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우연이 겹겹이 쌓인 그곳에 필연이 드러나다 [에스더 6:1-13]
 – 2025년 05월 18일
– 2025년 05월 18일 –
에스더 6:1-13 우연이 겹겹이 쌓인 그곳에 필연이 드러나다
    
에스더가 왕에게 유다 민족의 구명을 위해 잔치를 열고 적절한 기회를 살피고 있을 때. 하만은 모르드개가 여전히 자신을 무시하는 행동을 보이자, 모르드개만 먼저 죽일 계획을 세운다. 유대민족의 구원을 위한 치열한 시간 속에 모르드개의 목숨이 하만의 분노 때문에 경각에 달린다. 이러한 때, 하나님의 섭리는 시간, 장소, 상황 등을 통해 다음과 같이 여러 사람에게 나타난다. 불면의 밤에 실록을 읽는 왕, 모르드개를 죽이기 위해 왕의 허락을 구하려 왕궁에 온 하만, 목숨을 구해준 모르드개에게 상을 주려는 왕, 하만이 제안한 왕의 선물로 존귀함을 얻은 모르드개, 모욕을 당하고 몰락을 앞둔 하만의 모습이 차례로 선보인다.
    
    
    
1. 불면의 밤, 궁중 일기 속의 모르드개가 눈에 띄다(1~3절)
에스더 왕후의 두 번째 잔치가 시작되기 전날 밤(첫 번째 잔치가 끝난 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반전이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통해 일어난다. 잔치에 다녀온 왕은 에스더의 요구가 무엇일지 궁금해서인지 잠을 청하지 못한다. 잠이 달아나자, 시중을 드는 신하들에게 왕국 역대 실록을 가져오게 하여 왕 앞에서 읽혔다. 마침, 왕이 듣고 있는 실록의 내용은 모르드개가 왕의 문지기였던 두 내시의 암살 모의를 고발한 내용이었다(2:21~23). 왕은 신하들에게 모르드개에게 상(존귀)이나 영예를 내렸는지 물었고, 신하들은 아무것도 내리지 않았다고 답한다.
    
당시 왕은 자기 목숨을 구한 자에게 포상을 내리는 일을 어떻게 까맣게 잊고 있었을까? 이런 상황이 묘하게 겹치는 성경의 일화가 있다. 요셉이다. 요셉은 옥에 갇힌 바로의 숱 맡은 관원이 꾼 꿈을 관직 회복이라고 해석했고 그때 풀려나거든 자신의 사정을 왕에게 고해 구해달라는 요청까지 했지만, 관원은 요셉을 기억하지 못했다(창 40:5~23). 2년 후 왕의 꿈 해석이 필요할 때가 되어서야 관원은 감옥에서 요셉의 일을 기억했고 그 결과 옥에서 풀려나 총리가 되었다(창 41:9~43). 모르드개의 경우도 왕의 목숨을 구한 공이 완전히 잊힌 듯했지만, 가장 절묘한 시간에 왕에게 들려졌다. 그러므로 왕의 기억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갖고 올지 기대감도 상승한다.
    
    
    
2.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자(4~9절)
왕이 신하들에게 누가 밖에 있는지 확인했을 때, 그 시각 하만은 때마침 왕궁 바깥뜰에 이르렀다. 그는 모르드개를 죽여 자기 집에 세워둔 나무에 매달 수 있게 왕의 허락을 받으러 왔다. 한 민족의 진멸을 왕에게 허락받은 터였으므로(3:8~11), 한 사람의 처형 허락은 쉽게 받으리라 믿었을 것이다(4절). 하만의 측근들은 아침에 왕에게 가서 모르드개와 관련된 건을 허락받으라고 조언했지만(5:4), 그는 아침까지 기다리지 않고 서둘러 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왕은 하만이 죽이려는 그자, 곧 모르드개에게 서둘러 상을 내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신하들이 하만의 도착을 알리자, 왕은 하만을 불러들였고,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무엇을 해줄까 묻는다. 하만이 왜 밤중에 왕궁에 왔는지 아뢸 틈을 주지 않았다.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에서 “원하는(하페쯔)”은 “기뻐하다, 맘에 들다”라는 뜻이다. 잠이 오지 앓는 불면의 밤에 왕의 마음에 모르드개가 들어온 것이다. 왕은 그에게 무엇을 하사할까?
    
한편, 왕의 존귀함을 입은 자에게 하만은 자기가 개인적으로 받고 싶은 상을 제안한다. 그것은 “왕 행세 기회”였다. 그는 왕의 존귀함을 입을 자가 자신일 것이라 확신했기에, 재물이나 관직을 제안하지 않았고, 이 기회에 왕처럼 하고 싶은 욕망을 채우려 한 듯 보인다. 이 제안은 평소 그의 마음속에 왕처럼 행세하는 것에 대한 마음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보게 한다. 아주 구체적으로 먼저 왕의 겉옷, 왕의 말, 왕관을 내와야 한다. 둘째, 이를 왕의 가장 고귀한 대신의 손에 맡긴다. 셋째, 그 대신에게 명령하여 왕의 존귀함을 입은 자에게 직접 왕의 옷을 입히고 왕의 말을 태우게 한다. 넷째, 왕의 말에 탄 존귀한 자를 그 대신의 손에 붙여 성 중 광장을 행진하게 한다. 다섯째, 대신에게 명령하여 존귀함을 얻은 자 앞에서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라고 외치게 한다.
    
하만의 오만함이 하늘을 찌른다. 왕이 자신에게 내릴 것이라고 확신한 그의 제안 속에 이미 왕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3. 왕의 존귀함을 받은 모르드개와 하만의 좌절(10~13절)
왕은 하만의 내심 기대하는 바와 달리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자의 정체를 모르드개로 밝힌다. 하만의 제안을 들은 왕은 그에게 그가 말한 대로 모두 모르드개에게 행하라는 청천벽력의 명령을 내린다. 이때 왕은 모르드개를 “대궐 문에 앉은 유다 사람”으로 칭했다. 즉, 왕이 모르드개가 어느 민족이며 어떤 직위에 있는 자인지도 확실하게 알았음을 보여준다. 한편, 유다 민족 진멸 포고령이 내린 후였지만, 왕은 모르드개가 유다 민족임을 연결하지 못한 듯하다. 자세한 설명이 없어 유추하기 힘들지만, 하만에게 일임했기에 아직 그 자세한 실행 보고를 받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하만은 별수 없이 왕의 명령을 따라 왕의 존귀함을 입은 자, 곧 모르드개의 종노릇해야만 했다. 그는 “왕궁 문에 앉은” 모르드개를 볼 때마다 분이 가득했고(3:5; 5:9), 오늘 밤이면 더 이상 그 모습을 안 볼 것이라고 기대했었다(5:13). 하지만 이제 하만 자신이 왕명을 좇아 모르드개를 찾아가야 할 상황이 되었다. 자기가 되고 싶었던 왕의 역할을 담당할 왕의 가장 고귀한 대신들의 대표(9절)가 되었다. 모르드개는 여전히 굵은 베옷을 입고 왕궁 문 앞 광장에 머물렀을 수도 있고(4:6), 왕궁 문에 있었을 수도 있다(6:12).
    
하만은 모르드개를 찾아갔고, 평소 하만 앞에서 꿈적하지 않던 모르드개는 그의 앞에 일어섰다. 굵은 베옷과 재를 뒤집어썼을 모르드개에게 왕의 옷으로 갈아입히고, 왕의 말에 태웠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모이는 성 중 광장에서 말에 탄 모르드개의 행진을 수행한다. 하만은 모르드개 앞에 걸으며 그가 왕의 존귀함을 얻은 자임을 선포한다.
    
그럼에도 하만이 공포한 유다인 진멸 조서는 여전히 유효했고, 수산 성의 유다인들은 죽을 위기에서 기도하고 애통하며 두려움과 긴장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눈앞에 왕의 옷을 입고 왕의 말을 탄 모르드개의 모습과 그를 향하여 외치는 하만의 “왕의 존귀한 자”라는 외침 속에 하나님의 구원과 원수에 대한 심판의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게 했을 것이다.
    
한편, 하만은 자신에게 서서히 몰락의 구름이 몰려오고 있음을 깨달아야 했다. 거리 행진을 마친 후 모르드개는 왕궁 문으로 복귀하여 맡은 직무를 수행한다. 행진에 대한 모르드개의 반응은 언급되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하만의 반응은 자세하게 기록되었다. 하만은 “번뇌하여 머리를 덮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아내 세레스와 친구들에게 털어놓는다. 그들은 하만에게 일어난 일을 예사롭게 여기지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하만의 친구들을 “그(하만)의 지혜로운 자들(13절)”로 소개한다. 그들은 친구 역할만이 아닌 하만의 조언자 역할을 담당했음을 드러낸다(왕의 지혜로운 자들, 1:13과 동일한 표현이다). 하만에게 모르드개를 두 번째 잔치 전에 죽이라고 조언했던 친구들과 아내는 하만에게 냉정한 판단과 예측을 전한다. 모르드개가 진정 유다인의 후손이면 하만이 넘어지기(나팔, 굴욕을 당하기로 번역됨) 시작했으니 그를 이길 수 없고, 그 앞에 반드시 넘어질 것(나팔, 엎드러지리다 로 번역됨) 이다. 그들의 표현 속에서 모르드개의 뒤에서 일하는 유다인의 신,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어떤 경위로든 인지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혜자들이라면 바벨론 제국에서부터 메대 바사 제국을 이어 페르시아의 총리를 지낸 유다인 다니엘을 모를 리 없었을 것이고, 그를 통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과 벨사살 왕 때에, 메대 바사의 고레스 왕 때의 유다인의 하나님의 능력과 기사를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영적인 그들은 하만이 당한 일을 예사롭게 보지 않았다. 이제 하만과 관련된 모든 일을 유다 하나님의 개입으로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자기도취형 인간 하만의 착각이 정도를 넘어섰다. 교만이 그를 잠식했다. 왕이 존귀케 할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고 당연하게 여기는 그의 모습에 실소가 나온다. 그런데 이런 자아도취형 인생이 페르시아 제국 시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모든 인생은 나름대로(?)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교만하고 오만하다. 하나님께서 행하실 축복의 대상을 늘 자기 자신이어야 함을 당연히 여긴다. 하나님의 마음과 상관없이 이런 무모한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한다. 그런데 이렇게 오만한 하만이 급속하게 초라해지는 장면을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한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잠 16:18)”는 말씀이 틀림이 없다.
    
-하만은 왕이 존귀케 할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평소 누리고 싶었던 최고 한계 안에서 영광을 요구한다. 이미 더 오를 것이 없을 만큼 부와 지위를 누리고 있음에도 하만의 욕망은 끝이 없다. 멈추지 않는다. 그는 왕의 옷, 왕의 말, 왕관 등 무려 일곱 번이나 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왕이 존귀하게 여길 자에 대한 대우를 요청한다. 아마도 하만의 마음속에는 이미 왕의 자리까지 탐하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추락밖에 없음을 모르고 있었다. *주님이 높여주시는 자리가 아니면 도무지 높아지려고 스스로 착각하지 말자. 더욱 탐내지 말자. 교만과 탐심은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은혜를 충분히 파괴하고도 남는다. 끝도 없는 하만의 욕망이 감출 수 없는 수치와 탄식으로 이끌었다.
    
-왕의 입에서 하만 자신이 진멸하기로 공포된 백성의 이름인 “유다인”이라는 말이 최고의 존귀와 영광을 누릴 대상으로 호명된다. 그 한마디에 모르드개를 멸시하던 하만은 모르드개의 영광을 드러내 줄 들러리로 전락한다. 유다인 진멸 포고로 울며 통곡하던 성중 거리(4:6)는 환호와 기쁨의 자리가 되었다. 모르드개가 입고 있던 베옷은 왕의 의복으로 바뀌었다. 모르드개가 뒤집어쓴 재를 훌훌 털고 왕의 말에 올라온 백성의 존귀를 한 몸에 받는다. 죽음의 공포가 적어도 이 순간에는 구원의 환희로 바뀌었다.
    
-하지만 하만은 기쁨으로 돌아와 한껏 자랑을 늘어놓던 어제와 달리(5:9) 번뇌로 머리를 감싸고 돌아와 아내와 친구들에게 역전의 수치를 전한다. 이 기막힌 역전!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다.
    
-우연의 연속이다. 왕이 잠이 오지 않은 것, 역대 일기를 읽었는데 하필 놀랍게도 모르드개가 자신을 구해준 부분을 읽은 것, 마침 하만이 궁 뜰에 들어온 것, 이 모든 것은 모두 우연이다. 음모와 술수와 착각이 뒤범벅되어 불의가 승리하는 듯 보이는 세상이 사실은 제 뜻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세상의 힘과 모사가 작동하지 않고 영향받지 않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우연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자신이 계획한 뜻을 이루는 필연을 이루신다. 창조주이자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만이 우연마저 자신의 장중에 두고 역사를 써 내려 가신다.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모르드개를 향해 집중된다. 악하고 탐욕스러운 사람들, 왕께 아부하는 신하들, 그리고 생각 없이 감정적으로, 감각을 따라 움직이는 하만이 만든 음모와 술수와 착각이 뒤범벅이 된 곳에서 그들이 통제하지 못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일들을 하나님 말고 누구를 배후로 바라볼 수 있을까? 그런데 하나님이 만사 가운데 계신다고 여기고 확신하는 순간,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일 뿐이다. 그러나 인간의 눈에는 그저 우연이 겹겹이 쌓인 것뿐이다. 우연이 이렇게 쌓이면 필연이 될 수밖에 없다.
    
*시편의 고백을 생각한다. “원수의 목전에서 잔치를 베푸셨다(시 23:5).” 하만은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기뻐하는 자는 자기밖에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자기가 원하는 소원을 아뢴다. 그는 이미 모든 부귀영화와 권력을 소유하고 있기에 그가 가지지 못한 것을 구한다. 바로 왕의 옷, 왕의 말, 왕관 등 무려 일곱 번이나 “왕”이라는 단어를 반복하여 사용하며 내심을 드러냈다. 어쩌면 그가 궁극적으로 바란 것은 “왕의 자리”이었을지 모른다. 그 역시 아하수에로 왕을 바라보며 그가 얼마나 허당인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왕의 권위를 가볍게 여겼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바랐던 것은 고스란히 모르드개의 것이 되고 만다. 이 모습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신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러니 내 잔이 넘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
    
*모르드개가 영광을 얻자, 하만은 번뇌한다. 자신이 모르드개의 영광을 드러내는 왕의 도구로 쓰임 받았다는 사실을 아내에게 들려주자, 그녀는 이것은 시작일 뿐이고 하만은 모르드개를 이길 수 없고 엎드러질 것이라고 충격적인 독설을 내뱉는다. 하만은 아내의 독설을 마음에 품고 왕후 에스더가 베푸는 두 번째 잔치의 자리로 나아갔을 것이다. 무엇보다 왕후와 모르드개의 관계, 그리고 왕후 에스더가 유다인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나아갔기에 오늘 무너진 자존심은 아직 더 무너질 것이 남았음을 알지 못했다. 그에게 남은 재앙은 차고도 넘쳤다.
    
*세상은 자기에게 닥칠 운명을 모른 채(외면한 채) 오만방자하다. 역사를 주관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종이호랑이로 만들어 버린다. 그런 오만무도한 이들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의 최후를 똑똑히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주님, 우연이 겹겹이 이어져 쌓이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뜻이 필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봅니다. 우연을 쌓아 주시는 하나님이 그렇게 쌓인 우연을 통해 하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필연을 드러내심을 믿습니다.
*주님,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차려 주시는 기막힌 하나님의 역전 은혜를 신뢰하고 사모합니다. 주님 다시 오시기까지, 이 믿음으로 살아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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