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2:19-30 바울의 참된 동역자들_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내부 문제를 다룬(1:27~2:18) 후에 교회에게 보낼 두 사람,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추천한다. 디모데는 성도들의 상황을 알고 싶기 때문이며, 에바브로디도는 병이 들었다가 회복되어서 돌려보내는 것이다. 이 두사람은 빌립보 교회가 이미 알고 있고 인정하는 사람들이지만, 바울은 그들을 예수를 따르는 신앙의 또 다른 모본으로 소개한다.
바울이 로마의 감옥(가택연금)에 있을 때 그의 곁에는 충성된 몇 명 있었다. 그중에서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는 모든 성도들에게 귀감이 될 귀한 일꾼들이었다. 디모데는 자식이 아버지를 섬기듯 바울을 섬겼다. 그리고 빌립보 교회가 파송한 에바브로디도는 바울과 복음을 위해 헌신적으로 수고하다가 병이 났지만 자기를 돌아보지 않고 목숨을 다해 충성하였다. 바울은 이런 종을 기쁨으로 영접하고 귀하게 여기라고 부탁한다.
1. 디모데를 보내기 원함, 디모데의 연단과 바울의 계획(19~24절)
바울은 에비브로디도 편에 빌립보 교회의 소식을 듣고 위안을 받았다. 그리고 에바브로디도에게 빌립보서를 들려 보내서 그들을 격려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고 디모데까지 보내고 싶어한다. 디모데는 현재 옥에 갇힌 바울을 섬기고 있다. 바울은 왜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 보내려고 할까? 이는 빌립보 교회의 사정을 더 상세히 앎으로써 위안을 받기 위함이다. 디모데는 예수의 일만 구하기 때문에 자기 유익을 구하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예수님의 시각으로 빌립보 교회의 형편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본다. 하지만 디모데는 예수님이 보고 싶어하시는 것을 먼저 본다. 그는 진실한 일꾼이었다.
또한 디모데는 잘 훈련받은 제자였다. 그가 바울을 섬겨온 모습에서 그의 훈련된 성품이 잘 나타난다. 그는 자식이 아버지에게 하듯 섬겼다. 이는 구약 시대에 제자가 스승에 대해 가진 태도였다(오아하 2:12; 벧전 5:13). 그러나 주의할 것은 유교에서처럼 섬긴 것은 아니며, 바울과 함께 복음을 섬겼다. 이런 측면에서 바울은 디모데와 함께 된 종이라 할 수 있다. 바울과 디모데 사이에는 빌립보 교회에게 기대하는 하나 됨이 있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를 위한 삶, 복음을 위한 삶에 헌신했다. 이처럼 빌립보교회도 그런 고난 앞에서 자기중심적인 사고로 분열하지 말고 복음에 합당한 삶을 통해 서로를 챙겨주고 하나 되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바울은 이런 이유로 신실한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 가능한 한 속히 보내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바울 자신도 속히 가게 될 것을 주 안에서 확신한다고 말한다. 바울은 자신의 석방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었다.
2. 에바브로디도를 보냄(25~30절)
하지만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사역자 에바브로디도를 먼저 빌립보 교회로 돌려보내려 했다. 그는 바울을 위문하기 위해 로마로 달려와서 바울을 헌신적으로 섬기다가 그만 병이 들어 죽을 뻔했다. 무슨 병에 걸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거의 죽음에 다다를 정도였다. 그래서 바울의 근심이 컸지만, 하나님이 그를 살리심으로 근심을 면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에바브로디도는 자신의 병듦에 근심하기보다 빌립보 교회가 이 소식을 들을 것을 알고 근심하였다. 자신의 안위는 전혀 돌보지 않고 오직 교회와 다른 사람만 생각하는 순수한 하나님의 종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의 모습은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죄인인 우리를 살리신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는 삶이었다. 또한 그의 이런 모습은 바울이 공동체의 일치를 주장할 때 요구했던 자질이었다.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회가 본받아야 할 또 다른 모델이었다. 그래서 에바브로디도를 급히 “보내었다(28절).” 이 표현을 통해 에바브로디도가 빌립보서를 가지고 갔을 가능성을 높게 본다. “보내었다”는 표현이 수신자의 입장에서 표현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런 에바브로디도를 빌립보 교회가 따뜻하게 영접하고 존귀히 여길 것을 당부한다. 그는 그리스도의 일을 위해 죽기에 이르러서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이렇게 헌신하여 봉사한 이유는 그가 빌립보 교회 성도 전체를 대신하여 섬기는 데 조금이라도 부족함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버리고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신 후에 하나님에 의해 존귀히 여김을 받으셨듯이, 빌립보 교회도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섬긴 에비브로디도를 존귀히 여기고 높여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나는?
-디모데는 자기 일을 구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였다. 이런 사람이 진실한 일꾼이다. 이런 사람되어 나에게 맡겨주신 공동체를 섬기리라.
-에바브로디도는 주의 일을 함에 있어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는 사람이었다. 병들어 거의 죽게 되었지만 자기를 걱정하지 않고 오직 교회를 걱정하였다. 하나님은 이 사랑을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셔서 죽을병에서 건져주셨다.
-성도들은 이처럼 자기 목숨을 내어놓고 섬기는 사람을 기쁨으로 영접하고 존귀히 여겨야 한다. 우리 주위에 이런 사람이 있으면 윌가 알아주고 귀하게 여기고 마땅히 예우로 대접해야 한다.
*사역을 하다보면 버티기 힘들 만큼 무겁게 짖눌릴 때가 있다. 때로는 교회와 성도를 위한 염려로 인해 몸마저 유약해진 느낌이 들때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주님의 교회와 공동체를 위한 헌신이 근심으로 끝나지 않게 하실 것이다.
*바울은 디모데를 통해 빌리보 성도들을 격려했고 또 그들의 소식을 듣고 위로를 받는다. 이처럼 소식을 주고 받으며 위로와 격려를 나눌 관계가 있는가?
*주님이 우리 공동체에 보내기 원하시는 지도자와 성도는 자기 일보다 복음과 교회의 유익을 앞세우는 사람이다. 이와같은 일꾼 되어야 하리라.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에게 참된 동역자였다. 바울이 그들을 통해 복음의 동역자에게 필요한 자세를 제시해준다. 먼저 “뜻을 같이하여”라는 표현을 통해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함께 품는 디모데임을 밝혔고, 에바브로디도는 “형제이자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로 표현했다. 에바브로디도는 바울과 함께 사역을 위해 수고하고 영적인 전쟁을 치렀다. 모든 것은 예수님을 본받아 같은 정신과 마음을 품을 때 그리스도를 위한 일을 기꺼이 감당할 수 있다.
*복음의 동역자는 그리스도 예수의 일과 복음과 타인에게 우선순위를 두는 사람이다. 다른 이들은 모두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않는데” 디모데는 늘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먼저 생각했다. 바울이 그를 빌립보로 보내고 싶어하는 이유도 그들의 형편을 잘 헤아릴 수 있고, 바울의 심정으로 도울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에바브로디도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바울을 돌보다가 목숨을 잃을 뻔하기까지 했다.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셨기에 목숨을 건졌다. 복음을 위해 바울을 섬기고 돌보며, 빌립보 성도들을 염려했다. 교회 공동체를 위해 이런 태도를 가진 사역자로 굳건히 서 있으리라. 함께 동역하는 교역저들에게서 이런 귀한 모습이 흘러 나올 것을 믿는다.
*또한 복음의 동역자는 훈련된 사람이어야 한다. 디모데는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과정에서 많은 연단을 받았다(22절). 그런 연단이 자식이 아버지에게 하듯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해 수고할 수 있었다. 디모데는 바울과 동역하며 많은 시험을 받았고 결국 그 시험을 합격하여 진정한 복음의 동역자되었다. 에바브로디도도 바울과 함께 복음의 군사가 되어 싸웠다(25절). 복음의 군사되려면 고난에 참여해야 한다. 치열한 영적 전쟁터에서 복음을 위해 싸우며 직면했던 고난은 귀한 훈련의 기회가 되었다. 훈련을 통과한 그는 위대한 복음의 동역자가 되었다.
*이 시대의 복음의 동역자로 나를 불러 주셨으니 예수님의 마음과 같은 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우선 순위로 두며, 훈련을 마다하지 않고 갈고 닦아 단련된 복음의 동역자로 서야 하겠다. 그리고 이런 복음의 동역자를 세우기 위해 주신 기회를 최선을 다해 감당하리라.
*주님,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와같은 복음의 동역자 되겠습니다. 또, 그런 동역자를 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