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성령 안에서, 말씀에 순종하여 이긴 마귀의 시험 [눅 4:1-13]
 – 2025년 02월 16일
– 2025년 02월 16일 –
눅 4:1-13 성령 안에서, 말씀에 순종하여 이긴 마귀의 시험
    
‘누가’는 예수의 세례 후 첫 사건으로 예수의 시험을 언급한다. 두 사건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 예수께서 세례받으실 때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었는데, 마귀는 그의 아들 되심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그를 유혹한 것이다.
    
    
    
1. 성령 안에서, 성령에 이끌리어(1~2절)
예수님께서 당하신 시험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의 정체성과 결부된 것이었다. 첫 번째와 세 번째 시험에서 마귀는 “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3, 9절)”이라고 말하며 유혹한다. 그리고 두 번째 시험에서는 세상 모든 나라와 권세와 영광과 관련하여 유혹한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그는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았었고(3:22), 마귀는 그것을 부인하며 계속 도전한 것이다.
    
1~2절은 예수님께서 시험받으신 이야기의 프롤로그다. 1절에서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받으시기 전의 상황을 두 가지로 요약한다. 먼저 예수님은 성령으로 가득한 상태에서 광야로 오셨다(1절 상반절). 그리고 예수님은 광야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으셨다(1절 하반절). “성령의 충만함”은 성령의 지속적인 임재를 의미한다. 시므온의 경우와 비슷하다(2:25). 두 경우 모두 성령의 임재 속에 성령의 인도를 언급하고 있다(2:27; 4:1). 이와 동일한 표현이 사도행전에서 스데반(6:5; 7:55)과 바나바(11:24)에 나타난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실 때 하나님의 아들로 확증을 받고 광야로 오셨다. “광야”는 사역을 준비하는데 적당한 장소다. 요한도 공적 사역을 준비하면서 광야에 머물렀다(1:80). “성령에 이끌리셨다”라는 표현은 성령 안에서 지속적으로 인도되셨다는 의미다. 예수님은 성령이 가득한 상태에서 광야로 오셨고, 성령에 의하여 지속적으로 인도되셨다. 그리고 이 상태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2절은 예수께서 시험받으신 것을 간략하게 서술한다. 시험하는 자는 마귀인데 “시험(페라이조)”은 “유혹(誘惑, temptation)”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성령에 이끌리어 40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40일이 지난 후에 시험을 받으신다. 목표를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시간에 다가오는 시험이야말로 가장 큰 시험이다.
    
    
    
2. 첫 번째 시험 : 이 돌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2~4절)
예수께서 받으신 첫 번째 시험은 그의 필요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예수께서 40일을 금식하시고 주리신 상황에서 마귀는 그의 정체성을 혼란케 하며 도전한다. “만약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너는 이 돌에게 떡이 되라고 명하라(3절)” 마귀는 하나님 아들의 관심을 그의 필요를 채우는 방향으로 이끌어가고자 한다. 4절은 예수님의 대답이다.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이 구절은 신명기 8:3의 인용이다.
    
신명기 원문은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이 굶주리게 되자 그들은 모세를 원망하면서 애굽에서 배부르게 먹던 때를 그리워한다(출 16:3). 그들은 주린 상황에서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시절을 좋게 회상하였다. 그들이 고통 중에 부르짖던 상황으로 돌아가길 원했다. 이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메추라기와 만나를 내리어 먹게 하셨다(출 16:13~15).
    
예수는 동일한 상황(?)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현실적인 필요에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마귀의 시험을 극복하셨다.
    
    
    
3. 두 번째 시험 : 다 네 것이 되리라(5~8절)
두 번째 시험은 예수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다. 마귀는 5~6절에서 예수에게 세계 모든 나라를 보이면 유혹한다. “이 모든 권세와 영광을 너에게 주겠다.” 마귀가 권세와 영광을 예수에게 주겠다는 근거는 두 가지다. 모든 권세와 영광이 그에게 위임되었다는 것과 그가 그것을 주고 싶은 자에게 준다는 것이다.
    
7절에서 마귀는 예수께 도전한다. “네가 내 앞에 엎드려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너에게 줄 것이다.” 동사 “엎드려 절하다”는 “예배하다”, “경배하다”의 뜻이다(24:52). 8절은 예수의 대답이다. 신명기 6:14을 인용하여 하나님은 유일한 경배와 예배의 대상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천명한다. 마태복음에서는 “사탄아, 물러가라”라는 내용이 나오지만, ‘누가’는 기록하지 않았다. 본문은 언뜻 마귀가 세상 모든 나라의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14:30; 16:11; 요일 5:19). 그러나 궁극적으로 모든 권세와 영광은 메시아에게 있다(단 7:14; 마 28:18).
    
    
    
4. 세 번째 시험 :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9~12절)
세 번째 시험은 예수의 고난에 대한 도전이다. 9절에서 마귀는 예수를 이끌고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 이르러 유혹한다. “만약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서 뛰어내리라.” 마귀의 유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10~11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시험(유혹)한다. 이 구절은 시편 91:11~12를 인용한 것이다. 하나님의 보호에 대한 약속의 말씀을 근거로 하나님의 아들에게 도전한다.
    
12절은 예수의 대답이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이 내용은 신명기 6:16의 인용이다. 원문은 맛사의 시험을 언급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르비딤에서 마실 물이 없자 모세를 원망하였다(출 17:1~7; 참조 히 3:7~8). 그들은 하나님을 시험하여 물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계신가요? 혹은 안 계신가요?(출17:7). 이 세 번째 시험은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배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마지막 시험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일어났다는 것과 성전에서 뛰어내리는 것이 죽음을 예견한다는 것은 누가의 드러나지 않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복선으로 이해할 수 있다. ‘누가’는 마태와 달리 이 세 번째 시험을 마지막에 배치하여 이 복선을 강화했다.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는 말씀을 인용하므로 이 모든 시험을 극복하셨다. 마귀의 능력보다 더한 말씀의 능력으로 시험을 이기셨다. 이 사실이 본문을 통해 모든 성도에게 위로와 격려가 된다.
    
    
    
5. 에필로그 _ 마귀가 떠나다(13절).
마귀는 이 모든 시험 후에 떠났다. “얼마 동안”은 “적절한 때까지”를 말한다. 마귀는 적절한 때에 다시 올 것이라는 기대를 남기고 떠난 것이다.
    
기억해야 한다 “정신 차리고 깨어 있으라 너희 원수 마귀가 먹이를 찾아 으르렁대는 사자와 같이 돌아다닌다(벧전 5:8)”
    
    
    
나는?
-예수님은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인류 역사상 가장 놀라운 일이 벌어진 장소인 요단강을 떠나 가장 험한 곳으로 가신다. 고독한 자리이자, 굶주림과 유혹이 기다리는 인간적이고 원초적인 장소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음을 확인하는 장소이고, 하나님의 소명을 기억하는 장소다. 그 광야로 인도하신 분이 성령이시니 이제 그 광야의 시험을 이기는 길도 성령을 의지하는 것뿐이다.
    
-광야와 같은 현실을 살아가고 있지만, 성령이 함께하심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마귀는 돌로 떡을 만들 수 있음에도 굶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시험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살고 죽는 것은 떡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달려 있다고 대답하신다. 말씀에의 순종,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의 길임을 선언하신 것이다.
    
-마귀는 자신에게 절하면 하나님의 아들에게 어울리도록 천하만국을 다스릴 권위와 영광을 주겠다고 유혹했지만, 예수님은 거절하신다. 그 유혹에 로마 황제 가이사는 절을 했고, 그 권력으로 숱한 나라들을 짓밟고 거짓 평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왕이신 하나님 나라는 군림이 아니라 섬김의 나라요, 착취가 아니라 베풂의 나라다. 진정한 권위와 영광은 하나님으로부터만 나온다.
    
-마귀는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면 하나님이 받아주실 것이고, 그러면 뭇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입증될 것이라고 유혹하지만, 예수님은 거절하신다. 굳이 확인받지 않아도 하나님이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시는지 알기 때문이며, 사람들로부터 표적을 통해 인정받는 메시아가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메시아로 입증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마귀의 세 가지 시험은 모두 예수님께는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주님은 순종과 신뢰의 실패로 사망 아래 갇힌 이들을 구하러 오셨기에, 지금 중요한 것은 명분이나 실리가 아니라 목숨까지 바치는 순종이고 충성이었다. 명분을 앞세워 불순종을 정당화하지 말고, 단순한 순종으로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른 아담과 달리, 떡이 없다고 광야에서 불평했던 이스라엘과 달리, 예수님은 참 생명은 떡이 아닌 말씀 순종에 달려 있다고 고백하셨다. 마귀는 ‘하나님과 같이 된다”라는 거짓말로 아담을 자신의 종으로 삼는 데 성공했지만, 자기에게 절하면 만국의 통치권과 영광을 내어주겠다는 제안으로 예수님을 넘어뜨리는 데는 실패했다. 십자가를 거치지 않고도 손쉽게 왕이 되게 하겠다는 솔깃한 제안을 했지만,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하나님만 경배하고 섬기며 순종하겠다는 예수님을 당해내지 못했다.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만 경배해야 할 성전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시험하였다. “정녕 죽으리라”라는 하나님의 경고를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 3:4)”로 바꿔서 첫 아담을 유혹한 에덴의 뱀처럼, 마귀는 말씀(시 91:11~12)을 왜곡하면서까지 마지막 아담을 시험하였지만, 하나님은 시험의 대상이 아니라 신뢰의 대상이며, 말씀은 사용의 대상이 아니라 수용과 순종의 대상으로 알고 행한 예수를 이길 수 없었다.
    
-예수님을 넘어뜨리는 데 실패한 마귀는 물러난다. 하지만 “얼마 동안”만 물러난다. 예수님의 광야 승리는 최후 승리의 시작일 뿐이다. 생애 내내 마귀는 주의 길을 방해할 것이고 고난의 종으로서 십자가에 순종하시기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 땅의 하나님 나라 백성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부활에 이를 그날까지 영적 시험은 끊이지 않겠지만, 주님처럼 마귀의 소리보다 말씀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고 순종할 때 십자가까지 따를 수 있을 것이다.
    
    
    
*주님, 결국 성령과 말씀이 유혹을 이기게 했음을 봅니다. 성령 안에서, 성령에 이끌려, 말씀을 의지하고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주님, 광야 같은 혹독한 삶의 걸음에 성령께서 함께하심이 큰 위로와 힘이 되어, 명분과 실리를 추구하기보다 말씀의 은혜와 능력을 따라 순하게 순종하며 살아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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