했다. 그런데도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더 큰 매를 부른 것이다. 토지가 황폐하고 성읍은 불타고 포도원에는 사람이 없고 무너진 망대만 황량하게 남을 것이다(5~8절). 혹시 지금 하나님께 사랑의 매를 맞고 있다는 마음이 든다면 아버지의 더 아픈 마음을 헤아리고 돌아서야 한다. 이 땅의 교회가 더 큰 매를 맞기 전에 멈추고 돌아서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온전한 자녀가 되기 위하여 성도가 돌이켜야 할 과오들이 있다. 먼저 하나님이 베푸셨던 은혜를 잊고 주님의 법을 무시하는 배은망덕한 과오일 것이다. 그리고 선의 기준이 되시는 하나님을 저버리고 자기 내면에 뿌리박힌 죄의 성향을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죄에 대한 징계를 받았을 때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영적 무감각이다. 나는 어떤가? 곱씹고 곱씹어 보자.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법을 떠난 자들의 제물을 받지 않으신다. 그들이 지키는 성일과 모이는 성회를 견딜 수 없는 짐으로 여기신다. 피 묻은 손을 들어 드리는 기도를 아무리 간절하게 많이 드리더라도 듣지 않으실 것이다. 먼저 죄에서 돌아서서 깨끗해지고 율법의 요구에 따라 정의를 구하고 약자들을 선대하고 편들어줄 때에야 주님은 예배를 받아 주실 것이다(10~17절). 오늘 우리 공동체의 예배는 과연 어떨까? 주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리고자 시도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마당만 밟고 떠나지는 않는가?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자녀로 서지 못하는 것은 왜곡된 영성을 경계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시적이고 형식적인 종교 행위가 그것이다. 또한 예배의 외형과 헌금의 물량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심각한 착각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일상에서 윤리적으로 악한 행위를 종교적인 행위로 상쇄하려는 악한 마음과 행실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의도를 담은 종교적 행위를 결코 용납하지 않으신다.
-이사야는 잘못된 영성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도 함께 제시한다. 먼저 스스로 결단하여 악행을 버리고 실제로 선을 배우고 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어떤 패륜과 악행 그리고 잘못된 영성도 용서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악인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속죄의 은혜에 대한 신뢰와 심판에 대한 두려움은 죄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노력의 중요한 동기가 된다.
*이사야 묵상이 시작되면서 공교롭게도 ‘제사가 역겹다, 기도를 듣지 않겠다, 너희들이 지키는 절기가 지겹다’하시는 하나님의 노함 앞에 직면했다. 하필 한국사회에서 교회에 대한 신뢰도가 가장 바닥으로 떨어진 시기다. 소름이 끼친다! 지금 나에게, 우리들에게, 한국교회에게 외치시는 절규처럼 들려진다. 그래서 몇 번이고 두드리던 자판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아침에 몇 번이고 멈추고 멈추는 자판 앞에 오늘 이 날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기억하고 새기기 위해 꾸역 꾸역 자판을 두드리고서야 묵상이 마무리되어 간다.
*지겹다!, 싫다!, 쓸모없다!, 역겹다!, 참을 수 없고 견딜 수 없다!, 싫다!, 짐만 된다!, 지쳤다!, 보지 않겠다!, 듣지 않겠다!고 외치시는 하나님의 노한 음성이 나의 예배를 향해, 우리들의 신앙생활을 향해, 한국교회를 향해 쏟아진다.
*반면 그럼에도 한줄기 살아날 희망을 분명하게 보이신다. 짙고 짙은 어둠과 같은 상태이기에 가늘디 가는 한 줄기 빛이라도 강렬하다! 씻어라!, 버려라!, 그쳐라!, 배워라!, 찾아라!, 도우라!, 변호하라! 무엇보다 나와 논증해보자! 그리고 깨닫게 되어 기꺼이 순종해보라! 그러면 살아날 수 있다! 이렇게 말씀해 주시는 하나님이 너무 너무 감사하다! 이미 말씀해 주신 말씀들을 하나씩 하나씩 논증해 가며 깨우치고 또 깨우치도록 도와주시므로, 하나님이 아니면 살아날 수 없구나! 기꺼이 깨달아 순종하면 살아날 수 있다는 거다!
*그렇다면 지금 교회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 청원도 해야 한다. 씻고, 버리고, 그치고, 배우고, 찾고, 돕고 변호하는 것도 물론 해야 한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변론하는 것이다! 변론이 살아나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다. 이를 위해 더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더 하나님의 뜻과 말씀들이 실제가 되도록 깨우쳐 져야 한다. 그러면 “기꺼이 순종” 할 수 있다. 그러면! 살아날 수 있다!
*말씀이 깨우쳐지도록 하나님과 씨름해야 한다는 거다! 지식담론을 논하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나기 위해 하나님의 영을 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깨우쳐지기를 바라며 깨우쳐 주신대로 기꺼이 순종하며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서로 변론(논증)하자”고 말씀해 주시는 하나님과 깊은 교제, 선명한 집중, 기꺼운 순종이 필요한 것이다.
*향방을 알지 못하고, 의미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꼭두각시처럼, 주문처럼 읊조리기만 하는 기도, 말씀구절이 아니라 영혼이 깨우쳐지고, 그 깨우쳐진 말씀에 “기꺼이 온 삶을 걸어” 순종함으로 하나님 살아계신 실제를 누리는 “참된 실제”, “참된 임마누엘”의 실제 은혜 말이다!
*이것이 살아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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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질문과 간단하나 긴 대답으로 이루어진 시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과 함께 사는 자의 삶은 어떤 삶인지를 질문한다. “머무를 자, 사는 자”라는 표현을 통해 예배자의 자세 뿐 아니라 일상에서의 자세를 포함하여 질문한다. 특이한 것은 질문을 하나님께 드렸는데, 마치 신앙고백처럼 자신이 대답하는 “자문자답”의 형식이라는 점이다.
이미 하나님께서 일러주신 삶의 윤리를 잘 알고 이해하고 있으며 이것이 삶 속에서 조화롭게 일어나야 할 것을 알고 있는 질문과 답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아는 것에 머물지 않고 ‘말씀대로’ 순종하여 행하는 것이 예배(제사)와 같은 특별한 시간에 이루어지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상이라는 것을 스스로 대답하는 것이다.
더구나 매우 신앙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일상의 ‘윤리’라는 것에 더 주목이 된다. 종교적인 질문에 종교적인 대답, 예를 들어 주일 성수, 십일조 잘 하는 것, 예배 시간 잘 지키는 것, 예배는 이렇게 드리는 것 등과 같은 것이 아니라는 거다. “일상”에서 살아내야 할 것들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일상에서 어떻게 살아내야 할까? 그런 삶이 주는 유익은 무엇일까?
1. 어떻게 살아낼까?(2-5a절)
새번역은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내야 할 삶을 이렇게 번역했다. 깨끗한 삶(정직), 정의(공의), 진실한 삶(2절), 혀를 놀려 남의 허물을 들추지 않는, 친구에세 해를 끼치지 않는, 이웃을 모욕하지 않는(3절),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자에 대한 경멸과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사람에 대한 존경을 분별하여 행하는, 맹세를 꼭 지키는(4절), 고리대를 하지 않고, 뇌물을 받지 않는(5a절) 사람….
예배당에서의 삶 뿐 아니라 일상에서의 모든 삶이 하나님께서 이미 가르쳐 주신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라는 것이다. 즉 삶의 예배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새번역_고전 10:3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삶은 성전(예배당)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다. 정직하고 정의로우며 진실한 삶의 가치가 드러나야 한다. 남의 허물을 들추지 않고 해를 끼치지 않으며 모역하지 도 않는다. 한편으로 하나님을 업신 여기는 이들에 대하여 ‘거룩한 분노’가 있어야 하고,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사람을 만나면 존경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것이 곧 하나님을 존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나 사람에게 맹세를 허투루 하지 않을 뿐더러 끝까지 지키는 신의도 있어야 한다. 나의 유익만을 위해 공동체가 허물어 지는 고리대와 같은 악덕 상술을 펼치지 않고, 정의로운 판결을 위해 뇌물도 받지 않는다.
어느 것 하나 지금 우리의 일상에서 요청되는 것 아니겠나? 하나님의 백성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이렇게 살아야 한다. 이것이 곧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결코 “비난 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의당 이래야 한다.
허나 실상은 한참 못미친다. 참 머시기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윗은 계속 노래했다. 하나님 백성은 이렇게 살겠노라고, 이미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하신대로 살아가겠노라고, 그 말씀 기억하며 살아내겠노라고 노래하고 또 노래한다.
그러니 인생은 이미 행하고 있는 것 뿐 아니라 아직 한참에도 미치지 못하는 그것을 향해 포지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이리라! 또 노래하고 또 노래하는 것이리라. 지금은 연약하여 이리 살지 못하나 반드시 이렇게 살아보겠노라고 노래하고 노래한다. 어쩌면 현실에서 이루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다운 삶보다 노래로 부르는 것이 훨씬 많을 지라도…
노래라도 부르면서 잊지 않고 기억하여 추구하고 또 추구하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니겠나! 그래서 다윗의 노래는 결론을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과 약속을 바라본다. 자꾸 실패하여도 이렇게 살아가는 법을 잊지 않겠노라고
2. 이런 삶은?(5b절)
“이러한 사람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새번역_5절)” 완벽한 하나님 백성의 삶을 살지 못해도 노래하며 끊임없이 추구하고 또 추구하는 이러한 사람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삶의 다양한 문제들 앞에 수많은 변수들이 위기를 가져와도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럴까?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고 노래하고 또 노래하기(투쟁하고 투쟁하기) 때문이다. 깨끗하지 못해도 깨끗하기 위해, 정의롭지 못해도 정의롭기 위해, 진실하지 못해도 진실하기 위해, 노래를 멈추지 않는다. 자신의 영혼을 향해 끊임없이 노래하며 환기시킨다. 실패해도 쉬이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노래하며 붙잡는다. 이미 다 이룬 것도 아니지만 여러 변수들 속에서 묵묵히 다시 “하나님 백성답게” 살아내기 위해 이를 악문다. 쓰러진 몸과 마음을 자시 일으켜 세운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삶은 흔들려고 무너지지 않는다.
나는?
-다윗은 하나님께 성전에 들어가도 되는지 묻는다(1절). 하나님을 의심하거나 신앙에 회의가 생겼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성전에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의 집에 거하게 하신 은혜가 ‘황송’해서 ‘나 같은 사람이 이 거룩한 곳에 들어가도 되는 건가요?’하고 묻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 오늘날 우리도 이렇게 가끔 고백한다. ‘주님, 저 같은 사람이 아버지 집에 있다니요. 그래도 되는 거지요?’라고 말이다.
-하나님은 삶으로 드리는 예배를 원하신다(2절). 주의 장막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다. 그곳에서 숱한 찬양과 기도, 헌금으로 드리는 예배보다 사랑과 자비의 삶을 원하신다(호 6:6).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이웃에게 공의롭고, 자신에게 진실한 삶이 진정한 예배다. 하나님은 정직과 공의와 진실에 없는 예배는 기뻐하지 않으신다. 나는 과연 매 주일, 정해진 예배 시간을 어떻게 드리고 있는가?
-말로 다른 사람을 습관적으로 아프게 하면서 주의 집에 거할 수 없다(3절). 입으로 하나님을 노래하고, 기도를 드려도, 그 입으로 그분이 사랑하는 이웃의 허물을 들추어내고 업신여기면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성도의 마음에 계신 하나님의 집을 황폐하게 만든다. 나는 말로 하나님의 집과 다른 성도의 삶을 세우고 있는가?
-돈의 사용에 불의하면 주의 집에 거할 수 없다. 지나치게 많은 이자를 받거나 부당한 뇌물을 받는 것은 그 자체로 잘못된 일이며,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친다(5절). 누군가의 삶을 마구 뒤흔들면서 내 삶은 전혀 흔들리지 않을 거라고 여기면 그야말로 착각이다. 남을 흔들면 나 또한 흔들린다. 불의한 이익을 취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주신 재물로 이웃의 생활을 돕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이다.
-구원은 우리가 하나님의 처소가 되는 일이다. 하나님이 임재하실 만한 거룩한 공간이 되는 일이다. 하나님과 더불어 살면서 그분과 교제할 만한 수준의 파트너를 만드는 일이다. 그것은 건축물이 아니다. 그것은 인격이다. 사람의 전 존재다. 내가 변하지 않는 구원은 의미 없다. 특정 공간이 하나님의 임재를 독점하지 않는다. 공간이 거룩한 것이 아니라 거룩한 하나님의 영을 모신 자들이 거룩한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이다. 하나님이 거룩하심을 닮은 하나님의 형상들이요,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진리의 사람들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뿐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도 그 자격을 결정한다. 정직하고 공의를 실천하고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는 자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 이웃을 비방하지 않고 악을 행하지 않고 망령된 자를 멸시하여 그들의 삶을 따르지 않을 때, 주님 전에 나아갈 수 있다. 이자를 받지 않고 꾸어주고, 뇌물을 받지 않아야 한다. 힘 있는 자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자를 존대하는 자가 합당하다.
-하나님의 전에 나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교제와 인격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몸만 나오고 마음은 준비되지 못한 채, 주님께로 나아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어떻게 살아낼까에 대한 구체적인 대답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하나님에 대한 굳건한 신뢰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구체적인 순종의 태도를 결정할 것이다.
-주의해야 한다. 앎의 만족감이 순종의 실제로 전진하는 것을 막을수도 있으며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앎”으로 삶의 다양한 문제가 문제거리가 되지 않고 가르침대로 순종하며 살아내게 하는 능력이 될 수도 있음을 간과하면 안 된다.
*또 중요한 것은 다윗의 질문이다! “주의 장막과 성산에 누가 머무를까?, 어떻게 살까? ” 삶 속에서 늘 던져야 할 질문이다. “머무름과 삶”을 주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살기 위해 늘 질문과 대답을 주고 받은 다윗이다. 그만큼 삶 속에서 치열하게 투쟁할 뿐 아니라 자기 성찰이 함께 이루어 졌다는 의미다.
*하나님 안에 머물고 살아가기 위한 치열함과 자기성찰이 늘 노래하게 하였다. 가르쳐주신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노래하였다. 머무름과 삶을 돌아보기 위해 노래하였다. 하나님 백성답게, 하나님을 드러내기 위해 노래하였다. 비록 실패와 실수가 있었어도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포기하지 않는 그 노래는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 안에서의 머무름과 삶을 살게 한다. 이것이 오늘도 계속 “노래”해야 할 이유일 것이다! 오늘도 실패해도 다시 “치열한 순종”을 해야 할 이유다!
*교회당 안에 갇힌 하나님이 아니라 내 삶 속에 함께 계신 하나님이시기에, 장막에 거할 자 누구냐? 성산에서 어떻게 살까?라고 노래하는(치열하게 순종하는) 자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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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53편과 거의 똑같다. 또, 1-3절은 바울이 로마서에서 모든 인간이 죄 아래 있음을 논증하며 사용한 구절이다(롬 3:9, 10-12). 인간이 어떤 상태이고, 그들이 사는 세상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정직하게 고백한다. 그리고 이런 인간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노래한다.
1. 어리석고 악하다(1, 3, 4, 6절)
어리석다의 사전적 의미는 “슬기롭지 못하고 둔하다”이다. 성경에서는 주로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 자들을 통칭한다. 다윗은 이들의 말과 행실에 초점을 맞추어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자들은 결국 “선을 행하지 않는다”로 결론을 짓는다(1절).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것과 “좋은 행실”은 함께 간다는 의미다. “하나님이 없다”는 생각은 ‘부패함’과 ‘가증한 행실’을 낳는다. 어리석다는 것은 하나님이 없다고 여기는 “무신론적 사고”와 악한 삶의 방식이 함께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죄악을 행하는 자가 “다” 무지한가?” 반문하시며,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는다”고 하신다(4절). 악을 그만큼 즐긴다는 의미다. 그러니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었다고 하고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노래한다(3절).
노아의 시대가 생각이 나고, 소돔과 고모라도 생각이 난다. 북이스라엘의 멸망때도, 남 유다의 멸망도 상기된다. 무엇보다 주님께서도 이 세대가 악하다고 하셨다. 그러니 본문의 시대나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대가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또한 어리석은 자는 가난한 사람들의 계획을 “늘” 좌절 시킨다(6절). 이런 표현으로 본다면 어리석은 자는 지도자들, 힘있는 권력층, 부유한 자들을 지칭하는 듯하다. “내 백성을 먹어 치운다(4절)”라는 표현도 이를 뒷받침한다. 지도자들이 백성들을 보호해야 하나, 오히려 좌절시킨다. 황폐함으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악함은 근절되지 않는다. 아. 안타까운 세상이여.
2. 그런데 하나님은?(2, 5, 6, 7절)
어리석은 자들을 “굽어 살피신다” 이유는 단 하나다. 그들 중에 그나마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지 보려 하시기 때문이다(2절). “굽어 살피신다”는 의미는 하나님이 없다며 철저하게 하나님을 무시하는 어리석은 자들의 말과 악한 행실과 분명한 비교가 된다. 이 단어는 파수꾼이 성벽 위에서 멀리 바라보는 것이 아닌 머리를 내밀어 허리를 굽히고 성벽 아래까지도 자세하게 살피는 형상을 표현한 것이다. 그만큼 자세하게 찾으신다. 혹시 한 명이라도 찾을까 포기하지 하지 않으시는 모습을 나타낸다. 그런데 하나도 없다. 다 치우쳐서 악을 행한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서 ‘자기를 찾는 자’를 찾으신다. 그들은 이것을 알지 못한다. 그만큼 하나님이 없다고 소리치는 그들의 어리석음을 고발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의인의 편에 계심을 분명하게 노래한다. 어리석은 자들이 두려워 하고 두려워 할 정도로 분명하게 하나님의 존재감을 의인의 삶을 통해 드러내신다(5절). 어떤 상황에서 드러내실까? 이어지는 6절은 어리석은 자들이 가난한 자들에 대하여 부리는 횡포와 억압, 폭력의 자리에서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증언한다. 어리석은 자들은 자기 힘과 계획으로 “가난한 자들”의 삶을 부끄럽게(조소하고 조롱) 하지만,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의 피난처가 되어 주심을 분명하게 보이신다.
나는?
-하나님이 없다고 외치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에서 자기 마음대로 사는 인생들은 철저하게 부패하고 가증한 행실을 여지 없이 드러낸다. 어쩌면 이리도 정확할까! 유독 기독교를 향하여 안티를 외치는 자들의 삶의 면면이 예나 지금이나 추하고 부패하며 가증스러운 것을 감출 수가 없다.
-인간의 가장 큰 어리석음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을 때 생각은 부패하고 행실은 악해진다(1, 4, 5절). 하나님을 부정하는 사회의 대표적인 사상과 문화현상들이 무엇일까? 무신론자들처럼 드러내놓고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지만, 실제로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아닌지 심각하게 돌아볼 일이다.
-하늘에서 모든 인생을 굽어보시며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지 땅을 살피시는 하나님이시다(2~3절). 혹시라도 누군가 깨달아 하나님을 찾을까 기대하시며 인생들을 살피시지만, 하나같이 말씀을 등지고 사는 결과만을 목격하셨다. 하나님을 찾는 자란 단지 외형적, 습관적으로 하나님을 찾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깨달은 만큼 말씀을 살아내려는 자를 말한다. 오늘도 주님은 간절히 말씀을 사모하는 자를 찾고 계신다. 하나님 보시기에 나와 우리 공동체는 어떤 모습일까? 혹시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찾고 있지는 않는가?
-어리석은 사람들이 떡 먹듯이 하나님의 백성을 삼키고 괴롭혀도 결국 하나님의 백성이 승리하고 구원의 기쁨을 누린다(4, 7절). 그러므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의 조롱과 억압에 지나치게 신경쓰거나 두려워하지 말자. 세상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부럽게 만드신다. 십자가는 어리석어 보이지만 우리응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지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두들러지게 드러난 사회지표가 하나 있다. 바로 AIDS의 급증이다. 전 세계적으로 감소 추세인 이 병이 유독 우리의 조국에서, 특히 남성들에게서, 유독 청소년층에서 급증했다. 원인은 분명한데, 성소수자 보호라는 미명하에 이 추악한 진실을 애써 덮었다!. 이미 질병관리본부에서는 무분별한 동성애, 특히 남성 동성애의 부분별한 생활이 원인일 수 있다고 발표하였다. 하지만 언론은 이를 성소수자 보도준칙에 따라 밝히지 않고 알리지 않았다. 정치가들은 유독 “성소수자”, 혹은 ‘인권’이라는 헤게모니를 이용해 사회가 부패하든지 말든지 상관없이 자신들의 목적만 취하고 있는 실정이다. 로마제국의 멸망은 동성애와 같은 무분별한 성문화의 타락이 가져온 “저출산”이 원인이라는 사실을 이미 역사적 교훈으로 분석되었다.
-이렇게 치우치고 다 치우신 어리석은 자들의 추악한 행실들을 하나씩 드러내신다. 사회적 신뢰도 추락과 투명해진 사회의 영향으로 인해 우리의 감추어졌고 무지하였던 추악함들이 하나씩 그 진실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그들이 “두려워 하고 두려워 하는” 상황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5절).
-진정으로 어리석은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피조물이 창조주를 거부하고 창조주의 죽음을 말하고 그분의 역사 개입을 부정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모든 증거들에 눈감는 일이요, 논리의 숨통을 끊어놓는 일이며 지적 자살을 감행하는 일이다. 하나님을 부정하는 자들의 부패하고 자기 파괴적인 삶이 그들 말의 허위를 증명한다.
-기이하게도 하나님을 부정하는 어리석은 자가 하나님을 인정하는 지혜로운 자보다 많다. 조금 많은 것이 아니라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를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다. 그들이 소수의 남은 자 하나님의 백성들을 떡 먹듯이 먹는다. 그리스도인의 삶 자체가 고난이다. 고난과 불편함이 없는 삶은 이 세상 문화에 동화된 삶일 수 있다.
-한편으로 가장 감동이 되는 말씀은 이토록 추악하고 부패한 자들을 향해 “굽어 살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거다(2~3절).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는 가만히 계셔도 다 아신다. 그런데 다윗은 분명히 노래하며 강조한다.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어버린 그들에게서 결코 시선을 떼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이다.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는” 그들에게서 선함을 찾으시는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말이다.
-더 나아가 그들 가운데서 선한 행실로 살아가는 의인을 “돋보이게(드러나게)” 하셔서 악행을 일삼는 그들을 부끄럽게 하는 하나님이시다(6절). 악행을 일상으로 저지르며(떡 먹듯이_4절) 하나님의 백성을 억압하고 폭압하는 그들이 의인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게 하셔서 “두렵고 두려워” 하게 하시는 분이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리석은 자들이 아무리 하나님이 없다고 떠들고, 하나님을 부르지 않는다 하여도 그들이 조소하고 조롱하며 폭력으로 억압하는 “가난한 자들”, “의인”들의 삶 속에 함께 계심을 “드러내시며 그들을 두렵게 하신다. “가난한 자”들과 “의인”들의 “피난처”이심을 분명하게 보이시고, 그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 하는 모습을 증거하셔서 어리석은 자들의 오만함을 꺾으신다.
-그러니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다운 삶”이 얼마나 중요한 사명이겠는가! 그저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음을 소소하게 드러내는 그 담대함이 하나님이 없다며 오만하게 살아가는 어리석은 자들을 향해 얼마나 중요한 사명인지 잊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의 피난처가 되신다(6절). 악한 자들은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하는 의인들의 계획을 사사건건 방해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주님은 피할 길을 내어주시고 결국 기쁨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 지금 내가 어떤 어려움과 방해에 처해 있든지 피난처이신 하나님께 나아가리라.
-이러석은 사람들이 떡 먹듯이 하나님의 백성을 삼키고 괴롭혀도 결국 하나님의 백성이 승리하고 구원의 기쁨을 누린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의 조롱과 억압에 지나치게 신경쓰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어리석은 자의 ‘하나님이 없다’는 무지한 생각과 말에서 나오는 부패하고 썩은 악한 행실과 비교하여 선을 행하는 그리스도인,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잊어서는 안된다. 그렇기에, 생각과 말에서 “예수님처럼” 추구해야 한다. 그렇기에, 행실에서 “더 예수님처럼”이 드러나야 한다.
-그러므로 이 사회의 오만함과 추악함, 썩고 냄새나는 죄악의 단상들이 드러날 때, 온갖 정죄와 판단, 심판자로서의 언행보다, 죄인들의 친구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사랑의 진면목을 행실로써 드러내야 한다. 지금 이 시대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도무지 한계가 없는 그 크신 사랑을 분명히 알려야 할 시대임에 틀림없다면, 지식으로서 알림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어 체감하게 하는 하나님 나라 백성다운 삶을 살아내야 한다.
-어느 시대든지 몸을 던져 사회와 이웃을 섬겼던 교회 공동체들의 역사가 던지는 “사랑과 희생, 나눔과 헌신”의 유산을 지금 교회가 “더” 고스란히 이어가야 하지 않겠나! 모두가 다 악에 치우쳐 사는 그 속에서 나를 찾아 내신 하나님의 “굽어 살피신” 사랑을 받았으니 이제 내가 이 세상을 항해 “굽어 살펴” 살아야 한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의당 그래야 한다. 한 영혼이라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매일묵상 ㅣ 묵상을 함께 나눕니다
‘어느 때까지’가 5회나 반복된다(새번역/개역개정은 4회). 그만큼 다윗은 고통스럽다. 아프다. 어떤 고통인지, 무슨 고난인지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지만 문제는 그것이 “오래 되었다”는 것이다.
오래 지속되는 고통, 아픔이 인생에서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누구나 직면할 수 있다. 문제는 지속된 고통, 고난에서 오는 상처난 마음을 어떻게 다룰 수 있느냐다. 과연 상처가 오래되어 깊은 상흔이 남은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까? 다윗의 노래는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1. 하나님께 아룀(1-4절)
다윗은 아픔을 하나님께 호소했다. 특히 아픔에 대한 상황 설명보다 아픔으로 인한 자신의 (내면의) 상태를 주로 고백한다. ‘어느 때까지(언제 까지)’, ‘나를 잊으시나이까?’, ‘얼굴을 숨기십니까?’, ‘번민, 근심을 언제까지’, ‘원수를 언제까지 봐야 하나요?’…(1-2절)
이 모든 고백을 자세하게 하나님께 아뢴다. 자신의 고통을 건강하게 처리하는 것이다. 이게 참 중요하다. 아픔과 고통이 없는 인생이 없기에 불현듯, 혹은 오래도록 지속되는 고통을 어떻게 처리하는가가 중요한데, 다윗은 이 처리를 하나님께 맡긴다.
자기 혼자 꾹꾹 눌러 마음에 담고 있다 정신이 파탄날 수도 있겠고, 혹은 주위 사람들에게 쏟아부어 기피 대상이 되기 쉬운데, 다윗은 이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또 혼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 감정들을 해결할 수도 있는데, 이렇게 되면 의도치 않게 ‘염세적’이 된다는 것이 문제다. 자신만이 해결할 수 있고, 주위의 사람들이나 세상은 필요치 않고 오히려 방해만 된다고 느끼게 되면 결코 좋은 현상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께 토로하는 다윗의 모습이 우리에게 좋은 모델이 된다. 아픔과 고통을 해소하는 측면이나, 이렇게 아뢴 이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실지 기대하게 되는 믿음의 측면이나,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과의 깊은 대화가 지속됨으로 삶 속에 선명한 하나님의 임재의 흔적이 남게 된다. 고통이 하나님의 임재의 흔적이 된다. 이 흔적이 선명할 수록 다가오는 또 다른 고통의 문제가 더 이상 근심거리가 되지 않는다. 이미 한번 가본 길, 더욱 자신감(?) 있게 믿음의 걸음 내딛을 수 있다. 하나님 신뢰의 언행이 쉽게 고백되고 행동된다. 다윗이 그렇지 않았던가!
2. 고통(절망)보다 더 중요한 것(3-4절)
‘나를 생각해 주십시오.’ ‘나의 눈을 밝혀 주십시오.’ 왜냐하면, 사망의 잠을 잘까 두렵고, 원수가 자신만만하여 득세할 때, “내가 흔들릴까” 두렵습니다. 고통이 하나님을 가리울까, 원수(악인)들의 오만한 득세에 자신의 신앙이 흔들릴까 두려워 한다. 문제 해결보다 문제로 인해 자신이 오염될까 두려워 하는 것이다. 특히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과 삶이 오염될까 두려워 한다.
고통과 절망이 두렵기 보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을 보지 못할까… 이것 때문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흔들릴까 두려워 했다. 나의 흔들림으로 인해 원수들이 ‘그럴줄 알았다’며 비웃을까 두려운 것이다.
3. 그러니…(5-6절)
다윗은 결심하고 또 결심한다. “그러나 나는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의지합니다. 주님께서 구원하여 주실 그 때에, 나의 마음은 기쁨에 넘칠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너그럽게 대하여 주셔서, 내가 주님께 찬송을 드리겠습니다(새번역_5-6절).”
부럽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리도 튼튼하다. 이리도 깊다! ‘한결같은 사랑’, ‘주의 구원의 기쁨’, ‘너그러우신 주님’… 긴 고통(절망) 속에서도 오히려 단단해져 가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고백한다. 절망중에 오히려 주님께 더 아뢰며 나감으로 새겨진 믿음이 또 다른 절망을 만날 때 빛을 발했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이런 것 아닐까? 당장 떡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당장 문제 해결의 카드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 “신뢰”는 하나님의 일하심의 분명한 키가 된다. 오랜 절망과 고통이 때로 불평과 원망, 탄식의 이유가 될 수 있지만 반대로 오히려 하나님의 놀라운 인도와 보호하심의 증거가 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다윗처럼 고통(절망)중에서도 찬송할 수 밖에 없다! “주께서 내게 베푸신 은덕”으로 인해 “찬송” 할수 밖에 없다!(6절)
나는?
-다윗은 영원히 고통이 지속될 것 같은 두려움과 절망 앞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호소한다. 언제까지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는 것을 보고 있어야 하는지 괴로워하며 ‘어느 때까지’를 네 번이나 반복하고 있다. 원수 때문에 당하는 고통의 무게가 큼을 보여주는 반응이다(1~2절). 어려움은 계속되는데,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 않을 때 나도 똑같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고비에서 좌절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 주의 사랑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을 놓치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침묵으로 다윗이 번민과 근심에 휩싸인 것이다. 하나님의 침묵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포기인지, 하나님의 부재인지, 하나님의 무능인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부르짖음은 그가 여전히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고 믿었다는 증거다. 다윗은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구원을 호소하며 공의로운 심판을 요청한다. 다윗은 이런 모습이 하나님이 성품에 어울리는 하나님의 의무임을 알지만, 다만 그 때가 언제인지 인간은 모를 뿐이며,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때를 앞당겨서 자신의 고통을 감소시켜달라는 요구뿐이다.
-깊은 절망에 빠진 다윗은 하나님은 붙들었다. 극한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상황 속에서도 ‘ 내 하나님’이라는 밧줄을 굳게 붙잡으면 결코 사망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3~4절).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물음에 응답하실 것을 믿었다. 또한 단지 ‘살려달라’고 요구하지 않고 ‘내 눈을 밝혀달라’고 요구한다. 죽고 사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명확히 아는 소망에 눈을 뜨기를 바라는 것이다.
-원수가 내리치는 상황에서도 다윗의 마음은 주님의 구원을 기뻐한다. ‘내 눈을 밝혀달라’는 소망과 ‘사망의 잠을 자는’ 두려움이 교차하는 가운데서도 다윗은 끝까지 백성을 돌보시는 신실한 하나님의 사랑에 의존한다(5~6절). 다윗에게는 결코 하나님이 자신에게서 얼굴을 돌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지금 삶이 힘들고 어려운가? 여전히 해결책이 없어 보이는 긴 어둠의 터널을 건너는 것 같은가? 하나님이 우리를 이 어려움의 상태로 두신 것은 그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너무나도 고집 센 나를 한 발자국 더 하나님께 가까이 오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배려이며 전략이다. 고통의 짐을 가지고 하나님께 더 한 발자국 가까이 나아가야 하리라.
-지금 생각해 보니 어차피 삶은 어려웠다. 가난한 어린 시절은 말할 나위 없고, 목사의 길을 걸으면 어느 순간 문제가 없는 날이 없었다. 고통투성이었다. 그런데 고통 투성이였던 그 길이 지금 뒤돌아 보면 고통의 흔적이 보이질 않는다. 기막힌 하나님의 은혜의 흔적만 보인다.
-그래서 힘든 기억보다 감격스러운 기억이 더 많다. 이것이 “주님께서 내게 베푸신 “은덕”이 아니고 무엇일까! 인생의 가장 힘들었을 때가 가장 깊은 은혜의 때였다!
-특히 오늘 말씀 중에서 더욱 깊이 마음에 각인이 되는 말씀이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이다. 새번역은 “나를 굽어살펴 주십시오. 나에게 응답하여 주십시오. 주, 나의 하나님, 내가 죽음의 잠에 빠지지 않게 나의 눈을 뜨게 하여 주십시오.”로 번역했다. 여전히 나는 하나님의 굽어 살펴주심이 필요하고, 기도드린 것에 응답을 기다리며, 죽음의 길을 분별할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맞다! 내 눈을 밝혀 주셔야 고통을 고통으로만 보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신뢰, 사랑으로 볼 수 있다. 악인들의 도발에 거룩한 분노를 행할 수 있고 세상의 고통에 참담한 긍휼의 동의를 할 수 있다. 나에게로 집중된 눈을 밝히 뜨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사랑하는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다. 그들의 고통에 마음으로 반응할 수 있다.
-“내 눈을 밝게”해 주셔야 제대로 보고 느끼며 확신할 수 있다. 무엇보다 “내 눈이 밝아져야” 하나님이 모든 순간에 나와 함께 하고 계심을 볼 수 있다. 안계신 곳이 없는 하나님의 임재를 볼 수 있다. 성경안의 기적의 현장에만 계시지 않고 지금 여기 나와 함께 계심을 볼 수 있다. 부르짖는 나의 소리를 가장 먼저 들으신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나의 눈을 밝히소서” 주님…
*점점 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난감해지는 사회 속에 우리가 산다. 이런 때 일수록 나의 눈을 밝혀 주심으로 하나님의 마음과 뜻대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시기여야 겠다. 휩쓸리는 여론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의 뜻을 “밝히 보아야” 겠다. 주님… “나의 눈을 밝히소서!”
*다윗이 오랜 고통중에서 구한 것은 문제 해결이 아니었다. “나의 눈을 밝혀 주소서”였다. 지금 당장 문제가 해결되어 잠시 마음의 감동을 누리는 것도 은혜이지만 하나님을 보지 못하면 오히려 손해다. 고통의 시간에 고통만 보는 것은 더 고통이다. 그러나 고통중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밝히” 볼 수만 있다면, 더 이상 고통은 보이지 않고 하나님께서 이 고통중에 베푸시는 “은덕”이 보일 것이다.
*고틍의 삶이 고통으로만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채워지는 순간이 “눈을 밝히 떠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는 순간이다. 오늘도 “내 눈을 밝게 떠 주시는 은혜”가 주님을 바라보게 하여 주님과 깊은 교제의 하루가 되게 하실 것을 믿고 바라고 바란다.
매일묵상 ㅣ 묵상을 함께 나눕니다
다윗은 악인들의 언어를 통한 폭행에서 경건한 자들을 구원해주시기를 간구하며, 흠 없고 변하지 않는 하나님 말씀과 약속을 확신한다. 다윗은 사람들 중에 의인이 점점 없어지고 악인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음을 한탄하면서, 하나님께 특히 악인들의 입으로 행하는 죄를 심판하시고 악인의 악행으로 탄식하는 경건한 무리들을 구원해주시기를 탄원한다. 또한 죄짓는 말과 고통의 신음소리와 대조하여 고결하고 정제된 하나님 말씀과 그의 약속을 되새기며 찬양한다.
본 시편은 전반적으로 다윗의 절박한 부르짖음이다.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사라지고 있음을(1절), 반면 비열함이 인생중에 높임을 받고, 악인들은 곳곳에서 날뛰고 있음을 호소한다(8절). 또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경건한” 성도가 사라지고 있다. 더하여 “확고한” 믿음의 가치를 가지고 살아내는 삶이 사라지고 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인가?
1. 거짓과 아첨, 두 마음(2-4절)
다윗은 사람들이 서로 거짓말을 하고,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한다고(2절) 증거한다. 사람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혀는 우리의 힘, 입술은 우리의 재산(보습),누가 우리를 이기겠는가!(4절)”이라고 말한다. 철저한 “자기확신”이다. “거짓말로 충분히 살 수 있어… 아첨하며 속여서 얼마든지 살 수 있지…”라며 서슴치 않고 일말의 주저함 없이 거짓과 아첨의 말을 쏟아낸다.
‘이웃에게(서로 서로_2절)’ 거짓과 아첨을 쏟아낸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혀와 입술의 능력을 자신한다. 자신들의 “두 마음”에서 나오는 거짓과 아첨의 힘을 누가 제어할 수 있겠냐며 “거짓말과 아첨”의 능력으로 살아가려 한다.
다윗의 탄식은 하나님의 백성답지 못한 이런 “거짓과 어첨”이 이미 난무하여 “서로에게” 악영향을 끼치며, 점점 “경건하고 충실한” 자들이 사라지고 있음을 탄식하는 것이다.
2. 하지만 하나님은(5-7절)
그들의 거짓과 아첨으로 “눌림과 탄식”하는 가련하고 궁핌한 자들을 위해 “일어나신다!” 그리고 “안전한 지대”로 옮기신다(5절). 그리고 “지켜시고… 보존하신다(7절).”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은 순결하기가 도가니에게 일곱 번 걸러 낸 ‘순은’같기 때문이다. 즉 악인들의 난무하는 가치없는 거짓말과 겉만 번드르한 아첨의 말, 두 마음을 품은 자들과 달리 하나님의 말씀이 완전하게 순결함을 고백하는 것이다. 일봅 번이나 정련한 은처럼 흠 없고 진실한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그가 베푸시는 구원을 확신하는 것이다.
거짓과 아첨, 두 마음의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그의 순전한 말씀앞에서의 삶을 비웃고 멸시하더라도, 하나님의 백성은 그분의 완전하고 순결한 말씀의 약속을 신뢰할 때, “일어나.. 안전 지대에 두시고…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거짓과 아첨, 두 마음의 악인들 가운데서)… 보존(구원) 하신다! 영원토록!…”
나는?
-악인들은 두 마음으로 아첨과 거짓을 말한다. 하지만 다윗은 오직 한 마음으로 여호와께 도움을 구한다. 이에 하나님은 도가니에서 일곱 번 단련한 은 같이 말씀에 기대어 사는 한마음을 가진 자들에게 영원히 보존하는 은혜를 베푸신다.
-다윗은 거짓과 아첨을 말하는 자들로 인해 경건한 자들이 점점 사라져가는 현실 앞에서 주님께 도와달라고 호소한다(1~4절).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고 그 말씀을 붙들지 않으면 악인들의 불순한 말과 감언이설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내게 가장 영향을 끼치는 말은 누구의 말일까? 그 악한 유혹의 말에 내 귀와 마음을 여미어야 하겠다. 또한 내 입에서는 어떤 말들이 나올까? 선한 말이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선한 입술이기를 늘 추구하리라.
-하나님은 고난받는 의인들의 신음을 저버리지 않으신다. 안전한 피난처로 인도하신다. 고통 가운데서도 한결같이 하나님께 기댄 자들에게 견고한 성을 세우시고 문을 열어 안전지대로 초청하신다(5절). 힘들고 지치더라도 하나님께서 안전지대를 준비하신다면 지금 당하는 고통의 무게를 충분히 견딜 수 있다. 반드시 안전한 처소로 인도하실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오늘도 고난의 현장에서 끝까지 인내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불순물이 섞여 있지 않은 순수한 은과 같다(6절). 악의 입술은 조급하게 말을 뱉음으로 거짓과 아첨을 내지만(2절), 말씀은 찌꺼기를 일곱 번 걸러낸 후에 토해내는 정제된 것이기에 순결한 삶으로 이글어간다. 조급하게 하루를 시작하기보다 순결한 말씀 앞에서 삶의 불순물을 가려내고 자신을 먼저 정제해야 한다.
-의인이 고난받는 가운데 비열한 자들이 창궐한다(8절). 의인은 말씀의 도가니에 들어가 일곱 번 걸러내는 인내의 시간을 거치는 동안 악한 자들은 곳곳에서 더러운 일들을 성취하게 위해서 거리를 거침없이 활개치고 다닌다. 위리가 사는 세상은 진리의 말씀이 조금만 흐려져도 금방 악으로 뒤덮인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결코 악에 제압당하지 않는 견고한 진리의 말씀지기로 세워져야 할 것이다.
-말은 그냥 말이 아니다. 그것은 창조의 무기다. 대적은 거짓의 말, 아첨의 말, 하나님의 역사 개입을 부정하는 말,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과 돌봄의 성품을 왜곡하는 말로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떼어놓으려 한다. 하나님의 백성 자격이 없는 것으로 만든다. 다수가 그 말에 동조하고 경건하고 충실한 삶에서 떠나간다. 그것이 세상이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정한 기준이고 권능이시다. 세상은 그분의 말을 무력화시키지만, 하나님은 세상의 말의 힘에 의해 억압받는 이들에게 구원을 약속하시고, 그 말씀대로 실현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말씀만이 믿을 만하고, 또 모두 무릎을 그 앞에 꿇어야 한다는 것을 증명하실 것이다. 그 말은 일곱 번 단련한 은처럼 순전하고 진실하며, 반드시 역사가 되고 사건이 되게 하실 만큼 능력이 있다. 악인은 끊으시겠지만, 그를 의지하는 자는 영원히 보존하실 수 있다.
-묵상하는 중에 자신의 목적을 위해 너무나 쉽게 “거짓말”을 만들어 내어 사람들을 억누르고, 거짓 세력을 만드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들의 거짓으로 인해 사회가 혼란해지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주저함 없다. 악인들이다.
-또 아첨하는 말로 번지르하고 간사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아 고통을 주는 사람들도 악인들임에 틀림없다. 비록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지만 “말”로 이웃의 삶을 어지럽히고 파괴하는 사람들이다. 거짓이 진실로 포장되어 정의와 공의를 묵살시켜 버리는 행태들이 ‘난무”하고 있다. 참으로 답답한 세상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모습이 다윗의 시대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난무”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하다. 더 놀라운 것은 이것을 ‘길이 참고’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인내다. 이것이 인간 본연의 모습 인것을 아시기에 그 가운데서 “끈질기게” 경건한 자”, “충실한 자”를 기필코 “보존(구원)”하시는 하나님이 대단하시다.
*한편으로… 이런 거짓말과 아첨, 두 마음에서 나오는 말들이 사회에서만 난무할까? 교회 공동체는 어떨까? 사회의 거짓 뉴스에 선동되어 정의과 공의를 지키고 단단히 중심을 지켜야 할 교회공동체가 오히려 선동의 자리에 앞장서는 모습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한편에서는 진리 편에서 투쟁한다고 하고 한편에서는 이런 모습이 안타까워 다윗처럼 하나님께 울부짖는데…. 아… 고통스럽고 안타깝다!
*거짓과 번지르한 아첨(속임)의 말은 분명한 유통기한이 있다. 이 기한이 다 차면 이 거짓에 기반을 두었던 삶은 반드시 무너진다. 스스로 자기들의 말에 확신을 갖고 자신들의 거짓과 아첨의 말로 충분히 이긴다며 떠드는 그들은 처참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오늘 나의 삶이 거짓말과 아첨, 두 마음을 철저하게 경계하며 살아내야 할 이유다!
*말은 그냥 말이 아니다. 그것은 창조의 도구다. 하나님이 역사 개입을 부정하는 말,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과 돌봄의 성품을 왜곡하는 말로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떼어놓으려 한다. 하나님의 백성 자격이 없는 것으로 만든다. 다수가 그 말에 동조하고 경건하고 충실한 삶에서 떠나간다. 그것이 세상이다.
*순결한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하게 신뢰하는 믿음으로 거짓말과의 싸움을 이겨내야 한다. 스스로의 힘이 아니라 순전하기 그지 없는 말씀으로 힘으로 말이다. 그리스도인은 순결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내는 존재다. 자기를 위해 자기 입술의 거짓과 아첨, 두 마음을 품고 얼마든지 살아낼 수 있다는 세상의 소리에 흔들려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순전한 백성들을 찾아 “일어나시고.. 안전 지대로 두시고…지키시며…거짓의 세상으로 부터… 보존(구원)하신다!” 하나님의 일어나심이 나를 위한 일어섬이기를….하나님의 지켜 주심이 나를 위한 지켜주심이기를…. 간절히 확신한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정한 기준이고 권능이시다. 세상은 그분의 말을 무려화시키지만, 하나님은 세상의 말의 힘에 의해 억압받는 이들에게 구원을 약속하시고, 그 말씀대로 실현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말씀만이 믿을 만하고, 또 모두 무릎을 그 앞에 꿇어야 한다는 것을 증명하실 것이다. 그 말은 일곱 번 단련한 은처럼 순전하고 진실하며, 반드시 역사가 되고 사건이 되게 하실 만큼 능력이 있다. 악인은 끊으시겠지만, 그를 의지하는 자는 영원히 보존하실 수 있다.
매일묵상 ㅣ 묵상을 함께 나눕니다
위기다! 이미 일어나서 여호와께 피했지만(1절) 보이지 않는 위협이 여전하다(2절). 그런데 어떤 위기, 위협일까? “터”가 무너지려는 위기와 위협이다. 일상의 삶을 지탱하게 하는 삶의 도리나 체계, 세계관 이런 것일 것이다. 즉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사느냐의 “터”이다. “마음이 바른(2절)” 것이다. 바른 마음을 무너뜨리려고 ‘말’로 현혹하여 이미 여호와께 피한 시인에게 “새처럼 ‘너의 산에서’ 피하라고 하고 어두운 곳에서(보이지 않는 곳에서) 활을 쏘려한다. “악인이 활을 당기고, 시위에 화살을 메워서 마음이 바른 사람을 어두운 곳에서 쏘려 하지 않느냐?(새번역_2절)”
마음이 바른 사람에게 닥친 위기가 무엇일까?
1. 판단의 위기(1절)
어떤 위기인지 본문은 정확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그 내용보다 이미 위기에 반응하여 “여호와께 피하였다”고 노래한다. 문제는 이렇게 여호와께 피한 시인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고 부추긴다. 이미 위기가 일어났고 여호와께 피하였는데, 그것이 아니라고 한다. 다른 곳으로 피하라고 한다. 그것이 더 맞단다!
판단의 위기이다. 자신은 정확하게 판단했다고 했지만, 주위에서는 그게 아니라고 한다! 이것이 진짜 위기다! 어떤 상황에 대해 내린 믿음의 결정(여호와께 피함)이 사람들에게 조롱 당한 것이다. 이 상황에서 그게 뭐야? 이게 최선이니? 아니다! 빨리 이렇게 해야해!, 답답하다! 저렇게 했어야지…. 이런 식인 것이다.
내가 내린 믿음의 결정에 대해 가족들이 싸잡아 비난하고, 지인들이 답답하다 하고, 동역자들이 한심해 한다. 이 때문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나의 “터”가 무너지려 한다… 이런 당혹스러운 상황이라니…
2. 여전한 위협(2-3절)
그런데 어찌되었든 그런 상태에서 상황이 정리되면 좋겠지만, 위협은 여전하다. 문제는 보이지 않는 위협인데 확실하다는 것이다. 여호와께 피한 마음을 흔드는 위기, 여기에 더욱 그 바른 마음을 무너뜨리려고 쏘아대는 악인의 화살들…보이는 곳에서 쏘는 화살이라면 대비라도 하겠지만, “어두운 곳(보이지 않는 곳)”에서 쏘려고 준비하는 것이라 심각해도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다.
은밀하게 “바른 마음”을 무너뜨리려고 한다. 이만하면 되었다라고 안심할 때 “바른 마음”을 무너뜨리려 한다. 이미 ‘여호와’께 피해 있다고 자신했는데, 속임수를 써서 “바른 마음”을 무너뜨리려 한다. “여호와께 피했다”는 신앙고백이 중요하기도 하나, 피해있어도 여전한 위협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에 대비를 해야 한다. 베드로가 일러준 부탁이 새삼 떠오른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십시오. 여러분의 원수 악마가(훼방자가), 우는 사자 같이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닙니다.(새번역_벧전 5:8)”
3. 하나님은…(4-7절)
마음이 바른 자가 이런 위기와 여전한 위협속에 있을 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까? “…주님은 그의 눈으로 사람을 살피시고 눈동자로 꿰뚫어 보신다(새번역_4절).” “주님은 의인을 가려 내시고, 악인과 폭력배를 진심으로 미워하신다(새번역_5절)” “불과 유황을 악인들 위에 비오듯이 쏟으시며, 태우는 바람을 그들 잔의 몫으로 안겨 주신다(새번역_6절)” “주님은 의로우셔서, 정의로운 일을 사랑하는 분이시니, 정직한 사람은 그의 얼굴을 뵙게 될 것이다(새번역_7절)”
위기와 위협 속에 있는 의인과 악인을 “보신다” 그리고 “가려 내신다” 위기와 위협을 조장한 악인을 “미워하시고”, “불, 유황, 태우는 바람을 그들의 몫으로” 안겨 주신다. 의와 정의를 사랑하시는 분이기에 “정직한(바른 마음의) 사람”에게 그의 얼굴을 보이신다(구원하신다).
“보시고, 가려내셔서, 심판하시며, 구원하신다.” 여전한 위기와 위협속에서 이미 “여호와께 피한” 바른 마음을 끝까지 지키는 그에게 얼굴을 보이신다(구원하신다). “주님께서 당신들에게 복을 주시고, 당신들을 지켜 주시며, 주님께서 당신들을 밝은 얼굴로 대하시고, 당신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님께서 당신들을 고이 보시어서, 당신들에게 평화를 주시기를 빕니다(새번역_민 6:24-26)”.
이렇게 약속하신대로다! 위기와 위협 속에서도 “바른 마음(정직한)”을 지키는 그에게 약속하신대로 지키시고 베푸신다!
나는?
-의인은 악인들의 화살이 날아오며 터가 무너지는 환난과 고통 앞에서 하나님께 피했다. 이 모든 상황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은 의인을 돌봐주시지만, 악인에게는 심판으로 되갚는다. 악인들의 공격 앞에서 믿음을 가진 자와 믿음이 없는 자가 갈라진다. 시인의 친구들은 시인에게 ‘산으로 도망하라(외국으로 도망하라)’고 충고했지만, 시인은 이를 거부하며 하나님께 피하겠다고 말한다(1~2절). 하나님께 피하는 것은 현실을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돌파하는 것이다. 지금 나를 위협하며 날아오는 화살들은 무엇인가? 또 어디로 피하는가?
-세상이 우리는 작정하고 쫓아오면 아무 데도 피할 수도 없다. 가정, 직장, 심지어 교회에서마저 우리는 숱한 관계들에서 쫓길 수 있다. 사방 천지에서 우리는 쏘려고 화살을 겨누는 이들 투성이다. 하나님이 안 계신다면 그분께 피할 수 없다면, 막다른 골목인 인생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렇기에 우리가 그 하나님의 음성이 되어주고 그 품이 되어주고 들어줄 귀가 되어준다면 많은 이들이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악인의 악행뿐 아니라 의인의 무죄함도 감찰하신다. 땅(세상)에서 답을 찾기 위해 타인을 해치는 악인은 불의한 소득을 모두 잃고, 더 ‘공허’해진다. 하지만, 땅의 답을 뿌리치고 내가 머문 바로 이 자리를 성전 삼고 하나님께 내 삶을 맡기면 ‘채움’을 얻는다(4~5절). 오늘도 삶의 답을 채워주시기 위해 온종일 눈길을 떼시지 않고 살피시는 주님께 나의 시선을 고정하리라.
-하나님의 눈은 각 사람을 살펴보고 계신다. 우리의 행위와 말이 의인에게 속하는지 감찰하신다. 우리가 어제 의인에게 속하는 행동과 일을 했다 해서 오늘도 자동적으로 의인의 무리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의인에게는 그분의 감찰하시는 눈이 부담스러운 감시 카메라가 아니라 억울함을 풀어주는 증거물이 된다.
-땅에서 거짓과 시기로 자기 잔을 채운 사람은 심판 때에 그대로 그 잔을 마시게 된다. 이 따으이 욕심을 좇아 죄악과 폭력을 일삼는 사람들은 땅이 무너질 때 함께 무너지는 심판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하늘에 소망을 둔 사람은 하나님의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오늘’이라는 삶의 잔에 ‘하늘 소망’을 채울지 아니면 ‘땅의 욕심’을 채울지 결정해야 한다.
-바른 마음, 정직함… 이 시대에 던지는 귀한 화두임에 틀림없다.
-나 하나쯤이야 괜찮겠지라는 비뚤어진 마음과 행동으로 인해 온 사회가 고통의 격랑 속으로 다시 들어섰다! 이런 위기의 때 일수록 “바른 마음” “정직한 행동”이 나와 사회를 살린다.
-위기 속에서 이미 여호와께 피했으나 이를 조롱하는 시대다. 그 방법은 틀렸어! 이렇게 해야지! 라며 거들먹 거린다. 하지만 하나님께 피하여 그 안에 있는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이들의 아우성과 맞바꾸지 않겠다! 주님의 말씀의 가치가 “내 안에서 스스로 흔들리지 않게” 하겠다!
-악인들이 화살을 정조준하여 보이지 않는 곳에서 쏘려 한다. 그러니 퍼덕이는 새처럼 빨리 산 속으로 도망치라한다. 예상치도 못한 불의한 일을 당하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의지하는 신앙”을 접고 인간적인 안목의 안전한 곳(산)으로 피하라 세상은 말한다! 하지만 이런 주위의 절박한 충고를 마다하고 여호와께 피했다고 노래한다. 아…. 이 얼마나 단호한 신앙인가!
-애매하게 얽히는 상황들이 일어나 마음이 어려울 때 나의 발과 시선이 “하나님”께로 향하기를 결심한다. 인간적인 안전의 근거와 방법, 의지할 만한 어떤 것의 “산”으로 피하지 않으리라!
-“보시고, 가려내셔서, 심판하시며, 구원하신다.” 나의 마음을 세밀하게 보신다(감찰하신다). 믿음의 결정속에 담긴 수많은 주저함, 의심들, 의견들, 상황들을 이겨내고 내린 결정을 보신다. 여호와의 눈이 이렇게 나를 지켜 보신다. 그 얼굴이 나를 비추고 계신다. “새처럼 산으로” 도망치는 것보다 나를 지켜보시는 하나님의 얼굴 앞에 더 “반듯하게(바른 마음)” 서 있어야 겠다.
-정직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된다(7절). 고통과 불법이 만연한 광야를 정직으로 살아내는 순종의 사람들은 날마다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여 보는 거룩한 교제에 참여하게 된다. 모든 고통과 수치의 눈물을 손수 닦아 주시고 날마다 말씀으로 새롭게 어루만져주시는 교제의 자리인 말씀 묵상을 거르지 않을 것을 결심해 본다. 또한 하나님의 얼굴을 뵐 때 부끄럽지 않도록 의롭고 정직하게 삶을 채워 나가리라.
-하나님은 그의 성품과 말과 행동에 있어 일관된 의로움을 나타내시는 의로운 재판장이시다. 하나님 앞에서 그의 판결을 피할 자가 없음을 기억할 때 나의 말과 행동이 매 순간 정직하고 의로운지 점검하게 된다.
*판단과 결정을 흐리게 하는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여호와를 향하는 “바른 마음(정직한 행동)”을 지켜야지. 오늘도 이런 “바른 마음”, 위기와 위협속에서 이미 여호와 피한 마음, 이미 여호와를 의지하는 마음을 굳게 지켜야 하리라. 오늘도 이런 “바른 마음”, 위기와 위협속에서 나에게 얼굴을 향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리라. 바른 마음과 그의 얼굴을 바라봄이 오늘의 걸음이리라. 위기와 위협이 있으나 소용없는 위기와 위협일테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나를 지키실 터이니 말이다.
매일묵상 ㅣ 묵상을 함께 나눕니다
본 시편은 제목(부제)가 없다. 전통적으로 9편과 연결시켜 알파벳 시(또는 이합체 시)로 읽히지만, 현재는 독립적인 시로 읽기도 한다. 히브리어 자음 순서도 불완전한 형태이기도 하다. 이 시편은 박해와 시련과 위기에 처한 사람이 탄식하며 주님께 도움을 구하는 탄식시로 분류된다. 의로우신 하나님의 통치가 실행되는 세상에서 왜, 악이 성행하고 의가 핍박당하는지 답답한 다윗의 마음이 솔직하게 녹아 있다. 또, 다윗은 하나님께 악인의 행태를 묘사하고 고발한다. 특히 연약한 자들에게 고통을 가하는 악인들의 악독함을 은유와 직유로 표현한다. 악인들은 야수처럼 약한 자를 포획하려고 노려보며,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자들이다. 때문에 다윗은 하나님이 일어나서 그 악인들을 벌해주시고, 약자의 권리가 보호받기를 간구한다.
1. 여호와께 질문하다(1절)
다윗은 환난을 겪고 있다. 견딜 수 없는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따져 묻는다. ‘어찌하여 여호와여 멀리 서계십니까, 숨으십니까?” 다윗은 자기의 불행 그 자체보다 하나님의 숨으심, 곧 하나님의 부재가 더 큰 고통임을 토로한다. 무참한 고통에서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움을 확신하건만 그 분이 무심하게 숨어계신 것 같다.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진다. 이 때문에 ‘어찌하여’라는 다윗의 질문은 여호와를 향한 비난의 언어처럼 들릴 수 있다.
2. 악인들의 포악함을 고발하다(2~11절)
다윗은 ‘환난의 때’ 왜 여호와가 숨어 계시는지 따져 묻고서(1절), 환난의 구체적 이유를 밝히듯 악인들의 행동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악한 자의 교만 때문에 가련한 자가 심하게 압박 당한다. 이 때문에 악인들이 자기 꾀에 빠져 엎어지기를 요청한다(2절). 악인들의 특성은 교만이다. 악인의 거드름피우는 거만함은 ‘가련한 자(가난한 자)’의 자존감을 무참하게 짓밟을 수 있다. 이들은 사회적 약자로서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기 쉽다. 다윗은 이렇게 악인들이 자기 이익을 위한 음모에 스스로 걸려 넘어지길 요청한다.
악인에 대한 묘사는 계속되는데, 얼굴을 드높이 쳐든 악인은 마음의 욕심을 자랑하고 탐욕을 부리고, 여호와를 배반하고 멸시한다(3절). ‘마음의 욕심’은 인간 내면에 숨겨진 탐욕과 동의어다. 이뿐만이 아니다. 악인은 교만한 얼굴을 하고서 하나님의 얼굴을 찾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으며, 그의 모든 사상에는 ‘하나님이 없다’고 한다(4절). 그들은 하나님이 세상과 인간사에 관심도 없고, 돌봄도 없고, 어떤 개입도 없다고 생각한다. 시인은, 악인의 길은 언제나 번성하고 주님의 심판은 높기만 해서 악인에게 미치지 못하여 악인들은 자기들의 대적들을 언제나 비웃고 경멸한다(6절)고 탄식한다. 다윗이 보기에 악인의 말과 행위는 환난과 시련의 원천임을 밝힌다(6下~7절).
다윗은 은유와 직유를 통해 악인의 본성을 계속 열거한다(8~9절). 그들은 무죄한 자를 죽이고, 희생자들을 비밀리에 지켜보며, 사자처럼 은밀한 곳에 숨어 덮칠 준비를 하며 기다리다가 ‘가련한 자’를 사로잡는다(9절). 악인들은 가련한 자를 자신의 포획물로 삼는다. 그러므로 가련한 자들은 악인들의 포악스러움 앞에서 넘어질 수밖에 없다(10절). 더구나 악인들은 마음속으로 말하기를,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의 얼굴을 가리셔서 영원히 보지 않으실 것이라고 한다(11절).
악인들은 하나님이 의로운 통치를 멈추셨고, 세상에 관심도 없으시며, 원통하고 억울한 사람들을 더 이상 돌보지 않으신다고 떠들어댄다. 그렇다면 악인들의 이런 확신처럼 하나님은 어떤 활동도 안 하고 계신 것인가? 다윗의 마음은 곤혹스럽고 고통스럽기만 하다.
3. 하나님의 보복을 구하는 기도(12~14절)
다윗은 더 이상 악인의 활동을 쳐다보고만 있을 수 없다. 더 이상 침통해하며 우울하게 있을 수 없다. 다윗은 여호와를 부르며 재촉한다. ‘여호와여 일어나십시오. 하나님이여 당신의 손을 드십시오. 가난한 자들을 잊지 마십시오(12절).’ 다윗은 하나님 손의 힘과 능력이 발휘되기를 바라고, 하나님이 용사처럼 일어나셔서 가난으로 고통 받는 자들을 위해 악인을 처벌하시기를 강력하게 촉구한다.
다윗은 하나님께 악인의 오만함을 고발하면서 용감하고 대담하게 질문한다. ‘어찌하여 악인이 하나님을 경멸하고, 마음속으로 “하나님은 벌을 주지 않는다”하고 말하게 내버려 두십니까?(13절_새번역).’ 다윗은 악인의 오만방자한 말에 반박하고 싶다. 그리고 여전히 하나님을 믿기에 그에게 아뢰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고통과 번민을 보시고, 그것을 주님의 손으로 갚으실 것이며, 불행한 자가 주를 의지하며, 이미 고아를 도우셨음(14절)”을 증언한다.
다윗은 가장 도움을 먼저 받아야 할 고아와 불행한 사람 모두 하나님의 돌보심 안에서 회복될 것을 확신한다.
4. 여호와의 통치와 심판을 확신(15~18절)
다윗은 가련한 자, 불행한 자, 가난한 자, 고아를 돌보시는 하나님을 믿기에 악인의 심판을 요청한다. 매우 담대하고 단호하게 사람이 찾을 수 없는 악인들의 악을 하나님이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하다. 악인들은 ‘하나님은 영원히 보지 않으신다(11절)’고 말하지만, 다윗의 생각은 다르다. 그 어떤 악도 하나님에게서 숨겨질 수 없다.
그래서 악을 끝까지 찾아 처벌하시고 끝장내시기를 바라고 믿는 다윗의 언어는 하나님의 왕권을 노래하는 찬양으로 바뀐다(16~18절). 다윗은 여호와는 영원무궁하도록 왕이시고 이방 나라들이 주의 땅에서 멸망했다고 선포한다(16절). 다윗은 옛적 조상들이 출애굽할 때 애굽의 악하고 강한 군대와 나라를 멸망시키시고 심판하신 하나님을 기억한 것이다. 그 기억 속의 모세처럼 그가 홍해를 건넌 후 구원에 감격하여 ‘여호와가 영원무궁토록 다스리실 것이다(출 15:18)’라고 노래한 것처럼, 이 땅의 모든 악한 나라와 통치자들을 완전히 멸하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다.
다윗은 마지막으로 자기의 지고한 믿음을 재천명한다. 여호와의 왕권을 이스라엘 땅에만 국한하지 않고 온 세상 끝까지 박해받는 자들을 위로하시는 왕권으로 소망하고 확신한다. 다윗은 가난한 자들이 악인들의 횡포에 고통당하지 않도록 일하실 하나님을 믿고 고백한다(17절). 또한 고아들과 압제 당하는 자를 위해 여호와가 심판하시고, 속물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강자들이 더는 위협하지 못하게 하실 것을 믿는다(18절). 다윗은 이러한 하나님의 공정한 재판을 통해 사회적 약자들을 변호해주시고, 그들의 권리를 찾아주실 희망과 기대를 끝까지 붙든다. ‘하나님이 잊으셨다(11절)’고 말하는 악인의 조롱에 휘말리지 않은 것이다.
이와같이 이 시편은 일상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왕권을 믿는 다윗의 신학적인 입장이 오롯이 반영되었다. 악이 당장에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의로운 재판장이며 왕이신 하나님의 신성한 원수 갚음의 날은 마침내 도래할 것이다.
나는?
-다윗은 악인으로 인한 환난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소망했으나, 악인은 번영 속에서 하나님을 멸시하여 거짓과 포악을 일삼았다(1, 6절). 우리가 처한 환경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바른 태도다. 나는 현재 처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향해 어떤 태도를 유지하는지 늘 돌아보고 분별해야 하겠다. 다윗처럼 상황보다 상황을 이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는가?
-인간의 악의 본질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을 신뢰하고 의존하며 자기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즉 자신이 자기에게 법이 되는 자율적인 사람은 하나님을 의존하거나 다른 사람을 돌아보거나 배려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이렇듯 악의 본질이 표현되는 정점에 자기중심성의 교만이 있다.
-하나님 없는, 하나님이 배제된 신앙은 악하다. 악인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하나님 무서운 줄 모르고 악을 행한다. 그들은 교만하고 탐욕스러우며, 자기 욕심을 채우느라 힘없고 가련한 사람들을 짓밝고 괴롭히며 온갖 악한 말과 행동을 일삼는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안전하며 아무 문제 없을 것라고 큰소리친다(2~11절). 나는 생각에서부터 말과 행동에 이르기까지 사적인 일에서부터 공적인 일에 이르기까지 범사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며(잠 3:6) 생활하고 있을까?
-악인과 대조하여 가련한(가난한) 자(1, 9, 12절), 무죄한 자(8절), 외로운 자(14절), 겸손한 자(17절), 압제 당하는 자(18절)가 나온다. 악인의 개념과 대조적으로 의인은 그들의 삶과 미래를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한 자들이다. 자기 힘과 자기 방식으로 악에 대항하지 않고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아 하나님께 피하며, 하나님이 친히 대항하시고 심판하시도록 맡기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분이다(12~15절). 다윗의 탄식처럼 때로는 멀리 숨어 계신 것 같기도 하고, 악인의 조롱처럼 우리를 잊으셨거나 안 계신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불꽃같은 눈으로 모든 환난과 원한을 감찰하고 계신다. 또 때가 되면 의로운 손을 드셔서 악인들의 팔을 꺾고 그들의 악행을 갚아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갚아주심을 확신할 때 우리는 악인들의 저주와 거짓과 포악을 이겨낼 수 있다.
-다윗의 소망은 하나님의 영원성에 있다. 악인은 자기의 꾀에 스스로 넘어질 것이다. 하나님은 없다고 말하는 그들의 교만함과 대대로 환난을 당하지 않으리라던 헛된 안정감은 영원하신 하나님, 모든 것을 아시고 감찰하시는 하나님, 강한 자가 아니라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시는 하나님께 멸시를 당할 것이다.
-여호와는 고아와 겸손한 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는 왕이시다(16~18절). 하나님은 교만한 압제자들을 심판하시고 압제당하는 자들을 변호하시며 그들의 피난처와 그늘이 되어주신다. 겸손하고 가난한 자를 돌보시며, 그들의 권리를 되찾아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어떻게 동참할 수 있을까?
*살다보면 이런 질문을 할 정도로 곤란해지고, 사방으로 막혀 좌절할 때가 있다.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면 왜 이런 고난이 우리에게 일어날까?’ 이와같은 고백의 시편식 표현이 ‘우리를 향한 여호와의 손이 짧은가?’가 아닐까 싶다. 대답하자면, 절대 그럴 일 없다. 그럼에도 일상에서 하나님의 손이 너무나 짧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하나님이 무기력해 보이고, 도저히 그 상황을 역전시킬 수 없을 것 같은 상황도 자주 직면한다. 참으로 난감하다.
*그런데 악인은 하나님을 무시하며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은 자신을 보지도 못하고 자신들의 계획을 알지도 못하는 무능한 존재라고 비웃고 나아가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에 이른다. 이 상황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고통은 이런 악한 자들이 더욱 번성해가는 것을 보는 것이다. 마치 하나님은 숨어 계시고 정의를 나타내야 할 때 침묵하시는 무능하고 비겁한 하나님으로 여겨진다. 세상을 바르게 세워야 할 하나님의 손이 그 능력을 보이시기에 너무 짧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고난과 절망의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이들이다. 온몸이 쇠사슬로 묶여 있어도, 언젠가 다가올지 모를 죽음을 향해 아침을 깨우고 천상을 향한 거룩한 기쁨을 가슴에 품고 기뻐하라고 소리치던 바울의 고백이 지금 우리의 고백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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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19일 주보
♥평안과 기쁨 – 본격적인 휴가철을 앞두고 있지요? 분주한 삶에 쉼을 주는 귀한 시간이니 가족들과 마음껏 누리고 즐기시기를 바랍니다.

2026년 7월 12일 주보
♥여름행사 – 7월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음세대를 소중히 책임지는 교육부서 여름행사 일정을 참고하셔서 기도와 후원으로 함께 해주시기 바랍니다. 아시지요? 우리

2026년 7월 5일 주보
♥여름행사 – 7월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음세대를 소중히 책임지는 교육부서 여름행사 일정을 참고하셔서 기도와 후원으로 함께 해주시기 바랍니다. 아시지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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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에서 만나는 교회, 일상 속에서 만나는 은혜를 함께 나눠요. instagram에서 "#더온누리교회"를 태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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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안내]
우리가 붙들고 있는 믿음은
막연한 희망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을 이기신 하나님의 승리이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흔들리지 않는 소망이 됩니다.
세상은 우리의 수고를 잊을지라도
주님 안에서 드리는 삶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이번 주일,
고린도전서 15:50-58 말씀을 통해
부활의 소망으로 살아가는 성도의 삶과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무엇인지 함께 묵상합니다.
“부활 신앙,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죽음을 이기신 주님을 바라보며,
오늘도 믿음 안에 굳게 서서
주님의 일에 더욱 힘쓰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적용찬양 : 살아계신 주(주 하나님 독생자 예수)
이번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함께 만나요.
—
#더온누리교회
#주일예배
#예배안내
#고린도전서
#부활신앙
#결코헛되지않습니다
#부활의소망
#살아계신주
#예수그리스도
#주일말씀
#말씀묵상
#신앙생활
#SundayService
#FirstCorinthians
#ResurrectionHope
[주일 예배 안내]
우리가 붙들고 있는 믿음은
막연한 희망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을 이기신 하나님의 승리이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흔들리지 않는 소망이 됩니다.
세상은 우리의 수고를 잊을지라도
주님 안에서 드리는 삶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이번 주일,
고린도전서 15:50-58 말씀을 통해
부활의 소망으로 살아가는 성도의 삶과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무엇인지 함께 묵상합니다.
“부활 신앙,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죽음을 이기신 주님을 바라보며,
오늘도 믿음 안에 굳게 서서
주님의 일에 더욱 힘쓰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적용찬양 : 살아계신 주(주 하나님 독생자 예수)
이번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함께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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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더원공동체 수련회 START!
BUILD UP 🧱✨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우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집으로 세워가시는 주님.
에베소서 2장 20-22절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모퉁잇돌로 삼아
함께 지어져 가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금은 수련회의 첫 시작,
개회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께 마음을 올려드립니다. 🙏
말씀 : 김지훈 목사
이번 수련회가
한 사람 한 사람의 믿음을 세우고,
공동체를 더욱 견고하게 세워가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함께 기도해주세요! 🤍
더온누리교회 더원공동체
#더온누리교회 #더원공동체 #대학부 #수련회
#빌드업 에베소서 예배 공동체
전주 청년사역 🏕️✨
📌 유튜브 태그
더온누리교회, 더원공동체, 대학부, 수련회, 빌드업, 에베소서, 예배, 공동체, 전주교회, 청년사역
🏕️ 2026 더원공동체 수련회 START!
BUILD UP 🧱✨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우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집으로 세워가시는 주님.
에베소서 2장 20-22절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모퉁잇돌로 삼아
함께 지어져 가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금은 수련회의 첫 시작,
개회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께 마음을 올려드립니다. 🙏
말씀 : 김지훈 목사
이번 수련회가
한 사람 한 사람의 믿음을 세우고,
공동체를 더욱 견고하게 세워가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함께 기도해주세요! 🤍
더온누리교회 더원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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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안내]
우리는 종종
내가 누릴 수 있는 권리와 자유를 먼저 생각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때때로
내 권리를 내려놓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 길을 선택하게 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해
누릴 수 있었던 권리를 기꺼이 포기했습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일,
고린도전서 9:1-23 말씀을 통해
내 권리보다 복음을 앞세우는 삶이 무엇인지,
복음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제자의 길을 함께 묵상합니다.
“권리보다 복음이 먼저!”
내 만족보다 하나님의 뜻을,
내 자유보다 복음의 유익을 선택하는
믿음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적용찬양 : 주님 말씀하시면
이번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함께 만나요.
—
#더온누리교회
#주일예배
#예배안내
#고린도전서
#권리보다복음이먼저
#복음의능력
#제자의삶
#사도바울
#주님말씀하시면
#말씀묵상
#하나님나라
#신앙생활
#SundayService
#FirstCorinthians
#GospelFirst
[주일 예배 안내]
우리는 종종
내가 누릴 수 있는 권리와 자유를 먼저 생각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때때로
내 권리를 내려놓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 길을 선택하게 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해
누릴 수 있었던 권리를 기꺼이 포기했습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일,
고린도전서 9:1-23 말씀을 통해
내 권리보다 복음을 앞세우는 삶이 무엇인지,
복음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제자의 길을 함께 묵상합니다.
“권리보다 복음이 먼저!”
내 만족보다 하나님의 뜻을,
내 자유보다 복음의 유익을 선택하는
믿음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적용찬양 : 주님 말씀하시면
이번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함께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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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pelFir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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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안내]
신앙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앞에
나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말씀보다
경험을 앞세우고,
말씀보다
자신의 생각을 더 신뢰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기준은
언제나 말씀 위에 세워집니다.
이번 주일,
고린도전서 4:6-21 말씀을 통해
말씀의 경계를 넘어
스스로 높아지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겸손히 말씀 앞에 서는
참된 제자의 삶을 함께 묵상합니다.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내 생각보다 말씀을,
내 주장보다 복음을,
내 감정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신뢰하는 믿음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적용찬양 : 말씀 앞에서
이번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함께 만나요.
—
#더온누리교회
#주일예배
#예배안내
#고린도전서
#말씀밖으로넘어가지말라
#말씀앞에서
#말씀묵상
#성경적삶
#복음의능력
#제자도
#하나님의말씀
#신앙생활
#SundayService
#FirstCorinthians
#BibleStudy
[주일 예배 안내]
신앙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앞에
나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말씀보다
경험을 앞세우고,
말씀보다
자신의 생각을 더 신뢰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기준은
언제나 말씀 위에 세워집니다.
이번 주일,
고린도전서 4:6-21 말씀을 통해
말씀의 경계를 넘어
스스로 높아지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겸손히 말씀 앞에 서는
참된 제자의 삶을 함께 묵상합니다.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내 생각보다 말씀을,
내 주장보다 복음을,
내 감정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신뢰하는 믿음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적용찬양 : 말씀 앞에서
이번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함께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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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하합니다! 🏅
지난 5월 30일,
호남권 어와나 교회들이 함께 모여
어와나 올림픽을 개최했습니다 🙌
말씀 안에서 함께 배우고,
함께 뛰며,
믿음의 우정을 쌓아가는 특별한 시간 ✨
더온누리교회 어린이들도 멋진 열정과 도전으로 참여하여
🥇 TNT팀 금메달 1개
🥈 TNT팀 은메달 1개
🥉 TNT팀 동메달 1개
그리고
🥉 Sparks팀 동메달 2개를 획득했습니다!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
어와나는 어린이들이 말씀을 배우고 암송하며,
예수님을 닮아가는 제자훈련 공동체입니다 📖❤️
메달의 색보다 더 귀한 것은
하나님 안에서 성장하고 함께 기뻐하는 믿음의 걸음입니다.
열심히 준비하고 참여한 모든 어린이들과
섬겨주신 교사, 부모님들께 감사드립니다 🙏
앞으로도 말씀 안에서 더욱 자라가는
더온누리교회 어와나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
#더온누리교회 #어와나 #어와나올림픽 #전주교회
#전주 #TNT #Sparks #다음세대
#말씀암송 #제자훈련 🏅✨
🏅 축하합니다! 🏅
지난 5월 30일,
호남권 어와나 교회들이 함께 모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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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자랑스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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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안에서 성장하고 함께 기뻐하는 믿음의 걸음입니다.
열심히 준비하고 참여한 모든 어린이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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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말씀 안에서 더욱 자라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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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암송 #제자훈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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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안내]
삶이 여전히 애굽 같고,
현실이 여전히 광야 같아 보여도
하나님의 약속은 멈추지 않습니다.
창세기의 마지막 장에서
요셉은 자신의 성공이나 업적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를 붙들었습니다.
아직 출애굽은 시작되지 않았고,
약속의 땅도 보이지 않았지만
요셉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미래를 바라보았습니다.
이번 주일,
창세기 50:15-26 말씀을 통해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하나님의 언약을 더 신뢰하는 믿음이 무엇인지 함께 묵상합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돌보시리니”
세상에 익숙해지기보다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순례자의 믿음을 회복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적용찬양 : 여기에 모인 우리
이번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함께 만나요.
—
#더온누리교회
#주일예배
#예배안내
#창세기
#하나님이반드시돌보시리니
#요셉
#하나님의언약
#약속의땅
#하나님나라
#믿음의여정
#여기에모인우리
#말씀묵상
#신앙생활
#SundayService
#Genesis
#GodWillSurelyTakeCareOfYou
[주일 예배 안내]
삶이 여전히 애굽 같고,
현실이 여전히 광야 같아 보여도
하나님의 약속은 멈추지 않습니다.
창세기의 마지막 장에서
요셉은 자신의 성공이나 업적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를 붙들었습니다.
아직 출애굽은 시작되지 않았고,
약속의 땅도 보이지 않았지만
요셉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미래를 바라보았습니다.
이번 주일,
창세기 50:15-26 말씀을 통해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하나님의 언약을 더 신뢰하는 믿음이 무엇인지 함께 묵상합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돌보시리니”
세상에 익숙해지기보다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순례자의 믿음을 회복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적용찬양 : 여기에 모인 우리
이번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함께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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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빛키! 😆✨
우연이 아닌 은혜 🙌
아이들을 위한 축제
더온누리 홀리빛키가
많은 성도님들의 기도와 후원 가운데
은혜롭게 마무리되었습니다 🤍
웃음이 가득했고
행복이 넘쳤던 하루
마음껏 뛰어놀고
함께 웃으며
사랑을 나누었던 그날의 모습을 전합니다 ✨
아이들의 웃음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했던 시간 🫶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더온누리교회
#더온누리교회 #전주교회 #전주 #홀리빛키
#어린이축제 #다음세대 #은혜 #교회행사
#플리마켓 #키즈페스티벌 😆✨
홀리빛키! 😆✨
우연이 아닌 은혜 🙌
아이들을 위한 축제
더온누리 홀리빛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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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가득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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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껏 뛰어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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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했던 시간 🫶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더온누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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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안내]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기대하지 않았던 장소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풍요의 중심이 아니라,
구별된 자리.
눈에 띄지 않지만
하나님의 뜻이 머무는 곳.
이번 주일,
창세기 46:28~47:12 말씀을 통해
왜 하나님께서 야곱의 가정을
고센으로 이끄셨는지 함께 묵상합니다.
“왜 고센이어야 할까요?”
하나님의 계획은
언제나 가장 안전하고,
가장 은혜로운 자리로
우리를 이끄고 계십니다.
적용찬양 : 은혜
이번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함께 만나요.
—
#더온누리교회
#주일예배
#예배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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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고센땅
#하나님의인도하심
#은혜
#주일말씀
#신앙묵상
#Jesus
#SundayService
#Genesis
#Grace
#FaithJourney
[주일 예배 안내]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기대하지 않았던 장소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풍요의 중심이 아니라,
구별된 자리.
눈에 띄지 않지만
하나님의 뜻이 머무는 곳.
이번 주일,
창세기 46:28~47:12 말씀을 통해
왜 하나님께서 야곱의 가정을
고센으로 이끄셨는지 함께 묵상합니다.
“왜 고센이어야 할까요?”
하나님의 계획은
언제나 가장 안전하고,
가장 은혜로운 자리로
우리를 이끄고 계십니다.
적용찬양 : 은혜
이번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함께 만나요.
—
#더온누리교회
#주일예배
#예배안내
#말씀나눔
#창세기
#고센땅
#하나님의인도하심
#은혜
#주일말씀
#신앙묵상
#Jesus
#SundayService
#Genesis
#Grace
#FaithJourney
...
[2026 더 깊은 선교학교]
복의 통로로 살아가는 삶 🙏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듯
오늘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세상을 향해
복을 흘려보내는 사람으로 ✨
2026 더깊은 선교학교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배우고
선교의 비전을 함께 품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
📖 2026 더깊은 선교학교
🗓 06.20 - 07.25 매주 토요일 (6주간)
📍 굿윌센터 2F
🎤 이효재 목사
🎤 주누가 선교사
🎤 김종홍 목사
✈ 단기선교
8월 1일(토) - 8월 4일(화), 일본
🎓 수료식
8월 23일(주일) 2부 예배
—
하나님이 찾으시는
복의 통로로 함께 세워지길 바랍니다 🙌
더온누리교회 THE MISSION
#더온누리교회 #전주교회 #전주 #더깊은선교학교
#선교 #더미션 #복의통로 #단기선교
#일본선교 #mission 🙏✨
[2026 더 깊은 선교학교]
복의 통로로 살아가는 삶 🙏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듯
오늘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세상을 향해
복을 흘려보내는 사람으로 ✨
2026 더깊은 선교학교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배우고
선교의 비전을 함께 품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
📖 2026 더깊은 선교학교
🗓 06.20 - 07.25 매주 토요일 (6주간)
📍 굿윌센터 2F
🎤 이효재 목사
🎤 주누가 선교사
🎤 김종홍 목사
✈ 단기선교
8월 1일(토) - 8월 4일(화), 일본
🎓 수료식
8월 23일(주일) 2부 예배
—
하나님이 찾으시는
복의 통로로 함께 세워지길 바랍니다 🙌
더온누리교회 THE MISSION
#더온누리교회 #전주교회 #전주 #더깊은선교학교
#선교 #더미션 #복의통로 #단기선교
#일본선교 #mission 🙏✨
...
진정성,
목자의 힘 🙏
사람을 세우는 힘은
화려함이 아니라
진심에서 시작됩니다
함께 웃고
함께 기도하며
다시 붙드는
목장의 본질
주님이 맡기신 영혼을 위해
오늘도 걸어갑니다 🤍
—
더온누리교회
2026 목자수련회
“진정성, 목자의 힘, 목장의 본질”
#더온누리교회 #전주교회 #전주 #목자수련회
#목장 #목자의삶 #공동체 #진정성
#리더십 #기도 🙏✨
진정성,
목자의 힘 🙏
사람을 세우는 힘은
화려함이 아니라
진심에서 시작됩니다
함께 웃고
함께 기도하며
다시 붙드는
목장의 본질
주님이 맡기신 영혼을 위해
오늘도 걸어갑니다 🤍
—
더온누리교회
2026 목자수련회
“진정성, 목자의 힘, 목장의 본질”
#더온누리교회 #전주교회 #전주 #목자수련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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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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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안내]
낮아진 자리,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억울함과 외로움,
그리고 반복되는 현실 속에서도
믿음은 시선을 다시 하늘로 향하게 합니다.
이번 주일,
창세기 39:1-10 말씀을 통해
바닥 같은 인생의 순간에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묵상합니다.
“바닥에서 하늘을 보다”
무너진 자리에서도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다시 길을 여십니다.
이번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함께 만나요.
—
#더온누리교회
#주일예배
#예배안내
#말씀나눔
#창세기
#요셉의믿음
#하나님을바라보다
#믿음의시선
#주일말씀
#신앙묵상
#Jesus
#SundayService
#Genesis
#FaithJourney
#TrustGod
[주일 예배 안내]
낮아진 자리,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억울함과 외로움,
그리고 반복되는 현실 속에서도
믿음은 시선을 다시 하늘로 향하게 합니다.
이번 주일,
창세기 39:1-10 말씀을 통해
바닥 같은 인생의 순간에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묵상합니다.
“바닥에서 하늘을 보다”
무너진 자리에서도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다시 길을 여십니다.
이번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함께 만나요.
—
#더온누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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