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 ㅣ 묵상을 함께 나눕니다
1.식량 기근보다 더 오래된 영적 기근(1-5절)
본문의 시작은 요셉이 애굽에서 고분분투하고 있던 약 20여년(노예생활 13년, 7년의 풍년 이후 기근이 시작 되었으므로) 시간 동안 야곱의 가족도 만만치 않은 시간을 보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먼저, ‘야곱은 이집트에 곡식이 있다는 말을 듣고서, 아들들에게 말하였다. “얘들아, 왜 서로 얼굴들만 쳐다보고 있느냐?(새번역_1절)’ 라고 한다.
생각해 보았다. 야곱만 애굽에 곡식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까? 아니다 형들도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형들이 먼저 애굽에 다녀오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왜일까?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요셉때문이다. 자신들이 발버둥치며 살려달고 애원했던 요셉을 구덩이에게 던지고 지나가는 미디안 상인에게 팔아버렸다. 그들은 애굽으로 내려가던 중이었다. 쉽사리 애굽에 내려가서 식량을 구해와야지 할수 없었던 머뭇거림은 이것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20년동안 형들과 야곱은 요셉에 관한 문제에 있어 철저히 속이고 속임을 당하고 있었다. 그 속임에 자신들은 늘 마음 한구석에 해결되지 못한 짐이 있었고, 야곱은 깊은 슬픔의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영적 기근은 야곱의 가족에게 이미 20년동안 이어지고 있었다. 속이고 속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비참함의 기근(그러나 알 수 없었던 영적 기근)이 무려 20년 이상 지속되고 있었다. 그 시간만큼이나 무디어진 마음도 어쩔수 없었으리라.
또 있다. 야곱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 형들 10명을 보내면서 베냐민은 보내지 않는다. 그 이유가 분명하다. “야곱은 요셉의 아우 베냐민만은 형들에게 딸려 보내지 않았다. 베냐민을 같이 보냈다가, 무슨 변이라도 당할까 보아, 겁이 났기 때문이다(새번역_4절).” 야곱의 편애는 요셉이 실종 된 후 더 심해졌음을 짐작케 한다. 야곱은 20여년전 요셉을 홀로 양을 치러 간 형들에게 보낸 것을 아마도 깊이 후회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 요셉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짐승에게 찢겨 죽지 않았을 것이다며 자책하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냈다. 한 순간도 형들에게 다녀오겠다고 집을 나서는 요셉의 모습을 잊을 리 없었을 것이고 갈기 갈기 찢겨지고 피가 흥건히 묻혀져 돌아온 ‘채색옷’은 밤마다 야곱의 꿈속에서 그의 마음을 헤집었을 것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라헬에게서 태어난 막내 베냐민을 더욱 감쌌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더욱 심화된 베냐민에 대한 편애는 10명의 형들과 야곱과 베냐민 사이의 골을 더욱 깊게 했을 가능성이 크다. 심각한 관계의 기근이 야곱의 가족에게 20여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이제 막 시작된 식량 기근도 문제지만 오랬 동안 지속된 야곱의 가족안의 관계 기근은 어찌할까?
2.형들을 두고 꾼 꿈을 기억하고…(9절)
형들은 요셉이 곡식을 파는 책임자가 되어 있는 사실을 모른 채 그 앞에 나와 엎드린다. 요셉은 형들을 단박에 알아본다(7절). 자신에게 절하는 형들을 보며 20여년도 족히 넘는 그때 꾼 꿈을 기억한다.
창 37장에서 요셉이 꾼 꿈을 소개했다. 두 개의 꿈을 꾸었는데, 첫 번째 꿈이 형들의 곡식단이 자신의 곡식단에게 절하는 꿈이었다. 요셉은 마음 속으로 무릎을 탁 쳤을 것이다! 그 꿈이 바로 이 장면이구나! “…. 요셉의 형들은 거기에 이르러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요셉에게 절을 하였다(새번역_6절 하).” 동시에 두 번째 꿈도 생각해 냈을 것이다. 하늘의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이었다. 첫 번째 꿈이 이루어졌다면 두번 째 꿈도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열명의 형들만 나에게 절하고 있다…
아버지 야곱과 동생 베냐민이 생각 났다. 그들은 아직 애굽에 오지 않았다. 아! 야곱은 꾸었던 꿈을 기억하는 것에서 그 꿈이 이루어 질 것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3.요셉의 큰 그림…(9-17절)
요셉은 형들을 ‘첩자’로 밀어부친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형들은 당황하며 항변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가족들에 대하여 소개한다. “…소인들은 형제들입니다. 모두 열둘입니다. 가나안 땅에 사는 한 아버지의 아들들입니다. 막내는 소인들의 아버지와 함께 있고, 또 하나는 잃었습니다(새번역_13절).”
요셉은 더욱 더 몰아부친다. 첩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면 가나안 땅에 남겨둔 당신들의 막내 아우를 데려오라고 한다. 그러면서 한 사람만 보내어 데리고 와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형들을 사흘동안 감옥에 가둔다(15-16절). 확실하게 첩자로 여기고 있음을 형들에게 각인시키고 있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본다면 형들이 자신에게 절을 하는 순간 자신의 정체를 밝히면 얼마나 통쾌할까! 그런데 요셉은 형들이 자신에게 절하는 그 순간 통쾌한 복수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꾼 꿈”을 기억했다. 지금 당장 형들에게 “보시오! 나의 꿈 대로 지금 당신들이 나에게 절하고 있지 않소!”라며 통쾌하게 복수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먼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한 것이다. 개인의 통쾌한 복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꾸게 하신 꿈이 이루어진 현장에서 나머지 이루어질 꿈을 기억해 낸 것이다. 추측이지만 요셉은 순간에라도 하나님께서 꾸게 하신 꿈을 기억해 내어 감정적인 행동을 억제한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 이런 것 아닐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간다는 것은 순간 순간 내 정욕을 따라 충분히 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기억(꿈, 뜻)을 따라 절제하며 하나님께서 이루실 더 큰 그림을 바라보며 인내하는 삶이다. 어쩌면 인간적으로 가장 통쾌하게 복수 할 수 있는 그 순간, 요셉은 하나님의 큰 그림에 자신의 마음을 절제 시킨다. 너는 과연 인간적인 복수의 통쾌함이 주는 짜릿함 앞에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는 그런 절제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요셉이 참으로 대단하다.
나는?
-상상해 보았다. 요셉은 알았을 것이다. 기근이 시작되면 언젠가 형들도 식량을 구하러 애굽으로 올 것을 말이다. 그때를 어떻게 맞이할까 하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어떤 생각으로 이 날을 준비 했을지는 본문이 힌트를 준다. 형들을 두고 꾼 꿈을 기억했다(새번역_9절). 형들이 절하는 순간 그 꿈을 기억해 냈다. 아니 하나님께서 기억나게 하셨다. 아니다. 그보다 더 확실한 정황은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절하는 형들 앞에서 첩자로 누명을 씌우고 막내를 데려 올 것까지 차분하게 이야기한다.
-지난 20년의 시간 속에 사라지지 못했던, 자신을 노예로 팔아버린 형들의 야속하기만 했던 얼굴들이 자신 앞에서 절하는 순간 피끓는 복수의 마음으로 기억난 것이 아니라 “형들을 두고 꾼 꿈”이 기억 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순간 순간 일어나는 상황에 임기응변하며 사는 삶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를 꿈꾸며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보며 오늘을 사는 것이다. “하늘의 뜻이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고대하기에 인내하고 소망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요셉의 큰 그림(꾼 꿈)을 따라가는 삶의 자세에서 이것을 배운다. 나의 삶에서 하나님이 이루어주시는 인생 역전의 순간은 나의 해묵은 감정을 시원하게 해소하는 시간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뜻과 나라가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으로 살아야 한다.
*주님도 그러하셨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향해 온갖 조롱으로 자극하던 대제사장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에게 얼마든지 그 순간 그들을 벌하실 수 있었다. 하지만 주님은 결심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말이다.
*가장 통괘한 순간은 지금이 아니다. 두 번째 꿈도 이루질 그 순간이 가장 환희의 순간이 될 것이다. 이를 바라본 요셉은 열명의 형들 앞에 철저히 자신을 감추고, 열한명의 형제들이 자신에게 절 할 그 순간을 기다린다. 지금은 샴페인을 터뜨릴 때가 아니다.
*살면서 이런 절제와 인내가 얼마나 필요한지 모른다. 섣불리 터뜨린 샴페인이 얼마나 낯부끄러운 적이 많았던가! 급히 마신 김칫국 때문에 두고 두고 오랜 시간 동안 힘들었적도 있었다. 모든 것이 나의 마음가는대로여서 그랬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 백성은 하나님 말씀하신대로 신중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때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순간을 제대로 누릴 수 있다.
*한편 요셉 만큼이나 고통의 시간을 보낸 야곱의 가족들이 안쓰럽다. 형들은 자신들의 속인 일로 인해 20여년의 삶은 온 가족이 모여도 편치 못했을 것이다. 그 일 이후 언제나 열한 형제는 변함 없었으나 한 명은 잃어버린(?) 형제로 남았다. 이로 인해 온 가족은 늘 보이지 않는 긴장관계가 이어졌을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열명의 형들과 야곱은 콘크리트벽처럼 견고한 벽으로 가로 막혀 있었다. 야곱은 야곱대로 요셉의 빈자리를 베냐민을 더욱 감싸는 편애로 나타냈다. 그러면 그럴수록 형들의 마음은 더욱 차가워 졌을 것이다.
*야곱은 요셉은 지키지 못했지만, 베냐민은 꼭 자기 힘으로 지키겠다고 결심한 듯 하다. 애굽에 식량을 구하려 보내는 열명의 형들과도 구별 시켜 혹시 무슨 일을 당하지 않도록 남겨 두었다. 잃어버린 한 명의 요셉에 대한 트라우마는 똑같이 소중해야 할 열 명의 아들들의 마음에 더욱 깊은 골의 상처를 새기고 있었다.
*자신의 힘으로 지킬 수 있는 것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 하나님만이 온전히 우리를 지켜주실 수 있다. 야곱의 베냐민에 대한 집착은 하나님에 대한 심각한 영적 기근이다. 어쩌면 하나님은 요셉을 지켜주지 못했으니 나는 베냐민을 어떻게 해서라도 지킬거라는 마음으로 그랬을 수 있다. 야곱은 지금 심각한 영적침체에 있는 것이다. 요셉을 잃어버린 후 그 긴 시간을 하나님께 맡김보다 자기 힘으로 견뎌 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야곱과 같은 하나님에 대한 영적기근이 혹시 나에게도 있지 않을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런 영적 기근이 심할 수록, 자기결정, 자기 변호가 견고해 짐을 야곱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나에게 나의 힘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는 하나님과의 관계 풍년이 풍성했으면 좋겠다. 육적 기근이 삶을 힘들게 할 때에도 성령충만함으로 넉넉히 인내하는 풍성한 영적 풍년의 삶이기를 소망한다. 오늘도 주님과의 풍성한 교제 가운데, 말씀대로 이루실 그때를 바라보며 인내하고 절제하는 순간 순간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여년 만의 형제 상봉은 형들은 알아채지 못했고, 요셉은 그 순간 “형들에 대하여 꾼 꿈”을 기억해내며 만났다. 형들은 기근으로 인해 마지못해 애굽으로 내려왔지만, 요셉은 이 날을 기다렸을 것이다. 20여년 만에 꿈 하나가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두 번째 꿈도 곧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실 꿈의 순간을 기다리며 오늘 이루어진 꿈을 기억하며 절제하는 요셉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뜻(큰 그림)을 따라 사는 인생을 배운다!
*기근은 애굽에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온 땅’에, 가나안 땅에도 기근이 덮쳤다. 그런데 야곱의 가족의 영적 기근은 20년동안 지속 되고 있었다. 요셉을 애굽으로 가는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아넘기고, 그의 채색옷에 피를 흥건하게 묻히며 아버지 야곱을 속인 그 날부터 이미 영적 기근은 덮친 것이다. 그 오랜 시간동안 형제들은 요셉에 관해서는 늘 아버지 야곱에게 거짓말을 유지했고, 아버지 야곱은 요셉을 형들에게 심부름 보낸 것에 자책하며, 고통속에 울부짖었다. 막내 베냐민에 대한 과잉보호(편애)가 점점 더 도드라졌다.
*온 땅에 찾아온 기근은 20년 넘게 야곱의 집안을 묶고 있던 거짓과 편애의 사슬을 끊으려고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어김없이 찾아온 것이다. 영적 기근을 깨뜨리시기 위해 기근을 부르셨다. 참으로 아이러니 아닌가. 영적 기근을 끝내시기 위해 온 세상의 기근을 불러 오셨다.
매일묵상 ㅣ 묵상을 함께 나눕니다
1. 요셉이 높아지다(37~45절)
37~39절은 요셉의 해몽과 대안에 매료된 바로와 신하들을 묘사한다. 그들은 요셉의 해석에서 ‘신적 지혜와 영감’을 인식한 것이 틀림없다. ‘하나님의 영이 그 안에 있는 사람’을 만나보기 어렵다고 말했기 때문이다(38절). 그리고 요셉에게는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알게 하셨고’ 그렇기 때문에 ‘요셉과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다’고 말한다(39절).
애굽의 바로가 ‘하나님의 영’에 대해 언급하다니 충격적인 모습이다. 바로는 요셉이 믿는 하나님에 대한 인정을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에게 지혜와 영감을 주신 하나님의 역할과 능력은 인정한 것이다. 한편, 요셉은 바로의 꿈을 해석할 수 있는 특별한 지혜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알게 하셨기 때문이다(38~39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는 지혜와 명철을 실감하게 한다(잠 1:7, 23).
40~44절은 바로가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세우는 장면이다. 바로는 이제 요셉에게 새로운 역할을 부여한다. 그곳은 (바로의) ‘내 집을 다스리라’는 것이다. 앞서 보디발(39:4~6)이나 간수장(39:22~23)이 그랬듯이 바로도 애굽을 요셉의 손에 넘긴 것이다. 그러면서 바로는 요셉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라고 말하며, 그러한 위치에 있는 요셉에게 애굽의 모든 백성이 복종할 것이라고 말한다(40절). 바로는 요셉에게 한 자신의 말대로 즉시 실행한다. “총리”라는 개역개정 번역은 히브리어 본문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원문은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위에 세운다”고 말할 뿐이다. 물론 애굽의 온 땅을 요셉에게 맡기겠다는 의미다(41절). 그리고 난 후 바로는 요셉에게 자신의 인장반지를 끼워주고 세마포 옷을 입혔으며 목에 금 사슬을 걸어주고, 자신의 버금 수레에 타게 하였다(42~43절). 이때 사람들이 그 앞에서 ‘엎드리라’고 외쳤다. 요셉에게 존경과 예의를 표하라는 의미다.
이렇게 바로는 요셉을 애굽 온 땅을 다스리는 위치에 있게 하였다. 이후 바로는 애굽 최고 통치자로서 요셉의 위치를 한 번 더 강조한다(44절). ‘애굽 온 땅에서 네 허락없이는 수족을 놀릴 자가 없으리라’는 것이다. 직역하면 ‘네가 없이는 아무도 애굽 온 땅에서 자기 손이나 발을 들어 올릴 수 없다’는 의미다. 애굽 온 땅 백성의 일거수일투족이 요셉의 결정에 달렸다는 의미다. 요셉은 바로는 아니었지만 바로와 같은 위치에 있게 된다. “왕은 아니었지만, 통치자가 되었다.”
45절은 요셉의 변화된 삶을 소개한다. 바로는 요셉에게 새 이름을 주고 아내를 얻게한다. 요셉의 새 이름은 ‘사브낫바네아’라는 애굽식의 이름이었다. 또한 ‘온(헬리오폴리스)’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과 결혼하게 된다. 이로써 요셉은 애굽의 온전한 일원이 된다. 이때 나이가 30세였다. 구약에서 30세는 인생 최고의 전성기를 의미한다. 어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늙지도 않은, 일하기에 안성맞춤인 나이였다. 참고로 레위인의 직무 개시 나이가 30세였고(민 4:2 이하), 다윗이 왕직을 수행한 나이가 30세였다(삼하 5:4).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 시기도 30세였다(눅 3:23).
요셉은 애굽 통치자로 임명된 후 애굽 전역을 순찰하기 위해 밖으로 나간다.
2. 요셉이 애굽을 돌보다(46~57절)
46~49절은 일곱 해 풍년 때에 곡물을 저장하는 요셉의 모습을 그린다. 요셉의 해몽대로 일곱 해 풍년이 들었다. 토지 소출이 매우 많았다(47절). 요셉은 7년 곡물을 거두어 각 성에 저장하게 하였다(48절). 백성들은 쌓아둔 곡식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아서 그것을 세기를 그쳤다(49절).
50~52절은 흉년이 시작되기 전에 두 아들이 태어나는 것(50절)을 보여 준다.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 낳아준 아들들이다. 요셉은 자신의 아들들의 이름을 직접 지어 부른다. 첫째 아들의 이름을 ‘므낫세’라고 짓는다. 이는 하나님이 자신의 모든 고난과 자신의 아버지 집의 모든 일을 ‘잊게(나샤)’ 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51절). 둘째 아들의 이름은 ‘에브라임’이라고 짓는다. 하나님이 자신을 ‘궁핍의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기 때문이라는 의미였다(52절).
요셉의 두 아들은 애굽의 최고 전성기에 태어났다. 요셉의 생애 주기만이 아니라 애굽의 풍요를 고려하더라도 그렇다. 요셉의 아들들의 이름에는 요셉의 경험과 현재 삶에 대한 그의 신앙고백이 들어있다. 하나님은 므낫세의 출생을 통해 요셉 그가 경험했던 모든 ‘고난’을 잊게 하셨다. 특히 추측하기로는 자신을 이토록 어려운 처지로 몰아넣었던 형제들에 대한 나쁜 감정들을 털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또한 ‘에브라임’이라는 이름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번성함’을 고백한다. 7년의 풍년은 이러한 하나님의 복과 은혜의 실제적 모습이다. 요셉은 두 아들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의도하지 않았을테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베푸신 복과 은혜를 찬양하는 셈이 되었다. 무엇보다 요셉은 두 아들의 이름을 히브리식으로 지었다. 그의 아들들을 애굽인으로 간주하지 않은 것이다.
53~57절은 7년 흉년 때 창고를 열고 곡물을 파는 모습을 보여 준다. 바로의 꿈으로 보여 주신대로 일곱 해 풍년이 지나고 일곱 해 흉년이 찾아온다. 이때 모든 나라에 기근이 있었으나 애굽 온 땅에는 양식이 있었다(54절). 7년 풍년을 통해 쌓아놓은 곡식을 흉년 때문에 바로에게 부르짖는 백성을 향해 요셉에게 가서 그의 말을 들으라고 말한다(55절). 요셉은 모든 창고를 개방하고 저장해 둔 곡물을 백성들에게 판다(56절).
그런데 ‘온 땅에’ 기근이 심하자 ‘온 땅에서’ 곡식을 사려고 애굽의 요셉에게로 왔다(57절). 그들 가운데 요셉의 형제들도 있었다. 저자의 이러한 언급은 독자의 시선을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돌리게 한다. 이야기의 무대가 전환되는 셈이다.
모든 일이 요셉의 해석대로 되었다. 바로의 꿈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바로 꿈의 성취와 실현은 요셉의 꿈의 성취이기도 했다. 요셉은 ‘다스리는 자’로서 자기 가족뿐 아니라 온 세계 앞에 서게 되었다(37:8, 10). 요셉은 바로의 꿈을 해석하기에 앞서서 하나님께서 샬롬의 응답을 주실 것이라고 말했다(41:16). 이 ‘샬롬’은 단순히 바로와 애굽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요셉을 비롯한 야곱 일가와 온 땅에 주시는 ‘샬롬’이었다.
나는?
-바로는 요셉의 해몽을 듣고 이 꿈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고, 요셉은 그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이라고 인정한다. 그런 자만이 이 꿈이 가리키는 애굽의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고백한다. 이것은 요셉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다. 요셉은 다만 하나님의 도구로 충실하게 쓰임 받았을 뿐이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해드리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하라고 하는 것을 하나님이 보여주신 만큼만 하면 된다.
-놀랍게도 바로는 모든 애굽의 관리들과 지혜자들을 제치고 요셉을 애굽에서 자기 다음 가는 권력의 자리에 앉힌다. 그를 총리에 임명한다. 일순간 일개 죄수이자, 노예가 애굽의 2인자가 되었다. 이는 바로가 요셉을 인정하였고, 그 배후에 있는 하나님을 인정하였으며, 그가 마련한 대책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역전이고 반전이다. 하나님께 신실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 바로의 꿈을 이루어주시기 전에 요셉에게 주신 자신의 꿈을 이루고 계신다.
-요셉이 총리에 오른다. 야곱의 채색 옷이 총리의 ‘세마포 옷'(42절)으로 바뀐다. 17세에 집을 떠나 30세에 총리에 오를 때까지 13년 동안 하나님은 그와 동행하시면서 친히 이 계획을 이루셨다. 형제들의 시기심과 보디발 아내의 빗나간 욕정과 술 맡은 관원의 망각마저 모두 선하게 사용하셨다. 요셉은 애굽뿐 아니라 온 지면에 닥친 기근 때문에 각국에서 곡식을 구하러 온 백성을 구한다. 아브라함을 통해 열국이 복을 받으리라던 약속(창 12:3)이 성취되고 있었다.
-애굽 왕 바로는 꿈 앞에서 쩔쩔매고 근심하지만, 하나님의 사람 요셉은 완전한 통치권을 행사한다(“모든”이라는 표현이 무려 11회 사용된다). 요셉의 하나님만이 온 세상의 완전한 통치자시다.
*요셉이 이처럼 애굽 온 나라를 책임지게 된 것은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요셉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과 동행하며 성실하고 정직하며, 거룩하게 살았다. 또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였다. 애굽 왕도 요셉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사람이라고 인정하였다. 사람들은 높은 자리에 올라간 것만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전에 요셉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생각해야 한다. 요셉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형편, 상황에 처하든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었다. 나는 어떤가?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고 제사장의 딸과 결혼하여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권세와 영화를 얻는다. 하지만 권력도, 돈도 명예도 그저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위해 맡기신 것일 뿐 요셉의 영달이나 누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이전 보디발의 집에서, 감옥 안에서, 그저 최선을 다한 것처럼 총리가 된 다음에도 하나님이 뜻하신 일을 최선을 다해 이룰 뿐이었다.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권력과 영광을 최대한 활용하여 일곱 해 풍년 동안 많은 양식을 저장한다.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달아 그대로 순종하는 일관된 믿음을 배워햐 알 것이다.
*이런 면에서 요셉은 두 아들에게 자신의 믿음(신앙고백)을 담은 듯하다. 므낫세는 ‘잊는다’는 뜻으로 지난 모든 아픔을 그 아픔의 시발점인 아버지 집의 일과 함께 다 잊기로 했다. 에브라임은 ‘두 배의 과일’이라는 뜻이다. 고난보다 큰 복을 주셨음을 고백한 것이다. 보디발의 집과 감옥에서 고난을 잘 이겨낸 것도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는 믿음이었고 한 나라를 다스리는 일뿐 아니라 나중에 형들의 잘못을 용서한 것도 결국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이 믿음 더욱 내 안에서 굳세라.
매일묵상 ㅣ 묵상을 함께 나눕니다
1. 요셉의 꿈 해석(25~32절)
요셉은 바로가 말한 대로 두 꿈은 ‘하나’의 꿈이라고 확인해준다. 또한 그는 그 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그분이 조만간 ‘하실 일’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라고 알려준다. 요셉은 바로의 꿈을 네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두 꿈은 하나의 꿈이다. 둘째, 일곱 마리 소와 일곱 이삭은 7년을 상징한다. 셋째, 7년의 풍년 후 7년의 흉년(기근)이 따를 것이다. 넷째, 두 번의 꿈은 그 일이 속히 분명하게 이루어질 것을 뜻한다.
이어 요셉은 꿈의 전체 의미를 설명한다. 온 애굽 땅에 일곱 해의 풍년이 있으나 그 후에 일곱 해의 흉년이 들 것이고 흉년이 너무 심하여 이전 풍년을 기억하거나 알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 사실을 나타내는 꿈을 바로가 두 번 반복하여 꾼 것은 하나님께서 이 일을 ‘확정’하셨다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요셉은 하나님이 이 일을 속히 행하실 것이라고 강조한다(32절).
요셉의 해몽을 통해 바로의 꿈이 지니는 의미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바로의 꿈은 하나님의 계시의 수단이며, 하나님께서 확정된 계획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는 미래의 사건에 대한 지식으로만 작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적절한 대응을 요구한다. 그래서 요셉은 바로에게 꿈을 통해 보여주신 사건들에 대한 대비책을 일러준다.
2. 요셉의 대비책 제안(33~36절)
요셉은 바로에게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뽑아 애굽 땅을 다스리게 하라고 제안한다(33절). 그리고 34절에서는 나라 안에 감독관을 두어 일곱 해 풍년 동안 수확물의 5분의 1을 거두게 하라고 말한다. 이어서 요셉은 장차 있게 될 풍년의 모든 곡물을 거두어 바로의 권한 아래 그것을 흉년 때의 양식을 위하여 성읍에 쌓아두고 보존하게 하라고 말한다(35절). 그리고 요셉은 이러한 조치의 의미를 설명한다(36절). 그것은 일곱 해 동안 임할 흉년을 대비하는 것이다. 이런 조치를 통해 애굽 땅의 사람들이 흉년 동안 죽지 않고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요셉의 대비책 제안은 바로가 기대하지 않았던 해몽의 영역이었다. 바로는 요셉에게 단지 신통력 있는 해몽을 원했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지혜로 가득 찬 요셉은 대안까지 내놓게 된다. 그가 내놓은 대책은 삼중적이다. 먼저 장관을 임명하는 것, 그리고 지역 감독관을 임명하는 것, 마지막으로 국가적 배급 제도를 제도화하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요셉이 바로 그 적임자다. 요셉이 이 자리를 기대했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 그는 그저 히브리 출신의 종일 뿐이다. 다만 진심으로 하나님이 하실 일을 미리 보여 주셨으니 이 일의 적임자를 구해 적극적으로 대비하라고 조언했을 뿐이다.
바로가 요셉의 조언대로 풍년이 깃든 7년 동안 창고에 곡물을 대량으로 저장한다면, 애굽은 7년 대흉년이 와도 망하지 않을 것이다. ‘망하다’는 문자적으로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를 뜻한다. 이 단어는 창세기에서 두 번 사용된다(9:11; 17:14). 특히 노아 홍수로 인한 세상의 멸망을 ‘끊어짐’으로 표현현 했다(9:11). 이처럼 위중한 표현을 바로의 꿈을 해석하면서 사용한 것이다. 국운이 걸린 흉년(가문, 기근)에 철저하게 대비하지 않으면 애굽은 멸망할 것이다.
나는?
-말씀이 기록되기 전, 특히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이 꿈으로 그분의 뜻을 나타내시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즉, 꿈은 계시의 한 방편이었다(민 12:6).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꿈에 나타나 언약을 확인해주셨고(창 28:12~15), 요셉에게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꿈을 통해 가르쳐주셨다(창 37:5~11). 오늘날에도 꿈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의 분명한 뜻은 말씀에 모두 기록해두셨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원할 때는 언제나 말씀을 바탕으로 판단하고 실천해야 한다. 말씀을 무시한 채 신비한 체험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려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이다.
-바로에게 주신 꿈을 통해 애굽에 앞으로 7년 동안 풍년이 있다가, 7년 동안 흉년이 있을 것을 말려주시는 하나님이시다. 나일강의 풍족한 수원을 의지하여 번영을 구가하던 애굽에 기근이 닥친다는 것은 이 거대한 나라 스스로 생명을 만들어낼 수 없는 무능한 존재이며 죽음의 위협 앞에서는 철저하게 무기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역사는 힘을 가진 자가 만들고, 농사는 자연현상에 따라 그저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존재하는 모든 것의 미래를 장악하고 계시는 분이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그분의 말씀 앞에 복종할 대상이다. 인간은 힘을 가진 듯 보이나 하나님의 주권 앞에서는 철저하게 무기력하다.
-요셉은 꿈을 해석할 뿐 아니라 미래에 대처할 방안까지 제시한다. 명철하고 지혜로운 인재 등용과 행정 제도의 정비, 풍년 때 흉년을 대비하는 경제 제도 등 탁월한 정책을 내놓는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이겠지만, 보디발의 가정 총무로 일하면서, 감옥의 모든 일을 맡으면서, 왕실 감옥에서 죄수들과 조우하면서, 꿈에 대비할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사람으로 훈련되고 연단되었을 것이다. 함께하여 도우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성실로 응답하여 산 결과일 것이다.
-요셉은 꿈을 해몽하고 앞날을 대비하는 대안까지 들려주었다. 지난날의 경험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지금은 온 나라를 위한 멋진 정책을 제안하나, 지난날 훈련받을 때는 그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하나님이 쓰시려는 순간 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가 걸어가는 모든 순간은 하나님의 도구가 되기 위한 준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꿈은 우리가 인생의 주인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가 살 길은 우리의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을 기억하고 그 꿈이 우리 안에서 먼저 실현되도록 믿음으로 살며, 그 꿈을 나를 통해 실현하려고 하실 때, 감당할 준비를 사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꿈은 ‘부르심’이나 다름 없다. 부르심에 대답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삶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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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로의 두 꿈(1~7절)
하나님이 요셉이나 두 관원장에게 꿈을 통해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리셨듯이(37; 40장), 이번에는 바로에게 꿈으로 그의 뜻을 펼치신다. “만 이년 후(요셉의 꿈 해석대로 술 관원장이 복직된 이후)” 바로는 두 꿈을 꾼다. 이때 요셉의 나이는 30세였다(41:46).
첫 꿈은 바로가 나일강 가에 서서 목격한 장면이다(2~4절).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강에서 올라와 물을 먹는 모습에 이어, 흉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가 올라와 좋은 암소들을 삼켜 버리는 모습이다. 이때 바로가 꿈에서 깬다. 바로가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는 다시 잠들어, 두 번째 꿈을 꾼다(5~7절). 이번에는 한 줄기에서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이어서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돋아나 앞서 좋은 돋아나 앞서 좋은 이삭들을 삼키는 장면이다. 그가 깨어보니 꿈이었다(7절).
바로의 꿈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이 각각 일곱씩 등장하고, 뒤에 나온 나쁜 것이 앞의 좋은 것을 삼켜버린다는 동일한 전개가 반복된다. 바로의 두 꿈은 특히 요셉의 두 꿈(37:7, 9)과 대비된다. 첫째, 요셉의 꿈에 곡식 단과 해,달,별이 등장하여 가족 관계 및 요셉 개인의 지위와 관련된 상징을 나타낸다면, 바로의 꿈은 암소와 이삭이 나타나 국가 경제와 생존을 좌우하는 상징을 묘사한다. 특히 나일강은 애굽의 생명과 풍요의 근원이며, 암소와 이삭은 매년 강의 범람으로 이루어지는 목축과 농경을 대표한다고 추측할 수 있겠다. 둘째, 요셉의 꿈에는 12(곡식 단, 별)라는 가족 관련한 숫자가 등장하고 바로의 꿈에서는 의미가 밝혀지지 않은 숫자 7이 반복된다. 셋째, 요셉과 바로의 꿈은 같은 내용이 다른 두 상징으로 반복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는 그 꿈이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는 강한 암시를 준다. 넷째, 두 사람의 꿈은 해석의 확실성에서 차이를 나타낸다. 요셉의 꿈에서 곡식 단과 해,달,별은 각각 형제와 가족을 가리키며, 요셉이 경배받는 장면은 그가 통치자가 될 것이라는 분명한 해석을 드러냈다(37:8, 10).
2. 술 관원장의 요셉 추천(8~13절)
바로는 자기가 꾼 꿈을 해석할 수 있는 해석자를 찾는다. 그 과정에서 마침내 요셉의 이름이 언급된다. 바로는 뒤숭숭한 마음에 애굽의 점술가와 지혜자(현인)를 모두 불러 모은다(8절). 애굽을 포함한 고대 사회에서는 꿈을 신의 계시로, 왕을 신의 아들로 여겼다. 이런 차원에서 꿈의 의미를 구하는 것은 곧 통치 행위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무엇보다 당시 꿈을 해석하는 일은 일반인이 시도하는 일이 아니라,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이들이 감당하는 일이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점술가와 술객(현인, 지혜자)은 신들의 뜻을 전하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그들은 엘리트 집단으로서 왕과 귀족을 위해 꿈 해석, 길흉 판단, 질병 치유 등 다양한 역할을 감당했다. 하지만 이들은 바로의 꿈 이야기를 듣고서 어떤 해석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이 꿈을 아예 해석하지 못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바로가 만족하고 납득할만한 해석이 없었다는 의미다. 그들은 이 두 꿈을 각각 별개로 해석했을 가능성이 크다(12, 26절).
이때 술 맡은 관원장이 비로소 요셉을 기억한다(9~13절). 요셉을 위한 하나님의 때가 이른 것이다. 그는 ‘내가 오늘 내 죄들을 기억하나이다(자카르)’라고 입을 연다. ‘내 죄들’은 바로에게 지은 죄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요셉이 ‘나를 기억해 달라(자카르)’라는 부탁(14절)을 잊은 잘못(19절)을 암시하기도 한다. 그는 바로가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친위대장의 집에 가둔 일을 상기시킨다. 이어 감옥에서 겪은 일을 왕에게 진술하며 요셉을 자연스럽게 소개한다.
그와 빵 관원장은 같은 밤 해석이 필요한 꿈을 각자 꾸었다. 그때 그곳에서 자기들을 시중들던 친위대장의 종 히브리 청년이 꿈을 해석해 준 것을 고한다. 그가 해석해 준 대로 자신은 복직되고 빵 관원장은 매달렸다는 것이다. 그는 요셉을 죄수가 아닌 “친위대장의 종”이자 “히브리 청년”으로 소개한다(12절). 이는 요셉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줄이고 신뢰할 만한 자임을 부각하기 위한 표현이자. 그가 요셉의 억울함의 호소(40:15)를 기억했고, 정직한 증언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암시한다. 또한 “히브리 청년”이라는 표현을 통해 요셉이 이방인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이후 애굽의 지혜자들이 풀지 못한 것을 풀어내는 요셉의 모습을 대비 시킨다. 뿐만 아니라 앞서 “히브리 사람, 히브리 종(39:14, 17)”에 이어 “히브리 청년”으로 거듭 언급됨으로써, 요셉의 민족 정체성을 두드러지게 표출한다. 이는 장차 이어질 야곱 가족의 이주를 통한 히브리인의 정착과 먼 훗날 이어질 출애굽 서사의 출발을 예고한다.
3. 바로 앞에 선 요셉(14~24절)
요셉은 즉시 바로에게 소환된다. 요셉이 옥에 갇혀 있는 히브리 종임을 알고서도 소환했다는 것은 바로에게 꿈 해석이 얼마나 절박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람들은 급히 요셉을 옥에서 내보냈다(14절). “급히 내보냈다”는 원래 “뛰게 했다”는 뜻으로, 상황의 긴박감을 충분히 표현해 내고 있다.
요셉은 왕 앞에 서기 위해, 머리와 수염을 밀고 죄수복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 입는다. 이 장면도 요셉의 극적 변화를 암시하는 충분한 복선이 된다. 바로는 요셉에게 자신이 꿈을 꾸었지만, 해석자가 없다고 말한다. 이는 두 관원장이 했던 동일한 말로(40:8), 요셉의 해석 능력을 기대하게 한다.
바로는 “내가 너에 대해 들으니, 너는 꿈을 들으면 해석한다고 하더라”라고 언급한다. 이는 애굽의 최고 지혜자들이 모두 풀지 못한 꿈을 일개 이방인 종이 해석할 수 있을까라는 일종의 의구심이다. 이에 요셉은 담담하게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샬롬)으로 답하실 것”이라며, 그의 말을 바로잡는다. 요셉의 이 말은 해석이 하나님께 있음(40:8)을 재선언하는 것을 넘어 그 결과까지 하나님께 달렸음을 선포하는 담대한 신앙고백이다.
17~24절은 바로가 요셉에게 자신의 꿈을 들려주는 장면이다. 기본적으로 1~7절과 내용이 비슷하다. 그러나 불길함을 증폭시키는 과장된 표현이 등장하는데, 먼저 두 번째로 등장하는 흉한 암소에 대한 묘사가 “흉하고 파리한(3절)”에서 “약하고 심히 흉하고 파리한(19절)”이라는 표현으로 악화했다. 여기에 그 몰골이 애굽 온 땅에서 본 적이 없을 만큼 흉하더라는 내용을 부연했다(19절). 또 그 암소들이 살진 암소들을 삼킨 뒤에도, 전혀 나아지지 않고 처음처럼 흉했다는 묘사도 추가되었다(21절). 그리고 둘째 꿈에서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라는 표현이 ‘마르고(개역 개정 번역에서는 빠져 있음, 23절)’라는 표현이 더해져서 황폐함이 강조되었다.
이러한 표현의 변화는 바로가 그만큼 그가 꾼 꿈에 대한 충격이 잠에서 깬 후에 더 커졌고, 이를 매우 위중한 사태로 인식했음을 암시한다.
나는?
-바로는 대제국 애굽의 왕이다. 그의 말은 곧 창조가 되고 사건이 된다. 그는 모든 상황을 통제한다. 자기의 말 한마디로 타인과 타국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자였다. 이런 측면에서 내일이라는 시간은 그가 원하는 대로 오는 시간이다. 아무도 그의 나라를 넘볼 수 없다. 그런데 꿈이 그를 습격했다. 새로운 역사가 미래로부터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낮의 사람일 뿐 밤의 사람이 아니었다. 밤과 잠과 꿈은 다른 인간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인간으로 만든다. 권력이 거세된 보통 사람이 되게 한다. 속수무책의 평범한 사람이 되게 한다. 무엇보다 자신보다 더 큰 운명과 역사의 주관자 앞에 서게 만든다. 그것이 꿈이다. 바로에게 꿈은 자신이 인간임을 깨닫게 하는 바로미터였다.
-그 자체가 신이자, 법이며, 늘 분명하고 확실한 메시지를 전하고 명령만 내리는 존재이던 왕이 두 번의 꿈 때문에 자신의 모든 권력도 감당하지 못한 근심에 빠진다. 그 나라에서 제일 지혜롭고 탁월하다던 술객들과 박사들도 이 꿈 앞에서 무기력할 뿐이다. 그는 현재를 자기 마음대로 지배하고 통제할 수 있고, 자신의 힘과 지식과 자원으로 내일도 안전하게 맞이할 수 있다고 늘 장담(?)했다. 그러나 그도 어리석은 인간일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된다. 이를 통해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미래를 말할 수 없는 나라는 강대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이 애굽의 분명한 한계였다. 동시에 바로의 분명한 한계였다.
-술 맡은 관원은 2년 전 일을 기억하고 바로에게 요셉을 천거한다. 2년은 망각의 시간이자 하나님의 최적기를 위한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이 순간에 요셉은 왕이 히브리 소년의 꿈 해몽 능력을 자기 나라의 술객이나 박사들 수준으로 미덥지 않게 생각하자, 꿈 해석 능력이 왕의 생각대로 자신에게 있지 않음을 인정하고, 그 대신 하나님의 능력을 고백한다. 자신은 ‘꿈을 꾸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꿈을 이루고 해석하는 ‘수단(통로)’에 불과하다고 고백한 것이다.
-요셉은 꿈을 해석하기 전에 그 해석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두 번이나 강조한다. 자신에게 주목하게 하기보다는 하나님께 주목하게 하며, 자신은 물론이고 애굽의 운명과 바로의 운명이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꿈을 주신 이유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 백성은 각자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요셉은 혹시나 하고 술 맡은 관원을 기대했지만, 아무런 소식 없이 두 해를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이 기간 동안 요셉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기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시 105:19).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뒤늦게 깨닫고 할렐루야를 외칠 때도 있지만, 아무 의미도 알 수 없고, 까닭도 알 수 없는 때가 더 많은 것이 인생이다. 그래도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고 굳게 믿고 기다리는 것이 참 믿음이다.
*하나님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꿈을 통해 애굽 왕에게 알리시지만, 애굽의 술객과 박수들이 해석하지 못하게 하셨다. 이는 요셉으로 그 꿈을 해석케 하여 요셉을 온 애굽의 통치자로 세우고자 하심이었다. 그렇게 하여 요셉은 온 애굽 사람을 구원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야곱의 가족들까지 애굽으로 불러, 거기서 큰 민족을 이루도록 준비하신 것이다. 역사를 언약하신 대로 주관하시며 큰 구원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신다. 바로가 이상한 꿈을 꾸어 마음이 뒤숭숭했고, 아무도 그 꿈을 해석하지 못하자 불안해졌다(8절). 그 다급하고 불안한 마음이 요셉이라는 무명의 인물을 나라의 최고 책임자로 세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준비였음을 깨닫게 한다.
*아무도 왕의 꿈을 풀이할 수 없는 심각한 상황에서 숱 맡은 관원은 비로소 요셉이 생각났다. 그의 망각 덕분에 요셉은 가장 극적인 순간에 왕 앞에 설 수 있었고 금세 신뢰를 얻어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었다. 사람의 망각과 회상까지 사용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놀랍고 놀라우신 하나님 아니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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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사랑은 형제들 사이에 깊은 균열을 만들어 낸다. 형들은 아버지가 요셉을 자기들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평안하게 말하지 못한다(4절). 여기에 더해 요셉의 꿈 이야기는 그들의 분노를 더욱 자극한다. 요셉은 곡식 단들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과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을 꾸고 이를 형들과 아버지에게 말한다(5-11절).
이 꿈은 단순한 소년의 상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적 꿈이었다. 그러나 형들에게는 교만으로 들렸고, 아버지에게조차 당혹스러운 이야기였다. 결국 형들의 마음에는 미움이 쌓이고 또 쌓인다. 그러던 중 요셉은 형들의 안부를 살피기 위해 세겜으로, 다시 도단으로 보내지게 된다(12-17절). 이것은 하나님의 큰 섭리를 향한 출발점이었다.
1. 하나님의 계획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시작된다(1-4절)
요셉의 이야기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양을 치는 일상’ 속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그 평범한 일상 속에 하나님의 계획이 이미 흐르고 있었다. 야곱의 편애는 분명 인간적인 실수였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연약함조차 사용하셔서 더 큰 구원의 이야기를 이루어 가신다. 요셉이 채색옷을 입은 것은 형들의 시기를 불러일으켰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계획이 진행되는 계기가 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일은 시작된다. 때로는 우리의 부족함과 관계의 갈등조차도 하나님은 사용하신다.
2. 하나님의 뜻은 오해와 갈등 속에서도 이루어진다(5-11절)
요셉의 꿈은 분명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었다. 하지만 그 꿈은 즉시 이해되지 않았다. 오히려 갈등을 일으켰다.
형들은 요셉을 더욱 미워했고, 아버지 야곱도 그 말을 책망한다. 그러나 중요한 표현이 있다.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11절).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마음에 담아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항상 즉시 이해되지 않는다. 때로는 오해를 낳고, 갈등을 일으키며, 심지어 관계를 흔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계획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요셉의 꿈은 훗날 애굽에서 정확히 이루어진다. 지금은 오해와 미움의 시작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로 나아가는 출발점이었다.
3. 하나님의 부르심은 순종의 걸음을 요구한다(12-17절)
요셉은 아버지의 명령을 따라 형들을 찾아 나선다. 세겜에 갔다가 그곳에 형들이 없자, 다시 도단까지 찾아간다. 이 여정은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다.
요셉은 아무것도 모른 채 순종하여 길을 떠났지만, 그 길 끝에는 형들의 배신과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길이 바로 하나님이 준비하신 길이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언제나 ‘순종의 걸음’을 요구한다. 결과를 다 알지 못해도,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도,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
요셉의 순종은 결국 애굽의 총리가 되는 길로 이어지고, 이스라엘을 기근에서 살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통로가 된다.
나는?
-요셉처럼 나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다는 확신이 있는가? 아니면 눈앞의 상황만 보고 흔들리고 있는가?
-내 삶 속의 관계의 갈등과 오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그것이 하나님의 더 큰 계획의 일부일 수 있음을 믿는가?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나는 계산하며 머무르는가, 아니면 요셉처럼 “예, 가겠습니다” 하고 순종의 길을 걷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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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도 역시 ‘그 후에’로 시작한다. 보디발 아내의 모함으로 감옥에 갇힌 후 라는 의미다. 상황은 이렇게 늘 변한다. 비록 노예로 애굽에 팔려 보디발의 집에 들어왔으나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본 주인 보디발은 그에게 모든 가정사를 맡겼다. 노예로서 비교적 안정된(?) 삶을 살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 상황은 한 여인의 욕정(?) 탓에 순식간에 돌변한다. 그렇게 요셉은 주인 보디발의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리고 그곳 간수장도 역시 요셉의 남다름을 보게 되고 감옥의 모든 일을 그에게 맡겼다. 감옥안에서 누릴 수 있는 최선의 안정적인 환경이 요셉에게 주어졌다. 하지만 감옥은 감옥이다.
본문은 “꿈”이야기다. 요셉 본인의 꿈 이야기가 아닌 두 사람이 꾼 꿈과 이와 관련된 이야기다. 본문까지 요셉의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흘러 오게 된 것도 어찌 보면 요셉이 꾼 두 개의 꿈이 영향을 미쳤다. 그 꿈 이야기를 솔직하게 했다가 형들의 미움은 격화 되었고, ‘어디 우리가 너를 죽여도 네 꿈대로 이루어지는 보자!’(창 37:20) 서로 이야기하며 요셉을 결국 노예로 팔았다. 그런 꿈 이야기다.
요셉은 자신이 꾼 꿈 이야기를 순진(?)하게 섣불리 이야기 했다가 결국 노예로 팔려 애굽까지 흘러 들어왔다. 성경 본문은 꼭집어 이야기 하지 않지만 요셉이 애굽에서 노예의 삶을 살아내면서 “하나님과 함께 함”이 드러날 정도로 구별된 삶을 살게 된 원동력은 “그 꿈을 통해 마음을 주관하신 하나님의 은혜”임을 무시할 수 없다. 즉 어느 곳에서,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꿈을 꾸게 하신 하나님”을 굳게 붙잡고 함께 동행함이 삶 속에서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인정을 이끌어 낼 정도로 구별되게 살았다는 것이다. 당시 근동지역에 닥칠 전무후무한 가뭄 속에서 인생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은 요셉을 이해하지 못할 곤경에 빠지게 하시고 이를 통해 차근차근 큰 가뭄에서의 구원을 준비해 가신 것이다. 그리고 더 큰 뜻,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민족으로의 태동을 준비 시키신다.
한편 요셉은 예상치 못하는 막막한 지경에 수시로 빠졌으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동행함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 상황과 여건에 따라 하나님을 의지한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 시간속에서 죄를 범치 않았다. 그래도 하나님은 요셉을 더 심한 곤경으로 몰아 넣으셨다. 왜 그러셨을까?
1.내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과정을 따라(14절)
요셉은 두 관원의 꿈을 해석하면서, 특히 술 맡은 관원의 꿈을 해석해 주며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며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부탁한다. “시종장께서 잘 되시는 날에, 나를 기억하여 주시고, 나를 따로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바로에게 나의 사정을 말씀드려서, 나도 이 감옥에서 풀려나게 해주시기 바랍니다(새번역_14절).” 자연스러운 거다. 이 장면 하나를 가지고 요셉이 하나님 보다 사람을 의지했다 라고 과장 해서는 안 된다. 사람이라면 억울한 옥살이에서 어떻게든 풀려나고 싶은 것이 인지 상정이다. 하지만 요셉은 풀려나더라도 노예다. 지금 술 맡은 관원이 부탁해서 왕의 사면을 받은 들, 다시 보디발의 노예로 복권 될 뿐이었다.
요셉은 술맡은 관원의 꿈을 기막히게 해석해 주고 사면에 대한 기대를 품고 무려 2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보디발의 노예로 다시 복귀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셉이 이를 꿰뚫어 보기란 쉽지 않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술 맡은 관원장이 복권 되고 난 후부터 얼마나 그의 소식을 기다렸을까? 점차 시간이 흐를 수록 얼마나 아쉬웠을까? 감옥에서 자신의 인생이 끝날 것이라는 불안이 왜 없겠나? 두려웠을 것이다.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술 맡은 관원장의 기억에서 요셉은 점차 잊혀졌다. 하님은 술맡은 관원장(사람)의 힘(도움)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신뢰하는 정교한 믿음을 다듬고 계셨다.
아직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술 맡은 관원장을 거쳐 바로와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와 요셉이 직접 대면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 되지 않았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내가 원하는 상황대로 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이끄실 눈에 보이지 않는 인도하심을 기다리고 기다리는 여정이 아닐까 싶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뜻이 나를 통해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며, 지금 마주하고 있는 삶의 곤고함을 견디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결과를 나의 성급함대로 섣불리 누리기를 원하는 것 보다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이루어주실 그 때를 믿음으로 기다리며 견디는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견디어 낼 수 있을까?
2.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않습니까!(8절)
친위대장(보디발)은 요셉을 신뢰하고 있었다. 왕궁에서 거물 정치인 둘이 한 날 감옥에 투옥된다. 그들을 굳이 요셉에게 수종들게 한다(4절). 같이 감옥에 갇혀 있는 노예인 요셉에게, 두 거물 정치인의 수종을 들도록 맡길 정도로 보디발은 여전히 요셉을 아끼고 있다. 요셉은 그 두 거물 정치인을 최선을 다해 섬겼다. 그들 낯빛의 밝고 어두움을 금새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성실하게 섬겼다. “다음날 아침에 요셉이 그들에게 갔는데, 요셉은 그들에게 근심스런 빛이 있음을 보았다. 그래서 요셉은, 자기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혀 있는 바로의 두 시종장에게 물었다. “오늘은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왜 그러십니까?”(새번역_6-7절)
그들의 근심은 꿈이 원인이었다. 누구도 해석을 해주지 못한 것이다. 감옥 안에 갇혀 있으니 당연하다. 왕궁에 있었을 때는 손 쉽게 박수들에게 물어 보고 궁금증을 해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곳은 감옥이다. 박수, 무당은 없다. 답답했다. 그냥 지나치기에 그 꿈은 너무나 생생했다. 요셉은 그들에게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해몽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나에게 말씀하여 보시기 바랍니다.”(새번역_8절 하).
바로 이 장면이다. 요셉의 감옥생활은 억울하게 들어온 것을 한탄하고 비관하며 생활하지 않았다. 이 지경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에 대한 원망으로 시간을 채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요셉은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대하며 하루 하루 지내고 있었다. 주어진 상황과 여건 속에서 하나님과 교제가 끊이지 않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토록 당당하고 당연하게 두 거물 정치인에게 자신있게 이야기 할 수 없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와 동행이 지속되지 않았다면, 이 상황에서 그들에게 어떤 말도 해 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꿈을 꾸게 하신 분도 하나님, 그것을 해석하시는 분도 하나님”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은 그만큼 요셉의 감옥생활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나는?
-상황과 여건이 하나님과의 동행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결과를 내게 해서는 안 된다. 어떤 상황이라도 하나님과의 동행이 그속에서 실제적으로 이어지는 것은 특권이다. 이는 상황은 변했을지라도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신 명백한 증거며, 그렇기에 변치 않으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위로와 소망을 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술 맡은 관원의 꿈을 해석해 주며 자신을 기억해 달라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가 아닌가 하여 시도한 것일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2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응답이 없어도 요셉이 낙심하지 않은 것도 상황에 마음을 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하나님과의 교제와 인도하심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렇다!.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않습니까!” 당당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요셉의 삶이 성경에 일일이 기록되지 않았지만 이에 대한 증거가 가득했다는 전제가 된다. 상식적으로 그렇지 않겠는가? 다만 요셉의 이야기의 초점이 요셉 일대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이기에 시시콜콜 기록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의 이야기 가운데 함축적으로 담긴 이 “행간”은 이미 요셉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인도하심을 경험하고 그것이 선명하게 각인되지 않았다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내 삶도 세상속에서 세상의 가치에 종속된 노예와 같은 삶을 살지라도, 하나님 나라 가치를 잃지 않는 당당함으로 살고 싶다. 그것은 날마다 말씀으로 하나님과 성실하게 만나고 교제할 때 힘을 얻어 지속할 수 있다.
*요셉의 삶에서 하나님과의 소통은 아버지 야곱에서 들어서 기억하고 있는 하나님, 자신에게 꿈을 꾸게 하신 하나님, 그 꿈에 대한 의미를 일깨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노예로서 감방생활하는 가운데에서도 삶의 총기를 잃지 않게 하였다.
*지금 내가 이해할 수 없어도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을 이끄신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소통과 교제는 어떤 상황, 특히 어떤 어려운 사람을 만나도 “하나님의 이름과 능력”을 신뢰하여 그들을 도울 수 있게 한다. ”하나님께 있지 않습니까!”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그가 노예일지라도 그 말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가득차 있다. 그러니 요셉이 박수 무당이 아니어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과정이 요셉에게 필요하다고 여기신 것이다. 애굽을 움직이는 것이 바로의 통치로 보이지만, 바로를 움직이는 것은 박수 무당들의 세치 혀에 있었음을 알게 하셨다. 그런 애굽의 문화속에서, “근심할 필요 없습니다. 박수, 무당이 없어도 꿈의 해석은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라며 당당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게 하실 정도로 이미 요셉에게 충분히 임상을 행해 주셨을 것이다. 그런 확신 없이 아무리 감옥에 갇혀 있다하더라도 감히 고개를 들수 없는 두 정치 거물에게 이리 당당하게 말할 수 없었으리라.
*요셉에게는 이런 시간들이 분명히 필요했다. 이후 애굽을 다스리며 의지하고 의지해야 할 분은 하나님 밖에 없음을 그의 온 몸에 각인 시키고 영혼을 무장시키는 시간들 말이다.
*번개 한 번으로 충분히 각인 시킬 수 있으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하지만 요셉에게 지난한 고통의 시간들을 통해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체감하게 하심으로 그의 삶 자체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의 증거와 능력 그 자체가 되게 하고, 아울러 요셉도 다른 어떤 것에 눈 돌리지 않도록 다지고 또 다지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어떤 상황에도 흔들림 없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로 살게 하는 것, 이것이 단지 감정의 고백이 아니라 삶의 열매로 나타나 사람들의 인정도 함께 받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한 걸음 한 걸음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뜻이 이루어지도록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동행을 누리는 자가 “하나님이시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삶의 문제는 하나님께 해답이 있습니다!”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믿음의 안정감이 있는 사람이 근심의 빛이 가득한 사람을 돌아보며 도와 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안정감이 삶을 지지(지탱)하지 못하면 결코 다른 사람의 삶을 바라보지 못한다. 그저 자기의 삶에 함몰되어 한탄하고 불평하기 마련이다. 요셉이 근심의 빛을 띠는 두 정치인의 낯을 살필 수 있는 여유와 혜안은 하나님과 함께함의 실제적인 은혜안에서 그의 마음이 평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나님이 함께 하여 주심은 이렇게 실제적이다.
*아직 2년이 더 남았다. 요셉은 자신이 감옥에서 2년을 더 보내게 될 것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2년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신다. 요셉은 감옥에 있지만 일은 하나님이 하고 계신다.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않습니까!!”라는 당당한 요셉의 언행이 나의 언행이 되기를 소망한다. “모든 문제가 하나님께 해답이 있지 않습니까!”라고 근심의 낯을 가진 이들에게 이야기 해주고 도와 줄 수 있는 목회자가 되고 싶다.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않습니까!”라는 행간에 깊이 담긴, 하나님과의 친밀한 동행과 인격적인 교제의 요셉을 보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나의 인생의 행간도 이처럼 주님과 더욱 친밀하여 지기를 기대하고 기대한다.
매일묵상 ㅣ 묵상을 함께 나눕니다
1.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으로(2, 3, 5, 21, 23절)
39장에서 가장 많이 반복하여 사용 되었다. 요셉은 훗날 자신의 삶을 고백하고 회고할 때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일하심”을 절절히 고백한 것을 보면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은 노예 요셉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형통한 자가 되어(2-3절), 형통하게( 23절)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으로 요셉은 ‘형통한 자가 되었다.’ 새번역은 ‘앞길이 잘 열리도록 그를 돌보셨다(2절)’, ‘하는 일마다 잘 되도록 주님께서 돌보신다는 것을(3절)’ 으로 번역했다. 23절도 ‘주님께서 요셉을 돌보셔서 그가 하는 일은 무엇이나 다 잘 되게 해주셨다’로 번역했다.
요셉의 이야기에서 사용 되는 “형통”의 의미가 익히 알고 있는 형통의 의미와 다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에 따라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돌보신다”. 이것이 형통이다. 삶을 살다보면 예기치 않은 일을 만나고, 돌발 변수에 큰 혼란을 겪기도 한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 큰 곤란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때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를 “돌보아 주시는 것” 이것이 형통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돌보아 주실까?
3.주인이 보고, 간수장의 눈에 들었다(3, 21절)
보디발은 “….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시며, 요셉이 하는 일마다 잘 되도록 주님께서 돌보신다는 것을 알았다. 주인은, 요셉이 눈에 들어서, 그를 심복으로 삼고, 집안 일과 재산을 모두 요셉에게 맡겨 관리하게 하였다(새번역_3-4절).”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애굽사람 보디발은 요셉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요셉의 하나님의 실존을 인정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일하심을 깨달은 보디발의 집에 더욱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일하셨다는 것이다(새번역_5-6절). 보디발은 요셉을 통해 요셉의 성실함과 준수함과 능력이 그의 하나님의 “돌보심”임을 알았다. 그것을 보았다.
간수장도 마찬가지다. “간수장은 요셉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아무것도 간섭하지 않았다. 그렇게 된 것은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며, 주님께서 요셉을 돌보셔서, 그가 하는 일은 무엇이나 다 잘 되게 해주셨기 때문이다(새번역_23).”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형통”하게 되는 것은 어떤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존재감”이 그 사람을 통해 드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런 존재감은 결국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요셉의 모습처럼, “하나님 앞에서” 생활하는 실제를 통해 증거 된다.
4.요셉의 유혹에 대한 단호함(9절)
요셉은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주인 보디발에게 은혜를 입어 노예 였지만 집안 관리자로서 일을 하게 된다. 안정적인 삶이 정착되나 싶었으나 또 예기치 않은 위기가 닥친다.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한 것이다. 이 유혹은 한 두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집요하게 계속 요구되었다(7, 10절). 하지만 요셉은 이 유혹에 대하여 단호했다. 보디발에 대한 충성심 뿐 아니라 “…내가 어찌 이런 나쁜 일을 저질러서,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새번역_9절)”
하지만 집요한 유혹은 마침내 모함에까지 이르게 된다. 문맥의 흐름상 보디발의 아내는 일부러 주변의 종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요셉을 불러 노골적으로 유혹한다. 하지만 요셉은 자신의 옷을 붙잡고 늘어지는 유혹을 뿌리치기 위해 겉옷조차 팽개치고 뛰쳐나갔다. “…그러나 요셉은, 붙잡힌 자기의 옷을 그의 손에 버려 둔 채, 뿌리치고 집 바깥으로 뛰어나갔다(새번역_12절).”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단호했던 행동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았다. “모함”….자신의 유혹을 면전박대한 요셉에게 보디발의 아내는 버려두고 간 옷을 빌미로 자신을 범하려 했다며 되려 모함한다. 그녀의 종들을 불러 ‘히브리 사람(녀석)’이라는 말로 이 모함에 함께 동조하게 하였다(11, 14절). 결국 요셉은 보디발의 감옥에 갇히고 만다(20절).
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발버둥치면 하나님께서 은헤를 주셔서 모든 일이 다 잘될 줄 아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형통”이다. 그런데 요셉을 형통하게 하셨다고 하는데, 이런 ‘형통’이라니… 형들에게서 노예로 팔리고, 종살이 하는 집에서 여주인에게 모함을 받아 옥에 갇히는 것이 형통이라니…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은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오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는 일들 이었다. 장차 아브라함의 자손을 민족으로 이루게 하시려고 필요한 보금자리, 보호처를 마련하시려는 하나님의 이끄심이었다.
-그렇다! 하나님의 “돌보심(형통)”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 베푸시는 은혜다. 비록 예상치 못한 노예생활, 모함을 받아 감옥생활에 처할 지라도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돌보심”은 적재적소에서 가시적으로 나타나 “하나님의 돌보심”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곧 “형통”이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 위해 나의 삶의 모든 현장에서 드러나는 “돌보심”이 곧 형통이다. 만사형통은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이 나의 삶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형통은 내가 바라고 원하는 일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라고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용하시는 이를 어떤 상황에서도 “돌보아” 주심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과정을 채우시는 것을 말한다. 설사 억울한 일을 당하여도, 악함과 직면하여도, 구조적인 완악함 속에서 처절한 고통 속에 처해 질지라도, 그 가운데서 “돌보아 주신다”. 하나님의 정하신 뜻이 이루어지도록 말이다.
-또 묵상하면서 요셉의 관점에서 보자면, 하나님께서는 그처럼 억울한 지경에 처한 상황에서도 “그의 손에 위탁(4, 6, 22, 23절)” 받게 한 것을 최선의 노력을 하게 하시고 최상의 결과를 맺게 하심으로 “돌보심”의 구체적인 증거를 보이셨다.
-하나님의 “돌보심(형통)”은 그의 손에 위탁된 모든 일을 통해 열매로 드러난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속에서도 자신의 능력이 드러나는 것보다 하나님의 돌보심이 들어나는 사람이다. 자시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이름 앞에 정직하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 겉옷까지라도 버려두고 도망칠 만큼 지켜야 할 선을 단호하게 지키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놀라운 “돌보심(형통)”이 나의 삶에도 이미 임했다. 주님으로 인해 이미 이런 살을 살고 있다. 하지만 요셉의 이야기는 나를 되돌아 보게 한다. 하나님의 돌보심 안에 살고 있는 나는 과연 요셉과 같은 하나님 앞에서 죄에 대한 “단호함”이 있을까? 뿐만 아니라 모함 받은 그 억울함을 그대로 감당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이끄시는 것임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래서 요셉의 모습은 큰 울림을 준다. 하나님의 돌보심(형통)의 삶은 예기치 못한 어려움과 오해와 억울함 속에서도 낙망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돌보심을 믿고 기다리는 삶이다. 그것이 바로 형통(돌보심)을 입는 삶이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의 돌보심을 보디발과 간수가 제대로 보았다는 점을 간과 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형통의 사람은 타인이 먼저 그 형통함을 볼 수 있는 사람이다. 가까이에서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통함(돌보심)을 입고 있는 것’을 먼저 본다.
*또 이 하나님의 돌보심이 손해나 도전이 아니라 유익함을 알았기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사람”임을 이야기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요셉을 통해 주인의 집을 잘 되게 하셨고, 감옥의 사무도 능숙하게 감당하게 하셨다. 이를 통해 그 집이 복을 받았고, 감옥의 일머리가 잡혔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심으로 이루어주시는 돌보심(형통)이다.
*감히 간절히 구해본다.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아 주셔서, 하나님의 뜻이 더온누리교회를 통해 세상에 선명하게 드러나게 해주시기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여 주시고,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심으로” 더온누리교회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믿는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 가는 시간 속에서 더욱 더 단호하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이것이 혹 억울한 일을 만나게 하여도, 모함을 당하게 하여도, 올곧게 하나님의 이끄심을 신뢰하며 인내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래본다.
*”형통”,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까지 세밀하게 간섭하시는 “돌보심”이다. 형통은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져 가는 것이다. 내 삶의 형통은 나의 성공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하나님의 돌보심이 드러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내가 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오만해 하지 말자.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돌보아 주심으로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이다. 다만, 나의 손에 맡겨진 것을 정직함과 성실함으로 땀 흘리기를 주저하지 말자… 오늘도 그렇게 흘릴 땀을 기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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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17일 주보
♥축복 – 다음세대 양육을 감당하는 교사들을 축복합니다. 교사들의 수고와 헌신으로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다음세대를 세워져 가는 것을 잊으면

2026년 5월 10일 주보
우리의 2026년은 “더 예수님처럼, 더욱더 하나님 나라”를 꿈꿉니다.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는 하나님 나라 진실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2026년 5월 3일 주보
♥홀리비키 플리마켓 물품 요청 – 5월 16일(토) 만성동 어린이들에게 즐거움을 선물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집에 고이 정리하여 보관하고 있는
#더온누리교회
일상 속에서 만나는 교회, 일상 속에서 만나는 은혜를 함께 나눠요. instagram에서 "#더온누리교회"를 태그해 주세요:)
[2026 더 깊은 선교학교]
복의 통로로 살아가는 삶 🙏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듯
오늘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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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배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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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더깊은 선교학교
🗓 06.20 - 07.25 매주 토요일 (6주간)
📍 굿윌센터 2F
🎤 이효재 목사
🎤 주노가 선교사
🎤 김종홍 목사
✈ 단기선교
8월 1일(토) - 8월 4일(화), 일본
🎓 수료식
8월 23일(주일) 2부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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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찾으시는
복의 통로로 함께 세워지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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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
목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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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웃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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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목자수련회
“진정성, 목자의 힘, 목장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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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안내]
낮아진 자리,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억울함과 외로움,
그리고 반복되는 현실 속에서도
믿음은 시선을 다시 하늘로 향하게 합니다.
이번 주일,
창세기 39:1-10 말씀을 통해
바닥 같은 인생의 순간에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묵상합니다.
“바닥에서 하늘을 보다”
무너진 자리에서도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다시 길을 여십니다.
이번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함께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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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안내]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리에는
결국 인간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분노와 상처,
그리고 통제되지 않는 선택들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쉽게
하나님 없는 길을 걸어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이번 주일,
창세기 34:18-31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잊어버린 삶이
어디로 흘러가게 되는지 깊이 묵상합니다.
“잊혀진 하나님, 드러난 잔혹함”
어둠 속에서도
다시 하나님을 붙드는
믿음의 자리로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적용찬양 : 깨어진 세상을 끌어안고
이번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함께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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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없는 길을 걸어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이번 주일,
창세기 34:18-31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잊어버린 삶이
어디로 흘러가게 되는지 깊이 묵상합니다.
“잊혀진 하나님, 드러난 잔혹함”
어둠 속에서도
다시 하나님을 붙드는
믿음의 자리로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적용찬양 : 깨어진 세상을 끌어안고
이번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함께 만나요.
—
#더온누리교회
#주일예배
#예배안내
#말씀나눔
#창세기
#신앙의경고
#하나님없는삶
#회개의자리
#주일말씀
#깨어진세상을끌어안고
#Jesus
#SundayService
#Genesis
#Repentance
#FaithJourney
...
[주일 예배 안내]
익숙함은 우리를 편안하게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때로
낯설고 어색한 길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떠나야 할 때를 알면서도
머물고 싶은 마음,
그러나 그 부르심 앞에
다시 한 걸음을 내딛는 믿음.
창세기 31:1-16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새로운 길을 걷는 믿음을 묵상합니다.
“익숙함을 떠나
어색한 약속의 땅으로”
익숙함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약속을 향해 나아가는
결단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배의 자리에서 함께 만나요.
—
#더온누리교회
#주일예배
#예배안내
#말씀나눔
#창세기
#믿음의걸음
#하나님의인도하심
#순종의삶
#주일말씀
#나는믿네
#Jesus
#SundayService
#Genesis
#FaithJourney
#TrustGod
[주일 예배 안내]
익숙함은 우리를 편안하게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때로
낯설고 어색한 길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떠나야 할 때를 알면서도
머물고 싶은 마음,
그러나 그 부르심 앞에
다시 한 걸음을 내딛는 믿음.
창세기 31:1-16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새로운 길을 걷는 믿음을 묵상합니다.
“익숙함을 떠나
어색한 약속의 땅으로”
익숙함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약속을 향해 나아가는
결단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배의 자리에서 함께 만나요.
—
#더온누리교회
#주일예배
#예배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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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믿음의걸음
#하나님의인도하심
#순종의삶
#주일말씀
#나는믿네
#Jesus
#SundayService
#Genesis
#FaithJourney
#Trust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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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치고 힘들어요? 🥺
예수님 안에는
아픈 것도 없고
외로운 것도 없어요 🤍
우리 같이 가요!
소문의 낙원으로 ✨
—
더온누리교회
초등 2부 율동 🫶
#더온누리교회 #전주교회 #전주 #초등부
#어린이예배 #율동 #소문의낙원
#예수님 #귀여움 #churchkids 🥺✨
지치고 힘들어요? 🥺
예수님 안에는
아픈 것도 없고
외로운 것도 없어요 🤍
우리 같이 가요!
소문의 낙원으로 ✨
—
더온누리교회
초등 2부 율동 🫶
#더온누리교회 #전주교회 #전주 #초등부
#어린이예배 #율동 #소문의낙원
#예수님 #귀여움 #churchkid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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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기로운 금요일 안내
하나님 앞에 서는 용기,
믿음으로 나아가는 한 걸음.
이번 금요일,
다윗의 고백과 결단을 통해
우리의 삶에도
믿음의 용맹이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다윗의 용맹”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붙들고 나아갔던 다윗처럼
우리도 삶의 자리에서
믿음으로 서는 예배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 : 목사 장필조
찬양인도 : 목사 이홍기
—
📖 본문
사무엘상 17:28-40
—
🎶 Worship List
부흥의 세대
성령의 불타는 교회
부흥이 있으리라
무릎 꿇고 엎드리니
다시 한 번
나의 주 크고 놀라운 하나님
—
4월 24일 금요일 밤,
찬양과 말씀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담대함을
함께 경험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
더온누리교회
—
#더온누리교회 #향기로운금요일 #금요예배 #찬양예배
#전주교회 #전주 #말씀 #예배 #부흥 #기도 #전주찬양팀 #전주집회 #찬양집회
@fragrant_worship
✨ 향기로운 금요일 안내
하나님 앞에 서는 용기,
믿음으로 나아가는 한 걸음.
이번 금요일,
다윗의 고백과 결단을 통해
우리의 삶에도
믿음의 용맹이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다윗의 용맹”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붙들고 나아갔던 다윗처럼
우리도 삶의 자리에서
믿음으로 서는 예배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 : 목사 장필조
찬양인도 : 목사 이홍기
—
📖 본문
사무엘상 17:28-40
—
🎶 Worship List
부흥의 세대
성령의 불타는 교회
부흥이 있으리라
무릎 꿇고 엎드리니
다시 한 번
나의 주 크고 놀라운 하나님
—
4월 24일 금요일 밤,
찬양과 말씀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담대함을
함께 경험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
더온누리교회
—
#더온누리교회 #향기로운금요일 #금요예배 #찬양예배
#전주교회 #전주 #말씀 #예배 #부흥 #기도 #전주찬양팀 #전주집회 #찬양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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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가 아니라
함께라서 더합니다 🤍
사랑을 더하고
마음을 나누고
공동체 안에서
하나 되어가는 시간
“연합”
더함공동체가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
—
2026 더함공동체 수련회
📍 서천 청소년 수련관
📅 5.23 - 5.24
함께여서 더 깊어지는 시간
이번엔 같이 가요 🙌
더온누리교회
#더온누리교회 #더함공동체 #공동체 #연합
#교회수련회 #전주교회 #전주
#사랑나눔 #함께 #churchfamily 🤍✨
혼자가 아니라
함께라서 더합니다 🤍
사랑을 더하고
마음을 나누고
공동체 안에서
하나 되어가는 시간
“연합”
더함공동체가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
—
2026 더함공동체 수련회
📍 서천 청소년 수련관
📅 5.23 - 5.24
함께여서 더 깊어지는 시간
이번엔 같이 가요 🙌
더온누리교회
#더온누리교회 #더함공동체 #공동체 #연합
#교회수련회 #전주교회 #전주
#사랑나눔 #함께 #churchfamily 🤍✨
...
이거 완전 홀리빛키잖아?! 😆✨
세상의 운(Lucky)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
우리 아이들이
마음껏 웃고 뛰어노는 하루
—
🎈 2026 홀리빛키데이 🎈
📅 5월 16일 (토요일)
신나는 에어바운스
🎮 다양한 게임
🎨 내손으로 만드는 체험
🍿 먹거리까지!
그리고
함께 나누는 기쁨
🛍 플리마켓 OPEN
—
💛 물품 기부도 받습니다
아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 도서 / 👕 의류 / 🧸 장난감
📍 1층 사무실
🗓 5월 12일(화)까지
작은 나눔이
큰 기쁨이 됩니다 🤍
—
더온누리교회
#더온누리교회 #전주교회 #전주 #홀리빛키데이
#어린이행사 #플리마켓 #기부 #나눔
#교회행사 #키즈이벤트 😆✨
이거 완전 홀리빛키잖아?! 😆✨
세상의 운(Lucky)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
우리 아이들이
마음껏 웃고 뛰어노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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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16일 (토요일)
신나는 에어바운스
🎮 다양한 게임
🎨 내손으로 만드는 체험
🍿 먹거리까지!
그리고
함께 나누는 기쁨
🛍 플리마켓 OPEN
—
💛 물품 기부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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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 👕 의류 / 🧸 장난감
📍 1층 사무실
🗓 5월 12일(화)까지
작은 나눔이
큰 기쁨이 됩니다 🤍
—
더온누리교회
#더온누리교회 #전주교회 #전주 #홀리빛키데이
#어린이행사 #플리마켓 #기부 #나눔
#교회행사 #키즈이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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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금요일 예배 안내]
하늘의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를 채우시고,
그 은혜 안에서 찬양하게 하시는 하나님.
이번 금요일,
에베소서 1:3-14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영광스러운 찬양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찬양하는 영광스러운 삶”
삶의 자리에서 드리는 고백이
단순한 노래를 넘어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찬양인도 : 배지완
—
Worship List
감사와 찬양드리며
나의 가장 낮은 마음
주가 보이신 생명의 길
하나님의 부르심
나는 찬양하리라
날 자녀라 하시네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위대하신 주
나의 하나님
예배합니다
밤이나 낮이나
주의 손이
주 여호와는 광대하시도다
—
금요일 밤,
찬양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을
함께 경험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
#더온누리교회
#향기로운금요일
#금요예배
#찬양예배
[향기로운 금요일 예배 안내]
하늘의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를 채우시고,
그 은혜 안에서 찬양하게 하시는 하나님.
이번 금요일,
에베소서 1:3-14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영광스러운 찬양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찬양하는 영광스러운 삶”
삶의 자리에서 드리는 고백이
단순한 노래를 넘어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찬양인도 : 배지완
—
Worship List
감사와 찬양드리며
나의 가장 낮은 마음
주가 보이신 생명의 길
하나님의 부르심
나는 찬양하리라
날 자녀라 하시네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위대하신 주
나의 하나님
예배합니다
밤이나 낮이나
주의 손이
주 여호와는 광대하시도다
—
금요일 밤,
찬양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을
함께 경험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
#더온누리교회
#향기로운금요일
#금요예배
#찬양예배
...
[16. 4. 17. 주일 예배 안내]
믿음의 가정이라 불리지만
그 안에도 연약함과 흔들림은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기보다
자신의 방법을 선택했던 순간들,
그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모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이번 주일,
창세기 27:15-24 말씀을 통해
우리의 가정과 믿음을 돌아봅니다.
“믿음의 가정에서 일어난 믿음 없는 이야기”
부족함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깊이 묵상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번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함께 만나요.
—
#더온누리교회
#주일예배
#예배안내
#말씀나눔
#창세기
믿음의가정
신앙의성찰
하나님의은혜
주일말씀
가정신앙
Jesus
SundayService
Genesis
FaithReflection
Grace
[16. 4. 17. 주일 예배 안내]
믿음의 가정이라 불리지만
그 안에도 연약함과 흔들림은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기보다
자신의 방법을 선택했던 순간들,
그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모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이번 주일,
창세기 27:15-24 말씀을 통해
우리의 가정과 믿음을 돌아봅니다.
“믿음의 가정에서 일어난 믿음 없는 이야기”
부족함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깊이 묵상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번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함께 만나요.
—
#더온누리교회
#주일예배
#예배안내
#말씀나눔
#창세기
믿음의가정
신앙의성찰
하나님의은혜
주일말씀
가정신앙
Jesus
SundayService
Genesis
FaithReflection
Grace
...
목자수련회…
안 오면 진짜 킹받쥬? 😆🔥
유쾌하게 웃고
깊이 있게 나누고
진정성, 목자의 힘,
그리고 목장의 본질까지
저녁엔 함께 웃고 🤝
아침엔 함께 배우며 📖
다시 세워지는 시간
—
2026 목자수련회
📍 서천 청소년 수련원
📅 4.24 - 4.25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골 1:28-29)
—
이번엔
같이 가시죠 🙌
더온누리교회
#더온누리교회 #목자수련회 #전주교회 #전주
#킹받았으면좋겠어 #챌린지 #댄스챌린지
#목장 #리더십 #교회수련회 😆🔥
목자수련회…
안 오면 진짜 킹받쥬? 😆🔥
유쾌하게 웃고
깊이 있게 나누고
진정성, 목자의 힘,
그리고 목장의 본질까지
저녁엔 함께 웃고 🤝
아침엔 함께 배우며 📖
다시 세워지는 시간
—
2026 목자수련회
📍 서천 청소년 수련원
📅 4.24 - 4.25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골 1:28-29)
—
이번엔
같이 가시죠 🙌
더온누리교회
#더온누리교회 #목자수련회 #전주교회 #전주
#킹받았으면좋겠어 #챌린지 #댄스챌린지
#목장 #리더십 #교회수련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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