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열두 사도를 부르심, 하나님 나라의 복(福)과 화(禍) [눅 6:12-26]
 – 2025년 02월 23일
– 2025년 02월 23일 –
눅 6:12-26 열두 사도를 부르심, 하나님 나라의 복(福)과 화(禍)
    
기도하러 산에 오르셔서 밤새도록 기도하신 후 열두 제자를 택하여 사도라 칭하신다. 그들과 함께 평지로 내려와 큰 무리를 만나 가르침과 치유를 베푸신다. 그리고 제자들을 보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반응하는 자들과 반응하지 않는 자들의 상태를 네 가지 복과 화로 설명한다. 본 단락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꾼을 세우시고 일꾼들이 전해야 할 복음의 핵심적 가르침을 알려주신다.
    
    
    
1. 기도하신 후, 열두 제자를 사도로 세우다(12~16절)
예수님은 중요한 순간마다 기도하신다. 세례받으실 때(3:21), 제자들에게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말씀하시고, 최초로 인자의 고난과 부활을 이야기하실 때(9:18), 변화산에서(9:28), 제자들에게 주기도를 가르치실 때(11:1), 십자가를 지시기 전 감람산에서(22:41) 예수님은 기도하셨다. 본문은 이처럼 제자 중에 열두 사도를 세우시기에 앞서 밤새도록 기도하셨다고 증언한다(12절). “밤이 새도록”이라는 표현은 오직 열두 사도를 세우는 장면에만 등장한다. 그만큼 예수님이 열두 사도를 세우는 데 심혈을 기울이셨음을 알 수 있다.
    
다른 신약성경과 달리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비교적 좁은 의미로 “사도”라는 호칭을 사용한다(13절). 예수님은 그를 따르던 여러 제자 중에 특별히 열둘을 세우셔서 “사도(아포스톨로스)”라 칭하셨다. “보내다”라는 뜻의 ‘아포스텔로’의 명사형으로 “보냄을 받은 자”를 의미한다. 넓은 의미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자들이지만, 누가행전(누가복음+사도행전)에서는 특히 열두 제자에게 이 칭호를 붙였다. 예수님이 밤새도록 기도하시고 부르신 열둘을 사도로 세운 것은 하나님의 계획에 따른 것임도 간과하면 안 된다.
    
14~16절은 열두 사도의 목록이다(마 10:2~4; 막 3:16~19; 행 1:13). 첫 번째 네 명은 베드로, 안드레(베드로의 동생), 야고보, 요한, 두 번째 네 명은 빌립, 바돌로매, 마태, 도마, 세 번째 네 명은 야고보(알패오의 아들), 시몬(열심파), 유다(야고보의 아들), 가룟 유다이다. ‘누가’는 가룟 유다를 예수를 파는 자로 소개한다. 또, 시몬 베드로와 구별하여 다른 시몬을 “셀롯이라는 시몬(15절)”이라 소개한다. 아람어 “셀롯”을 헬라어로 “가나안인”이라 한다. 셀롯은 AD60년대 말 무장 혁명을 시도하던 무리들이다. 시몬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무장 혁명 운동을 꿈꾸던 자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세리 출신 레위 마태가 있었고, 반로마 운동을 했던 셀롯 시몬도 있었다. 여러 정치적 성향을 뒤로하고 하나님 나라 운동에 매진하기 위해 주님을 따라나선 것이다.
    
    
    
2. 병자를 고치고, 말씀을 가르치시는 예수님(17~19절).
예수께서 기도를 마치고, 사도를 세운 후 산에서 내려오자 많은 제자의 무리와 백성들이 예수님을 따른다(17절). 이들은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사람들이었다.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도 얻기 위해 왔다. 더러운 귀신에 고난받는 자들도 예수님에 의해 치료된다(18절). “더럽다”라는 표현에는 “악하다”라는 의미와 함께 귀신이나 귀신 들린 사람이 하나님께 가까이할 수 없는 제의적 부정과 연관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예수님은 이들을 치료하여 깨끗하게 하신다. 그리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게 하신다.
    
“만지다(19절)”는 구약 성경에서 제의적 문맥에 자주 사용되던 단어였다. 누가복음에서 부정한 자와 접촉하는 것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비난하는 주요 이유였다(5:30). 하지만 예수님은 부장한 자와 교제하실 뿐만 아니라, 병든 자에게 손을 대서 치유하셨다(5:13). 본문에서도 예수님이 손을 대시자, 능력이 나와 사람들이 치유되고, 더러운 귀신이 떠나간다는 것이 암시되어 있다. 당시 유대인은 병든 사람, 그리고 귀신 들린 사람과 접촉하면 부정한 자가 된다고 여겼다. 하지만 예수님은 적극적으로 부정한 자와 접촉하셨을 뿐 아니라, 부장한 자들이 예수님께 접촉했을 때 치유되고 거룩하게 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권위를 가진 분이요, 성령으로 충만한 분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능력은 누가복음에서 성령과 함께, 하나님의 권위와 함께 나타난다.
    
    
    
3. 세상에서 고난받는 자들에게 주시는 복음(20~23절)
제자들에게 네 가지 복을 선언하신다. 마태는 팔복을 기록했지만(마 5:1~12), ‘누가’는 네 가지 복과 네 가지 화를 함께 언급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복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예수께서 선언하신 복을 얻기 위해 우리가 노력해야 하는 식으로 많이 가르치는 것에 비해 어려움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는 자들에게 주시는 선언이다.
    
네 가지 복과 네 가지 화는 하나님 나라의 놀라운 반전을 의미한다. 이 세상에서 비록 가난하고, 배고프고, 울고, 핍박당할지라도 하나님 나라에서 그들의 믿음을 갚아주시겠다는 은혜의 선언이다. 반대로 이 세상에서는 부요하고, 배부르고, 웃고, 칭찬을 받을지라도, 하나님이 결국 심판하시겠다는 강력한 경고다.
    
가난한 자가 받게 될 복은 하나님 나라다(20절). 가난한 자와 하나님 나라의 연결은 이미 4:18에 암시되고 있다. 가난한 자는 단순히 물질적으로 궁핍한 자라기보다 가난하여 하나님을 갈망하는 경건함을 가진 자다. 하나님 나라는 물론 미래적인 복이지만, 현재에도 임한다(11:20; 17:20~21). 하나님 나라는 이미 가난한 자의 것이요, 미래에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
    
주린 자는 배부를 것이고, 우는 자는 웃게 될 것이다(21절). 주린 자는 가난한 자의 또 다른 표현이다. 가난한 자는 주릴 수밖에 없고, 그래서 그는 웃음보다 울음과 더 친숙하다. 그러나 그러한 고통 속에 하나님을 찾을 때, 하나님 나라에서 그는 배부를 것이고, 진정으로 즐거워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 때문에 핍박당하고 고통당하는 사람들도 복되다(22절). 예수님은 핍박당하는 사람들에게 기뻐하라고 격려하신다. 하늘에서 상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그들의 믿음의 정당성이 확인될 것이다. 지금의 수고와 충성이 하늘에서 보상될 것이다. 또한 선지자들도 이렇게 핍박을 당했기 때문에, 그들로 기뻐하라고 하신다. 참된 믿음의 표시가 바로 핍박이기 때문이다.
    
    
    
4. 세상에서 승승장구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경고(24~26절)
네 가지 복을 선언하신 후, 이제 네 가지 화를 선언하신다. “화 있을진저(24절)”는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이 바리새인이나 율법 교사들에게 쏟으시는 저주다(11:42~52). 심판이 가까이 왔기 때문에, 그 위험을 경고하는 표현이다. 첫 번째 경고는 부요한 자에게 주어졌다(24절). 부요한 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누가복음 전체에서 나타난다(12:13~21; 14:12; 16:19~31; 18:18~30). 그러나 모든 부요한 자들이 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은 아니다(19:1~10). 따라서 단지 물질적으로 부요하여서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다. 물질이 풍성한 자는 그 물질 때문에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경향이 있다. 물질의 부요함 때문에 영적인 자만심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이 세상에서 위로를 받았다. “받다”라는 표현은 다 받고 영수증까지 써서 준 상태를 가리킨다. 그만큼 부요한 자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것이 없다는 말이다.
    
또한 하나님 나라에서 배부른 자는 주릴 것이고, 지금 웃는 자는 울 것이다(25절). 배부름과 웃음은 부요한 자들이 이 땅에서 누리는 것들이다. 이러한 풍족한 삶 때문에 그들은 영적인 자만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죄에 대한 고민도, 진정한 회개도 없다. 그래서 그들에게 심판이 올 것이다. 배고픔과 울음이 그들을 기다린다.
    
네 번째 경고는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는 자들에게 주어진다(26절). 앞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핍박을 당한다고 했다(22절). 그런데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다면, 그들은 참믿음으로 살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는 마치 거짓 선지자의 삶과 같다. 거짓 선지자들은 사람의 귀에 듣기 좋은 말만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에게서 칭찬을 들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나는?
-예수님을 죽이려는 움직임 일어나는(6:11) “그때” 예수님은 산에 올라가 밤새워 기도하신다. 밤을 지새우는 간절한 기도를 통해 그 밤처럼 캄캄한 현실에서 자신이 가야 할 길과 해야 할 일을 물으시고는 자신의 가르침과 권한을 이어받아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 새 이스라엘(교회_의 근간이 될 열두 사도를 택하여 세우셨다.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경험하고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증인으로 제자들을 부르셨다. 예수님은 이를 위해 산에 올라가 밤새워 기도하신 후 그 밤처럼 자신 때문에 고난을 겪으면서도 이 하나님 나라를 전해야 할 일꾼들을 부르신 것이다. 자기의 제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제자가 되어야 했기에 더 간절히 기도하셨을 것이다.
    
-기도는 철저한 자기 부인의 표현이며, 하나님께 대한 절대 신뢰의 표현이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조건이다. 예수님 자신 안에 먼저 하나님 나라가 임했기에, 그에게 나아온 자들도 하나님 나라를 누릴 수 있었다.
    
-예수님을 따르는 다양한 부류가 있었다. 가장 측근으로는 예수님께서 밤새워 기도한 후 세우신 열두 사도가 있었고, 예수님을 가까이서 따르는 제자들이 있었다. 예수께서 가시는 곳마다 그의 말씀을 듣고 그를 통해서 귀신을 쫓아내고 그분의 능력으로 치유받고 싶어 찾아온 이들도 있었다. 이들 간의 차이를 만들어 낸 것은 그들의 믿음도, 출신도, 능력도 아니다. 원하는 자는 누구든 나아올 수 있었지만, 예수께서 다양한 목적을 위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부르셨다. 모두가 집과 생업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회적 통념을 깨는(세리 마태, 셀롯당 시몬 등) 파격적인 부르심이었지만, 열두 사도 안에 여인들이 없는 것은 현실을 고려한 부름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님 나라를 향해 온 모든 이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청종과 순종이었다.
    
-주의 말씀을 듣고 병도 고치고 더러운 귀신들도 쫓아내는 등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미 도래했고 은혜의 해가 임했음을 경험하게 하셨다. 그뿐 아니라 열두 제자들에게는 하나님 나라는 어떤 복이 있고 어떻게 그 복을 누릴 수 있는지를 말로 설명해 주신다. 그렇게 하나님 나라를 온몸으로 경험하게 하신다.
    
-하나님 나라를 알아보고 영접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 그것은 유한한 인간이 세운 이 세상 나라를 향한 철저한 환멸과 좌절이다. 거기에서 아무 희망도 볼 수 없어야 하나님 나라가 보인다. 그 허망한 가치를 보아야 진정한 가치가 보인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이 땅에서 가난하고 주리고 애통해하는 자가 부요하고 배부르고 웃음이 있는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고 환영하게 된다. 그들은 필연 예수께서 당하신 고난과 외면과 오해를 같이 받겠지만, 믿음으로 감당한 자들은 이 땅에서 충분히 못 누린 상을 하늘에서 받을 것이다. 세상은 결코 주 안에 있는 성도들의 생명(복)을 꺼뜨릴 수 없다.
    
-그 하나님 나라의 가치는 이 세상 나라의 가치를 전복할 것이다. “주의 은혜의 해”가 도래했고 안식일의 주인이 오셨으니, 주님을 배반한 사탄의 나라 때문에 가난하고 주리고 울고 미움을 받는 이들이 가장 먼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받고 구원의 선물을 환영하는 복된 자들이 될 것이다. 가장 낮은 자리에 임한 그 나라를 가장 먼저 볼 것이고, 가장 애통해하는 자에게 임한 그 나라로 인해 가장 기뻐할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새로운 통치자의 도착이다. 새로운 세계관의 습격이다. 이 세상에 충성하던 자들에게 이 사건은 복음이 나리라 흉음이다. 이 땅의 통치자에게 기댄 대가로 이미 취하여 부하고 배부르고, 이 세상의 성취 때문에 웃고 즐기고 칭찬을 받느라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지도 않고 구주의 선물을 외면한 이들에게는 불행을 가져다줄 사건이기 때문이다. 모든 이들에게 복된 소식은 없다. 이 세대와 불화하고 이 세대가 약속한 보상을 거절하고 이 세상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는 자에게만 예수의 소식은 복음이 된다.
    
    
    
*주님, 주님조차 밤새워 기도하시며 하나님 나라 일꾼들을 세우셨음을 봅니다. 철저히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따라 세워야 할 일꾼이었기 때문임을 압니다. 주님의 공동체를 위해 세울 일꾼을 하나님 앞에서 치열하게 기도하며 주님의 뜻을 따라 세워 나가도록 용기를 주십시오.
*주님,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의 복을 누리겠습니다. 세상을 향한 관심과 욕망보다 하나님 나라를 향한 간절함을 붙잡겠습니다. 저부터 하나님 나라 복음을 누리고 제가 누린 하나님 나라 복음을 행복하게 살아내며 전하겠습니다.

댓글 남기기

매일성경 묵상

십자가 아래 새 하늘 가족 [요 19:17-27]

요 19:17-27 십자가 아래 새 하늘 가족 예수께서 결국 십자가에 못 박히신다. 지상에서 보면 이것은 유대 당국자들의 모함과 심약하고 비겁한 빌라도의 판결에 의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세히 보기 »
매일성경 묵상

빌라도의 심문과 선고 [요 18:39-19:16]

요 18:39-19:16 빌라도의 심문과 선고 빌라도의 계속된 심문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예수님은 왕이시면서 사람이시고, 또한 하나님의 아들로 묘사된다. 그러나 정작 유대인들은 그러한

자세히 보기 »
매일성경 묵상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요 18:28-38]

요 18:28-38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님과 빌라도가 재판정에서 만난다. 첫 번째 심문을 통해 예수님은 세상 나라와 다른 하늘나라의 왕이시라는 것이 드러난다. 그 나라는 진리에 기초하는 나라다. “유대인의

자세히 보기 »
매일성경 묵상

기꺼이 잡혀 주시는 사랑 [요 18:1-11]

요 18:1-11 기꺼이 잡혀 주시는 사랑 요한은 예수님의 수난을 수치의 길이 아닌 영광과 승리의 길로 묘사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가는 고뇌를 노출하며 모든 사람을 살릴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