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한 바리새인과 향유를 부은 죄 많은 한 여인 [눅 7:36-50]
 – 2025년 02월 28일
– 2025년 02월 28일 –
눅 7:36-50 한 바리새인과 향유를 부은 죄 많은 한 여인
 
본문은 누가복음에만 기록된 내용으로 죄 많은 여자의 헌신을 제자도의 모본으로 설명한다. 누가는 여자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는 장면을 소개하고(36~39절)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빚을 탕감받은 두 사람에 대한 비유로 설명한다(40~43절). 누가는 다시 여자의 헌신을 시몬의 태도와 비교해서 강조하고(44~46절), 여자가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많은 죄가 사해진 것으로 거듭 강조해 설명한다(47~50절).
 
 
 
1.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여인(36~39절)
어떤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했다(36절). 유대인의 만찬에 초대받아 같은 식탁에 앉는 것은 사회적 친밀감과 존중을 의미했다. 그들의 식사는 정결한 사람들과 정결한 음식을 나누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식사는 기본적으로 언약 식사였다. 식사와 음식 규례는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을 지키는 수단이었다(레 11장; 신 14:2). 포로기 이후 경건한 유대인과 부정한 외부자들 사이의 경계를 구약보다 더 강화했는데, 식탁 교제는 친밀한 우정을 돈독하게 만드는 수단인 동시에 올바른 사람들과 함께 올바른 종류의 음식을 나누는 것이었다. 이같은 행위의 배경에는 정결한 사람들이 부정한 사람들을 거룩하게 만드는 힘보다 부정한 사람들이 정결한 사람들을 오염시키는 힘이 더 강하다는 전제가 있었다. 유대인들은 죄인들(부정한 사람들, 이방인들)과 식사를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죄인들에게는 빵도 나눠주지 않았다.
 
그런데 죄 지은 한 여자가 예수님이 바리새인의 집에 계신 소식을 듣고 향유를 담은 옥합을 들고 찾아왔다(37절). 죄 있는 여자와 바리새인의 만찬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더구나 초대자가 바리새인이다(36, 37, 39절). 죄 많은 여자가 들어온 것은 초대자와 손님들 모두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도대체 어떻게 들어올 수 있었을까? 여자는 갑자기 난입 했을 것이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당시 유대인들은 U자 모양으로 식탁을 둘러 앉았는데, 예수님의 뒤로 와서(38절),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적시고 수건을 대신하여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향유를 부은 발에 입을 맞추었다.
 
 
 
2.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40~43절)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새인은 당혹스러울 이 광경을 보고는 만일 예수가 선지자라면 이곳에 온 여자가 죄인인 줄 알아야 했다고 마음으로 독백한다(39절). 그는 마을에서 잘 알려진, 부정한 여인이 수치를 모르고 남성들의 정결한 식사 자리에 난입한 것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바리새인으로서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수치스러운 현장이었다. 무엇보다 그런 여자를 꾸짖어 내쫓지 않은 예수에게 식사를 망가뜨린 책임을 돌린다. 바리새인은 여자의 실체를 모르고 섬김을 받는 것은 예수가 선지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한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바리새인 시몬의 생각을 아시고 비유로 그의 문제를 지적하신다(40절). 예수님은 여자의 실체를 알 뿐 아니라 바리새인의 생각마저 아는 선지자의 능력이 있으시다. 비유는 이렇다. 어떤 사람이 한 명에게는 500 데나리온을, 다른 한 명에게는 50 데나리온의 돈을 빌려주었다(41절). 당시 1데나리온은 군인이나 노동자의 하루치 임금이었으므로 각각 약 2년치와 2개월 치의 빚을 진 셈이다. 두 채무자 다 돈을 갚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주인은 두 사람의 빚을 모두 탕감해 준다(42절). 주님은 “이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라고 물으신다. 시몬은 더 많이 탕감받은 자가 더 사랑할 것이라고 대답한다(43절). 예수님은 시몬의 판단이 옳다고 인정하신다.
 
 
 
3. 이 여자를 보느냐?(44~46절)
그리고 예수님은 여자를 돌아보시고 시몬에게 말씀하신다. “이 여자를 보느냐?”라는 질문으로 시몬에게 여자의 행동과 그의 행위를 대조하여 돌아보게 하신다. 명예와 수치의 윤리가 사회의 근간이었던 문화에서 시몬은 예수님이 여자의 환대를 수용함으로서 식사 초대자의 명예를 심각하게 손상시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 반대로 예수님은 시몬이 손님을 환대하지 않음으로써 예수님의 명예를 존중하지 않은 점을 여자와의 비교로 드러내신다.
 
즉, 유대인의 만찬에는 초대받은 손님을 위해 주인이 씻을 물을 담은 대야와 포도주를 제공했는데, 예수님이 시몬의 집에 들어왔을 때 시몬은 예수님에게 발 씻을 물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여자는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머리카락으로 닦았다(44절). 시몬은 예수님에게 입 맞추지 않았으나 여자는 예수님의 발에 입 맞추기를 그치지 않았다(45절). 시몬은 예수님의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않았으나 여자는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었다(46절). 당시의 관습에 비추어 볼 때 시몬이 예수님을 그렇게 무례하게 대한 것은 아니지만, 여자의 환대와 크게 비교된다. 발을 머리카락으로 씻은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으로 낮아져서 예수님을 섬기는 마음을 반영한다.
 
36~39절과 본문이 묘사한 여자의 모습은 겸손과 헌신이다. 40~43절과 47~50절에 따르면 많은 죄를 용서받은 은혜와 감사가 크기 때문에 여자는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기까지 사랑을 표현한다. 여자의 행위는 엄청난 비용을 지불한 것이므로 칭찬받는다. 신자는 예수님을 단지 존경과 예의로 대하는 사람이 아니다. 바리새인 시몬처럼 자신의 명예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예수를 환대하는 사람이 아니다. 많은 죄를 용서하시고 새로운 신분을 부여하신 은혜에 최고의 것을 드려 감사하는 사람이다. 여자의 헌신은 신자로 하여금 최고의 것을 주신 주님께 최고의 것을 드리는 삶을 살도록 도전한다.
 
 
 
4. 많은 죄가 사해졌기에 많이 사랑한다(47~50절)
예수님은 여자의 죄가 많기 때문에 큰 사랑을 보여준 것이라고 시몬을 향해 말씀하신다(47a절). 반면 죄 사함을 적게 받은 자는 적게 사랑한다(47b절). 빚을 탕감받은 두 사람의 비유에서 각각 “은혜로” 빚을 탕감받은 것처럼 여자의 죄도 은혜로 사해졌다. “그녀의 많은 죄들이 용서받았다”에서 “용서받았다”는 수동태 완료형이다. 여자의 죄는 예수님의 의해 이미 용서받았다. 죄를 사함받은 감사와 은혜 때문에 크게 사랑했다. 본문은 그녀가 어떤 죄를, 언제 용서받았는지 말해주지는 않는다. 중요한 사실은 그녀의 사랑은 이미 얻은 용서와 구원에 대한 반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여자의 죄 사함에 대해 시몬에게 말씀하신 예수님은 이제 여자를 향해 “네 죄들이 사함 받았다(48절)”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여자는 자신의 죄를 용서받은 사실을 알기에 사랑을 표현했는데, 왜 예수님은 죄 용서를 언급하시는가? 이는 여자의 죄를 용서한 주체가 예수님 자신인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자 함께 앉아 있던 손님들이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라고 마음속으로 말한다(49절).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라고 여자에게 말씀하신다(50절). “구원했다(세소켄)”는 완료형 동사다. 이미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사랑의 행위가 나온 것이다. 그들의 생각을 꿰뚫고 계시는 예수님은 모두가 듣도록 여자의 구원을 거듭 강조하신다. 여자는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권위를 믿었기에 구원을 얻었다.
 
구원은 죄 용서의 다른 표현이다. 만찬에 모인 사람들은 여자의 신분을 죄 많은 여자에서 구원 얻은 하나님의 딸로 인식해야 한다. 여자 자신도 반전된 자신의 신분을 확신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는 예수님이 여자가 용서받아 거룩한 자로서 공동체의 일원이 되도록 배려하신 것을 의미한다.
 
본문은 시몬의 반응을 언급하지 않고 열린 상태로 마친다. 시몬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수용하고 여자의 변화된 신분을 인정했을까? 알 수 없다. 그런데 생각해 보아야 한다. 죄를 많이 지은 것으로 지역 사회에 널리 알려진 여자가 있다고 치자.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이제까지 공익에 도움이 되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는 뜻이다. 큰 빚을 졌을 수도 있고 성적인 문제를 일으켰을 수도 있다. 그런 여자가 체면과 명예의 질서에 들어와서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표하는 모습은 공동체를 충분히 당혹스럽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교회는 용서받은 죄인을 가족으로 환대해야 하는 공동체다. “평안히 가라”는 인사를 하신 예수님처럼 용서받은 상태를 인정하고 교제의 인사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우리 공동체는 이렇게 할 수 있는가?
 
 
 
나는?
-바리새인 시몬의 꿍꿍이가 뭔지 의심스럽다. 그는 예수님을 초청해놓고도 홀대했다. 명예와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권에서 이는 명백한 하대다. 동네 주민들을 의식하여 자신의 체면 때문에 예수님을 초청하기는 했지만, 그를 친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님을 동료들에게 분명히 하기 위한 일종의 “거리두기”다. 내게 이롭고 또 내가 불편하지 않을 만큼만 주님을 대접하는 “편의적이고 편리한 사랑”이다. 그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몰랐기에 진정한 잔치가 식탁에서가 아닌 죄인인 여인이 눈물로 씻고 향유를 붓는 예수님의 발 아래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그는 애곡하여도 울지 않고 피리를 불어도 웃지 않는 이 시대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는 마치 길가에 떨어진 씨앗 같은 사람이다.
 
-바리새인 시몬의 편리하고 형식적인 환대와 달리 죄인인 여인의 환대는 진심이었고, 최선이었다. 여인의 헌신은 용서받은 사랑에 대한 감사에서 나왔다. 아마 이것이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아니었을테고, 언젠가 여인은 예수님에게서 이미 용서를 경험했을 것이다.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와 냉대받는 예수님을 향한 슬픔이 교차되어 그토록 담대히 사람 숲을 헤치고 예수님 발 앞까지 나아와 눈물과 향유로 극진히 대접한 것이다. 용서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사랑받을 기회를 잃어버린 시몬의 형식적인 환대(냉대)와 선명하게 대조된다.
 
-가장 소중한 향유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을 대접할 만큼 그녀에게 예수님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였다. 그는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고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 지혜로운 사람과 같은 존재다.
 
-예수님은 자기 머리에 향유를 붓는 여인이 죄인인 줄 알면서도 그 여인의 헌신적인 사랑을 받아들이셨다. 또 위험을 자초하는 일인데도 여인의 죄사함을 공개적으로 선포하심으로 여인의 깨어진 사회적 관계까지 회복해주셨다. 예수님은 여인의 편에 서심으로 잃을 수 있는 모든 것과 시몬의 편에 서심으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알고 계셨으나 희생적이고 과감한 여인의 사랑을 인정하심으로 자신도 위험에 처하기로 결정하셨다.
 
-용서받은 자에게서는 사랑과 감사가 피어난다. 여인의 눈물에는 하나님 은혜의 증거가 담겨 있다. 그러나 시몬의 시선은 자기 의에 갇혀 은혜를 보지 못하는 어둠 속에 머물러 있다. 혹시 다른 이들의 죄만 바라보면서 종교 생활을 방패 삼아 진리의 빛을 가리고 있지는 않은가?
 
 
 
*주님,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나의 명예와 체면에 따른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에 대한 진실한 고백과 반응에서 나오는 삶을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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