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다시 찾으시는(회복시키시는) 아버지의 사랑 [렘 31:1-9]
 – 2024년 07월 10일
– 2024년 07월 10일 –
여호와의 구원 계획에는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 멸망한 북 왕국 이스라엘 사람도 포함된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여호와의 백성으로, 여호와는 은혜와 인자하심으로 이스라엘을 찾으신다. 회복된 이스라엘은 시온으로 여호와를 찾아 순례에 나선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남 유다만의 회복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유다로 분열되기 이전의 이스라엘을 향한다. 또한 에브라임(이스라엘) 재건의 초점은 북이스라엘의 회복에 머물지 않고 시온을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과 유다의 종교적 통일에 맞춰져 있음을 보게 된다. 솔로몬 사후 정치적, 종교적으로 분열되었던 남과 북이 여호와의 성전이 있는 시온을 중심으로 처음으로 하나로 통일된다.
    
예레미야를 통해 다시 이스라엘을 세우시는 여호와를 보여주는 것이다. 여호와는 남 유다만의 하나님이 아님을 선언하고 또 하나님의 구원을 “출애굽”과 연결하여 서술한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탈출하여 “광야”에서 여호와의 은혜를 입었다. 예레미야는 여호와께서 출애굽 시킨 사건을 “사랑”으로 표현하고, 이처럼 출애굽을 상기시킴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시 “탈출”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려 한다. 여호와께서 두 번째(제2의) 출애굽을 실행하실 것이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그때에 에브라임과 유다가 시온으로 순례할 것이다.
    
    
    
1. 에브라임에 대한 구원 선포(1~6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모든 종족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라고 선포한 1절은 30:22절과 내용상 일치한다. 이는 이스라엘의 배반으로 파기되었던 여호와와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 관계가 다시 회복될 것을 반복해서 선언하시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개입하셔서 새로운 구원의 시대를 열어주실 “그 때에” 온 이스라엘이 참여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미래의 구원을 선포하기 전에 먼저 출애굽에서 광야를 거쳐 가나안에 이른 이스라엘의 초기 구속사가 간략하게 언급된다. 이스라엘의 미래는 과거의 구속사적 역사가 다시 재현될 것을 선포하신 것이다. 애굽의 종살이에 함께 하셨던 하나님께서 다시 민족들 가운데 흩어져 종살이하는 유배민들과 함께하신다.
    
2절은 출애굽과 광야를 회고한다. ‘칼에서 벗어난’은 애굽 왕 바로의 추격을 벗어나 홍해를 건넌 사건을 가리킨다. 그리고 광야에서 여호와의 은혜를 경험하였다. 모세는 광야 사십 년이 출애굽 세대의 불순종이 초래한 징벌의 기간으로 묘사하나,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여호와만을 따른 축복의 기간으로 선포한다. ‘이스라엘이 안식을 얻게 하러 갈 때에’를 통해 가나안 정착은 하나님께서 안식처로 주신 것임을 드러낸다. 3절은 2절의 광야의 은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광야의 여호와는 “영원한 사랑(아하바)으로 사랑하시고, 인자(헤세드)함으로 이스라엘을 이끄셨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여호와의 사랑이 일시적이 아니라 영원한 사랑임을 밝힌다. 변함없는 신실함이 이스라엘의 부족함을 메꾸면서 영원한 사랑으로 감싸주셨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도 이어졌다. 언약이 영원한 사랑과 인자함에 근거했음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멸망으로 언약 관계가 끝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출애굽 세대가 경험한 구원과 영원한 사랑과 인자함이 앗수르에 멸망한 이스라엘의 회복도 능히 가능하게 해준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세우시기에 이스라엘이 세워지고, 사람들이 다시 사마리아산마다 포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즐기게 된다(4~5절). 멸망한 이스라엘이 재건되고 사람들은 다시 삶의 기쁨과 즐거움을 되찾는다. 그리고 에브라임 산지의 주민들에게 파수꾼들이 일어나 여호와께서 현존하시는 시온으로 올라가자고 외친다(6절).
    
이것은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떠나 심판받았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인자함으로 회복된 이후에는 시온에 계신 여호와가 그들이 찾아야 할 하나님이 될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솔로몬 사후 다윗이 물려준 통일 왕조가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하고 남과 북으로 분열되고, 정치적으로 뿐 아니라 종교적으로 각자의 길을 갔는데,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여로보암(주전 926~907년)은 자기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을 찾지 못하도록 벧엘과 단에 국가 성소를 세우고 멸망하기까지 그곳에서 예배를 드렸다. 유다는 당연히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예레미야는 정치적, 종교적으로 분열되었던 남북 왕조가 여호와의 성전이 있는 시온을 중심으로 다시 결합할 것을 내다본 것이다.
    
    
    
2. 유배민(남은 자)의 귀향(7~9절)
흩어진 자들의 귀향을 약속하기에 앞서 여호와께서 찬양을 권면하신다(7절). 권면과 간청이 함께 등장한다. “환호하라, 환성을 질러라, 전파하며 찬양하며 말하라, 여호와여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소서 하라.” 여호와의 구원 행위가 아직 먼 미래에 속하지만, 반드시 성취될 것을 보여준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일차적으로 민족들 가운데 흩어져 유배살이하는 북 왕국 사람들을 가리킨다. 남 유다의 경우처럼 북이스라엘에서도 유배민이 남은 자가 된다. 찬양과 간구의 명령을 받는 “너희”가 누구인지는 불분명하다.
    
여호와께서는 북쪽 땅과 땅끝에서, 앗수르와 바벨론에서,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불러 모으신다. 가나안까지 멀고 험한 길이지만 보행조차 힘든 사람(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과 잉태한 여인과 해산하는 여인) 까지도 모두 안전하게 귀환한다(8절). 이는 귀향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은총에 근거한 것임을 보여준다. 여호와께서 한 사람의 낙오자가 없도록 위험이 없는 평탄한 길로 인도하시고 유배민들은 기쁨과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돌아온다(9절).
    
이러한 이스라엘의 구원은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특별한 관계 때문에 이루어짐을 선포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아버지요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9b절).” 끊임없이 반역하였음에도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아버지이시기에 구원의 문이 열린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일시적으로 일그러질 수 있지만, 어떤 경우에도 완전히 끝장나지 않는다. 아버지의 진노가 아버지의 사랑과 인자함 앞에 무장해제를 당한다.
    
    
    
나는?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영원한 사랑으로 회복된 관계임을 선포하셨다. 하나님께서 다시 이스라엘 모든 가족의 하나님이 되어 주기로 하신 것이다. 옛적 바로의 칼에서 벗어난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그분의 백성으로 창조하여 가나안의 안식을 주셨듯이, 이 백성을 쉼과 샬롬의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이스라엘이 그럴만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하고 한결같은 사랑 때문이다. 우리가 믿음의 순례를 멈출 수 없고 멈춰서도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이 하나님의 감당 못 할 사랑 때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여호와의 사랑과 인자함으로 회복되는 기쁨과 평화가 깃든다. 헛된 사랑을 추구하며 자신을 단장하던 멸망할 자들이 여호와께 돌아가려고 흥겨운 악기로 단장하는 처녀가 되고, 패망과 함께 끊어진 노래와 춤을 되찾게 하실 것이다. 황무지 사마리아산에 다시 포도원이 세워지고, 이방인들에게 빼앗기기만 했던 수고의 열매를 그들 손으로 먹을 날이 오게 하실 것이다. 쳐들어오는 침략자들의 출현을 알리던 파수꾼들은 이제 시온 성전에서 예배하기 위해 순례를 재촉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회복하시는 세상은 이처럼 완전하다.
    
-흥겨운 찬양과 간구로 초대한다. 야곱을 위해 기뻐 노래하고 외쳐 전파하고 찬양하며 남은 자의 구원을 요청하라고 하신다. 이스라엘의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께서 장자의 간구를 들으셔서 그들이 넘어지지 않고 안전하게 돌아오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포로에 불과한 야곱이지만, 존귀한 열방의 “머리”로 삼으실 것을 믿고 미리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하며, 담대히 구원을 호소하라는 하나님의 뜻일 것이다.
    
-오늘, 주를 진심으로 신뢰하고 사랑하는 자를 바른길로 인도하실 것이니, 내 삶의 조건에 너무 주눅 들지 말고 하늘 백성 된 신분을 감사하며 누려야 할 것이다.
    
*쫓아내신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친히 찾아가신다(2~3절). 애굽에서 노예살이하던 이스라엘을 찾아가시고 거듭 반역하는 그들을 끝까지 인내하시며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던 것처럼 이제 바벨론으로 가서 다시 그들을 구출하시겠다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포로로 보내신 것은 그들을 다시 찾기 위함이다. 삶 속에서 하나님께 버림받고 외면당하는 감정이 들수록 나를 찾아오셨던 주님은 내가 온전한 구원에 이르기까지 나를 잃지 않고 찾고 계시는 분이라는 것이 이 말씀을 통해 붙잡게 된다.
    
*상황을 역전시키시는 하나님이시다(4~6절). 전쟁에 패하여 끌려갔던 자들이 승전가를 외치며 승리의 함성으로 돌아오게 하신다. 남의 땅에서 포로살이하던 자들이 자기 땅으로 돌아와 자기가 수고한 것을 누리게 하신다. 분열되었던 국가를 통합하신다. 이 사실이 더 이상 소망 없을 것 같은 위기를 맞은 상황에 직면할 때 역전시키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소망을 일깨워 주신다. 오늘 나에게도 이 역전의 하나님이 소망이 된다.
    
*아버지가 자식을 인도하듯 큰 무리를 안전하고 편안한 길로 인도하신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 힘들다고 더 쉬운 길을 찾는 어리석음을 발휘하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길에 더 쉬운 길은 없다. 지금 인도함을 받는 길이 가장 쉬운 길, 가장 안전하고 평안한 길이다.
    
*남은 자를(7절)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환난을 통해 정결하게 된 남은 자는 매우 소수이다. 진정 하나님을 신뢰하며 걷는 사람은 매우 소수다. 자기 멋대로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결심하고 순종하며 사는 “남은 자”여야 하겠다.
    
    
    
*주님, 포로가 된 남은 자들에게 구원과 회복을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봅니다. 약속하신 대로 이루어주시기 위해 출애굽과 광야의 구원을 통해 보이신 사랑과 인자하심을 깨닫게 하십니다. 오늘 지금, 여기에서 그 하나님의 사랑을 소망하고 신뢰하며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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