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 ㅣ 묵상을 함께 나눕니다
다윗은 악인들의 언어를 통한 폭행에서 경건한 자들을 구원해주시기를 간구하며, 흠 없고 변하지 않는 하나님 말씀과 약속을 확신한다. 다윗은 사람들 중에 의인이 점점 없어지고 악인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음을 한탄하면서, 하나님께 특히 악인들의 입으로 행하는 죄를 심판하시고 악인의 악행으로 탄식하는 경건한 무리들을 구원해주시기를 탄원한다. 또한 죄짓는 말과 고통의 신음소리와 대조하여 고결하고 정제된 하나님 말씀과 그의 약속을 되새기며 찬양한다.
본 시편은 전반적으로 다윗의 절박한 부르짖음이다.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사라지고 있음을(1절), 반면 비열함이 인생중에 높임을 받고, 악인들은 곳곳에서 날뛰고 있음을 호소한다(8절). 또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경건한” 성도가 사라지고 있다. 더하여 “확고한” 믿음의 가치를 가지고 살아내는 삶이 사라지고 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인가?
1. 거짓과 아첨, 두 마음(2-4절)
다윗은 사람들이 서로 거짓말을 하고,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한다고(2절) 증거한다. 사람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혀는 우리의 힘, 입술은 우리의 재산(보습),누가 우리를 이기겠는가!(4절)”이라고 말한다. 철저한 “자기확신”이다. “거짓말로 충분히 살 수 있어… 아첨하며 속여서 얼마든지 살 수 있지…”라며 서슴치 않고 일말의 주저함 없이 거짓과 아첨의 말을 쏟아낸다.
‘이웃에게(서로 서로_2절)’ 거짓과 아첨을 쏟아낸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혀와 입술의 능력을 자신한다. 자신들의 “두 마음”에서 나오는 거짓과 아첨의 힘을 누가 제어할 수 있겠냐며 “거짓말과 아첨”의 능력으로 살아가려 한다.
다윗의 탄식은 하나님의 백성답지 못한 이런 “거짓과 어첨”이 이미 난무하여 “서로에게” 악영향을 끼치며, 점점 “경건하고 충실한” 자들이 사라지고 있음을 탄식하는 것이다.
2. 하지만 하나님은(5-7절)
그들의 거짓과 아첨으로 “눌림과 탄식”하는 가련하고 궁핌한 자들을 위해 “일어나신다!” 그리고 “안전한 지대”로 옮기신다(5절). 그리고 “지켜시고… 보존하신다(7절).”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은 순결하기가 도가니에게 일곱 번 걸러 낸 ‘순은’같기 때문이다. 즉 악인들의 난무하는 가치없는 거짓말과 겉만 번드르한 아첨의 말, 두 마음을 품은 자들과 달리 하나님의 말씀이 완전하게 순결함을 고백하는 것이다. 일봅 번이나 정련한 은처럼 흠 없고 진실한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그가 베푸시는 구원을 확신하는 것이다.
거짓과 아첨, 두 마음의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그의 순전한 말씀앞에서의 삶을 비웃고 멸시하더라도, 하나님의 백성은 그분의 완전하고 순결한 말씀의 약속을 신뢰할 때, “일어나.. 안전 지대에 두시고…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거짓과 아첨, 두 마음의 악인들 가운데서)… 보존(구원) 하신다! 영원토록!…”
나는?
-악인들은 두 마음으로 아첨과 거짓을 말한다. 하지만 다윗은 오직 한 마음으로 여호와께 도움을 구한다. 이에 하나님은 도가니에서 일곱 번 단련한 은 같이 말씀에 기대어 사는 한마음을 가진 자들에게 영원히 보존하는 은혜를 베푸신다.
-다윗은 거짓과 아첨을 말하는 자들로 인해 경건한 자들이 점점 사라져가는 현실 앞에서 주님께 도와달라고 호소한다(1~4절).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고 그 말씀을 붙들지 않으면 악인들의 불순한 말과 감언이설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내게 가장 영향을 끼치는 말은 누구의 말일까? 그 악한 유혹의 말에 내 귀와 마음을 여미어야 하겠다. 또한 내 입에서는 어떤 말들이 나올까? 선한 말이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선한 입술이기를 늘 추구하리라.
-하나님은 고난받는 의인들의 신음을 저버리지 않으신다. 안전한 피난처로 인도하신다. 고통 가운데서도 한결같이 하나님께 기댄 자들에게 견고한 성을 세우시고 문을 열어 안전지대로 초청하신다(5절). 힘들고 지치더라도 하나님께서 안전지대를 준비하신다면 지금 당하는 고통의 무게를 충분히 견딜 수 있다. 반드시 안전한 처소로 인도하실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오늘도 고난의 현장에서 끝까지 인내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불순물이 섞여 있지 않은 순수한 은과 같다(6절). 악의 입술은 조급하게 말을 뱉음으로 거짓과 아첨을 내지만(2절), 말씀은 찌꺼기를 일곱 번 걸러낸 후에 토해내는 정제된 것이기에 순결한 삶으로 이글어간다. 조급하게 하루를 시작하기보다 순결한 말씀 앞에서 삶의 불순물을 가려내고 자신을 먼저 정제해야 한다.
-의인이 고난받는 가운데 비열한 자들이 창궐한다(8절). 의인은 말씀의 도가니에 들어가 일곱 번 걸러내는 인내의 시간을 거치는 동안 악한 자들은 곳곳에서 더러운 일들을 성취하게 위해서 거리를 거침없이 활개치고 다닌다. 위리가 사는 세상은 진리의 말씀이 조금만 흐려져도 금방 악으로 뒤덮인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결코 악에 제압당하지 않는 견고한 진리의 말씀지기로 세워져야 할 것이다.
-말은 그냥 말이 아니다. 그것은 창조의 무기다. 대적은 거짓의 말, 아첨의 말, 하나님의 역사 개입을 부정하는 말,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과 돌봄의 성품을 왜곡하는 말로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떼어놓으려 한다. 하나님의 백성 자격이 없는 것으로 만든다. 다수가 그 말에 동조하고 경건하고 충실한 삶에서 떠나간다. 그것이 세상이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정한 기준이고 권능이시다. 세상은 그분의 말을 무력화시키지만, 하나님은 세상의 말의 힘에 의해 억압받는 이들에게 구원을 약속하시고, 그 말씀대로 실현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말씀만이 믿을 만하고, 또 모두 무릎을 그 앞에 꿇어야 한다는 것을 증명하실 것이다. 그 말은 일곱 번 단련한 은처럼 순전하고 진실하며, 반드시 역사가 되고 사건이 되게 하실 만큼 능력이 있다. 악인은 끊으시겠지만, 그를 의지하는 자는 영원히 보존하실 수 있다.
-묵상하는 중에 자신의 목적을 위해 너무나 쉽게 “거짓말”을 만들어 내어 사람들을 억누르고, 거짓 세력을 만드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들의 거짓으로 인해 사회가 혼란해지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주저함 없다. 악인들이다.
-또 아첨하는 말로 번지르하고 간사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아 고통을 주는 사람들도 악인들임에 틀림없다. 비록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지만 “말”로 이웃의 삶을 어지럽히고 파괴하는 사람들이다. 거짓이 진실로 포장되어 정의와 공의를 묵살시켜 버리는 행태들이 ‘난무”하고 있다. 참으로 답답한 세상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모습이 다윗의 시대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난무”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하다. 더 놀라운 것은 이것을 ‘길이 참고’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인내다. 이것이 인간 본연의 모습 인것을 아시기에 그 가운데서 “끈질기게” 경건한 자”, “충실한 자”를 기필코 “보존(구원)”하시는 하나님이 대단하시다.
*한편으로… 이런 거짓말과 아첨, 두 마음에서 나오는 말들이 사회에서만 난무할까? 교회 공동체는 어떨까? 사회의 거짓 뉴스에 선동되어 정의과 공의를 지키고 단단히 중심을 지켜야 할 교회공동체가 오히려 선동의 자리에 앞장서는 모습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한편에서는 진리 편에서 투쟁한다고 하고 한편에서는 이런 모습이 안타까워 다윗처럼 하나님께 울부짖는데…. 아… 고통스럽고 안타깝다!
*거짓과 번지르한 아첨(속임)의 말은 분명한 유통기한이 있다. 이 기한이 다 차면 이 거짓에 기반을 두었던 삶은 반드시 무너진다. 스스로 자기들의 말에 확신을 갖고 자신들의 거짓과 아첨의 말로 충분히 이긴다며 떠드는 그들은 처참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오늘 나의 삶이 거짓말과 아첨, 두 마음을 철저하게 경계하며 살아내야 할 이유다!
*말은 그냥 말이 아니다. 그것은 창조의 도구다. 하나님이 역사 개입을 부정하는 말,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과 돌봄의 성품을 왜곡하는 말로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떼어놓으려 한다. 하나님의 백성 자격이 없는 것으로 만든다. 다수가 그 말에 동조하고 경건하고 충실한 삶에서 떠나간다. 그것이 세상이다.
*순결한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하게 신뢰하는 믿음으로 거짓말과의 싸움을 이겨내야 한다. 스스로의 힘이 아니라 순전하기 그지 없는 말씀으로 힘으로 말이다. 그리스도인은 순결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내는 존재다. 자기를 위해 자기 입술의 거짓과 아첨, 두 마음을 품고 얼마든지 살아낼 수 있다는 세상의 소리에 흔들려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순전한 백성들을 찾아 “일어나시고.. 안전 지대로 두시고…지키시며…거짓의 세상으로 부터… 보존(구원)하신다!” 하나님의 일어나심이 나를 위한 일어섬이기를….하나님의 지켜 주심이 나를 위한 지켜주심이기를…. 간절히 확신한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정한 기준이고 권능이시다. 세상은 그분의 말을 무려화시키지만, 하나님은 세상의 말의 힘에 의해 억압받는 이들에게 구원을 약속하시고, 그 말씀대로 실현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말씀만이 믿을 만하고, 또 모두 무릎을 그 앞에 꿇어야 한다는 것을 증명하실 것이다. 그 말은 일곱 번 단련한 은처럼 순전하고 진실하며, 반드시 역사가 되고 사건이 되게 하실 만큼 능력이 있다. 악인은 끊으시겠지만, 그를 의지하는 자는 영원히 보존하실 수 있다.
매일묵상 ㅣ 묵상을 함께 나눕니다
위기다! 이미 일어나서 여호와께 피했지만(1절) 보이지 않는 위협이 여전하다(2절). 그런데 어떤 위기, 위협일까? “터”가 무너지려는 위기와 위협이다. 일상의 삶을 지탱하게 하는 삶의 도리나 체계, 세계관 이런 것일 것이다. 즉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사느냐의 “터”이다. “마음이 바른(2절)” 것이다. 바른 마음을 무너뜨리려고 ‘말’로 현혹하여 이미 여호와께 피한 시인에게 “새처럼 ‘너의 산에서’ 피하라고 하고 어두운 곳에서(보이지 않는 곳에서) 활을 쏘려한다. “악인이 활을 당기고, 시위에 화살을 메워서 마음이 바른 사람을 어두운 곳에서 쏘려 하지 않느냐?(새번역_2절)”
마음이 바른 사람에게 닥친 위기가 무엇일까?
1. 판단의 위기(1절)
어떤 위기인지 본문은 정확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그 내용보다 이미 위기에 반응하여 “여호와께 피하였다”고 노래한다. 문제는 이렇게 여호와께 피한 시인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고 부추긴다. 이미 위기가 일어났고 여호와께 피하였는데, 그것이 아니라고 한다. 다른 곳으로 피하라고 한다. 그것이 더 맞단다!
판단의 위기이다. 자신은 정확하게 판단했다고 했지만, 주위에서는 그게 아니라고 한다! 이것이 진짜 위기다! 어떤 상황에 대해 내린 믿음의 결정(여호와께 피함)이 사람들에게 조롱 당한 것이다. 이 상황에서 그게 뭐야? 이게 최선이니? 아니다! 빨리 이렇게 해야해!, 답답하다! 저렇게 했어야지…. 이런 식인 것이다.
내가 내린 믿음의 결정에 대해 가족들이 싸잡아 비난하고, 지인들이 답답하다 하고, 동역자들이 한심해 한다. 이 때문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나의 “터”가 무너지려 한다… 이런 당혹스러운 상황이라니…
2. 여전한 위협(2-3절)
그런데 어찌되었든 그런 상태에서 상황이 정리되면 좋겠지만, 위협은 여전하다. 문제는 보이지 않는 위협인데 확실하다는 것이다. 여호와께 피한 마음을 흔드는 위기, 여기에 더욱 그 바른 마음을 무너뜨리려고 쏘아대는 악인의 화살들…보이는 곳에서 쏘는 화살이라면 대비라도 하겠지만, “어두운 곳(보이지 않는 곳)”에서 쏘려고 준비하는 것이라 심각해도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다.
은밀하게 “바른 마음”을 무너뜨리려고 한다. 이만하면 되었다라고 안심할 때 “바른 마음”을 무너뜨리려 한다. 이미 ‘여호와’께 피해 있다고 자신했는데, 속임수를 써서 “바른 마음”을 무너뜨리려 한다. “여호와께 피했다”는 신앙고백이 중요하기도 하나, 피해있어도 여전한 위협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에 대비를 해야 한다. 베드로가 일러준 부탁이 새삼 떠오른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십시오. 여러분의 원수 악마가(훼방자가), 우는 사자 같이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닙니다.(새번역_벧전 5:8)”
3. 하나님은…(4-7절)
마음이 바른 자가 이런 위기와 여전한 위협속에 있을 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까? “…주님은 그의 눈으로 사람을 살피시고 눈동자로 꿰뚫어 보신다(새번역_4절).” “주님은 의인을 가려 내시고, 악인과 폭력배를 진심으로 미워하신다(새번역_5절)” “불과 유황을 악인들 위에 비오듯이 쏟으시며, 태우는 바람을 그들 잔의 몫으로 안겨 주신다(새번역_6절)” “주님은 의로우셔서, 정의로운 일을 사랑하는 분이시니, 정직한 사람은 그의 얼굴을 뵙게 될 것이다(새번역_7절)”
위기와 위협 속에 있는 의인과 악인을 “보신다” 그리고 “가려 내신다” 위기와 위협을 조장한 악인을 “미워하시고”, “불, 유황, 태우는 바람을 그들의 몫으로” 안겨 주신다. 의와 정의를 사랑하시는 분이기에 “정직한(바른 마음의) 사람”에게 그의 얼굴을 보이신다(구원하신다).
“보시고, 가려내셔서, 심판하시며, 구원하신다.” 여전한 위기와 위협속에서 이미 “여호와께 피한” 바른 마음을 끝까지 지키는 그에게 얼굴을 보이신다(구원하신다). “주님께서 당신들에게 복을 주시고, 당신들을 지켜 주시며, 주님께서 당신들을 밝은 얼굴로 대하시고, 당신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님께서 당신들을 고이 보시어서, 당신들에게 평화를 주시기를 빕니다(새번역_민 6:24-26)”.
이렇게 약속하신대로다! 위기와 위협 속에서도 “바른 마음(정직한)”을 지키는 그에게 약속하신대로 지키시고 베푸신다!
나는?
-의인은 악인들의 화살이 날아오며 터가 무너지는 환난과 고통 앞에서 하나님께 피했다. 이 모든 상황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은 의인을 돌봐주시지만, 악인에게는 심판으로 되갚는다. 악인들의 공격 앞에서 믿음을 가진 자와 믿음이 없는 자가 갈라진다. 시인의 친구들은 시인에게 ‘산으로 도망하라(외국으로 도망하라)’고 충고했지만, 시인은 이를 거부하며 하나님께 피하겠다고 말한다(1~2절). 하나님께 피하는 것은 현실을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돌파하는 것이다. 지금 나를 위협하며 날아오는 화살들은 무엇인가? 또 어디로 피하는가?
-세상이 우리는 작정하고 쫓아오면 아무 데도 피할 수도 없다. 가정, 직장, 심지어 교회에서마저 우리는 숱한 관계들에서 쫓길 수 있다. 사방 천지에서 우리는 쏘려고 화살을 겨누는 이들 투성이다. 하나님이 안 계신다면 그분께 피할 수 없다면, 막다른 골목인 인생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렇기에 우리가 그 하나님의 음성이 되어주고 그 품이 되어주고 들어줄 귀가 되어준다면 많은 이들이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악인의 악행뿐 아니라 의인의 무죄함도 감찰하신다. 땅(세상)에서 답을 찾기 위해 타인을 해치는 악인은 불의한 소득을 모두 잃고, 더 ‘공허’해진다. 하지만, 땅의 답을 뿌리치고 내가 머문 바로 이 자리를 성전 삼고 하나님께 내 삶을 맡기면 ‘채움’을 얻는다(4~5절). 오늘도 삶의 답을 채워주시기 위해 온종일 눈길을 떼시지 않고 살피시는 주님께 나의 시선을 고정하리라.
-하나님의 눈은 각 사람을 살펴보고 계신다. 우리의 행위와 말이 의인에게 속하는지 감찰하신다. 우리가 어제 의인에게 속하는 행동과 일을 했다 해서 오늘도 자동적으로 의인의 무리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의인에게는 그분의 감찰하시는 눈이 부담스러운 감시 카메라가 아니라 억울함을 풀어주는 증거물이 된다.
-땅에서 거짓과 시기로 자기 잔을 채운 사람은 심판 때에 그대로 그 잔을 마시게 된다. 이 따으이 욕심을 좇아 죄악과 폭력을 일삼는 사람들은 땅이 무너질 때 함께 무너지는 심판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하늘에 소망을 둔 사람은 하나님의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오늘’이라는 삶의 잔에 ‘하늘 소망’을 채울지 아니면 ‘땅의 욕심’을 채울지 결정해야 한다.
-바른 마음, 정직함… 이 시대에 던지는 귀한 화두임에 틀림없다.
-나 하나쯤이야 괜찮겠지라는 비뚤어진 마음과 행동으로 인해 온 사회가 고통의 격랑 속으로 다시 들어섰다! 이런 위기의 때 일수록 “바른 마음” “정직한 행동”이 나와 사회를 살린다.
-위기 속에서 이미 여호와께 피했으나 이를 조롱하는 시대다. 그 방법은 틀렸어! 이렇게 해야지! 라며 거들먹 거린다. 하지만 하나님께 피하여 그 안에 있는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이들의 아우성과 맞바꾸지 않겠다! 주님의 말씀의 가치가 “내 안에서 스스로 흔들리지 않게” 하겠다!
-악인들이 화살을 정조준하여 보이지 않는 곳에서 쏘려 한다. 그러니 퍼덕이는 새처럼 빨리 산 속으로 도망치라한다. 예상치도 못한 불의한 일을 당하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의지하는 신앙”을 접고 인간적인 안목의 안전한 곳(산)으로 피하라 세상은 말한다! 하지만 이런 주위의 절박한 충고를 마다하고 여호와께 피했다고 노래한다. 아…. 이 얼마나 단호한 신앙인가!
-애매하게 얽히는 상황들이 일어나 마음이 어려울 때 나의 발과 시선이 “하나님”께로 향하기를 결심한다. 인간적인 안전의 근거와 방법, 의지할 만한 어떤 것의 “산”으로 피하지 않으리라!
-“보시고, 가려내셔서, 심판하시며, 구원하신다.” 나의 마음을 세밀하게 보신다(감찰하신다). 믿음의 결정속에 담긴 수많은 주저함, 의심들, 의견들, 상황들을 이겨내고 내린 결정을 보신다. 여호와의 눈이 이렇게 나를 지켜 보신다. 그 얼굴이 나를 비추고 계신다. “새처럼 산으로” 도망치는 것보다 나를 지켜보시는 하나님의 얼굴 앞에 더 “반듯하게(바른 마음)” 서 있어야 겠다.
-정직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된다(7절). 고통과 불법이 만연한 광야를 정직으로 살아내는 순종의 사람들은 날마다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여 보는 거룩한 교제에 참여하게 된다. 모든 고통과 수치의 눈물을 손수 닦아 주시고 날마다 말씀으로 새롭게 어루만져주시는 교제의 자리인 말씀 묵상을 거르지 않을 것을 결심해 본다. 또한 하나님의 얼굴을 뵐 때 부끄럽지 않도록 의롭고 정직하게 삶을 채워 나가리라.
-하나님은 그의 성품과 말과 행동에 있어 일관된 의로움을 나타내시는 의로운 재판장이시다. 하나님 앞에서 그의 판결을 피할 자가 없음을 기억할 때 나의 말과 행동이 매 순간 정직하고 의로운지 점검하게 된다.
*판단과 결정을 흐리게 하는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여호와를 향하는 “바른 마음(정직한 행동)”을 지켜야지. 오늘도 이런 “바른 마음”, 위기와 위협속에서 이미 여호와 피한 마음, 이미 여호와를 의지하는 마음을 굳게 지켜야 하리라. 오늘도 이런 “바른 마음”, 위기와 위협속에서 나에게 얼굴을 향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리라. 바른 마음과 그의 얼굴을 바라봄이 오늘의 걸음이리라. 위기와 위협이 있으나 소용없는 위기와 위협일테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나를 지키실 터이니 말이다.
매일묵상 ㅣ 묵상을 함께 나눕니다
본 시편은 제목(부제)가 없다. 전통적으로 9편과 연결시켜 알파벳 시(또는 이합체 시)로 읽히지만, 현재는 독립적인 시로 읽기도 한다. 히브리어 자음 순서도 불완전한 형태이기도 하다. 이 시편은 박해와 시련과 위기에 처한 사람이 탄식하며 주님께 도움을 구하는 탄식시로 분류된다. 의로우신 하나님의 통치가 실행되는 세상에서 왜, 악이 성행하고 의가 핍박당하는지 답답한 다윗의 마음이 솔직하게 녹아 있다. 또, 다윗은 하나님께 악인의 행태를 묘사하고 고발한다. 특히 연약한 자들에게 고통을 가하는 악인들의 악독함을 은유와 직유로 표현한다. 악인들은 야수처럼 약한 자를 포획하려고 노려보며,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자들이다. 때문에 다윗은 하나님이 일어나서 그 악인들을 벌해주시고, 약자의 권리가 보호받기를 간구한다.
1. 여호와께 질문하다(1절)
다윗은 환난을 겪고 있다. 견딜 수 없는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따져 묻는다. ‘어찌하여 여호와여 멀리 서계십니까, 숨으십니까?” 다윗은 자기의 불행 그 자체보다 하나님의 숨으심, 곧 하나님의 부재가 더 큰 고통임을 토로한다. 무참한 고통에서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움을 확신하건만 그 분이 무심하게 숨어계신 것 같다.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진다. 이 때문에 ‘어찌하여’라는 다윗의 질문은 여호와를 향한 비난의 언어처럼 들릴 수 있다.
2. 악인들의 포악함을 고발하다(2~11절)
다윗은 ‘환난의 때’ 왜 여호와가 숨어 계시는지 따져 묻고서(1절), 환난의 구체적 이유를 밝히듯 악인들의 행동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악한 자의 교만 때문에 가련한 자가 심하게 압박 당한다. 이 때문에 악인들이 자기 꾀에 빠져 엎어지기를 요청한다(2절). 악인들의 특성은 교만이다. 악인의 거드름피우는 거만함은 ‘가련한 자(가난한 자)’의 자존감을 무참하게 짓밟을 수 있다. 이들은 사회적 약자로서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기 쉽다. 다윗은 이렇게 악인들이 자기 이익을 위한 음모에 스스로 걸려 넘어지길 요청한다.
악인에 대한 묘사는 계속되는데, 얼굴을 드높이 쳐든 악인은 마음의 욕심을 자랑하고 탐욕을 부리고, 여호와를 배반하고 멸시한다(3절). ‘마음의 욕심’은 인간 내면에 숨겨진 탐욕과 동의어다. 이뿐만이 아니다. 악인은 교만한 얼굴을 하고서 하나님의 얼굴을 찾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으며, 그의 모든 사상에는 ‘하나님이 없다’고 한다(4절). 그들은 하나님이 세상과 인간사에 관심도 없고, 돌봄도 없고, 어떤 개입도 없다고 생각한다. 시인은, 악인의 길은 언제나 번성하고 주님의 심판은 높기만 해서 악인에게 미치지 못하여 악인들은 자기들의 대적들을 언제나 비웃고 경멸한다(6절)고 탄식한다. 다윗이 보기에 악인의 말과 행위는 환난과 시련의 원천임을 밝힌다(6下~7절).
다윗은 은유와 직유를 통해 악인의 본성을 계속 열거한다(8~9절). 그들은 무죄한 자를 죽이고, 희생자들을 비밀리에 지켜보며, 사자처럼 은밀한 곳에 숨어 덮칠 준비를 하며 기다리다가 ‘가련한 자’를 사로잡는다(9절). 악인들은 가련한 자를 자신의 포획물로 삼는다. 그러므로 가련한 자들은 악인들의 포악스러움 앞에서 넘어질 수밖에 없다(10절). 더구나 악인들은 마음속으로 말하기를,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의 얼굴을 가리셔서 영원히 보지 않으실 것이라고 한다(11절).
악인들은 하나님이 의로운 통치를 멈추셨고, 세상에 관심도 없으시며, 원통하고 억울한 사람들을 더 이상 돌보지 않으신다고 떠들어댄다. 그렇다면 악인들의 이런 확신처럼 하나님은 어떤 활동도 안 하고 계신 것인가? 다윗의 마음은 곤혹스럽고 고통스럽기만 하다.
3. 하나님의 보복을 구하는 기도(12~14절)
다윗은 더 이상 악인의 활동을 쳐다보고만 있을 수 없다. 더 이상 침통해하며 우울하게 있을 수 없다. 다윗은 여호와를 부르며 재촉한다. ‘여호와여 일어나십시오. 하나님이여 당신의 손을 드십시오. 가난한 자들을 잊지 마십시오(12절).’ 다윗은 하나님 손의 힘과 능력이 발휘되기를 바라고, 하나님이 용사처럼 일어나셔서 가난으로 고통 받는 자들을 위해 악인을 처벌하시기를 강력하게 촉구한다.
다윗은 하나님께 악인의 오만함을 고발하면서 용감하고 대담하게 질문한다. ‘어찌하여 악인이 하나님을 경멸하고, 마음속으로 “하나님은 벌을 주지 않는다”하고 말하게 내버려 두십니까?(13절_새번역).’ 다윗은 악인의 오만방자한 말에 반박하고 싶다. 그리고 여전히 하나님을 믿기에 그에게 아뢰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고통과 번민을 보시고, 그것을 주님의 손으로 갚으실 것이며, 불행한 자가 주를 의지하며, 이미 고아를 도우셨음(14절)”을 증언한다.
다윗은 가장 도움을 먼저 받아야 할 고아와 불행한 사람 모두 하나님의 돌보심 안에서 회복될 것을 확신한다.
4. 여호와의 통치와 심판을 확신(15~18절)
다윗은 가련한 자, 불행한 자, 가난한 자, 고아를 돌보시는 하나님을 믿기에 악인의 심판을 요청한다. 매우 담대하고 단호하게 사람이 찾을 수 없는 악인들의 악을 하나님이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하다. 악인들은 ‘하나님은 영원히 보지 않으신다(11절)’고 말하지만, 다윗의 생각은 다르다. 그 어떤 악도 하나님에게서 숨겨질 수 없다.
그래서 악을 끝까지 찾아 처벌하시고 끝장내시기를 바라고 믿는 다윗의 언어는 하나님의 왕권을 노래하는 찬양으로 바뀐다(16~18절). 다윗은 여호와는 영원무궁하도록 왕이시고 이방 나라들이 주의 땅에서 멸망했다고 선포한다(16절). 다윗은 옛적 조상들이 출애굽할 때 애굽의 악하고 강한 군대와 나라를 멸망시키시고 심판하신 하나님을 기억한 것이다. 그 기억 속의 모세처럼 그가 홍해를 건넌 후 구원에 감격하여 ‘여호와가 영원무궁토록 다스리실 것이다(출 15:18)’라고 노래한 것처럼, 이 땅의 모든 악한 나라와 통치자들을 완전히 멸하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다.
다윗은 마지막으로 자기의 지고한 믿음을 재천명한다. 여호와의 왕권을 이스라엘 땅에만 국한하지 않고 온 세상 끝까지 박해받는 자들을 위로하시는 왕권으로 소망하고 확신한다. 다윗은 가난한 자들이 악인들의 횡포에 고통당하지 않도록 일하실 하나님을 믿고 고백한다(17절). 또한 고아들과 압제 당하는 자를 위해 여호와가 심판하시고, 속물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강자들이 더는 위협하지 못하게 하실 것을 믿는다(18절). 다윗은 이러한 하나님의 공정한 재판을 통해 사회적 약자들을 변호해주시고, 그들의 권리를 찾아주실 희망과 기대를 끝까지 붙든다. ‘하나님이 잊으셨다(11절)’고 말하는 악인의 조롱에 휘말리지 않은 것이다.
이와같이 이 시편은 일상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왕권을 믿는 다윗의 신학적인 입장이 오롯이 반영되었다. 악이 당장에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의로운 재판장이며 왕이신 하나님의 신성한 원수 갚음의 날은 마침내 도래할 것이다.
나는?
-다윗은 악인으로 인한 환난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소망했으나, 악인은 번영 속에서 하나님을 멸시하여 거짓과 포악을 일삼았다(1, 6절). 우리가 처한 환경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바른 태도다. 나는 현재 처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향해 어떤 태도를 유지하는지 늘 돌아보고 분별해야 하겠다. 다윗처럼 상황보다 상황을 이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는가?
-인간의 악의 본질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을 신뢰하고 의존하며 자기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즉 자신이 자기에게 법이 되는 자율적인 사람은 하나님을 의존하거나 다른 사람을 돌아보거나 배려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이렇듯 악의 본질이 표현되는 정점에 자기중심성의 교만이 있다.
-하나님 없는, 하나님이 배제된 신앙은 악하다. 악인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하나님 무서운 줄 모르고 악을 행한다. 그들은 교만하고 탐욕스러우며, 자기 욕심을 채우느라 힘없고 가련한 사람들을 짓밝고 괴롭히며 온갖 악한 말과 행동을 일삼는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안전하며 아무 문제 없을 것라고 큰소리친다(2~11절). 나는 생각에서부터 말과 행동에 이르기까지 사적인 일에서부터 공적인 일에 이르기까지 범사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며(잠 3:6) 생활하고 있을까?
-악인과 대조하여 가련한(가난한) 자(1, 9, 12절), 무죄한 자(8절), 외로운 자(14절), 겸손한 자(17절), 압제 당하는 자(18절)가 나온다. 악인의 개념과 대조적으로 의인은 그들의 삶과 미래를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한 자들이다. 자기 힘과 자기 방식으로 악에 대항하지 않고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아 하나님께 피하며, 하나님이 친히 대항하시고 심판하시도록 맡기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분이다(12~15절). 다윗의 탄식처럼 때로는 멀리 숨어 계신 것 같기도 하고, 악인의 조롱처럼 우리를 잊으셨거나 안 계신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불꽃같은 눈으로 모든 환난과 원한을 감찰하고 계신다. 또 때가 되면 의로운 손을 드셔서 악인들의 팔을 꺾고 그들의 악행을 갚아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갚아주심을 확신할 때 우리는 악인들의 저주와 거짓과 포악을 이겨낼 수 있다.
-다윗의 소망은 하나님의 영원성에 있다. 악인은 자기의 꾀에 스스로 넘어질 것이다. 하나님은 없다고 말하는 그들의 교만함과 대대로 환난을 당하지 않으리라던 헛된 안정감은 영원하신 하나님, 모든 것을 아시고 감찰하시는 하나님, 강한 자가 아니라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시는 하나님께 멸시를 당할 것이다.
-여호와는 고아와 겸손한 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는 왕이시다(16~18절). 하나님은 교만한 압제자들을 심판하시고 압제당하는 자들을 변호하시며 그들의 피난처와 그늘이 되어주신다. 겸손하고 가난한 자를 돌보시며, 그들의 권리를 되찾아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어떻게 동참할 수 있을까?
*살다보면 이런 질문을 할 정도로 곤란해지고, 사방으로 막혀 좌절할 때가 있다.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면 왜 이런 고난이 우리에게 일어날까?’ 이와같은 고백의 시편식 표현이 ‘우리를 향한 여호와의 손이 짧은가?’가 아닐까 싶다. 대답하자면, 절대 그럴 일 없다. 그럼에도 일상에서 하나님의 손이 너무나 짧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하나님이 무기력해 보이고, 도저히 그 상황을 역전시킬 수 없을 것 같은 상황도 자주 직면한다. 참으로 난감하다.
*그런데 악인은 하나님을 무시하며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은 자신을 보지도 못하고 자신들의 계획을 알지도 못하는 무능한 존재라고 비웃고 나아가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에 이른다. 이 상황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고통은 이런 악한 자들이 더욱 번성해가는 것을 보는 것이다. 마치 하나님은 숨어 계시고 정의를 나타내야 할 때 침묵하시는 무능하고 비겁한 하나님으로 여겨진다. 세상을 바르게 세워야 할 하나님의 손이 그 능력을 보이시기에 너무 짧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고난과 절망의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이들이다. 온몸이 쇠사슬로 묶여 있어도, 언젠가 다가올지 모를 죽음을 향해 아침을 깨우고 천상을 향한 거룩한 기쁨을 가슴에 품고 기뻐하라고 소리치던 바울의 고백이 지금 우리의 고백이어야 할 것이다.
매일묵상 ㅣ 묵상을 함께 나눕니다
본 시편은 도움을 구하는 기도다. 원수를 고발하고, 구원을 요청하며, 찬양과 신뢰를 고백하고, 맹세를 표하는 내용을 담았다. 다윗은 압제에 대항하여 싸우면서, 무죄한 자에게 고통을 가하는 악인들을 하나님이 끝까지 찾아내 심판하심으로 정의가 성취되기를 희망한다.
이 시편은 개인적인 탄식과 감사의 찬양이 함께 어우러진 알파벳 시다. 장르를 특정하기 어렵지만, 하나님의 구원이 핵심이다. 신앙적인 체험의 맥락에서 탄식, 감사, 찬양은 밀접하게 서로 연결된다. 또한 본 시편은 시편 10편과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통일성 있는 하나의 시편으로 해석되곤 한다(사본에 따라 구분되기도 한다). 다윗의 생애 가운데 어떤 시점에서 이 시편을 기록했는지 알 수 없지만, 온 세상을 재판하시고 열국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요청, 그리고 가난한 자, 약한 자에 대한 잦은 언급으로 사회적 차원의 관심이 집중된다.
1. 보좌에 앉으신 여호와를 찬양(1~4절)
1~2절은 히브리어 첫 자음 ‘알렙’으로 시작한다. 두 구절 모두 ‘내가 찬양합니다, 내가 전합니다, 내가 기뻐합니다, 내가 찬송합니다’로 시작하여 모두 밀접하게 연결된다. 다윗은 ‘전심으로’, 곧 ‘내 온 마음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주님이 자기 백성을 위해 행하신 놀라운 모든 일들을 자세히 말하겠다는(1절) 결연한 의지와 각오를 표현한다. 이후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고 선포한다(2절). 시편 곳곳에서 ‘지존하신 분’은 주님의 이름을 지칭한다(7:17; 47:2; 78:35). 다윗은 곧바로 가장 높으신 여호와를 기뻐하고 찬양할 이유를 제시하듯 주님의 행하신 일을 열거한다.
3~4절은 정의로운 판결을 하신 여호와를 찬양한다. 3절은 히브리어 알파벳 둘째 자음 ‘베트’로 시작한다. 다윗은 원수들이 물러갈 때 주님 앞에서 멸망할 것을 고백하며(3절), 이 고백의 이유를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으셔서 자기의 송사와 판결을 내리실 때, 정의로운 판결을 하시기 때문(4절)이라고 고백한다. 법적인 송사에서 재판장이신 주님의 개입을 믿는다는 표현이다. 아직은 원수의 파멸을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의로운 판결을 내리실 미래의 구원을 기대하는 것이다.
2. 공의와 정직으로 열국을 판결하시는 여호와(5~8절)
5~6절은 악인의 멸망을 노래하는데, 히브리어 셋째 자음 ‘김멜’로 5절을 시작한다. 주님이 열방을 책망하시고, 악인을 멸하셔서 그들의 이름을 영원히 지우셨음을 선포한다(5절). 주님은 옛적 이스라엘을 위해 원수와 뭇 나라들을 멸하셨다. 주님이 그 이름을 지우셨다는 것은 악인들이 후세대에 의해 잊힌 존재로서 이 땅에 살았던 증거조차 남기지 않는 철저한 파멸을 뜻한다. 다윗은 원수가 끊어져 영원히 멸망했고, 주님이 무너뜨린 성읍들을 기억할 수 없다고 선포한다(6절).
다윗은 옛적 조상들의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의 역사를 현재로 소환했다. 그 때 하나님의 심판은 가나안 민족들의 성읍을 도무지 회복할 수 없게 만드셨다. 주님은 그들의 이름을 지우신 것처럼(5절), ‘기억’에서 지워지게 하셨다. 구체적인 역사의 증거는 옛적 이스라엘이 광야에 거주할 때 아말렉 족속에게 내린 저주였다(출 17:14). 하지만 이때 금송아지 사건으로 인해 모세를 제외한 모든 백성들은 아말렉과 똑같은 경고를 받기도 했다(신 17:14). 이렇듯 언약 백성도 하나님을 떠나면 공평한 재판장의 판결에서 예외일 수 없다.
7~8절은 공의롭고 정의로운 하나님의 판결을 노래한다. 히브리어 넷째 자음 ‘바브’로 시작하는 싯구를 통해 심판을 위해 보좌를 준비하시고 영원히 앉으시는 여호와를 상상한다(7절). 보좌에 앉으신 여호와는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시는 분이며,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신다(8절). 무엇보다 심판을 위해 여호와가 보좌에 ‘영원히’ 앉으셨다는 것은, 사람의 감각으로 확인할 수 없는 태초의 시간부터 미래의 알 수 없는 시점까지를 포괄한다.
3. 가난한 자를 기억하시는 시온의 주를 찬양(9~14절)
9~10절은 다섯 째 자음 ‘바브’로 시작한다. 다윗은 압제 당하는 자, 여호와를 찾는 자, 가난한 자를 위해 여호와가 요새가 되어 구원해주시길 기도하며 찬송한다. 다윗은 지금까지 여호와 하나님을 보좌에 앉으신 의로운 재판장으로 비유했다면, 이제 ‘요새’, 곧 ‘높은 곳에 위치한 피난처’ 되어주시기를 간구한다(9절). 다윗은 하나님이 높은 하늘 보좌에 앉으신 재판장이자, 압제당하는 자의 높은 요새가 되셔서 안전하게 보호해 주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알고, 도움을 청하려고 ‘당신을 찾는 자’를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을 믿는다(10절).
11~12절은 여섯 번째 자음인 ‘자인’으로 시작한다. 시온에 앉으신 이, 곧 여호와를 찬송하고 그분의 행하신 일들을 열방 중에서 선포하자고 청한다(11절). 시온에 계신 여호와는 ‘피흘림을 심문하시는 이(12절)’다. 여호와는 백성을 기억하실 뿐 아니라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않으신다(12절). 다윗은 타인을 해치는 자들을 끝까지 색출하시고 보복하시는 피의 보복자로서의 하나님을 묘사한다. 하나님은 압제 당하는 자와 가난한 자를 잊지 않고 구원하시고, 보호하시고, 보복하시며, 피난처가 되심을 증언하는 것이다.
13~14절은 일곱 번 째 자음 ‘헤트’로 시작한다. 이제 다윗은 간절하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아뢴다.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십시오. 나의 고통을 보십시오.’ 이렇게 부르짖는 다윗은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님을 의지하고, 자기를 미워하는 자들이 가하는 고통을 봐주시기를 기도한다(13절). 또한 주를 향한 모든 찬양을 속속들이 전부 할 수 있도록, ‘시온의 문’에서 기뻐할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주시기를 간청한다(14절). ‘시온의 문’과 ‘사망의 문’을 의도적으로 대비하여 시온이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임으로 생명과 구원을 베푸시는 주님의 보좌를 강조한다.
4. 악인과 이방 나라의 심판을 간구함(15~20절)
15~16절은 여덟 번 째 자음 ‘테트’로 시작한다. 다윗은 악인들과 이방 나라들이 자기들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걸려 넘어져 멸망하기를 바란다. ‘열방은 자기들이 판 웅덩이에 빠졌고 자기가 숨긴 그물에 발이 걸렸다(15절)’고 표현하며 열방이 자기들이 만든 함정에 스스로 빠진 것을 여호와의 심판 때문이라고 믿는다.
17~20절은 아홉 번 째 자음 ‘요드’로 시작한다. 악인들과 하나님을 잊은 열방의 최종적인 심판과 멸망을 간청한다. 그들이 ‘스올’, 곧 죽음의 세계로 돌아가기를 간청한다. 그들이 ‘스올’, 곧 죽음의 세계로 돌아가기를 청한다(17절). 스올은 어두운 땅이며 죽은 자들의 세계다. 반대로 시인은 궁핍한 자들과 가난한 자들이 잊히지 않고 영원히 실망하지 않을 것을 믿는다(18절). ‘궁핍한 자’와 ‘가난한 자’는 경제적인 궁핍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경제적인 빈곤은 사회적인 억압과 착취당하는 비참한 상태로 전락하기 쉽다. 그러나 이들은 끝내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게 될 것이다.
이제 다윗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적극적으로 요청한다. ‘여호와여 일어나십시오! 인생이 승리를 얻지 못하게 하십시오(19a절). ‘인생’은 ‘사람(에노쉬)’을 뜻한다. 이것은 하나님과 대조되는 인간의 연약함,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질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힘 자랑하는 ‘이방 나라들(열방)’이 ‘사람’일뿐임을 각성시킨다. 그리고 다윗은 마지막으로 착취와 억압으로 고난당한 자들을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것을 보고 열방이 두려워 떨기를 간구한다(20절).
나는?
-본문을 묵상하며 한 줄 제목으로 정리하면, ‘원수는 무덤으로 의인은 보좌로’다. 다윗은 지존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원수를 심판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임을 고백한다. 원수 앞에서 압제당하고 환난당하는 자신의 삶을 기억해달라고 요청하며, 하나님을 잊어버린 악인들이 스스로 판 웅덩이에 빠져 심판당할 것을 확신한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서 감사와 기쁨이 나온다(1~2, 19, 20절). 다윗은 전심으로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이 원수들에게서 자신을 지키시고 마침내는 승리케 하실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나를 기뻐하고 감사하지 못하게 하는 내 안의 다른 마음들과 끝까지 분별하며 싸워야 할 이유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괴롭히는 원수들은 주 앞에서 넘어져 망한다(3~6절). 우리가 받은 억울한 고난과 부당한 대접을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갚아주실 날이 올 것이다. 소용돌이치는 고난의 물살 앞에 주님께 기대는 것이 괴로운 날을 견디는 유일한 방편이다.
-하나님께서는 보좌에 앉으셔서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시는 분이다. 교만한 나라와 백성은 하나님의 판결 앞에서 멸망 당하지만, ‘주의 이름을 아는 자’들은 결코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7~14절).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들은 잰걸음으로 움직이지만 그 끝은 무덤이며 매일 두려움으로 잠 못 이루는 인생이 될 것이다. 하지만 주의 이름을 아는 자들인 의인들은 매사에 주님께 나아가 안전한 피난처로 인도받는 자들이기에 결국 영생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다.
-악인들은 의인들을 압제하기 위해 파놓은 구덩이에 스스로 빠진다(15~16절).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의인들을 위험에 빠뜨리기 위해 구덩이를 파지만, 이들은 깊이 파면 팔수록 자신들이 묻힐 무덤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악인은 무덤으로 끝나지만, 의인은 영원히 기억된다(17~20절). 힘이 될 만한 것을 찾아 분주히 움직이는 악인들의 최종 종착지는 무덤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인도에 조용히 마음을 두고 살아가는 의인들은 하나님의 보좌가 그들의 종착지다. 하나님을 잊고 살면, 우리의 인생도 잃게 된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심판자이시다. 사람의 마음속까지 알고 계시는 하나님의 심판에는 거짓이나 편벽됨이 없다. 옳고 그름을 바르게 판단하시며, 강한 자라고 또는 악한 자라고 편들어주지 않으신다. 또한 하나님은 모든 자를 빈부귀천, 유무식에 관계없이 선입견이나 편견이나 편애함 없이 공평하게 대신한다. 공의와 공평의 심판으로 악한 자들에게는 멸망을, 의로운 자들에게는 생명을 주신다.
*하나님은 공의와 공평으로 심판하신다.
*하나님은 모든 자가 풍성한 생명을 얻어 함께 상생하도록 하려고 공의와 정의라는 질서를 세우셨다. 공의와 정의가 깨질 때 연약하고 가난한 자를 압제를 당한다. 그들은 스스로는 일어설 수 없고 하나님이 특별하게 관심을 보이신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세상의 가치에 동조하여 불의한 부와 권력을 동경하지 않고 하나님처럼 그들에게서 소외된 자들의 친구가 되어주어야 하리라.
*하나님은 압제 당하는 자들의 요새시다.
*하나님은 창조와 역사를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신다. 그러나 인간의 교만함을 꺾어 겸손하게 하는 심판을 통해서도 사진을 계시하신다. 하나님은 심판을 통하여 하나님이 영원하심을 계시하신다.
매일묵상 ㅣ 묵상을 함께 나눕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에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이 충만한 것을 발견하면서 주님을 찬양한다. 거대한 피조 세계 가운데, 작고 보잘 것 없는 인간에게 하나님은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계시며, 만물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왕적 권위를 위임하셔서 모든 만물을 통치하는 왕적 존귀와 영광과 통치권을 주심을 노래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한다.
박종호씨가 부른 시편 8편 찬양이 생각난다. 그 웅장한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머리속에 자연스레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천지만물이 상상되곤 했다. 이토록 아름다운 만물에 깃들어져 있는 창조주의 이름이 아름다운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더 도드라지는 것은 시편 3-7편까지 악과 악인이 득세하는 세상에 대한 깊은 탄식이 이어졌는데, 그런 세상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고백한다는 것이다. 모두 다윗이 노래한 시편들인데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무고히 당했던 억울함과 답답함의 세상속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의 아름다움을 노래할 수 있다니 참으로 반전이다. 참으로 기막히다.
악인이 기세를 떨치는 세상, 그 악의 기운을 잠재우는 창조주 하나님, 그 하나님을 찬양이 악하여 추하게 보일 세상을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의 감탄되게 한다. 다윗이 감탄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은 어떤 곳인가?
1. 온 땅에(1, 9절)
온 땅에 하나님의 숨결이 깃들었다! 그러니 아름답고 아릅답다! 특히나 창조하신 만물들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이 감탄스럽게 영광을 받으신다. 천지 만물은 원래 그런 곳이었다! 어느 한곳도 예외는 없다. “하늘을” 덮었으니 제외되고 버려진 곳은 아무곳도 없다!
그러니 인간도 마찬가지 아닐까! 하나님의 영광 아래 사는데 영광을 드러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악인이 활개친다! 아름다운 만물이 고통이 되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영광은 그것조차도 다 덮었다! 하나님의 세상이다!
2. 그의 권능을 보이시는 세상(2절)
악인들과 대적들의 강성함이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감출 수 없다. 하나님의 능력을 제어할 수 없다. 오죽하면 세상의 강력한 힘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그들 앞에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말) 만으로도” 권능을 충분히 세우신다고 하실까!
약하디 약한 어린 아이들, 젖먹이들의 입을 통해 “원수들과 보복자들의 (입을) 잠잠케 하시려” 하신다. 훨씬 더 막강하고 강력한 방법을 충분히 사용하실 수 있지만, 겨우(?)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악인들의 존재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자신의 존재감을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충분히 드러내시고도 남는다! 세상은 하나님의 이름이 분명히 드러나는 곳이다! 드러나고야 마는 곳이다!
3. 하나님이 보이는 세상(3-8절)
온 땅에 존재하는 수많은 피조물들 중에서 유독 사람에게 더 큰 사랑을 베푸셨다(3~5절). 하늘과 땅은 하나님의 위엄를 드러내는 도구(1절)지만, 사람은 특별히 위엄을 입는 수혜자로 삼아주셨다. 다윗은 이 사랑과 배려에 목이 매여 ‘이렇게까지’를 반복해서 표현한다. 밤하늘에 떠있는 수많은 별들을 보면서 감탄사가 저절로 터져나올 수밖에 없지만 그 감탄의 강도가 하나님이 빚으신 사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보이신 사랑은 참으로 성실한 사랑이다. 단지 도구로만 쓰이는 존재가 아닌 매사에 생각해주고 돌보아주시는, 배려 깊은 사랑으로 익어사는 농도 깊은 존재다.
세상에 속한 모든 창조물들을 다스리도록 사람에게 권한을 주셨다(6~8절). 사람이 기르는 창조물에서부터(7절) 먼 데 있는 창조물(8절)까지 사람에게 다스림을 받는다. 하나님은 원래 첫 창조 때에 모든 창조물들을 만들고 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표현 하셨지만, 유독 여섯째 날 마지막 창조물인 사람을 짓고 나서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고 하시며 기뻐하셨다. 다른 피조물들과 다르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고 날마다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고 소통하는 창조물로 지어진 사람 앞에서는 너무나도 즐거워 하셨던 것이다. 사람에게 땅을 다스리는 권한을 부여하고자 했던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보이는 대목이다. 그러나 죄로 말미암아 땅을 다스려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땅의 노예가 되고, 이로 인해 고통받는 인간의 신음 소리가 온 천지에 울려 퍼지고 있다. 땅을 얻고자 하면 노예가 되지만, 땅을 버리는 나그네의 길을 택하면 오늘도 땅의 주인으로 우뚝 설 것이다.
특히 감동되는 부분이 바로 “보오니”이다. “주님께서 손수 만드신 저 큰 하늘과 주님께서 친히 달아 놓으신 저 달과 별들을 내가 봅니다(새번역_3절).” 내가 봅니다…. 그냥 보이는 것이 아니다. 보아야 보인다! 보아도 보지 못하는 악인들, 대적들, 원수들은 보지 못하는 세상이다.
사람이 보인다. 억압과 폭력의 대상이 아닌 영화와 존귀의 사람이(4절)… 주의 손과 손가락이 만드신 것을 다스리는 사람이(예수 그리스도, 6절)… 그가 다스리는 모든 것이 보인다(7절). 예수님이 보이면 그의 세상이 보인다! 하나님이 그 세상에서 드러난다!
나는?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만물을 만드셨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뜻과 목적대로 창조되었다. 그러니 하나님을 떠나서는 만물의 본질과 의미, 목적을 알 수 없다. 하나님은 각 속성을 가진 수많은 종류의 만물들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에서 상생하도록, 즉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유지하도록 자연 만물을 만드셨다.
-자연을 관찰하고 묵상한 사람은 그 거대함과 다양함과 오묘한 조화로 인해 놀람과 경이로움을 감출 수 없다. 자연 만물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창조주를 떠나 자연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신격화하는 것은 어리석다. 자연의 위대함은 그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함을 나타내는 표시다.
-인간은 거대한 창조 세계 속에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다. 하지만 하나님은 특별한 관심과 사랑으로 인간에게 놀라운 뜻과 목적을 부여하셨다.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권을 인간에게 위임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에 대해 사랑으로 돌보는 특권을 갖게 된 것이다.
-다윗은 땅과 하늘에 충만히 임한 하나님의 위엄을 찬양한다. 온 우주를 창조하시되 특별히 사람을 다른 피조물보다 영광과 존귀로 높여주시고, 만물을 다스리시도록 책임을 부여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린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영광과 위엄으로 덮고 계신다. 다윗은 하나님의 위엄을 표현하기 위해 시의 처음과 마지막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노래한다. 나는 자연뿐 아니라 일상 속에서서도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의식하며 찬양하고 있을까?
-만물을 바라보며 나는 “무엇이 보일까?” 온갖 악, 부조리, 병폐, 고통, 아픔. 슬픔…. 이런 것 밖에 보이지 않는다면 위축되고 고통스럽기 그지 없을거다. 그러나 이런 “악함”이 세상에 넘쳐나도 그 세상을 덮는 하나님을 본다면 지금 겪는 고통이 그 영광 아래 일어나는 것임을 보게된다. 하나님을 신뢰하게 된다.
-그러니 “어떻게 보는가”는 중요한 문제다. 마음과 믿음이 없는 바라봄은 현상만 보고 판단하여 영혼을 피폐하게 하지만, 이 세상을 덮고 계신 하나님의 영광을 “보면” 달라진다. 황량한 사막에서 넘쳐 흐르는 강물을 보게된다. 폭풍우 치는 바다 한 가운데서 따사로운 햇살과 콧등을 간지럽히는 잔잔한 바람이 보인다.
-“내가 보오니….”
-하나님의 영광을 보오니… 하나님의 하신 일들을 보오니…. 하나님의 권능을 보오니….. 악함과 대적과 원수들이 하찮게 보인다. 그들의 위협과 폭력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그들의 만용과 오만이 긍휼을 불러 일으킨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장마철, 높은 습도는 몸과 마음을 지치게 만들지만, 하나님께서 지으신 만물을 “내가 보며” 따사로운 하나님을 보는 상쾌한 하루였으면 좋겠다!
매일묵상 ㅣ 묵상을 함께 나눕니다
표제에 따르면 이 시편은 다윗이 지었으며, 베냐민 사람 구시의 말에 따라 여호와께 부른 노래다. 그러나 베냐민인 구시가 정확히 누구인지, 어떤 말을 했는지 파악할 수 없다. 사울, 사울 주변 인물, 베냐민 사람 미스이나 세바 등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다만 시편의 내용에 근거하면 구시가 다윗을 모함했을 가능성이 보인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이 당한 억울한 고발에 대해 하나님께 무죄를 호소한다. 이에 따르면 이 시편은 애가 형식을 띤 개인 탄식시이자 무죄 탄원시로 불린다.
살다 보면 상상도 하지 못할 모함을 받을 때가 있다. 자존심처럼 지켜온 삶의 태도와 가치들이 폄훼 당하고, 모함 당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온 몸과 마음이 깊은 좌절과 고통으로 빠져든다. 특히 한 개인을 향한 조직적인 모함이나 계략으로 인해 평생 정죄 당하고 여론에 의해 매장 당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밝혀지곤 한다. 어떤 형태이든지 이런 경우를 만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너무나 슬며시, 혹은 자신도 모른 채 크고 작게 이미 이런 일들은 일어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렇다. 죄가 만연하니 죄의 크고 작은 열매가 맺히는 것은 당연하다. 성도는 이런 위기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다윗이 들려주는 노래를 들어보자!
1. 내가 주께 피하오니…(1-2절)
다윗은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라고 부르며 자기를 추적하는 모든 자들로부터 구원해주시기를 간청한다. 이때 ‘내가 당신께 피합니다(1A절)’라는 말은 추격당하면서도 자기를 도와주실 분이 하나님밖에 없다는 고백이자 절절한 호소다. 원수들로부터 억울한 고발을 당한 사람의 고백이다. “구원하다(야샤)”라는 말과 동의적인 의미로 사용된 “구출하다(나찰)”라는 말은 “와락 붙잡거나 낚아채고 움켜쥐는” 행동과 관련이 있다. 긴급한 마음과 하나님의 신속한 구원과 개입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의 표현이다.
역시 피할 곳은 하나님밖에 없다. 아니 하나님께 가장 먼저 피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대적들이 사자처럼 달려들어 나를 찢어 발기어도 목숨을 구해 줄 이는 ‘여호와 내 하나님’밖에 없다. 크고 작은 일들….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는 거센 계략들에게서 피할 곳은 “하나님 밖에 없다.
2. 나의 삶을 아시오니(3-13절)
다윗은 여호와 이름만 부르지 않고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라고 부른다. 친밀한 언약의 이름 여호와뿐만 아니라 우주의 창조자이며 주권자이자 재판장이신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호명하여 다윗 자신과 밀착을 시킨다. 다윗은 신속한 구원을 요청했지만(2절) 충분하지 않다. 그는 최고의 재판장이신 하나님의 개입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일관되게 ‘만일 ~ 내가 이러이러한 일을 행했다면’을 세 번 반복한다(3~5절). 다윗의 마음은 자기 자신이 이러이러하다면 원수가 자기 생명을 땅에 짓밟고 자기 영광을 먼지 속에 살게 해도 괜찮다(5절)는 항변이었다. 그만큼 다윗은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3절)’,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 까닭 없이 빼앗았거든(4절)’, ‘땅에 짓밟히고 명예를 잃어도(5절)’ 묵묵히 받아들이겠다고 한다. 다윗의 이런 언행은 고대 사회에서 무죄를 맹세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이와 같은 정황은 다윗의 원수들이 베냐민 지파인 사울 왕과 관련된 거짓 증거로 다윗을 옭아매려 했던 상황을 생각나게 한다.
그들이 모략한 것이 사실이 아님을 하나님이 아시오니… 이다. 그래서 담대하게 외친다. “주 나의 하나님, 내가 만일 이런 일을 저질렀다면 벌을 내려 주십시오(새번역_3절)” 그들의 모함처럼 내가 살았다면 마땅히 벌을 받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윗은 담대하다.
6~9절은 자신의 무죄 맹세 후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 정당한 판결을 요청하는 장면이다. 다윗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세 개의 명령어를 내세워 직접 간청한다(6절). ‘당신의 진노로, 대적들의 격분’에 맞서 일어나도록 청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이미 판결하신 듯이 ‘당신이 심판을 명하셨습니다(6절 하)’라며 정리한다. 그리고 난 후 하나님께서 재판장되심을 상상하며 중재와 재판을 요청한다. ‘높은 자리로 돌아오십시오,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십시오, 나의 의와 나의 성실함을 따라 판결하십시오(7~8절), 악인을 끊어주십시오, 의인을 세워주십시오’라고 고백한 후에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들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신다고 고백한다(9절).
“…..내 의와 내 성실함을 따라 나를 변호해 주십시오(새번역_8절).” “하나님은…..마음이 올바른 사람에게 승리를 안겨 주시는 분이시다(새번역_10절).” 평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았음을 하나님이 가장 잘 아신다는 것이다. 이 당당함! 얼마나 멋진가! 아무리 모함하여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마음을 어지럽게 하여도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만은 분명히 아시기에 “내가 주께 피할 수” 있고 “만일 모함이 사실이면 나를 벌하십시오!”라고 외친 것이다.
10~13절은 공의로운 하나님의 심판을 더욱 간구한다. 다윗은 자신을 보호하는 방패가 항나님이시라고 선언한다(10절). 무엇보다 ‘하나님은 나의 의로우신 재판장’이라고 고백한 것은 11절의 ‘매일 분개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선포와 연결된다. 그렇기에 다윗은 사람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칼을 가시며, 활을 당시실 준비를 하고 계신다고 확신한다(12절). 또한 하나님을 전사(용사)처럼 묘사하여 불타는 화살(13절)을 준비하신 분으로 표현한다. 고대 사회에서 불호살은 포위된 도시를 불대우는 무기다. 이런 묘사들은 악인들이 심판받을 시간이 임박했음을 표현한다.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아시기에 두려워 나아가지 못한 삶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아시기에 담대하게 나아가 “탄원”하는 삶이었다! 대적들을 심판해 주시라고 담대히 외치는 그 탄원 속에 자신도 심판 받을 각오를 하는 기도를 드리는 다윗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3. 말한대로 거둘 인생(14-17절)
악인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가? 다윗은 ‘보라 악을 잉태한 자는 분쟁(재앙)을 임신하고 거짓을 출산했다(14절)’라고 말한다. 이는 악의 끊을 수 없는 파괴적인 생산성을 묘사한듯하다. 또, 악을 잉태한 자는 남을 넘어뜨리기 위해 웅덩이를 판 사람과 연결시킨다(15a절). 짐승을 잡기 위해 구덩이를 파는 사람으로 묘사되나 곧 자기가 만든 함정에 빠지고 만다(15b절). 이러한 악인의 결말은 ‘재앙이 자기 머리로 돌아가고, 그의 포악은 자기 정수리에 내린다(16절)’의 표현으로 악인에 대한 심판의 철저함을 보여준다.
17절을 통해 자기의 무죄를 항변하며 정의로운 재판장 하나님께 악인의 심판을 청구한 다윗이 하나님께 찬미와 간절한 기도로 마무리한다. 여호와의 의를 따라 감사의 마음을 고백하고 찬양한다. 가장 높으신 분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며 마무리한다.
다윗은 하나님을 잘 알았다. 그것도 ‘올바로 잘’ 알았다. 그래서 악을 행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처리하시는지도 너무도 잘 알았다. 반드시 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움과 신실함을 알기에 담대하게 선포한다. “(보라!) 악인은 악을 잉태하여 재앙과 거짓을 낳는구나. 함정을 깊이 파지만, 그가 만든 구덩이에 그가 빠진다. 남에게 준 고통이 그에게로 돌아가고, 남에게 휘두른 폭력도 그의 정수리로 돌아간다(새번역_14-16절).” 순간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기만하여 모함하는 인생을 간과하지 않으신다. “재앙과 거짓”이 그의 인생에 임한다. 자신이 퍼뜨린 거짓말의 깊은 함정에 자기가 빠진다. 자신의 거짓된 행동으로 인해 고통이 일어나지만 결국 자신이 그것을 다 받는다. 자신이 행사한 폭력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신의 뜻대로 사는 인생도 이와같다! “심는대로 거둔다”는 보편적인 원칙을 왜 이리 망각할까? 답답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도 그럴 수 있다. 잠깐의 이익을 위해 순간의 모략을 참지 못할 수 있다. 순간의 거짓의 유혹이 너무나 강력하여 어이없게 걸려들 수 있다. 그러니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하게 외친 “정직과 성실”이 놀랍다!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정직과 성실로 인생의 밭을 일구지만 거짓과 모함의 가라지들은 언제나 우후죽순처럼 일어날 수 있다. 그렇지만 ‘정직과 성실’의 열매는 반드시 맺힌다. 하나님께서 이를 보장하신다.
“나는 주님의 의로우심을 찬송하고 가장 높으신 주님의 이름을 노래하련다(새번역_17절)”
나는?
-다윗은 엄중한 맹세로 자기 무죄를 밝히며, 지기를 무고하게 추격하는 대적들로부터 전져주시기를 간청한다(1~5절). 참된 믿음은 아무리 위태롭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성품을 신뢰하고, 그 신뢰에 자기의 안위를 맡기는 것이다. 하나님을 진실하게 신뢰하며 드린 기도에 하나님께서는 꼭 응답하신다.
-또, 다윗은 하나님이 진노 가운데 일어나셔서 악한 대적들의 노를 잠재우시기를 간청한다(6~7절). 이것은 만민 앞에서 자기의 무죄를 입증해달라는 호소이자, 악이 득세하고 공의가 무너진 시대에 주님의 의로운 통치가 편만해지기를 바라는 기도다. 우리의 기도가 개인적 필요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의가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함을 다윗을 통해 도전을 받는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행위와 마음의 동기까지 살펴 공정하게 판결하시는 의로운 재판장이시다(8~10절). 이를 통해 악인이 더는 기승부리지 못하도록 근절하시고, 무고한 고소와 악의적 비난으로부터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여 이 땅에 정의를 세우신다. 나라와 교회의 지도자들이 위임 받은 권세를 주의 뜻에 맞게 사용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악에 대해 분노하시고, 회개하지 않는 자를 향해 심판의 칼을 드신다(11~13절). 심판의 지연이 죄에 대한 용인은 아니다. 진심으로 돌이키지 않고도 무탈한 인생은 없기에, 오래도록 품어온 악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청산해야 할 습관과 관계를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무고한 자를 음해하던 악인들의 죄악은 부메랑이 되어 그들을 정죄하고 파멸할 것이다(14~17절). 이것이 의로운 하나님의 보응이다. 언젠가 스스로 추수해야 할 악의 씨앗을 심지 말고, 날마다 의와 진실과 정직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다윗과 관련되어 그를 대적하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름 중에 “베냐민 사람 구시”는 없다. 베냐민 지파 사람이라는 데서 사울왕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 중의 하나였을 수 있겠다 싶지만 성경에서 그 사건을 소개하지 않으니 알 수 없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다윗은 이런 수많은 사건들이 일어나 자신을 힘들게 할 때마다 그것을 당사자나, 사람들을 통해 해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상황이 그럴수도 없었겠지만 그 답답함을 그대로 하나님께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훗날 시로 노래한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그 고통을 노래하는 다윗의 모습이 내가 닮아야 할 모습이겠다. 수많은 오해들이 발생하고, 모함들이 난무 할 수 있는 목회의 일상에서 “가장 먼저, 오직 유일하게” 이 심정을 솔직하게 토로하며 기도의 노래를 부르는 다윗의 모습이 나의 목양 모습이어야 하겠다.
-나의 무고함과 결백을 진솔하게 고백하고 노래할 대상은 하나님이시다! ‘주님은 의로우신 하나님, 사람의 마음 속 생각을 낱낱이 살피시는 분이십니다(새번역_9절)’이라고 고백하기에 자신의 허물도 낱낱이 드러날 삶을 애초에 걷지 않는 목양이어야 하겠다. 그러면 어쩌다 이런 상황을 만날 때 담대하게 노래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주께 피하오니(1절)” 노래할 수 있는 주님 앞에서의 삶이 되도록 간구할 뿐이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시기에 세상 법정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오판이 없으시다. 당장의 억울함의 답답함을 의로우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로 인내한다면, “하나님께서 재판하셔서 갚아주신다” 이 믿음이 오늘의 억울함에도 몸과 마음을 꿋꿋하게 지켜나가게 할 것이다.
-이 믿음이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이다! 결국 하나님께서 재판 하실(이루실) 것이니까!
-하나님 앞에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 모르는 것도 하나님을 알고 계신다. 악을 계획하고 행하는 자들, 특히 거짓을 행하는 자들은 항상 모든 것을 은폐될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하나님은 이미 그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은 의롭기 그지없다.
-함정을 만든 자는 자기가 만든 함정에 빠지고 자신이 행한 재앙과 포악이 자신에게 돌아간다. 심는 대로 거둔다. 악을 심는 자는 악을 거두고 의를 심는 자는 의를 거둔다. 악인은 자신이 행한 대로 반드시 돌려 받는다. 이와같이 악을 보응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감사하다.
*목회가 참 변수가 많다! 어제도 그런 예상치 못한 당황스러운 일을 만났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이 힘이 된다! 결국 “의로우신 재판장” 되신 주님 앞에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 서게 될 것이니 그때 주님의 선명한 재판이 있을 것이다. 지금은 속마음을 알 수 없고 그 의도가 무엇인지 가늠할 수 없어 답답하고 억울하기 짝이 없을 수 있지만 반드시 드러난다! 그때 부끄러움이 없는 하루를 살면 된다. 그때 판단 당하는 어리석은 말과 행동을 오늘 하지 않으면 된다. 주여 지켜주옵소서
*이런 변수들은 끊임없이 일어나겠지? 그런데 두렵지는 않다. 은근한 담대함이 일어났다. 성령님께서 주신 것이 확실하다! 다만 한 공동체 안에서 이리 다른 말을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하는 것이 두렵다. “하나님 앞에서” 경외함과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씁쓸하고 안타깝다!
*내가 그런 자리에, 그런 말들을 만들어 내지는 말아야지 다짐하고 또 다짐해 보는 아침이다! 오늘도 주님이 도우실 것이다. 잘 분별하며 말하고 행해하리라. “내가 주께 피하오니….”
매일묵상 ㅣ 묵상을 함께 나눕니다
깊은 탄식, 멈추지 않는 애통이 다윗을 감싸고 있다. 삶을 살다보면 이런 상황에 처할 때가 있다. 깊은 병에 걸렸든지, 어떤 범죄로 인해 큰 두려움에 빠지든지, 이유를 분명히 파악할 수 없는 고통이 엄습할 때가 있다. 그래서 다윗의 노래가 공감이 된다. 특정한 상황만을 묘사하기 보다 어떤 일로 인해 깊은 탄식과 애통에 빠져 있다. 슬픔과 고통이 한없이 짖누르는 시기를 누구나 경험하기에 다윗의 노래가 큰 위로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왜 깊은 탄식과 멈추지 않는 애통 가운데 있을까? 다윗은 이렇게 고백했다. “사무친 울화로, 내 눈은 시력까지 흐려지고, 대적들 등쌀에 하도 울어서 눈이 침침합니다(새번역_7절).” ‘사무친 울화(근심으로 쇠하고)’, ‘대적들 등쌀에…’ 대적들의 등쌀에 울화가 사무쳤다는 것이다. 이것을 “주의 분노”, “주의 진노”로 여기고 있다(1절). 어떤 일인지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지만, ‘대적’들의 등쌀은 다윗을 ‘사무친 울화’가 치밀게 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내 뼈가 마디마다 떨립니다. 주님, 나를 고쳐 주십시오. 내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떨립니다….(새번역_2-3절)” 였다. 뼈 마디가 다 떨리며, 마음도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떨었다. 극심한 고통일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온 몸과 마음이 고통중에 떨었다. 그리고 “나는 탄식만 하다가 지치고 말았습니다. 밤마다 짓는 눈물로 침상을 띄우며, 내 잠자리를 적십니다(새번역_6절)”라고 쇠약한 고백도 이어진다.
이 와중에도 다윗은 하나님을 찾고 또 찾은 것이다.
1. 여호와여!
‘여호와여….’ 고통중에 그 이름을 잊지 않고 부른다. “떨리고 떨리며” 아파하는 그 와중에 다윗의 입술은 ‘울화통’치미는 대적들을 저주하기보다, 그 상황을 되뇌이는 것 보다 “여호와’의 이름을 거푸 부른다. 쉴 새 없이 부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께다. 그만큼 신뢰하고 바라는 이름이 ‘여호와’였다.
지금 겪는 고통 때문에 더 멀어 질 수 있는 하나님과의 거리감이 오히려 더욱 가까워 졌다. 아픔이 깊을 수록 불평과 원망, 자기능력과 계획으로 하나님의 이름 보다 현실적인 대응방안이 더 많이 중얼 거려 질 수 있는데, 다윗의 입술과 마음을 그렇지 않았다. 그럴수록 더 많이 부르고 불렀다! “여호와여!”
과학적으로,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부르는 이름이 아니었다. 그저 하나님밖에 해결 할 수 있는 분이 없다는 강한 신뢰로 부르는 이름이었다. 차선, 차차선으로 부르는 이름이 아니었다. “오직” 여호와밖에 없음을 간절히 인정하고 부르고 불렀다. “돌아와 주십시오, 주님. 내 생명을 건져 주십시오. 주님의 자비로우심으로 나를 구원하여 주십시오(새번역_4절).”
내가 부르는 하나님의 이름에는 이 진정스러움이 있을까?!
2. 들으셨도다! 받으셨도다! 물러가리로다!(8-10절)
다윗의 노래에서 느껴지는 놀라운 점이 있다. 바로 “솔직함”이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솔직하게 고백한다! 꾸미지 않는다. ‘책망하지 마십시오’, ‘꾸짖지 마십시오’ ‘언제까지 지체하시렵니까?’… 하나님을 향한 표현이 진솔하다. 있는 감정을 그대로 쏟아낸다.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과의 소통에 있어 “진솔함”이 가장 두드러진 방법이었다.
나는 어떠할까? 진솔한 하나님과의 소통… 진솔하지 못할 때 그것이 바로 외식 아닌가! 인간관계는 진솔하면 어색해 지는 경우가 있다. 트히 감정적인 상태일때가 그렇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는 진솔하면 진솔할 수록 관계의 단단함이 더해진다. 어느 정도이냐면 하나님의 응답하심에 대한 확고한 확신이다.
“…..들으셨도다!(들어 주셨다! 8절)”
“…..받으시리로다!(받아 주셨다! 9절)”
“…..물러가리로다!(물러가는구나! 10절)”
“악을 행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악한 일을 하는 자들아, 모두 다 내게서 물러가거라._새번역 8절)” 라고 외친 후 들으셨다! 받으셨다! 물러갔다!고 거듭 외친다! 깊은 탄식, 멈추지 않는 애통속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진솔하게 부르며 기도한 다윗은 응답 조차도 이미 이루어 진 것임을 선언한다. 어떻게 이리 할 수 있을까?
자신을 깊은 탄식과 애통 속에서 구원하여 주시기를 구하는 그의 믿음이다. “돌아와 주십시오, 주님. 내 생명을 건져 주십시오. 주님의 자비로우심으로 나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죽어서는, 아무도 주님을 찬양하지 못합니다. 스올(무덤, 죽음)에서, 누가 주님께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새번역_4-5절)” 죽으면 아무도 주님을 찬양하지 못하니… 자신을 살려달라는 것이다. 허어 이런 믿음이라니… 나는 늘 주님을 찬양하기에 나를 살려 달라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살아나면 자신만큼 여호와를 찬양하는 사람도 없다는 강한 믿음의 확신이다. 그러니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기 위해 자신의 깊은 탄식과 애통에서 구해 주실 것을 믿는 것이다.
이 믿음이 “들으셨도다!”, “받으시리로다!”, “물러가리로다!”를 선포할 수 있게 했다.
나는?
-다윗은 엄청난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다윗이 떨었던 것은 참기 힘든 질고나 점점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 대적들의 조롱과 비난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아 이런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1~3절). 우리가 직면하는 모든 고통이 죄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성도는 모든 고난을 ‘자신과 하나님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는 은혜의 도구로 삼아야 한다. 어떤 시련을 만났든지 어저 ‘끝나게’ 해달라고 구하기 전에, 어서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하지 않을까!
-다윗은 자기에게 닥친 고통 속에서 주의 분노로 징계받고 있다는 생각을 떨치지 않는다. 삶의 모든 경험을 하나님에 대한 경험으로 받아들인다. 하나님이 진노와 심판으로 그에게 임하신 것에 대해 회피하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그는 더 맞닥뜨려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간다. 기도는 고통, 슬픔, 두려움, 외로움, 죄악 됨, 심지어 보복의 마음까지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돌보심에 전적으로 자신을 의탁하는 자들의 삶의 방식이다.
-다윗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다. 다윗은 자기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상실하는 것보다 더 큰 상실과 고통은 없다고 간곡하게 호소한다(4~5절). 그는 다 잃어도 좋지만, 하나님만은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하나님이 아니면’ 오늘의 나도, 오늘을 살아갈 수도, 내일을 보장할 수도 없다는 고백이 여전히 내 입술에서 고백되고 있는가?
-시인은 극심한 고통 중에서 간신히 기운을 내 자신의 절박한 사정을 하나님께 아뢴다(6~7절). 하나님을 향한 그의 탄식은 가장 정직한 신뢰의 고백일 수 밖에 없다. 해명할 수 없는 시련 앞에서, 때로 간절히 기도하기도 하고, 때로 모질게 원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윗처럼 고난의 시간이 길어지고 내 기도에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라도, 하나님은 듣고 보고 다 알고 계심을 믿어야 한다. 나의 낙심이 주님에 대한 무지와 오해와 의심에서 오는 것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다윗은 하나님이 이미 자기의 기도를 들으셨고, 앞으로도 들으실 것이라고 확신한다(8~10절). 그래서 그의 탄식은 허공을 치는 절규가 아니라 믿음의 노래였다. 이제 다윗의 떨림과 수모는 환희와 영광으로 바뀌고, 악담하던 대적들은 큰 수욕을 당한 채 황급히 물러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들으시고 돌아오시면 모든 것이 역전된다!
-진솔한 하나님께 대한 고백들을 사모하게 되는 아침이다. 그저 있는 그대로, 처한 상황대로 하나님께 아뢰리라. 이미 들으셨고, 받으셨으며, 물러간(해결된) 상황을 믿음으로 선포하리라.
-주님을 찬양하기 위해 온 몸과 마음이 떨리는 울화를 견디고 견디며 진솔하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 주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신다. 떨었던 내 몸과 마음처럼 대적들이 “떨게” 된다(10절). 아! 이 얼마나 탄식과 애통중의 북음이란 말인가!
-아무리 고통스러울때일지라도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더욱 진솔해야 한다. 진솔하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어가며 그 이름을 찬양하고자 하면, 찬양하도록 도우신다. 이 탄식과 애통중의 복음을 잊지 말아야 겠다. 나의 삶에서 작동되어야 하겠다.
-탄식과 애통은 고통이다. 하지만 이 고통이 통로가 되어 하나님의 이름이 나타나고 ‘들으시고, 받으시며, 해결하시는’하나님을 보게 된다면 그것이 곧 복음이다. 고통중에 하나님의 복을 바랄 이유다!
*우리의 삶은 어쩌면 탄식과 애통의 터널을 지나는 여정인지 모른다. 이 걸음을 그저 나의 힘과 지략과 노력으로만 이겨내려고 하면 자칫 미궁에 빠질 수있다. 하지만 더욱 진솔하게 하나님과 소통하며 그의 구원하심을 구할 때 ”갑자기(황급히)” 물러간다!(10절). 다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의 이름을 구할 때, 진솔하게 소통할 때,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물러가게 하신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언제든, 어느때고 탄식과 애통의 복음의 때를 지날 수 있다. 그럴 때 더욱 하나님께 진솔하게 더욱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하고 또 집중하는 삶이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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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12일 주보
♥여름행사 – 7월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음세대를 소중히 책임지는 교육부서 여름행사 일정을 참고하셔서 기도와 후원으로 함께 해주시기 바랍니다. 아시지요? 우리

2026년 7월 5일 주보
♥여름행사 – 7월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음세대를 소중히 책임지는 교육부서 여름행사 일정을 참고하셔서 기도와 후원으로 함께 해주시기 바랍니다. 아시지요? 우리

2026년 6월 28일 주보
♥교육부 여름 행사 – 다음세대를 소중히 책임지는 교육부서 여름행사 일정을 참고하셔서 기도와 후원으로 함께 해주시기 바랍니다. 아시지요? 우리

더온누리교회 전임 및 파트 교역자 청빙 공고
하나님 나라를 함께 이루어 갈 동역자를 기다립니다. 전주 더온누리교회(www.theonnuri.org)에서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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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에서 만나는 교회, 일상 속에서 만나는 은혜를 함께 나눠요. instagram에서 "#더온누리교회"를 태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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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안내]
우리가 붙들고 있는 믿음은
막연한 희망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을 이기신 하나님의 승리이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흔들리지 않는 소망이 됩니다.
세상은 우리의 수고를 잊을지라도
주님 안에서 드리는 삶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이번 주일,
고린도전서 15:50-58 말씀을 통해
부활의 소망으로 살아가는 성도의 삶과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무엇인지 함께 묵상합니다.
“부활 신앙,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죽음을 이기신 주님을 바라보며,
오늘도 믿음 안에 굳게 서서
주님의 일에 더욱 힘쓰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적용찬양 : 살아계신 주(주 하나님 독생자 예수)
이번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함께 만나요.
—
#더온누리교회
#주일예배
#예배안내
#고린도전서
#부활신앙
#결코헛되지않습니다
#부활의소망
#살아계신주
#예수그리스도
#주일말씀
#말씀묵상
#신앙생활
#SundayService
#FirstCorinthians
#ResurrectionHope
[주일 예배 안내]
우리가 붙들고 있는 믿음은
막연한 희망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을 이기신 하나님의 승리이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흔들리지 않는 소망이 됩니다.
세상은 우리의 수고를 잊을지라도
주님 안에서 드리는 삶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이번 주일,
고린도전서 15:50-58 말씀을 통해
부활의 소망으로 살아가는 성도의 삶과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무엇인지 함께 묵상합니다.
“부활 신앙,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죽음을 이기신 주님을 바라보며,
오늘도 믿음 안에 굳게 서서
주님의 일에 더욱 힘쓰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적용찬양 : 살아계신 주(주 하나님 독생자 예수)
이번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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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더원공동체 수련회 START!
BUILD UP 🧱✨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우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집으로 세워가시는 주님.
에베소서 2장 20-22절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모퉁잇돌로 삼아
함께 지어져 가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금은 수련회의 첫 시작,
개회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께 마음을 올려드립니다. 🙏
말씀 : 김지훈 목사
이번 수련회가
한 사람 한 사람의 믿음을 세우고,
공동체를 더욱 견고하게 세워가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함께 기도해주세요! 🤍
더온누리교회 더원공동체
#더온누리교회 #더원공동체 #대학부 #수련회
#빌드업 에베소서 예배 공동체
전주 청년사역 🏕️✨
📌 유튜브 태그
더온누리교회, 더원공동체, 대학부, 수련회, 빌드업, 에베소서, 예배, 공동체, 전주교회, 청년사역
🏕️ 2026 더원공동체 수련회 START!
BUILD UP 🧱✨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우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집으로 세워가시는 주님.
에베소서 2장 20-22절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모퉁잇돌로 삼아
함께 지어져 가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금은 수련회의 첫 시작,
개회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께 마음을 올려드립니다. 🙏
말씀 : 김지훈 목사
이번 수련회가
한 사람 한 사람의 믿음을 세우고,
공동체를 더욱 견고하게 세워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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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안내]
우리는 종종
내가 누릴 수 있는 권리와 자유를 먼저 생각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때때로
내 권리를 내려놓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 길을 선택하게 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해
누릴 수 있었던 권리를 기꺼이 포기했습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일,
고린도전서 9:1-23 말씀을 통해
내 권리보다 복음을 앞세우는 삶이 무엇인지,
복음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제자의 길을 함께 묵상합니다.
“권리보다 복음이 먼저!”
내 만족보다 하나님의 뜻을,
내 자유보다 복음의 유익을 선택하는
믿음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적용찬양 : 주님 말씀하시면
이번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함께 만나요.
—
#더온누리교회
#주일예배
#예배안내
#고린도전서
#권리보다복음이먼저
#복음의능력
#제자의삶
#사도바울
#주님말씀하시면
#말씀묵상
#하나님나라
#신앙생활
#SundayService
#FirstCorinthians
#GospelFirst
[주일 예배 안내]
우리는 종종
내가 누릴 수 있는 권리와 자유를 먼저 생각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때때로
내 권리를 내려놓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 길을 선택하게 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해
누릴 수 있었던 권리를 기꺼이 포기했습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일,
고린도전서 9:1-23 말씀을 통해
내 권리보다 복음을 앞세우는 삶이 무엇인지,
복음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제자의 길을 함께 묵상합니다.
“권리보다 복음이 먼저!”
내 만족보다 하나님의 뜻을,
내 자유보다 복음의 유익을 선택하는
믿음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적용찬양 : 주님 말씀하시면
이번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함께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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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안내]
신앙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앞에
나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말씀보다
경험을 앞세우고,
말씀보다
자신의 생각을 더 신뢰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기준은
언제나 말씀 위에 세워집니다.
이번 주일,
고린도전서 4:6-21 말씀을 통해
말씀의 경계를 넘어
스스로 높아지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겸손히 말씀 앞에 서는
참된 제자의 삶을 함께 묵상합니다.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내 생각보다 말씀을,
내 주장보다 복음을,
내 감정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신뢰하는 믿음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적용찬양 : 말씀 앞에서
이번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함께 만나요.
—
#더온누리교회
#주일예배
#예배안내
#고린도전서
#말씀밖으로넘어가지말라
#말씀앞에서
#말씀묵상
#성경적삶
#복음의능력
#제자도
#하나님의말씀
#신앙생활
#SundayService
#FirstCorinthians
#BibleStudy
[주일 예배 안내]
신앙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앞에
나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말씀보다
경험을 앞세우고,
말씀보다
자신의 생각을 더 신뢰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기준은
언제나 말씀 위에 세워집니다.
이번 주일,
고린도전서 4:6-21 말씀을 통해
말씀의 경계를 넘어
스스로 높아지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겸손히 말씀 앞에 서는
참된 제자의 삶을 함께 묵상합니다.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내 생각보다 말씀을,
내 주장보다 복음을,
내 감정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신뢰하는 믿음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적용찬양 : 말씀 앞에서
이번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함께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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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하합니다! 🏅
지난 5월 30일,
호남권 어와나 교회들이 함께 모여
어와나 올림픽을 개최했습니다 🙌
말씀 안에서 함께 배우고,
함께 뛰며,
믿음의 우정을 쌓아가는 특별한 시간 ✨
더온누리교회 어린이들도 멋진 열정과 도전으로 참여하여
🥇 TNT팀 금메달 1개
🥈 TNT팀 은메달 1개
🥉 TNT팀 동메달 1개
그리고
🥉 Sparks팀 동메달 2개를 획득했습니다!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
어와나는 어린이들이 말씀을 배우고 암송하며,
예수님을 닮아가는 제자훈련 공동체입니다 📖❤️
메달의 색보다 더 귀한 것은
하나님 안에서 성장하고 함께 기뻐하는 믿음의 걸음입니다.
열심히 준비하고 참여한 모든 어린이들과
섬겨주신 교사, 부모님들께 감사드립니다 🙏
앞으로도 말씀 안에서 더욱 자라가는
더온누리교회 어와나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
#더온누리교회 #어와나 #어와나올림픽 #전주교회
#전주 #TNT #Sparks #다음세대
#말씀암송 #제자훈련 🏅✨
🏅 축하합니다! 🏅
지난 5월 30일,
호남권 어와나 교회들이 함께 모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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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안에서 성장하고 함께 기뻐하는 믿음의 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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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안내]
삶이 여전히 애굽 같고,
현실이 여전히 광야 같아 보여도
하나님의 약속은 멈추지 않습니다.
창세기의 마지막 장에서
요셉은 자신의 성공이나 업적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를 붙들었습니다.
아직 출애굽은 시작되지 않았고,
약속의 땅도 보이지 않았지만
요셉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미래를 바라보았습니다.
이번 주일,
창세기 50:15-26 말씀을 통해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하나님의 언약을 더 신뢰하는 믿음이 무엇인지 함께 묵상합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돌보시리니”
세상에 익숙해지기보다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순례자의 믿음을 회복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적용찬양 : 여기에 모인 우리
이번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함께 만나요.
—
#더온누리교회
#주일예배
#예배안내
#창세기
#하나님이반드시돌보시리니
#요셉
#하나님의언약
#약속의땅
#하나님나라
#믿음의여정
#여기에모인우리
#말씀묵상
#신앙생활
#SundayService
#Genesis
#GodWillSurelyTakeCareOfYou
[주일 예배 안내]
삶이 여전히 애굽 같고,
현실이 여전히 광야 같아 보여도
하나님의 약속은 멈추지 않습니다.
창세기의 마지막 장에서
요셉은 자신의 성공이나 업적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를 붙들었습니다.
아직 출애굽은 시작되지 않았고,
약속의 땅도 보이지 않았지만
요셉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미래를 바라보았습니다.
이번 주일,
창세기 50:15-26 말씀을 통해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하나님의 언약을 더 신뢰하는 믿음이 무엇인지 함께 묵상합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돌보시리니”
세상에 익숙해지기보다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순례자의 믿음을 회복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적용찬양 : 여기에 모인 우리
이번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함께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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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빛키! 😆✨
우연이 아닌 은혜 🙌
아이들을 위한 축제
더온누리 홀리빛키가
많은 성도님들의 기도와 후원 가운데
은혜롭게 마무리되었습니다 🤍
웃음이 가득했고
행복이 넘쳤던 하루
마음껏 뛰어놀고
함께 웃으며
사랑을 나누었던 그날의 모습을 전합니다 ✨
아이들의 웃음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했던 시간 🫶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더온누리교회
#더온누리교회 #전주교회 #전주 #홀리빛키
#어린이축제 #다음세대 #은혜 #교회행사
#플리마켓 #키즈페스티벌 😆✨
홀리빛키! 😆✨
우연이 아닌 은혜 🙌
아이들을 위한 축제
더온누리 홀리빛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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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껏 뛰어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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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웃음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했던 시간 🫶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더온누리교회
#더온누리교회 #전주교회 #전주 #홀리빛키
#어린이축제 #다음세대 #은혜 #교회행사
#플리마켓 #키즈페스티벌 😆✨
...
[주일 예배 안내]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기대하지 않았던 장소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풍요의 중심이 아니라,
구별된 자리.
눈에 띄지 않지만
하나님의 뜻이 머무는 곳.
이번 주일,
창세기 46:28~47:12 말씀을 통해
왜 하나님께서 야곱의 가정을
고센으로 이끄셨는지 함께 묵상합니다.
“왜 고센이어야 할까요?”
하나님의 계획은
언제나 가장 안전하고,
가장 은혜로운 자리로
우리를 이끄고 계십니다.
적용찬양 : 은혜
이번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함께 만나요.
—
#더온누리교회
#주일예배
#예배안내
#말씀나눔
#창세기
#고센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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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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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안내]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기대하지 않았던 장소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풍요의 중심이 아니라,
구별된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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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일,
창세기 46:28~47:12 말씀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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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센으로 이끄셨는지 함께 묵상합니다.
“왜 고센이어야 할까요?”
하나님의 계획은
언제나 가장 안전하고,
가장 은혜로운 자리로
우리를 이끄고 계십니다.
적용찬양 : 은혜
이번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함께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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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온누리교회
#주일예배
#예배안내
#말씀나눔
#창세기
#고센땅
#하나님의인도하심
#은혜
#주일말씀
#신앙묵상
#Jesus
#SundayService
#Genesis
#Grace
#Faith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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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더 깊은 선교학교]
복의 통로로 살아가는 삶 🙏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듯
오늘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세상을 향해
복을 흘려보내는 사람으로 ✨
2026 더깊은 선교학교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배우고
선교의 비전을 함께 품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
📖 2026 더깊은 선교학교
🗓 06.20 - 07.25 매주 토요일 (6주간)
📍 굿윌센터 2F
🎤 이효재 목사
🎤 주누가 선교사
🎤 김종홍 목사
✈ 단기선교
8월 1일(토) - 8월 4일(화), 일본
🎓 수료식
8월 23일(주일) 2부 예배
—
하나님이 찾으시는
복의 통로로 함께 세워지길 바랍니다 🙌
더온누리교회 THE MISSION
#더온누리교회 #전주교회 #전주 #더깊은선교학교
#선교 #더미션 #복의통로 #단기선교
#일본선교 #mission 🙏✨
[2026 더 깊은 선교학교]
복의 통로로 살아가는 삶 🙏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듯
오늘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세상을 향해
복을 흘려보내는 사람으로 ✨
2026 더깊은 선교학교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배우고
선교의 비전을 함께 품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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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더깊은 선교학교
🗓 06.20 - 07.25 매주 토요일 (6주간)
📍 굿윌센터 2F
🎤 이효재 목사
🎤 주누가 선교사
🎤 김종홍 목사
✈ 단기선교
8월 1일(토) - 8월 4일(화), 일본
🎓 수료식
8월 23일(주일) 2부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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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찾으시는
복의 통로로 함께 세워지길 바랍니다 🙌
더온누리교회 THE MISSION
#더온누리교회 #전주교회 #전주 #더깊은선교학교
#선교 #더미션 #복의통로 #단기선교
#일본선교 #miss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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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
목자의 힘 🙏
사람을 세우는 힘은
화려함이 아니라
진심에서 시작됩니다
함께 웃고
함께 기도하며
다시 붙드는
목장의 본질
주님이 맡기신 영혼을 위해
오늘도 걸어갑니다 🤍
—
더온누리교회
2026 목자수련회
“진정성, 목자의 힘, 목장의 본질”
#더온누리교회 #전주교회 #전주 #목자수련회
#목장 #목자의삶 #공동체 #진정성
#리더십 #기도 🙏✨
진정성,
목자의 힘 🙏
사람을 세우는 힘은
화려함이 아니라
진심에서 시작됩니다
함께 웃고
함께 기도하며
다시 붙드는
목장의 본질
주님이 맡기신 영혼을 위해
오늘도 걸어갑니다 🤍
—
더온누리교회
2026 목자수련회
“진정성, 목자의 힘, 목장의 본질”
#더온누리교회 #전주교회 #전주 #목자수련회
#목장 #목자의삶 #공동체 #진정성
#리더십 #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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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안내]
낮아진 자리,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억울함과 외로움,
그리고 반복되는 현실 속에서도
믿음은 시선을 다시 하늘로 향하게 합니다.
이번 주일,
창세기 39:1-10 말씀을 통해
바닥 같은 인생의 순간에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묵상합니다.
“바닥에서 하늘을 보다”
무너진 자리에서도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다시 길을 여십니다.
이번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함께 만나요.
—
#더온누리교회
#주일예배
#예배안내
#말씀나눔
#창세기
#요셉의믿음
#하나님을바라보다
#믿음의시선
#주일말씀
#신앙묵상
#Jesus
#SundayService
#Genesis
#FaithJourney
#TrustGod
[주일 예배 안내]
낮아진 자리,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억울함과 외로움,
그리고 반복되는 현실 속에서도
믿음은 시선을 다시 하늘로 향하게 합니다.
이번 주일,
창세기 39:1-10 말씀을 통해
바닥 같은 인생의 순간에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묵상합니다.
“바닥에서 하늘을 보다”
무너진 자리에서도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다시 길을 여십니다.
이번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함께 만나요.
—
#더온누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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