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제자의 삶 _ 말씀을 주의 깊게 듣고 순종하여 지키는 삶 [눅 8:16-25]
 – 2025년 03월 02일
– 2025년 03월 02일 –
눅 8:16-25 제자의 삶 _ 말씀을 주의 깊게 듣고 순종하여 지키는 삶
 
얼핏 보면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세 이야기가 한 주제로 연결된다. 구원의 열매를 위해 앞 단락에서 강조되던(8:15)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삶’이 이번 세 단락(8:16~25)에서도 강조된다. 하나님이 주시는 계시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듣고(8:18), 실천하고(8:21)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움 없이 믿음을 지켜야 한다(8:25).
 
예수님이 전하시는 하나님 나라는 비밀이면서 계시이다. 얼핏 비밀과 계시가 반대 개념이기 때문에 모순되어 보인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 비밀과 계시는 예수님이 사역에서 역설적으로 동시에 일어난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그 나라는 계시이고 불신자들에게 그 나라는 비밀이 된다.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는 풍성한 은혜를 가져다주는 은혜의 계시이다. 그러나 마음이 둔하여 예수님을 배척하는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는 심판을 가져다주는 감춰진 비밀이다.
 
 
 
1. 말씀을 듣는 것의 중요성(16~18절)
등불은 빛을 비추기 위함이다(16절). 등불은 감추거나 숨기기 위한 것이 아니다. 등불을 등경 위에 걸어놓는 것은 그 집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잘 보게 하기 위함이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도 이와같다. 예수님의 말씀은 계시가 목적이지 비밀이 목적이 아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 복음을 사람들에게 나타내셔서 그들로 그 복음의 빛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잘 들어오게 하신다. 예수님 자신이 빛이 되셔서 예수님을 믿을 때 사람들은 그 빛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들어온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 예수님의 인도를 받아 들어가면 된다.
 
또한 이 등불의 빛은 그 계시의 정도가 더 밝고 더 분명할 것이다(17절). 이 빛 때문에 숨은 것이 밝히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을 것이다. 이 문장은 미래시제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예수님과 제자들에 의해 더욱 더 분명하게 나타날 것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핑계하지 못할 것이다. 신자와 불신자에게 모두 밝히 드러난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아무도 말씀을 듣지 못했다고 변명하지 못한다. 하지만 불신자에게 이 말씀은 여전히 비밀이다. 그들의 닫힌 마음 때문에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 말씀을 밝히 드러내지만, 사람들의 태도에 따라 그 복음은 계시가 되기도 하고 비밀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 복음은 어떻게 듣는지가 중요하다(18절). 만약 밝히 드러난 하나님 나라 말씀을 주의 깊게 듣고 믿음으로 결실하면 더 풍성한 복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전혀 반응하지 않으면, 가졌다고 착각한 것마저 송두리째 잃을 것이다. 이는 8:15과 8:21이 연결됨으로 확인된다.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끝까지 붙들고 인내하는 사람은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8:15). 그러나 아무리 육신적으로 예수님과 가까울지라도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반응하지 않으면, 진정한 하나님 나라 가족이 될 수 없다(8:21). 따라서 어떻게 하나님 나라 복음의 말씀을 듣는가가 중요하다. 진정한 “들음”은 말씀을 들을 뿐 아니라 인내로 그 말씀을 끝까지 지키고 실천하는 것을 포괄한다.
 
 
 
2.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것의 중요성(19~21절)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예수님을 찾아왔다(19절). “동생들”은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형제들”이다. 마가는 그들이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이라고 말한다(막 6:3). 누가는 왜 예수님의 가족들이 예수님을 찾아왔는지에 대해 침묵한다. 다만 예수님의 부정적 반응에 비춰 봐서(21절) 아마도 좋은 의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다른 복음서는 예수님의 가족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심지어 미쳤다고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막 3:21; 요 7:5). 특히 마가는 예수님 가족의 부정적 반응 다음에 본문처럼 예수님을 찾아 왔음을 밝힌다(막 3:31). 예수님의 동생들은 예수님의 메시아되심을 믿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예수님이 계신 곳에 왔지만, 주위에 가득한 무리들 때문에 예수님께 가까이 갈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예수님께 그의 가족이 왔음을 알렸다(20절). 예수님의 가족이 밖에 서 있다고 서술한다. 누가는 시각적으로 묘사하였으나 그들의 영적인 상태로 읽힌다. 예수님의 가족은 예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고 밖에 서 있는데, 그만큼 예수님과 영적으로 떨어져 있음을 암시하는듯 하다. 마가도 이런 상징을 더 뚜렷하게 표현했다. 예수님의 가족은 밖에 서있고(막 3:31),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는 예수님을 둘러앉았다(막 3:22).
 
예수님은 육신의 가족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도 영접하지 않으신다. 그 대신 새로운 하나님 나라 가족을 선포하신다(21절). 예수님은 “그의 육신의 가족”과 “그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들”을 나누신다. 그리고서 육신의 가족이 자신의 가족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들이 가족이라 하신다. 실제로 누가는 예수님은 제자들이 서로에게 형제가 된다고 하신다(6:41~42; 17:3; 22:32).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육신의 형제는 버려야 할 대상으로 말씀하신다(14:26; 18:29). 사도행전에서 베드로는 마침내 그의 동역자들을 향하여 “형제”라 부른다(행 1:15~16).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통해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가족이 된다.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 가족의 형제들이 된다.
 
 
 
3.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믿음의 중요성(22~25절)
“하루는(22절)”이라는 표현을 통해 이 단락이 앞 단락과 시간적으로 바로 이어지는 사건은 아니지만, 일관적인 주제로 앞 단락과 연결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호수 건너편으로 가시기 위해 배를 이용하신다. 이동 중에 예수님은 깊이 잠드신다(23절). 광풍이 몰아치고 배에 물이 찰 정도로 위급한 상황인데도 주무셨다고 하니 몹시 피곤하셨던것 같다. 마가는 예수님이 고물(선미)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셨다고(막 4:38) 기록한다.
 
다급한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운다(24절).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었지만 두렵고 불안한 마음에 다급하게 예수님을 깨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이에 예수님은 일어나셔서 바람과 물결을 꾸짖어 잔잔하게 하셨다. 예수님의 이런 모습을 축귀 사역과 연관시키는 해석도 있다. 광풍 뒤에 마귀가 역사하였고, 고기잡이에 익숙한 제자들도 광풍에 몹시 놀랐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예수님은 마귀를 꾸짖듯이 풍랑을 꾸짖으셨다고 말한다(4:35; 9:42).
 
그러나 책망하시는 예수님의 이러한 모습은 마귀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사람도 책망하셨다(9:21, 55; 18:15). 본문의 초점은 자연을 다스리시는 예수님의 신적인 능력과 정체성에 있다는 것을 놓치면 안 된다.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25a절)”라는 예수님의 질문은 제자들의 부족한 믿음을 책망하면서 동시에 인내를 촉구하는 표현이다. 제자들은 앞서 예수님의 육신의 가족들 앞에서 하나님 나라 가족이라고 칭찬받던 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외부의 시련을 이기기에 충분한 믿음을 갖고 있지 못했다. 따라서 예수님은 외부에서 시련이 올 때 인내를 가지고 믿음을 지키라고 권면하신다(8:15). 어려운 시련이 오더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주님이 모든 자연까지 다스리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이는 동시에 누가복음을 읽는 독자들을 향한 권면의 말씀이기도 하다. 신앙생활의 어려움 속에서 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인내로 믿음을 지키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바람과 물결을 꾸짖어 잔잔하게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 제자들은 두려워하고 놀랐다(25b절). “두려움”과 “놀람”은 누가복음에서 신적 현현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놀라운 능력으로 자신을 계시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에 제자들은 아직도 예수님에 대한 온전한 이해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도 암시한다.
 
 
 
나는?
-하나님 나라 비밀을 알고(8:10), 그것을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듣고 굳게 붙잡고 인내하는 제자들(8:15)은 무지하고 어둔 세상을 밝히는 하나님의 등불과 같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선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험과 박해가 있더라도(8:13, 14) 적극적인 순종으로 살아내고 결실할 때, 그 말씀이 다른 이에게 빛이 되며 하나님 나라의 비밀도 전해진다.
 
-알고만 있으면 결국 다 빼앗기겠지만, 선포하고 실천할 때 더 풍성해질 것이다. 숙제하듯 묵상하기보다 마음을 바꾸고 습관을 바꾸고 삶의 방식을 바꾸는 실천을 통해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 나라를 누려야 한다.
 
-제자들은 빛이다. 빛이 어둠과 타협하는 법은 없다. 빛이 평상 아래 스스로 자신을 감추지 않는 한그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 법은 없다. 등경 위에 있는데도 빛이 나지 않는 것은 빛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빛 앞에서 숨을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제자는 그 빛이 비추는 자신의 모습을 인정할 뿐 아니라 빛이신 주께 나아와 빛이 되어야 한다. 세상의 숱한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 나라 이야기를 어떻게 들어야 할까? 스스로 삼가라는 말씀을 새기고 말씀의 빛 앞에 서야 한다. 말씀의 빛이 나를 통과하여 일상에서 드러나야 한다. 아니 드러나 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찾아왔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냉정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 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라고 가족을 새롭게 정의하신다. 육신의 가족을 외면하는 것도, 거부한 것도 아니다. 다만 제자는 그 관계에 연연하지 않는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들이 주님의 참 가족이라고 하신다(11:27, 28). 혈연 가족 공동체를 유난히 중시했던 당시 유대 사회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선언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하나님의 능력이기에, “말씀 순종”이 없는 가족이나 공동체의 일과 교제에서는, 우리를 하나로 묶으시는 주님은 소외되고 인간적인 유대감만 남게 될 뿐이다. 하늘의 가족은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는 자가 아니라, 말씀으로 하나님 나라 가치관에 함께 참여한 사람들로만 구성된다.
 
-예수님은 바람과 물결을 잔잔케 하심으로 말씀의 능력을 보이시고 제자들에게는 믿음을 요구하신다. 특히 주님은 가버나움의 귀신을 “꾸짖고”, “명하듯”(4:35, 36) 바람과 물결을 “꾸짖고” “명하여” 잔잔케 하심으로써 다시 한 번 자신이 자연만이 아니라 어둠(혼돈)의 권세를 이기고 하나님 나라를 가져오신 분임을 보여주셨다. 그러나 바다와 물결은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는데, 정작 제자들은 말씀 자체이신 주님과 함께 하면서도 두려워하고 불안해 했다. 주께 대한 온전한 앎이 제자들의 온전한 믿음의 전제 조건인 것을 보여준다.  
 
-너희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 라고 물으시는 주님의 음성이 생생하다. 제자들에게 믿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지난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예수님께서 행하신 무수한 사건들을 직접 목격했다. 그런 제자들에게 이런 물음을 왜 하셨을까? 어부들도 있었던 제자들이 죽음의 공포까지 느낄 정도의 바람과 물결을 말씀으로 꾸짖으시며 잠잠케 하신 예수님을 어리둥절하게 바라보는 제자들을 향해 던지신 이 묵직한 질문이 오늘 묵상의 백미다.
 
-예수님의 제자들이니 믿음 좋은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기에 주님의 물음이 더 충격이다. 폭풍 속에서 감취져 있던 제자들의 믿음의 실체가 낱낱이 드러나 버렸다. 평안할 때 감춰져 있던 믿음의 민낯이 거센 바람 앞에 여지없이 드러나고 말았다. 제자들이나 나나 폭풍 앞에서는 여지없이 믿음의 수준이 드러나고 만다. 믿음의 민낯이 드러나고 직시할 때 그때가 진정한 믿음의 출발점이다.
 
-오랜 시간동안 주님을 따라 다니며 많은 주님의 말씀과 역사와 이적들을 듣고 보고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자들은 주님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믿음 또한 여전히 부족함 가운데 있다. 광풍은 주님의 통치와 꾸짖음에 잠잠해 지는데 오히려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과 역사를 듣고 보고도 두려워하고 놀라며 믿음으로 고백하지 않는다. 빛 되신 주님의 말씀과 참된 가족과 순종에 대한 모든 부분에서 여전히 부족한 믿음 위에 있음을 보여주면서 역설적으로 예수님께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주고 있다.
 
 
 
*주님, 그리스도의 빛이 나를 통해 더욱 밝게 투과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하늘 가족 공동체는 말씀을 듣고 행하는 공동체여야 함을 굳게 다짐해봅니다.
*주님, 광풍이 파도를 일게 하는 세상 속에서 평안히 함께 하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흔들리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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