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큰 잔치 비유 _ 주님의 초청에 반응하여 [눅 14:15-24]
 – 2025년 03월 23일
– 2025년 03월 23일 –
눅 14:15-24 큰 잔치 비유 _ 주님의 초청에 반응하여
    
앞 단락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예수님의 권면을 듣고 있던 식사 자리의 한 사람이 반응에 대하여 대답으로 하신 비유다. 큰 잔치를 배설한 주인의 초청을 받은 자들이 일제히 거절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고 주인은 종에게 급히 주변 가난하고 아프며 장애가 있는 자들을 데려오라고 했으나 여전히 자리는 비었다. 그러자 주인은 도심에서 벗어난 곳에 있는 사람들(마을 공동체에 포함될 수 없었던 사람들) 까지 불러와 자리를 채우라고 명령한다.
    
    
    
1. 식사 초청을 거절당하는 주인(15~20절)
예수님과 함께 식사하던 사람 중 한 명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무릇 하나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15절)”라고 말한다. 그는 초대받은 자와 초대한 자에 대한 교훈을 들었고, 특히 의인들이 부활할 때 얻게 되는 복에 대한 말씀(14절)을 들었다. 그가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종말에 통치하실 나라다. 유대인들은 종말에 하나님이 만찬을 준비하시고 의인들은 조상들과 함께 연회를 즐길 것을 고대했다(사 25:6~9). 이 식사 자리는 바리새인들의 지도자가 초대한 식사였으므로 이 질문자 역시 바리새인이거나 이에 상응하는 지위의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는 14절에 묘사된 종말의 잔치에 참석할 “의인들”에 자신이 포함된다고 확신했을 것이다. 자기뿐 아니라 그곳에 모인 동료들도 하나님 나라에서 빵을 먹을 복된 자들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부활하며 복을 누릴 지위에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누가 하나님 나라의 만찬에 참석할 수 있는지 말씀하시고 질문자와 같이 자기 확신에 가득 찬 사람이 제외될 수 있음을 경고하실 것이다. 이어지는 비유에서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품격 있고 높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유익을 우선시하여 메시아 잔치에 실제로 참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16절부터 비유가 시작된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대했다(16절). “큰 잔치”라는 표현은 잔치의 규모를 가리킬 수도 있지만, 참여하는 이들의 신분이 높다는 의미도 있다. 잔치가 클수록 그의 명성은 크다고 여기는 것이 당시 사회적 통념이었다. 이는 어떤 사람이 초청하는 대상들을 살펴보면 이해가 된다. 그는 사회적 지위가 높았고 자신의 명성에 맞는 수준의 손님들을 초대했다. 이렇게 중요한 잔치였기에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고 초대받은 손님들도 그날 다른 약속을 잡지 않도록 시간을 주었다.
    
대개 초청은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 초청을 알리는 첫 단계와 실제 잔치가 준비되었음을 알리는 두 번째 단계다. 초청하는 사람은 왕처럼 최고의 권력자라면 초청받은 자들은 자신들의 상황을 크게 고려하지 않겠지만, 동등한 지위나 더 높은 지위의 대상을 초청했다면 그들의 일정상 미리 알렸을 것이다. 서로 만반의 준비를 일정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마침내 잔치 준비를 마치고 종들을 보내 식사 준비를 마쳤으니 참석할 것을 요청한다(17절). 하지만 처음에 초대를 수락했던 손님들은 모두 참석할 수 없다고 알린다. 큰 잔치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초대를 받았는데 모두 참석하지 않는 예상 밖의 일이 터지고 말았다. 식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세 개의 변명이 열거된다.
    
한 사람은 밭을 사서 그 밭을 검사해야 한다고 양해를 구한다(18절). 이 사람은 재산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다. 또 한 사람은 소 다섯 겨리를 샀는데 시험해야 한다고 양해를 구한다(19절). 이 사람도 재산이 주된 이유다. 또 한 사람은 결혼했으니 당연히 올 수 없다고 말한다(20절; 신 24:5). 그는 자기가 마련한 결혼식 피로연을 잔치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을 수 있다. 세 사람은 모두 소유와 관련된 일로 변명하며 자신들의 소유 목표와 욕망을 해결하는데 우선권을 둔다. 잔치에 대한 충분한 시간을 주었기에 이들의 변명은 타당한 이유가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개의치 않는다. 약속을 이행하지 않아 자신들의 사회적 명예가 실추되더라도 욕망을 채우는 것이 우선이다. 한편, 초대한 사람으로서는 모두가 초대를 거부한 데서 오는 명예가 손상되었다. 자기 만찬이 우선권에서 밀렸으므로 체면이 구겨진 것이다. 그리고 초대를 무례하게 거절한 세 사람은 자신들의 계획과 욕망을 우선시했다. 본인들의 인생관으로는 지혜롭고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그들도 초대한 사람과 비슷한 수준의 사회적 지위와 부를 갖고 있었으므로 초대자의 권위에 눌릴 이유가 하등에 없었다. 자신들의 유익과 필요에 따라 선택하는 습관 그대로 행동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
    
이런 태도는 결국 메시아의 초대에도 그대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시급한 현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가장 중요한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거절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가치를 외면하고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는 것을 지극히 합리적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태도를 경고하신다.
    
    
    
2. 주변부의 사람들을 초대하는 잔치 주인(21~24절)
종이 돌아와서 상황을 보고하자 주인은 단단히 화가 났다. 명예와 수치의 문화에서 그의 사회적 명예는 수치로 변하고 만다. 더구나 주인은 일부가 아닌 모두가 이런 태도를 보인 것에서 집단적인 저항을 받은 것 같아 수치와 분노로 가득 찼다. 하지만 잔치에 오지 않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보복하지 않는다. 종들에게 당장 시내의 거리와 골목에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리고 오라는 명령을 내린다(21절). 사회적 약자들을 초대하라는 지시였다. 주인은 당시 사회에서 명예도 없고 돈도 없고 소모품 취급을 받는 사람들을 환대한다. 당시 쿰란 공동체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고 식사에 초대받을 수 없는 부류들이었다. 그 정도로 주인이 초대한 세 부류의 사람들과 격이 맞지 않았다. 그런데도 자신의 명예에 상응하는 지위의 사람들을 초대한 방식과 정반대로 명예가 손상되는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대상자를 정한다. 주인의 행동은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13절)”는 예수님의 말씀과 일치한다.
    
주인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종이 아직도 빈자리가 있다고 보고하자 길과 산울타리로 나가서, 즉 동네 사람들뿐 아니라 외부인들도 초대하라고 지시한다(22절). 길과 울타리는 포도원이나 밭을 둘러싸는 역할을 하거나 마을의 범위를 정해주는 역할을 했다. 길과 울타리 주변에는 집 없는 사람들이나 거지들이 임시로 거주했을 것이다. 또는 길과 울타리 너머에는 마을 공동체로 들어올 수 없는 빈곤층 사람들이나 제의적으로 부정한 자들이 머물렀을 것이다. 주인은 이들을 강권하여 데리고 와서 집을 채우라고 명령한다(23절). 이들은 주인의 높은 지위를 알기에 참석하기를 꺼렸을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데리고 와야만 올 수 있는 사람들이다. “강권하다(아낭카조)”는 결연한 의지로 손님의 손을 붙잡고 집 안으로 초대하는 것을 의미한다(창 19:3; 33:10~11).
    
마지막으로 주인은 종들에게 말한다(앞에서 종은 단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종들’ 복수형이다). 예수님은 주인의 입을 빌려 이 비유를 듣고 있는 청중(독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24절).” 초대의 범위를 아무리 넓히더라도 전에 초대를 거부한 사람들은 제외되고 만다. 그들은 주인의 잔치에 참여하여 음식을 즐길 기회를 놓쳤다.
    
제자는 메시아 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하는 사람과 같다. 어떤 사람들을 손님으로 초대할 것인가? 이 질문과 관련해서 1~14절의 가르침과 본문의 비유가 연결된다. 예수님은 바리새인 지도자에게 가난하고 병들고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초대하도록 가르쳤다.(12~13절). 처음에는 화려한 잔치를 준비하고 명예로운 지위를 누리고 싶어 했다. 그러나 부자 친구들과 지인들은 자신들의 욕망과 계획을 실현하는 일을 우선시했다. 결국 초대자는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실천한다(21절). 더 나아가 마을 공동체에 들어올 수 없는 빈민과 부정한 계층으로 초대를 확대한다(23절).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와 안정된 위치에서 자신들의 욕망을 우선시하는 사람들에게 미련을 두지 않는다(24절).
    
예수님의 제자가 부를 즐기고 품격 있는 동료들로 인맥을 형성하며 살고 싶은 마음을 가기지 쉽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은 명예와 품격의 차원에서 어렵다. 그런데도 부활의 때 하늘의 잔치에 초대받는 명예를 얻는 사람은 가난하고 아프고 불편한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내게 유익이 되기보다는 나의 환대가 필요한 사람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주고받는 상호성의 윤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내게 갚을 것이 없는 사람들을 환대하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제자는 되받을 생각이나 명예의 욕망을 채울 마음을 갖지 말고 자기희생적으로 섬겨야 한다. 이오 같은 제자로는 사회적 수준에 따라 공동체를 이루는 사회와 종교의 체계에 도전하고 있다.
    
    
    
나는?
-의인들이 부활 때 얻게 되는 복에 대한 말씀을 듣고 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서 떡 먹는 자의 복에 대해 말한다. 유대인들은 종말에 하나님이 만찬을 준비하시고 의인을 불러 조상들과 함께하는 연회를 베푸실 것이라는 기대에 차 있었다. 자신들이 연회에 참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하지만 당연한 것은 없다. 적극적으로 초대에 응하지 않으면 그 연회에서 제외될 수 있다. 하나님 나라의 초대에 응답하여 선뜻 기쁘게 응하는 것이 잔치에 참여하는 길이다.
    
-하나님 나라 잔치를 거절한 자들… 잔치에 초청받고도 세 사람은 제각각의 이유를 대면서 거절한다. 그들은 매매한 밭을 점검하고, 다섯 겨리의 소를 시험하고, 혼자 있을 신부를 배려하여 초청에 응하지 않는다. 저마다 그럴듯한 이유를 제시하지만, 이 잔치의 가치와 의미가 자기의 재산과 가족보다 하찮다고 말하는 것일 뿐이다. 돈(17:31)과 가족(14:26; 18:29)을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보다 우선시하겠다는 의미일 뿐이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부요함을 모르며, 그 나라의 왕이 어떤 분인지를 모르는 자들이다.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계산으로는 비교 불가의 복이 임하는 나라임을 모르는 자들이다.
    
-하나님을 큰 잔치를 베풀고 종을 보내 사람을 청하는 분으로 묘사한다. 종들은 가서 천국 복음을 전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핑계를 대며 초청을 거절한다. 그들은 천국 복음보다 자신들의 이익과 필요를 더 앞세운다. 시급한 현실의 욕망이 참되고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 나라의 가치를 외면하고 자기 유익을 좇는 자는 영영 기회를 잃게 된다.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는 자… 잔치에 초대받은 자들은 참석을 거절했다. 하지만 주인은 잔치 자체를 포기하지 않는다. 대신에 시내 거리와 골목에 가서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자들인,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불러오게 한다. 그들은 잔치 참여를 거절하는 것은 물론이고 초대를 예기치 못한 특권으로 여길 것이다. 자격 없는 자들이고 이 은혜를 갚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13절). 그래도 잔치 자리가 다 차지 않자, 이번에는 성읍 밖으로 나가 성읍과 인접한 길과 산울타리 가로 가서 데려오라고 한다. 주인을 아예 모를 사람들일 것이기에 “강권”하여 데려와야 한다. 이것은 이방인들까지 이 잔치에 포함될 날을 내다보는 말씀이다. 나중된 자가 먼저 될 것을 보여주는 말씀이다.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할 조건… 부활의 날에 주께서 주실 복에 대한 말씀을 듣고 한 사람이 그날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하는 자가 복되다고 맞장구친다. 그는 아마도 하나님 나라에 당연히 들어갈 것이라고 확신하던 전형적인 유대인일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잔치 초청을 거절한 세 사람을 예로 들면서 이스라엘의 그릇된 확신에 도전하시고 그들이 전혀 기대하지 못한 자들이 들어갈 것이라고 하셨다.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은 나의 확신이 아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에 맞는 믿음의 반응이다. 처음부터 자기 부정이 필요 없을 만큼 의로운 자는 없다. 또 처음부터 제외되기로 결정된 자도 없다.
    
    
    
*주님,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나의 이익과 만족을 위한 것에 마음이 쏠려 놓치지 않겠습니다.
*주님, 나의 식탁에 함께 참여할 이가 하나님 복의 통로임을 믿습니다. 구별, 배척, 소외시키지 않고 누구든 말씀의 식탁에 초청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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