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요셉 자손(에브라임, 므낫세)의 기업 [수 16:1-17:6]
 – 2025년 01월 26일
– 2025년 01월 26일 –
수 16:1~17:6 요셉 자손(에브라임, 므낫세)의 기업
    
16~17장은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받은 땅 이야기다.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특히 므낫세에게는 과다할 정도로 큰 땅을 준다. 이 두 지파가 받은 땅은 요단 서편의 거의 1/3 크기다. 게다가 므낫세 지파의 절반은 이미 요단 동편의 땅까지 주어져 있었다. 요셉 자손의 대략적인 경계 묘사 이후 에브라임 지파의 기업이 소개된다. 16장을 통한 에브라임 지파에 대한 묘사는 유다 지파와 유사하게 ‘그들이 가나안 족속을 완전히 쫓아내지 아니했다’라는 표현으로 끝맺는다. 17장 6절까지는 요단 서편 므낫세 지파의 기업 분배에 대한 기록이다. 므낫세 지파의 기업에는 슬로브핫의 딸들의 유업도 포함된다.
    
요셉의 자손인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는 유다 지파 다음으로 제비를 뽑아 기업을 분배받았다. 이들이 들어간 지역은 비교적 비옥한 가나안의 중앙 지역으로 유다 지파 다음으로 넓은 땅이다. 실제 땅의 분배 과정에서는 므낫세 지파에 앞서 에브라임 지파가 먼저 제비를 뽑아 기업을 받는다. 이는 에브라임 지파도 유다 지파와 마찬가지로 분배받은 땅을 온전히 점령하는 데 실패한다.
    
    
    
1. 요셉 자손의 땅 경계(1~4절)
유다 지파에 이어 요셉 자손이 제비를 뽑아 기업을 결정한다. 요셉 자손은 므낫세와 에브라임 지파를 가리킨다. 요셉 지파는 역사상 에브라임과 므낫세 두 지파로 취급되었다(창 485). 본문이 요셉 자손을 마치 한 지파처럼 취급하는 것은 이 두 지파가 실제로 한 지파처럼 제비를 뽑았기 때문인 듯하다(17:14). 실제 기업 분배 과정은 요셉 자손 자격으로 뽑은 후 두 지파가 양분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로 요셉 자손이 받은 지역의 대략적인 경계를 먼저 기록한다(1~4절). 요셉 자손의 땅 경계는 남쪽 경계를 동쪽 요단강으로부터 시작하여 서쪽의 지중해 지역까지 기술한다. 요셉 자손의 땅은 베냐민 지파(18:11~14), 단 지파(19:40~48)의 경계와 맞물린다.
    
1~3절은 남쪽 경계를 언급한다. 요셉 자손의 땅 남쪽 한계선은 여리고 샘 동쪽(여리고 곁 요단)으로부터 시작하여 벧엘 산지로 나아간다(1절). 2절에서 벧엘과 루스를 언급하고 벧엘에서 다시 남서쪽의 아렉 족속(창 10:7)의 경계를 거쳐 아다롯에 이른다(2절). 아렉 족속의 후손 중에 다윗의 참모 중 한 사람이던 ‘후새’가 있다(삼하 15:32; 16:16). ‘아다롯’은 에브라임 지파 북쪽 경계선의 성읍 아다롯과 다른 지역으로 베냐민 지파의 경계에 있다(수 18:13). 남쪽 경계선은 서쪽으로 뻗어나가 야블렛 족속의 경계를 지나 벧호론과 게셀을 거쳐 바다 곧 지중해에 이른다(3절).
    
4절은 요셉 자손 경계의 요약으로 ‘요셉 자손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자신들의 기업을 받았다’는 언급으로 끝맺는다. 므낫세가 에브라임보다 먼저 언급되는 것은 창세기의 출생 순서를 따른 것이고, 이후 분배 순서는 에브라임이 먼저 언급된다. 이는 실제로 에브라임 지파의 우월한 위치를 반영한다. 후에 에브라임은 북왕국을 대표하는 지파가 된다. 요셉 자손의 기업은 가나안 중앙지대로, 남으로는 단과 베냐민 지파, 북으로는 아셀, 스불론, 잇사갈 지파와 경계한다.
    
    
    
2. 에브라임 지파의 기업과 실패담(5~10절)
요셉 자손이 분배받은 땅의 경계를 기술한 다음, 저자는 요셉 자손 중에서 에브라임이 받은 땅의 경계를 묘사한다. 주목할 것은 므낫세가 요셉의 장자였고 에브라임은 차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에브라임이 먼저 언급된 것은 야곱이 에브라임에게 더 큰 축복을 빌었기 때문이다(창 48장). 에브라임 지파의 남쪽 경계는 동쪽의 아다롯 앗달에서 윗 벧호론을 거쳐 서쪽으로 나아간다(5절). 북쪽 경계는 믹므다를 기점으로 동편 방향으로, 또 믹므다 곁 답부아를 기점으로 서쪽 방향으로 소개한다. 믹므다에서 시작한 경계는 동쪽으로 다아낫 실로, 야노아, 아다롯, 나아라를 거쳐 여리고에 이른다(7절). 또 답부아에서 시작하여 가낭 시내(개울)를 따라 바다로 향한다(8a절). ‘가나 시내’는 ‘갈대 시내’라고도 하는데, 그곳에서 많이 나는 갈대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이 시내는 그리심산에서 발원하여 지중해로 흘러 들어간다. 이렇게 에브라임 지파의 가족대로 기업을 얻었다(8절).
    
9절은 에브라임 지파 내에 있는 므낫세 지파 성읍들을 소개한다. 이는 두 지파 사이의 긴밀한 유대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므낫세 지파에 비해 에브라임 지파가 훨씬 더 많은 축복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그들의 땅은 가나안 중심부에 있는 비옥한 지역이었다. 또 다른 지파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서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이런 지형적인 이점은 이스라엘 가운데 유력한 지파로 부상하게 된 원인이기도 했다.
    
10절은 에브라임 지파의 실패담이다. 유다가 예루살렘의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지 못한 것처럼 에브라임 지파도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지 않았다. 그래서 가나안 족속이 에브라임 지파 가운데 거주하게 된다. 한편 여호수아 10:33은 게셀 왕과 그 백성(군대)이 여호수아에 의해 진멸 당했다고 했었다. 하지만 본문의 내용을 근거하면 게셀의 성읍은 점령하지 못했거나 후에 다시 빼앗긴 듯하다. 게셀은 사사 시대까지 독립된 성읍으로 남게 되고(삿 1:29), 솔로몬왕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스라엘의 영토가 된다(왕상 9:16~17). 에브라임 지파가 게셀에 거하는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지 않은 이유는 경제적인 목적일 가능성이 크다. 10절의 “노역하는 종이 되니라”라는 그들이 강제 노역에 종사했다는 의미다. 즉, 에브라임 사람들은 게셀 거민을 그 땅에 거주하게 하고 조공을 받아 경제적인 이득을 누리고자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머지않아 결국 에브라임 지파에게 올무가 되고 큰 손실로 돌아오게 된다. 물질적인 이익을 추구하다 영적으로 큰 손해를 본 것이다.
    
    
    
3. 므낫세 지파의 기업과 슬 로브 뜨거운 딸들(17장 1~6절)
에브라임 지파에 이어 므낫세 지파의 요단 서편 땅 분배를 다룬다. 본문은 먼저 므낫세가 요셉의 장자라는 사실을 밝힌다(1절). 저자는 분배는 에브라임 지파가 먼저 제비를 뽑아 가나안 중심부의 땅을 받지만, 므낫세가 장자임을 확실히 언급한다. 므낫세의 장자 마길은 길르앗의 아버지요 용사로 소개된다(1절). 2절의 ‘므낫세의 남은 자손’은 므낫세 지파 중 요단 동편에 정착하지 않은 여섯 가문을 가리킨다. 아비에셀, 헬렉, 아스리엘, 세겜, 헤벨, 스미다 자손이다(2절).
    
3~6절은 슬로브핫 딸들의 유업에 관한 기사이다. 슬로브핫은 헤벨의 아들로 아들이 없고 딸만 있었는데, 그 딸들의 이름은 말라, 노아, 호글라, 밀가, 디르사다(3절). 이렇게 여인들의 이름을 일일이 언급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왜냐하면 땅을 분배할 때 슬로브핫의 딸들이 땅 분배 지도자들에게 나아온 것이다. 이 사건은 민수기 27장을 배경으로 한다. 이때까지의 규정은 유산은 남자 자손들에게만 주어지게 되어있었다. 슬로브핫의 딸들은 아들이 없이 죽은 아버지의 이름이 없어지는 것을 염려하여 딸들도 가나안 땅에서 기업을 받게 해줄 것을 요청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요청을 들어주도록 모세에게 명령하고 이를 계기로 딸들의 상속과 관련한 새로운 규정을 마련한다(민 27:8). 슬로브핫의 딸들은 이 규정에 근거하여 여호수아와 지도자들에게 요청하기 위해 나아온 것이다. 여호수아와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슬로브핫의 딸들에게 요단 서편의 땅을 기업으로 준다(4절). 이렇게 해서 요단 서편 지역은 헤벨의 자손 중 슬로브핫의 딸들에게 여섯 개의 분깃이 돌아가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요단 서편 므낫세 지파의 기업으로는 헤벨의 자손을 뺀 다섯 가문과 슬로브핫의 딸들 다섯을 합하여 모두 열 개의 분깃이 돌아가게 되었다. 므낫세 반 지파가 요단 동편에서 받은 길르앗과 바산을 더하면 모두 열두 개의 몫을 므낫세 지파가 차지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이 사건을 기록하면서 슬로브핫 딸들의 믿음과 말씀에 순종하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칭찬하고 있다.
    
    
    
나는?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둘째 아들 에브라임 지파에게 장자의 축복을 베푸셨다. 에브라임이 므낫세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았기 때문이 아니다. 또한 므낫세가 무엇인가 잘못한 것도 아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에브라임에게 베푸신 주권적인 은혜다. 마치 큰아들 에서가 아닌 둘째 아들 야곱에게 장자권이 허락된 것과 같은 것이다.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달랐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는 어떤 것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주권적인 결정을 따라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에는 비천한 출생도, 장애도, 지위도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요셉의 두 아들 중 므낫세가 장자이지만, 차자인 에브라임이 할아버지 야곱으로부터 장자의 축복을 받았다(창 48장). 야곱 역시 동생이었으나 장자의 명분을 받았다.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의 기대와 예상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서열이나 계급이 하나님의 축복과 사역을 가로막을 수 없다. 하나님의 인사는 파격적이며 역발상 적이다. 에브라임에게 장자의 명분을 주신 하나님께서 연약하고 부족한 내게도 은혜 베풀어주시길 기도한다.
    
-그런데 에브라임 지파는 므낫세보다 더 많은 땅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배 받은 기업 안에 거하는 가나안 거민을 진멸하지 못한다. 진멸을 명령하는 말씀(신명기 7장)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런 약간의 불순종과 타협은 머지않아 큰 패배로 다가오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순종을 요구하신다. 부분적인 순종은 순종을 가장한 불순종이다. 풍성한 약속이 풍성한 결과를 기계적으로 가져오지 못한다. 풍성한 약속만큼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는 오직 온전한 순종을 통해서 누린다.
    
-에브라임 지파는 물질적인 이득을 얻기 위해 게셀의 가나안 사람들을 자신들의 기업에 거주하게 한다. 이것은 후에 에브라임 지파가 타락하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 신자가 물질적인 욕심과 세속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신앙생활에 치명적인 해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우리에게 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 대가를 치르기 전에 인정하는 것이 지혜다.
    
-므낫세 지파 헤벨의 아들 슬로브핫의 딸들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주실 것이라는 확신 가운데 여호수아에게 아버지의 유업을 구한다.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붙들고 여호수아에게 나온 것이다. 그들이 결국 남자 자손들과 함께 넓은 지역을 기업으로 받게 된 것은 믿음으로 반응한 결과였다. 하나님의 약속은 문자주의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상황 속에서 원리적으로, 그리고 창의적으로 재해석되어 적용되고 있음을 본다.
    
-슬로브핫의 딸들이 아버지의 유업을 분배받은 조건은 자신이 속한 지파의 남자들에게만 시집을 가는 조건이었다(민 36:6~7). 여호와의 기업 받기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긴 여인들이 스스로 제한된 사랑을 하기로 한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은 자의 특징은 제한된 삶이다. 하나님 나라를 받았기에 세상의 모든 가치를 상대화하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 나라를 이미 누리고 있는 자로서 무엇을 제한하고 포기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에브라임은 자기들의 지경 내에 있는 가나안 거민들을 쫓아내지 않고 종으로 삼는다. 쫓아내지 못한 것이 아니라 쫓아내지 않았다. 몰아낼 힘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없었다.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편의와 실리라는 현실의 명분을 선택한 것이다. 지금 당장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한 충분히 이용 가치가 있는 무리로 여겼다. 하지만 에브라임 지파가 그토록 하찮게 여겼던 대적들은 사사 시대의 혼돈과 북이스라엘의 뼈아픈 몰락으로 이어지게 된다.
    
*무시해도 되고 정당화될 수 있을 만큼 작고 사소한 죄는 없다. 부정한 것을 조금이라도 용납하지 않기 위해 내 안과 주변을 돌아보아야 한다. 정리해야 할 악습이나 습성은 무엇일까? 관행이라고 눈감아버리는 불의는 없는가? 세속적 가치와 문화에 대해 너무 쉽게 허용하거나 수용하고 있지는 않는가?
    
*작은 방심이 큰 실패가 되었다.
    
    
    
*주님, 눈앞의 이익 때문에 죄를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주님, 슬로브핫의 딸들의 믿음을 보며 배웁니다. 제게 약속해 주신 말씀을 끝까지 붙잡고 일상에서 누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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