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9:161-176 핍박의 상황은 변치 않았지만, 말씀을 사랑하는 일상은 더욱 견고히….
시인이 사랑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완벽하고 완전하다. 시인은 말씀에 매료되어 기도의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고백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시인의 일방적인 사랑과 헌신만을 받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도 시인에게 평안과 끝없는 가르침과 즐거움을 안겨주며, 도움이 되어 준다. 시인은 하나님 말씀과 끊을 수 없는 상호 관계 속에서 인생길을 계속 걸어간다.
1. 쉰/씬(스물한 번째 알파벳) _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함(161~168절)
161~164절은 시인이 나그네 생활을 하며(19, 54절) 고관들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으로부터 핍박을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23, 84, 121, 134, 157, 161절). 이들은 “거짓으로(직역하면 까닭 없이, 161절)” 시인을 괴롭힌다. 즉, 시인에게 불리한 거짓말을 꾸며내어 비방하고(69, 78, 86절), 함정을 놓는 등 호시탐탐 시인을 멸할 기회를 엿본다(85, 95, 110절). 악인들의 악행은 시편 119편에서 두루 언급될 정도로 일상적이었다. 하지만 어떤 핍박도 시인을 하나님 말씀에 대한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다. 말씀에 대한 그의 사랑은 마음과 행동의 일치를 통해 표현된다. 시인은 악인들이 자신을 핍박해도 자신의 마음은 하나님 말씀만 경외한다고 선언한다(161절). 시인은 악인들의 비방을 염려하기도 했지만(39절), 그들 자체나 그들의 비방과 핍박의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하나님 말씀만 두렵고 떨림으로 반응하고, 온 신경을 집중한다. 말씀을 향한 두려움과 떨림은 “공포”가 아니다. 기쁨이 함께하는 경외심이다. 시인은 이것을 마치 전쟁에서 많은 “탈취물(전리품, 162절)”을 얻어 환호하는 자들의 심정과 같다고 표현한다. 이토록 말씀을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말씀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거짓을 미워할 뿐만 아니라 혐오하지만, 그가 사랑하는 율법에는 거짓이 자리할 데가 없이, 오직 의로 가득 차 있다. 시인은 이런 하나님의 의로운 규례에 감사하여 하루에 일곱 번씩 하나님을 찬양한다. “일곱 번”은 매일 온전한 찬양 드리기를 원하는 시인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165~168절을 통해 거짓을 미워하고 하나님의 의로운 율법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큰 평안과 구원이 약속되었음을 노래한다. 그뿐 아니라 이들에게는 장애물이 없을 것이다. ‘장애물이 없다’라는 표현은 그들의 삶에 난관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의로운 말씀을 통해 못 헤쳐 나갈 일이 없다는 의미다. 그들은 더 나아가 하나님의 구원까지 기대할 수 있다(166절). 하나님께서 큰 평안과 구원을 약속하셨으니, 어떤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는 자에게서 즐거움과 찬양이 떠날 수 없다(161~164절). 시인의 하나님 말씀에 대한 사랑은 그가 말씀을 지킴으로 확증된다. 시인은 166~168절에서 하나님의 법도나 계명들을 지켰다고 피력한다. 특히 “행했다, 지켰다”는 “순종”을 나타내는 동사를 과거시제로 세 번 반복함으로써 그가 순종했음을 강하게 증명한다. 모든 길들(행위)이 하나님 앞에 있으니, 시인은 떳떳하며 숨길 것이 없다. 하나님이 그 행위들을 점검해 보시면 순종했는지 분명히 아실 것이다.
이렇게 시인이 하나님 말씀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말씀을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이다. 억지가 아닌 자발적으로 말씀을 배우고 지키려고 힘썼는데, 심지어 밤이나 새벽에도 깨어 하나님의 가르침을 구하고 말씀을 지켰다(55, 62, 147, 148절). 말씀을 지키면서 구원을 소망했는데,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하나님이 보호하고 부르짖음을 듣고 구원하실 것을 믿었고, 그 영혼을 보호하여 악인에게서 건지실 것을 믿었으며 말씀을 구하는 자에게 구원이 가까움을 확신했기 때문이다(시편 145:17~20).
2. 타브(스물두 번째 알파벳) _ 하나님 말씀을 구하며 도움을 간구함(169~176절)
169~170절을 통해 시편 119편의 마지막 단락이 시인의 간구로 시작함을 보여준다. 시인의 삶은 여전히 고통 속에 있으며 하나님의 응답은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시인은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고통스러운 순간을 피하지 않고 맞닥뜨리며, 하나님께 간구하고, 그분의 말씀대로 살기를 선택한다. 시인의 부르짖음과 간구는 하나님이 응답하실 때까지 계속될 것이며, 하나님 앞에 계속 나아갈 것이다. 시인은 하나님을 고대하며 그 가르침과 깨달음을 꾸준히 구한다. 이 과정에서도 하나님의 구원과 가르침이 그분의 말씀을 따라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171~172절에서 시인의 부르짖는 간구는 찬양하는 소리로 변화한다. 시인은 입술과 혀로 하나님과 그 말씀을 찬양한다. “찬양하리이다(171절)”는 “시냇물이 졸졸 흐르다”, “거품이 부글부글 솟아나다”의 뜻이다. “노래하리이다(172절)”는 “(들짐승이) 소리 내다”의 뜻이다. 이런 표현을 통해 시인의 입에서 찬양에 끊임없이 쏟아지는 것을 생생하게 표현한다. 시인은 이렇게 찬양하는 이유를 두 가지를 든다. 첫째는 말씀의 가르침 때문이고, 둘째는 말씀의 의로운 속성이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시인은 줄곧 율례들을 가르쳐달라고 간구해 왔다(12, 26, 33, 64, 124, 135절). 하나님께서는 그 간구에 응답하여 말씀을 가르쳐주시며 좋은 스승이 되어 주셨다. 시인은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계명과 율례는 모두 의로움을 담고 있음을 고백한다. 그 말씀들이 하나님의 속성인 의를 그대로 드러냈다. 시인은 이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노래를 삼는 것이다.
173~175절에서 시인의 찬양은 다시 간구로 전환된다. 하나님의 손이 시인의 도움이 되게 해달라는 간구는 그가 하나님의 능력과 도움을 신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말씀의 능력도 의지하므로, 하나님의 규례들이 자신을 돕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시인이 의지적으로 선택했고, 의지적으로 지키려고 한 대상이었다. 시인은 말씀을 통해 깨달은 하나님의 구원을 사모하여 기다린다. 율법은 늘 그의 기쁨이었다(72, 92, 174절). 시인은 사랑하는 하나님 말씀을 통해 회복되어 하나님 찬송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176절은 시인이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하며 시편의 대장정을 마무리함을 보여준다. 마지막이 여전히 간구로 마친다는 것은 시인에게 아직 하나님의 응답이 없음을 암시한다. 시인은 자기가 길을 잃은 양처럼 헤매고 있다고 말한다. 길 잃은 양은 목자와 양 무리에서 벗어나 홀로 정처 없이 방황한다. 목자가 찾아주지 않으면, 언제든 들짐승의 먹잇감이나 강도의 탈취물이 될 수도 있고, 험한 길이나 어둠 속에서 발을 헛디디거나 길을 잘못 들어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다. 시인이 이렇게 자신을 양으로 비유하는 것은 그가 하나님께 속한 양이며, 하나님이 그의 목자임을 상기시키는 목적에서다. 하나님이 선한 목자이시므로 자기 양이 길을 잃은 것을 아신다면 그냥 위험에 내버려두실 리 없다. 그분은 분명 위험을 감수하고 자신의 양을 찾으실 것이며, 찾은 후 양을 사랑으로 돌봐주실 것이다. 시인은 하나님께 이런 점을 호소하며 “주의 종을 찾으소서”라고 간구한다. 그 길을 잃은 양이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종, 시인 자신임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시인이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며, 그의 은혜와 긍휼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달라는 것이다. 덧붙여 자신은 하나님의 계명들을 잊지 않았음을(61, 83, 109, 141, 153, 176절) 고백하며 긴 기도를 마친다.
나는?
-핍박은 그치지 않았다. 여전히 계속된다. 하지만 시인은 말씀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즐거워하는 마음은 악인들에게 빼앗기지 않았다. 마치 전쟁에서 승리하여 전리품을 가득 취하여 개선하는 군사처럼 의기양양했다. 진리가 있으니, 거짓에 굴복하지 않았다.
-이를 통해 깨닫는다. 세상 근심이 다 물러가고서야 말씀이 달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말씀이 즐겁고 벅찰 때 세상의 근심이 제자리로 돌아간다. 말씀이 마음에 가득 있으니 고난 중에도 탄식이 아니라 찬양이 흘러나온다. 불안과 불평 대신에 평안이 찾아왔다. 말씀이 마음에 쌓일 때 오늘을 있는 그대로 보고, 약속의 관점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고난과 핍박이 끝나지 않고 여전히 시인을 둘러싸고 있으나 기쁨이 넘치고, 그 기쁨을 빼앗을 수 없는 것은 하나님 말씀이 주는 약속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말씀이 주는 신뢰, 말씀에서 오는 확신 때문이다.
-시인의 당당함이 도전된다. 시인은 마치 하나님께서 당연히 해주셔야 하는 의무처럼, 자신이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처럼,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한다. 이런 당당함은 자신은 결국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해 주신 약속을 지켰기 때문이라고 당당하게 피력한다. 이것은 완벽하게 말씀을 순종했다는 의미보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온전하게 순종하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에 더 가깝다.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보다 핍박이 주는 흔들림에 흔들렸어도 넘어지지 않기를 힘썼다는 의미일 것이다. 말씀에 순종하는 자의 당당함과 담대함은 완벽하고 꼿꼿한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말씀 자체를 붙잡고 의지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추구하고 의지하지 않았다는 것일 거다.
-말씀을 사모하고 순종하는 이의 걸음에는 이처럼 거칠 것 없는 당당함이 서려 있다.
-시인은 끝까지 호소한다. 그 호소는 절절하기만 했다. 그만큼 상황은 심각했다. 그럴수록 말씀에 대한 신뢰와 의지는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하나가 아니었다. 그것 아니면 안 되는 것이었다. 시인은 자신의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가서 닿고 하나님의 의로운 말씀은 자신에게 다가와 깨닫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주의 말씀대로 자신을 건져 달라고 호소한다. 그러면 주와 주의 말씀을 찬송하고 노래하겠다고 다짐한다.
-길을 잃어, 목자를 잃은 양처럼 방황하는 자신을 주께서 친히 찾아와 주셔서 말씀으로 인도하시고 말씀으로 도우시며 말씀을 잊지 않고 늘 사모하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이런 소원을 하나님이 외면 하시겠는가! 이런 간구가 우리에게서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안타까운 것이 아닌가!
*시인의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마음은 모든 상황 가운데서 변치 않았다. 그 말씀이 있으니 고난 중이었지만 두려움을 이길 수 있었다. 이렇듯, 하나님 말씀만이 두려움을 이길 수 있게 해준다. 그 확신과 기쁨은 말씀을 가까이하니 승리의 전리품을 취하여 돌아온 자들처럼 이미 승리한 사람의 기쁨을 알게 하셨다. 누리게 하셨다.
*그러므로 거짓에, 악함에 굴복할 뜻이 없었다. 상황이 어떠하든지 변치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붙들겠다고 의지를 다지고 또 다진다.
*시인은 분명 목숨이 경각에 달린 핍박 중이지만, 그것이 하나님 말씀을 찾고 구하며 깨닫는 일상을 깨뜨리지 못했다. 그의 마음 평안을 앗아가지 못했다. 물론 그의 믿음(신앙)을 흔들지도 못했다. 그는 변함없이 하루 일곱 번씩 찬양하고, 언제나 평안 중에 거하고, 지치지 않고 구원을 기다렸다. 고단하고 피곤한 중에서 하나님과 누리는 깊은 말씀의 교제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만큼 말씀을 사랑하는 시인의 마음은 확고했다.
*복잡하고 분주하며, 여러 억압 가운데 있는 일상에서 시인은 작은 일에서부터 말씀을 따라 행하고 그 말씀을 사랑한다. 이렇게 확고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의 손에 자기 인생의 길이 달려 있음을 믿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말씀을 따라갈 때를 정하고 갈 곳을 정한다. 그 변함없는 신앙 습관이 핍박받는 중인 시인을 지켰다.
*우리의 삶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바르고 일관된 신앙 습관은 속절없이 흔들릴 수 있는 인생의 고난 때를 견디게 해준다. 그 깊은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바라보게 하여 마음을 단단히 다잡게 한다.
*시인의 소원은 구원이다. 그런데 단순하게 “그냥 구원”이 아니다. 더 많은 찬양으로, 더 진실한 찬양으로 주님을 높여드리고 싶은 구원이다. 깊은 고난의 바닷속에서 새롭게 만난 하나님, 새롭게 깨달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대하는 구원이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이 간절한 구원의 호소, 갈망을 들어주셔야 한다고 당당하게 호소한다.
*시인의 구원에 대한 간절함에 응답하셔야 하고, 약속하신 말씀대로 이루어주셔야 한다. 목자처럼 손수 길을 잃고 방황하는 양과 같은 시인을 찾아와 직접 인도해 주셔야 한다. 하나님 말씀을 한순간이라도 잊은 적 없는 시인에게 어울리도록 회복시키셔야 한다. 그래서 시인이 그토록 간절히 갈망하며 소원한 찬양을 받으셔야 한다. 그것 말고는 시인이 바라는 것은 없다. 그보다 더한 기쁨은 시인에게 없다.
*주님, 상황은 변하지 않았지만, 말씀의 약속을 따라 이끄시는 주님에 대한 신뢰가 더욱 견고한 시인을 본받습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기로 확정하겠습니다.
*주님, 이렇게 살아낼 수 있게 하는 것이 결국 하나님 말씀으로 살아내는 바른 신앙 습관을 어떤 상황에서든지 유지한 것에서 오는 힘임을 깨닫습니다. 일상에서 반드시 살아내야 할 묵상과 기의 걸음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