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말씀의 힘과 권능으로 충분히 살아낼 나그네 인생 [시편 119:17-32]
 – 2025년 05월 02일
– 2025년 05월 02일 –

119편은 토라(율법)와 다양한 교훈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지혜시로 분류되지만, 내용은 탄식과 탄원, 애가의 요소도 포함한다. 특히 “김멜”로 시작하는 17~24절의 내용이 이에 해당한다. “달렛”으로 시작하는 25~32절도 애가의 특징이 자유롭게 어우러져 있고, 불평과 간청, 신뢰의 고백들이 아우러져있다. 이에 근거하여 본 단락은 박해를 당하는 공통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파악할 수 있도록 깊은 통찰력과 구원을 호소하는 시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사람들의 비방과 멸시 속에 고통받고 있는 시인은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저버리지 않는다. 그는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의 구원을 바란다.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제대로 가르침을 받아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선택한다.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은 기쁨이요 조언자다.

 

1. 김멜(세 번째 히브리어 알파벳) _ 하나님의 호의로 말씀을 깨닫기를 간구하며(17~20절) 말씀을 즐거움으로 삼는 삶(21~24절)
시인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관대하게 대하시기를 바란다. 그래야 자기가 소생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있다고 말한다. 시인은 자신을 “주(당신)의 종”이라고 부른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주인이고 자신은 그분의 소유자이자 종임을 상기한 것이다. 시인이 하나님과 이렇게 떨어질 수없는 존재임을 호소함으로써 하나님의 긍휼과 호의를 구한다. 시인은 하나님의 너그러운 처사가 있어야만 살 수 있다고 고백한다(살게 하소서_17절). “살게 하소서(하야)”는 단순히 육체의 생명 연장을 의미한다기보다, 이어지는 고백처럼 고난에서 벗어나 영적 생명을 되찾고 평안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며 사는 믿음 생활로의 회복을 의미한다.

시인의 하나님 말씀에 대한 사랑이 이토록 절실하다. 하나님의 종으로 소개한 다음에는 자신이 땅에서 나그네인 점을 언급하며(19절) 하나님의 호의와 은혜를 구한다. 시인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나그네인 자신을 보호하고 필요를 공급해주시기를 바란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에 관해 호의를 내려주시기를 바란다. 또 하나님께서 자신의 눈을 열어 율법에서 놀라운 것들을 보게 해달라고 간청한다(18절). 율법에서 발견할 수 있는 놀라운 일들은 하나님이 세계와 나라와 인생에게 행하신 놀라운 구원과 기적의 사건 및 하나님의 놀라운 성품 등을 가리킨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그의 계명을 감추지 말고 자기에게 깨닫게 해주시길 간구한다(19절). 왜냐하면 시인이 하나님 말씀을 계속해서 지킬 수 있기를 바람에서다.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사랑하고 그리므로, 시인은 마음이 상하여 상사병을 앓는다(20절).

시인은 자신 주변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난 자들을 하나님이 꾸짖은 사실을 떠올린다. 시인 눈에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들로부터 길 잃고 타락한 자들로서 교만하고 저주받은 자들이다(21절). 이들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으며, 악을 행하는 이들이다. 이들 가운데 있는 시인은 하나님께 자신이 처한 곤경에서 구해 달라고 간구한다. 하나님 말씀에서 떠난 자들과 달리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했고, 말씀대로 실천했다. 시인은 자기 자신도 자칫 잘못하면 그들처럼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서 멀리 떠나 타락할 수 있는 연약한 존재임을 이미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시인은 하나님을 “전심(온 마음)으로” 찾았고(2, 10절), 하나님께 자신이 하나님의 계명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하나님께 순종한다고 해서 고난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시인 주변에 있는 자들은 이런 시인을 못마땅하게 여겨 그를 비방하고 멸시했다. 고관들조차 그에 대한 나쁜 말을 주고받았다. 시인은 이런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인다. 또한 자기를 비방하는 자들에게 응대하여 죄 짓기보다는 하나님의 율례에 자기 생각을 집중하는 지혜로운 길을 택했다. 시인은 이런 자신을 다시 “주의 종”이라고 부르며(17, 23절), 주인이신 하나님이 자기가 그분의 소유임을 기억하시고 긍휼을 베푸시기를 원한다.

시인에게 있어서 하나님 말씀은 기쁨이자 조언자다. 그의 마음은 부서지고 상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 말씀에 대한 사랑과 기쁨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미 14절에서 온갖 재물을 기뻐하듯 하나님의 율례를 기뻐한다고 고백했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귀한 보배나 풍요로운 재물보다 더한 가치가 있음을 이미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 말씀은 시인의 “조언자”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지속적으로 의롭고 지혜로운 삶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지도해준다. 이 길을 기뻐하며 그 조언을 따르는 시인은 하나님의 지혜로운 종임에 틀림없다.

 

2. 달렛네 번째 히브리어 알파벳) _ 하나님 말씀으로 소생하기를 간구하며(25~28절) 하나님 말씀을 선택한 시인(29~32절)
하나님 말씀은 육체만 아니라 영혼까지도 소생시킨다. 시인은 이 점을 알므로 슬픔 중에도 하나님이 그분의 말씀대로 자기를 소생시키시기를 바란다. 시인은 자신의 상황이 영혼이 진토에 붙었다고 표현하는데(25절) 이는 “진토(아파르)”는 “티끌, 먼지, 흙”의 뜻으로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비천하고 낮은 처지를 의미하고, 한편으로는 사람이 죽어 다시 돌아가는 재료이기에 죽음도 암시하기도 한다. 즉 시인의 비천함과 죽음에 가까운 상황을 빗댄 것이다.

또 시인은 영혼이 눌림(슬픔, 28절)으로 인해 물이 새듯이 눈물을 흘린다고 고백한다. 앞 단락(17~24절)에서 시인은 비방과 멸시 속에 있으므로 슬픔과 고통과 외로움과 절망의 상태에 놓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 상태에서 소생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소생되기를 원한다고 고백한다는 점이다. 시인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지키려 하므로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는 자를 보호하실 것이라는 약속(사 41:10; 시 145:18~20)에 따라 하나님이 자신을 회복시키시기를 기대한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헌신이 시인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한다. 시인은 이 친밀함 속에서 하나님의 가르침과 깨달음을 간구한다. 말씀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27절, 18절)을 깊이 생각하고 묵상하기 원한다. 시인은 이렇게 말씀에 사로잡혀 있다. 말씀에 사로잡힌 시인의 삶을 하나님은 말씀의 약속대로 시인을 일으켜 세우실 것이다.

29~32절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한 시인을 노래한다.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살기 위해서는 지혜로운 선택이 필요하다. 시인은 “거짓 행위(거짓의 길. 29절)”에서 떠니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거짓인지, 참인지를 분별해야 하므로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쳐 주시기를 애원한다. 시인은 거짓과 불의의 길 대신 성실과 하나님의 규례를 택한 것이다(30절).

31절의 “내가 주의 증거들에 매달렸사오니”라는 표현에서도 시인의 마음가짐을 발견할 수 있는데, “매달리다(다바크)” 동사는 25절의 “붙었다(다바크)”와 동일한 단어로서 두 절의 대조적인 연결성을 보여준다. 즉, 영혼이 진토에 붙어 죽을 것 같은 상황(25절)에서도, 시인은 하나님의 증거들에 끈질기게 붙어 있음을 나타낸다(31절).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매달리므로 말씀을 어기거나 수치를 당하지 않기를 간구한다.

시인은 인생이란 길에서 그 푯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삼고, 그것을 향해 전심으로 질주할 것을 다짐한다(빌 3:13~14). 그러기 위해서 여전히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넓혀주셔야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시인에게 가르침과 깨달음(26, 27절)을 주셔야 한다는 의미다.

 

나는?
-시인은 자신을 땅의 나그네로 여긴다. 이는 하나님의 후대하는 은총이 있어야만 살 것 같은데 주의 말씀이 들리지 않고 주께서 숨으신듯 보인다. 시인은 주께서 넉넉한 은총으로 살게 하신다면, 눈을 열어서 이 상황을 언약의 관점으로 해석해낼 수만 있다면, 그 말씀을 따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침묵하시는 하나님, 숨으시는 하나님, 멀리 계신 하나님을 붙들고 싶어서 마음이 상할 정도였다.

-우리의 삶 속에서 고난이 너무 큰소리치지 않게 해야 한다. 조급하게 고난 가운데 직면하는 일의 의미를 만들어내려고도 하지 않아야 한다. 오직 주님께서 내 자신을 말씀으로 드러내시기를 구하여야 한다. 이 땅의 나그네와 같은 자신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한다.

-시인은 저주를 받아 계명에서 떠난 자들, 교만한 자들에게서 비방과 멸시를 받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자신이 기준이 된 인생들이다. 힘을 숭상하는 자들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조롱하고 무시하고 있을 때, 시인은 주의 말씀을 읊조리고, 그 말씀의 충고를 들으며, 그 말씀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면서 고난의 때를 보내고 있다. 그랬기에 스스로 앙갚음하지 않고 주께서 꾸짖으시도록 맡겨드린다. 이렇게 하여 악인들의 힘을 부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주의 말씀을 지킬 수 있었다.

-한편, 시인은 악인들의 비방과 멸시로 인해 영혼이 진토에 붙을 만큼 기력이 쇠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이 상황을 재해석할 수 있게 해주신다면,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기 영혼이 눌려서 녹을 것 같았지만, 끝까지 악인들의 거짓에 동참하지 않고 주의 증거들에 매달리기로 한다. 주께서 이런 두려움과 놀람으로 쪼그라든 마음을 넓혀 시인이 순종의 길로 달려가게 해달라고 구한다. 주의 말씀을 깨닫도록 가르쳐달라고 간구한다. 말씀의 은혜가 하나님의 사람들을 살게 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말씀이 들리지 않고 깨닫지 못하는 상황에서 더욱 듣고싶고, 때닫게 해달라고 적극적으로 주님을 찾는다. 자신을 나그네로 표현하며 위태로운 삶의 상황을 빗대고 하나님의 후대하시는 은혜가 아니면 살아낼 수 없음을 간절하게 간구한다. 그런데 살아낼 수 있는 은혜를 “말씀을 깨닫는 것”에서 찾는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해석할 수 있도록 말씀을 통해 놀라운 것을 보여달라고 간구한 것이다.

*시인의 심정은 자신의 상황에서 주의 말씀마저 자신이 깨닫지 못할 정도로 답답하면 피할 곳이 없다고 몸부림 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아직 그 말쓰밍 시인에게 오지 않아 마음이 상한 상태일수도 있겠다. 침묵하고 계시고, 숨어계신 하나님, 멀리 계신 하나님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절히 매달리고 붙들고 싶은 것이다.

*삶의 문제가 드러나고 그 문제가 삶의 모든 것을 덮어버린 듯한 절망의 순간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문제의 의미를 깨닫게 하고 마땅히 떨쳐 일어설 수 있게 한다고 고백하는 시인의 고백이 곧 나의 고백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도록, 가르쳐 달라고 간구하며, 그래서 더는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해달라는 시인의 외침이 큰 도전이 된다. 오늘 나에게도 이 말씀의 은혜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 땅에서 살게 하실 것이다. 말씀은 영혼이 진토에 붙고, 눌려서 녹을 지경이 되었을지라도, 쇠할대로 쇠한 형편이라도 충분히 살 길을 열어 주신다. 말씀을 통해 약속을 주시고, 희망을 깨닫게 하고, 시인이 이 땅에서 더 살아야 할 이유를 알게 하시면 절망하지 않게 될 것이다. 끝까지 악에게 동참하지 않고 주의 증거들에 매달리게 될 것이다.

*이것이 말씀이 주는 위로와 힘, 권능이다.

*본문의 시인에게서 놀라운 점이 보인다. 시인이 하나님께 조건을 제시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그 조건이라는 것이 “자기 이익”이 아닌 “말씀에 대한 간절한 사모함”이다. 17절에서는 자신을 너그럽게 대해달라고 요청하며 그래야 자신이 활력이 넘치게 살아가며 주님의 말씀을 지킬 수 있겠다고 고백한다. 또, 34절에서는 자신을 깨우쳐 달라고 간구하며 그렇게 해주시면 주님의 법을 살피며 온 마음을 기울여 살겠다고 다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간절한 마음을 피력하는 시인의 모습이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단지 고난을 벗어나가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일상에서 그저 말씀대로 살아내고 싶은 갈망이었다. 그 갈망을 하나님께 토로하며 말씀대로 살아낼 힘을 달라고 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삶이 “기쁨을 누릴 유일한 길”임을 고백한다(35절).

*깨달음을 주십시오. 그래야 주님 뜻대로 살 수 있습니다. 활력을 주십시오. 그래야 주님의 말씀을 끝까지 붙들 수 있습니다. 이런 시인의 고백이 나의 삶에서도 고백되어지기를 소망한다. 특히나 시인의 고백처럼 이 세상 속에서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아내는 하늘 백성이기에 더욱 더 그렇다. 하나님의 백성이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내야하지 않겠는가!

 

*주님, 말씀의 힘으로 나그네 같은 인생길을 담대히 살아내겠습니다.
*주님, 깨달음과 활력을 주십시오. 주님 말씀을 끝까지 붙잡고 살아내도록 반드시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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