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물 위를 걸으시다 [막 6:45-56]
 – 2024년 02월 26일
– 2024년 02월 26일 –
오병이어의 기적 후에 주님께서 물 위를 걸으시는 기적과 게네사렛 땅에서 병자들을 치유하시는 기적이 이어진다. 마태와 마가는 둘 다 오병이어의 기적 후에 주님께서 제자들을 다소 강제적으로 배에 태워 이동하게 하신 뉘앙스를 감추지 않는다. 이러한 조치를 통해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자신을 따름에 있어서 헛된 영광을 구할 수 있는 위험으로부터 분리하려는 의도를 드러내신 것이다. 또, 먼저 바다를 건너게 하신 제자들이 갑작스러운 광풍을 만나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밤 사경쯤 되어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다가가신다. 그리고 배에 오르시고 바람을 잠잠케 하셨다. 이런 주님의 능력을 지켜본 제자들은 심히 놀랐다. 이렇게 놀란 이유는 주님께서 오병이어로 남자 장정만 오천 명을 먹이시기 위해 떡을 떼어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마음이 둔하여졌기 때문이다.
    
    
    
1. 물 위를 걸어오시다(45~52절).
본 단락은 오병이어 기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헤롯의 잔치와 대조되는 화려하지 않지만 빈 들에서의 넘치는 배부름의 저녁 잔치가 끝났다. 무리가 풍성한 배부름과 진정한 쉼을 경험하자 주님은 그제야 해산시키신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주님께서 제자들을 재촉하여 해산은 자신이 맡을 테니 건너편 벳새다로 건너가라고 보내신다.
    
주님과 함께, 주님 안에서 쉼과 배부름을 잠시 누렸지만, 이제 주님이 없는 배로 제자들만 바다를 건너야 했다. 그렇게 제자들을 먼저 보내고, 무리들을 해산한 후에 홀로 산에 오르신다. 요한은 그 이유를 무리가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셨기 때문이라고 증언한다(요 6:15). 이에 비해 마가는 다음 사역을 위해 시간을 주도하시는 모습을 더 강조한다.
    
제자들을 갈릴리 최북단 벳세다로 보내셨지만, 오병이어 기적이 일어난 한적한 곳, 빈 들이 어디인지 불분명하다. 무리에게 떡을 나누어 준 시간이 어둠이 내려앉을 때였기에 식사를 마치고 해산까지 마친 시간은 족히 자정에 가까웠을 가능성이 크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갈릴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어느 산에 올라 제자들을 바라보셨다. 제자들은 바다 위에서 벳세다를 향해 열심히 노를 저어갔다. 한참 후에 주님께서는 형체를 분간하기 어려운 어둠과 거리 속에서 제자들을 바라보신다.
    
제자들은 바다에서 “힘겹게” 바람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때는 밤 사경(새벽 3~6시)쯤이었다. 넉넉하게 자정쯤 배를 띄웠다고 해도 서너 시간을 바다 가운데서 바람에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다. 요한은 이 상황을 출발하여 십 리쯤 갔을 때(요 6:19)  바다 한 가운데서 북쪽 산비탈에서 내달려 내려오는 강풍에 배가 떠밀려 아무리 노를 저어도 전진할 수 없는 상황에 몇 시간째 빠져 있었다고 기록했다. 주님은 제자들의 상황을 산 위에서 지켜보고 계셨다.
    
주님께서 마침내 제자들에게 다가오셨다. 마가는 이 상황을 마태나 요한과 달리 “지나가려고 하시매(48절)”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여러 해석이 분분하나, 대부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실 때 바위 사이로 “지나가신(출 33:19~23)” 것과 50절에서 모세에게 알려주신 하나님의 이름과 같은 표현인 “내니(에고 에이미)”라는 표현과 연결하여 곤경에 빠진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타나심(신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와같은 해석은 고난과 핍박 가운데 있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부활의 주님과 성령께서 함께하심을 강조하여 큰 위로를 주었다고 조망한다. 또, ‘지나가다(파레르코마이)’라는 의미 속에서는 “도착하다, 오다”라는 뜻으로도 자주 사용되는데, 제자들이 그 곤란한 상황에서 주님께서 “밤에 물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오셨는데, 그렇게 그들에게 오시기를 원하셨다”라는 마음을 표현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물 위로 걸어오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제자들은 유령이라고 생각해 소리를 지른다. 산 위에서 제자들을 보셨던 주님과, 주님을 보지 못하는 제자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대조가 된다. 실제로 칠흑 같은 밤바다 한 가운데 사람이 서 있다는 것은 커다란 두려움이 아닐 수 없었다. 주님은 “즉시(유두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제자들의 마음을 진정시키셨다(50절). 그렇게 주님은 제자들의 배에 오르셨다. 그러자 몇 시간을 사투하게 했던 강한 맞바람이 순식간에 멎는다.
    
제자들은 몹시 놀랐다. 한밤중 바다 한 가운데를 걸어오신 주님을 보고도 놀랐지만, 배에 오르자 별다른 명령도 하지 않았는데, 바람이 멈춘 것을 보고 놀란 것이다. 마가는 지체하지 않고 제자들이 놀란 이유를 밝혔다. 그 이유는 제자들이 주님께서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마음이 둔하여졌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제자들은 오병이어 기적을 통해 주님이 누구신지를 깨달아야 했다. 마가의 기록은 제자들이 바로 어젯밤의 일도 기억하거나, 이해하지도 못하는 모습으로 기록되었다. 주님께서 메시아적인 잔치를 베풀고 자연을 통치하시는 모습을 보여 주었음에도 제자들이 주님이 누구신지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꼬집은 것이다. 이렇게 제자들이 주님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오해하는 모습은 8~10장의 중심 주제가 될 것이다.
    
    
    
2. 게네사렛에서의 사역(53~56절)
한적한 빈 들에서 출발할 때 목적지는 벳세다였다. 하지만 배는 게네사렛 땅에 이르렀다. 밤을 지새워 바람과 싸우며 노를 저은 결과였다. 주님과 제자들이 게네사렛에 도착하자 그곳 사람들은 주님을 즉각 알아차린다. 주님은 들어가신 게네사렛 지방, 도시, 마을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는다. 주님을 향하여 열정적으로 반응한다. 사람들은 병자를 주님께로 데리고 나왔다. 그의 옷자락이라도 손을 댈 수 있도록 허락하셔서 치유함을 간구하였다. 주님의 고향 나사렛에서 소수의 병자만 치유하셨던 것(6:5)과 선명하게 대조가 된다.
    
이를 통해 게네사렛 사람들이 얼마나 주님을 믿고 있는지가 드러난다. 중요한 것은 단지 육신의 질병만 치유된 사역이 아니라는 점이다. “성함을 얻었다(소조)”라고 번역된 단어는 “구원하다, 해받지 않게 하다, 보존한다”라는 의미도 있다. 이 표현이 시사하는 것은 게네사렛에서의 사역이 단순한 기적 이야기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인 통치의 구원이 예수님을 통해 지금 이루어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나는?
-환호를 떠나 고독을 찾아 산에 오르신 주님이시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본 무리는 주님을 억지로 왕 삼으려고 했다(요 6:14~15). 주님의 이런 기대와 환호를 멀리하고 십자가의 길을 가시려고 홀로 하나님 앞에 서신다. 또한 제자들도 헛된 환호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시려고 배를 태워 건너편으로 떠나게 하신다. 환호받는 시간은 짧을수록 좋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시간은 길수록 좋지 않을까?
    
-오병이어의 기적이 가져온 흥분과 환호보다 제자들이 충분한 휴식을 갖지 못함을 더 신경 쓰이신 주님이시다. 주님은 제자들의 휴식을 위해 먼저 배에 태워 보내시고 나머지 정리를 도맡으셨다. 마지막까지 사역의 자리를 꿋꿋이 지키신다. 그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오르신 것이다. 홀로 기도하는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붙잡고 십자가를 향해 묵묵히 전진하는 힘을 얻으셨다. 홀로 하나님 앞에 나가 머무는 시간을 갖는가?
    
    
-역풍으로 힘들어하는 제자들을 도우신다. 주님은 바다 한가운데서 애쓰는 제자들에게 오셔서 그들이 탄 배에 오르시고 바람을 잠잠케 하셨다. 인생의 풍랑을 만나 고전한다면 주님께서 풍랑 가운데 있는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러 오신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주님이 오셔서 베푸실 평화와 안식을 기대해야 한다.
    
-목자 없는 양 같은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신 주님은 제자들이 밤새 큰 바람을 만나 오도 가도 못하는 것을 “보시고” 찾아가신다. 몸은 멀리 떨어진 산에 계셨지만, 늘 제자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셨다. 어둠도 거센 바람도 우리를 향한 주님이 걸음을 막지 못한다. 몸이 떨어졌어도 마음은 항상 제자 곁에 계셨다.
    
-주님은 물 위를 걸어 바다와 사투를 벌이며 오도 가도 못하는 제자들을 찾아가신다. 유령이라 여기는 그들에게 출애굽의 하나님 이름(“내니”)으로 계시하신다. 그리고 “안심하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위로해 주신다. 주님이 천하를 다스리는 주권자임을 드러내셨다.
    
    
-나사렛과 달리 게네사렛에서는 놀라운 치유의 역사가 일어났다. 주님은 옷자락이라도 만지기를 소망하는 게네사렛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병자들을 다 고치신다. 결국 주님의 치유와 안식을 경험하는 유일한 길은 주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하고 나아가는 길 뿐이다.
    
-그럼에도 많은 이적을 경험한 제자들은 여전히 예수님이 누구신지 깨닫지 못한다. 오병이어의 매우 특별한 기적을 경험했어도 제자들의 눈을 뜨게 하지 못했다. 그래서 바다 위로 건너오시는 주님을 보고 두려워할 정도로 마음이 둔했다. 이적 자체에 열광하기보다는 이적을 통해 주님이 누구신지 깨달아야 한다.
    
    
-기적이 늘 바른 믿음으로 이끄는 것은 아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 제자들과 무리의 그릇된 메시아 기대를 잠재우기 위해 그들을 내쫓다시피 보내시고 홀로 산으로 가셨다. 그곳에서 세례 요한을 죽인 권력자들의 위협과 자신을 왕으로 옹립하려는(요 6장) 무리의 달콤한 유혹 속에서 자신이 가야 할 길과 해야 할 일을 물으시고, 새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밤새워 기도하셨다.
    
    
 
*주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제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는 듯합니다.
*주님, 환호소리에 취하기보다, 주님을 더 바라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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