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레위지파에게 할당된 성읍과 땅 분배 종료 [수 21:20-45]
 – 2025년 02월 01일
– 2025년 02월 01일 –
수 21:20-45 레위지파에게 할당된 성읍과 땅 분배 종료
 
레위에게는 세 아들, 그핫(고핫), 게르손, 므라리가 있었다. 그들은 각자의 가문을 형성했는데, 그중에 그핫(고핫) 가문에 속한 아론 집안이 제사장 가문으로 택정되었고, 그들에게 우선적으로 레위 도성이 배정되었다. 본문 남은 세 가문의 몫의 도성들이 제비뽑기를 통해 결정되는 이야기다. 이웃하는 지파들을 한 단위로 묶어 레위 지파를 위해 성읍들을 내놓는다. 그핫 자손 중 남은 자손(20~26절)과 게르손 자손(27~33절), 므라리 자손(34~40절)이 받은 성읍 목록이 제시된 후 마무리되고 있다. 43~45절은 출애굽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약속 성취가 마무리되고 있음을 보여주며, 약속하신 대로(출 33:14) 그 땅에 안식이 찾아옴을 말한다.
 
민수기 4장에 의하면 그핫(고핫) 자손은 주로 성막의 예배 비품들인 번제단, 물두멍, 떡상, 향단, 금등대, 그리고 법궤를 직접 어깨에 메고 운반했다. 게르손 자손은 천막과 휘장, 포장막과 같은 ㄱ로조를 덮는 덮개와 각 공간을 차단하는 휘장들의 운반을 책임졌다. 므라리 자손은 기둥과 널빤지와 같은 성막의 골조를 운반하는 직무를 맡았다. 예배 용품은 사람이 직접 멜 수 있었으나 골조와 천막, 휘장은 무게가 엄청나 소가 끄는 수레를 사용했다. 
 
 
 
1. 그핫 자손의 남은 가족이 받은 성읍들(20~26절)
그핫 자손 중 남은 자손이 제비를 뽑아 에브라임 지파의 세겜, 게셀, 깁사임, 벧호론을 레위 성읍을 받는다. 이중 세겜은 살인자의 도피성으로 지정한다. 단 지파에서는 엘드게, 깁브돈, 아얄론, 가드 림몬이 지정되었고, 므낫세 반 지파에서 다아낙, 가드 림몬이 지정되어 총 열 개 성읍이 그핫 자손의 남은 자손에게 돌아갔다.
 
이들 지역의 공통점은 각 지파의 경계에 속한 곳이고, 가나안의 우상숭배를 자행하던 곳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가드 림몬”이란 성읍이 두 차례 되풀이 되는데(24~25절), 각각 단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 속한 성읍인데 지명은 동일하나 다른 지역일 것으로 간주한다. 위치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목초지(미그라쉬)”는 가나안 부족을 쫓아내고 차지한 공유지를 가리킨다. 아마도 도성 주변에서 축산업을 하였기 때문에 “목초지”로 번역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2. 게르손 자손이 받은 성읍들(27~33절)
게르손은 레위의 맏아들이다. 하지만 여기서 게르손은 그핫(고핫) 자손 다음으로 배정된다. 그 까닭은 그핫의 자손 중에 아론과 모세가 태어났기 떄문이다. 레위인은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하도록 성읍을 배정받았으므로 대제사장으로 임명된 아론의 자손에게 먼저 레위인의 도성을 배정하였다. 그리고 난 후 게르손 자손을 위해서 므낫세 반 지파에서 바산 골란과 브에스드라를 내어 준다. 바산 골란은 도피성으로 설정된다. 잇사갈 지파의 땅에서는 기시온, 다브랏, 야르뭇, 엔 간님의 네 성읍이 지정된다. 납달리 지파는 갈릴리 지방의 게데스, 함못 돌, 가르단의 세 성읍들이 지정된다. 이 중에 게데스는 도피성으로 지정된다. 이렇게 도합 열세 개의 성읍들이 게르손 자손에게 돌아갔다.
 
 
 
3. 므라리 자손이 받은 성읍들(34~40절)
레위의 셋째 아들 므라리의 아들들은 마흘리와 무시(출 6:19; 민 3:20)다. 므라리의 가족들은 스불론 지파에서 욕느암, 가르다, 믿나, 나할랄의 네개 성읍을 받았다. 르우벤 지파에서는 베셀, 야하스, 그데못, 므바앗의 네 도성을 얻었다. 이 중 베셀은 도피성으로 지정된다. 또 갓 지파에서는 길르앗 라못, 마하나임, 헤스본, 야셀의 네개 성읍을 얻었다. 이 중 길르앗 라못 역시 도피성으로 지정된다. 이로써 총 열두 개의 성읍이 므라리 자손에게 할당되었다. 참고로 살인자를 위한 도피성 여섯은 그핫 자손과 게르손 자손과 므라리 자손에게 각각 두 도성으로 할당되었다. 그핫 자손의 도피성은 하나는 아론계에게, 하나는 비아론계에 배정된다.
 
세상의 모든 성읍(도성)은 인간의 욕망 충족을 위한 수단으로, 문명을 창조하는 인간의 창조 공간으로 작용되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복수가 두려워 하나님의 명령 없이 자의로 건설한 것이 곧 ‘도성’이었다(창 4:17). 이스라엘은 이런 도성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신 것도 모든 도성이 폭력을 버리고 레위인의 도성에서 선포되는 하나님 사랑의 말씀을 중심으로 긴밀히 연계되어야 한다. 도피성은 생명을 죽이는 폭력의 도성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구원의 터전이다.
 
 
 
4. 레위인 도성과 도피성 지정에 대한 총평(41~42절)
레위 지파에게 48개 성읍과 그에 딸린 목초지가 돌아갔다. 열두 지파가 48개 성읍을 냈으니 평균 한 지파에서 2개 성읍을 각출한 셈이다. 하지만 그 분깃의 크기에 따라 어떤 지파는 많이 내고 어떤 지파는 적게 냈다. 그렇게 받은 도성과 목초지를 통해 레위인들은 축산업과 수공업을 영위할 수 있었고, 제사에 쓸 가축을 기르고 보살필 수 있었고, 제의용 기구들을 얻고 가공하고 생산할 수 있었다.
 
레위인의 도성뿐 아니라 가나안의 모든 도성도 주변 목초지를 활용하여 경제를 영위하되 모든 경제가 하나님 나라의 운영과 확장을 위해 사용해야 함을 인식했을 것이다. 또 기억해야 할 것은 레위인들에게 주어진 성읍의 대부분은 이전에 가나안 사람들이 거주하던 성읍으로 가나안의 잔재들이 많이 남은 곳이다. 또 지파의 경계에 위치했다. 이런 지정학적인 위치가 가지는 의미는 레위인들을 통해 이방적인 요소들을 차단하고 얼룩진 땅을 정화하며, 지파 간의 완충 역할을 수행하려는 의도를 반영한다.
 
 
 
5. 가나안 땅 분배에 대한 최종 평가(43~45절)
여호수아 12장까지 가나안 땅의 점령을 마무리하고 13장부터 땅을 분배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 단락은 가나안 땅 분배 작업에 대한 최종 평가이다.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여곱에게 맹세하신 땅을 마침내 다 허락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명령을 충실하게 수행했다는 평가는 나오지 않는다.
 
땅을 주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재확인된다. 이스라엘은 늘 원망하며 거역하기만 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약속을 이루심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평화를 이루어주셨다. “쉬다(누아흐)”로 번역된 동사는 땅 점령과 분배가 마무리되어 이스라엘에 평화가 깃들었음을 표현한다. 이 동사는 노아의 이름이기도 하며, 다윗이 통일왕국을 이루었을 때 사용되기도 했다. 가나안 땅 주변의 모든 원수를 하나님께서 물리쳐주셨으며 주께서 말씀하신 것이 다 이루어졌음을 선언한 것이다.
 
레위 지파에게 성읍과 목초지를 분배함으로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맹세를 지키셨다(창 12:1~3; 26:2~3; 28:13). 또한 여호수아를 통해 선포하신 “안식(1:13, 15)”을 이스라엘에게 허락하셨다. 이스라엘은 늘 부족하고 실수하며 실패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대로 온전히 성취하셨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이처럼 분명하다. 나와 공동체를 이끌어가시는 것에는 실수가 없으시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신뢰하며 함께 동행하는 걸음에 ‘안식’의 은혜는 틀림없이 이루어진다. 영원한 안식을 위해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하는 아침이다.
 
 
 
나는?
-계속해서 레위 지파가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할당 받은 성읍들과 목초지들을 소개한다. 이스라엘은 제사장 국가였다. 자신들의 존재방식을 통해 세상 앞에 여호와 하나님을 드러내어 이방이 빛으로 나아오게 하는 역할을 맡은 민족이다. 동시에 이스라엘 안의 제사장 지파가 레위 지파였다. 그들은 특별한 대우를 받았고 특별한 삶의 방식을 따라 살아야 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제사장이면서 동시에 특별한 제사장으로서 레위 지파의 지위와 위상을 존중했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은 모두가 세상 앞에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내는 제사장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 가운데도 하나님의 일을 전담하는 전문 사역자의 역할을 존중해야 한다. 모두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드러내야 할 제사장과 같은 삶을 살지만, 그 안에서도 전문적이고 독특한 사역의 영역을 존중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가나안 땅 정복과 분배를 마무리하면서 모든 정복과 분배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진행 되었을 때 비로소 안식을 누릴 수 있었다. 순종이 가져온 안식이었다. 하지만 그 땅에서 여호와 하나님 말고 다른 우상을 숭배하면 이 안식은 언제든 깨어질 것이다. 각 지파에게 제비뽑기로 나눠주신 땅을 임의로 확장하기 위해 형제를 향하여 전쟁을 감행해도 안식은 사라진다. 또 레위 지파를 통한 말씀 전파와 올바른 제사가 중단될 때, 역시 안식도 그칠 것이다. 가나안 땅이 축복의 땅, 안식의 땅이 되는 것은 오직 그들과 하나님의 관계, 그리고 공동체 서로간의 관계가 좌우하게 될 것이다.
 
 
*레위인들은 이전에 가나안 사람들이 살던 곳을 받아서 살아야 한다. 거기서 그들은 가나안 문화를 일소하고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또, 지파의 경계 지역에 거하면서 지파 간의 완충 역할 뿐 아니라 우상문화가 거룩한 땅에 유입되지 않도록 지키는 역할도 해야 한다. 거룩함과 하나됨, 이것이 각 지파에 흩어진 레위 지파의 역할이었다. 레위 지파들이 할당 받은 성읍들은 가나안 족속이 우상을 숭배하며 살던 주요 성읍이었다. 가나안의 우상 문화 잔재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만 예배하는 삶을 통해 차단하고 막아내는 사명으로 살라는 의미일 것이다.
 
*세상문화와 가치가 하나님나라 공동체에 스며들지 않도록 그 경계선에서 분별하여 막아내어 하나님 나라의 거룩함과 공동체성을 지켜나가도록 내가 해야 할 일이 분명하다. “분별하고, 물들지 않으며, 흘러들어오지 않도록” 말씀으로 방어하고 가르치며 지켜나가야 하리라.
 
*이스라엘에게 땅은 자손과 함께 미래를 의미한다. 땅과 자손이 없는 미래는 없다. 땅의 정복과 분배가 끝났을 때 이스라엘에 안식이 찾아왔다. 하나님께서 주변 나라들로부터 안전을 보장해주셨고, 순종한 자들에게 번영을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을 다 지키심으로 이스라엘이 안식을 누렸듯이, 안식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새 창조 사역이 다 끝날 때 영원한 안식이 찾아올 것이다.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산다는 것은 바로 안식을 전하고 나누고 구현하며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 48개 성읍과 목초지를 분배받았다. 이 목초지를 통해 희생제물을 길러 성전에 공급하므로 생계를 유지했지만, 훗날 이 취지가 변질되어 폭리를 취하는 수단이 되고 만다(막 11:15~19). 혹시 하나님께 은혜로 받은 것이 우리의 욕심으로 변질된 것이 없는지 돌아보아야 하겠다.
 
*오늘날 교회는 이스라엘 전역에 흩어져 율법을 가르치고 지켜 행하게 한 레위의 성읍들과 같다. 특히 “도피성”의 존재와 역할은 오늘날 교회의 사명이 아니겠나! 약육강식, 물질만능, 맘몬주의에 붙잡힌 사회의 도피성이 되어야 한다.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약자들에게 문을 활짝 열어놓고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자 영광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교회의 교회다움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 조국의 혼란을 부추기는 세력 가운데 교회와 성도가 있다는 것에 깊은 애통을 곱씹는다. 입술로 하나님을 부르는 그들에게 삶에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 정의가 보이질 않는다. 속히 도피성과 같은 교회의 정체성이 세워져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의 말씀이 선명하게 드러내는 공의로움이 자기 주관에 엮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깨우쳐주시는 은혜를 따라 말씀에서 말씀으로 드러나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 민족의 교회는 상실해버린 도피성과 같은 정체성이 회복되어야 하겠다.
 
 
 
*주님, 교회가 본질을 추구하며 말씀을 따라 사회적 정의에 선명해질 때 도피성의 기능이 다시 살아날 줄 믿습니다.
*주님, 은혜로 공급하여 주신 것을 탐욕으로 도구로 전락시키지 않겠습니다. 그저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며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며 지키게 하는 사명에 착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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