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말씀에 근거하여, 말씀을 기대어, 말씀의 약속 따라 [시편 119:145-160]
 – 2025년 05월 10일
– 2025년 05월 10일 –
시편 119:145-160 말씀에 근거하여, 말씀을 기대어, 말씀의 약속 따라
    
곤경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 구원을 간청하는 일은 성도의 특권이다. 시인은 하나님과 그분의 능력을 신뢰하므로 하나님께 부단히 간구한다.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간청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구원하시기를 간청한다. 덧붙여 때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말씀대로 살려고 힘쓴다. 이런 태도야말로 신앙인의 진정한 태도가 아니겠는가.
    
    
    
1. 코프(열아홉 번째 알파벳) _ 하나님의 구원과 응답을 간구하다(145~152절)
145~148절은 하나님의 구원을 갈망하는 시인의 모습을 그린다. 시인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다. 그래서 간구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실 의지와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셨음을 굳게 믿었다. 또한 하나님이 시인의 삶에 관심과 긍휼을 보이실 것을 믿는다. 이와 같은 믿음으로 시인은 “온 마음”으로 부르짖는다. 온 마음은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진정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만큼 시인은 하나님께 열심히 간구한다. “부르짖다(145~147절)”는 말이 세 번이나 반복되는 것을 보면 시인이 구원의 응답을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알 수 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언제든 기도에 귀 기울이심을 믿고, 시간을 가리지 않고 새벽에도, 밤에도 간구한다. 한편, 시인은 이렇게 간절히 부르짖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 그가 역경에 처했으나 그 상황에서 한탄과 보복에 신경을 쓰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에 합당하도록 말씀대로 행하기를 힘쓴다.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이지만, 간구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은 기도자의 본분이다. 더 나아가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며, 깊이 생각한다. 자기 생각이나 원함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결되기를 기대한다. 밤을 지새우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려고 그 말씀을 외우며 묵상한다.
    
149~152절에서는 하나님의 응답이 그의 성품을 따라, 그의 말씀을 따라 응답함을 고백한다. 시인은 말씀을 통해 이 사실을 이미 인식하고 있다. 그러므로 반복하여 하나님의 성품과 말씀을 함께 언급하며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한다(149, 154, 159, 160절). 성경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성품은 자비, 은혜, 긍휼, 인자, 진실이 많은 분으로,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고 악은 용서하나 형벌 받을 자를 면죄하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이미 드러내셨다(출 34:6~7). 시인은 그 하나님의 성품 중 인자하심에 의지하여 자기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어달라고 간구한다. 기도의 응답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드러낸 것이다. 또,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자신을 살려달라고 간구한다. 이와 같은 간구는 대적이 가까이 옴으로 더 긴급해진다. 시인을 해치려는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에서 멀리 있어, 불의를 저지른다(150절). 그렇기에 그들은 하나님의 보호나 구원에서 멀리 있다(155절). 시인이 사는 세상의 형편은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하나님은 오래전부터 시인 가까이에 계신다. 시인은 하나님과 가까이 있기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있다. 더구나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여서 변함이 없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진리의 말씀이 늘 가까이 있기에 그 걸음의 안전과 보호를 보장받을 수 있다.
    
    
    
2. 레쉬(스무 번째 알파벳) _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153~160절)
153~156절에서 신인의 간구는 계속된다. 시인은 하나님이 자신이 당하는 고난을 “보고”, “구원하시기”를 간청한다. 하나님께 자신의 구원자와 구속자가 되어주시기를 바라는 것이다(153절). 또한 시인은 하나님이 자신의 변호인이 되어주시기를 바란다. 대적들이 거짓으로 비방하고 있으므로(22, 39, 42절) 자신을 변호하고 대변할 자가 필요했다. 하나님은 시인을 변호하실 뿐 아니라 공정하게 조사하고 정의로운 심판을 내리실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는 자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악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찾지 않기 때문에 어려움을 당해도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다. 하나님 말씀을 통한 구원을 신뢰하지 않기에 악인들의 구원은 점점 멀어져만 간다. 그러나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찾고, 그 말씀을 잊지 않으며 구원을 신뢰하므로 구원의 때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45, 94, 153절). 한편, 하나님의 구원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긍휼하심에서 비롯된다. 하나님이 시인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시면, 시인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없다면, 구원의 손길은 기대하기 어렵다. 시인은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하기에 매번, 하나님의 많은 긍휼에 호소한다(17, 77, 88, 156절). 또, 하나님의 구원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공의에서 비롯된다. 시인은 이 점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시인은 간절히 자신을 하나님의 공의로 공정하게 살리시길 구한다(40절).
    
157~160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시인의 사랑은 자기 자신을 넘어 핍박자들에게까지 적용된다. 시인을 비방하고 박해하는 자가 많으며, 그들은 시인 가까이에 있다. 이 대적들에게서 벗어나기를 하나님께 간구할 때, 그들의 악행을 고발하며 그들에 대한 심판을 재촉한다(22, 51, 84, 115, 121, 122절). 하지만 시인은 동시에 그의 대적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것을 보고 안타깝게 여기며 슬퍼한다(158절). 또, 그들이 율법을 잊어버리고, 저버린 데에 분노하고 좌절한다(53, 139절). 그들의 모든 행위가 하나님의 법도에 어긋남을 알므로 그 행위들을 미워한다(128절).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기에, 말씀에 비추어 대적들의 믿음 없는 생활과 악행을 더 빨리 찾아내며, 그것들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시인의 마음은 자신의 대적들도 하나님의 율법을 따르는 자의 행복을 경험하기 기대하기 때문이다(1, 2절).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닥친 고난만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의 법도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보고 알아주시기를 바란다(153, 159절). 시인은 그의 영혼이 피폐해질 정도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한다(20, 82절). 이런 자신을 하나님이 인자하심으로 봐달라고 간청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하나님이 긍휼과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다. 시인이 사랑하는 이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며(142, 151절), 그 말씀의 강령 또한 진리다(160절). “강령”은 “머리, 꼭대기, 시작”의 뜻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기본부터 전체가 진리, 즉, 변함없는 진실임을 알려준다. 진리인 하나니의 말씀은 의롭고 영원하다(142, 144, 160절). 시인은 하나님이 말씀에 약속한 대로 자신을 구원하심으로써 하나님과 말씀에 대한 인자하심과 의와 진리가 증명되기를 고대한다.
    
    
    
나는?
-시인의 상황이 사뭇 심각하다. 그의 목숨이 경각 중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전심으로 부르짖는 일이다. 밤을 새워 날이 밝기까지 부르짖는 일이다. 응답하지 않으시면 자신에게 살길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말씀이 들려오지 않으면 살 수 없다. 무슨 말이든 상관없다. 그 말씀을 따라서 살 것이다. 동시에 시인은 이미 주신 말씀을 조용히 묵상했다. 그러다가 새벽을 뜬눈으로 맞이했다. 내 상황을 묵상하면 두려움과 염려가 엄습할 수밖에 없지만, 부르짖어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하나님이 주시는 확신이 찾아올 것이다.
    
-구원을 호소하며 시인이 기댄 것은 주님의 영원한 말씀이었다. 약속이었다. 또한 긍휼이 풍성하시고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성품이었다. 시인은 율법에 순종하는 백성을 악인들에게서 지켜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잊지 않고 간구하니 꼭 들어달라고 담대하게 요구한다. 시인의 이런 대찬 믿음의 모습이 도전된다. 말씀의 확신에서 오는 이 담대함을 나의 삶에서도 누려야 하리라.
    
-시인은 의인의 허망한 죽음을 기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았다. 또, 하나님으로 하여금 약속을 기억하게 하는 백성의 간구를 거절하지 않으시는 성품에 기대어 간구한다. 즉, 기도도 말씀에 기초한 확신의 여부가 그 깊이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말씀을 깊이 깨우쳐 알수록,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는 더욱 담대해지고 도전적으로 된다. 오늘날, 우리는 주님께 얼마나 말씀을 의지하여 도전적인 기도를 드리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지금 기도의 수준에서 좀 더 앞으로, 좀 더 깊게 들어가는 길은 결국 말씀의 빛을 따라가는 것뿐이다.
    
-점점 악인들의 포위망이 좁혀온다. 이런 상황에서 시인은 먼저 구원을 확신한다. 이렇게 담대한 이유는, 악인은 소멸하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악인들은 거짓이고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임을 믿었기 때문이다. 당장엔 악인들의 말이 이기는 듯하고 의인들의 고백이 어리석은 듯 들려도, 더 강한 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진리가 살아남는다. 악인들이 더 가까이 다가올수록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더 가까이 오실 것임을 믿기에 구원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은 것이다.
    
    
*삶을 살다 보면 시간이 없다고 조급해질 때가 있다. 마음이 요동치며 이제 희망이 없다는 것에 압박당할 때가 있다. 그런 급박한 순간에라도 시인이 하나님의 구원을 끝까지 바라는 모습이 나의 모습이기도 해야 할 것을 소망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약속한 것을 신뢰하며 하나님과 아름다운 교제를 누리는 것을 바라보는 소망이 다급한 걸음을 멈춰 세우는 은혜를 경험하게 할 것이다.
    
*얼마나 급하던지, 밤을 지새우며 하나님께 매달리는 시인의 모습이 생각에서 떠나질 않는다. 살다 보면 그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밤새 뒤척이며 뜬눈으로 지새우며 깊은 한숨으로 넓은 바다를 만드는 그런 날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시인은 한숨으로 밤을 새우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께 간청하며 샜다. 하나님의 구원 약속, 언약에 근거하여 간절하게 매달린다. 약속하신 말씀이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매달렸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갈망이 이토록 절실했던 적이 내 삶에 있었던가! 내 삶도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감격하고 감동하여 밤을 꼬박 지새우며 집중하며 하나님과의 교제를 누려보았던 때가 있었던가?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고난이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 그저 하나님의 약속 말씀만 붙들며 간절하게 구원의 여망을 매단 그 믿음의 열정이 있었던가! 그래서 시인의 모습이 감동이고, 도전이 된다.
    
*시인은 악인과 자신을 대조한다. 주의 법에서 멀리 서서, 주의 율례를 따르지 않아 당연히 구원과도 거리가 먼 그들이다. 하지만 시인은 오래전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었고 주님의 법을 어기지도 않았다. 그러니 이미 주께서 시인 가까이 계신 것을 믿었고, 언젠가 이 고난을 보시고 건져 주실 것도 믿고 간청했다. 주님이 자신의 변호인이 되어 살려 주실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은 것이다.
    
*주님은 나의 변호인이시다. 법률 용어인 변호인은 피의자는 누구나 변호 받을 권리가 있기에 이를 위해 특별히 선임된 사람을 가리킨다. 주님께서 나의 변호인이 되어 주셨다는 것은 구원의 여정에서 큰 은혜가 틀림없다. 더구나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이 약속한 대로 하나님의 성품을 기대어 구원을 간구한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그의 구원을 선명하게 깨닫게 하고 누리게 한다.
    
*인자하신 하나님의 성품에 기대어 영원히 지켜달라는 고백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나의 하나님을 마음 깊이 의지하고 신뢰하며 살아가리라!
    
*말씀에 근거하여, 말씀을 기대어, 말씀의 약속 따라 믿음으로 살아가리라!
    
    
    
*주님, 나의 하나님, 나의 구원자이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 나를 변호하시는 주님의 은혜와 능력을 기대어 이 땅을 담대하게 살아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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