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5:1-11 시몬을 제자로 부르심 _ 시몬이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라나섬
갈릴리 사역을 시작하신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일꾼들로 제자들을 부르신다. 특히 시몬 베드로와 동료들의 반응에 초점이 맞춰진다. 시몬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기적을 경험한 직후에 자신을 ‘죄인’으로 고백한다. 동료 어부들은 시몬과 함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다.
1.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 시몬(1~7절)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몰려왔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예수님은 호수 위에 있는 배에 올라 천연 원형 경기장과 같은 공간을 활용해 가르치신다. 예수님은 호숫가에 있는 배 두 척과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 어부들을 보셨다(2절). 그리고 시몬의 배에 올라 육지에 있는 무리를 향해 가르칠 수 있도록 배를 육지에서 조금 떨어지게 하도록 부탁하셨다(3절). 시몬과 동료들은 밤새도록 한숨도 못 자고 일했기 때문에 지쳐 있었다. 밤을 지새운 수고의 대가는 피곤뿐, 생선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실패로 좌절감이 밀려왔지만 밤에 다시 일을 나가야 하므로 그물을 정리하고 있었다.
지친 시몬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시몬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른다. 예수님이 장모의 병을 고쳐 주셨기 때문일 수 있고(4:38~39), 이제까지 보여주신 활동에 근거하여 예수님을 존귀한 분으로 신뢰했기 때문일 수 있다. 예수님은 가르침을 마치고 나서 시몬에게 깊은 곳으로 가서 물고기를 잡으라고 명령하신다(4절). 시몬의 전문 분야에 대해 언급하신 것이다. 시몬은 밤새도록 수고했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는 물고기가 그물을 볼 수 있는 낮에 물고기를 잡는 것은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물고기가 잘 잡히는 밤에도 헛수고했는데 낮에 물고기를 잡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시몬은 언제 어디서 물고기를 잡아야 하는지는 예수보다 훨씬 더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레마)을 믿고 그물을 내리겠다고 말한다. 자신의 경험과 상식을 고집하지 않고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한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자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가 그물에 잡혔다. 잡은 물고기가 너무 많아서 그물이 찢어질 것 같았고 도저히 그물을 끌어 올릴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배의 도움을 기다렸다가 두 배에 채우고 보니 배가 잠길 정도였다.
무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였고, 시몬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경험한다. 시몬이 배 안에서 무리를 향해 전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흘려들었을 때 그 말씀은 다만 바람을 타고 전달되는 소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시몬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겸손하게 순종했을 때 그 말씀은 목적을 담은 음성이 되었다. 물론 현 단계에서 시몬이 완벽하게 신뢰하며 예수님 말씀에 반응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겸손하게 순종했다는 것 자체가 시몬의 훌륭한 반응인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은 시몬의 반응을 통해 능력으로 나타난다(전환된다). 자신의 경험과 합리성을 뒤로 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태도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통로가 된다.
시몬이 예수님의 말씀에 반응하고 겸허하게 다가가는 태도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점에서 모범적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님의 명령처럼 다양한 경로와 형식으로 사람들에게 들린다. 이런 말씀에 겸손하게 순종할 때 상식과 경험에 근거한 합리성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능력에 전율하며 떨게 된다(8절).
2. 예수님 앞에서 죄인으로 고백하는 시몬(8~10절)
시몬은 깊은 곳에서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물고기가 잡힌 광경을 보고 나서 예수의 무릎 앞에 엎드린다. 예수에 대한 시몬의 호칭은 “선생”에서 “주”로 바뀐다. 후자가 전자보다 더 권위 있는 호칭이다. 시몬은 예수님께 외친다.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8절).” 그는 깊은 곳에서 엄청난 양의 물고기를 잡고 놀랐기에 이런 고백을 했다(9절).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전율했을 때의 고백과 같다(사 6:5).
시몬과 동료들은 분명히 물고기가 잡히지 않는 날이고 그것도 대낮에 깊은 곳에서 물고기가 그만큼 많이 잡힐 리가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시몬은 깊은 곳을 생생하게 알고 계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보았다. 시몬은 예수님을 자신과 함께 하시기에는 너무나 거룩하신 분으로 인지하고 도저히 그 앞에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몸을 떨었다. 베드로의 말과 태도는 신적 존재 앞에서 무가치함을 깨달을 때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특히 시몬은 이사야의 고백처럼 자신은 도저히 거룩하신 분 앞에 설 자격이 없음을 깨닫는다. 이런 분인 줄 모르고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5절)”이라는 단서를 단 것이 한없이 부끄러웠을 것이다.
3. 예수님을 따르는 시몬과 동료들(10~11절)
예수님께서는 시몬에게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라고 말씀하신다(10절).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두려워하던 이사야에게 하나님이 사명을 맡기셨던 것처럼(사 6:8) 예수님도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시몬에게 사명을 맡기신다. 역설적으로 예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전율하고 낮아지는 사람을 예수님은 더 가까이 부르신다. “취하다(조그레오)”는 “산 채로 잡다”, “생명을 불어넣다”, “생명을 돌려주다”라는 뜻이다. “사람을 취할 것이다”는 “사람을 잡아 살려줄 것이다”라는 의미다. 사람을 살리는 행위는 예수님이 나사렛 회당에서 선포하신 회복의 소식을 떠올린다(4:18~19; 사 61:1~2). 제자들의 사명은 갇히고 눌린 자들을 살려내는 것이다. “이제 후로는”은 과거와의 단절과 새로운 출발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명령에 시몬뿐 아니라 같이 기적을 경험한 동료들도 반응한다. 그들은 배를 그대로 두고 모든 것을 버린 채 따른다. 이 장면 또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이사야가 하나님의 파송을 받기로 결단하는 모습을 연상하게 된다(사 6:8). 그들은 왜 자신과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권위 때문이다.
제자들은 제자의 의미를 묵상하거나 예수님의 정체에 관해 공부하고 나서 따른 것이 아니다. 초월적인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의 말씀에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은 그의 권위 앞에 죄인으로 겸손히 낮아진 자들을 사용하신다. 또한 제자들은 예수님이 베푸신 은혜, 즉 물고기를 잡아주신 일을 통해 그를 따르는 인생이 은혜의 길이 될 것을 믿었다. 예수님의 명령은 살리고 회복시키는 사명이므로 신뢰의 마음으로 순종할 수 있다.
나는?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어부들이 이례적으로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예수께서 제자를 부르러 찾아오셨을 때는 그들이 성공했을 때가 아니라 실패했을 때다. 가장 전문적인 영역에서 가장 참담한 무능이 드러났을 때다. 그리고 고기잡이에 있어 철저히 비전문가였을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다시 깊은 곳에 그물을 던졌을 때, 믿기지 않을 만큼 고기가 잡혔다. 나의 경험이나 실력, 경력보다 더 주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믿음이며, 그가 제자다.
-예수님은 밤새 헛수고하여 속상하고 텅 빈 마음으로 텅 빈 배와 상한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을 시몬의 배를 설교단으로 쓰겠다고 하신다. 게다가 목수가 노련한 어부에게 고기잡이까지 훈수했다. 그런데 베드로는 배를 쓰자는 말에도 묵묵히 순종하고 그물을 내리라는 목수의 명령에도 “말씀에 의지하여” 따른다(5절). 그리고 그 어떤 바다 경험과 전문지식과 능력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결과를 얻었다. 이를 통해 깨듣는다. 성공 가능성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순종해야 한다. 형편이 허락하기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명령하신 이가 모든 상황의 주인이시기에 순종해야 한다.
-시몬은 순종으로 잡은 많은 고기 앞에서 자기 자신과 예수님을 새롭게 이해한다. 혼자서는 감당 못 할 만큼의 고기를 끌어 올린 순간 그는 죄인이 되었고 예수님은 주가 되셨다. 누구나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끝까지 자신의 공로를 돌리고, 그 물고기가 자기 삶을 풍요롭게 해주고 안전을 보장해 준다고 믿는다. 하지만 시몬은 달랐다. 그래서 그가 얻은 더 소중한 것은 물고기보다 예수님이고 영원한 생명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뿐만 아니라 바다와 물고기를 주관하시는 분을 만난 것이다.
-시몬이 순종으로 얻은 것은 많은 고기만이 아니었다. 그는 예수님을 알았고 자신을 알게 되었다. 예수님은 병을 잘 고치는 용한 의사나 가르침에 능한 선생(5절)이 아니라 자연까지 주장하시는 주님임을 알았고 자신은 이런 분 앞에서 의심 가득한 절반의 순종을 한 죄인임을 알았다. 고기는 그에게 잠깐의 기쁨과 부를 안겨주겠지만, 이 깨달음은 그에게 평생의 구주를 만나게 해주었다.
-주님과의 만남이 시몬 인생에서 전환점이 되었다. 단순히 직업이 바뀐 데 그치지 않고 인생의 주인이 바뀌고 사는 이유와 목적이 바뀐 중요한 만남이었다. 자신과 예수님을 새롭게 정의하는 순간, 예수님도 시몬도 새로운 소명과 사명을 부여하신다. 어부로 부름에서 제자로 부름으로, 고기를 낚는 사람에서 사람을 낚는 사람으로 삶의 방향을 새롭게 정해주셨다. 그런데 조건이 있다. 새로운 사명과 소명을 수용하는 즉시 과거의 삶에서 떠나고, 과거의 가치관과 결별해야 했다. 시몬이 배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쫓은 것은 자기중심의 삶에 대한 전격적인 해체였으며, 예수 중심의 삶으로 재창조된 것이다.
-고기를 잡고 돌아온 시몬은 다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다. 배도 버렸고, 어부로 살면서 가장 많이 잡았을 그 많은 고기도 놔두고 따랐다. 그것이 무엇이든 지금 시몬에게는 예수님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고 그분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말씀의 힘이 여기에 있다. 내가 알고 있고, 경험하는 것에 천착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나의 인식과 경험이 설정해 놓은 한계선을 뛰어넘는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결코 이런 일이 늘 있는 일은 아니다. 삶의 가장 중요한 지점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물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단지 말씀만을 의지해서 이런 기적을 경험하지 않고서도 그저 말씀을 믿기에 충분히 일어날 수도 있다.
-이것이 말씀의 힘이다!
*주님,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의 주님 되심을 경험한 시몬이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는 제자로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라나서는 것을 봅니다. 실재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경험한 시몬에게 어떤 주저함이 없었던 것처럼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길을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주님, 말씀의 힘이 오늘도 나의 삶을 이끌어 주실 것을 신뢰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