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1:1-11 은혜와 평강, 감사와 기쁨, 성실한 동역의 빌립보 교회
빌립보서는 복음 때문에 감옥에 갇힌 바울이 십여 년 동안 자기와 동역하고 있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쓴 편지이다. 빌립보 교회의 내적 갈등과 로마에 적극 충성하는 빌립보 도시가 교회를 향해 압박하는 외적 문제들에 대하여 바울이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고 에바브라디도를 통해 자신의 필요를 채워준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도 표현한다.
바울은 당시 편지 형식에 따라 발신자와 수신자를 언급하고 문안 인사를 한다. 이어 수신자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들을 위해 늘 기도하고 있음을 전한다. 전형적인 편지 형식을 취하지만, 바울만의 독특함을 담아 내용을 전개한다. 서문에 해당하는 본문은 편지 본문을 암시하고 수신자들을 향한 사랑과 관심을 표한다.
에게해의 최북단에 있는 빌립보는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2세가 건설한 도시로서 인근에 큰 금맥이 있어 정치와 경제의 중심이 되었다. 주전 168년에는 로마의 속국이 되어 로마의 주요 군사도시가 되었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아드리아해(두러스)에서 보스포루스 해협(이스탄불)에 이르는 1,120km의 에그나티아 가도(Via Egnatia) 한 가운데에 위치하여 번영을 누렸다. 빌립보 시민은 이탈리아 본토인과 같은 “이우스 이탈리쿰(Ius Ltalicum)”의 지위를 얻어 당당한 로마 시민권자로서 황제에게 호소할 권리와 특별한 이유 없이 신체를 구금당하지 않는 자유를 누렸으며 공물·세금의 면제와 로마 총독의 간섭 없이 행정을 꾸릴 특권을 누렸다.
그런데 빌립보에는 하늘나라를 사는 이들도 있었다.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빌립보가 복음의 거점 도시가 된 것은 바울이 제2차 전도 여행 때 소아시아의 서쪽 끝 드로아에서 본 환상 때문이다. 바울은 한밤에 마케도니아 사람이 나타나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행 16:9)라는 환상을 보았다. 주님의 부름이라고 확신한 바울 일행은 빌립보를 방문하여 복음을 전하였다. 바울의 말을 귀담아듣던 옷감 장수 루시아가 첫 열매가 되어 그녀와 그녀의 온 집안이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의 복음이 유럽을 향해 길을 걷는 교두보가 되었다. 하지만 귀신 들려 점을 쳐 주인의 돈벌이 수단이 되는 한 여종을 고쳐준 일로 돈벌이 수단을 잃은 주인들에 의하여 바울과 실라가 고소당하여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어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행 16:16~40).
이런 과정을 거쳐 세워진 빌립보 교회는 바울에게 큰 기쁨이고 위로였다. 바울 일행이 빌립보를 떠나 데살로니가와 고린도에서 전도 활동을 할 때 빌립보교회는 선교비를 지원하였다(고후 11:9, 빌 4:15~16). 그들은 이방인 교회이면서도 가난과 기근으로 고통 당하는 유대인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마음을 모았으며, 바울이 로마로 압송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누구보다 걱정하며 기도하였다. 바울이 로마 옥중에 있을 때는 에바브로디도 편에 선물을 보내 위로하기까지 하였다. 그래서 바울이 빌립보 교회 교인들에게 쓴 편지의 모든 말은 빈말이 아니라 진심이다.
1. 도입(1~3절)
당시 일반적인 편지 형식을 따라 기록했다. 발신자와 수신자, 문안 인사로 구성된다. 하지만 바울이 쓴 편지만의 특징이 있는데, 먼저 자신을 “사도”라는 말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사도로서의 권위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과 그분을 섬기는 자임을 말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소개는 본문과 관련하여 의도적이라고 볼 수 있는데 교회의 내적 갈등에 대해 권면하면서 예수님의 섬김을 말할 때 다시 사용된다(2:7). 이는 교회 문제에 대해 종으로 섬기신 예수를 따라 살라고 말하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바울 자신을 모본으로 소개하여 자신을 본 받으라고 말하기 위함이었다(3:17).
그리고 바울과 디모데를 동급으로 표현한다. 바울 서신 중에서 특별한 소개 없이 이름만 나열하는 데살로니가전후서를 제외하면 유일한 표현이다. 보통은 바울은 사도로, 디모데는 형제로 표현했다. 이렇게 동급으로 표현한 이유를 짐작하자면, 발신자를 종으로 표현한 것과 연관지어 디모데 역시 자신과 똑같이 예수를 충심으로 섬기는 자임을 소개하려는 의도였다. 사실 디모데는 빌립보 교회 개척자 중 한사람이어서 교회가 그를 잘 알고 있었지만, 디모데를 더욱 강력하게 추천한다. 이 의도는 2:19~24에서 구체화된다. 또한 수신자와 관련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빌립보 교회 성도”라고 표현한다. 그리스도 안이라는 영적인 차원과 빌립보라는 물리적 차원의 이중 정체성은 교회의 내적 문제(2:1~11, 12~13), 외적 문제(1:27~30; 2:14~18)를 다루는 권면의 기초가 된다. 하늘의 시민권을 말하며 복음에 합당하게 살라고 한 3:20과도 연결된다. 마지막으로 감독들과 집사들을 수신자 속에 포함한다. 모든 바울 서신 중에서 유일한 표현이다. 짐작하기는 4:2~3에서 등장하는 유오디아와 순두게와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포석일 것이다. 모든 내용은 독자의 상황을 알고 그들과 소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바울의 의도가 담겨 있다.
3절은 수신자 상황과 그들과의 관계에 근거하여 하나님께 감사한다. “나의 하나님”으로 부르며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드러낸 바울의 감사는 독자를 향한 마음뿐 아니라, 그 둘의 관계를 짐작하게 한다.
2.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위한 기도(4~11절)
빌리보 교회 성도들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한 바울은 그들을 위한 기도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4절에서 기도한다고 말하고 9절에서 비로소 그 내용을 언급한다. 기도의 이유가 상당히 긴데, 이는 기도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기 떄문이었다. 핵심은 복음과 관련한 바울과 빌립보 성도들간의 사랑이다. 또 기도의 내용을 소개하는데, 이는 빌립보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망므을 표현하려는 의도가 있다. 동시에 기도의 내용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리려는 것이다. 바울이 기도한다는 것은 그 내용이 중요하다는 의미이기에 독자들 역시 그것을 위해 기도하고 그 내용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5~8절은 기도의 이유를 밝힌다. 빌립보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기도는 단순히 교인들이 필요한 것을 공급했기 떄문이거나(2:30; 4:10, 18), 교회를 개척한 개척자(사역자)와 성도의 관계 때문이 아니다. 철저하게 복음 사역 동역자로서 보여준 사랑과 신뢰 때문이었다. 이를 몇 가지 모습으로 확인할 수 있다.
먼저 “나”와 “너희”라는 인칭 대명사 사용이 많다. 바울과 빌립보 성도들의 친밀한 관계를 강조한다. 그리고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 사역에 함께 한 것을 시간 흐름을 따라 기술한다. 예를 들면 교회가 시작될 때부터 지금까지 복음에 참여했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말한다(5절).
또한 에바브라디도를 통해 필요한 것을 공급하는 것은 바울이 감옥에 갇힌 것이 복음을 위한 변호와 확증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그것에 동참한 것이라고 말한다(7절). 이와 함께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이 복음 전파 사역에 참여하는 일이 미래에 주님 오실 때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 모든 과정을 시작하신 하나님이 끝까지 이루실 것이기 때문이다(6절). 7절에서는 빌립보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확신이 타당하다고 부연하고, 8절은 자신이 성도들을 얼마나 원하는지 하나님이 증인이라고 말한다. 심지어는 마치 그리스도가 심장을 포함해 몸속 기관에서부터 절절히 성도들을 사랑하듯 자신도 그렇다고 표현한다. 이런 표현들은 교회와 사역자가 어떤 관계로 연결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며, 더 나아가 바울의 중보기도 내용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9~11절은 기도의 내용을 소개한다. 큰 주제는 빌리보 성도들의 사랑에 대한 것이다. 이미 복음안에서 사랑하고 있는 것을 전제하고 두 가지(지식과 총명)를 추가하여 그 사랑의 삶을 더 풍성하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지식은 하나님의 뜻과 관련한 것이고, 총명은 통찰력이나 판단의 지혜다. 모두 분별의 삶을 위해 필요하다.
결국 바울의 기도는 빌립보 성도들이 지식과 총명으로 분별하는 사랑의 삶을 살아가게 해달라는 것이다. 여기에 바울은 이런 삶이 왜 필요한지를 첨가한다(10~11절). 이는 그들이 진실하며 허물없는 모습이 되기 위해서다. 진실하다는 것은 개인과 교회 공동체 내에서 복음과 관련하여 순수하고 바른 동기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고(2:1~4), 허물이 없다는 것은 세상 속에서 복음의 장애가 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2:15). 이 모습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에 합당한 의의 열매가 가득 맺히는 것이고,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이 돌려지는 삶이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의 이런 모습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계속되기를 소망한다.
바울의 기도 내용에는 성도의 삶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원리를 담고 있다. 먼저 성도의 삶은 진리로 분별하는 사랑의 삶이다. 또, 성도의 삶은 크고 길게 보아야 한다. 즉, 그리스도 예수의 날을 인식하고 세상 속에서 오늘이란 시간을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충실하게 살아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나는?
-바울은 옥중에서 기쁨을 잃지 않고 감사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주님의 은혜와 능력에 대한 “기억과 확신”때문이었다. 구원 경륜(착한 일)의 시작과 마지막을 주장하시고 이 모든 일을 이루어 가실 하나님의 주권을 확신하며 기뻐한다. 조건과 환경이 아니라 변함없는 주님이 우리의 감사와 기쁨의 이유가 되었기 때문이다. 성도들 안에서 시작한 선한 일을 하나님께서 끝까지 이루실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복음의 문을 여시고 박해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복음의 역사에 참여케 하시고(5절) 사랑 안에서 그들을 흠 없는 주의 날까지 이르게 하실 분도 하나님이시니, 지금 그의 옥중의 삶이 실패가 될 수 없었다.
-빌립보 성도들은 바울이 복음을 전해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변명하고 확정하는 바울의 사역에 참여하였다. 바울이 옥에 갇혀 있을 때에도 마음을 함께하였고, 물심양면으로 힘껏 도운 교회였다. 이해나 상황에 따라 변하는 관계가 아니라 주님 안에서 복음이 엮어 준 진실한 교제, 사심 없는 동역, 성실한 사랑이 옥중에서도 바울에게 위로가 되었다. 동시에 그에게 끊임없이 기쁨으로 기도하게 하였다.
-예수의 심장으로 성도들을 뜨겁게 사랑하는 바울은,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하나님과 서로를 향한 그들의 사랑이 풍성해지게 해달라고 구한다. 성숙한 사랑으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고 진실하여 허물없이 의의 열매를 맺으며 마지막 날 주님 앞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구한다. 지혜와 총명으로 자라는 사랑, 의의 열매를 맺는 사랑, 영광과 찬송이 되는 사랑, 이것이 빌립보 성도들을 위하여 기쁨으로 쉬지 않고 드린 바울의 기도였다.
*은혜와 평강을 전하는 바울의 모습이 보인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모든 이들에게 은혜와 평강을 전한다. 차디찬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은혜와 평강의 호의를 받고 누리며 전할 수 있는 것이 복음의 진정한 능력일 것이다. 우리의 삶도 날마다 옥죄어 오는 팍팍한 현실 속에서 한숨짓고 주저앉지 않고 주의 은혜와 평강에 매여 하늘 소망을 누리는 삶이 되기를 소망한다.
*바울이 이렇게 옥중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고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은혜와 능력에 대한 “기억과 확신” 때문이었다. 바울은 감옥 속에서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 사역에 동참한 성도들을 기억하며 감사했다. 착한 일(구원의 경륜)을 주관하시고 이루실 하나님의 주권을 확신하며 기뻐했다. 한결같은 감사와 기쁨은 변하는 조건이나 환경이 아니라 변함없는 주님 안에서만 찾을 수 있는 은혜이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선교 열정이 대단하다. 그들은 복음을 받아들인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전하고 확정하는 바울의 사역에 참여해 왔다. 심지어 바울이 갇혀 있을 때도 물심양면으로 힘껏 도왔다. 상황에 따라 변하는 관계가 아니라 복음이 엮어준 진실한 교제와 사심 없는 동역, 성실한 사랑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빌립보 성도들 안에서 시작하신 “선한 일”을 끝까지 이루실 것이다. 유럽의 첫 관문이자 로마의 식민지인 빌립보에 복음의 문을 여신 분은 하나님이셨다(16장). 또 심한 박해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복음의 역사에 참여하게 하셨고(5절), 이제 사랑 안에서 흠 없이 주님의 날까지 이르게 하실 분도 하나님이시다(10절).
*하나님께서 우리 더온누리교회에도 이 선한일을 시작하셨다. 우리 공동체와 나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는 이미 시작되었고 진행 중이다. 우리는 이 선한 일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 1세기 빌립보에 ‘예수의 심장’을 가지고 살던 그리스도인은 21세기 전주에도 있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기도하며 복음 일꾼을 격려하고, 어려운 형편에 처한 인류를 염려하며 하나님의 선한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을 경외하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이다. 곧 나사렛 예수의 십자가 대속 죽음을 믿고 그 길을 자기 길로 정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이란 시공을 초월하는 존재이다. 습관적 종교인이 아니다.
*구원의 시작과 과정과 끝을 주장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을 신뢰할 때 나와 우리 공동체의 영적 안전과 성장을 확신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묵상이라는 도구는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선한 일을 기억하며 감샇고, 기대하며 그 거룩한 역사에 참여해야 한다.
*”첫 날부터 이제까지”,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바뀌고 상황이 달라져도 바울과 빌립보 성도들간의 교제와 동역은 한결같았다. 아..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복음, 사랑, 그리스도의 심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모습이 나에게도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미 이루어졌고, 더욱 완성되기 위해 더온누리공동체의 걸음을 이끌어 주실 것이다. 이를 위해 네게 이루어져야 할 절실한 것은 무엇일까…
*주님, 은혜와 평강, 감사와 기쁨, 성실한 동역의 빌립보 교회가 보입니다. 장차 우리 더온누리교회도 그 길을 따라갈 줄 믿습니다.
*주님, 예수의 심장으로 사랑하는 바울의 모습도 보입니다. 저도 예수의 심장으로 사랑하며 목회하겠습니다. 교회를 향한 감사와 사랑과 기도가 이심전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