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최선이 아니라면 차선이라도_책임질 줄 아는 여호수아의 지도력 [수 9:16-27]
 – 2025년 01월 14일
– 2025년 01월 14일 –
수 9:16-27 최선이 아니라면 차선이라도_책임질 줄 아는 여호수아의 지도력
    
기브온 족속에게 속은 줄 알고 이스라엘 백성은 회중의 족장들을 원망한다. 이에 군대를 이끌고 그들의 거주지로 달려간다. 하지만 이미 체결된 조약으로 인해 공격할 수는 없었다. 신명기 법에 따르면 가나안 족속과의 조약은 허용될 수 없었지만, 이미 여호와의 이름으로 조약에 서명한 상태였다. 이에 이스라엘은 기브온 족속을 “온 회중을 위하여 나무 패며 물 긷는 자”로 받아들이기로 삼겠다고 선언하고 목숨을 보전한 기브온 족속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인다. 기브온 족속들은 여호와의 제단을 위하여 나무 패며 물 긷는 일을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살게 된다.
    
    
    
1. 진멸을 면한 기브온 족속(16~21절)
기브온 주민과 조약을 맺은 지 사흘이 지났을 때 이스라엘은 속았음을 깨닫는다. 사흘 길을 진행하다 보니 히위 족속들의 도성들이 나타났고, 이들이 모두 기브온 주민과 같은 족속임이 드러난 것이다. 기브온을 필두로 그비라, 브에롯, 기럇여아림 성읍이었다. 그제야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속았음을 깨달았다. 백성은 기브온 주민들에게 종주권 맹세를 한 족장들을 원망한다(9:15). 특이한 것은 백성이 여호수아를 원망하지 않는다. 광야 시대 때 걸핏하면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던 백성과 비교된다. 백성들이 이렇게 족장들을 원망한 까닭은 자신들이 헤렘 규칙을 어겼고 그 때문에 하나님의 징벌이 임할까 두려워했다. 이미 여리고 성과 아이 성 전투를 치르면서 아간의 범죄로 인해 헤렘 법을 지키지 않은 대가를 혹독하게 치렀기 때문이다.
    
신명기 7:1~4에서는 가나안 족속과 결코 조약을 맺지 말라고 엄히 경고하셨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치명적이게도 가나안 족속과 언약을 맺어 하나님의 금령을 어기고 만 것이다. 그렇다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한 사약을 깨트릴 수는 없었다. 그 서약에 걸린 여호와의 이름을 결과적으로 더럽혀 진노가 그들에게 임할 것이기 때문이다(20절). 여호와의 이름을 건 맹세와 서원은 매우 중요하므로 경솔하게 해서는 안 된다. 양측의 조약을 따라 이스라엘은 그들을 살려주어야만 했다(21절). 대신 조약 내용대로 기브온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종노릇을 할 것이다. “나무를 패는 자들과 물 긷는 자들”이라는 표현은 노예로 섬기는 모든 사람에 대한 총칭이다(신 29:11). 기브온 사람들은 다양한 노역으로 이스라엘을 섬길 것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구절들에서는 기브온 사람들의 노역이 특히 제단이 관련되었다고 언급하며 그들의 노역이 매우 특별했음을 암시한다.
    
    
    
2. 이스라엘의 종이 된 기브온 족속(22~23절)
여호수아는 기브온 족속들을(아마도 대표들을) 불러내어 그들의 속임수를 비난하고 대대로 자신들의 종이 될 것을 선언한다. 당시 종주국은 속국의 태도에 따라 훨씬 더 무거운 요구를 할 권리가 있었기에, 여호수아는 기브온 사람들에게 저주를 들먹이면서 가혹한 종노릇을 선언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들은 성전을 위해 나무를 패고 물 긷는 일을 해야 한다고 공포한다. 이는 성전에서 사용되는 땔감과 물을 공급하는 일은 훨씬 더 까다로운 일이었음을 암시한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이 부분에서 기브온 족속을 향한 저주를 선언한다(23절). 이는 창세기 9:24~27의 함의 아들 가나안을 향한 노아의 저주가 성취된 것이다. 기브온 사람들인 히위 족속은 가나안 자손 중 하나였다(창 10:17; 대상 1:15). 이들은 호리 족속과 동일한 민족으로 추정한다(창 14:6; 36:20, 29; 신 2:12, 22). 함에 대한 노아의 저주는 오랜 시간 동안 백인 신학자들에 의해 흑인 저주론의 성경적인 근거로 악용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흑인 노예 제도를 정당화하기 위한 왜곡과 날조다. 왜냐하면 노아에게는 셈, 함, 야벳의 세 아들이 있었는데, 함은 아버지 노아의 드러난 하체를 덮어주지 않은 잘못으로 저주를 받는다. 함에게는 네 명의 아들인 구스, 붓, 미스라임, 가나안이 있었는데 앞의 세 명의 거주지가 아프리카이고, 가나안은 아프리카 종족과 무관하다. 함의 저주는 가나안에 내려졌다. 흑인의 저주와 전혀 무관한 것이다. 더구나 이 저주는 여호수아 시대 이후로 열왕기 시대에 점차 성취되어 유효기간이 끝났다(수 15:63; 17:13; 왕상 9:21; 대하 8:8).
    
성경은 모든 인류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이 아니고서는 가망 없는 저주받은 존재라고 선언한다(롬 3:9).
    
    
    
3. 기브온 족속의 변명(24~27절)
기브온 사람들은 여호수아에게 이 상황을 변명하면서 속임수가 불가피했음을 적극적으로 설명한다. 24절은 신명기에서 모세가 선포한 가나안 정복의 실재성과 헤렘 전쟁 수칙을 정확히 알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결국 그들의 해명은 여호와께서 명령한 법에 따라 가나안의 모든 부족은 진멸을 당할 것이 분명하므로 생존을 위한 최후 수단으로 속임수를 써야 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이스라엘의 처분에 맡기겠다면서 자세를 더욱 낮춘다(25절).
    
여호수아는 조약에 따라 목숨을 보장해 주면서도 다시 한번 종신 종노릇의 운명을 선언한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섬기되 구체적으로 여호와의 제단을 위해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 일을 감당할 것이다. 성전을 위한 종노릇은 일반 직무보다 훨씬 더 까다롭고 힘든 직무일 수 있다. 성전에서 사용하는 것인 만큼 매우 까다로운 규정이 존재했다. 그만큼 일반적인 종살이보다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호수아가 부여한 기브온 족속의 성전을 위한 종살이는 기브온 족속과 그들의 생존을 은근히 우호적으로 보게 한다.
    
전통적으로 기브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헤렘 수칙을 온전하게 지키지 못하고 위반한 이스라엘의 잘못을 고발하고 비난하기 위한 목적을 지닌다고 해석됐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을 “다 쫓아내지 못한” 실패에 대한 기록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기브온의 이스라엘로의 편입을 긍정적으로 보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주장의 초점은 기브온 족속의 말에서 여러 차례 여호와의 명성과 위대한 업적에 대한 신앙이 고백 되고 있으며, 여호와께 전적인 투항과 굴복의 자세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브온은 9장 초반 반이스라엘 연합에 참가하지 않았고 이 결단은 여리고의 라합의 결단과 연결된다. 라합의 개인적인 신앙과 결단의 민족적인 확장판이라는 것이다. 라합이 여리고 군사들을 속여 생명을 부지했다면, 기브온은 이스라엘을 속여 목숨을 부지했다. 이런 관점은 결국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묻지 않은 부정적인 실수마저 기브온 족속을 언약 공동체로의 편입을 위한 섭리로 볼 수 있게 한다. 실제로 본문에서는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묻지 않은 것에 대하여 아무런 책임이나 추궁이 이뤄지지 않고 처벌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나아가 기브온 족속의 결단과 속임수마저 불사한 과감한 행동은 라합과 같은 개인만이 아닌 민족적 단위의 구원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그러므로 기브온 족속의 이야기는 “진멸이 아닌 진멸로부터 구원받는 한길을 제시하고 있다.”
    
    
    
나는?
-방심하여 평화 조약을 맺은 것이 드러나자, 백성은 족장들을 원망한다. 진멸 명령을 거부한 죄로 아간의 경우처럼 여호와의 진노가 자신들에게 임할 줄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죽고 사는 문제가 야만적인 전쟁과 정복의 이름으로 결정되던 고대 사회에서 바로 옆에 사는 기브온 족속과 공존하기로 한 것은 큰 위협 거리일 수 있었다. 부주의한 일 처리에 대해 치러야 할 대가는 만만치 않았다.
    
-여호수아는 백성의 항의를 무시하지 않는다. 괜찮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안심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조약을 파기하여 그들을 진멸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조약을 파기하여 그들을 진멸하지도 않는다. 그릇된 조약이라도 지킨다. 조약 파기가 도리어 하나님의 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브온 민족을 하나님 집을 위해 물 긷는 자와 장작 패는 자로 삼는다. 최선은 아니었지만, 그들을 늘 지배하고 통제할 수 있는 형태로 둔 것이다. 이스라엘은 노예들을 얻어서 좋은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긴장하지 않으면 동화될 수 있는 “가나안 문화”를 “자기들 안에 두는 “위험한 축복”이었다.
    
-여리고와 아이를 거치면서 이스라엘은 어느 새 작은 부족이 아니라 가나안이 두려워하는 존재가 되었다. 자신의 신분을 속여서라도 평화 조약을 맺으려는 나라가 된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작은 힘으로도 세상이 두려워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여호수아의 지도력이 두드러진다. 안타깝게도 여호수아와 지도자들은 큰 실수를 범하고 만다. 하나님께 물어보지도 않고 기브온 족속과 화친을 맺은 것이다. 이것이 잘못이었음을 얼마 지나지 않아 드러나고 백성들은 원망하기 시작한다. 눈앞의 비옥한 쉐팔라 지역의 땅들을 차지하지 못할 상황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때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것을 깰 수 없다며 백성의 요구를 거절한다. 지도자가 때로 잘못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비난을 두려워하여 원칙 없이 무마하는 것은 바른 태도가 아닐 것이다. 허물이 드러날지라도 이를 인정하고 책임지려고 할 때 공동체의 신뢰는 형성된다.
    
-여호수아는 백성들이 원망한다고 기브온 정복을 허락하지 않는다. 자기 잘못을 감추기 위해 모른 척하고 백성의 뜻을 받아주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사안을 외면하거나 방관하지 않는다. 여호수아는 자기 잘못을 충분히 인정하고 이를 해결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한다. 기브온 땅을 얻는 대신에 그들이 가진 노동력을 제공받자고 제안한다. 기브온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은 이를 수용했다.
    
-지도자가 자신의 잘못된 판단을 인정하고 책임지려는 자세를 보이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지도자는 잘못된 선택이 초래한 결과에 대해 적절한 대책을 생각해야 한다. 감추거나 무마하지 않고 공감하고 인정할 만한 조치를 해야 한다. 지도자는 자기 결정에 책임을 지기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지도자 여수아는 자신과 백성을 곤란하게 만든 기브온은 영원히 이스라엘의 종이 되어 나무를 패고 물을 길으라고 명령한다. 여호수아는 기브온의 잘못을 추궁하나 화를 내거나 가혹하게 다루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넘어가지도 않는다. 그들의 잘못에 걸맞은 노역을 부과한다. 이로써 기브온 백성의 거짓에서 비롯된 분란을 원만하게 매듭짓는다. 쉽게 타인의 공격과 속임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난처한 상황에서 용서와 관용의 리더십이 여호수아에게 보인다. 포용력과 너그러움은 더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한 필수 요소이다.
    
-잘못된 선택은 언제라도 할 수 있다. 그로 인해 곤경에 빠질 수도 있다. 이때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인정하고 책임지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또 나를 곤란하게 만든 이 일지라도 용서하고 관대하게 대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섬기는 지도자의 모습이다.
    
-최선은 아니지만, 모두가 받아들일 만한 차선이라도 제시하는 그의 지도력이 대단하다.
 
    
    
    
*주님, 부주의한 일 처리를 언제든지 할 수 있고, 그로 인해 곤경에 처하더라도 책임지는 리더십으로 서겠습니다.
*주님, 자신의 리더십을 힘들게 한 기브온 족속에게 관용과 포용으로 대하는 여호수아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저도 이런 상황에 직면할 때 그리하겠습니다.
*주님, 그럼에도 이런 실수 반복하지 않도록 늘 하나님께 묻고 또 물으며 이 길을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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