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말씀을 지키려고 발버둥 칠 때 그 말씀이 나를 지켜주실 것을 신뢰하기에…. [시편 119:1-16]
 – 2025년 05월 01일
– 2025년 05월 01일 –

여호와의 율법을 사랑하고 지키는 자가 얼마나 행복한가! 시인은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그가 주신 계명을 즐거워하고 그 계명에 주의하며 따르길 소망한다. 또한 이런 소망을 실행할 수 있도록 시인은 끊임없이 하나님께 가르침과 인도를 구한다.

시편에서 가장 긴 시인 119편은 여덟 절씩 스물두 개의 단락으로 총 176절을 이룬다. 이 시는 알파벳 시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매 단락은 히브리어 알파벳 스물두 자의 순서를 따르므로 첫 단락의 여덟 절은 모두 첫 글자인 “알레프”로 시작하고 둘째 단락은 두 번째 글자, 셋째 단락은 세 번째 글자, 이런 식의 순서대로 진행되다가 마지막 단락은 마지막 글자 “타우/타브”로 끝난다. 이 형식을 이용하여 시편 119편은 하나님 말씀을 주제로 잡아 오직 이 주제에 집중하고 이 주제를 강화하는 장점을 살렸다. 대신, 알파벳을 맞춰야 하는 어려움이 따르므로 내용상 흐름이 일반 시보다 매끄럽지 않은 단점이 있다.



1. 알레프(첫 번째 히브리어 알파벳) _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자의 행복(1~8절)
시인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의 행복을 선언하며 시를 시작한다. 1, 2절의 “복이 있음이여”와 “복이 있도다”로 번역된 단어는 “얼마나 행복한가!”라는 뜻인데, 히브리어 문장에서는 첫 단어로 나와 있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상대방에 대한 부러움을 표현할 때나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과 축복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다(신 33:29; 왕상 10:8; 욥 5:17; 잠 4:21 등). 본 시에서는 후자에 해당한다. 시인이 행복의 예로 가장 먼저 언급한 사람은 행위가 온전한 자들이다. “행위”는 “길”의 번역으로 한 사람의 행위를 포함하여 삶의 태도나 방향 인생의 여정 등을 나타내는 포괄적인 용어이다. “온전한 자들”이란 흠 없고 완전한 자라는 의미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온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시인은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고 살 때 가능하다고 알려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통해 백성에서 원하는 삶이 “거룩한 삶”임을 선포하셨다(출 19:6). 또한 4절에서 설명하듯 하나님이 직접 여러 율법을 정해주셨고 열심히 지키도록 명령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지시한 말씀에 순종한다면 불의를 행하지 않을뿐더러(3절),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 또 시인은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데 필요한 근본적인 태도가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온 마음으로 여호와를 찾는 것이다. 즉,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 있어야 말씀을 따를 수 있고, 그럴 때 삶은 온전한 상태에 이를 수 있다.

한편, 시편 119편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보여주는데,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켜 “율법(1절; 법: 29절), 증거(2절; 교훈: 22절), 법도(4절), 율례(5절), 계명(6절), 판단(7절; 규례: 13절), 말씀(다바르; 9절), 말씀(임라; 11절)”과 같이 여덟 가지 단어로 표현한다. 이 단어들은 제각기 특정적인 의미가 있어, 하나님의 말씀이 가진 다각적인 의미와 다양한 영역을 표현한다. 이 다양성이 시에 적용되어 시적 재미와 아름다움도 제공한다. 다양성과 동시에 이 단어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통일됨으로써 단어 간의 연결성과 결속성도 드러낸다. 이를 염두에 두어 각각의 의미를 살려 이해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단순화하여 이해해야 한다.

5~8절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는 시인의 의지와 간구를 피력한다. 시인은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하여 자기 의지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알고 있다. 5절의 “내 길을 굳게 정하사 주의 율례를 지키게 하소서”를 직역하면 “내 길들이 당신의 율례들을 지키는 데 견고하다면”으로 하나님 뜻을 따라 살고 싶은 시인의 소망이 담겨 있다. 동시에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일의 어려움과 인간적인 연약함이 내포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계명이나 판단 등 “의로움”이 대표적인 속성으로 나타난다(7절). 이는 정의의 하나님 속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은 불의에서 멀어지고 의와 공평과 정직 등 하나님의 속성에 가까워진다. 시인은 이 같은 하나님의 의로운 말씀을 배울 것을 다짐한다. 이런 배움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 말씀이 그를 의로 인도할 것이므로 시인도 거짓이나 가식이 아닌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가르침에 감사하게 될 것이다. 그런 후에 시인은 그가 배운 말씀을 조심스럽게 실천하리라 마음먹는다. 시인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단계마다 하나님이 연약한 자신을 내버려두지 않고 함께하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한다.



2. 베트(두 번째 히브리어 알파벳) _ 하나님 말씀과 정결한 행실(9절), 즐거움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10~16절)
히브리어 알파벳 두 번째 글자로 시작하는 이 단락은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라는 시인의 질문과 그에 대한 시인의 대답으로 시작한다. 9절의 “그의 행실”에서 “행실”은 1절의 “행위”와 단어는 다르나 똑같이 “길”이란 뜻도 있다. “깨끗하게 하다”는 “육체적으로 또는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하다”, “씻다”의 의미다. 청년으로서의 정결한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길잡이로 삼고 그 말씀을 실천할 때 가능하다. 9절에서 대답으로 제시된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는 “당신의 말씀대로 (행실을) 살핌으로”으로도 번역이 가능하다. “지키다”라는 동사는 “순종하다”라는 뜻 외에도 “살피다”, “주의하다”의 뜻이 있다. 그러므로 이 대답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행실을 깨끗하게 한다는 의미와 자기 행실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주의 깊게 살핌으로써 깨끗하게 한다는 의미 둘 다를 내포한다.

10~16절은 즐거움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고백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하면서 이를 지키는 방법은 무엇인가? 시인은 기본적으로 마음의 태도를 갖추고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고 말한다. 먼저,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는 태도가 필요하다. 시인이 2절에서 하나님을 찾는 자의 행복을 진술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미 하나님을 찾아 행복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찾는 태도는 무엇인가? 첫째, 신명기 6:5이 설명하듯, 무엇보다 온 마음과 온 성품과 온 힘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신 6:5).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한다. 성도는 스스로 성경을 읽거나 다른 이를 통해서 말씀을 배울 수 있으며, 언제든 하나님으로부터의 가르침, 즉 성령을 통한 지혜와 깨달음도 필요하다. 셋째, 하나님 말씀의 소중함을 알고 마음에 두어야 한다(11절). “마음에 두다”와 비슷한 “마음에 새기다”라는 표현은 말씀을 기록하라는 뜻으로써 말씀을 잊지 말라는 의미를 강조한다(신 6:6; 렘 31:33). 반면, “마음에 두다”에서 “두다”는 “숨기다”의 뜻이므로, 이 표현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 깊이 감추어 귀하게 여기며 보호하는 의미를 강조한다. 넷째,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한다고 고백한다(14, 16절). 성도는 시인처럼 말씀의 속성과 그 가치를 알고 인정함으로써 자발적인 기쁨을 가질 수 있다(시 1:2). 다섯째, 하나님의 계명에서 길을 잃어 타락하지 않도록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10절). 여섯째,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하여 실천해야 한다. 에스겔 선지자가 외치듯, 하나님이 성도의 마음을 부드럽게 다듬어주고 성령을 그 속에 두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도록 도우셔야 하나님 말씀을 실행할 수 있다(겔 36:26~27). 일곱째, 하나님 말씀을 읊조림으로써 그 내용을 상기하며, 행동으로 몸에 배도록 한다. 밤낮으로 말씀을 읊으며 그 말씀을 즐거움으로 삼은 행복자가 좋은 예시다(시 1:2).

이런 방법들을 통해 하나님이 진정으로 성도에게 바라는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므로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죄짓는 일을 피해 갈 수 있다. 또한 본인 스스로 하나님을 찬양할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하나님께 배운 모든 규례를 선포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선포된 말씀을 들은 다른 이들도 깨끗하고 정결한 인생길을 걸어가며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된다.



나는?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자다. 그 말씀이 오늘도 나를 창조하도록 내맡기는 일, 그것을 순종이라고 한다. 생명은 바로 그 말씀을 따라 창조되는 곳에만 있다. 그곳에서 인간은 인간다워지고 하나님은 하나님다워진다.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며, 하나님 나라가 든든히 선다.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곧 여호와를 구하는 생명의 삶이다.

-시인은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이 순종하는 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일을 중단하지 않기로 한다. 그 말씀의 약속을 신뢰하기로 한다. 결코 하나님이 말씀을 지키는 자신을 버리거나 부끄럽게 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닥치는 환난은 결코 하나님의 무능이나 혹은 믿음의 무익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기회다. 말씀의 권능을 확인할 기회다.

-무엇이든 내 힘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청년의 때에도 범죄하지 않고 주를 떠나지 않는 길은 여호와의 말씀을 떠나지 않고 지키는 것뿐이라고 고백한다.

-오직 주님만 찬송을 받으실 분인 것을 기억하기 위해 말씀을 배우고, 심비에 두며, 입술로 선포하고,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말씀이 제시하는 길을 주의하여 걷고, 즐거이 준행하여 잊지 않겠다고 고백한다. 재물보다 말씀을 더 즐거워하는 자가 되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 자신이다. 그 말씀을 행할 때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하나님은 내가 말씀을 지키도록 내 마음을 지켜주실 것이다. 내 삶의 살길은 하나님 말씀(율법)임을 기억하여 “말씀을 지킬 때 말씀이 나를 지켜주심”을 신뢰하며 말씀을 붙들며 나아가리라.

*”나를 아주 버리지 마옵소서”라는 고백이 공감된다. 환난 중에도 끝까지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간직하겠다는 각오를 다질 테니 하나님께서도 약속을 지켜달라고 간구한다. 이것이 바로 언약이다. 환난을 당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환난이 죄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인은 늘 모든 계명에 주의하며 살았다고 고백했다. 그렇기에 당당하게 주께서 의롭게 판단하실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한다. 그때는 시인이 가장 먼저 감사할 날이 될 것이라고도 한다. 이야… 얼마나 당당한가! 말씀 앞에 부끄럽지 않은 자만의 고백과 태도가 아니겠나! 나도 이런 태도로 살아가리라.

*젊음이 가지는 특징은 “자신감”이다. 아직 자기 한계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는 권위를 인정하거나 고개를 숙이는 일이 정말 힘들다. 하지만 시인은 청년의 때에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한다. 대충 대충이 아니라 전심으로 따랐다고 고백한다. 잠시가 아니라 마음에 두고 내내 따르겠다고 다짐한다. 더 나아가 자신이 다 알고 있다고 여기지 않고 주님께 가르쳐달라고 간청까지 한다. 시인에게 하나님은 찬송 받기에 합당하고 마땅히 순종해야 할 분이기 때문이다.

*청년의 때일수록 창조자를 기억하는 것이 얼마나 큰 겸손인지 깨닫는다. 자기 인생에 대한 자신감이 보기 좋은 시기이지만, 지나친 자신감은 오히려 걸어가야 할 삶의 걸음을 가볍게 여길 수 있다.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하루하루를 감사함으로, 겸손하게 감당하며 말씀을 의지하며 살아가리라.

*시인에게 하나님 말씀은 단지 공부하고 준수하는 대상이 아니다. 자랑의 대상이다. 말씀을 지킬수록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며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인이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하는 방법을 나의 삶에도 더욱 적용해야겠다.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늘 곁에 두겠다. 그 말씀이 이끄는 대로 주의 길을 주의하여 따라가리라. 말씀을 잊지 않기 위해 입으로 읊조리고 행동으로 순종하리라. 그렇게 오늘도 하나님 말씀과 동행하리라.

*말씀을 지키려고 발버둥 칠 때 그 말씀이 나를 지켜주실 것을 신뢰하기에….



*주님, 마음으로 말씀을 찾겠습니다. 묵상하는 여정에서 하나님 말씀을 더욱 즐거워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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