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렘 물건에 손을 댄 범인을 색출하는 제비뽑기 과정은 각 지파, 그 안에 몇 개의 계파(문중), 그 안에 가족별 구조가 드러낸다. 하나님께서 일러 주신 대로 제비를 뽑았더니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아간이 뽑혔다. 여호와께서 친히 지명하여 범죄자를 가려내신 것이다. 이에 여호수아가 심문하자 아간이 자복한다. 여호수아는 그 물건과 함께 아간과 그 식구들을 모두 돌로 쳐서 진멸하여 공동체에서 제거하게 한다.
1. 아간이 범죄자로 지목되다(16~18절)
이튿날 여호수아는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그의 지파대로 가까이 나아오게 한다. 여호수아는 적극적으로 순종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이에 여호와께서 범죄자를 가려내 주신다. 16절은 ‘유다 지파가 뽑혔고”라고 번역하여 마치 유다 지파가 제비를 뽑은 것처럼 여기게 하지만, 동사 “라카드”는 ‘잡히다, ‘체포되다’란 뜻이므로 제비를 뽑은 것이 아니라 문중 남자들을 다 소집하여 회막문 앞에 세웠을 때, 여호와께서 그를 꼭 집어내셨다고 볼 수도 있다. 혹은 우림과 둠밈으로 제비를 뽑았을 수도 있다.
17절의 유다 ‘족속(미쉬팍하트)’은 우리말에는 “문중(門中)”이라고 하면 더 정확하다. 그런데 흔히 ‘지파’로 번역되다가 갑자기 ‘족속’으로 옮긴 것이다. 18절의 ‘삽디의 가족’은 원어로는 ‘집’이란 뜻이다. 삽디가 가족을 이루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가족 구성원 중에서 아간이 잡혀 나왔다. 삽디의 아들은 갈미이며, 갈미의 아들이 아간이다. 갈미가 그냥 가족에 대한 언급이 생략된 채 바로 아간으로 넘어가는 것으로 보면 갈미에게는 가족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즉 아간이 아버지 없이 자랐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계보를 거쳐 아간이 잡혀 나왔다. 그는 자신을 철저히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고 불순종하였으며 세상의 근심과 야망에 자신을 넘겨주고 말았다.
한편으로 가나안 정복 전쟁의 첫머리에 생긴 범죄자가 유다 지파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이후 남 왕국의 유다 지파의 왕들이 하나같이 범죄시함으로 이스라엘이 망하여 가나안에서 추방되었다는 것과 묘한 대조를 보인다. 다윗 왕국의 유다 지파 왕들은 하나같이 헤렘을 어기고 범죄한다. 왕국의 멸망을 초래한 사실이 아간의 범죄와 무관하지 않게 여겨진다. 죄의 뿌리는 질기다.
2. 아간의 자백(19~23절)
여호수아는 아간을 심문한다(19절). 아간은 여호수아의 추궁을 받고 솔직하게 죄를 인정하고 자백한다(20절). “참으로(아마나)”라는 부사까지 덧붙이며 그의 고백이 진정한 회개를 담고 있음을 드러낸다. “아마나”는 “아멘”이란 말과 마찬가지로 영어 번역본은 ‘indeed / it is true’라고 옮겼다. 아간은 자신을 강조하는 일인칭대명사 ‘아노키’를 명료하게 외치며 자기 가슴을 치며 크게 뉘우치는 몸짓을 하고 있다. “범죄하여(하타티)”는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음을 고백하고 속죄제를 드림으로 용서받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뜻을 전달한다. 하지만 때는 너무 늦었다. 유다 지파와 세라 문중이 다 나아오고 그다음에 삽디 가족이 지명될 때까지도 그는 고백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고 그러다가 마침내 여호와께서 그를 꼭 집어 지명하여 나왔기 때문이다. 여호수아가 그를 체포하여 심문하기 전까지 끝까지 실토하지 않고 버틴 것이다.
믿음의 여정에서 기회주의적인 태도로 일관하다가 정작 심판날이 다가왔을 때 회개한다면 그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평생 회개하지 않다가 정작 임종을 앞두고 회개하면 무조건 구원 받을 수 있다고 강퍅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나 너무 늦으면 회개하여도 구원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아간을 통해 보여준다. 관건은 끝까지 외면하며, 회개의 기회를 미루다가 어쩔 수 없이 하는 회개에 하나님의 자비는 없다는 것이다. 아간의 회개는 너무 늦었다.
아간 범죄의 핵심은 탐욕에 있다. 아간의 말에는 ‘내가 노략질한 물건’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21절. 그 사고방식 속에 전쟁의 승자는 당연히 노략질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 깃들어 있다. 하지만 여호와의 거룩한 전쟁은 하나님께서 거두신 승리이기에 거기에 어떤 인간의 공로도 내세울 수 없다. 거룩한 전쟁에서 논공행상을 가릴 수는 없다. 그런데 아간은 자신의 몫을 챙기려고 한 것이다.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이란 표현에도 그의 탐심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시날 산”이란 바벨론 도시 국가에서 맞춘 외투(수입품)라는 뜻이다. 요즘 표현으로는 명품 외투다. 명품 옷을 태워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까웠다는 뜻이다. 탐욕은 사람의 뼛속까지 스며들어 있는 가장 무서운 죄악이다. 이 탐욕에 져버리면 곧장 우상숭배의 왜곡된 삶으로 빠져들고 만다. 금과 은과 명품 옷을 장막 속에 끝까지 숨겨두려 했다. 또 은 이백 세겔(23kg)과 오십 세겔(5.75kg) 되는 금덩이 하나를 숨겼다고 자백한다.
22~23절에서 여호수아는 아간의 자백을 근거로 감추어둔 ‘헤렘’을 찾아낸다. 그리고 이것을 모든 회중 앞에 진열한다. 회중에게 이스라엘의 군대 36명을 전사하게 만든 아간의 범죄가 얼마나 막중한지를 인식하게 하는 과정이다. 동시에 범죄를 미워하도록 회중에게 경고하는 의미도 있다. 또한 그 증거물을 쏟아 놓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지시대로 다 준행하였음을 고하는 마지막 절차였다.
3. 아간을 처형하다_아골 골짜기의 유래(24~26절)
아간은 속죄받기를 원했지만, 그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진다. 이스라엘 전체에게 던지는 무서운 경고의 메시지다. 아간은 용서받지 못하고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한다. 아간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과 가축과 모든 재산이 진멸 당한다. 온 백성이 나와서 아간의 무리와 ‘헤렘’에 돌을 던졌다. 얼핏 들으면 매우 잔인하다. 하지만 가족까지 죽임을 당한 이유는 신명기 24:16에 비추어 보면 아간의 범죄가 가족의 공모나 협조 속에서 진행된 것임이 분명하다. 하나님께서는 연좌제(특정한 사람의 범죄에 대하여 일가친척이나 그 사람과 일정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 연대 책임을 지고 처벌을 당하던 제도)를 처절하게 금지하셨기 때문이다.
여호수아는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냐?”라고 추궁한다(25절). “괴롭히다(아카르)”는 동사는 창세기 34:30에서 야곱이 하몰 족속을 몰살시킨 아들들을 나무라면서 “너희가 나에게 화를 끼쳤다”라고 말했을 때 화를 끼치다로 번역된 단어다. 여호수아는 18절에서 헤렘을 취하면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을 때 이 단어를 사용했다. 지도자의 경고를 무시한 아간의 죄로 인하여 온 이스라엘이 패전의 고통을 당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 여호와께서 아간을 괴롭힐 것이다. 이토록 괴로운 사건으로 인해 아간이 처형을 당한 장소를 가리켜 “아골 골짜기”라고 부르게 되었다.
범죄한 아간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들이 제거되자 하나님은 자신의 분노를 돌이키셨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더는 하나님께 속한 물건(헤렘)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이 거룩해야만 거룩하신 하나님을 모실 수 있고, 거룩한 전쟁을 수행하여 승리로 이끌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는?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지시대로 제비뽑기를 통해 아간을 뽑아 범죄 사실을 자백하게 한다. 그리고 아간이 훔친 모든 물건을 회수하여 아간과 그에게 속한 자녀들과 생축과 모든 소유와 함께 아골 골짜기에서 불태운다.
-하나님께서는 아간의 죄를 공공연히 드러내시고 아간을 진멸하심으로 죄의 심각성을 알리신다. 약속하신 땅에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아간의 탐욕과 불순종은 하나님 나라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심각한 범죄였다. 사도들과 교회를 속였던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진멸하신 것(행 5:1~10)도 새로 시작된 교회 공동체를 위한 조치였다. 물질에 대한 탐욕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속이며 사는 삶이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얼마나 동떨어진 것인지 보여주는 본보기이다.
-또, 개인의 죄는 공동체 전체의 문제라는 것을 부각하신다. 아간 한 사람의 죄로 공동체 전체가 그 죄책(罪責)을 지게 되었고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따라서 아간의 죄를 드러내는 일에 공동체 전체가 참여함으로 자신을 스스로 거룩게 하라는 하나님 명령에 순종한다(16~18, 22~26절). 혹시 나로 인해 공동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 공동체는 구성원의 죄에 대해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가? 아간 한 사람의 죄로 그의 지파와 족속과 집안이 부끄러움을 당했고 이스라엘 전체가 고통을 받았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숨길 수 있는 것은 없다. 아간은 훔친 물건을 자신의 장막 안 땅속에 묻어 은밀하게 숨기고 사람의 눈을 속였다(19~21절). 그러나 하나님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혹시 하나님 앞에서 숨기고 있는 것은 없는가?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을 때 나는 어떤 사람인가?
-심판을 통해 진노를 그치시는 하나님이시다. ‘아골(괴로움)’에서 죄의 책임을 물으셨던 하나님께서 이제 죄인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아들을 “골고다(해골)”에서 대속 제물로 내어주셨다. 아간과 같은 우리를 위해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희생과 죽음으로 죗값을 지불하셨다. 이 크고 귀한 은혜를 값싼 은혜로 전락시키면 안 될 것이다.
-아간의 회개는 때늦었다. 실토했지만, 너무 늦었다. 낱낱이 실토하며 무엇을 훔쳤고 어디에 숨겼는지 숨김없이 털어 놓지만 늦어도 너무 늦었다. 그의 범죄는 가나안 땅에서 행한 첫 범죄였다. 이 작은 죄악이 공동체에 큰 죄악으로 다가왔다. 기억해야 한다. 가나안 땅은 아름다운 땅이지만 그만큼 죄의 유혹이 강한 곳이다. 가나안 땅에 들어왔다고 저절로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탐욕의 늪에 빠진 아간은 돌이킬 수 있는 회개의 기회조차 외면하다 너무 늦어버린 돌이킴도 소용없게 되었다. 그래서 회개하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른다. 해야 할 때 하는 회개는 생명을 주지만, 미루다 미루다 너무 늦어버린 회개에는 하나님의 진노만 가중할 뿐이다.
-아간과 그의 모든 것을 진멸하시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선명하게 드러내신다. 가나안에서는 진멸할 것은 진멸하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이는 가나안 정복 전쟁이 약탈 전쟁이 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탐욕을 충족시키는 노략질의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대의명분을 위해 싸워야 하는 하나님의 전쟁이다. 명품을 취하기 위한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라는 명분을 이루기 위한 전쟁이어야 한다.
*주님, 아간과 가족들의 범죄가 이스라엘 공동체에 큰 분노와 슬픔을 가져온 것을 봅니다. 나의 죄악이 교회 공동체에 큰 슬픔을 가져올 수 있음을 알고 더욱 죄에 대하여 단호하겠습니다.
*주님, 아간은 아무도 모를 거라는 생각으로 탐욕의 유혹에 넘어졌음을 봅니다. 모든 것을 보고 계시고 아시는 하나님 앞에 살고 있음을 늘 잊지 않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