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 [눅 14:25-35]
 – 2025년 03월 24일
– 2025년 03월 24일 –
눅 14:25-35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제자도에 대해 언급하신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는 가족과 자기 목숨보다도 예수님을 더 가치 있게 생각해야 하고(25~27절), 제자의 길이 험난하기에 출발하기 전에 심사숙고해야 하며(28~32절), 안전의 수단으로 유혹이 될 수 있는 모든 소유를 버려야 한다(33절). 이런 태도를 실천하는 제자는 소금과 같고, 지속적으로 헌신적인 삶을 통하여 소금 맛을 낼 수 있다(34~35절).
    
    
    
1. 제자가 되는 길_가족을 미워하고 십자가를 지라(25~27절)
수많은 무리가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 예수님은 돌이켜 제자도에 대하여 말씀하신다(25절). 예수님은 이와 비슷한 내용은 10:37~38에서 이미 가르치셨으나 이제 무리를 향해 말씀하신다. 예수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부모와 자녀와 형제와 자매와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해야 한다(26절). 본문에서 ‘제자’는 열두 제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명을 수행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미워하다”는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당시 유대의 사고에서 둘 중에서 선택하지 않은 쪽에 대한 태도를 의미한다. 이제까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인생에 영향을 끼치는 대상마저 예수님보다 낮은 가치로 여겨야 한다. 자기 목숨까지도 예수님보다 더 가치 있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인생의 길을 선택할 때 예수님을 따르는 것에 가장 최우선의 가치를 두어야 한다는 의미다.
    
또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그의 제자가 될 수 없다(27절).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여행하는 목적은 십자가에 죽는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가는 사람, 특히 예수님께 오는 자는 그의 운명도 공유해야 한다. 절대적 가치인 예수님에 비하면 세상의 모든 것이 상대화된다. 예수님의 사역으로 하나님 나라는 이미 시작이 되었기에 예수님의 길을 따라야 하나 그 길은 십자가, 즉 고난이 수반되는 길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13:24).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길을 따라가기 위해 자신들이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있는 어떤 것이라도 버려두고 나설 수 있는가? 그런 이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 그 길이 비록 십자가의 길이라도….
    
    
    
2. 비용을 계산하라(28~32절)
예수님은 제자가 되려는 사람이 어느 정도의 고난을 겪을 것인지 스스로 따져보도록 두 개의 비유로 설명하신다. 왜냐하면 제자가 되는 길을 잘못 판단하면 비참한 결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제자는 현명하게 판단하는 지혜로움이 있어야 한다. 누가 망대를 세우려고 한다면 완공할 때까지 필요한 비용을 계산해야 한다(28~30절). 미리 계산하지 않으면 기초만 쌓고 건축물을 올릴 수 없다(29절). 특히 방어용이든 감시용이든 망대는 높이 올라가는 구조이기에 기초를 튼튼하게 쌓아야 한다. 그만큼 비용이 많이 들어갈 것이다. 그렇기에 어떤 사람은 망대를 제대로 올려보지도 못한 채 건축을 중단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라고 비웃을 것이다(30절). 명예와 수치의 문화권에서는 이런 공적인 수치는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이어지는 비유는 전쟁을 준비하는 왕의 비유다(31~32절). 어떤 왕이 전쟁하러 갈 때 만 명으로 이만 명을 이길 수 있는지 먼저 따져본다(31절). 만일 승산이 없다고 판단되면 사신을 보내 화친을 요청해야 한다(32절). 이 비유를 통해 전쟁하기 전에 승패를 예측하는 것이 마땅하듯 예수님을 따르는 것에도 무모하게 따르는 것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제자가 되려는 사람은 지혜로운 판단을 내려야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행동하기 전에 심사숙고한다. 심사숙고하지 않으면 한 명은 망대를 완공하지 못하고 수치를 당한다. 한 명은 전쟁에서 참패하는 비극을 맞는다. 그만큼 제자가 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끝까지 자기 십자가를 질 각오하고 있는지, 개인적인 희생을 감수할 준비가 됐는지 따져야 한다.
    
    
    
3. 제자가 되는 길_소유를 포기하라(33절)
33절은 26~27절과 연결된다.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가족과 자신을 미워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소유를 포기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의 소유를 버리지 않으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33절).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것을 재산을 포기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여행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갈 수는 없으므로 버려야 한다. 예수를 위해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않으면 자신의 유익과 염려를 위해 예수를 버리게 될 것이다. 얼마만큼 희생했는지로 예수를 따르는 수준을 가늠할 수도 있을 것이다.
    
“버리다”라는 표현은 현재 시제로 제자의 전형적인 특징으로 표현된다. 소유를 버린다는 것은 예수님을 전적으로 의존하고 예수님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고백일 뿐 아니라 궁핍하고 힘든 사람들의 회복을 위해 헌신하는 의미도 포함된다. 예수님은 12:33에서 파송 받는 제자들에게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할 것을 명령하셨다. 이를 통해 보면 예수님의 희생이 언제나 사람들의 유익을 위한 목적이었듯이 제자들이 소유를 버리는 것도 궁핍하고 재정이 있어야 하는 사람을 위한 희생이다.
    
    
    
4. 소금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할까? (34~35절)
34~35절은 “그러므로(운)”로 시작한다. 앞서 제자가 되기 위한 조건을 강조했다면, 이 구절은 본 단락 전체의 결론이다. 제자가 되는 것으로 멈추지 말고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제자의 삶을 지속적으로 실천해야 함을 강조한다. 예수님은 유익하고 소중한 것의 예로 “소금”을 비유어로 사용하신다.
    
소금은 좋다. “좋다(칼로스)”는 “유용하다”는 뜻이다. 소금이 없는 생활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인생에서 필수적이다. 특히 소금은 부패하지 않도록 음식을 보존하고 음식의 맛을 낸다. 이렇게 반드시 있어야 하므로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좋은 것이지만 짠맛을 잃어버리면 쓸모없어진다(34절). 땅에도 쓸모없고 거름으로도 사용할 수 없다. “맛을 잃다(모라이노)”는 문자적으로는 “밋밋하다, 아무 맛이 없다.” 등의 뜻이며, 비유적으로는 “어리석게 되다”이다. 땅과 거름에 쓸데없다는 표현에 사용된 ‘유쎄토스’는 ‘적합한, 유용한’의 뜻이다(35절).
    
소금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소금은 어디에도 유용하지 않고 적합하지 않으며, 적합하지 않은 사람은 어리석다. 결국 사람은 내버려진다. 내버려지는 것은 무서운 현상이다. 소금을 땅에 던져버리면 땅이 저주를 받는다(삿 9:45). 이것은 결단하고 희생해서 제자가 된 것으로 머물러 있는 사람은 유용하지 않고 어리석다. 제자도를 실천하지 않는 제자는 소금 맛을 잃어버린 소금과 같다. 소금 맛이 없는 제자는 사회의 골칫거리가 된다. 제지가 아닌 사람보다 제자도를 실천하지 않는 제자가 세상을 더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 계속해서 땅에 문제를 일으키는 제자라면 처음부터 제자가 아니었음이 스스로 입증되는 셈이다.
    
지금 이 땅에 제자라 자부하며 제자도를 따르지 않는 이들로 인해 얼마나 혼란스러운가….
    
    
    
나는?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무리에게 그들의 기대와 다른 요구를 하신다. 평강과 확신 대신에 불안과 불편함을 주신다. 이를 통해 자신을 향한 헛된 기대를 꺾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오해를 교정하여 주신다. 무지한 다수의 열광적인 지지보다 소수의 충성스러운 제자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진리를 왜곡하면서까지 사람을 모으려고 하지 않으셨다. 인기를 얻으려고 진리를 감추지 않으셨다. 내가 기대하는 것과 예수님이 내게 주기 원하시는 것이 같을 때까지 내 기대의 허상을 깨뜨리신다. 세상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한 복음은 어리석고 어설프고 어처구니없는 소식일 뿐이다. 세상에 대해 환멸하고 나에 대해 절망한 사람만이 참된 비전을 갖고 소망하게 된다.
    
-제자의 길은 버림과 떠남에서 시작한다. 소유와 가족은 물론이고 자기 생명까지 상대화하고 예수만을 절대화할 때 제자의 길을 나설 수 있다. 예수님에 대한 절대 신뢰가 없으면 따라갈 수 없다. 이 길은 세상과 정반대의 길이고, 정반대의 삶의 방식을 요구하며, 정반대의 가치를 추구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고 그에게 충성할 때만 따라갈 수 있다. 이 길 끝에 생명이 있고, 이 길이 겉으로는 고난의 길이지만 사실은 기쁨 가운데 따를 수 있는 길인 것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가족까지 미워하고 소유를 버려야 한다. 심지어 자기 생명보다 참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한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을 구원 여정의 해답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수님이 가신 거친 길, 고난의 길, 죽음의 길까지 수용하는 일이다. 그 길에서 예수님보다 앞서서도 안 되고 더 충성해서도 안 된다. 그분과 그분의 말씀과 그분의 나라 외에는 모든 것을 상대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럴 때 나 자신과 내 삶, 내 가족을 향한 사랑이 진실해진다.
    
-버려야 얻을 수 있고, 비워야 채울 수 있다. 떠나야 따를 수 있다. 맛을 잃은 소금이 소금이 아니듯이, 가족과 소유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는 이는 예수님을 따른다고 말해도 제자가 아니다. 예수님보다 더 좋고, 더 가치 있는 것이 가득하다면 그것의 제자일 뿐이다.
    
-제자의 삶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망대를 세우기 전에 완공하기까지 돈이 충분한지 계산한다. 짓다 만 망대는 쓸모없고 돈만 허비하며, 수치와 조롱이 되기 때문이다. 전쟁하기 전에도 계산한다. 그래야 의미 없는 희생과 패배를 자초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예수님을 따르기 전에도 계산해야 한다. 제자 됨의 대가가 아무리 커도 나를 위한 예수님의 희생보다 크지 않다고 믿어야 예수님을 따를 수 있다. 제자가 되기 위해 지불해야 할 비용을 계산하지 않고 따르면 중도에서 여정을 이탈하여 영원히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육신의 목숨을 버려서라도 영혼을 구할 수 있다고, 믿어야 따를 수 있다. 하나님 나라가 비교 불가의 가치가 있음을 알 때 제자의 길에 나설 수 있는 것이다.
    
-가족도 버리고 소유도 버리고 심지어 목숨까지 버려야 예수님을 따를 수 있다는 것이 무소유나 혹은 사회와 고립된 채 살거나 순교를 자처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 나라 복음의 정체성을 형성한다면 소유를 본연의 가치로 다룰 수 있고, 가족을 더 사랑할 수 있고, 내 목숨을 가장 위하면서 살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소금으로서의 본질을 찾고 유지하는 것이 맛을 잃은 많은 소금을 소유하는 것보다 백번 낫다.
    
    
    
*주님, 말뿐인 제자가 아니라 제자도를 살아내는 제자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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