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가르쳐 주시고, 깨우쳐 주시며, 걷게 하고, 말씀에 몰두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 [시편 119:33-48]
 – 2025년 05월 03일
– 2025년 05월 03일 –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깨닫고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수적이다. 시인은 이 점을 인식하고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지도해 주시기를 부단히 간청한다. 시인에게 있어 하나님 말씀은 자유와 즐거움을 주며, 그를 구원과 회복으로 이끄는 생명의 말씀이다.



1. 헤(다섯 번째 히브리어 알파벳) _ 하나님의 가르침 안에서 회복을 간구함(33~40절)
33~37절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간구하는 시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시인에게 하나님은 가르침을 주는 교사다. 시인은 배우고 깨닫고 실천하는 모든 단계에 있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존한다. 잠언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또는 스승이 제자를 가르치듯이(잠 1:9; 4:4), 시인은 먼저 하나님께 그의 말씀을 자기에게 가르치시기를 요청한다(33절). 하나님의 가르침을 통해 얻어야 할 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다. “깨달음(빈)”이 포함된 교육이다. “깨달음”은 “식별하다, 분별하다, 지각하다, 이해하다”의 의미가 있다. 시인은 말씀의 깨달음을 주시기 요청한다(34절). 하나님의 명령이나 규례의 내용을 배워 기억해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명령이나 규례가 이끄는 길(33, 35절)에 대한 구체적 이해와 판단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깨달아진 말씀을 따라 시인이 걸어가도록, 즉 배운 대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은혜도 함께 구한다(35절).

시인이 말씀을 따라 사는 과정은 호락호락하거나 단순하지 않다. 그러므로 시인은 마음과 눈의 방향을 지켜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한다. 시인이 고정해야 할 시선은 탐욕(불의한 이득)이 아니라 하나님의 증거들이다(36절). “향하다(나타)” 동사는 손을 뻗거나 몸을 굽히는 등 적극적인 동작을 가리키며, 이는 시인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히 쏠려야 함을 표현한다. 37절의 “허탄한 것(샤우)”은 “헛됨, 거짓, 속임”의 뜻을 가졌는데, “우상”을 가리키기도 한다. 우상이든 거짓이든 헛된 것이든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거슬리는 공통점이 있다. 시인이 이런 허탄한 것을 보는 행위에서 지나가게 해달라고 요청하듯, 일상에서 하나님 말씀에만 집중하고 불의나 헛된 것을 목격하거나 경험할 때 그것에 무관심하거나 무시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므로 시인은 자기의 마음과 눈까지도 하나님이 주관하시도록 맡긴다.

시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목적은 그 말씀을 지키는데 있다. 시인의 이러한 각오는 “끝까지 지키리이다(33절)”와 “전심으로 지키리이다(34절)”의 다짐에서 잘 드러난다. “끝까지(에케브)”로 번역된 단어는 “결과, 상”의 뜻이기에 이 뜻을 적용하면 상을 받을 때까지, 끝을 볼 때까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단호한 결의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길을 시인은 “즐거움(하페츠)”으로 표현한다. 시인이 단호하게 결정한 길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자발적인 반응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시인이 이렇게 말씀 자체에 대한 즐거움과 말씀을 순종하는 기쁨을 이미 여러 차례 표현하였기에(14, 16, 24절) 새삼스럽지 않다. 시인이 얼마나 하나님 말씀에 즐거워하는지 충분히 공감이 간다.

38~40절은 하나님 말씀 안에서 회복을 간구하는 시인의 모습이 표현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를 소생시키고 회복하는 생명의 말씀이다. 시인은 반복하여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37, 40절)”라고 간구한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길과 공의 안에서 살아나기를 바란다. 이는 시인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사는 동안에 하나님은 전에 말씀을 통해 그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를 회복시키시기를 바란다는 의미다.

“주의 말씀을 주의 종에게 세우소서”라는 간구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그를 경외하는 자를 위해 말씀을 주셨으므로 그 약속의 말씀을 자신에게 이루어달라는 뜻이다. 현재 비방과 멸시 속에서 두려움도 느끼고 있으므로(39, 22, 23절), 시인은 하나님이 약속하는 말씀대로 자신을 비방에서 자유롭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그들의 비방은 거짓에서 나왔으므로(69, 78절), 시인은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하나님이 약속하는 말씀은 선하고 시인은 그 말씀을 사랑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로운 해결책은 시인을 이 모든 고통에서 건져 소생시키는 것이다.



2. 바브(여섯 번째 히브리어 알파벳) _ 간구와 순종, 그리고 사랑(41~48절)
41~42절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인자와 구원을 보내달라고 간청한다. 시인은 자신을 비방하는 자들에게 자기의 지식이나 힘으로 맞서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만을 의지한다. 시인을 비방하는 자들은 그에게 거짓을 말하지만, 시인은 정직과 의의 대답을 줌으로써 그들에 맞설 수 있다.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이와 같은 주의 인자한 성품과 그분이 구원하는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43절에서 시인은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라고 고백한다. “떠나지 말게 하소서”로 번역된 동사를 직역하면, “잡아채지 마소서”, “끌어내지 마소서”라는 간구다. 하나님 말씀은 진리의 말씀이므로 일부라도 잃고 싶지 않으며 그 말씀을 계속 입으로 전할 것이라는 시인의 의지가 담겼다. 의와 진리의 말씀은 그의 의지하는 대상이므로, 시인은 이를 절대로 놓치지 않을 것이다.

44~46절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겠다는 시인의 고백은 말씀을 항상, 영원히 순종하겠다는 헌신과 의지를 드러낸다. 시인이 이처럼 하나님의 법도들을 찾아 실천하므로, 그는 거리낌 없이 자유로이 행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왕들 앞에서라도 하나님이 주신 증거들을 담대히 말할 것이며, 이에 따라 부끄러움을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47~48절에서 시인의 말씀에 대한 사랑에는 진정성과 자발성이 있다. 그에게 있어 하나님의 말씀은 계명이든 율례든 어떤 형태로든 그가 사랑하는 말씀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에게 있으므로 하나님의 말씀 또한 사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시인은 하나님이 주신 계명들을 억지로나 외압에 의해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즐거워한다. 상이나 호의를 기대하기 때문에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므로 저절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기쁨이다. 하나님 말씀을 향한 시인의 사랑은 스스로 기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말씀에 대한 반응으로 이어진다. 그는 하나님의 계명들을 향하여 손을 들 것이고, 그의 율례들을 읊조릴 것이다(48절). “손을 드는 행동”은 보통은 하나님이나 성전을 향하여 손을 든 채 기도하는 경우(왕상 8:22; 시 141:2; 딤전 2:8), 사람들을 축복하거나(레 9:22; 눅 24:50) 하나님을 송축하는 경우(시 134:2), 하나님께 회개와 헌신을 표하는 경우(애 3:41~42), 하나님께 화답하는 경우(스 8:6) 등에서 일어난다. 이런 예는 시인이 말씀을 향해 손을 든다는 표현은 말씀에 대한 그이 헌신과 구체적인 화답으로 불 수 있겠다.



나는?
-하나님 말씀은 탐욕과 허탄한 것을 이기게 한다. 시인은 주께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깨닫게 하시면 자신이 끝까지 그 말씀을 지키고 전심으로 지키겠다고 고백한다. 그 말씀을 행하게 하실 때 참된 즐거움이 있고, 말씀이 주는 기쁨이 있을 때 마음이 탐욕으로 향하지 않으며, 시선을 허탄한 것, 즉 우상에게 빼앗기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신을 살아나게 할 것이라고 믿었고, 그것이 진정 살아있는 것임을 알았다.

-하나님 말씀은 두려움을 몰아내고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을 알게 하고 그분을 향한 참된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정말 두려워해야 할 분을 두려워할 때 나를 향한 세상의 비방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선한 말씀으로 채워질 때 악한 비방에 지지 않을 수 있다. 불의한 고난 속에서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대한 신뢰다. 언약을 이루어주실 그분의 능력과 지혜, 그분의 선하심에 대한 믿음이 우리를 살아나게 한다.

-하나님 말씀은 믿음과 자유를 준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인자를 베풀고 구원하시면 하나님 말씀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조롱하는 자들 앞에서 자신이 의지하는 말씀의 권능을 입증할 수 있겠노라고 말한다. 두렵고 위축된 마음에 즐거움이 찾아오고, 남들은 알아주지 않아도 그 입에서는 주의 말씀을 떠나지 않고 항상 지키며, 말씀을 묵상하는 삶을 이어갈 믿음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말씀의 성취가 시인을 자유롭게 하고 더 굳센 믿음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시인에게 주의 말씀은 즐거움이다. 가르쳐주시고 깨닫게 하셔야 알 수 있는 대상이다. 이 즐거움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자 하는 열망이다. 하나님 말씀을 따라 끝까지 지키고 전심으로 지킴으로써 철저히 하나님의 작품이고 싶어 한다. 마음에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즐거움을 가득하면 하나님이 없는 듯이 탐욕으로 향할 일 없고 허탄한 우상에게 시선을 빼앗길 수 없다. 주님의 길을 걸으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낸다.

*말씀은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한다. 하나님을 경외하게도 한다. 하나님을 즐거워한다. 믿음과 자유로움도 준다. 용기와 담대함도 준다. 그러니 대적으로 인한 두려움은 물러가고, 비방하는 자들에게는 의연하게 대답을 들려준다. 주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가득할 때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정의로우심에 나를 맡길 수 있는 것이다.

*약속(언약)을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 그의 선하심에 대한 신뢰가 우리의 오늘을 살아내게 한다. 말씀이 믿음의 살아냄을 응원한다.

*시인의 순수한 마음의 바람은 한순간이라도 그의 입과 마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지 않는 것이다. 항상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시인에게 말씀을 지키는 것은 생명을 만끽하는 것이요, 하나님과의 교제이기 때문이다. 현실이 아무리 녹록지 않아도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고 즐거워하며 늘 읊조리며 일상에서 말씀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이다.


*신앙의 즐거움의 기초는 무엇일까? 내가 간구하는 제목이 바뀌면 된다. 늘 자기중심성이 극대화된 시대에 살고 있지만, 하늘 백성은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변화된 존재들이다. 그런데 여전히 마음속에 자기중심성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공허한 신앙을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시인의 간구를 붙잡으면 좋겠다.

*내게 가르쳐 주십시오(33절), 나를 깨우쳐 주십시오(34절), 걷게 하여 주십시오(35절), 주님의 증거에만 몰두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치닫지 않게 해주십시오(36절) 이렇게 간구의 제목을 추구하다 보면 서서히 자기 중심성에서 하나님 중심의 내면으로 변화하게 된다. 간구 제목만 바뀌어도 인격이 변화된다.

*내가 말씀을 묵상하는 중요한 이유다. 나에게도 자기중심성이 왜 없을까? 그 유혹은 언제나 내 안에 두 마음을 품게 한다. 하지만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고, 깨닫게 하시는 나의 중심성을 계속 붙잡을 수 없더라. 더 나아가 말씀대로 하나님 중심의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나아가도록 힘을 공급하여 주심을 느끼게 되더라.

*나의 마음과 가치의 중심이 자기 중심성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유지되도록 “몰두하게” 하시더라. 그러니 묵상은 늘 기도와 함께 하는 것이어야 하고, 행함으로 이어져야 한다. 묵상의 전 과정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이런 의미에서 참된 기도는 말씀을 묵상하며 하는 기도일 것이다. 묵상을 통해 성령께서 깨닫게 하신 것을 기도하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이 곧 하나님과의 대화가 아니겠나!



*주님, 시인의 말씀을 사랑하는 마음, 누리는 마음, 기뻐하는 마음이 나의 마음이 되고 싶습니다.
*주님, 말씀이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게 하시니 그 말씀을 늘 붙잡겠습니다.
*주님, 나의 갈망을 자기중심성이 아닌 하나님 중심으로 이끌어주십시오. 늘 가르쳐주시고, 깨우쳐주시며, 걷게하고, 말씀에 몰두하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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