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남기지 않는 순종으로 [수 10:29-43]
 – 2025년 01월 17일
– 2025년 01월 17일 –
수 10:29-43 남기지 않는 순종으로
    
가나안 남부 다섯 왕 연합을 격퇴하고 여호수아는 여세를 몰아 남은 남부 지역 성읍들을 정복하기 시작한다. 남부 지역을 지켜줄 다섯 왕의 주력 부대가 궤멸하자 전세는 이미 기울었다. 막게다에서 다섯 왕을 이미 처형하고 난 후였기에 그 다섯 왕의 성읍들을 차례로 공략하고 그외에 남은 도성들을 점령한다. 본문은 가나안 남부 지역의 전체 범위가 자세히 설명된다.
    
    
    
1. 입는지와 라기스 점령(29~33절)
막게다에서 다섯 왕과 그들의 군대를 진멸한 이스라엘은 지체하지 않고 아세가에서 막게다를 거쳐 립나로 진격한다. 립나는 여리고와 같은 운명을 맞는다. 립나의 왕은 처형되고 성은 정복되어 여리고 성처럼 불살라졌다. “여리고에 행한 것과 같았다”라는 표현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 표현은 남부 지역을 점령할 때 자주 반복된다. 이와 같은 표현을 통해 여리고 전쟁이 가나안의 첫 번째 전쟁으로 이후 모든 전쟁의 모범이었음을 말해준다(수 8:2; 10:1, 28, 30). 남부 성읍들은 도미노처럼 차례로 무너진다. 이미 다섯 왕이 처형당했기에 왕과 군대가 없는 빈집과 다름없었다.
    
립나에 이어 라기스로 향한다. 라기스도 이미 왕 야비아는 처형 되었고 군대는 궤멸한 후였기에 그 성도 무방비 상태였다. 이틀 만에 점령된다(32절). 참고로 이미 패전의 소식을 들은 성의 대부분 주민은 피신한 상태이기에 헤렘 전쟁의 ‘진멸’이 반드시 학살처럼 인식하는 것에는 경계해야 한다. 가나안 전쟁에서 더 흔한 결과는 거주민이 “내쫓기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라기스 전에 진멸된 립나가 그 모범으로 제시된다(32절). 하지만 모든 성과의 전쟁 모범은 여리고임을 늘 기억해야 한다.
    
그때 라기스가 함락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게셀 왕 호람이 지원군을 이끌고 온다. 라기스는 고대로부터 가나안 지역의 주요 도시 중의 하나였다. 게셀은 예루살렘에서 북동쪽으로 30km 지점에 있었고 라기스에서도 북쪽으로 32km 떨어진 성읍이었다. “호람”의 의미가 “추앙받는 자”이기에 당시 남부 지역에서 큰 영향력을 끼친 왕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는 라기스 왕이 체포되어 죽었다는 소식과 더불어 성들이 차례로 함락되고 있음을 알고 지원군을 이끌고 내려온 것이다. 그만큼 게셀 왕 호람은 라기스와 돈독한 관계였을 것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호람의 군대 역시 이스라엘에 의해 궤멸하고 만다.
    
    
    
2. 에글론과 헤브론, 드빌 점령(34~39절)
에글론도 남부 연합에 동참했기에 거의 무방비 상태였다. 전투는 쉽게 단 하루 만에 끝났다(34절). 역시 라기스처럼 진멸된다(35절). 그다음으로 정복된 성도 연합군에 합류한 헤브론이었다. 역시 에글론처럼 진멸된다(37절). 다음 목표는 ‘드빌’인데, 이 성은 남부 연합군에 동참하지 않았다. 에글론의 왕의 이름이 ‘드빌’이기도 했다. 드빌은 라기스 남쪽에 있었다. 드빌도 헤브론이나 립나처럼 진멸된다. 드빌 왕도 처형되었다.
    
막게다부터 립나, 라기스, 게셀, 에글론, 헤브론, 드빌까지 게셀의 호람 왕을 중앙에 배치하면서 총 일곱 개의 성읍과 왕이 정복된다. “7”은 구약에서 “완전함”을 가리키는 숫자인데 저자의 분명한 의도가 보인다. 가나안 남부 지역의 대부분 영토를 점령하여 완전한 정복을 암시하기 위해 일곱 성읍으로 언급한 것으로 본다.
    
    
    
3. 남부 광야와 해안지역 점령(40~43절)
여호수아의 군대는 여리고 아이 그리고 기브온을 기준으로 가나안 남부 지역으로 진격하여 대부분 지역을 장악했다. 그 범위가 산지, 네겝(남방), 평지, 경사지로 표현되고 더불어 몇몇 지명들과 더불어 대략의 경계선이 묘사된다.
    
‘가데스 바네아’는 가데스라고 불리기도 하고 출애굽 여정에서 대단히 중요한 지역이다. 민수기에서는 바란 광야와(민 10:12, 16; 13:3, 26) 신(Zin) 광야(민 20:1) 사이에 자리 잡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곳은 가나안의 최남단인 네겝(변방) 지역과 접해 있다. 이스라엘이 광야 초기에 이곳에서 열두 정탐꾼을 가나안 땅으로 보냈었다.
    
‘가사(Gaza)’는 해안지역의 중요한 성읍이다. 구약성경에서는 해양 세력인 블레셋이 오래전부터 점유하고 이스라엘을 괴롭혔다. 추측하기로는 여호수아의 정복은 가사 근처까지 완성되고 해안의 블레셋 영역은 아직 장악하지 못했다고 봐야 한다.
    
‘온 고센 땅’은 이스라엘 백성이 떠나온 애굽의 고센 땅이 아닌 가나안의 고센이다. 특히 고센은 특정 도시 이름이 아니라 네겝에서 기브온까지를 이르는 가나안 남부 지역에 대한 포괄적인 지역명으로 추정된다. 이 지역의 실체에 대해서는 오늘날에도 전혀 확인된 바 없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군대는 이 모든 지역의 정복을 마치고 길갈의 본 진영으로 돌아온다.
    
    
    
나는?
-여호수아는 립나, 라기스, 에글론, 드빌을 차례로 정복하면서 가는 곳마다 진멸하여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하나님께 바치고 있다. 아이 성과 같은 실패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고 있다. 백성들도 아간과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는다. 악에 대한 철저한 심판을 철저하게 수행하고 조금도 주저함 없이 담대하게 순종한다.
    
-주저함 없는 순종, 남김 없는 순종, 후퇴와 후회가 없는 순종이다.
    
-여호수아는 거칠 것 없이 가나안 지역을 돌파한다. 만나는 곳마다 “당일에” 진멸하고, “단번에” 그 땅을 차지한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의 전투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기에(42절)” 승리할 수 있었다.
    
-가나안 전쟁은 여호수아의 전쟁이 아니라 여호와의 전쟁이었다. 여호수아의 눈에 거슬리는 세력을 정복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눈에 악한 자들을 진멸한 거룩한 전쟁이었다. 그러므로 정복 전쟁임과 동시에 순종의 전쟁이었다.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의도는 폭력의 도시 문명으로 망가진 창조 세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함의 자손은 열 개의 도시 국가들을 건설한다(창 10장).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가나안 땅을 유랑하며 애굽과 그랄과 하란과 같은 도시 국가들을 경험하게 하심으로써 가나안을 회복시킬 백성을 준비하셨다. 이제 가나안을 하나님의 나라로 회복시킬 때가 왔다. 거룩한 전쟁은 세상의 침략 전쟁이 노리는 탐욕의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기 위한 거룩한 전쟁이다.
    
-42절은 이스라엘을 위해 함께 싸우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하나님께서는 크고 위대한 능력으로 우리를 위해 싸우신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연이은 승리 뒤에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다. 아무리 군사력이 강하고 군대의 규모가 클지라도 그들의 요새가 굳건하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시면 대적할 자 아무도 없다. 그 결과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단번에’ 이 지역을 빼앗을 수 있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은 크고 위대한 분이며 승리를 약속하셨다. 그 하나님을 향한 하늘 백성의 반응은 온전한 순종이어야 한다.
    
-철저한 순종이 승리의 요인이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 전투에서 큰 승리를 경험하고 아이 성에서 뼈저린 패배도 경험하였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하는 것이 승패의 열쇠임을 분명하게 배웠을 것이다. 여호수아의 전략이 뛰어나거나 이스라엘의 전력이 강하여 승리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주셨기 때문이다. 순종이 승리다.
    
-남김 없는 순종으로 가나안 남부 지역이 이스라엘에게 들어왔다. 여호수아는 가는 곳마다 진멸 전쟁을 수행했다. 그는 막게다에서 다섯 왕을 처형하며 샴페인을 터뜨리지 않았다. 그들의 성읍을 지체하지 않고 점령한다. 남은 전쟁을 위해 역량을 집중했다. “모든 사람을 쳐서 멸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않았다”라는 말이 일곱 번이나 반복된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남부 지역 모든 성읍을 점령해 나가면서 자기 것을 취하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명령에만 순종했다. 자기들을 위하여 그 어떤 것도 남김이 없는 온전한 순종으로 가나안을 점령해 나갔다.
    
    
    
*주님, 결국 가나안은 순종의 전쟁이었음을 봅니다. 내 삶의 걸음도 결국 순종의 걸음이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순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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