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1:12-26 믿음의 진보와 기쁨의 비결
본론이다. 바울은 수감 생활을 걱정하는 빌립보 성도들을 안심시키면서 오히려 그 상황이 복음이 더 확장되는 기회가 되었다는 긍정의 소식을 전한다. 자신이 석방될지 순교할지 확실하지 않지만 석방을 통해 성도들의 기도와 염려를 기쁨으로 바꾸어주실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상황과 상관없이 복음 안에서의 삶을 계속 살라고 독려하려는 의도다.
바울은 자기가 당한 일 곧 옥에 갇혀 있는 일이 복음 전파에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당시 착한 뜻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시기심과 질투로 인해 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어쨌든 그리스도가 전파되고 있으니 바울은 기뻐하고 기뻐하겠다고 말한다. 오직 그리스도가 높아지는 것이 바울 삶의 목표요 전부임을 말한다.
1. 복음의 진보와 그리스도 전파의 동기(12~17절)
바울은 쇠사슬에 매여 있었지만, 그것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되었다고 말한다. 바울은 자기 자신의 안위보다도 복음의 진보에 더 관심이 있었다. 복음이 더욱 널리 퍼지게 된 것은 옥에 갇혔어도 조금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복음의 진실성을 확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재판 받을 때 담대하게 복음을 자랑하였을 것이고, 이 모습을 보고 가이사의 군사(시위대) 중에서도 믿는 자들이 생겼고(4:22), 그 모습을 보고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이 도리어 굳세어졌다는 뜻이다.
15~17절은 그리스도 전파의 동기를 소개한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는 두 부류가 있었다. 한 부류는 순수하게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고, 다른 부류는 오히려 바울의 재판에 불리한 영향을 미치기 위해 좋지 못한 동기로 전하는 사람들이었다. 당시는 복음 전파하는 일에 많은 경쟁자들이 있었다. 또한 바울을 비방하고 해롭게 하려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이들은 복음이 전파될수록 소요와 분쟁이 많이 발생하게 될 것이고, 재판에서 바울에게 불리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을 것이다.
2. 바울의 그리스도 중심 태도와 고민(18~24절)
18~21절은 현 상황에 대한 바울의 태도를 보여준다. 바울은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기뻐하고 기뻐하겠다고 한다. 왜냐하면 어쨌든 그리스도가 전파되기 때문이다. 비록 순수하지 못한 동기로 복음이 전파된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이다. 이 부분을 통해 바울의 “그리스도 중심” 태도를 살펴볼 수 있다. 더 나아가 바울은 자기는 살든지 죽든지 오직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바울은 자신의 안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에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말한다. 그의 생사를 초월한 그리스도 중심 사고의 절정을 보게 한다. 바울이 옥중에서도(고난 중에서, 죽음 앞에서라도)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복음과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22~24절은 바울이 그가 살아야 할지 죽어야 할지, 어느 것을 택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는 죽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더 좋은 일이지만, 살아서 교회를 위해 수고하는 것이 성도들에게 더 유익하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은 살고 죽는 생사의 문제를 교회를 위해 어느 것이 더 유익한지로 따지는 사도 바울의 이타적인 태도를 볼 수 있다. 바울은 마치 삶과 죽음을 결정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자신에게 있는 것처럼 말한다. 그에게 있어 감옥은 어쩔 수 없이 당하는 고난이 아니라 그가 스스로 선택한 고난이었다. 복음을 전하는 대가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다. 바울에게 죽음은 결코 복음의 실패가 아니며, 자기 일생의 실패도 아니었다. 살아서 복음을 전하고 향제를 세우는 것도 좋지만, 죽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은 더욱 좋기 때문에, 생사를 초월하여 살 수 있었다.
*그 믿음 놀랍다. 그 믿음 존경스럽다. 말처럼 쉬운 것이 결코 아니기에…
3. 바울의 석방에 대한 확신(25~26절)
바울은 결국 빌립보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 그들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해 그가 살게 될 것과 그들과 함께 하게 될 것을 확신한다. 철저하게 그리스도 중심적 사고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그래서 자신의 운명도 어떻게 될지 미리 아는 참된 지혜와 분별력을 보인다.
바울에게 삶보다 중요한 것은 삶의 이유다. 곧 하나님의 부르심, 즉 사명이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석방될 것을 기대한다. 이는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성도들을 위해서다. 그의 석방은 믿음으로 바울을 위해 기도하던 이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고, 그 결과 하나님을 자랑하게 될 것이다. 또한 바울을 다시 보게 되어 기뻐할 수 있다.
바울의 마음의 중심은 그리스도와 함께 빌립보 성도들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 채워 있었다. 그의 삶의 기준인 그리스도와 복음, 성도들이었다. 즉,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순종이었다.
나는?
-바울은 무엇보다 복음 전파에 관심이 있었다. 자신이 당하고 있는 상황과 처지에 관심을 고정하지 않는다. 자기 정욕에 고정된 시선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돌리는 것은 매우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 줄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복음의 진보다.
-바울은 자기에게 이익이 되든 손해가 되든 오직 그리스도만 전파된다면 이로써 기뻐한다고 말한다. 바울의 모습을 보며 나의 모습을 되돌아 보게 된다.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자기 이익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는가? 아주 작은 손해라도 견디지 못하고 교회를 떠나고 신앙을 저버리지는 않는가? 바울의 그리스도 중심적 사고에 진심으로 도전받지 않는가?
-바울은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고백한다. 철저한 그리스도 중심적인 삶은 죽음도 초월하고 모든 것이 교회를 섬기는 것으로 귀결된다. 오늘날 적용하자면 교회 중심적인 삶, 이타적인 삶이 진정으로 성숙한 성도의 삶이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매임”이라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복음의 진보”를 이루셨다. 이는 오늘날 깊은 침체의 늪으로 점점 빠져 들어가는 한국교회에게 중요한 깨우침을 준다. 하나님의 역사는 환경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복음의 침체와 퇴보를 시대와 조건과 환경 탓으로 돌리지 말고 복음의 진보를 소망하며 이루기 위해 나의 마음을 다잡고 하늘의 기쁨을 사모하리라.
*나는 바울처럼 복음의 진보를 이루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며, 성도들의 신앙이 성숙해지는 것을 나의 기쁨과 기대와 간절한 소망으로 붙잡아 살아내야 겠다.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고 가장 큰 기쁨으로 여겨야 하리라.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고전 13:5). 갇혀 있는 바울은 자신의 유익보다 성도들의 필요를 먼저 생각했다. 나도 역시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나를 통해 공동체가 하늘의 기쁨과 유익을 함께 누리도록 섬겨야 하겠다.
*당시 전도자들이 같은 복음을 전하면서도 전하는 동기와 태도가 달랐음을 간과하면 안 된다. 어떤 이들은 복음을 변호하려는 선한 뜻과 사랑으로, 다른 이들은 바울을 괴롭게 하려는 불순한 동기로 전했다. 그ㅁ에도 복음은 분명히 전해졌다. 그리고 그렇게 각각 심은 대로 자기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다
*나의 삶 속에 비전을 가장한 야망이나, 사랑 없는 열정을 경계해야 한다. 이 위선이 가장 큰 기쁨의 복음을 전하는 자가 정작 그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당황스러운 지경에 빠지게 한다.
*바울은 성도들의 기도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감옥에서 풀려나게 될 것을 확신했다. 하지만 그가 더 바라고 원하는 것은 육신의 안위나 생사 여부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이다. 바울의 삶에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존재의 이유고 삶의 목적이었으며 전부였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어떨까?
*바울은 육신의 굴레를 벗고 주와 함께하기를 바랐지만, 성도들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해서는 사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바람과 유익보다 교회를 위한 사명과 유익을 더 앞세웠다. 바울에게 “복음의 진보와 그리스도의 영광”, 그리고 “성도들의 신앙”은 그가 살아있는 이유이자, 살아 내야 할 이유었다. 나에게 맡기신 사명도 동일하다. 그리스도의 영광과 성도들의 신앙을 위해 섬기는 걸음을 주저하지 않겠다.
*바울의 투옥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큰 위축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빌립보 교회는 바ㄹ의 투옥으로 말미암아 다수의 형제들이 주님을 신뢰하고 겁 없이 담대하게 하나님 말씀을 전했다. 고난을 부끄럽게 여기며 두려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바울이 그러했고, 그들이 믿고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했기 때문이다. 이런 빌립보 성도들을 바라보며 바울은 감사가 넘친다. 물론 그들의 복음 전하는 동기가 다르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바울이 바라보는 것은 “그리스도가 전해지는 것”이다.
*어떤 이는 복음의 진전을 위해, 혹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는 착한 뜻으로 각각 복음을 전하지만, 결국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임을 알기에 바울은 기뻐하고 감사했다. 그리고 그들을 사랑한다. 이런 삶의 모습이 무척 낯설다. 낯설지만 감당해야 할 모습이 아닌가…
*누구나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보고 싶을 때가 있다. 나의 신앙은 얼마나 성숙할까 라는 궁금함이 생길때가 있다. 그때, 본문의 바울의 모습이 척도가 되지 않을까? 나의 갈망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살피면 될 것이다. 자기 중심적인 사고와 행동이 그리스도 중심의 태도로 얼마나 변화되었는지 말이다.
*담임목사의 직을 감당한지 3년째이다. 나는 무엇을 중심으로 목회하고 있을까? 그동안 나는 무엇을 간절히 원했고, 지금 무엇을 간절히 원할까? 이런 나의 간절한 마음을 살피면서 한걸음씩 조심스럽게 이 직을 감당해야 하리라. 말씀이 중심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며 누리는 목회의 초점을 놓치지 말아야지… 이 갈망으로 오늘도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 나라 복음 전파를 꿈꾼다.
*주님, 오직 그리스도만이 삶이 중심되시기를 일상의 삶에서 한순간이라도 놓치지 않도록 힘쓰겠습니다.
*주님, 복음의 진보와 그리스도의 영광, 성도들의 신앙이 바울에게는 살아있는 이유이자, 살아야 할
이유였음을 깨닫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