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탄압의 시대, 숨은 신앙인에게 먼저 알리시다. [왕상 18:1-15]
 – 2023년 10월 18일
– 2023년 10월 18일 –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비 소식을 전하며 아합을 대면하라고 명령하신다. 엘리야는 자신에 대한 체포령이 떨어진 상황이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며 순종한다. 엘리야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왕궁 책임자 오바댜를 만나 아합에게 가서 자기가 여기 있다고 전하라고 지시한다. 오바댜는 눈앞의 죽음을 두려워한 나머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한다. 그런 오바댜에게 엘리야는 아합을 만날 것을 확실하게 약속한다.
    
    
    
1. 다시 아합에게 가는 엘리야(1~2절)
가뭄을 선언한 지 3년이 지나고 다시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했다. 아합에게 가서 보이라는 명령과 이제 비를 내리겠다는 약속을 주신다. 아합과 이스라엘에 내린 징벌의 시간은 끝났다. 이제 아합과의 결전을 벌이시겠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3년의 가뭄 기간 동안 여호와께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아합과 바알을 숭배하는 백성은 하나님의 대적이 되었다. 아합은 3년 동안 줄기차게 엘리야를 찾아다녔기에(10절) 그의 앞에 모습을 나타내는 것은 둘 중 하나가 제거되거나 항복해야 하는 상황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엘리야가 아합에게 모습을 드러내려는 때는 사마리아에 기근이 매우 심한 때였다. 기근이 심각했다는 것은 가뭄을 극복하지 못하고 농사와 목축이 완전히 망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합과 이세벨이 섬긴 바알은 여호와께서 내리신 가뭄을 극복하지 못하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신이었다. 이스라엘의 심각한 기근은 시돈의 사르밧에서 여호와의 도움으로 어려움 없이 산 엘리야와 과부 가족의 삶과 대조를 이룬다. 결국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시다.
    
    
    
2. 여호와의 선지자를 구한 오바댜(3~6절)
오바댜라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아합의 왕궁 맡은 관리였다. 상당히 높은 직책이다. 그런데 그는 여호와를 “지극히(메오드_굉장히, 매우, 대단히)” 경외하는 자였다. 이세벨이 바알 종교를 이스라엘의 공식 종교로 만들면서 이에 방해가 되거나 반대하는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제거할 때, 그는 백 명의 여호와 선지자를 숨기고 그들에게 먹을 양식과 물을 공급해 주었다. 오바댜는 백 명의 선지자들에게 엘리야에게 양식을 공급하던 까마귀와 사르밧의 과부 역할을 한 것이다.
    
이스라엘 땅에 선지자가 죽임을 당하고 기근으로 고생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자기 사람들을 지키시고 먹을 것을 공급해 주신다. 아합은 이런 오바댜의 상황을 모르고 그에게 물을 찾아 나서자고 말한다. “이 땅의 모든 물 근원과 모든 시내로 가자(5절)”라는 표현은 현재 이스라엘 땅에 모든 물이 말라버리고 가축들을 먹일 풀마저 사라져 굶어 죽게 된 상황을 표현한다. 아합과 오바댜는 이스라엘 땅을 나누어 한쪽은 아합이 가고 다른 쪽은 오바댜가 가기로 정하였다. 이로 보건대 오바댜는 아합에게 매우 신뢰받는 신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바알 숭배자 아합 밑에 여호와의 종이 그의 신뢰받는 고위 관료일 것 자체가 하나님의 신비로운 섭리였다.
    
    
    
3. 오바댜와 엘리야의 만남(7~15절)
오바댜가 물의 근원을 찾아 길을 가던 중에 엘리야가 우연히 그를 만난다.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를 사르밧 성문에서 우연히 만난 것처럼 하나님의 섭리로 둘이 만난 것이다. 엘리야를 만난 오바댜는 그를 알아보았다. 놀라서 땅에 엎드려 절하고 정말 엘리야인지 확인한다(7절). 엘리야를 향한 그의 자세는 그가 얼마나 여호와를 신실하게 섬기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엘리야는 오바댜의 질문에 답하면서 너의 주인에게 가서 자신이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리라고 대답한다(8절).
    
그러나 오바댜는 이를 거절한다. 자신을 아합의 손에 죽게 하려고 이런 명령을 한다고 항의한다(9절). 그리고 10~14절까지 자신이 엘리야가 여기 있다는 것을 말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는 딜레마를 느낀 것이다. 아합은 모든 민족과 모든 왕국에 사람을 보내 엘리야를 찾았다. 만일 그곳에 없다고 하면 정말로 엘리야를 보지 못했다고 맹세하게 하였다. 여기서 맹세는 만일 거짓말을 하면 아합의 보복을 받겠다고 신 앞에서 맹세한 것이다. 이렇게 아합은 엘리야를 찾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적의 소굴인 시돈에서 안전하게 거하게 해 주셨다.
    
오바댜의 증언을 통해 아합과 이세벨이 엘리야를 찾아 죽이려고 했고 엘리야는 도망을 다녀야 했던 상황이었음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자신이 엘리야의 말대로 그가 있는 곳을 아합에게 보고했는데 여호와께서 그 후에 엘리야를 자신이 모르는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면 자신은 아합에게 죽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오바댜는 두 가지를 두려워하고 있다. 먼저 아합의 폭력이다. 이전에도 아합은 엘리야를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엘리야를 숨긴다거나 엘리야에 대하여 잘못된 정보를 전하면 죽였다. 아합은 엘리야를 찾기 위해 백성을 위협하고 함부로 죽인 것이다. 그리고 엘리야에 대한 불신과 염려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엘리야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개인의 오기인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만일 그의 말이 개인의 오기라면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구하기 위해 엘리야를 이전처럼 숨기실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이것은 오바댜가 엘리야를 이제껏 찾지 못한 이유를 여호와의 영이 그를 이끌어 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는 엘리야가 아합을 이길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숨기신 것으로도 생각했을 수 있다. 이렇게 자신을 살려달라고 요청하면서 자신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실한 자라고 주장하며, 백 명의 선지자를 숨기고 책임진 것을 언급했다.
    
그는 아합과 이세벨의 무서움을 가장 가까이서 겪었다. 어쩌면 그래서 엘리야의 말보다 아합의 응징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을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였지만 홀로 나타난 엘리야를 보면서 미덥기만 했을 것이다. 그는 엘리야에게 자신이 선지자들을 구한 것을 듣지 못 했냐고 물었으나 정작 자신이 엘리야를 통해 일어난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듣지 못했다. 특히 죽었던 소년을 다시 살려주신 하나님의 기적을 듣지 못한 것이다.
    
그만큼 오바댜의 삶은 아합과 이세벨 아래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힘과 기적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고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면 이스라엘의 어려움은 여호와를 배신한 것에 대한 징벌이지만, 오바댜를 포함한 기도로 부르짖었던 경건한 백성의 시각에서는 혹시 여호와께서 바알을 이기지 못하시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을 수 있다.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돌보실 것이라는 믿음이 점점 약해져 갔을 것이다.
    
그러나 엘리야는 이런 오바댜의 말에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라고 선언하면서 자신이 오늘 반드시 아합 앞에 나설 것이라고 선언한다. 현재 상황은 여호와께서 바알에게 졌기 때문이 아니며 이제는 여호와께서 일어나 이 상황을 정리하실 때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경외하는 오바댜의 고생을 귀하게 보시고 그에게 가장 먼저 여호와의 일어나심을 알려주신 것이다.
    
    
    
나는?
-하나님을 경외한(두려워한) 오바댜의 모습을 본다. 바알 숭배가 극에 달하였던 시대를 살면서도 그는 어려서부터 여호와를 경외하였고 왕궁을 맡은 관리로서 바알 숭배자 아합의 최측근 권력자였음에도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한 것이다.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학살할 때도 자신의 권력과 재물을 이용하여 담대하게 백 명의 선지자를 구원하기도 하였다. 몸은 아합 곁에 있었지만, 자신의 참 주인이 누구인지 알았고 자신을 왕궁의 권력자로 삼으신 뜻을 받들며 살았다.
    
-아합의 시대만큼이나 우상 숭배가 극심한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만이 참된 생명의 근원 되심을 인정하고 주께서 어디로 보내시든지 가서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게 주의 백성들을 구원하고 보살펴 주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통치자 아합과 이세벨의 모습이 기히다. 그들은 나라 전역에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수배하여 죽였다. 이를 통해 비가 내리지 않는 가뭄과 더불어 말씀의 기근을 가져오게 하였다. 3년의 기근으로 바알 신앙의 허구성이 드러났는데도 물의 근원을 찾아 헤맬 만큼 완고하고 어리석었다.
    
-더구나 기근으로 인해 백성의 안위는 걱정하고 염려하지 않은 채 자기 말과 노새에게 먹이려고 물과 풀을 찾아 나선 것이었다. 내 말과 나의 노새에게 관심을 빼앗긴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들리지 않고 이웃의 고통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온통 마음과 정신을 빼앗기는 말과 노새가 혹시 없을까? 내가 아끼는 것 때문에 하나님과 이웃의 고통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오바댜는 엘리야가 다시 사라질까 하여 아합에게 그를 만났다는 소식을 전하기를 두려워한다. 그의 말 속에는 심판을 선포한 후 많은 선지자가 고난받을 때 홀로 은둔한 엘리야에 대한 진한 원망도 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엘리야의 선택이 아닌 하나님의 선택이었음을 몰랐다. 하나님을 경외하였지만, 아합의 무자비한 폭정에 대한 공포도 체질화되어 있었다.
    
-오늘날로 표현하자면 세상의 폭압 속에서 믿음을 꿋꿋하게 지키고 있는 “숨은 그리스도인”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하나님을 섬긴다는 이유만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실제로 삶의 모든 지경에서 쫓겨나는 극심한 탄압 가운데 노출된 그리스도인들이 존재한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탄압과 폭력의 대상이 되고 철저한 감시 속에서 숨이 막히는 신앙의 숨바꼭질하는 “숨은 그리스도인”의 고충이 오바댜의 고충이다.
    
    
    
*주님, 드디어 때가 되었습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아합에게 보일 순간이 다가옵니다. 그런데 이제껏 숨어서 신실하게 신앙을 지킨 이에게 먼저 이를 보이시는 하나님의 배려가 감동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배려 안에 제가 있음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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