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위기는 불현듯 찾아오나, 사랑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 [아가 5:2-6:3]
 – 2025년 04월 27일
– 2025년 04월 27일 –
아가 5:2-6:3 위기는 불현듯 찾아오나, 사랑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
    
사랑하는 관계지만, 위기는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이때 부부는 분별력 있는 행동이 요구된다. 아내를 찾아온 남편은 아내가 잠깐 꾸물대는 동안 떠나버렸다. 아내는 그 뒤를 쫓아 도성을 헤매지만, 남편을 만나지 못한다. 그래도 아내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남편을 찾으며, 그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다시 상기시킨다(5장 2~16절). 마침내 남편을 찾아 헤매던 아내가 드디어 남편을 만났고, 남편이 여전히 자기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6장 1~3절).
    
    
    
1. 결혼 생활, 위기를 만나다(2~16절).
2~7절은 결혼 후 뜻하지 않게 위기가 이 부부를 찾아왔음을 보여준다. 2절은 1절과 다른 새로운 시간, 새로운 장소, 새로운 장면이 연출된다. 1절과 2절 사이에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짐작할 수 없다. 그러나 2~7절의 내용은 신혼 기간(대개 2~3년)이 어느 정도 끝난 것으로 추정된다. 2절에서는 아내가 완전히 잠들지 못하고 정신이 깨어 있을 때 남편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연애 시절 아내는 지기를 만나러 산을 달려오는 남편을 보며 “나의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2:8)”라고 외치며 흥분되고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늦은 밤에 달콤한 호칭으로 아내를 부르는 남편의 목소리에 “웃옷도 벗고 발도 다 씻고 지금 이렇게 누워 있는데, 다시 일어나 옷을 걸치고 방바닥에 발을 디뎌야 하나? (3절)”라는 생각이 앞서, 잠시 머뭇거린다. 즉, 잠자려다가 방해를 받았으므로 귀찮은 마음이 스치는 아주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애정이 다 식어 밤늦게 귀가하며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쉼을 깨뜨리는 것을 원망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반사적으로 머뭇거린 아내의 모습에서 남편에 대한 애정이 예전과 같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내가 머뭇거릴 때 남편이 문틈으로 손을 들이 내민다(4절). 이 모습을 보자 이내 아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어 주려고 할 때 그녀의 손에서는 남편에 대한 사랑의 몰약이 흘러내리듯 솟아났다(5절). 남편에 대한 아내의 사랑은 여전했다. 그런데 아내가 정작 문을 열었을 때, 남편은 벌써 몸을 돌려 가버린 후였다. 아내는 이 일이 믿기지 않아 자신을 원망한다(6절). 재빨리 그를 찾았으나 발견할 수 없었고, 불러보아도 대답이 없었다.
    
내가 문을 바로 열어줬다면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한편으로는 조금만 더 기다리지, 하는 남편에 대한 원망도 있었겠지만, 남편이 현재 ‘없음’으로 인한 상실감과 남편을 찾지 못하고 영영 잃어버리진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오는 두려움과 공포가 여자에게 크게 다가왔다. 아내는 주저하지 않고 남편을 찾아 늦은 밤 성안을 헤맨다. 이런 여자를 성안을 순찰하던 파수꾼들이 발견했다. 그들은 어떤 설명도 듣지 않고 그녀를 때려 멍들게 하고 두르고 있던 옷(아마숄)마저 빼앗았다. 홀로 밤에 혼비백산하여 돌아다니는 여자의 모습은 파수꾼들 눈에 정신 나간 여자로밖에 보이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럼에도 성벽을 지키는 임무를 맡은 이들이 성안에 사는 주민이었던 여인을 지켜주지 않았다.
    
8~9절에서 편한 밤을 맞이하려고 했던 아내는 한순간에 남편을 잃고(?) 파수꾼들에게 두들겨 맞는 신세가 되었지만, 남편을 찾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단지 남편을 찾고 안 찾고의 문제이기보다, 남편과의 관계에 상처가 난 지금, 그 상처를 치료하지 않으면 그 상처는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이 일이 어쩌다 일어났는지를 슬퍼하거나 주저앉거나, 남편이든, 파수꾼들에게든 그 책임을 뒤집어씌울 핑곗거리를 찾거나, 누가 더 억울한지를 헤아릴 때가 아니다. 어찌 됐든 아내는 그녀를 찾아온 남편을 바로 맞이하지 못했고, 지금 일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기에 아내는 대책을 마련하고 일을 수습해야 한다. 지금 남편과의 관계를 회복하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이번 일로 인해 관계가 끝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예루살렘 딸에게 남편을 만나거든 자신이 그를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전할 것을 맹세하라고 요구한다(8절). 예루살렘 딸들은 그녀가 결혼하기도 전에 남편을 사랑한 나머지 기진했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2:5). 아내에게 남편은 여전히 “사랑하는 자”다. 예루살렘의 딸들이 이 사실을 남편에게 전한다면 그는 아내가 결혼 전이나 지금이나 그를 사랑하고 있음을 확인받을 것이며, 남편의 상처받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누그러질 것이다. 아내는 이렇게 다른 사람의 도움까지 청하며 남편을 찾는 데 주력한다(8절). 아내의 이와 같은 분별력과 현명한 판단, 실천은 상처 난 관계를 치유하는 데 적절한 시작점이 될 것이다. 한편, 예루살렘의 딸들은 여자에게 그녀의 남편이 다른 사람보다 어떤 점이 낫냐고 묻는다(9절).
    
10~16절 단락은 아가서에서 여자가 남자에 대해 말하는 가장 길고 구체적인 칭송이다. 아가서 전체는 여자의 말이 남자의 말보다 더 많고, 그 행동이 주도적이며, 여자의 시각에서 자기 남자를 바라보는 내용이 더 많다. 하지만 서로의 육체에 대한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데는 여자의 분량이 훨씬 적다. 이에 비해 남자는 이미 한 번 첫날밤에 긴 찬양을 했고(4:1~15). 앞으로도 두 차례 긴 찬양(6:4~9; 7:1~9)을 더 하게 된다. 또, 남자는 여자를 앞에 두고 직접 찬양하게 되지만, 이에 비해 여자는 예루살렘 딸들에게 간접적인 찬양을 들려준다. 아내는 남편의 전체적인 모습으로 남편의 신체를 찬양(11~15절)한 후 다시 전체적인 모습으로 돌아와 그의 모든 것이 사랑스럽다고 결론 내린다(16절). 덧붙여 여자는 이 남편이 그녀의 사랑하는 자, 그녀의 친구임을 밝힘으로(16절) 예루살렘 딸들에게 남편의 특별함을 전한다.
    
여자는 자신의 남편에 대한 칭찬을 시각, 후각, 미각을 자극하는 말로 가득 전한다. 그의 남편은 눈부시고 혈색이 좋아 다른 사람들 가운데 당연히 돋보인다(10절). 머리는 순금으로 비유하여 그의 고귀함과 가치를 돋보이게 표현했다. 남편의 머리채는 열매 송이 같고 까마귀같이 검으며 눈은 우유로 목욕한 비둘기가 마치 물 위에 안착한 것 같이 잘 박혀 있다. 뺨과 입술은 온갖 귀한 향품과 꽃으로 비유된다(11~13절). 남편의 몸을 황옥(손), 상아, 청옥(몸, 배), 순금, 화반석(대리석, 다리) 등 진귀한 보석으로 비유한다. 그의 다부진 몸과 고귀함을 마음껏 표현한 것이다. 그의 생김새는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주목을 받는다. 입은 심히 달콤하니 전체가 다 사랑스럽다고 자랑한다. 주목할 것은 “내 사랑하는 자”로 시작하여 남편을 칭찬한 여자는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자요 내 친구라”라고 말하며 칭찬을 끝낸다. 부부관계에 갑작스러운 위기가 찾아왔지만 이를 통해 오히려 남편이 이제는 여자의 친구 같은 존재도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2. 회복된 부부관계(6장 1~3절)
예루살렘 딸들은 여자의 남편에 대한 칭송을 들은 후 그녀의 남편을 돕겠다는 의사를 밝힌다(1절). 그녀들은 여자의 사랑하는 남편이 어디로 갔는지,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 묻는다.
    
그런데 2절은 남편과 아내가 다시 만나 재결합하는 장면을 묘사한다. 1절과 2절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남자와 여자가 부부관계를 회복했다는데 있다. 또한, 남편을 잠시 잃었을 때 아내의 친구들이 남편을 함께 찾았는데, 이들의 개입보다는 부부가 당사자들끼리 해결했음을 암시해 준다.
    
다시 만난 부부의 재결합은 동산의 꽃밭과 목양의 분위기를 기초로 묘사된다. 남편은 아내의 동산, 그녀의 향기로운 꽃밭으로 내려가 거기서 뜯어먹고 그의 백합화들을 땄다. 아가서 5:13에서는 아내가 남편의 뺨을 향기로운 꽃밭, 향기 나는 풀 언덕(망대)으로, 또 입술을 백합화로 견주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남편이 아내의 신체 부위를 “향기로운 꽃밭, 백합화”로 묘사하였다. 이와 같은 주고받는 묘사는 서로 상대에게 즐거움을 주고 또 상대로부터 기쁨을 얻는 관계임을 보여준다.
    
부부의 육체적 결합 후 아내는 자신들의 관계에 대해 “나는 그의 것이고, 그는 내 것이라”라고 노래한다(3절). 이 고백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후 여자가 안심하는 마음을 내비치는 것이다. 아내는 2:16에서도 남편이 자기의 것임(“그는 나의 것이고, 나는 그의 것이다.”)을 강조하며 자만한 듯했지만, 위기를 극복한 후 이제는 그녀가 남자의 것임을 먼저 인정하는 겸손하고 성숙한 사랑을 보여주는 듯하다.
    
    
    
나는?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예전만큼 여인은 남편의 구애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아내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라고 부르면서 찾았으나 이미 잠자리에 들었다는 핑계로 아내는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이 문틈 사이로 손을 넣어 닫힌 문을 열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에 몸을 일으킨다. 그러나 몰약을 바르며 남편을 맞이할 채비를 갖추고 문밖으로 나갔더니 남편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여인은 사소한 오해가 낳은 더 큰 갈등 앞에서 넋이 나간다. 지극히 상식적이지만, 화해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타이밍(때)이다. 적절한 시기를 놓친 사과는 용서를 받아내기 힘들어진다.
    
-아내는 남편을 되찾고자 밤중에 간단한 겉옷을 하나만 걸친 채 골목을 헤매며 소리친다. 이는 파수꾼이 보기에 미친 여인의 행태였다. 결국 파수꾼들에게 폭행과 수치를 당하지만, 남편은 찾지 못한다. 이런 모습을 통해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조정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는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제든 부르기만 하면 대답하려고 대기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찾아도 찾을 수 없을 때가 되기 전에 돌아와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돌아와 그 관계를 회복해야 할 분이심을 잊으면 안 된다.
    
-여인은 예루살렘 여인들에게 남편을 찾아 달라고 부탁한다. 예루살렘 여인들은 네 사랑이 다른 사랑과 무엇이 다르기에 그렇게 열성으로 찾느냐고 묻는다. 여인은 남편이 얼마나 눈부시고 빛나는 외모와 달콤한 사랑을 가진 사람인지를 길게 설명한다. 그러고는 “보라, 내가 찾으려고 하는 내 사랑이, 내 친구가 바로 이런 분이다”라고 말한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친구, 예수님을 이처럼 멋지게 자랑할 말이 있는가?
    
-사랑하는 이에 대한 아내의 찬사를 들은 예루살렘의 여인들은 조롱하던 말(5:9)을 거두고 함께 남편을 찾아 나서겠다고 한다. 예루살렘의 여인들도 남편이 얼마나 사랑받을 만한 존재인지 깨달은 것이다. 이에 부부는 다시 하나가 된다. 남편은 아내(그의 정원) 에게 돌아와 사랑을 나눈다. 앞에서는(2:16) “나의 사랑하는 이가 나의 것”이라고 먼저 말하더니, 이제는 “내가 나의 사랑하는 이의 것”이라고 고백한다. 고난을 통해 사랑의 시련을 거친 후 비로소 여인은 “내가 그를 소유하기 전에 그가 나를 소유했다”라는 훨씬 성숙한 사랑의 고백을 하고 있다. 자기애에 근거한 사랑이 아니라 그가 누구인지(5:10~16)에 근거한 사랑을 얻게 되었다.
    
*밤새 신랑을 찾다 봉변도 당한 아내, 그녀를 걱정하며 함께 찾겠다고 나선 친구들에게 남편에 대한 굳건한 신뢰를 드러낸다. 어젯밤 잠시 흔들렸던 마음으로 인해 엇갈린 남편이지만 아내는 여전히 그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지 않는다. 내 사랑은 자기 동산에서 양 떼를 치고 있을 것이다. 남편에 대한 사랑의 고백을 부른다.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다’ 남편을 향한 아내의 신뢰가 돋보인다. 사랑하기에 찾아든 위기를 담대한 행동과 남편에 대해 신뢰함으로 극복한다.
    
    
*아름다운 사랑에도 위기는 있다. 위기의 출발은 자존심이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신랑은 밤늦도록 귀가하지 못했다.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마음은 ‘깨어 있는데’ 하루 종일 피곤함에 몸은 침대 위에 있다. 별생각을 다 했을 것이다. 걱정에 걱정이 꼬리를 물었을 것이다. 그러다 지쳐 선잠이 들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밤 깊은 거리를 달려 집으로 달려왔다. 머리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상당히 먼 거리를 달려 온 것이다. 아내를 생각해서 밤늦게라도 돌아오려는 의지가 분명히 보인다.
    
*그런데 막상 집에 와보니 문은 굳게 닫혀 있고 불은 꺼져 있다. 남편이 미안한 마음으로 문을 두드리며 아내를 부른다. 선잠이 든 아내는 분명히 남편의 사랑스러운 소리를 들었지만 잠깐 아주~~ 잠깐~~ 고민한다. ‘잠자리에 들려고 했는데, 옷을 다시 입어야 하나?, 발에 흙을 묻히기 싫은데….’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문을 열어 주려고 일어섰다. 하지만 남편은 문을 두드리고 아내를 부르고 직접 열어 보려고 문틈으로 손을 넣어 봤지만 이내 사랑스러운 아내를 깨우고 싶지 않아 잠든 아내를 위해 잠자리를 구하러 간다(?).
    
*한편, 아내는 그새 사라진 남편에 화들짝 놀란다. 그리고 자신을 책망한다. ‘그가 말할 때 내 혼이 나갔구나!’ 남편이 나를 부를 때 도대체 난 무슨 생각하고 있었던 거지? 지금 내가 제 정신인가? 자책한다. 그녀는 남편이 자신을 부를 때 ‘아~ 이미 잠자리에 들었는데, 다시 옷도 입어야 하는데, 발에 또 흙을 묻혀야 하잖아….’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마음에 갈등하느라 그새 남편이 가버렸네~~ 어떡하지…. 라는 문맥이다. 아내는 그런 생각에서도 몸과 마음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3~4절).
    
*남편이 문을 열어보려고 문틈을 만질 때 묻혀진 몰약의 즙이 아내의 손에 떨어지고 문을 열어 서 있는 남편을 기대했지만 이미 사라지고 없다. 아내가 당황하고 자책한다. 아…. 내가 그 짧은 시간만이라도 고민하지 말아야 했는데….
    
*신혼 때 한 번쯤 겪어 보는 상황이다. 본문은 남편이 사라지지만, 우리는 서로 얼굴을 붉히는 것이 다반사다. 이제라도 들어온 남편, 늦게까지 기다린 아내, 서로를 이해하고 다독이면 좋겠지만, 막상 너무 늦게 들어오는 남편이, 뾰로통하게 맞이하는 아내가 못내 서운하여 사랑하지만 얼굴을 붉히는 경우가 꽤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생기는 위기다. 이런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까?
    
*아내는 늦은 밤 거리의 위험을 감수하고 남편을 찾아 나선다. 사라진 남편에 넋이 나가 주저하지 않고 나선 것이다. 이제 아내가 머리에 밤 이슬이 쌓인다. 찾고 찾아도 못찾고, 불러도 대답이 없다. 밤 늦게 돌아다니니 야경꾼들이 야간통행과 관련된 규칙을 위반하는 그녀를 폭행하고, 파수꾼들은 얼굴(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너울(옷)을 벗겼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을 찾기 위해 나선 걸음이 예기치 못한 상황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내의 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예루살렘 사람들이 아내가 애타게 찾는 남편이 어떤 사람인가를 물어보니(9절), 남편에 대하여 그의 생김새를 구체적으로 자랑한다(10-16절).
    
    
*사랑하기에 위기가 올 수 있다. 사랑하는 표현을 제때, 확실하게 하지 못할 때 특히 그렇다. 대개 본문과 같은 상황이 사랑의 위기를 가져오게 하는 작은 여우다. 남편은 문을 열어 줄 때 까지 기다리지 않고 아내가 잠이 깰까 쉽게 단념하는 모습,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행동이다. 아내는 그토록 기다린 남편이 문을 두드릴 때 ‘맨 발’로 뛰어 나가 문을 열면 참 좋겠지만, 주저하다 남편이 가버린 것을 자책한다. 내가 주저하지만 않았더라면…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책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내의 이어지는 행동이 나에게 도전이 된다. 찾아 나선다. 야간통금(?) 위반을 감수하고 나선다. 당연히 댓가가 따라온다. 파수꾼은 심문을 하고 신원을 확인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비웃는다. 자기들의 시선으로 조롱한다. 밤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신랑이 뭐가 좋다고 찾느냐고, 문 안 열어 주니 사라진 신랑이 뭐가 이쁘다고 찾느냐고… 그런 사람들에게 아내는 남편을 자랑한다.
    
*사랑하다 보면 위기가 반드시 찾아오는데, 그 위기조차도 사랑하는 행동으로 넘겨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우리는 위기가 오면 행동하지 않는다. 말문도 닫아버린다. 사랑하는 사람을 깍아 내리려 하지 자랑하려 하지 않는다. 사랑하며 살다 찾아든 위기는 더욱 사랑하여 극복해야 한다.
    
*주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일게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더 크고 깊고 넓은 사랑을 기다리다 못 내 위기가 찾아 들 수 있다. 그럴 때 오늘 아내를 기억해야 겠다. 주님이 보이지 않을 때,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 같을 때, 그 주님을 원망하여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찾아 나서야겠다. 사람들이 조롱해도 오히려 그 사람들에게 나의 사랑하는 주님을 더욱 자랑해야 겠다. 더욱 사랑하는 행동으로 주님을 찾아 나서야 겠다. 나의 사랑 나의 신랑되신 주님을…
    
    
    
*주님, 사랑하지만 오해가 쌓여 예기치 못한 위기가 엄습할 때 그저 사랑하는 마음과 행동으로 잘 헤쳐 나가겠습니다.
*주님,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헛되이 허비하지 않겠습니다. 바로 일어나 사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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