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 4:1-5:1 온통 서로에게만 집중된 신랑 신부의 시선처럼….
신부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신랑은 그녀를 향해 온갖 찬사를 보낸다. 신랑은 순결을 지켜온 신부와 연합하여 부부가 되었다. 친구들도 이들이 공식적인 부부가 되었음을 축하하고 그 증인이 된다.
1.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1~16절).
연인의 결혼식이 거행되었고 그들만의 첫날밤이다. 신랑은 신부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1~7절에 이르도록 그녀(의 몸)를 칭송한다. 신랑은 신부의 비둘기 같은 눈으로 시작하여, 길르앗 산에서 뛰어 내려오는 염소 떼 같은 까만 머리털, 목욕하고 나온 털 깎은 암양 같은 하얀 치아, 홍색 실 같은 입술, 어여쁜 입, 벌어진 석류 속 같이 붉은 뺨, 다윗의 무기 저장고로 사용된 망대와 같이 늠름하면서도 우아하고 기다란 목, 백합화 가운데서 풀 뜯는 쌍둥이 암노루 같은 젖가슴까지…. (1~7절). 신부의 매력을 구구절절 읊는다. 신랑의 눈에 아름다운 신부(1절)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흠이 없는 존재다(7절). 신랑에게 딱 맞는 신부다.
신부와 아직 한 몸을 이루지 못한 신랑은 신부가 마치 먼 곳, 올라갈 수 없는 높고 위험한 산들에 있는 것 같이 신부에게 가까이 오라고 청한다(8절). “나와 함께”라는 어구가 신부와 함께하고 싶은 신랑이 마음을 잘 드러낸다. 신랑은 “아마나 꼭대기,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 사자 굴, 표범 산” 등을 언급하며 신부가 그런 곳에서 내려와 자신과 가까이 있기를 초청한다. 신부를 “내 사랑(1, 7절)”으로 부르던 신랑은 처음으로 그녀를 “신부”로 부르며 그의 신부가 되었음을 상기시킨다. 신랑은 신부에게 억지로나 강제가 아닌 진정성과 자발성을 갖고 자신과 육체적 연합 이루기를 고대하므로, 어떤 방해물이나 어려움이 있더라도 헤쳐 나갈 것이다.
9~11절에서는 신랑이 신부에게 완전히 매료되었음을 보여준다. 신랑은 신부에게 “내 누이(자신의 피붙이처럼 가깝고 친근하다는 것을 표현하는 별칭), 신부”라고 호칭한다. 아가서에서 이 호칭은 주로 결혼 첫날 밤에 집중되어 등장한다(4:8, 9, 10, 11, 12; 5:1). 신랑은 신부가 자기 마음을 빼앗아 갔음을 재차 고백한다. 신랑이 마음이 뺏긴 데는 신부의 눈길 한 번과 목에 걸린 목걸이의 구슬 하나로도 충분했다. 신랑의 눈에는 그만큼 신부의 아름다움은 더할 나위 없고 완전하다(1, 7, 10절). 신부도 매한가지다. 그녀는 신랑의 사랑을 포도주로 비유하여 그의 사랑이 더 낫다고 칭찬하고 남자의 향기를 칭찬하며 갈구했었다(1:2~3). 그런데 이제 신랑이 된 남자는 신부의 사랑을 포도주만이 아니라 향유 냄새에도 비교하며 이보다 더 나은 신부의 사랑을 추구한다(4:10). 또, 신부의 입맞춤 맛을 꿀과 우유의 맛에, 그녀 의복의 향기를 백향목이 가득한 레바논산의 상쾌한 향에 비교하며 신부에게서 기쁨을 느끼고 싶어 한다. (4:11). 신랑이 신부에게 완전히 매혹되었다. 그의 시각과 미각과 후각 등 인간이 가진 모든 감각을 신부에게 집중하며 거기에 반응하려 한다. 사랑이 뭐길래 두 남녀의 사랑이 참 흐뭇하다.
12~15절은 신부가 신랑에게 매료되어 있음을 표현한다. 신부는 그동안 순결을 잘 지켰다. 신랑은 순결한 신부를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12절) 으로 세 차례나 은유적으로 반복하며 강조한다. 신랑은 이와 같은 표현으로 신부의 성적 순결을 지킨 것에 대해 칭찬한다. 순결을 지킨 신부에 대해 13~14절에서 여러 과일과 향품 및 향신료의 재료로 사용되는 식물들로 표현한다. 이것들은 대부분 이국적이고 값비싸고 귀한 나무와 식물이다. 미각과 시각, 후각을 자극하여 신랑이 신부에게 누릴 황홀한 기쁨을 부각시킨다. 15절의 “동산들의 샘, 생수들의 우물,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들”이라는 표현은 12절의 “동산, 샘, 생수, 시내”와 같은 표현들과 연결되어 닫혀 있던 것들이 열렸음을 추측하게 하는데, 이는 신랑과 한 몸을 이루는 즐거움을 고대하는 표현들로 해석된다.
16절은 드디어 신부가 기다려왔던 신랑을 깨우고 자극해도 되는 시간이 왔음을 보여준다. 2:7과 3:5에서 신부는 예루살렘의 딸들에게 사랑이 원할 때까지 깨우지 말고 기다리라고 조언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신부는 북풍을 깨우고 남풍에 자신의 몸(동산)에 불어 향기를 흘려보내라고 요구한다. 북풍과 남풍은 신부 몸의 전부를 뜻한다. 신부는 잠겨 있던 자기의 동산을 신랑에게 완전히 열고 안으로 초대한다. 신랑이 그녀의 동산에 들어와 최상의 즐거움(아름다운 열매) 만끽하기를 승낙하고 또 고대한다.
2. 한 몸으로 연합된 부부(5장 1절)
신랑은 4:16 신부의 초청에 응하여 그녀의 동산에 들어가 육체적인 결합을 이루었다. 신부의 몸으로 비유하는 동산에서 신랑이 몰약과 향품을 따고, 꿀을 먹고, 포도주와 우유를 마셨다는 말은 신랑이 신부와 성적 결합을 통해 만족과 기쁨을 누렸음을 의미한다.
또한 4장 10~11절의 신부에 대한 신랑의 표현과도 연결되어 여전히 신부에게 매료된 신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덧붙여, 신랑은 신부를 향하여 “나의”로 시작하는 표현을 지속적으로 언급한다. 이것은 신부가 이제 공식적으로 자신만의 아내가 되었음을 확증하는 의도다. 이제 사랑하는 두 남녀가 결혼하여서 한 몸을 이루었으므로, 하객들은 이들이 공식적인 부부가 되었음을 확증해준다. 그들은 새로 탄생한 부부를 축하하고, 먹고 마시며 즐거움을 나눈다.
나는?
-신랑이 신부의 아름다움에 취했다. 첫날밤 신부를 마주한 신랑은 신부의 아름다움에 한껏 취해있다. 너울 너머에서 광채 나는 비둘기 눈 같은 눈, 길르앗 산에서 뛰어 내려오는 염소 떼 같은 여인의 곱슬머리, 털 깎인 암양 무리같이 깨끗하고 쌍둥이같이 균일한 이, 주홍 실같이 고운 입술, 석류처럼 발그레한 뺨, 다윗의 망대같이 기다란 목, 목에 걸린 구슬 목걸이, 쌍둥이 노루 같은 가슴까지…. 신부의 모든 것이 신랑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렇게 사랑의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어딘들 아름답지 않을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바라보신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 값으로 산 교회를 이렇게 바라보신다. 어딘들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 죄와 허물이 덕지덕지 붙어있어 초라할 수 있는 우리를 그저 사랑하는 신부로만 보신 것이다. 신랑의 눈에 신부는 모든 것이 예쁘다.
-베데르 산으로 올라오라는 여인의 간청(2:17)에 신랑이 반응한다. 결혼식을 마친 신랑은 이제 여인이 있는 몰약 산으로, 유향 언덕으로 올라가겠다고 한다. 흠 없이 순결을 지켜준 신부의 아름다움을 칭송한다. 신랑에게는 한 남자를 위해 정결과 절개를 지켜준 신부가 레바논산, 아마나 산, 스닐과 헤르몬산같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산처럼 보였었다. 오직 한 남자에게만 허락된 잠근 동산이요, 봉한 샘이었다.
-그래서 신랑은 손수 가지 않고 신부에게 내려오라고 요청한다. 높은 산처럼 자신을 잘 지킨 두 사람이 중간에서 만나는 사랑, 때가 될 때까지 서로서로 지켜주려는 긴장 속의 사랑, 그 사랑이 참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신랑 신부는 순결하게 그 사랑을 잘 지켰다.
-신랑 신부에게 허락된 사랑은 두 사람에게만 허락된 사랑이었다. 신부의 눈빛 하나, 목걸이 구슬 하나에 신랑의 마음은 무장해제 된다. 신부의 사랑은 포도주보다 진하고 어떤 향품보다 향기롭다. 달콤한 입술과 옷에서 나는 레바논의 향기에 신랑은 혼절할 지경이다. 그런 신랑을 여인이 드디어 맞아들인다. 둘만의 사랑을 허락한다. 그동안 키우고 간직한 사랑을 먹고 마셨다. 배우자와 주님에게만 허락된 사랑, 각종 우상과 간음하지 않은 사랑을 순결하게 지켜 나가고 있는가?
-이 사랑은 신랑 신부 두 사람에게만 허락된 특별한 사랑이다. 신부의 눈빛 하나, 목걸이 구슬 하나에 신라의 마음은 무장이 해제된다. 신부의 사랑은 포도주보다 진하고 어떤 향품보다 향기롭다. 달콤한 입술과 옷에서 나는 레바논의 향기에 신랑은 혼절할 지경이다. 그런 신랑을 드디어 신부가 맞아들인다. 둘만의 사랑이 허락된다. 두 사람은 그동안 둘이 함께 키우고 간직한 사랑을 먹고 마셨다.
-현대 그리스도인에게 매우 당연하지만, 어색한 주제가 되어버린 혼전순결과 배우자와 주님에게만 허락된 사랑, (우상과) 간음하지 않은 순결한 사랑을 지금 이곳에서 펼치며 살고 있는가?
*신랑이 신부를 향해 당시의 문화에서 최고의 찬사를 부른다. 신부 자신이 최고의 존재인 것을 인식할 수 있는 당시 삶 속의 최고 가치들을 사용하여 노래한다. 주님께서 우리를 향한 찬사도 이와 같다. 스바냐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할 때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습 3:17)’라고 했다.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를 사랑하신다. 오늘날은 어떻게 표현할까? 주님은 나를 사랑하시는 표현을 어떻게 들려주실까? 내가 공감하도록 나의 삶을 빗대 들려주실 게다. 오늘 삶 속에서 주님의 나를 향한 세레나데를 듣고 싶다.
*아가서에서 남자가 여자를 신부라고 부르는 것은 오늘 본문뿐이다. 여섯 번 표현되었다. 또한 ‘누이’라는 호칭을 붙여 ‘내 누이, 내 신부야’라는 표현은 네 번 나온다. 일단 ‘누이’라는 말에서 오는 어색함이 있다. 하지만 고대 근동에서는 부부 사이의 애정을 묘사하는 통상적인 말이었다고 한다. 누이가 신부가 되었다는 뜻보다는 신부를 누이와 같이 ‘가까운’ 이성으로 맞이했다는 뜻일 것이다. 주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누가 진정한 가족인가에 대해 일깨우시면서 하나님의 자녀 되어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인 우리가 모두 한 형제요 자매라 하셨다(마 12:50). 오늘 본문과도 일맥상통한다고 하겠다. 주님과 나는 가장 가까운 사이라는 거다.
*신랑의 마음과 시선이 온통 신부에게만 집중되어 있다. 그의 눈에는 신부는 완벽하다. 어디 흠잡을 곳이 없다(7절). 어디든지 함께 가자고 한다(8절). 신부가 아름다우니 그녀의 눈짓도, 그녀를 장식하고 있는 장신구에도 마음이 훈훈하다(9절). 신랑을 사랑하는 마음, 그녀의 향기(체취)도 아름답다(10절). 그녀의 모든 것이 신비롭다. 문 잠긴 동산, 덮어 놓은 우물, 막아 버린 샘, 온갖 과일, 풀과 꽃들, 향나무, 몰약과 침향 같은 귀한 향료, 생수가 솟는 우물, 레바논의 시냇가…. (11~15절). 소중히 여기며 지켜주고 싶은 사랑스러움이 뚝뚝 묻어난다.
*주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는 사랑이 이러하다. 나를 사랑하시는 사랑이 이러하다. 특히 “… 아무 흠이 없구나… (7절)”를 고백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믿어야 한다. 왜 아무런 흠이 없겠는가? 그러나 주님께서 그렇게 여겨주신다.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 죗값을 이미 다 치르셨기에 교회와 나를 바라보실 때는 여전히 흠 많고 죄투성이인 나를 ‘흠’ 없게 보시는 것이다. 이유는 단 하나!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사랑’하면 흠이 보이질 않는다.
*일어라 북새바람, 오너라 마파람… 온갖 과일을 풍성하게 열매 맺게 하는 바람들이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이른 찬바람, 남쪽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 이 바람들은 열매를 맺게 하는 바람들이다. 신부가 신랑에게 사랑의 열매를 마음껏 누리라고 초청한다. 둘만의 사랑의 시간을 표현한 것이다. ‘나의 동산’에 불어서… 라는 표현은 북새바람과 마파람을 신랑에 빗대었다는 뜻이다. 신부에게로 들어오라는 희화적인 표현이다. 신랑과 신부, 둘만의 시간과 장소에서 사랑을 누리자는 의미일 것이다.
*본문을 묵상하면서 주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신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아내를 향한 마음과 시선이 어떤지를 곰곰이 뒤돌아보았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눈길과 표현과 행동을 일치하며 아내에게 대했는지 뒤돌아보았다. 음… 균형이 맞질 않았다. 마음의 상태와 표현이 엇박자일 때가 많다. 조금씩 더 일치를 시켜야겠다. 아이들이 부쩍 컸다고 느끼는 때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마다 아내는…. 음….. 늘 20대 후반에 만난 그때처럼 변함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이 큰 만큼 둘 다 깊어진 외모의 연륜을 외면하지 못하겠지?
*하지만 본문의 신랑이 신부를 향하여 바라보고 표현하며 행동하는 순전한 사랑의 노래들을 바라보며 아내에게 이리해야지 결심해 본다. 마음이 점점 일치되어 가는 느낌을 함께 살아온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결국 아이들이 다 독립하면 우리 두 사람 손 꼭 잡고 의지하며 살 테니… 주님께서 이렇게 살아온 시간 속에서 하나 된 마음으로 빚어 주시는 것일 거다. 사랑하는 마음을 결혼식 때보다 더 성숙하고 성실하게 지켜 나가도록 하실 게다.
*온통 서로에게 집중되어 다른 것이 틈타지 못하는 신랑 신부의 결혼식처럼, 주님과 내(교회)가 서로만 바라보며 사랑하며 살아내야지….
*주님, 신부를 향한 신랑의 찬사가 곧 저의 아내를 향한 찬사인 것이 당연한 삶을 살겠습니다. 나의 사랑, 내 최고의 신부… 아내를 더 깊이 사랑하겠습니다.
*주님, 이처럼 교회를 더욱 사랑하겠습니다. 주님이 교회를 사랑하여 주시는 것이 이토록 절절한데, 저의 주님을 향한 사랑도 더욱 절절하게 살아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