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1:1-22 통치자의 역량과 능력은 나라의 규모에 비례하지 않는다
에스더서는 이방 땅에 있는 유대인들이 그들의 신앙을 지킨 방법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그들을 돌보신 방법을 보여준다. 유다의 의미 있는 절기인 “부림절(수전절과 더불어 민족 절기)”의 기원을 밝혀주고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표현은 없지만, 여러 섭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고 자기 백성을 돌보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페르시아 제국 속에서도 자신을 찾는 자기 백성을 계속해서 돌보시는 하나님을 깨우쳐준다. 이는 어느 곳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찾으면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임을 교훈한다. 즉, 포로에서 유다로 귀환한 이들만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여전히 페르시아에 남았어도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이가 곧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이다.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백성이 있는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의 통치는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다.
본문에서 인도부터 구스에 이르는 방대한 영토를 가진 페르시아 왕 아하수에로는 성대한 잔치를 통해 자신의 부와 위엄을 자랑한다. 그런데 왕후 와스디가 이런 왕의 부름에 불복종하다가 결국 폐위된다. 왕이 이 일을 통해 각 가정의 남편이 집의 주관자가 되라는 조서를 내려 위계질서를 바로잡는다.
에스더서에 등장하는 아하수에로(일반 역사에서는 ‘크세르크세스(Xerxes 1세)’로 불린다)는 다리오 대왕(학 1:1; 2:10; 슥 1:1; 7:1)의 아들이다. 주전 486년 36세의 나이에 페르시아(바사)의 네 번째 왕으로 등극하여 465년(57세)까지 페르시아를 다스렸다. 에스더서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아하수에로 왕위 3~13년(주전 483~473년) 까지다. 아하수에로는 왕후 한 명 외에 360명이 넘는 규방을 가지고 있었다. 구약에서는 고레스 칙령에 따라 1차 포로 귀환단이 귀환하여 예루살렘에 스룹바벨 성전을 건축한 때와 에스라가 2차 포로들을 데리고 귀환이 이루어진 시기 사이에 벌어진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이 시기의 유다인들은 페르시아에서 나름 번성했음을 다수의 역사 자료가 증명해 준다. 주전 486년에 왕으로 오른 아하수에로는 3년 동안 반란 세력을 평정하고, 그 후 3년 동안 그리스와의 전쟁을 준비하여 주전 480~478년에 그리스와 2차 전쟁을 했다. 페르시아는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이후 살라미스 전투에서 대패하면서 페르시아로 귀환한다. 에스더가 왕후가 된 시점은 아하수에로 왕이 그리스와의 전쟁에서 돌아온 직후였다.
1. 백팔십 일 동안 이어진 왕의 잔치(1~4절).
에스더서의 시작은 아하수에로 왕의 소개와 왕이 베푼 성대한 잔치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아하수에로는 다리오 왕의 아들로서 주전 486년 36세의 나이로 페르시아의 왕이 된다. 이스라엘 역사와 연결하여 보면, 이 시기는 바벨론에게 패망하여 유배되었던 이스라엘 백성이 페르시아 초대 왕인 고레스가 내린 칙령(스 1:1~3; 대하 36:22~23)을 통해 유다 땅으로 귀환한 지(주전 538년) 52년 후이다. 귀환한 자들은 유다 멸망 때 파괴된 성전을 재건하려고 했지만, 거주민의 방해로 공사를 중단하게 되고(스 3~4장), 중단된 공사는 아하수에로의 아버지 다리오 왕 2년, 주전 520년에 재개되어 515년에 완공하게 된다(스 5~6장; 학 1~2장; 슥 1:1; 7:1).
아하수에로 왕은 즉위 3년(주전 483년, 39세) 에 수도 수산에서 나라의 대신들과 신하들을 위해 성대한 잔치를 베푼다. 당시 페르시아는 인도에서 구스(현재의 아프리카 수단)까지 127개의 구역을 이룬 광대한 제국이었고, 바사(페르시아)와 메대(3절, 10:2; 단 6:8)로도 불렸다. 이 광대한 제국에 있는 군대의 장수들과 각 지역의 귀족과 관료들이 왕의 잔치에 다 초대되었고, 이 잔치는 180일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왕이 이 잔치를 통해 왕국의 영화로운 부와 위엄, 영광스러운 명예를 드러냈다. 한편, 180일 동안의 잔치는 단순히 주흥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 잔치 이후 아하수에로 왕은 그리스 2차 원정을 출정한다. 그렇다면 이 잔치를 통해 그리스와의 전쟁을 준비하기 위한 정치적, 군사적 계획을 의논하고 준비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2. 칠일 간의 수산 백성을 위한 잔치와 와스디 사건(5~12절)
6개월의 잔치가 끝난 후 왕은 수도 수산 성에 사는 백성을 위해 7일간 잔치를 베푼다. 이 잔치는 왕궁 후원 뜰에서 이루어졌고 이 자리에는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부터 낮은 계급의 자들까지 모두 초대된다. 잔치 장소에 왕궁의 보물과 귀중한 재료를 동원하여 장식하여 자신의 부와 위엄을 과시한다. 또, 왕실의 포도주를 아끼지 않고 제공했다. 7절의 “왕이 풍부하였으므로”라는 표현은 포도주를 대표로 하여 잔치 음식이 넘쳤음을 보여준다. 한편, 이 기간에 왕후 와스디도 왕궁에서 여인들을 위해 잔치를 열었다.
10~12절은 7일의 잔치 마지막 날에 왕과 왕후 간에 벌어진 예상치 못한 사건을 소개한다. 왕은 포도주를 먹고 마음이 즐거워지자, 내시 일곱에게 명령하여 왕후를 부른다. 이때 왕후 와스디에게 “왕후의 관을 정제하고(11절)” 나오라고 명령한다. 왕후를 확실하게 나타내려는 의도인 듯하다. 왕후의 용모가 좋으므로 그녀의 아름다움을 백성과 관료들에게 보여 자랑하려 한 것이다. 그런데 왕의 이러한 행동은 제국을 다스리는 군주로서 현명하지 못한 처사였다. 왕후 와스디는 내시를 통해 전해진 왕의 명을 듣지 않고 왕 앞에 나가기를 거절한다(12절, 싫어하니). 왕의 부름을 거절하는 것은 왕에 대한 불복종이었고, 왕후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와스디가 이를 거절했다는 것은 평소 그녀의 교만하고 오만한 태도를 짐작게 한다. 한편으로는 왕의 소환에 모욕적인 요구가 있었을 수도 있었다. 아하수에로 왕은 왕후 와스디의 거절에 진노한다. 왕명에 대한 아내의 거절로 인해 왕은 신하들 앞에서 심한 모욕과 수치감을 느낀 것이다.
3. 와스디 폐위와 왕의 조서(13~22절)
7일간의 수산 성 잔치는 왕후의 폐위 결정으로 끝을 맺는다. 왕은 와스디의 불복종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지혜로운 대신들인 현자들과 이 일을 논의한다. “현자”들은 페르시아의 법률과 선례를 아는 자들로서 왕 가까이에서 왕의 기색을 살피며 왕을 보좌하는 자들이다. 14절은 이들이 왕 다음에 첫 자리에 앉은 바사와 메대의 일곱 지방관이라고 밝힌다. 왕은 이들에게 오아후 와스디가 그의 명령을 행하지(아싸) 않았으므로 법률에 따라 어떤 조치를 행해야(아싸) 하는지를 묻는다.
이 문제에 대해 일곱 현자 중 므무간이 나서서 해결책을 내놓는다. 그는 왕의 부름을 거절한 왕후의 행위는 단지 왕에게만 잘못한 것이 아니라, 온 나라의 관료나 백성에게도 잘못한 것임을 지적한다. 왜냐하면 왕후가 왕명에 거절했다는 소문이 이제 곧 온 나라 여인들에게 전파될 것이고, 이후로 그 여인들도 자기 소견으로 남편을 멸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므무간은 왕후의 소식을 들은 다른 귀부인들이 남편에게 불복종할 것이며, 이에 따라 온 나라에 멸시와 분노가 일어날 것으로 예측한다.
므무간은 와스디에 대한 두 가지 처벌을 제안한다. 첫째, 왕후가 다시는 왕 앞에 나오지 못하도록 왕명을 내리고, 법률에 기록하여 이를 변경할 수 없게 하라는 것이다. 둘째, 왕후를 폐위하고 더 나은 자를 왕후로 뽑으라는 것이었다. 므무간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왕이 이러한 두 가지 조처를 했을 때 귀족이나 천민이나 할 것 없이 나라의 모든 여인이 그들의 남편에게 존경을 표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왕과 대신들은 므무간의 제안과 예측을 흡족하게 여긴다. 오늘날의 사고로 보면 오직 왕과 남성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편협하고 편향된 제안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마침내 왕은 므무간의 말대로 공식적인 조서를 작성하여 온 나라에 반포한다. 페르시아 전 지역에 “각 민족의 문자와 언어로 각 남편이 각 가정의 주관자가 돼라.”라는 조서를 전달한다. 이로써 왕명을 거절한 와스디 왕후의 일은 일단락된다.
나는?
-아하수에로 왕은 “잔치”를 통해 왕권과 국력을 과시했다. 인도에서 구스까지 127도나 되는 광대한 나라를 통치하는 아하수에로 왕은 성대한 잔치로 왕국의 부와 위엄을 과시했다. 또 이를 통해 내부 결속을 다지고 충성을 끌어냈다. 세상은 각자가 서 있는 기반을 과시하기 위해 과도한 물질과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장식, 절제 없는 잔치 등을 벌인다. 이런 모습은 세상 권력이 얼마나 빈약하기만 한 토대 위에 세워졌는지를 보여준다.
-지금도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세상은 물질주의에 터를 놓고 외적으로 화려함을 추구하고, 힘을 숭상하는 태도로 치장하여 자신의 권력을 선동한다. 세상은 이러한 것에 환호하지만, 이내 싫증을 내고 소진하여 더 큰 힘에 속절없이 무너져 다른 것으로 대체될 것이다. 참된 충성과 풍성한 만족함은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서 누릴 수 있다. 세상의 잔치는 화려하고 위엄있으며, 막대란 물량이 넘치지만, 그 위세는 곧 사그라진다.
-180일간의 국가적인 잔치, 곧 이어진 7일간의 수도 수산 성의 잔치의 끝은 왕후 와스디의 폐위였다. 잔치의 마지막 날 술에 절은 아하수에로 왕은 자신의 왕후를 과시하고 자랑하기 위해 왕후의 단장을 하고 자기 앞으로 나오도록 명령한다. 이는 아하수에로가 왕비 와스디를 바라보는 태도를 분명하게 볼 수 있게 한다. 그는 왕비를 자신의 자랑스러운 소유물 중의 하나로만 보았다.
-잔치 도중 백성에게는 억지로 술을 먹도록 강요하지 않았지만(8절), 왕후 와스디는 철저하게 무시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127도라는 광대한 제국을 다스리는 강력한 왕이었지만, 부부, 가정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것을 보게 된다. 내 몸처럼 사랑하고 돕는 배필 되라고 묶어주신 배우자를 소유품이나 전시품, 자신의 자랑거리로 전락시키고 있지는 않는가?
-와스디와의 문제를 현자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 적절할까? 현자들도 어찌 보면 가정, 부부의 문제인데, 제국 전체의 문제로 확대하는 비약이 너무 지나친 것은 아닐까? 특히 현자들은 과장과 근거 없는 비약, 추측으로(17절) 왕의 마음을 흔들고, 왕의 기색을 살펴(14절) 왕의 입맛에 맞게 조언한다.
-현대에서는 쉽게 수긍할 수 없는 이 사건이 아내들에 대한 남편들의 권위를 전 제국의 법령으로 선포하게 하는 해결책으로 끝난다. 그런데 이를 보면서 헛웃음이 나온다. 마치 “교각살우(矯角殺牛,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운다)” 아닐까? 하는 실소가 나올 뿐이다.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자와 그를 보좌하는 지도자들의 수준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현자들도 자기 가정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서 밖에서는 힘자랑하는 무능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을 풍자적으로 드러낸다. 성대한 잔치를 180일 동안 진행하고, 수도 수산 성의 백성을 위해 별도로 7일의 잔치를 베풀 정도로 막강한 부와 능력을 소유하고 있었고, 인도에서 구스까지 127도의 광활한 땅도 있었지만, 페르시아 제국의 정치력은 분별력도 결정 내릴 능력도 없었다. 안타까운 것은 그런 무능한 왕 주위에 왕의 안색만 살피며 음모와 술수로 조언하는 신하들이 가득한 나라였다는 것이다.
-왕후 불복종이 자기 가정에도, 당시 남성 중심 세계관에 파장을 일으킬까 염려하며 왕과 다를 바 없이 무능함을 여실히 드러내, 천하를 호령하던 권력자들의 실체와 민낯이 드러나 참 씁쓸하다. 아내와의 사소한 갈등이 나라 전체의 “가부장제” 본존문제로 비화되는 코미디가 인도세오부터 구스까지 다스리는 왕궁 한 가운데 핵심 지도자들의 수준이었다.
*우리 대한민국은 어떤가? 참담하게도 국가 지도자가 부인의 무속 능력을 의지하여 정치를 했고, 모두가 그 자리에 있을 만한 능력이 있을 것이라고 여겼으나 도무지 일반 국민보다 못한 분별력과 상식적이지 못한 처신들이 아하수에로 왕의 이야기와 묘하게 겹친다. 손바닥에 왕자를 새기며 주변의 몇몇 드러나지 않는 기득권 세력의 기획에 따라 움직이고 있음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현실이 참 웃프다.
*그래서 이번에 세울 지도자에 대해서는 통찰력을 가지고 선택해야 함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아하수에로 왕이 그 광대한 페르시아 제국을 통치하는 방식은 성대한 잔치로 눈가림하고, 잔치 장소를 화려하게 꾸며, 보이는 것에 마음을 사로잡게 하는 “현혹”이었다. 그런데 그런 “현혹”에는 능한 지도자였던 아하수에로 왕은 정작 가장 상식적이고 기본적인 판단과 결정조차 스스로 내릴 수 없는 비정상적인 지도자였다.
*무엇보다 술에 취하여 왕후를 불러내어 제국의 왕후를 잔치 자리(술자리)의 눈요깃거리로 전락시키는 결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명령하는 모습에서 탄핵당한 전 대통령의 지난 3년간의 매일 벌어지는 술판에 의지한 정치 행색이 묘하게도 겹친다. 그러면서도 공개 석상에서는 자기를 자랑하고, 없는 업적을 거짓으로 꾸미는데 능통했다. 다음 지도자는 적어도 이런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했다.
*또 부인과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아하수에로 왕의 모습은 부인에게 쩔쩔매며 도무지 “내로남불”의 부끄러운 행사를 보이면서도 부끄러움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전 대통령과도 묘하게 겹친다. 온 세상을 겁박하며 다 숨죽이게 만들면서 정작 부인(夫人)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아하수에로 왕이 어쩌면 지금 이 나라의 전 지도자의 모습과 똑같은지 통탄할 노릇이다.
*이뿐인가? 왕의 안색을 살피며 아첨하고 과장하고 비약해서 쓸데없이 국가적인 정책으로 확대하는 모습이 무능하기 짝이 없는 지금 이 시대의 지도자들과 판박이여서 놀랍다.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어쩌면 이런 지도자와 그 주위에 기생하는 간신들은 예나 지금이나 없어지지 않는지 참으로 씁쓸하다.
*하지만 이런 답답하고 울분이 넘칠 수 있는 지도자를 다시 세우지 않으면 된다. 그래서 투표가 중요하다. 적어도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면, 무속에 찌들어 상시적인 것조차도 제대로 결정하지 못했던 전직 지도자를 교훈 삼아 나라와 민족을 위해 사명감을 가지고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할 능력이 있는 지도자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공교롭게도 음주와 가무를 즐기는 잔치가 왕후 몰락의 결론으로 이어진 본문의 묵상이 참 묘하게 현재 대한민국 정치가들의 상황과 겹친다. 이런 지도자를 두 눈 부릅뜨고 기려내야겠다.
*주님, 아무리 강력한 제국을 통치한들 이리도 연약하고 불안한 인간임을 그대로 보게 됩니다. 그러니 전능하신 주님의 돌보심과 보호하심을 바라보게 됩니다. 도와주십시오.
*주님, 아하수에로 왕과 신하들에게 보이는 수준이 이 민족과 나라 지도자들의 수준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지혜로운 지도자를 세워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