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오직 여호와만 송축하리로다 [시편 115:1-15]
 – 2024년 12월 27일
– 2024년 12월 27일 –
 
할렐루야 시편 모음집의 다섯 번째 시편이다. 115~117편은 각 시편의 맨 마지막 구절에 “할렐루야”라는 명령형이 나온다. 열방이 섬기는 우상의 헛됨을 지적하며 이스라엘의 중요성을 부각하는 동시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의 중요성을 제시한다. 이러한 표현을 통해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언약 당사자의 범주를 단지 이스라엘에 국한하지 않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 확장하고 있다.
 
 
 
1.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1절)
115편의 시작은 일반적이지 않다. 하나님께 대한 긍정적인 고백이나 간절한 요청 등 전형적인 시편 시작 문장을 대신하여 “우리에게 영광을 돌리지 마소서”라는 간구를 두 번 반복하며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광은 오직 인자하고 진실한 성품을 지니신 여호와 하나님께만 돌려져야 한다는 분명한 이유에서다.
 
“인자와 진실”은 여호와의 언약적인 성품으로 111편에서 이미 집중적으로 강조되었고 112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삶의 특징으로 묘사되었다. 113편은 그 여호와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함을 제시했고, 114편은 이스라엘의 구속주 하나님이 곧 온 우주의 창조주이심을 설명했다. 이제 115편은 이러한 언약의 하나님을 창조주 하나님과 어떻게 연결해나갈지 주목하며 살펴야 한다. 1절은 여호와께서 언약의 하나님이시고, 영광은 오직 그분께만 돌려져야 함을 강력하게 선포한다.
 
 
 
2. 열방의 우상은 거짓이다(2~8절)
이 단락은 열방이 믿고 의지하는 우상에 대한 주제다. 2절은 열방이 이스라엘을 향해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어디 있느냐?’고 말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단언하다. 3절에서 그 이유를 제시하는데, 하나님은 어느 한 장소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시고, 그렇기에 원하는 모든 것을 그 뜻대로 행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는 질문 자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는 전혀 의미가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구약의 ‘하늘’은 단지 지구의 대기층을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이 계시는 초월적인 장소를 상징적으로 뜻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2절은 하나님을 사실상 “창조주 하나님”으로 묘사하고 있음을 염두해야 한다.
 
4~7절은 “우상들은 생명이 없는 죽은 신들이다”라는 메시지를 반복하여 전달한다.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 코가 있지만 냄새도 못맡고,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한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한다는 반복된 표현들은 겉으로는 존재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존재하지 않음을 뜻한다. 더 정확히는 “겉으로는 생명을 가진 것 같지만 사실은 죽은 신들”임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우상에게 간구할 때에는 그 우상이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인데, 그 우상들은 사실상 죽은 신들, 거짓 신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신들이므로, 간구하는 자를 위해 그 어떤 것도 해줄 수 없는 존재일 뿐이다.
 
8절은 이 모든 내용을 정리하면서 “우상을 만들거나 그 우상을 믿는 사람은 그 우상들과 같은 뿐이다”라고 단언한다. 우상을 섬기려는 자들은 우상처럼 거짓에 빠지게 될 뿐이며, 우상들을 통해 무언가를 얻으려는 그들의 노력은 헛될 뿐이고, 오히려 우상으로 인해 생명력을 얻지 못하고 죽음에 속한 결과를 얻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무런 열매와 효과도 얻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3.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신뢰해야(9~14절)
본 단락은 114편의 사실상의 본론이다. 9~11절은 “여호와를 의지하라(바타흐_신뢰하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라는 후렴구가 세 번 반복된다. 그리고 이렇게 여호와를 신뢰해야 할 대상이 9절은 ‘이스라엘’을, 10절은 ‘아론의 집’을, 11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로 표현된다. ‘이스라엘’은 언약 공동체 전체인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키고, ‘아론의 집’은 레위 지파 및 제사장 가문을 지칭한다. 또한 아론의 집은 하나님 나라 전체 그림에 있어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거하는 구별된 존재들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열 두 지파와 구별되는 레위 지파, 그중에서도 또다시 거룩하게 구별된 아론의 집, 제사장 가문으로 압축된다. 9절에서 10절은 거룩의 차등에 있어서 더 거룩한 자들을 언급하는 방향성을 보여준다. 확장이 아니라 거룩한 영역의 집중화로 보인다. 하지만 11절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은 집중화가 아니라 확장성을 보인다. 지파나 민족에 관계없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그 누구라도 이에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9~11절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대상이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12~14절은 “이스라엘-아론의 집-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라는 집중과 확장 구조를 다시 한 번 반복한다. “여호와께서 복을 주신다”는 문장에서 “복을 주다(바라크)”라는 동사가 가진 기본 의미는 “생명력을 통한 번성”이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여섯째 날 동물들과 사람을 만드시고 “복을 주셨다.” 그후 곧바로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명령하셨다. 즉 “바라크” 동사는 죽음에 반대되는 생명의 이미지, 번성과 부흥의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생명력의 충만으로서의 복이 ‘이스라엘-아론의 집-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임한다는 것이다. 14절은 이러한 과정의 결과로서 “하나님께서 너희를 번성하게 하실 것이다”라고 표현한다.
 
9~14절은 “하나님을 신뢰하라 그러면 지켜주신다”는 메시지와 동시에”너희를 번성하게 하실 것이다”라는 두 가지 메시지를 전달하되, 이스라엘이나 제사장 그룹뿐 아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모든 자들에게 동일하게 전달되고 적용될 것임을 선포한다.
 
 
 
4. 창조주 하나님을 송축해야 할 이유(15~18절)
이렇게 이스라엘에게 복을 베푸신 여호와를 15절은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로 설명한다. 이스라엘이 확장되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 이어지는 것처럼,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피조 세계 전체의 하나님이심을 명확하게 설명한다.
 
16절은 하나님이 지으신 하늘과 땅을 두 가지로 나눠 말한다. 하늘은 하나님께 속했지만, 땅은 사람에게 주셨다는 것이다. 이 땅은 사람이 살아갈 하나님의 나라이며, 주님 나라를 일구어나갈 통치 영역이다. 그런데 그 땅 아래에는 죽음의 세계가 있다.
 
17절이 죽음의 메시지를 다룬다. 앞서 2~8절에서 언급한 우상들의 생명력 없음이 연결되는 세계가 바로 17절의 죽음의 세계다. 17절은 죽음에 대해서 말하되, 죽음의 세계에서는 여호와를 찬송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이는 생명을 창조할 수 없는 이방 우상을 섬기지 말아야 하며, 생명으로 복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를 섬겨야 하는데, 그렇게 여호와를 섬기는 방법이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전달하고 있다.
 
 
 
나는?
-오직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 이스라엘의 평강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 때문이며, 그분은 인간의 세계를 초월하여 원하는 모든 것을 행하실 수 있는 주권자이시기 때문이다. 환난과 시련이 끊이지 않는 세상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과 방패가 되어 주신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백성이 의지할 대상은 잠시 있다 사라지는 죽은 우상이 아니라, 살아계신 전능한 주권자 여호와뿐이다. 그러니 헛된 것에 기대어 거짓 안전을 추구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만 영광 받기에 합당하신 이유는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그분의 진실하심 때문이다. 온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은 땅의 어떤 주권자들도 그분을 다 알 수 없으며, 그분의 뜻을 거슬러 실패로 돌아가게 할 수 없는 분이다. 하나님의 성품대로 행하시고 주권대로 행하실 것이니 이루어진 모든 것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실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다. 어떤 나라들도, 어떤 인간도 그 영광을 탐내서는 안 된다. 영광을 오직 주의 이름에만 돌려야 한다.
 
-하늘과 땅은 숭배의 대상이 아니다. 피조물일 뿐이며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다. 그렇기에 선물에게가 아닌 선물을 주신 하나님만 영원토록 찬양 받으실 수 있다. 우리는 오직 살아있는 동안만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
 
-우리가 의지할 분은 살아계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온 세상의 주권자이신 하나님밖에 없다. 그런데 어찌 그 하나님을 사람의 손으로 지은 우상과 비교할 수 있을까? 인간보다 못한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어리석음이나, 그 우상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대체하는 어리석음을 피해야 한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도움이시며 방패이시다. 오직 하나님만 경외하는 것이 곧 살 길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모든 것을 원하시는 대로 하실 수 있고, 자신이 만든 피조물에게 영광과 경배를 받으시지만, 우상은 자신을 만든 사람에 의해 거짓 경배를 받는다. 보지도, 말하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우상은 인간 욕심의 형상화일 뿐 스스로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무의미하고 무기력한 존재에 불과하다. 누구든 자기가 경배하는 대상처럼 변해간다. 하나님은 우상을 만든 자를 살았으나 죽은 자로 간주하여 우상의 운명으로 끝이 나게 하실 것이다.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는 자는 우상과 똑같이 멸망하겠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경외하는 백성은 세심하게 돌보시고 자손대대에 이르기까지 복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은 오직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만 베푸신다. 우상이 지배하는 세상이 주는 유한한 복이 아닌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사모해야 한다.
 
 
 
*주님, 내가 주님을 경외합니다. 나의 찬양은 오직 주님에게만 올립니다.
*주님, 나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도움이시며 방패이시기에 변치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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