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지속되어야 할 구원의 기억, 자원하여 기쁨으로 지키는 구원의 축제 [에스더 9:20-10:3]
 – 2025년 05월 22일
– 2025년 05월 22일 –
에스더 9:20-10:3 지속되어야 할 구원의 기억, 자원하여 기쁨으로 지키는 구원의 축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로 인해 유다인 진멸의 날은 구원의 날이 되었다. 애통함이 변하여 즐거움이 된 이날은 “부림절”로 제정되었고, 매년 이 절기에 유대인들은 서로 선물을 주고받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경축하였다.
    
“부림절”은 페르시아에 거주한 유다인이 하만의 모함으로 다 죽을 위기에 처했으나 하나니의 섭리를 통해 극적으로 생명을 건진 사건을 경축한 데서 비롯되었다. “무리”이란 명칭은 “제비뽑기”를 뜻하는 “부르”에서 나왔다. 이 절기는 아달월(열두째 달, 양력 2/3월) 십사 일과 십오 일에 지킨다. 현재에도 이스라엘은 매년 이 절기에 회당과 가정에서 에스더서를 낭독하고, 서로 선물을 주고받고, 구제하며, 거리 행진과 연극 등으로 이날을 경축한다.
    
    
    
1. 부림절 확정을 위한 첫 번째 편지(20~22절)
모르드개는 페르시아 각 지방의 모든 유다인에게 첫 번째 편지를 보내어 일어난 일들(1절, 이 일들)을 기록하고 부림절을 지키라고 명한다. 9장 1~19절의 기록이 포함된 에스더서 대부분의 이야기를 아달월 십오 일과 십사 일을 매년 지킬 것을 지시한 것이다. 이 두 날을 명절로 삼은 이유는 분명하다. 유다인이 죽음에서 생명의 구원을 얻었기 때문이다.
    
유다인의 대적들이 사라짐으로써 유다인에게는 안식이 찾아온다. 한때 베옷과 재를 뒤집어쓰고 애통하며 금식했지만(4:1, 3) 이제는 대적들을 처단했으므로 슬픔이 기쁨으로, 애곡의 날이 명절(22절, 길한 날)로 뒤집혔다. 이와 같은 반전과 기적은 하나님의 섭리와 그분의 보이지 않는 선한 손이 함께했기에 가능하다(스 7:9; 느 2:8). 모르드개는 매년 부림절에서 선물을 서로 주도록 권면하고 가난한 자들에게도 선물을 주라고 지시를 덧붙인다. 이것은 누구든지 경제적인 이유로 죽음이 생명의 날로 뒤바뀐 축제의 기쁨에서 누락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느 8:10, 12).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에게 절기를 지킬 때 자기 가족만이 아니라 노비, 레위인, 객, 고아, 과부와 함께 즐거워하라고 명하시며 모두가 절기의 기쁨을 함께 누리기를 바라셨다(신 16:11, 14). 오늘날 교회에서도 정한 절기를 지키며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돌아보는 것은 매우 가치 있고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 부림절의 유래와 제정(확정)을 위한 두 번째 편지(23~32절)
부림절은 이미 시작되었고, 모르드개가 첫 번째 편지를 보내자 이를 공식적인 명절로 받아들인다. 이 절기의 유래는 24~26절에 요약되어 있다. 27~28절은 부림절로 불리게 된 유래와 이 명절을 누가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먼저 부림절이란 이름은 제비뽑기에 해당하는 단어인 “부르”에서 나왔다. 유다인 진멸의 날이 제비뽑기(푸르)에서 결정되었는데, 이 단어를 따라 절기를 “부림(부르의 복수형)”으로 불렀다. 유다인은 자신들이 직접 자기들 앞에 닥친 일을 경험했고 이제 모르드개의 편지까지 받아 보았으므로 부림절을 절기로 제정하고 받아들였다.
 
유다인이 제정한 부림절은 그에 관한 기록과 정해놓은 시기를 따라 자기들만이 아니라 그들의 자손들과 유다인으로 귀화한 자들(8:17)도 모두 지켜야 하는 절기로 삼게 되었다. 각 지방, 집마다 유다인은 부림절을 기억하여 죽음에서 구원을 얻은 그날을 대대로 기념해야 하고 중단해서는 안 된다. 27~28절에서 부림절 기념과 이 절기의 폐지 금지를 강조하는 이유는 22절에 설명된 대로 유다인이 죽음의 위협에서 죽음이 아닌 생명과 안식을 얻었기 때문이다.
    
29~32절은 부림절 확정을 위한 모르드개의 두 번째 편지이다. 이번 편지는 에스더 혼자 썼거나, 모르드개와 함께 쓴 것으로 이해된다. 왕후 에스더와 유다인 모르드개의 “모든 권한”으로 기록되었다. 특히 이 단락에서 왕후 에스더의 이름이 세 번 반복되었는데(29, 31, 32절), 이는 부림절 제정을 확정하는 데 있어 왕후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었음을 보여주며 부림절의 권위를 증진한다. 이 편지는 화평과 진실한 말로 기록되어 부림절 제정의 진정성을 나타낸다. 31절에서 언급하는 금식과 부르짖음은 부림절 때 지켜야 할 사항은 아니다. 금식과 애통의 절기처럼 이제 부림절도 정한 기한에 절기로 지키도록 확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에스더는 왕후로서 부림절을 승인했으며 이 사실은 책에 기록되어 공식화되었다.
    
    
    
3. 후기(10장 1~3절)
에스더서의 마지막은 아하수에로 왕과 모르드개의 창대함을 언급하며 끝난다. 특히 1절과 2절 상반부에는 아하수에로 왕의 공적을, 2절 후반부와 3절에는 모르드개의 공적을 기록하여 왕의 위대함에서 모르드개의 위대함으로 초점을 옮겨간다. 아하수에로 왕은 육지와 바다의 섬들, 즉 원근에 있는 나라들에서 조공을 받았음이 기록된다. 실질적인 통치권을 행사했다는 의미다. 열왕기와 역대기에서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의 죽음 후 왕의 공적을 기록한 책을 언급하듯 기록하였다.
    
왕의 사적과 더불어 모르드개의 행적도 주목받는다. 페르시아 왕조 실록에는 왕이 승진시킨 모르드개의 위대함이 기록되었다. 모르드개는 “유다인”으로서 왕 다음 가는 지위를 가졌다. 모르드개의 승진과 가장 높은 지위에 대한 언급은 하만의 승진과 그의 지위를 상기시킨다(3:1). 한때 승승장구했던 아각인(아말렉인) 하만은 이제 그의 지위나 소유가 없으며 그의 자취와 그를 이를 후손도 없다. 즉, 출애굽기의 선언처럼(출 17:14) 그들의 이름을 기억할 사람이 없게 되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유다인 중에 창대해졌으며 많은 형제의 총애를 받게 되었다.
    
모르드개가 같은 민족에게서 인정받고 유명해진 이유는 그가 유다인의 선(이익)을 추구하고 유다 자손에게 화평을 말했기 때문이다. 이는 모르드개가 이방 땅에서 이방 민족들 사이에 흩어져 거하는 유다 민족의 안녕과 안전을 돌봐주었다는 뜻이다.
    
    
    
나는?
-모르드개는 제2의 유월절을 제정하듯 아달월 십사일과 십오일을 이스라엘의 새로운 절기로 지키라고 명령한다. 하나님께서 유다인의 슬픔을 기쁨으로, 애통하던 초상의 날을 잔칫날로 바꾸어서 두려움에 떨던 민족에게 평안을 주셨기 때문이다. 이날은 즐거이 잔치하며 기념할 뿐 아니라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함으로써 자신이 값없이 받은 은혜를 이웃에게 실천하라고 한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죽음에서 살려주신 은혜를 어떻게 기억하고 기념하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부활절을 지키고 있지만, 과연 우리가 함께 즐거워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도우며 함께 잔치하고 있는지, 부림절을 지키는 모습과 비교하여 현재 우리의 모습을 돌아볼 일이다.
    
-에스더는 두 번째 편지를 통해 다시 한번 부림절 준수가 얼마나 중요한지 확증한다. 그들이 죽음의 위기 앞에서 자발적으로 울며 회개하고 간구하였듯이, 부림절은 그러한 자원하는 마음으로 지키라고 명령한다.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그리스도의 구속이 과거의 일에 머물지 않게 하고, 주의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하는 첫사랑의 기억이 옛이야기가 되지 않게 하려면, 우리의 구원이 완성될 때까지 영적인 부림절이 우리 안에서도 지켜져야 할 것이다. 그것은 예배와 구제와 섬김의 영역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인데, 철저히 자원하는 감사의 마음을 통해 계속 지켜져야 한다.
    
-아하수에로 왕의 나라는 하만이 다스릴 때보다 모르드개가 다스릴 때 더욱 번영을 누린다. 사적인 관심에만 몰두하던 아하수에로 왕과 탐욕에 눈이 먼 하만과는 달리 하나님의 사람 모르드개는 백성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자기 동족만이 아니라 모든 종족의 안위(샬롬)를 먼저 생각하였다. 이 땅의 하나님 나라 백성도 이 어두운 세상에서 빛으로 구별되어 살아감으로써 모르드개가 받았던 존경을 누리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이 땅의 지도자들이 자신의 이익보다 백성의 샬롬을 먼저 챙기도록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마침, 이 나라의 지도자를 선출하는 선거를 앞에 두고 있다. 에스더서를 통해 깨닫게 하는 지도자에 대한 시각들을 잊지 말고 위민(爲民)하는 지도자 선택하기를 기대해 본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하나님이 존재하심을 입증해 보이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전제로 삼을 뿐이다. 에스더서의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일상적인 삶의 모습들 속에 역사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준다. 일상적인 삶의 예기치 않은 사건과 상황들을 활용해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 가심을 일깨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심오하게 임재하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하시는 모습은 성경 전체에 걸쳐 뚜렷이 드러난다. 창세기의 에덴동산에서, 출애굽기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 사역과 자기 백성에게 주신 말씀을 통해, 무엇보다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통해서 선명하게 보여주신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반역으로 인해 약속의 땅에서 추방당한 이후,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는 듯한 모습으로 인해 근심하게 된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만 임재하시는가? 라는 회의적인 질문이 지속되었다. 포로 생활이 끝났지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 않고 페르시아에 남아 있던 유다 백성에게 이 질문은 매우 진지한 것이었다. 그러나 약속의 땅 밖에서도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지켜주신다는 분명한 메시지가 바로 에스더 이야기다.
    
*특히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은밀함 중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한다. 하나님이 일하신 흔적이 사방에 넘친다. 그런데 정작 하나님의 임재는 보이지 않는다. 삶에 우연은 없으며, 사람이 우연한 일로 간주했던 그 사건들을 통해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세계에서 일하고 계심을 깨닫게 하신다.
    
*특히 에스더 이야기는 잠언의 유명한 말씀을 소환한다.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잠 16:33)”. 하나님의 이러한 방식의 다스림은 “부르(제비뽑기)”에 의해 결정된 파멸의 조서에도 뚜렷이 드러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보존하기 위해 그분의 자비로써 이 칙령을 무력하게 만드셨다. 또한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라(잠 21:1)”라는 말씀을 통해 온 세상을 주권적으로 이끌어 가고 계신다는 것을 일깨우신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처럼 역사하신다.
    
*하나님은 또한 궁극적인 승리자이시다. 아무리 원수들이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을 대적할지라도 하나님은 승리자다!. 마침내 하나님이 이기신다. 자기 백성을 대적하는 악한 위협을 제압하고 그들의 삶을 보존해 주신다. 유다인에 대한 학살을 무효화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자신들을 대적하는 자들보다 우위에 서게 하시며, 하만을 비롯한 악한 세력들의 위협을 무너뜨리신다.
    
    
*에스더서의 결론은 “지속되어야 할 기억, 자원하여 지키는 구원의 축제”를 결론으로 제시한다. 구원의 은혜는 잊혀서는 안 된다. 구원받았음의 기쁨을 자원하여 누리는 것도 포기하면 안 된다. 오늘날 우리가 이어받은 지속되어야 할 기억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다. 이를 기억하며 자원하여 지키는 구원의 축제는 “예배”이다. 예배가 억지로 드리는 종교 행사가 아니라 마음과 정성과 힘과 뜻을 다해 자원하여 누리는 축제이어야 함을 놓쳐서는 안 된다.
    
*나의 예배는 즐거운 축제인가? 답답한 형식인가?
    
*지속되어야 할 구원의 기억은 기록된 말씀으로 일깨움을 받는다. 그러므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은 기억을 되새김질하는 중요한 시간이며, 전수하는 뜻깊은 시간이다. 예배는 말씀을 통해 되새김질하고 전수하는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를 온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해 표현하며 기쁨을 누리는 시간이다. 나의 예배가 그런 감동이 살아 숨쉬기를 간절히 바란다.
    
    
    
    
*주님, 보이지 않지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기 위해 자원하여 즐겁게 누리는 축제인 “예배”의 삶을 살겠습니다.
*주님, 지속되어야 할 구원의 기억, 자원하여 기쁨으로 지키는 구원의 축제를 다음 세대에 전수하기 위해 오늘 구원의 기억을 말씀으로 되짚고, 기쁨의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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