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 [빌 2:5-18]
 – 2025년 05월 26일
– 2025년 05월 26일 –
빌 2:5-18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
 
계속해서 복음에 합당한 공동체의 모습을 알려준다. 크게 두 가지를 강조하는데,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5절)”과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12절)”이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제일 중요한 것이 한마음 한뜻을 품는 것이라고 보았다. 즉 무슨 일을 하든지 다툼과 분쟁이 없이 하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하셨는지를 설명한다. 그리스도의 기득권 포기와 자기비하의 삶을 통해 우리도 자신을 낮추어야 하는 참된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겸손의 모범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에 대해 설명한다. 하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온갖 멸시와 고난을 당하시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하나님은 지극히 높이셨다. 따라서 성도들도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낮추고 두렵고 떨림으로 조심스럽게 행하여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원망과 시비가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1.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 예수님처럼 낮아지라(5~8절)
5절 원문을 직역하면 “너희 안에 이것을 생각하라”이다. 이에 따르면 겸손은 “감정”의 영역이 아니라, “생각”의 영역이다. 감정에 따라 그저 말로만 표현하거나, 겉으로 허리만 굽실 거린다고 겸손한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 생각이 바르게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의 원문을 직역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5절은 “그리스도가 가졌던 생각”을 가리키는 것이다. 곧,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낮추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신 것은 그분의 의지적인 결정이었음을 보여준다.
 
6절에서는 예수님의 기득권 포기를 설명한다. 원래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의 지위와 신분으로 계셨다. 그런데 그 영광스러운 지위를 “탈취한 것(이미 따놓은 기득권)”으로 여기지 않으셨다. 참된 겸손은 자기가 누리고 있는 특권, 신분을 기득권으로 여기지 않고 포기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내가 어떤 사람, 지위, 능력이 있는데”식의 생각을 버리는 것부터다. 예수님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인데”라는 생각을 품었다면 낮고 천한 이 세상에 오지 않으셨을 것이다.
 
7~8절은 예수님의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이 자기를 비우고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오신 것으로 행동화 되었음을 일깨운다. 하나님이 인간이 된다는 것은 비천한 강등이고, 고생이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형태로 계시지 않고 종의 형태로 계셨다. 이 세상에 오셔서 멸시와 천대를 받으시고 고난 받으시며 마침내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셨다. 이 모든 것이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사랑 때문이었다.
 
 
 
2. 예수님의 낮아지심의 결과(9~16절)
9~11절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셨음을 설명한다. 때가 되자 하나님은 예수님을 높이시고 큰 영광을 주신다. 본문에 등장하는 뛰어난 이름은 구약에서 여호와 하나님께만 주어졌던 “주(여호와)”라는 호칭을 지칭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부르게 하신 것이다. 성도의 삶도 자신을 낮추는 것을 꼭 붙잡아야 한다. 빌립보 교회의 분열은 자기를 부인하고 낮추는 십자가의 정신이 결여된 데서 시작되었다.
 
12~13절을 통해 우리의 노력과 행함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룰 수 없음을 가르치신다. 성도는 이미 구원을 받았지만 미래적 의미의 구원을 위해 조심스럽게 노력해야 함을 가르틴다. 성도는 이미 받은 구원에 감사하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두렵고 떨림으로(조심스럽게) 행하여야 한다. 이 행동은 구원의 조건이나 전제가 아니다. 구원받은 자의 마땅한 삶을 의미한다. 바울은 이에 대한 오해가 없게 하기위해 “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라고 말한다.
 
14~16절은 구원받은 자의 삶은 무엇보다 원망과 시비가 없이 행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왜그래야 하면, 악한 세상에서 “빛들”로 나타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생명의 말씀을 붙들어야 한다. 세상 앞으로 빛으로 드러나는 삶을 통해 말씀을 전하기 위해, 즉 선교를 위한 전제 조건으로 공동체의 일치를 명령한다.
 
 
 
3. 바울의 기쁨 고백(17~18절)
빛들로 살아내야 할 공동체 지체들이 이렇게 놀라운 삶을 살아내기 위해 “이를 위해서라면 바울은 자기 자신을 “전제(관제)”로 드릴지라도 기뻐하고 기뻐하겠다고 말한다. 이는 자기 생명을 바치는 것을 가리킨다. 임박한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염두한 발언이다. 자신은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겠다는 것이며 이는 삶을 성도들도 본받으라는 의미일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기뻐하는지를 소개함으로 권면을 마무리한다. “믿음의 제물과 섬김”이란 빌립보 교회가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바울에게 전해준 것(2:25, 30)을 제사장적 섬김으로 묘사한 것이다. 설사 그들의 섬김을 받고 자신이 죽는다 해도 빌립보 성도들로 인해 기뻐한다고 고백한다. 자신의 죽음이 슬프지 않을 더 중요하고 기쁜 일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성도들이 믿음의 진보와 복음 안에서 하나 되어 계속 함께 서는 것이다. 빌립보 성도들에게 동일한 관점을 갖고 기뻐하라고 요청한다.
 
 
 
나는?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겸손한 삶의 모델이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서로 하나가 되고 구원을 이루며,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상 속에서 빛들로 살아가라고 권면한다.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했던 교만한 아담과 달리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게 누릴 수 있는 당연한 지위와 권리마저 다 버리고 종의 형체를 입고 사람이 되셨다. 이런 주님의 모습은 우리가 따라야 할 모범이다. 그리스도의 순종과 십자가의 삶은 하나님을 부정하고 자아를 숭배하는 시대에, 바라보고 붙잡아야 할 신앙의 가치이자 핵심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에게 가장 높고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 모든 피조물들이 복종하게 하셨고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하셨다.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고 그 주권에 순종할 때, 신앙은 자라고 공동체는 하나가 되며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내가 여전히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영역은 없는지 돌아볼 일이다.
 
-하나님은 기쁘신 뜻을 따라 우리 안에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 아들을 통해 구원받고 그 아들의 형상을 닮아가게 하는 것이 구속하신 목적이며 기쁘신 뜻이다. 그분의 뜻에 내 마음과 삶이 조율되도록 성령의 인도하심에 맡겨야 하리라.
 
 
*바울은 자기를 부인하고 지체를 사랑하는 겸손한 삶의 모델로 예수님을 소개한다. 한 단계 더 올라서기 위해 이웃을 경쟁의 대상으로 삼도록 유혹하는 세상에서 더 낮은 자리로 내려가서 섬기기 위해 내가 선 자리를 늘 돌아보아야 하겠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셨다. 하지만 그 자리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인간의 자리로 내여 오셨다. 나는 지금 나의 자리를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당연하게 여기며 누리고 있지는 않는가? 결국 지금 내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내려놓는 것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모습 아닐까? 겸손함이 아닐까? 당연함 때문에 볼 수 없었던 감사함이 비로소 보일 수 있을 것이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는(12절) 말씀은 개인의 영혼 구원, 그리고 공동체 전체의 연합과 회복을 위한 명령이다. 자신과 공동체가 함께 구원을 이루어 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통찰해야 한다. 영적 자만과 방종에 빠지지 않도록 더욱 경계해야 한다.
 
*두렵고 떨림… 하나님 실존 앞에서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이다. 그런데 늘 함께 하신다고 쉽게 되뇌이지만, 실제 함께 하시는 하나님 앞에서의 두렵고 떨림이 온간데 없다면 과연 하나님의 실존을 인정하고 감각한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런 면에서 바울의 권면은 늘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함으로 살라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나는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성도를 사랑하고 그들의 믿음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감당할 수 있을까? 또한 마지막 날 주 앞에서 지도자의 자랑이 되고 지도자의 수고를 헛되지 않게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추구하고 있는가?
 
*하나님은 나의 마음에 소원을 심어주신다(13절). 하나님의 선한 뜻이 나의 마음에 소원으로 심겨진다. 매일의 말씀 묵상은 하나님께서 날마다 나에게 소원을 심어주시는 시간이다. 그 소원이 삶의 힘이 되고 길잡이가 되는 것을 안다. 소원을 이루어주시는 살아계신 하니님이시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에게 말씀으로 심겨주신 소원을 붙잡고 믿음으로 행하리라. 하나님이 심겨주신 소원이 나의 삶을 이끌어주시리라.
 
 
 
*주님, 예수님의 마음을 품겠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섬기고 사랑하며 희생하는 걸음을 걷겠습니다.
*주님, 심겨주신 소원을 붙잡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떨림으로 바라보며 나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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