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말씀보다 귀한 것은 없다. 나의 사랑, 나의 가치, 나의 기업이자 기쁨! [시편 119:97-112]
 – 2025년 05월 07일
– 2025년 05월 07일 –
시편 119:97-112 말씀보다 귀한 것은 없다. 나의 사랑, 나의 가치, 나의 기업이자 기쁨!
    
하나님의 말씀은 지혜의 원천으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삶에 필요한 판단력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시인은 이 말씀을 토대로 의의 길을 걸을 수 있다. 그가 가는 인생의 여러 길에서 이 지혜의 말씀이 빛으로 조명해 주므로, 어떠한 위기를 만나도 말씀을 잊거나 떠나지 않는다. 시인은 끊임없는 율법에 대한 묵상으로 이어지는, 율법에 대한 애착을 강력하게 장담한다.
    
여호와의 계명은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기 때문에 시인을 지혜롭게 한다. 또한 악에서도 지켜준다. 꿀은 달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훨씬 달다. 시인은 자신의 스승보다 더 현명한 것이 말씀이라고 고백한다(97-104절). 삶은 여정이기에 시인은 종종 길을 걷는 것에 비유한다. 율법은 그 길을 걸으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며, 삶의 길을 밝혀준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함정과 덫을 피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105절). 또, 시인은 그렇기에 하나님의 율법을 따르겠노라고 헌신한다(106, 111~112절). 실제로 시인은 율법에 대해 더 배우기를 갈망한다(108절). 하지만 그의 삶은 고난으로 특징되기에(107절),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자신을 도와 달라고 간구한다.
    
    
    
1. 멤(열세 번째 알파벳) _ 지혜의 원천이자, 꿀보다 단 하나님 말씀(97~104절)
97~100절은 시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지혜의 원천이며 시인은 말씀을 통해 원수나 자신의 모든 스승과 노인보다 더 지혜로워졌다고 고백한다.
그 비결은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랑에 있다. 이 사랑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경외함이 전제가 된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에 쏟는 시간과 헌신에 있다. 하나님의 율법은 온종일 그의 관심사이자 묵상 거리였다(97절)는 고백이 이를 증명한다. 또 하나님의 계명들을 마음에 두고 항상 함께했다(98, 11절). “항상(올람, 98절)”은 “영원히”라는 의미다. 이런 표현은 말씀과 함께하려는 시인의 열망과 의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렇게 하나님의 계명이 옆에 있으므로 그는 원수들보다 지혜로워졌고, 원수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지 못하며, 그들 삶에 말씀을 가까이 두지 않았기 때문에 시인의 분별력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또한 시인은 종일 하나님의 말씀을 되씹고 읊조렸다. 55, 62절에서는 새벽이나 밤을 가리지 않고 말씀을 찾았다고 고백했기에 시인이 얼마나 말씀에 매료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럴수록 시인의 말씀에 대한 이해력, 분별력, 통찰력은 점점 더 커졌다. 그러므로 그의 모든 스승보다 말씀을 더 잘 이해한다고 담대히 말할 수 있었다.
셋째, 실천이다. 시인은 묵상하고 알게 된 말씀을 지속적으로 실천했다. 그렇게 하는 동안 말씀은 이론에서 실제가 되었다. 지식과 경험이 아무리 풍부한 스승과 노인이라 할지라도 시인이 말씀을 실천하는 데는 못 미친다 할 정도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했다. 시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써 그 말씀이 적용될 때, 하나님 말씀의 지혜와 진정성이 확증된다.
    
101~104절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여 지혜로워진 시인이 말씀을 행동으로 부단히 실천하는 모습을 묘사한다. 그는 모든 악한 길에서 발을 금했다. 어긋난 길로 간 적도 있으므로(67절), 더 조심하여 올바른 길로 가는지 말씀으로 확인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지키기 위한 열망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시인은 하나님으로부터 지속적인 가르침을 받아, 규례들로부터 떠나지 않았다(102절).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은 97~100절의 고백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읊조리고 생각하는 동안 하나님이 깨달음을 주셨다는 것과 연관 될 것이다.
시인은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라고 하나님의 말씀이 꿀보다 더 달다고 고백한다(103절). 이 고백은 에스겔 선지자를 불러 말씀이 적힌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하라고 하셨을 때, 에스겔이 그 두루마리를 먹고 그 달기가 꿀 같다고 말한 것(겔 3:1~3)이나 시편 19편에서 다윗이 말씀이 꿀과 벌집보다 더 달다고 말한 것을 생각나게 한다(시 19:10). 달콤한 꿀이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가므로 사람들이 자꾸 먹게 되듯이 하나님의 말씀도 배우고 깨닫고 행할수록 지혜와 기쁨이 생기므로 끊을 수가 없음을 나타낸다.
또 시인은 하나님의 법도들을 통해 어떤 것이 거짓 행위(길)고, 참 행위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거짓 행위(길)는 미워하고 하나님의 의로운 길만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2. 눈(열네 번째 알파벳) _ 빛이어서 고난 중에도 붙들며, 영원한 기업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105~112절)
105~106절은 지혜의 원천인 하나님의 말씀은 인생길에 있어 등과 빛의 역할을 한다고 고백한다. “내 발에 등”이라는 표현은 현실에서 나를 인도하는 불빛으로서, 내가 눈앞의 돌부리에 넘어지거나 웅덩이에 빠지지 않도록 돕는 역할을 강조한다. “내 길의 빛”이란 표현은 미래로 인도하는 빛으로서 좀 더 먼 앞을 비춰주므로,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지 확인해 주고 어떤 길들이 앞에 펼쳐질지 예측하는 역할을 부각한다.
시인은 이렇게 인생길의 가깝고 먼 곳을 조명하여 주는 빛이 되는 말씀을 지키겠다고 결심한다. “맹세하고 굳게 정했다(106절)”라는 시인의 선언은 그의 의지가 확고함을 보여준다. “의로운” 규례란 빛이 어둠을 몰아내듯 말씀의 의가 악을 몰아내는 것을 암시한다. 또한 그가 악하고 거짓된 길을 금하고, 오직 선과 의의 길로 가는 것을 부각한다.
    
107~110절은 고난 중에도 붙드는 하나님의 말씀을 고백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생길의 빛으로 삼은 시인에게 고난이 있으므로, 하나님의 도움을 청한다. 시인이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 방법은 첫째, 먼저 그는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을 간구한다. 시인이 악인들에게 거짓 비방을 듣고 억압받고 있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언급되었다(23, 39, 42, 85, 96절). 하나님은 의인을 악인의 손에서 구하시는 분(시편 35편)임을 시인이 알기에 그는 하나님의 이런 약속의 말씀에 따라 자기를 악인에게서 건져 소생시키시기를 소망한다.
둘째, 시인은 그가 드리는 자원 제물을 하나님이 제발 받아달라고 간청한다. 자원제는 화목제의 대표적인 세 제사(감사제, 자원제, 서원제; 레 7:12~17)에 속하며, 하나님과의 화목과 친교를 목적으로 한다. 제물로는 소, 양, 염소가 사용되는데(레 3장; 7:10~21; 22:17~33), 시인은 소나 양이 아닌 “입으로” 자원제를 드린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가 나그네 삶을 살고 있고 생명의 위기 속에 있으므로(54, 109절), 하나님께 제물을 구할 수 있는 형편을 되지 못하고, 하나님의 처소에 가서 예배드릴 상황이 아님을 짐작게 한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시인은 하나님과의 화목과 친교를 포기하지 않고, 자발적인 헌신과 기쁨을 입술로 표현하기를 갈망한다. 입으로 드리는 자원제는 이렇게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레 3:16)”가 된다.
셋째, 시인은 하나님의 공의로운(공의의) 가르침을 구한다. 고난 중에 있더라도 하나님의 공의를 배워 행하기를 원한다. “나의 생명이 항상 위기에 있다(109절)”를 직역하면 “나의 영혼이 항상 내 손바닥에 있다”는 의미로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태를 가리킨다. 또한 시인은 영혼이 진토에 붙었고 슬픔으로 물이 새듯 녹고 있다고 언급하며(25, 28절), 죽음에 가까움을 표현했다. 시인이 받는 생명의 위협은 원수들이 그를 죽이려고 올무를 설치해 둔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먹잇감을 잡기 위해 몰래 올무를 설치하듯이, 악인들은 시인을 위험에 빠뜨릴 목적으로 거짓 계략을 세우고 기다렸다. 이런 생명의 위기 상황에서도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않는다.
    
111~112절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영원한 기업이라고 선언한다. “기업(나할)”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언약 백성에게 축복으로 약속한 가나안 땅을 의미한다(창 15:7; 17:8). 기업은 유산으로 자자손손 물려주도록 계획되었다.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업에 비유하여 적용한다. 그는 언약 백성으로서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축복으로 여기며, 이 소중한 말씀을 지금뿐 아니라 영원히 마음에 간직하여 빼앗기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하나님 기업의 축복으로 마음의 기쁨을 누리듯,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의 기쁨으로 삼고 누린다. 이 말씀을 영원히, 끝까지 실천하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 쪽으로 집중시킨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지혜롭고 명철하게 한다. 주의 말씀을 사랑하고 늘 곁에 둘 때 원수들의 간교한 계략을 이길 지혜를 얻고,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할 마음이 생기며, 스승과 노인보다 더 명철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모든 지혜와 명철의 근본은 그것들의 근원이 되는 여호와를 알고 경외하는 것이며, 그 말씀을 연구하고 묵상할 뿐 아니라 말씀대로 실천할 때 여호와를 알고 경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 세상을 해석하는 안목과 나를 혼란케 하는 소음과 나를 선명하게 분별하게 하는 생음을 구분할 능력을 갖추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가치 있다. 시인은 하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배웠다. 그분이 가르쳐주신 말씀의 길에서 떠나지 않았고, 악한 길에서 발을 돌렸으며, 거짓 행위를 미워했다. 순종의 즐거움을 알았기 때문이다. 말씀의 맛이 꿀보다 더 달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신앙이 생긴다는 것, 그리고 깊어진다는 것은 주님을 알아가고, 순종을 통해서 관계가 깊어지며, 깊은 관계에서 우러나오는 말씀의 참맛을 아는 것이지 않을까? 점점 죄짓는 것이 두렵고 힘들어지며, 악이 역겨워지고, 선을 행하는 수고가 즐거워지는 것이 아닐까? 말씀의 힘을 만끽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기쁨이 된다. 시인은 캄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마음만은 환하고 기뻤다. 악인들이 사방에 올무를 쳐서 그의 생명을 해치려고 했고, 고난은 심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등이 되고 빛이 되어 시인이 갈 길을 밝혀주었다. 겨우 한 발을 볼 수 있을 만큼 희미했지만, 말씀을 잊지 않고 지키기로 맹세하고 마음에 확정한 성도들을 안전하게 지켜주기에 충분할 만큼 환한 빛이었다. 그것이 시인에게 큰 기쁨이었다. 자원하여 제사를 드릴 만큼 감사가 있었다. 시인은 말씀을 영원한 재산으로 삼았기에 말씀만 있다면 무엇을 잃은들 상관없었다.
    
    
*나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은 사랑, 지혜가 되신다. 고난 중에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는 지혜는 말씀을 통해서 얻는 것임을 분명히 안다. 그러니 말씀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붙잡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하고 붙잡은 말씀이 시인을 살게 하였듯, 나의 삶에도 생기를 얻어 살게 하셨다.
    
*원수보다 더 지혜롭고 스승보다 더 나으며, 노인보다 더 나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 말씀을 따라가야 할 곳과 금해야 할 일을 정한다. 주의 말씀을 따라가고 서는 것이 곧 생명의 길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비교할 수 있는 가치가 있는 것은 없다. 소유도, 음식도, 사람도 없다. 하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배운 그의 걸음은 말씀을 통해 배운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악한 길에서 발길을 돌렸다. 거짓 행위를 미워했다. 순종의 기쁨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순종은 신앙을 깊어지게 만든다. 깊은 순종을 경험하면 말씀이 주는 참맛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내는 길은 세상의 방법으로 직면하여 싸우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세상의 규칙으로 이길 수 없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 속에 세상을 이길 힘이 있다. 말씀을 사랑하고 순종하면 나를 대신하여 싸우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맛보고 알아간다. 순종할수록 더 깊이 누린다.
    
*그럼에도 세상이 주는 고난은 여전하다. 점점 깊어진다. 하지만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이에게 절망할 시간은 없다. 순종하며 느끼는 답답함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변치 않는 사실이 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는 것, 그리고 이 상황을 다 알고 계신다는 것, 그렇기에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다만 지금 구원의 때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더는 고난이 고통의 시간, 공포의 시간이 되도록 내 마음을 내버려두면 안 된다. 주님이 행하신 구원의 역사가 이미 우리에게 증거로 주어졌다. 그것만 기억해도 이미 마음은 환해진다. 그러므로 아무리 답답해 보여도 주님의 말씀을 떠나지 않고 주님의 법을 따라 행하는 일에 마음을 쏟기로 아침마다 주님 앞에 서야 하지 않겠는가!
    
*말씀이 힘이다. 말씀이 나의 기업, 나의 기쁨이다.
 
*말씀묵상은 단지 지식을 축적의 통로가 아니라 삶의 지혜를 얻는 통로이다. 지혜는 단순한 정보이기보다 말씀을 순종하여 살아가는 데서 오는 “경험적 통찰”이다. 또한 고대 근동에서 가장 귀한 단 맛인 꿀보다 더 달다는 표현은 단순히 감성적인 표현이 아니라 말씀 속에 담긴 진리가 얼마나 풍성하고 맛있는지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그 풍성함은 말씀으로 살아낸 각자의 삶을 통해 충분히 증명된다.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다, 항상 나와 함께, 늘 읊조리므로, 지혜와 명철이 풍부한 맛의 꿀처럼 풍성하여 졌다. 말씀이 주는 힘은 세상의 지식이나, 연륜, 방법, 기술과 비교 대상이 아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따라 살아가는 인생에게 최적화되어 살아내도록 공급하여 주시는 것이다. 그러니 세상 지식과 비교 대상이 아니다. 말씀 자체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걸음은 충분하다.
 
*말씀은 빛이다. 어두움에 덮인 삶일 수록, 위기가 이어지는 걸음일수록, 함정에 빠진 것 같은 좌절감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만으로 마음의 빛이 되어주신다. 말씀이 주는 힘은 막막한 그 지경속을 뚫고 들어오신 한 줄기 빛, 그 자체다. 그것 만으로 충분하다.
    
    
    
*주님, 나를 생기있게 하는 말씀임을 믿기에 감사드립니다.
*주님, 그 말씀과 비교할 수 없는 세상의 것에 마음을 두지 않겠습니다.
*주님, 고난은 여전하나, 말씀도 여전히 강력하게 내 안에 역사함을 믿습니다. 그래서 기쁨이고 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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