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영광만 보지 말고 그의 말을 들으라 [눅 9:28-36]
 – 2025년 03월 07일
– 2025년 03월 07일 –
눅 9:28~36 영광만 보지 말고 그의 말을 들으라
 
제자들에게 수난에 대해서 예고하신 후에 제자도를 가르치신 예수님은 제자들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볼 사람이 있다고 언급하신다. 문맥에서는 이것은 분명히 변화산 사건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누가는 예수님의 변화산 사건을 구약의 그림언어들을 배경으로 설명해 나간다. 또, 변화산 사건은 기도(18, 28~29절)와 영광(26, 31~32절)의 용어로 앞 단락(9:18~27)과 연결되고 그리스도의 정체에 대한 내용을 이어간다. 앞 단락에서는 예수님이 자신의 운명을 고난받는 그리스도로 가르쳤다면, 본 단락에서는 하늘의 방문자들(모세와 엘리야)과 구름 속에서 들린 하나님의 소리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입증한다.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변보되는 모습은 구약을 배경으로 읽어야 한다. 유대인들의 종말론적인 문맥 속에서 역사의 마지막에 등장할 것이라고 기대되었던 모세와 엘리야가 변화산에서 등장한 것은 구약이 이야기했던 하나님 나라의 통치라는 종말론적 사건의 성취와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또한 하늘로부터 들린 음성은 신명기 18:15의 말씀을 반향하는데 이러한 음성이 제자들에게 들렸다고 하는 것은 특별히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 음성을 들은 제자들은 비록 예수님의 말씀이 자신의 뜻이나 기대와 다르다 하더라도 이제부터 예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분의 뜻에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1. 세 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신 예수님(28절).
“이 말씀”은 앞 단락 전체를 가리키는 것일 수 있으나 보다 구체적으로는 9:27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27절에서는 예수님은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신약성경의 난해 구절 중 하나여서 이 말씀이 종종 재림을 언급하는 것으로 이해되었지만, 그렇게 이해되었을 때 청중 누군가는 죽기 전에 이 일을 경험해야 하기에 적절한 해석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래서 최근에는 본 단락의 변화산 사건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제자들을 데리고 변화산으로 가신 것에서 변화산 사건과 하나님 나라 사이에 일종의 분명한 암시가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변화산 사건만을 하나님의 나라의 권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이미 예수님의 생애, 가르침, 변화산 사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등을 포괄적으로 언급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누가는 예수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따로 데리고 변화산에 오르셨다고 기록한다. 여기서 변화산이 어디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전통적으로 다볼산으로 제시되었으나, 헐몬산이나 메론산일 가능성도 있다. 예수님이 제자들 세 명을 데리고 변화산의 경험을 하게 하셨다는 것은 이들이 예수님과 특별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러한 특별한 관계가 나중에 9:46에 등장하는 것처럼 누가 더 큰 자인가에 대한 논쟁으로 발전했을 수도 있다.
 
 
 
2. 변모되신 예수님과 엘리야와 모세의 등장(29~30절)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와 변화산 사건의 연관성은 분명하게 존재한다. 예수님의 변모에 관한 누가의 서술은 출애굽기 24장에 등장하는 모세의 모습과 사뭇 유사하다. 이러한 배경에서 이해한다면, 누가는 예수께서 번모되셔서 광채가 나는 모습을 띠게 된 것을 마치 모세의 시내산 배경 속에서 제시하는 듯 하다. 실제로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에게 모세가 시내산에서 변형된 이야기는 매우 유명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서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한 것을 후일 유대문헌 전승에서는 모세의 대관식으로 이해했다. 이러한 전승에 익숙한 당시 유대인 독자들은 예수께서 변모하신 것을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등극하시는 것의 선취로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변화산 기사가 종말론적 성취의 관점과 연결되어있다는 사실은 엘리야와 모세가 등장해서 예수님과 더불어 말씀하셨다는 것에 의해서 지원된다. 신명기 18:15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나(모세)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라는 언급이 등장한다. 이 본문에 근거하여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통치하실 때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일으키실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변화산 사건에서 종말론적인 기대 속에 등장하는 모세가 등장했다고 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말라기 선지자는 4:5에서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보낼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종말론적인 문맥 속에서 역사의 마지막에 등장할 것이라 기대되었던 모세와 엘리야가 변화산 문맥에서 등장했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변화산 사건이 구약이 이야기했던 하나님 나라의 통치라는 종말론적 사건의 성취와 연관되어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3. 예루살렘에서 성취될 “떠남(별세_엑소더스)”(31절)
개역개정은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라고 번역한다. 하지만 이 본문을 직역한다면, “그가 예루살렘에서 성취하실 그의 떠남(엑소더스)을 말했다”라고 할 수 있다. 31절은 이러한 관점에서 예수께서 성취하실 구원을 분명한 출애굽의 언어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미 유월절 절기를 지키면서 출애굽의 구원을 연례적으로 함께 기억했다. 그리고 이것은 메시아를 통해서 이루어질 종말론적 희망의 근거가 되었다. 즉 출애굽의 이야기가 마지막 날들의 구원을 내다보는 근거가 된 것이다. 누가가 예수를 통해서 성취될 구원의 이야기를 출애굽의 그림언어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4. 제자들과 베드로의 반응(32~36절)
32절은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는 졸다가 깼다고 언급된다. 누가의 보도에 따르면 아마도 이들은 예수님과 두 사람의 대화를 듣지 못한 것같이 보인다. 자다 깨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 베드로는 느닷없이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해서 초막을 세 개를 짓겠다고 제안한다. 초막을 짓는 이유는 그들이 그곳에 머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때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린다.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마가와 마태는 “사랑받는 아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반해, 누가는 예수께서 “선택받은 자”라는 사실을 더한다. 이 표현은 앞서 언급된 신명기 18:15의 말씀을 반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일으키실 것인데 이스라엘 백성은 그의 말을 들으라는 권면을 받는다.
 
이런 관점에서 누가는 예수님을 마지막에 일으키실 모세와 같은 선지자로 제시하고 있다. 이런 문맥에서 제자들은 하늘로부터 “저의 말을 들으라”는 음성을 듣게 된 것이다. 이 음성을 들은 제자들은 비록 예수님의 말씀이 자신의 뜻과 기대와는 다르다 하더라도 이제부터 예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분의 뜻에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마태와 마가의 예수님은 산에서 내려오면서 세 명의 제자들에게 이 일에 관해서 침묵할 것을 요구하신다. 그런데 누가는 예수님의 침묵 요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제자들의 침묵에 대해서만 언급한다.
 
 
 
나는?
-기도하시던 예수님의 용모가 영광스럽게 변했다.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사람들이 환호하는 것에 도취하지 않고 묵묵히 십자가의 길에 순종하길 간구하는 아들에게 부활의 영광(눅 24:26)을 미리 경험하게 하셨다. 그래서 담대히 남은 길을 걷도록 격려하셨다. 예수님은 각각 율법과 선지자의 대표인 모세와 엘리야가 예언한 것을 성취하실 분이다(신 18:15~19). 예루살렘에서의 죽음(출애굽)을 통해 자기에게 속한 백성을 새롭게 출애굽시킨 후 새 언약을 통해 새 이스라엘을 세우실 것이다(말 3:1; 4:5). 부활은 마치 변화산의 세 제자들처럼 십자가의 길을 주저하고 이 땅의 편리와 안락만을 추구하려는 우리를 꾸짖으시고 격려하시려고 하나님이 주신 가장 선명한 증거다.
 
-기도 중에 예수님은 영광스런 용모로 변하신다. 죽기 전에 제자들이 볼 것이라고 했던 그 부활의 영광을 미리 경험하게 하심으로써 그의 십자가 행을 하나님께서 격려하시는 것은 아닐까?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를 대표하며 옛 언약의 체결과 새 언약의 전령사로 언급된 모세와 엘리야의 등장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이들을 통해 주신 약속의 성취임을 분명히 해준다.
 
-베드로는 깊이 졸다가 갑작스럽게 눈앞에서 전개된 예수의 변모와 모세와 엘리야의 등장을 경험한다.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 읨도 모른 채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해 초막을 짓겠다고 장담한다. 하나님은 아들의 갈보리산 십자가를 격려하는데, 베드로는 다시 한 번 예수를 변화산에 묶어두려 하고 있다. 베드로는 여전히 현재의 영광만 바라보고 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라는 예수님에 대한 고백을 했지만, 곧바로 죽음을 말씀하시는 주님께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외친다. 변화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말한다.
 
-베드로는 늘 “현재의 영광”만 바라본다. “예루살렘에서의 죽음 이후 더 큰 영광”을 보지 못한다. 지금 이곳에서의 개인의 영광에 마음을 쏟는다.  예루살렘 죽음 이후 온 인류에게 미칠 구원의 영광을 바라보지 못한다. 그러니 “여기가 좋사오니” 눌러 앉고 싶은 것이다. 이 마음이 어찌 베드로만의 마음이겠는가! 나도 역시 현재의 영광에 취하여 미래의 완성될 영광을 바라보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이런 베드로와 제자들을 위해 하나님은 너무나도 세심한 배려를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알아들을 수 있는 음성으로 세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믿기지 않더라도 인자가 고난을 받고 죽어야 한다는 말씀과 제자인 우리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와야 한다는 말씀을 들으라는 뜻이다. 초막 셋을 짓고 안주하겠다는 베드로의 제안을 거절하신 것이다. 주를 위한다고 말하면서도 주의 말을 듣지도 않고 그분이 가시는 길에 동행하지 않는 것은, 전혀 주를 위한 일이 아니며 나를 위한 일일 뿐이다.
 
-하늘은 베드로를 향해 예수가 자기 말 듣도록 설득하지 말고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하신다. 이 땅에서 이스라엘과 유대인만을 위한 영광이 아니라, 모든 시대, 모든 장소, 모든 인류를 위한 영광을 위하여, 우리가 할 일은 메시아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일이다. 그분의 말씀대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 변모하신 영광의 주 예수가 아니라 무기력하게 붙잡혀 수치를 당한 후에 돌아가실 예수님을 본받아야 한다.
 
-지금 예수님 때문에 만족함이 있다 하여 다시 오실 예수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잃어버리면 안된다. 지금 현재의 삶에 혹시 만족하여 장차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놓치면 안 된다.
 
 
 
*주님, 예수님의 본 모습을 잊지 않고, 하늘의 음성을 기억하여 예수님만 따라가겠습니다.
*주님, 베드로와 같은 유혹이 저에게도 있습니다. 현재의 모습에 안주하여 다시 오실 주님의 영광을 잊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 복음에 안주하여 “가서 전파하고 가르쳐 지키기 하라”는 명령을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제가 맛본 하늘의 은혜를 세상속 “그들”에게도 들려주는 사명을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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