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8:1-15 하나님 나라 비유_네 종류의 토양
본문은 네 종류의 땅에 대한 비유와 해설로 구성된다. 비유는 듣는 태도를 강조하며 하나님 나라가 예수님의 사역으로 시작됐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두 가지 반응에 따라 열매가 결정된다고 말해준다. 본문의 비유는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이 낭비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달은 좋은 땅과 같은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성장하는 사실을 알린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다니엘서를 배경으로 한다. 다니엘 2, 4, 9장에는 꿈, 글, 예언, 환상을 통해 계시가 주어지는데, 다니엘은 하나님 나라가 말세에 세워질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다(단 2:36~45). 다니엘은 계시를 부분적으로 알 수 있으나 완전히 알 수는 없었다. 특히 2장에서 영원히 존속할 나라에 대한 계시를 듣는다(2:28, 44). “…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이라.” 이 나라에 대한 비밀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선포와 행위를 통해 제자들에게 계시된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기대한 모습이 아니라는 이유로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인정하지 않는다.
1. 예수님과 함께한 사람들(1~3절)
1~3절은 누가복음에만 등장하고 8장의 표제 역할을 한다. 예수님은 도시와 마을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전하셨고, 제자들이 함께 한다. 하나님 나라 복음의 목격자들인 열두 제자는 사도로 부름받은(6:13) 이후 예수님과 함께했고(6:17), 8장에서는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일 것이다. 본문에서 중요한 표현은 “그와 함께”와 “섬김”이다. 1절은 “열두 제자, 또한 어떤 여자들도 그와 함께했다.” 즉, 남자 제자들 뿐 아니라 여자 제자들도 예수와 함께했으며, 이어 나오는 내용은 예수님과 함께하는 여자들의 신분과 섬김에 대한 부연 설명이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것은 제자도의 핵심이다. 제자는 예수님이 선포하고 전하신 하나님 나라의 목격자와 증인이다.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 함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해지고 확장되는 것을 먼저 목격하고 경험해야 한다. 목격해야 증언할 수 있고 경험해야 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은 처음부터 여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예수님은 귀신과 병에서 이들을 치유하셨다. 세 명의 대표적인 여자들(막달라 마리아, 수산나, 요안나)이 소개된다. 일곱 귀신에서 해방된 막달라 출신의 마리아는 십자가와 빈 무덤의 증인이 될 것이다(24:10). 요안나는 헤롯의 청지기를 남편으로 두어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었고, 역시 빈 무덤의 증인이다. 이 두 여인의 배경만 보아도 예수님의 공동체가 다양한 계층을 포괄했음을 보여준다. 여인들은 제자 공동체를 섬기는 역할을 맡았다. “그들의 소유로” 공동체를 섬긴 것은 재정을 사용한 섬김을 의미한다. 여인들의 섬김은 의무가 아니라 귀신에서 해방된 은혜에 대한 감사의 반응이었다. 여인들은 앞 단락에서 예수님이 언급한 비유처럼 빚을 많이 탕감받아 예수님을 크게 사랑하는 예다(7:41~47).
하나님 나라 복음은 이처럼 은혜 입은 자들의 섬김을 통해 확장된다(행 4:32). 또한 이어지는 씨뿌리는 비유와 연결해 보면 이 여인들은 이생의 염려와 재물에 영혼을 뺏겨 순종하지 못한 부류와 달리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결실하는 사람들이다(8:14~15). 재물로 사랑을 실천하는 제자의 모본이기도 하다.
2. 네 종류의 토양에 대한 비유(4~15절)
4~8절의 비유와 9~15절의 해설로 구성된 단락이다. 이 비유는 예수님이 선포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을 설명하는 의도로 주어졌다. 도시의 많은 사람들이 왔을 때 예수님은 씨가 뿌려진 땅에 대한 비유를 전하신다. 비유에서 씨가 뿌려진 위치를 정확하게 표현하는데, “옆에(파라)”, “위에(에피)”, “가운데(엔 메소)”, “안으로(에이스)” 떨어진다. 어떤 씨는 밭두렁(길)에 떨어졌다. 두렁은 다른 밭과 구분 짓는 기능을 하고 밭 가운데도 생길 수 있었다.
길옆에 떨어진 씨는 사람들에게 밟혔고 새들이 먹어버렸다. 어떤 씨는 돌투성이 땅 위에 떨어졌다. 팔레스타인의 많은 땅은 석회석 위에 흙이 덮인 상태였기 때문에 흙이 깊지 않은 돌투성이 땅에 떨어진 씨는 물기에 빨리 반응해서 싹이 곧 돋기는 했으나 태양이 떠오르면 수분을 충분히 흡수하지 못한 채 말라버렸다. 어떤 씨는 가시덤불 가운데 떨어졌다. 가시덤불은 밭의 경계를 표시하거나 짐승을 막는 용도였을 수도 있고, 지난해의 가시덤불이 밭에 마른 상태로 남아 있던 것일 수도 있다. 세 번째 씨앗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씨앗과 달리 어느 정도 자랐다. 하지만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씨의 숨을 막아버렸다. 세 종류의 땅 어느 곳에서도 열매가 맺히지 않았다. 가장 깊이 심긴 씨는 좋은 땅 “안으로”들어갔고 백배의 결실을 맺었다. 씨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네 종류의 토질에 따라 열매가 맺히는 여부가 달라진다.
제자들이 이 비유의 뜻을 묻자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제자들에게 허락됐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유로 전해졌다고 대답하신다(9~10절). 10절은 이사야 6:9의 인용이다. ‘비밀(뮈스테리온)’은 이제까지 드러나지 않은 신비적인 내용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담고 있으며, 계시자 또는 묵시자의 도움을 통해 알려질 수 있다(단 2:27~28). “주어졌다(데도타이)”는 신적 수동태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인간적인 노력이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로 제자들에게 주어진 것을 의미한다.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의 부르심에 반응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함”으로써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해할 수 있는 은혜를 얻는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비유로 말씀하신다.
하나님 나라는 계시되고 동시에 감춰지는데,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계시할 목적으로 주어진 수단이지만 감추는 기능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의 관심을 충족시켜주지 않으므로 비유를 듣고도 떠난다. 비유에 대한 무관심이 예수님에 대한 무관심으로 드러난다.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말씀에 순종하지도 않는다. 결국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닫지 못한다. 이와같이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반응하지 않고 심판의 길을 선택해 버린 상황을 이사야 6:9을 인용함으로 설명하신다.
10~15절은 비유에 대한 해설이다. 예수님은 비유를 모든 사람이 말씀을 듣지만 모든 사람이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해석하신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다(11절). 씨가 밭두렁에 떨어진 비유에서, 이들은 말씀을 들었으나 마귀가 가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도록 마음에서 말씀을 빼앗는다(12절). 청중은 종교지도자들의 가르침과 다르고 예수님의 말씀이 자신들이 추구하는 것을 충족시켜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관심으로 예수님을 대한다. 말씀에 관심을 두고 순종하지 않으면 듣지 않은 것과 같다. 씨가 돌투성이에 떨어진 비유는 사람들이 기쁨으로 말씀을 받았지만, 뿌리가 없어 짧은 기간 믿어도 시련을 견디지 못해 배반한다(13절).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뻐하더라도 시련을 견디지 못하는 모습은 말씀이 심기지 않았음을 입증한다. 씨가 가시덤불에 떨어진 비유에서 이들은 말씀을 들었으나 지내던 중에 생명의 염려와 부와 즐거움에 막혀 결실하지 못한다(14절). 세상의 욕망을 추구하고 부에 마음을 빼앗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심기지 않았음을 드러낼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돈이 그들의 주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씨가 좋은 땅에 떨어진 비유에서 이들은 말씀을 들을 때 좋고 선한 마음으로 간직하고 인내로 결실한다(15절).
네 종류의 토질에 대한 비유는 두 종류의 땅, 곧 열매 맺지 못하는 땅과 열매 맺는 땅을 소개한다. 세 종류의 땅에 뿌려진 씨가 열매를 맺지 못하므로 씨 뿌리는 작업이 헛된 수고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좋은 땅을 통해 열매는 반드시 맺힌다. 사람들의 반대와 배척과 무관심 때문에 예수님의 희생과 제자들의 순종과 섬김이 낭비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 복음은 좋은 땅과 같이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을 통해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다.
본문의 비유는 듣는 태도를 강조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은 사람은 회개하고 순종함으로 말씀에 반응한다. 삶의 결실이 순종의 여부를 판단한다.
나는?
-여인들의 섬김이 귀하다. 예수님이 방문하시는 곳마다, 복음을 선포하실 때마다, 구원과 치유와 해방의 역사가 일어났다. 그분 자신이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이다. 창조의 권세이며 어둠을 사르는 빛이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따른 것은 아니었다. 예수님 곁에는 열두 제자들과 함께 이 축귀와 치유의 역사로 회복된 막달라 마리아를 포함하여 몇몇 여인들이 자신의 소유로 예수 일행을 섬겼다. 그들은 세상이 주목하지 않는 사람들이지만, 천국의 씨를 순전하게 받은 좋은 땅이다.
-예수님이 세우신 하나님 나라가 이방인, 죄인, 세리, 여인 등 그 사회에서는 외면당했지만 믿음으로 말씀을 받는 자들로 구성된, 전혀 새로운 공동체임을 보여준다. 세상의 어떤 차별과 비교의 기준도 허용하지 않고, 오직 믿음만 요구하는 곳이 하나님 나라다. 이들이야말로 복음을 온전히 받아들인 좋은 땅과 같은 자들이다.
-하나님 말씀의 씨앗에 대한 여러 반응들이 나온다. 길가에 떨어진 씨는 하나님 말씀보다 마귀의 말을 더 신뢰하여 결실하지 못하고, 바위 위에 떨어진 씨는 시련 앞에서 주님을 배반하여 결실하지 못하고, 가시떨기 속에 떨어진 씨앗은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젖어 사느라 결실하지 못하고 죽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떤 상황에서 선포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며, 더 나아가 하나님 나라는 세상 나라와 당분간 공존하지만 두 나라를 동시에 섬길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게 보여준다.
-길가에 떨어진 씨는 세상으로 꽉찬 마음이다. 말씀을 마음으로 믿어야 구원을 얻지만, 세상으로 꽉 찬 마음때문에 전혀 준비 없이 건성으로 듣는 말씀은 고스란히 밟히고 빼앗기고 만다. 기쁨으로 말씀을 받더라도 뿌리가 깊지 못하면 마귀가 시험할 때 말씀을 배반할 수 있다. 또 말씀을 듣고 배우기를 즐겨하지만, 그 말씀을 묵상하고 실천하여 말씀이 내 인격이 되고, 말씀의 하나님이 내 삶의 실제 주인이 되지 못하면, 시련이 닥칠 때 돌아서고 만다. 말씀을 따라 살다가 세상이 주는 염려와 물질의 유혹에 넘어가 열매 맺는 삶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시들어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사탄은 사람들의 욕망을 적극 이용하여 말씀에 무관심하게 만든다.
-한편 숱한 반대와 시련과 유혹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믿고 실천하는 착하고 좋은 마음이 있다. 그들 속에는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주님께서 왕노릇하셔서 그들이 인내할 수 있게 도와주시고, 때가 되어 그들의 삶에, 성품에, 사역에 열매를 맺게 하신다. 성령의 열매가 맺히고 빛의 열매가 맺힐 것이다. 그리스도의 성품이 되어가고, 그리스도의 나라가 서게 하실 것이다.
-착하고 좋은 마음, 즉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려는 마음으로 말씀을 들을 뿐 아니라 그 말씀을 빼앗기지 않도록 굳게 붙잡고, 시험과 유혹의 때를 잘 인내한 사람만이 많은 열매를 맺고 구원에 이른다. 광야의 예수님처럼 들은 말씀을 묵상하고 되새기며 그 말씀으로 유혹을 이겨 구원의 열매를 맺어가야 한다.
*주님, 좋은 땅 “가운데” 뿌려진 씨가 백배의 결실이 맺히는 것을 봅니다. 늘 말씀을 받을 때 나의 마음 “가운데”로 받아 말씀대로 생각하고 살아내겠습니다.
*주님, 은혜받고 치유되어 자원하여 주님의 공동체를 섬기는 여인들이 귀합니다. 윌 공동체에도 이 여인들과 같은 귀한 손길을 보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공동체를 위해 주님의 은혜를 따라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자원하는 영혼들을 세워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