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4:1-17 진멸의 예고장을 받아 들고서 하나님 앞에 선 유대인들
하만의 유대인 진멸 계획이 진행되어 가는 동안, 모르드개와 유대인들은 굵은 베옷을 입고 하나님께 울부짖는다. 왕 앞에 나가 유대인을 구하라는 모르드개의 설득에 에스더는 목숨을 걸고 왕에게 나갈 것을 결단한다.
1. 애통의 통곡이 이어지다(1~3절)
4장은 모르드개와 에스더와 유대인들이 진멸의 시기까지 환란의 때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하는지 보여준다. 먼저 모르드개가 살고 있는 도성 수산 성에 이 소식이 전해지자, 이내 도성은 술렁거렸다(3:15). 모르드개도 이 도성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곧바로 알아챘다. 조서가 반포된 후 하만과 왕을 비롯한 유대인의 진멸을 기뻐하는 자들은 포도주를 마시며 즐거워했겠지만, 모르드개는 입었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과 재를 뒤집어쓰고 성 광장에 나가 크고 쓰라린 소리로 울부짖었다(1절에서는 ‘대성통곡하며’로 번역되었다). 그렇게 자신이 일하는 왕궁 문 앞까지 갔다. 그러나 베옷을 입고, 왕궁 문에 들어가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성중 광장에 머무른다(6절). 모르드개와 같은 애통의 모습은 각 지방의 유대인에게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다. 유대인이 아닌 자들은 혼란 속에서도 일상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유대인들에게는 일상은 포고문이 공고된 이후 불가능했다. 왕명이 전파된 지역마다 유대인 무리가 금식하고 애통하면서 애곡 의식에 가담한다. 이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굵은 베옷과 재를 뒤집어쓰고 누워 있었다. 이러한 의식은 단순히 공동체의 슬픔과 고통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이 기막힌 일이 자기들에게 임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받아들이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탄원하며 도움을 간구하는 것을 함축한다.
2. 유대민족 진멸의 소식과 에스더의 현실(4~11절)
왕궁에 있는 에스더의 상황은 어땠을까? 제국 내에서 오직 한 사람 에스더만이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왕궁 밖의 다른 유대인들은 죽음의 위협 속에 애통하며 떨고 있지만, 에스더만은 안전하게 왕궁에 기거하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서는 수산 궁 안에서 소리 없이 제정되었지만, 그 내용은 왕궁 밖에서만 소란스럽게 전파되었음을 보여준다. 에스더는 그동안 모르드개와 계속 연락을 취해왔으나(2:11, 22절), 둘의 신분 차이로 직접 대면할 수는 없었다. 다만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내시나 시녀들을 통해 서로의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4~16절).
4~16절의 전개를 살펴보면 에스더의 내시와 시녀들은 충성스럽고 믿음직한 자들로 보인다. 에스더는 이들을 통해 모르드개의 근황을 알게 되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에스더는 모르드개가 굵은 베 옷을 입었다는 말레 새 겉옷을 보냈지만, 모르드개는 받지 않는다. 에스더는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내시 하닥을 불러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왜 일어났는지 알아 오라고 명령했다. 이에 하닥은 모르드개를 찾아 왕궁 문 앞 광장으로 갔다. 모르드개는 그제야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을 하닥에게 전한다. 특히 모르드개는 유대인들을 진멸하기 위해 하만이 왕의 금고에 달아주기로 약속한 은의 정확한 액수(일만 달란트, 3:9)를 알려주며 그의 야비함을 지적한다.
모르드개는 수산 궁에서 제정된 유대인 진멸 내용의 조서 사본을 하닥에게 주며 세 가지를 당부한다. 첫째, 조서 사본을 에스더에게 보이라는 당부다. 둘째, 조서 내용을 설명하라는 당부다. 셋째, 에스더에게 왕 앞에 나가서 유다 백성을 위해 간청할 것을 명령하라는 당부다. 모르드개는 이 일을 해결할 방안을 실제로 제시한다. 8절을 직역하면 “그리고 그녀에게 명하여 왕에게 가서 그에게 (은혜를) 간청하며 그녀의 민족을 위해 그 앞에서 간구하라”이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았다. 명령이며 의무다. 그만큼 이 일은 왕후 에스더만이 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일이었다.
9~11절에서 왕에게 가서 간청하라는 모르드개의 명에 에스더가 주춤한다. 11절에 따르면 당시에는 누구든 왕의 부름을 받지 않고 왕 앞에 나오면 처형당하는 법률이 있었다. 현대의 시각으로 보면 이해할 수 없지만, 당시 왕을 알현하는데 제한을 두는 것은 왕의 신변과 사생활을 보호하는 필수적인 조처들이었다. 이때 처형을 면할 수 있는 한 가지 예외는 왕이 그에게 홀을 내밀 때다. 공교롭게도 에스더는 왕의 부름을 받아 왕을 본 지 30일이나 지났다. 에스더가 왕이 된 지 5년이 흘렀고 그 사이 왕은 더 많은 후궁을 두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왕에게 나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거는 위험한 일이었다.
3. 모르드개의 설득과 에스더의 결단(12~17절)
12~14절은 에스더를 향한 모르드개의 강력한 설득이다. 에스더가 왕궁에 홀로 거하므로 혹 죽음을 피할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결국은 이 재난을 피해 갈 수 없을 것임을 경고한다. 그러나 사실상 현재 에스더 외에는 유대인을 구해낼 다른 방도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면서도 모르드개는 이것이 유일한 구원의 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결코 하만과 같은 아말렉 자손에게 멸망하지 않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출 17:14~16). 만약 에스더가 나서지 않아서 하나님이 다른 방법을 사용하신다면 그때 다른 유대인은 다 목숨을 건지겠지만, 에스더와 그 집안은 멸망할 것임을 모르드개는 지적한다. 그리고 “이런 때를 위해 네가 왕후 자리에 왔는지 누가 알겠느냐”라고 말함으로써 모르드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을 신뢰하도록 에스더를 설득한다.
15~17절은 에스더의 확고한 결단을 보여준다. 그녀는 이제 왕에게 나가 유대인의 목숨을 구할 것을 결단한다. 에스더는 서두르지 않고 침착하고 지혜롭게 왕에게 나갈 계획을 세운다. 에스더는 이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도움을 청하려고 한다. 또 이 일에는 다른 이들의 도움도 필요했다. 먼저 에스더는 모르드개에게 수산에 있는 유대인들을 모아 밤낮 3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라고 명한다. 에스더 또한 시녀들과 함께 금식하며 기도로 준비한 후 왕에게 나갈 것을 선언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왕 앞에 나가는 것이 법을 위반하는 것이며 목숨을 잃을 각오가 필요한 것임을 다시 언급한다(16절). 이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것이므로 “죽으면 죽으리라(그러다가 죽으면, 죽으렵니다_새번역).”라고 고백한다(16절).
에스더의 결단을 알게 된 모르드개는 물러가서 에스더가 명한 대로 시행한다. 하만 한 사람으로 유대인 모두가 죽게 된 때에. 과연 에스더 한 사람으로 유대인 모두가 목숨을 건지게 되는 반전이 일어날 것인가?
나는?
-하만에 의해 유대인 진멸 조서가 수산 성을 비롯한 모든 지역에 공포되자, 모르드개를 비롯한 각지의 유대인들은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대성통곡한다. 특히나 유월절 전날 공포된 관계로 유월절 절기도 지키지 못한 채 회개하면서 또 한 번의 유월절을 주시기를 간구했을 것이다.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보내온 좋은 옷 입기를 거절한 채 궁궐을 떠나 높은 지위에서 내려와 광장에 있던 자기 동족과 함께하였다. 하나님의 백성이 처한 곳은 달라도 우리는 모두 한 형제 한 가족이요, 결코 차별하거나 차별 대우를 기대해서는 안 되며, 도리어 고통을 함께 나누는 운명 공동체다.
-모르드개는 정확한 정보로 현재의 위기를 에스더에게 소상히 알린 후 왕에게 나아가 민족을 위해 간구하라고 조언한다. 에스더를 딸처럼 아끼고 사랑했고(2:11, 15), 당연히 이것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를 위태로운 일인 것도 알았겠지만, 그것만이 유대 민족뿐 아니라 에스더 자신이 살길이었기에, 믿음의 결단을 촉구한 것이다.
-사랑하기에 어려운 사정을 정확하게 알렸고, 사랑하기에 헌신과 포기를 요구하고, 죽음에 나서게 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고 그것만이 살길이기에 우리를 십자가 지고 따라오게 하셨듯이 말이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함에 달려 있지, 왕후 에스더에게 달려 있지 않다. 하나님은 사람의 헌신을 사용하시지만, 사람에게 매이지 않으신다. 하지만 에스더의 구원은 그녀의 목숨을 건 헌신에 달려 있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왕후가 된 것은 개인의 영화를 위함이 아니라 이 특별한 구원의 경륜을 이루기 위함일지 모른다고 설득한다. 왕후의 자리가 아니더라도 어떤 자리든 거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시려고 우리를 보내셨다. 소명을 다하는 것이 생명을 얻는 길이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이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이어가게 하였듯이, 오늘 나의 희생적인 결단이 필요한 일은 무엇일까?
*모르드개는 왕후인 에스더를 활용하면 얼마든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는 동족인 유대인들이 무참히 죽게 되는 상황을 외면하지 않는다. 혼자 살겠다고 궁리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생명이 경각에 달린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극심한 절망보다는 간절한 믿음을 붙잡았다. 14절에서 모르드개는 처음으로 하나님을 향한 깊은 신뢰를 드러낸다.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왕에게 호소하여 해결될 것으로 믿지 않았다. 그보다는 하나님을 굳건하게 신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설령 에스더가 이 위기 상황에서 주도권을 쥐고 위험을 피할 길을 마련하는 데 실패한다 해도, 그것으로 희망이 전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경우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이루는 데 실패하시는 일이 없고, 자기 백성을 저버리시는 일도 없다.
*하나님은 그 백성이 선하거나 그분을 신실히 따르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이름을 위해 그들을 위기에서 건져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모르드개는 필요하다면 백성은 또 다른 탈출구를 얻게 될 것이라고 확신 있게 단언한다.
*절체절명의 위기가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드러나게 했다. 앞서 왕후 간택 과정에서 유대인임을 감추라고 했던 모르드개였지만, 어떤 방법도 보이지 않는 최대 위기 앞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절실하게 신뢰한다.
*나라면 어땠을까? 그 막막함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고레스 칙령으로 인해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었음에도 수산 성에 남아 삶의 토대를 유지하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전혀 예상치 못한 진멸의 예고장을 받아 들고서 그들이 느꼈을 그 막막함이 어땠을까? 그럼에도 수산 성에 남아 있는 자신들을 하나님이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는 믿음을 굳건히 붙잡는 모르드개의 신앙이 그의 조상 사울보다 낫다.
*절망의 태풍을 성 광장에서 베 옷을 입고 재를 뿌리며 통곡하는 모르드개의 마음에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믿는 구석이 자리 잡고 있으니 이제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기대해 볼 뿐이다.
*주님, 절망의 한가운데, 여전히 믿을 구석 되시는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모르드개의 “이때를 위함이 아니야!”의 외침과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믿음의 화답을 보며 이 땅의 하나님 나라 공동체가 이처럼 믿음의 결연한 하모니를 이루며 살아내야 할 것을 소망하게 됩니다. 믿음으로 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