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3:12-21 예수님 안에서 함께 달려가노라.
할례파들에 대한 경고를 계속한다(12~14절). 하지만 단지 할례파들에게만 그치지 않고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확대 적용한다(15~21절). 이는 오늘 나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다. 바울은 무엇을 계속 권면할까?
1. 나는 여전히 달려간다(12절).
내가 이미 얻었다, 이루었다 함도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12절). 뒤에 있는 것은 잊어 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13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푯대(부름의 상)를 위해 달려간다(14절). 회심 이후 20여 년을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지식과 믿음의 복음을 전하며 달려온 거장에게서 “나는 아직도 온전한 지식을 붙잡으려고 멈추지 않고 달려간다”를 듣는다. 자신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 거하며 산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혈통, 족보, 학력, 출신, 율법, 할례 등이 나의 구원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이신 예수를 믿는 믿음의 온전함을 붙잡고 달려 나간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난 삶의 치열한 발걸음이 결코 이를 완성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이 은혜 안에 거하기 위해 오늘도 달려간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것을 붙잡으려고 달려가노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부름의 상을 위해 달려가노라(12, 16절).’ 믿음과 은혜가 완전하지 않다는 의미도 아니고, 구원이 아직 어떤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서 완성되지 않았다는 의미도 결코 아니다. 바울 자신의 사명이 아직 다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겸손하게 고백하는 것이다. 비록 로마의 감옥에 매인 바 되어 마음은 나의 사명이 다 끝났는가? 아니면 더 감당할 기회가 있겠는가? 고뇌하며, 실제로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두 마음의 싸움을 치열하게 감당하면서 오히려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선포하는 그 치열함이 곧 “달려가노라” 의 속뜻이 아닐까?
여기까지 최선을 다해 달려 왔으나 오히려 더욱 최선을 다해 달려가기 위해 ‘과거에 한 일은 잊어 버리고 앞으로 감당해야 할 벅찬 소망을 굳게 붙잡는 노사도의 사명에 대한 열정이 기가 막히다. 한편으로 도무지 말씀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말씀대로 살아가는 “달림”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이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말씀을 믿는다는 것은 결코 감정적인 동의의 차원이 아니라 날마다 치열하게 선택하는 것과 이에 대한 대가를 감당하는 것이다. 이것이 “달려가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달려가지 않는다”
아니 달리는 것을 포기한다. 관람객에 머문다. 어떤 성도, 어떤 교회가 더 잘 달리는지 잣대를 가지고 판단하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는다. 할례파들과 다를 바 없다. 전통과 율법, 할례를 강조하나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지식은 외면한다. 드러날 행위의 영광을 사모하나 그리스도 예수의 고난의 십자가의 영광은 거절한다. 이미 달리기를 멈춘 자들이다.
2. 그러니 너희도 나처럼 함께 달려가자!(15~17절)
바울은 할례파들의 거짓 가르침에 마음이 빼앗겨 흔들릴 수 있는 성도들에게 간곡히 권면한다. 멈추지 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숙한 사람은 이와 같이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이 무엇인가를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도 여러분에게 드러내실 것입니다. 어쨌든, 우리가 어느 단계에 도달했든지 그 단계에 맞추어서 행합시다(새번역_15~16절).”
“어느 단계에 도달했든 그 단계에 맞추어 행합시다” 주님 품에 안길 때까지 단계마다 ‘맞추어 행하는 것’이 우리가 함께 달려가야 할 것이다. 어떻게 함께 달려갈까? “⑦형제자매 여러분, 다 함께 나를 본받으십시오. 여러분이 우리를 본보기로 삼은 것과 같이, 우리를 본받아서 사는 사람들을 눈여겨보십시오. / ⑦그, ‘형제들이여'(새번역_17절) 바울과 디모데, 에바브라디도를 본받아서 달려가라! 그런데 문제는 이들은 현재 함께 하고 있지 않다. 그러니 ‘우리를 본받아서 사는 사람들’을 눈여겨 지켜보라. 그들을 따라 살라고 권면한다.
결국 공동체의 중요성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온전한 지식과 믿음에 거하며 살아가는 “달려감”은 교회 공동체를 떠나서는 그 동력이 현저하게 떨어질 것이다. 어떤 동력일까? 바로 “함께”라는 동력이다. 아! “함께”라는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가! 얼마나 힘이 솟는가! 그리스도 예수의 온전한 지식과 믿음의 길, “함께” 가면 “달려간다.” 달려갈 수 있을 정도로 힘이 난다.
3. 너희들의 경주장에서 힘껏 달리라!(18~21절)
빌립보는 로마 퇴역 군인들의 도시였다. 충성스러운 로마의 수족들이었다. 황제숭배를 당연히 여기며 자랑하는 도시였다. 그 한 가운데 그리스도 예수의 지식과 믿음을 선포하며 살아야 했다. 얼마나 많은 거센 반대들이 있었을까! 거센 반대들이 도사리는 삶의 현장 한 가운데서 “함께” 달려가는 믿음의 경주가 얼마나 힘이 되었을까! 한편으로 “함께” 달려가다 포기하고, 더 나아가 포기하도록 교묘히 유혹하는 사람들이 왜 없을까!
할례파들과 같은 거짓 선생들부터 배교하여 교회를 떠나 이런저런 압력을 행하는 자들이며, 직접적인 적대감을 수시로 표출하는 수많은 주위의 로마 시민들은 또 어떠한가! 바울은 이들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18절)”로 지칭한다. 그런데 그러한 자들에 대한 바울의 마음이 기막히다. ‘눈물을 흘리며’ 그들을 이야기한다. 그들의 마침이 멸망이고 그들의 신은 배(위장, 탐욕으로 이해해도 될까?)이며, 그들이 자랑하는 영광은 부끄럽고, 땅의 일(없어질 가치)만 생각하는 것(19절)에 대한 한없는 긍휼의 눈물이었다.
그들이 사는 빌립보라는 도시에 대한 자부심을 넘어선 숭배, 이에 따른 황제를 숭배하는 것의 처참한 마지막인 멸망, 무엇을 먹을까 늘 고심하며 오직 배를 채우기 위한 모든 것에 온 힘을 쏟는 안타까움을 바라보며 한없는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마치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 황혼 녘의 붉은 노을에 잠겨 빛나고 빛나는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시고, 이를 자랑스러워하는 제자들을 안타까워하시면서 통곡하셨던 그 통곡과 다름이 없다.
빌립보는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로마 황제의 영광이 늘 숨 쉬는 화려하고 배부른 도시라고 여겼으나 실상은 철저히 멸망할 저주의 도시라는 것이다. 그 도시 한 가운데서 저주와 멸망 당할 자들 속에서 생명과 구원받을 삶의 경주를 달려 나가라고 격려하는 것이다.
이토록 멸망 당할 원수들을 안타까워하며 눈물 흘리면서도 이들의 원수 짓거리에 휘둘리지 않을 분명한 동기를 밝힌다. 그것이 바로 로마 시민권이 아닌 하늘의 시민권이다! 예수께서 마련해 놓으신 하늘의 시민권을 바라보며 땅의 시민권에 휘둘려 멸망 당하지 말라고 눈물 흘리며 부탁하는 것이다.
나는?
-나는 무엇 때문에 달리는가? 멸망할 로마 시민권, 육신의 배부름(탐욕), 부끄럽게 될 영광, 반드시 사그라질 땅의 일을 위해 달리는가?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예비하고 계신 하늘의 시민권을 향해 사명의 달음질을 오늘도 하고 있는가?
-하늘의 시민권을 소유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말씀대로 사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사는가?
-“함께” 달려갈 공동체가 있어 감사하다. 그런데 함께 달리는가? 모두가 안주하는가? 나는 함께 달리게 하는 자인가? 그저 편히 쉬게 하는 자인가? 목회자의 사명을 다시 도전받는 귀한 깨우침이다. 나도 나에게 맡겨주신 공동체도 “함께”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달려가야지!
-그러면 오늘 함께 달려갈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것은 무엇일까?
-함께 달려갈 경주장이 어디일까?
*지금 더온누리 공동체의 경주장은 “하나님 나라 진실한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공동체가 함께 달려가고 있다. 이미 참여하신 성도들도, 아직 참여하지 않은 성도들도 우리가 추구하는 공동체를 향한 마음을 다잡고 있으리라 믿는다. 이 경주를 “함께” 달려야 한다. 주님께서 주신 말씀이 명확하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주신 것을 굳게 잡고 예수 안에서 “함께” 달리는 것이다. “함께”, “예수 안에서”이다.
*담임 목회의 경주를 달릴수록 결국 혼자가 아닌 함께 뛰어야 함을 실감하고 있다. 교역자들과 함께, 장로님들과 함께, 공동체 성도님들과 함께 달려가야 한다. 무엇보다 예수님과 함께 뛰어야 한다. 더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기 위해, 그런 하나님 나라 진실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오늘도 예수님과 함께 뛴다.
*또한 빌립보서를 묵상할수록 이렇게 달리는 경주장 정리부터 잘해야 할 것을 절감한다. 로마의 가치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가치로 정비해야 하겠다. 사역하면서 로마의 복음이 주는 빌립보의 가치 추구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로마의 복음을 따르는 빌립보의 가치 가운데서 하나씩 하나씩 세워야지! 그것이 나의 “달리기”다! 나는 지금 달리고 있다.
*”나는 이것을 이미 얻은 것도 아니며, 이미 목표점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사로잡으셨으므로,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좇아가고 있습니다”(새번역_12절) 자신을 본받으라고 말하는 바울의 고백이다. 자신도 아직 완성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의 미완성을 감추고 완성에 이른 것처럼 과장하기 마련인데, 그의 인품이 놀랍다.
*그러면서 자신을 본받으라는 간곡한 부탁 속에 자신의 삶이 “과정” 속에 있음을 고백한다.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아직 그것을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 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몸을 내밀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점을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습니다.”(새번역_13~14절)
*살아있는 모든 인생은 완성에 이르지 못한다. 과정에 있을 뿐이다. 과정이 완성은 아니다. 하지만 시작보다 낫다. 십자가의 삶은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로 시작되었다. 하나님 나라 안에 거하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아직 완전하게 완성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 나라 안에서 하늘 백성답게 살아가야 하는 과정 중에 있다. 옛것(할례와 율법, 절기와 음식)에 얽매일 이유가 전혀 없다. 거룩한 일을 시작하신 주님께서 완성에 이르는 일 역시 선하게 이끄실 것이다. 나는 믿는다.
*주님, 십자가의 삶으로 푯대를 향하며 살겠습니다. 땅의 것에 연연하지 않겠습니다.
*주님, 주님과 함께 달리는 여정을 즐기겠습니다. 지금 달리고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