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불이 떨어졌다! 다시 거룩한 교회로! [눅 12:49-59]
 – 2025년 03월 19일
– 2025년 03월 19일 –
눅 12:49-59 불이 떨어졌다! 다시 거룩한 교회로!
    
(제자들의 사역에) 경각심을 위해 미래의 심판(46~48절)을 강조하신 예수님은 심판이 재림 이전에 “분리”로 나타날 것을 설명하신다. 예수님은 세상을 심판하러 오셨고 죽음의 세례 이후에 심판으로 인한 분리가 본격화될 것을 예고하신다(49~50절). 그분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구원과 심판을 받는 사람들 간에 분리가 일어날 것이다(51~53절). 심판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구원의 시대를 지금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54~59절).
    
    
    
1. 불을 던지러 왔다(49~50절).
예수님은 앞 단락(46~48절)에서 심판이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46절)” 임할 것을 예고하셨는데, 이제는 “불을 땅에 던지러” 왔다고 선언하신다(49절). 불은 심판과 더불어 정화하는 기능이 있다. 불이 땅에 던져지면 악인들과 의인들 간의 분리가 일어난다(3:16~17). 악인들에게 분리된 의인들은 불로 정화된 자들이다. 정화된 의인들은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에 긍정적인 태도로 반응하고 그를 받아들인 사람들이다. 역설적으로 불이 던져지면 악인들은 심판에 이르고 죄인으로서 예수의 복음을 영접하는 사람들은 정화된다. 하지만 하늘에서 던져진 불이 온 땅을 태우기 시작하는 것과 같은 현상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죽음의 세례(50절)를 통해 땅에 심판이 주어질 것이다. 이는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오”는 심판의 실현을 의미하기보다 심판(을 통한 구원, 정화) 에 대한 소망을 의미한다. 이 심판은 예수님의 죽음(세례)을 통해 실현될 것이며, 예수님께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에게는 정화 곧 구원이 된다.
    
불의 이미지는 50절의 “세례”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3:16)”라고 선포했었다. 불로 세례를 주실 예수님은 먼저 세례를 받으시는데, 이 세례는 예수님의 죽음을 상징한다. 십자가 죽음은 그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을, 그를 받아들이는 자들에게는 구원을 선포하는 두 가지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이미 예수님은 죽음을 목표로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고 있다고 예고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주어진 목적인 죽음을 이루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해 묵묵히 걷고 계신다. 나의 “답답함(쉬네코)”(50절)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사로잡히다, 집중하다”라는 의미가 있다. 이는 목표를 향한 예수님의 의지를 강조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을 알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목표와 뜻에 집중하신다. 왜냐하면 죽음의 세례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목표인 구원의 목적이 성취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구원의 길을 위해 목표 지점인 십자가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시고 목표를 완수하셨듯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십자가의 복음에 집중해야 한다.
    
    
    
2. 분리를 일으키러 왔다(51~53절).
이 구절은 예수님이 가지고 오신 하나님 나라 복음에 대한 태도에 따라 분리가 일어날 것을 설명한다. 예수님은 세상에 평화가 아니라 분리를 위해 왔다고 말씀하신다. 분리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과 거부하는 자들의 분리를 말한다. 믿는 자들은 구원의 선물을 받고, 믿지 않는 자들은 심판을 받는다. 이미 시므온은 마리아에게 아들 예수의 사역으로 이스라엘에 분리가 일어날 그것을 예고했었다(2:34). 시므온 자신은 ‘주의 구원’을 보았고, 예수님을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2:30~32)이라고 말했지만, 예수님을 배척하는 사람들과 자신처럼 구원의 빛을 보게 되는 사람들로 나뉠 것을 예언했다.
    
예수님의 복음에 대한 태도에 따라 심지어 가족도 분리될 것이다(52~53절). 가족은 가장 끈끈한 결속력과 친밀함을 유지하는 공동체다. 가족도 예수님에 대한 태도에 따라 양쪽으로 갈라진다. 예수님은 자신이 가지고 온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점 때문에 생기는 분리를 가장 기본적인 숫자인 다섯(52절)과 셋(53절)으로 강조하신다. 예수님은 세 명과 두 명, 두 명과 세 명이 맞서는 장면을 예로 드신다. 다섯 손가락처럼 다섯 명의 가족 구성원은 결속력을 돋보이게 만든다. 또한 결혼한 자녀를 포함하는 가족의 경우에는 부자, 모녀, 고부가 예수님 때문에 갈등하게 된다. 이처럼 아무리 결속력이 굳건하더라도 예수님에 대한 태도가 같을 수 없어 갈등이 생긴다.
    
분리가 일어나는 사건과 관련하여 52절은 미래시제(분리될 것이다)를 사용한다. 누가복음에서 “이제부터”는 가까운 미래를 포함하고, “세례(50절)”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을 의미하는 점을 고려하면,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 이후에 본격적인 분리가 땅에 일어날 것이다. 물론 예수님의 사역 기간에도 분리는 이미 시작되었다. 당연히 예수님의 복음이 분열을 조장하거나 분쟁을 촉구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평화를 위해 오셨고(1:79; 2:14; 7:50; 8:48), 제자들의 주된 사명도 평화를 전하는 것이다(10:5~6). 그럼에도 평화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만 예수님의 평화가 임한다. 예수님의 평화는 모두가 아니라 믿는 자들만 경험하는 것이므로 양쪽의 분리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 분리의 고통은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이 겪는 삶이다. 그럼에도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십자가에서 죽음(세례)을 통해 주어지는 구원의 선물을 세상에 삶으로 변증함으로써 사람들을 분리의 건너편에 내버려두지 않고 구원의 길로 초대하는 사명에 집중해야 한다.
    
    
    
3. 이 시대를 분간하지 못하느냐(54~59절)?
사람들은 거주하는 지역에서 발생하는 기상 현상에 대한 상식을 알고 있다. 팔레스타인에서 서풍은 지중해 지역에서 습기를 싣고 오기 때문에, 사람들은 구름이 서쪽에서 몰려오면 폭풍우나 소나기가 내릴 것을 예상할 수 있다(54절). 남풍이 불어오면 남쪽에 있는 네게브 사막에서 발생한 뜨거운 열기로 고생할 것을 예상한다(55절). 이처럼 팔레스타인에 사는 사람이라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기상을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가 예수님의 활동을 통해 나타나는 것을 해석하지 못한다. 무리가 해석하지 못하는 원인은 예수님이 “외식하는 자여(위선자들)”라고 표현한 것에 암시된다.
    
기본적으로 위선(외식)은 불일치 또는 부조화를 의미하는 점에서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첫째, 무리는 날씨처럼 예수님의 행위와 말씀으로 임한 나라를 쉽게 분별할 수 있는데도 의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둘째, 무리는 예수님이 가지고 오신 나라를 스스로 해석할 수 있는데도 생각보다 무지하다. 어느 경우든 간에 심판의 책임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있다.
    
예수님은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라며 결단을 촉구하신다(57절). 결단을 위해서도 앞의 경우처럼 상식적인 지식에 대해 언급하신다. 만일 고발을 당하였을 때 재판을 받기 전에 화해를 시도해야 한다(58절). 화해하지 못한 채 소송에서 지게 되면 한 푼도 남김없이 다 갚기 전에는 옥에서 나올 수 없다(59절). 소송에서 패할 것이 예견될 때 먼저 화해를 시도해야 하는 것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판단할 수 있는 상식이다. 하나님은 마지막 심판을 집행하실 재판관이시기에 무리는 형벌에 처하기 전에 하나님과 화해하는 길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지금 하나님과의 화해를 거부하면 영원히 화해할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다.
    
    
    
나는?
-누구나 재판장 되신 하나님 앞에 설 날이 반드시 온다. 그날이 오기 전에 주님은 하나님과 화해할 근거와 기회를 마련해 주셨다. 십자가의 사건과 이를 믿을 것인가의 선택의 문제가 그것이다. 이 판단은 상식적인 이치와 자연현상을 바라보며 날씨를 분간할 수 있을 정도의 감각만 있다면, 누구나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 중에는 이를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영적 무지”에 철저히 가려져 있어 판단하지 못하는 이들이 꽤 될 것이다. 심지어 가족 구성원 중에서도 이에 대한 판단과 결정이 다를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같은 지역, 같은 환경, 같은 교육 수준, 같은 인생사를 거쳤음에도, 이 문제만큼 서로 생각이 다를 것이다.
    
-그래서 불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전에 세상은 분쟁으로 가득할 것이다. 주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분쟁은 늘 있을 것이고, 심지어 이를 반대하는 이들은 주님께 나아가려는 자들에 대한 폭력적인 방법도 불사할 것이다. 세상은 주님이 다시 오시기 전까지 이처럼 더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그럼에도 진리를 분간하고 선택하여 붙잡은 “구원”을 포기하면 안 된다. 주님 다시 오실 때 일어날 “불”은 구원받은 나에게는 “온전히 거룩하게 하는 정화의 불”이기 때문이다. 그때를 위해 오늘 더욱 분간하며 주님 따라 살아가는 것을 분명히 하며 살아가야 한다.
    
*주님이 오신 이유는 모두가 죄와 사망의 길로 이의 없이 내달리는 세상에 그 죽음의 길 말고 생명을 얻는 구원이 길이 있다고 선포하러 오셨다. 다 함께 달려가던 이들에게 혼란이 일어났다. 이제껏 죄와 사망의 길임을 알지 못하고 내달리던 어떤 이들 가운데, 주님으로 인해 구원과 생명의 길을 확신하고 결정할 때, 각각 자기들의 관점과 의견을 가지고 분분히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이런 혼란을 통해 “지극히 상식적이고 이치를 분별할 수 있을 정도”의 지각을 가진 이들이라면 누구나 하나님 나라 복음을 분간 할 수 있고 선택하여 구원받는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이를 거부하는 이들의 강력한 도전은 더욱 혼란을 부추긴다.
    
*진리를 바라보지 못하면 혼란 중에 분쟁이 싫어서, 스스로 구원과 생명의 길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재판장이신 하나님 앞에 설 것이 상식적으로 인지가 된다면, 이 혼란 중에서도 구원의 길을 포기하면 안 된다. 아니, 포기하지 않도록 강력하게 도우시는 주님의 손길로 인해 죄와 사망의 길과 분쟁하는 것이 이어진다. 가족 간에도 이 과정은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주님은 분명하게 가르쳐 주신다. 재판을 준비하는 자가 할 수 있는 모든 화해의 방법을 준비하고 재판장 앞에 서는 것이 상식인 것처럼, 이런 분쟁의 시간 속에 불화가 일어나도 주님을 믿는 믿음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 나라 복음을 따라 사는 길을 벗어나면 안 된다.
    
    
*살라 없어지든지, 정금처럼 단련되게 하든지 이 불이 확실히 지금 교회 가운데 떨어졌다. 더욱 믿음을 지키며 살 것인지, 적당히 적당히 살다 불타 없어지든지… 지금 불이 교회 안에 떨어졌다. 고통스럽고 힘들더라도 정금과 같이 단련되는 불이 되기를 소망한다. 아무런 신앙의 몸부림도 없이 적당히 적당히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안일하게 대처한다면, 그대의 신앙도 안일하게 어느덧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재판장 되신 하나님 앞에 불현듯 서게 될 때, 그때는 심판의 불이 임할 것이다.
    
*지금 우리도 분간하고 선택하는 스스로 결정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가 되어 버렸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신앙의 줏대를 꿋꿋하게 지킬 것인지, 그저 떠밀리는 대로 이리저리 향방 없이 밀려갈 것인지… 불이 떨어졌다! 불이 떨어져 쓸데없는 것들이 불살라질 것이다. 이미 교회 안에 감추어져 있던 거짓들이 드러나 불태워지고 있다. 이에 따라 덮였던 분리들이 자연스레 일어나고 있다.
    
*이런 시대에 주님의 말씀만 붙잡고 이 시대를 분간하여 말씀 따라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지… 지극히 상식적이고 이치적인 판단을 주님께서 허락하신 대로 결정하고 순종하며 살아야지… 괜히 세상 가치 따라, 나의 욕심과 명분을 따라 주님의 뜻을 알면서도 외면하거나 거스르지 말아야지…
    
**불이 떨어졌다! 더욱 정화될 시간이다! 더욱 단련될 시간이다! 회복될 시간이다!
    
    
    
*주님, 지금 우리에게 불이 떨어졌습니다. 하나님 나라 교회가 반듯하게 다시 설 수 있는 시간입니다. 다시 거룩한 교회로 서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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