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22:21-34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길
요단 서편 지파들의 조사단을 맞이한 동편 지파들은 그들의 비난에 차분하게 대응한다. 서편 지파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자신들이 축조한 제단은 실제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증거”를 위한 것임을 적극적으로 해명한다. 이 과정을 통해 그 제단의 축조 목적은 요단 서편과 강한 결속을 다짐하기 위한 것임이 밝혀진다. 이로써 요단 서편의 오해가 해소된다.
1. 제단은 우상을 섬기기 위한 것이 아니다(21~23절).
서편 지파들의 비난과 추궁을 들은 동편 지파들은 차분하게 요단강 제단과 관련된 자신들의 의중을 전달한다. 저자가 묘사한 대화 장면은 대표자 간의 대화가 아니라 집단적인 대화임을 보여준다. 그만큼 이 문제가 이스라엘 전 공동체의 심각한 문제였음을 반영한다. 동편 지파들은 서편 지파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여 이 사건을 적극적으로 해명한다.
요단 동편 지파들은 이스라엘 온 지파의 하나님을 “신 중의 신이신 하나님”으로 표현하며 자신들이 함께 믿는 하나님을 먼저 크게 찬양한다. 그리고 만일 그 제단의 건립이 여호와를 배반하고 믿음을 저버리는 행위라면 하나님께서는 자신들을 내치셔야 한다(22절)고 말한다. 그 제단이 여호와로부터 돌아서서 실제로 (이방 신들에게) 각종 제사들을 드리기 위한 것이라면 직접 하나님이 자신들을 벌하셔야 한다고 토로한다(23절).
2. 그것은 증거의 제단이다(24~29절).
동편 지파들은 그들이 어떤 목적으로, 왜, 그리고 얼마나 신중히 판단하여 그 제단을 세웠는지 설명한다. 자신들과 서편 이스라엘 지파들 사이의 분열과 괴리감을 염려했음을 해명한다. 이는 훗날 서편 지파의 후손들이 자신들에게 “너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라고 무시하며 자신들을 배척할까 하는 염려가 있음을 드러낸다(24절). 서편 지파들이 요단강이 약속의 땅 경계선인 이유로 요단 동편 땅은 여호와의 분깃(몫)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하며, 자신들을 여호와 신앙에서 배제할까 우려했다(25절). 즉, 요단 서편 지파들의 후손들이 요단 동편의 후손들에게 장차 둘 사이의 관계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서편 자파와의 정치적, 신앙적 분리를 염려하여 취한 조치라는 것이다.
동편 지파들의 해명은 더욱 구체화하는데, 자신들이 그 제단을 실제 사용하려는 용도로 지은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그리고 모든 제사는 오직 “여호와 앞에서” 드려져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을 밝힌다(27절). “여호와 앞”이란 성막에 계신 하나님을 의미하는 표현이기에 일차적으로 현재 실로에 있는 성막의 제단을 가리킨다. 하지만 실로의 성막 제단 외에 다양한 합법적인 여호와의 제단들이 여호수아서와 역사서들에 나타나는 것을 볼 때 장소의 의미에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오직 여호와만을 예배한다는 것을 적극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편 지파들은 이 제단이 실제 사용하기 위한 제단이 아니라 증거를 위한 제단에 불과하다고 적극 해명하며 증거의 목적을 강조하는 것은 이 제단의 증거를 통해 자신들도 여호와의 언약 백성임을 밝혀 드러내고 서편 지파들이 훗날 동편 땅은 자신들 및 여호와와 상관없다고 말하지 못하게 하려는 뜻이 있었다. 이런 강조는 요단강 강가에 세운 대형 제단이 성막의 제단을 본떠서 똑같이 설계되고 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제단은 이스라엘의 민족적 단일성과 정치적 통일성, 신앙의 일치성의 증거가 될 것이다. “증거(에드)”는 주로 계약 관계에서 사용되는 단어인데, 예컨대 언약식에서 세우는 돌기둥과 같이 계약과 조약의 확실성을 보장하고 증거하는 다양한 물적 증표를 가리킨다.
서편 지파들은 그 제단의 독자적인 건립은 결국 여호와의 신앙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으로 보았다. “거역”과 “(여호와로부터) 돌아섬”이라는 강한 표현을 사용하면서 동편 지파들을 비난했다. 하지만 동편 지파들은 재차 제단 축조는 여호와로부터 돌아서서 그분을 버리고 다른 신을 숭배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결단코 밝힌다.
3. 온 이스라엘의 화합(30~34절)
모든 오해가 한 순간에 풀리자 비장했던 긴장감이 사라지며 상황은 극적으로 반전된다. 서편 지파들의 대표들은 동편 형제들의 해명을 듣고 기뻐했다. 비느하스는 여기서 처음으로 조사단의 대표 자격으로 발언한다. 비느하스의 마음은 서편 공동체 전체의 마음과 다를 바 없었다. 비느하스는 지금, 이 순간 한 분 여호와가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하나님으로 임재해 계신다고 선포한다. 서편 지파들의 우려와 달리 동편 지파들은 여호와께 죄를 범하지 않았기에 동족 간의 비극적인 전쟁의 위험을 사라졌다. 비느하스는 이로써 이스라엘이 여호와가 심판하는 손에서 구출되었다고 표현한다.
비느하스와 서편 대표들은 동편 지파들을 떠나 서편으로 복귀하여 사건의 진상을 상세히 서편 지파들에게 보고했다.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을 떠났다”라는 표현에는 므낫세 자손이 빠져 있는데, 이는 이 제단의 축조를 르우벤과 갓 지파가 주도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므낫세 반 지파가 서편에도 거주하고 있기에 연대감의 와해를 가져오는 행동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이해도 깔려있다.
서편의 온 이스라엘은 조사단이 가져온 낭보를 듣고 환호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전쟁을 위한 무장을 즉시 해제한다. 제단으로 인한 오해가 사라지면서 하나의 신앙으로 결속된 형제애를 확인한 이상 앞으로도 두 편이 갈라져 싸우는 일은 없을 것이다. 동편 지파들은 그 증거를 위한 모형 제단에 “엣(에드)”라는 이름을 붙인다. “엣”의 뜻은 “증거”이기에 제단의 이름은 “증거 제단”이다.
나는?
-두 지파 반은 요단 가에 세운 모형 제단이 요단 서편 제단을 대체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그것은 요단 동편에 있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자손이 여호와의 분깃에서 제외되는 것을 막기 위해 “증거”로 삼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통해 요단 서편 지파들과의 독립을 모색한 것이 아니라 더욱 강한 연대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확인한다. 다른 제사, 다른 예배, 다른 신 숭배의 의지가 전혀 없음을 단호하게 천명한다. 동편 지파들의 후손들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을 유지하게 하기 위한 부모 세대들의 거룩한 걱정이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진심을 아신다. 동편 지파들은 자신들이 단을 쌓은 것은 제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하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심판을 걸고 자신들의 진실함을 호소한다. 하나님께서 나의 진심을 아신다는 것은 큰 위로가 되는 동시에 매우 큰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사람들에게 변명하거나 설명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나의 마음속 동기와 목적이 떳떳한지 겸손하게 살펴볼 일이다.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 “거룩한 걱정”을 어떻게 하고 있을까?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게 하려면, 공동체를 이루어 가기 위해 후세대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기억하고, 거룩한 공동체성을 이어받게 하려고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동편 지파들의 노파심이 고스란히 더온누리 공동체의 모습과 이입된다. 주님, 어떻게 해야 할까요?
*브올의 죄악을 단호하고도 전격적으로 해결하였던 제사장 비느하스는 두 지파 반 지도자들의 설명을 듣고 수긍한다. 그들이 한 일은 죄악이 아니라고 분명한 판단을 해준다. 그리고 돌아와 남은 지파들에게 두 지파 반의 진심을 잘 전해준다.
*만약 요단 서편 지파들이 조사단을 파견하지 않고 곧바로 동편 지파들을 공격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의 일상에서 오해받기 싫어하는 것만큼이나 쉽게 오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되겠다. 또, 자초지종과 전후 사정을 듣다가 섣불리 판단하고 행동해서도 안 되겠다.
*자칫 큰 비극이 될 뻔한 제단 축조는 온 이스라엘이 형제 됨을 확인하는 증거물이 되었다. 오해를 풀고 마음을 같이 해야 할 가족, 공동체가 우리에게 있지 않는가?
*사심이 들어갔더라면 이스라엘 민족 간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날 수 있었다. 오해가 참사를 불러올 수도 있었다. 지도자의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지도자의 판단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끼치는지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도자는 분명하게 분별력을 행사해야 하는 자리임을 깨닫게 한다. 혈기를 부리며 감정적으로 일상을 처리할 수 있지만, 용기를 내어 진리의 말씀 앞에 공손하게 서면 상황은 진리에 이끌려 달라지게 되어있다.
*비느하스가 전해준 두 지파 반의 진심을 서편의 남은 지파들이 온전하게 수용한다. 즉시로 동편 지파들을 멸하자는 결의를 거둬들인다. 동족과의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의지도 선했고, 그 결정을 거둬들이는 것도 선한 결정이었다. 이런 마음가짐과 시각과 태도로 이스라엘은 이제 가나안의 그릇된 우상 문화와 결연하게 맞서야 한다. 서편에 거하든 동편에 거하든 어디에 거하든지 갖추어야 할 삶의 태도다. 그 태도가 어디서든지 여호와의 분깃을 계속 받아 누리는 열쇠가 될 것이다.
*주님, 공동체를 이어가는데 다양한 생각과 표현들이 있기에, 함부로 내가 중심된 기준을 행사하지 않겠습니다.
*주님, 오해를 풀자, 화합이 더욱 굳건하여졌습니다. 일상에서 오해받을 일, 혹은 오해하는 일을 신중하게 판단하며 나아가겠습니다.
*주님, 혹시 오해를 풀고 화합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섣불리 판단하고 정죄하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