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에필로그 _ 예수의 수태고지 이야기 [눅 1:26-56]
 – 2025년 02월 09일
– 2025년 02월 09일 –
눅 1:26-56 에필로그 _ 예수의 수태고지 이야기
    
예수의 탄생 예고와 마리아의 찬송이다. 천사 가브리엘이 요한의 수태고지처럼 마리아에게 예수의 잉태를 알린다. 그리고 마리아가 낳게 될 아들이 통치하는 나라의 특징을 설명한다. 처녀인 자신에게 매우 충격적인 수태고지임에도 겸손과 헌신의 마음으로 순종하는 마리아를 통해 하나님의 계획이 실현되기 시작한다. 마리아는 자신을 구원 역사에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찬송한다.
    
    
    
1. 마리아에게 전해진 예수 탄생 예고(26~38절)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이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을 때,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으로 간다(26절). 종교와 정치의 중심지였던 성전에서 사가랴에게 세례 요한의 출생을 예고했던 가브리엘은 이번에는 다윗의 자손 요셉과 약혼한 처녀 마리아를 시골에서 만났다(27절). 누가는 27절에서 “처녀(파르테노스)”를 두 차례 언급하면서 마리아가 결혼하지 않은 상태의 여인임을 강조했다.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도다(28절)”라고 인사한다. 이 문장을 직역하면 “기뻐하라 은혜를 입은 자여”이다. “은혜를 입은(28절) 혹은 은혜를 입었다(30절)는 인간의 노력이나 업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따라 선택받은 사실을 설명할 때 사용된 유대식 표현이다.
    
마리아는 탁월한 가문이나 높은 지위의 사람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서 절정으로 쓰일 것이기에, 은혜를 입은 자며 기뻐해야 한다. “주께서 함께 하신다”라는 하나님이 목적을 위해 선택하신 사람을 보호하고 도와주실 것을 확인시키거나 약속하기 위해 사용된 표현이다. 마리아가 놀리자, 천사는 다시 한번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실을 언급한다(30절). 하나님은 은혜로 부르시고 부름을 받은 자와 함께 하신다. 구원 역사를 위해 부름을 받은 사람은 기뻐해야 한다. 은혜를 입은 사람이고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31~33절에서 천사는 마리아에게 임한 은혜가 무엇인지 설명한다. 마리아가 잉태하고 아들을 낳을 것이다. 아이의 이름은 예수며, 그는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로 불릴 것이다. 주 하나님께서 그에게 조상 다윗의 왕위를 주실 것이다. 그가 왕으로 야곱의 집을 영원히 다스릴 것이며, 그의 나라가 영원할 것이다(32~33절). 이는 이스라엘 민족이 그토록 고대했던 하나님 나라를 실현할 왕이 시골의 어린 소녀를 통해 태어난다는 소식이다. 영원한 나라의 왕이 마리아의 아들이 된다는 뜻이다. 천사의 예고를 들은 마리아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임신할 수 있는지 되묻는다(34절). 천사는 성령께서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그녀를 덮어주실 것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태어날 아이는 “거룩한 이”, “하나님의 아들”이다(35절). 천사는 노년인 엘리사벳이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됐다고 구체적으로 알려줌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에 불가능이 없다고 선언한다(37절, 창 18:14).
    
34~38절에서 마리아는 천사의 말을 받아들인다. 천사는 임신할 수 없던 엘리사벳이 여섯 달째 임신 중인 예를 근거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가능이 없다고 강조한다. 이에 마리아는 유대식 표현인 “당신의 말씀대로 되게 하소서”를 “주의 여종”으로서 소망한다. 즉 자신의 인생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성취될 것을 순종함으로 기다린다. 처녀의 몸으로 아들을 낳는 마리아가 겪어야 할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엘리사벳이 자녀를 낳지 못해 사회적 수치를 평생 경험한 것과 대조적으로 마리아는 아이를 낳음으로써 사회적 수치가 평생 따라다닐 것이다. 그럼에도 마리아는 자신의 순종을 통해 비천한 자들을 돌아보시고 높이시는 하나님의 성품과 계획이 드러나는 것에 감사한다. 마리아는 하나님께 종속된 종이며, 특별한 관심을 받아야 할 자격이 없는데도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한다(52절에서는 비천한 신분인 것을 고백한다). 마리아는 자신처럼 낮은 자들을 구원하실 하나님을 찬양한다. 하나님은 이처럼 은혜를 입은 마리아의 순종을 통해 구원 역사를 진행하신다.
    
하나님은 은혜를 알고 순종하는 사람을 구원 역사의 동역자로 삼으신다.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의 삶을 통해 성취되며, 불가능할 것 같은 사건이 순종하는 종을 통해 이뤄진다.
    
    
    
2. 엘리사벳을 방문하는 마리아(39~45절)
마리아는 갈릴리 나사렛에서 유대 언덕과 골짜기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엘리사벳을 방문한다(40절). 마리아의 인사하는 소리를 듣고 엘리사벳의 아이가 태중에서 뛰놀았다. “뛰놀다(스키르타오)”는 신약성경에서 3회 사용되었고 기쁨의 반응을 극대화하는 표현이다. 이는 예수님의 탄생으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것에 대한 기쁨을 표현하고, 앞으로 예수님이 가져올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기쁨을 예고한다.
    
엘리사벳도 두 번에 걸쳐 마리아를 향해 복을 선포한다. 첫째,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아이를 낳을 마리아와 태어날 아이는 복되다(41~42절). 마리아는 ‘내 주의 어머니’로서 엘리사벳이 경배해야 할 분의 어머니다.(43절). 둘째, 주께서 말씀하신 것이 반드시 성취될 것이기 때문에 주의 말씀을 믿은 여자는 복되다(45절).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말씀대로 될 줄 믿고 순종하는 사람은 진정으로 복되다.
    
    
    
3. 마리아의 찬송(46~56절)
마리아의 찬송은 누가복음에 나타나는 핵심 주제들의 축소판과 같다. 마리아는 백성을 구원하는 구주 하나님을 찬송하고 기뻐한다(46~47절). 48절부터는 하나님을 찬송하고 기뻐하는 이유를 열거한다. 먼저 첫째로, 마리아는 비천한 자신을 통해 능력의 하나님이 큰일을 행하실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송한다(48~49절). 마리아는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다”고 고백하는데, “돌보다(에피블레포)”는 “관심을 두다” 또는 “지켜보다” 등의 뜻으로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을 돌아보시면 구원과 회복이 일어난다. “비천함(타페이노시스)”은 사회적 경제적 측면에서 낮고 비천한 상태를 의미한다. 이런 표현을 통해 마리아가 이스라엘 중에서 가난하고 배경 없는 부류에 속한 어린 소녀임을 알린다. 그렇다. 능력의 하나님은 어리고 낮은 신분의 마리아에게 큰일을 행하셨다.
    
둘째, 복을 주신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의 복이 다른 사람에게로 확장될 것을 선포한다(49~53절). 49~50절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과 하나님의 긍휼을 노래한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경험하게 될 사람들은 그분을 두려워하는, 즉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사람들이다(50절). 하지만 교만한 자들은 심판을 피할 수 없다(51절).
    
셋째, 마리아는 자신에게 임한 은혜를 이스라엘에게 적용한다(54~56절). 하나님은 종 이스라엘을 돕고 긍휼을 베풀고 기억하신다(54절). 이스라엘을 위한 구원은 조상들과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약속된 것이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에 근거해 긍휼을 베푸신다.
    
마리아의 찬송에 나타난 핵심은 반전이다. 반전은 하나님의 능력, 거룩, 긍휼 때문에 일어난다. 실제로 누가복음에 기록된 많은 사건은 반전을 보여준다.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겸손히 순종하는 사람은 반전을 경험하게 된다.
    
    
    
나는?
-요한을 낳게 하실 때는 불임의 태를 열어 잉태하게 하시더니, 예수의 잉태는 처녀의 태에 다윗의 왕위를 이을 하나님의 아들로 보내신다. 하나님 나라는 오직 권능으로만 임하며, 그 나라 백성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 여기 왕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공동체를 다스리신다. 구원, 하늘의 권능과 은혜로 이 땅에서 실현된다.
    
-마리아는 하나님 나라의 왕,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시는 통로로 쓰임 받게 된다. 이 엄청난 사건에 참여할 만큼 마리아 자신에게 도드라지는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오직 하나님의 섭리였고 은혜였다. 그런데 이 은혜는 정혼 중인 처녀가 아이를 배야 하는 “가혹하기 짝이 없는 은혜”였다. 파혼의 위험도 있었다. 손가락질당하면서도 해명하지 않고 침묵해야 하는 아픔이 기다리는 은혜였다.
    
-가만 생각해 보면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은혜는 늘 아이스크림 같은 달콤한 초대가 아닌, 혹독한 대가가 기다리는 가혹한 은혜일 수 있다. 하지만 천사 가브리엘은 그 의미를 잘 설명해 줌으로써 마리아의 마음에 확신과 용기를 주었다. 가혹한 은혜라고 해도 강압적인 명령으로 굴종을 요구하기 시보다 인격적인 말씀으로 자원하는 순종을 기대하신다.
    
-세상을 구원할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하는 일은 분명 은혜지만, 정혼 상대가 있는 처녀가 믿고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가혹한 현실이었다. 하지만 결국 마리아는 그 일을 이루실 성령의 능력을 믿었고,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는 하나님 말씀의 능력도 믿었으며, 하나님 아들의 탄생이 자기 몸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도 수용했다.
    
-믿음은 질문을 통과하고 회의를 극복하고 상식을 넘어선다. 하나님과 직면할 때만 믿음으로 가혹한 은혜를 수용할 수 있다. 구원은 상식을 넘어선 믿음을 통로로 이루어진다.
    
-마리아에게서 예수를 낳게 하심으로 메시아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 나라의 약속을 성취하실 것이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언약의 “씨”이며, 다윗에게 약속하신 대로 영원히 그 왕권이 견고한 나라(삼하 7장)를 이루실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이제는 너무 많이 잊혔고 또 자기 시대의 욕망을 따라 왜곡되어 버린 하나님 나라의 약속이 본래 의도를 따라 성취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말씀의 권능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라지지 않고 쇠하지 않는다. 사건이 되고 역사가 된다. 반드시 그 말씀하신 것을 창조한다. 엘리사벳의 소망 없는 태에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약속)은 능히 결혼하지 않은 여인 마리아의 몸에도 생명을 담을 수 있었다. 그 말씀이 죄와 사망이 장악했던 우리 삶 역시 빛과 생명으로 바꿀 수 있다. 나의 믿음에는 한계가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말씀에는 한계가 없다.
    
-마리아는 “능하신 말씀”에 절대복종을 다짐하는 “주의 여종”이 된다. 그 순종이 가져올 결과까지 받아들인다. 예수님처럼 말이다. 예수님도 아들의 영광뿐 아니라 그 영광을 얻기까지 수반되는 고난과 죽음까지도 자기 몫으로 받아들이셨던 것처럼 마리아도 그렇게 하겠다고 고백한다(2:35). 믿기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믿는 자들에게만 역사한다. “능하신 말씀”이 지금 나의 삶 속에서 그 능력의 역사를 이뤄내고 있는가?
    
-예수를 잉태한 채 엘리사벳을 찾아간 마리아를 뱃속의 요한이 알아보고 뛰놀았고, 엘리사벳도 성령에 충만하여 마리아와 태중의 예수를 축복한다. 이는 이 아이를 통해서 하실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기쁨이며, 믿을 수 없는 현실에서도 말씀의 창조를 허락하여 언약의 역사에 새장을 연 마리아를 향한 격려였다. 나와 타인을 볼 때 그 가운데 주님이 역사하시는 영혼으로 보고 존귀하게 대하고 축복하는 태도를 도전받는다.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전혀 내세울 것 없는 비천한 자신을 선택하시고, 큰일을 행하시고, 대대에 복을 받을 자로 삼으신 것을 찬양하며 기뻐한다. 처녀로 아이를 배고도 마리아는 “복 있는 여인”이 되었다. 태 중의 아이 때문이고, 사가랴와는 달리(1:20) 믿기지 않는 이 일이 꼭 이루어질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1:38).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 세상 보기에는 어리석게 보여도, 우리 안에 계신 분이 주와 구주이시고 그분을 믿는 믿음이 생명이니, 우리는 가장 복이 있는 사람들이다. 세상에서는 우리가 누구든지 간에, 비록 하나님 앞에서는 연약한 질그릇에 불과하지만, 우리를 돌아보아 우리 안에 계셔주신 보화 예수님 때문에 우리도 복되고 존귀한 자가 되는 것이다.
    
-마리아가 복된 여인인 것은 그가 잉태한 아이 예수를 통해 하나님께서 행하실 놀라운 구원의 역사 때문이다. 그가 가져올 하나님 나라는 세상이 자의적으로 행사한 모든 힘과 가치와 의미를 뒤엎어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경외하는 모든 족속을 복되게 하시겠다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창 12:3)을 이룰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 예수를 보내심으로 언약을 성취하셨다. 하나님의 이 기억과 긍휼과 도우심으로 이스라엘은 배반과 망각의 시간에서 구원을 받았다. 그 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이 세상 역사를 향해서는 역전과 전복의 충격을 가져오는 사건이다. 하나님 없이 부와 권세를 누리며 교만하였던 자는 흩으시고 낮추시고 빈손 되게 하시지만, 비천하고 주린 중에도 주의 돌보심을 의뢰하던 사람은 높이시고 복을 주시고 배부르게 하시는 사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뒤집고 뒤엎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기대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무례한 번영과 성공을 동경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뒤집기 전에 스스로 이 초청에 응답하여 자신의 삶을 하나님 나라 질서로 재조정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하리라.
    
    
    
*주님, 성령으로 마리아에게 행하신 가장 신비롭고 놀라운 역사가 벅찹니다. 나의 구원도 이만큼 벅차고 신비로운 주님의 은혜로 지금 여기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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