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 8:5-14 사랑하며 살리라
사랑의 힘은 죽음이나, 물이나, 불이나, 금전, 그 어느 것이나 다 이기고 남을 만큼 강하다. 연애 시절부터 시작하여 결혼하고, 위기를 겪고, 더 성숙한 사랑을 하고, 이제 나이가 든 부부는 이런 긴 과정을 통해 사랑의 힘과 강렬함을 이해하게 된다. 그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아낀다. 서로를 그리워하는 대화는 그들의 결혼 생활에서 여전히 계속된다.
1. 서로 사랑하는 부부(5~7절)
5절은 노년에도 변함없이 서로 사랑하는 부부의 모습을 예루살렘 딸들의 소개를 통해 아내에게 초점을 맞춰 보여준다.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이)”는 3:6에서 솔로몬의 가마를 소개하며 등장했기에 이들 부부의 결혼식을 연상하게 한다. 이 표현은 부부가 거친 들(광야)에서 함께 올라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형적으로 험난한 길을 뚫고 왔음과 비유적으로 방해물을 극복하고 왔다고 볼 수 있다. 또 예루살렘의 딸들은 아내가 그의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올라오고 있다고 말하는데, 이는 부부가 더욱 성숙하게 아내는 남편을 의지하고 남편도 아내의 신뢰를 받아주는 관계임을 표현해 준다. 아내가 사과나무 아래에서 남편을 깨운다는 말은 성적 욕망을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아내는 이 사과나무 아래를 남편의 어머니가 그를 잉태하고, 산고를 겪고, 그를 낳은 곳으로 연결한다. 이것은 어머니가 그를 낳았듯이 후손을 갖고 싶은 마음을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다.
6~7절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자신을 그의 마음과 팔에 도장(인장_신분을 나타내는 상징을 담은 반지나 팔이나 목걸이) 같이 두라고 요구한다. 사랑은 죽음같이 강력하고, 질투가 스올처럼 잔혹함을 깨달았다. 죽음은 모든 것의 한계이자 끝으로서 누구도 죽음을 막을 수 없으나 사랑은 한계가 없으며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질투는 자신의 상대 외에 아무도 용납하지 않는 충성, 헌신, 애정을 나타낸다. 이 사랑의 가치는 금전으로 살 수 없다. 돈으로 사랑을 사려고 하는 자는 우매하며, 멸시받아 마땅하다.
2. 여자와 오빠들(8~10절)
아내는 자신의 오빠들과 있었던 과거의 이야기를 꺼낸다. 그녀의 오빠들은 누이를 돌보는 자들이 아닌 포도원으로 보내 학대하던 자들이었다(1:6). 이들은 자신들이 누이동생을 돌볼 담당자로 여기는 듯하다(8~9절). 당시에는 오빠가 누이의 결혼과 성 문제에 책임을 지는 것이 관습이었다(창 34장; 삼하 13장). 오빠들 눈에 누이는 아직 결혼할 만큼 성숙하지 않았다고 보았다. 그럼에도 누이의 결혼과 관련하여 그녀를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지 궁리한다. 결론은 누이가 순결을 지킨 성벽이라면 은 망대를 세워 이를 더 지지할 것이고, 그녀가 난잡한 문과 같다면 백향목 판자로 문을 막아버린다는 계획이다. 오빠들이 이러한 태도와 당시의 관습으로 볼 때 누이에게 노하고, 포도원 지기로 삼은 것은(1:6), 누이에 대한 부당한 처사라기보다는 그들 나름의 보호책이었던 것 같다. 아내는 이런 오빠들의 대응에 자신은 성벽처럼 순결을 지켰으며, 결혼할 만큼 충분히 성숙했다고 주장한다. 그 증거로 그녀가 결혼하면 자신이 남편에게 화평을 가져다줄 자임을 밝힌다.
3. 솔로몬의 포도원(11~12절)
이 단락은 솔로몬이 소유한 포도원과 다른 포도원에 관한 이야기가 얽혀 있다. 해석이 상당히 난해한 단락이다. 바알하몬에 포도원을 소유한 솔로몬은 일꾼을 시켜 이를 지키게 했으며, 포도원에서 수확이 많아 큰 이익을 얻었다. 이 포도원은 실제 포도원이거나 비유적으로 솔로몬의 규방을 가리킨다고 본다. 한편, 어떤 이도 포도원을 소유했는데, 그는 솔로몬과 달리 자기의 포도원을 스스로 가꾸고 오롯이 자기 것으로 소유함으로써 타인의 개입을 배제하고 포도원으로부터 이득을 취하지 않았다.
솔로몬의 포도원과 금전 관계에 대한 언급은 8:7에서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없음을 보여주는 예로 해석되기도 한다. 또 다른 해석은 솔로몬이 실제 포도원을 타인의 노력을 통해 이득을 보고 있지만, 아내는 자기 몸인 포도원을 직접 가꾸고 소유했으므로 솔로몬이 타인의 도움을 받거나 이득을 나눌 필요 없이, 직접 이 포도원을 소유함으로써 모든 이득을 취할 수 있음을 표현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4. 만남을 약속하는 부부(13~14절)
본 단락은 남녀의 대화로서 아가서의 마지막 대화이자 책의 끝부분이다. 이 단락에서 남자의 여자에 대한 호칭은 “동산들에 거하는 자”로 표현된다. “동산”은 문자적, 비유적 해석이 가능하므로 여자가 현재 남자와 떨어져 전원(田園)에 있음을 암시하는 동시에 남자에 대한 성적 호감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내 사랑하는 자”라는 호칭은 아가서의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는 호칭으로 변함없는 여자의 남자에 대한 사랑을 강조한다.
부부의 마지막 대화 내용은 서로 떨어져 있어 상대가 그리워서 서로에게 만남을 약속한다는 것이다. 남자는 “그대의 목소리를 들려다오”(13절) 라고 요구하고, 여자는 “당신은 내게로 달려오라(14)”라고 한다. 서로에 대한 사랑이 여전하다. 한편, 여자는 남자에게 노루와 어린 사슴처럼 향품이 가득한 산들(향기로운 산)로 달려오라고 하는데, 이는 여자의 아름다움과 관련된 신비로움, 즐거움을 암시한다. 노루와 어린 사슴은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남자에게 서둘러 달려오라는 요청에서 부부간의 사랑이 여전함을 살필 수 있다.
아가서는 서로를 그리워하여 상대를 초청하고 만남을 고대하는 남녀의 장면으로 끝나는 것은 남녀의 사랑이 소통을 통해 지속됨을 암시하고 둘이 고대하는 만남과 연합이 이상적인 사랑의 결과임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신앙생활에 적용하면 성도는 기도와 찬양과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끊임없는 소통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성령과의 하나가 되므로 선한 행실을 추구하고(엡 4:3; 롬 8:26; 고전 12:7), 신랑이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열망(딤후 4:8; 계 22:20)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나는?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돈보다 귀하다. 두 사람의 사랑은 거친 들의 험난한 시간을 견디고 이룬 사랑이다. 마음만이 아니라 온몸의 사랑이다. 변하지 않는 그 사랑은 세상 그 무엇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으며, 여인의 안과 밖에 새겨진 사랑이다. 죽음이 생명을 끊을 만큼 강하지만 사랑은 끊을 수 없다. 그 사랑에서 나온 질투는 스올처럼 잔혹하다. 그 사랑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기에 억만금을 준다 해도 살 수 없다. 매매하는 사랑, 거리를 둔 사랑, 조건의 사랑, 거래의 사랑은 참사랑이 아니다. 기대 이상의 사랑, 예기치 않은 사랑, 조건 없는 한결같은 사랑이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사랑이요, 우리가 해야 할 사랑이다.
-오빠들이 볼 때 누이는 아직 결혼을 감당할 만큼 영글지 않았다. 오라비들에게 누이는 보호와 봉쇄의 대상일 뿐이었다. 하지만 여인은 자신이 결혼할 만큼 충분히 성숙했고(망대와 같은 가슴), 절개를 잘 지켰으며(성벽), 남편에게 샬롬, 즉 만족과 행복을 주는 복의 통로가 될 준비가 다 되었다고 자신한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만큼 성숙해 있는가? 나의 신랑이 되신 주님께 평화를 선물할 만큼 성숙해져 있는가?
-남자는 자신의 친구들마저 애인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고 하면서 자신에게 목소리를 들려달라고 부탁한다. 이에 여자는 향기로운 산들의 노루처럼, 어린 사슴처럼 속히 뛰어 내려와 자신에게 와달라고 요청한다.
-아가서는 이렇듯 서로서로 갈망하고 기다리면서 끝을 맺고 있다. 신랑이 되신 우리 주님이 오실 날을 기다리는 우리 성도의 삶도 이와 같다. 그날을 열망하면서 신랑의 영접을 받기에 합당한 흠 없고 순결한 신부로 날마다 단장하고 있어야 한다.
*도장을 새기듯 그대의 마음에, 그대의 팔에 나를 새겨달라(6절) 변치 않는 사랑, 보증된 사랑을 노래한다. 마음에, 팔에 지닌 그 사랑은 어디를 가도 함께 할 사랑이며, 자신을 보증하는 사랑이라는 것이다. 또한 지울 수 없이 각인 된 사랑의 흔적이 마음에 있기에 어떤 사랑과도 대체 할 수 없는 순전하고 순전한 하나뿐인 사랑인 것이다. 팔에 새긴 사랑이기에 늘 드러나는 사랑을 노래한다. 주님께서 나의 이름을 사랑하심으로 주님의 마음에 새겨 주셨다. 주님만이 보증되시는 구원의 사랑, 그 흔적을 새기시지를 기꺼이 십자가를 통해 그의 몸에 새기셨다. 나를 위해 흘린 피의 창 자국…. 나를 사랑하셔서 새겨 주신 구원의 도장이다. 아가서의 여인은 그런 사랑을 노래하며 소망하지만 나는 이미 그 사랑을 받았다. 주님의 마음에 새겨진 사랑의 보증 안에 내가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사랑을 팔에 새겨 주셨다. 새기다 못해 아예 구멍이 뚫려버린 주님의 못 자국을 이미 나에게 사랑의 인장으로 보여주셨다. 주님의 못 자국은 모든 이들에게 보이신 하나님 사랑의 흔적이다. 신부는 늘 자신과의 사랑을 드러내 달라며, 변치 말아 달라며 노래했지만, 변치 않을 주님 사랑의 증거로 나는 그 사랑을 누리고 있다.
*어떤 것으로도 끄지 못하는 사랑의 불길(7절) 신부가 신랑에게 사랑의 힘에 대하여 노래한다.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스올같이 잔인하며 여호와의 불과 같이 일어나니(6절) 많은 물도, 홍수도 끄지 못하고 삼키지 못한다. 죽음같이 강하고, 스올같이 잔인하며…. 주님의 십자가 사랑이 그랬다. 신부는 신랑의 사랑이 어떤 거센 고통이 몰려오더라도 결코 우리의 사랑을 깨지 못할 것이라고 노래한다.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게 한다. 바울의 주님을 향한 사랑 찬가가 아가서에 익숙한 그에게 어색하지 않았으리라(고전 13장).
*사랑의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다고 노래한다. 누가 여호와의 불을 끌 수 있겠는가? 어떤 인간도 하나님의 이 사랑의 불을 끄지 못했다. 주님의 열렬한 십자가로의 사랑의 걸음을 누구도 막지 못했다. 제자들, 따르는 무리들, 백성들, 제사장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심지어 로마 군인들도 이 세상을 향한 사랑의 걸음을 제지하지 못했다. 하나님 아버지의 꺼지지 않는 불같은 이 사랑을 그 누구도 끄지 못했다. 그 사랑이 나를 죄에 대하여 소멸시켰고, 사랑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였다.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사랑(7절) 이 사랑은 내가 원해서 나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도 살 수 없는 것이다. 오직 신랑이 사랑해 주어야 그 사랑을 누릴 수 있다. 신부는 이 사랑을 알았다. 그래서 이 사랑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내가 받은 사랑의 가치를 알 때 사랑을 지킬 수 있다. 내가 사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을 받는 것이다. 아가서의 신부는 신랑에게 사랑을 받을 만한 조건이 전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신랑은 그 신부가 좋단다. 사랑스럽단다. 그 사랑을 일관되게 고백한다.
*내가 먼저 주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먼저 사랑하여 주셨기에 내가 그 사랑을 알았다. 주님이 나를 먼저 사랑해 주시지 않았더라면 결코 알 수 없었던 하늘의 사랑이다. 그 하늘의 사랑을 알았으니, 그 사랑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늘 그 사랑을 누리고 싶고, 그 사랑을 지키고 싶다.
*주님,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사랑하며 걸어가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헛되이 하지 않고 사랑에 반응하며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