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1-54 한명 한명 기록하신 이름마다 새겨진 하나님의 은혜
역대상 1~9장은 아담부터 시작해서 포로에서 돌아온 자들까지 이어지는 족보다. 에스라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공동체에게 이스라엘 초기부터 포로기 이후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연속성을 보여주고 귀환 공동체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기록되었다. 1장은 아담, 노아, 아브라함, 이삭, 이스라엘 등 창세기에 등장하는 족장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전개한다.
역대기의 족보는 과거의 역사에 대한 요약이자 이스라엘의 뿌리를 확인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즉, 현재의 이스라엘이 과거의 언약공동체 이스라엘과 연속되는 것을 강조한다. 포로의 땅에서 돌아온 백성이 그야말로 “남은 자”들로서 아담부터 아브라함과 다윗을 거쳐 지속된 하나님의 언약 역사를 이어받는 자들임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한편, 이 족보는 다윗의 계보와 레위인들의 계보가 중심을 이룬다. 이것은 다윗과 같은 왕과 하나님을 예배하는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통해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에스라는 포로기 이후 귀환한 사람들에 대한 기록과 북이스라엘 자파들의 족보도 포함했다. “온 이스라엘(9:1; 11:1, 10; 12:38)”이라는 표현을 통해 통일왕국을 기대하고 있음을 넌지시 드러낸다.
1. 아담에서 노아까지(1~4절)
1~23절은 창세기 4:17~24의 가인의 족보를 제외하고 창세기 1~10장의 족보 자료를 모두 포함한다. 그중에서 1~4절은 창세기 5장 아담의 계보에서 이야기는 빼고, 사람들의 이름만 추슬러 족보를 만들었다. 이 족보는 “누구의 아들, 누구” 혹은 “누가 누구를 낳고”라는 구문 없이 아담, 셋, 에노스 등 한 세대를 대표하는 열세 명의 이름을 하강적 구조(선조에서 후손으로 기록하는 형식)로 기록했다. 이런 형식을 통해 저자 에스라가 역대기의 일차 청중들(포로 귀환 백성들)이 창세기의 이야기와 족보를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했음을 의미한다.
족보의 시작은 이스라엘의 시조인 아브라함이 아니라 “아담”으로 시작한다. 이는 이스라엘이 아브라함의 후손이기 이전에 인류의 시조 아담의 후손임을 일깨우는 것이다. 특히 “아담”은 자연스레 창조주 하나님이 연상되므로(눅 3:38), 이스라엘을 지금껏 돌보신 하나님은 온 세상의 창조주이자, 왕이심을 상기시킨다. 이스라엘의 기원과 존속은 창조 때부터 계획된 하나님의 섭리임을 깨닫게 하여, 고된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고 바벨론 포로에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었음을 깨우친다. 또한 귀환 후의 현실은 기대와 달리 암담하나, 하나님의 보살핌은 선조들의 삶이 그랬듯 계속되므로 소망의 빛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담에서 노아까지의 10대의 족보는 창세기 5장의 축약판이다. 각 대 주요 인물 한 명씩을 나열한 수직적 족보다(한 대에 한 명씩 연결한 족보로 혈연적 연속성과 관계성뿐 아니라 이스라엘과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구원 역사가 지속됨을 보여준다. 1장에서는 1~4절, 24~27절이 이 형식을 따랐다. 반면 수평적 족보는 한 조상 아래 여러 가계를 열거한 족보다. 이를 통해 가계 간의 관계성을 입증하고, 후손의 번성을 통해 하나님이 약속한 생명의 축복이 성취되었음을 입증해 주는 역할을 한다). 창세기 5장에서는 이를 “아담의 족보”로 소개했다. 이 족보의 특징은 인류의 근원이 하나님이시고 아담과의 밀접한 관계로 출발하여, 아담의 불순종으로 들어온 죄 가운데 인간의 각 대를 보전하신 하나님의 긍휼을 증거한다. 여기에 기록된 10명은 죄로 가득한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긍휼로 선택된 자들이었다. 이들은 창세기 5장에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 속했다.
에녹은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했고(창 5:22),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의롭고 완전한 자로 평가받은(창 6:9) 삶을 살았다. 나머지 8명은 아들을 낳고 오래 살다가 죽었는데(창 5:3~32), “죽음”이 숙명이 된 인간에게 대를 잇고 장수하는 “생명”의 축복을 하나님이 베푸셨음을 증거하는 증인들이다. 이들을 통해 죄악이 들어와 점점 가득 차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혈통과 경건한 자손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이 깃들어 있다. 또한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보내시기까지 하나님의 구원 계획(창 3:15)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된 것이다.
2. 노아의 자손들(5~23절)
본 단락은 노아의 아들들인 야벳(5~7절)과 함(8~16절)과 셈(17~23절)의 자손들이 나열된다. 창세기 10장의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와 거의 동일하다. 홍수 사건을 배경으로 하나님의 구원과 번성을 배경으로 한다. 4b절을 통해 하나님의 선택받은 셈을 노아 다음으로 소개한 후 17~23절을 통해 그의 자손은 맨 나중에 소개한다. 또한 야벳과 함의 자손(3~4대)에 비해 셈의 혈통을 길게(6대) 열거하는 특징이 보인다. 이 족보는 수평적 족보로서 하나님께서 홍수 후에 노아와 아들들에게 약속하신 생육과 번성의 축복(창 9:1~2)을 이루셨음을 증거한다.
노아 당시 죄가 온 세상에 들끓어 홍수로 멸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노아와 가족을 구원하여 인류의 대를 잇게 하신 하나님의 긍휼과 구원의 역사를 내포한다(창 6~9장). 특히 창세기의 노아 족보는 땅에 충만해지라는 하나님의 명령(창 1:28)이 실현되었음을 보여준다. 홍수 후 세 아들의 후손들은 언어와 지역에 따라 세상 곳곳으로 흩어졌고, 민족과 나라의 조상들이 되었다(창 9:19; 10:32). 이는 모든 나라와 민족이 하나님의 소유이며 다양한 배경아래 있지만,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음을 증거한다.
3. 셈에서 아브라함(24~27절)
본 단락은 창세기 11:10~26을 요약했다. 다른 설명 없이 직계 후손을 이름만 나열한 형식으로 1~4절과 동일하다. 이 족보 역시 이스라엘과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구원 역사가 지속됨을 명시한다. 아담에서 노아까지 10대로 정리했듯, 셈부터 아브라함까지 10대로 정리했다. 셈의 가계는 아르박삿, 셀라, 에벨을 지나 17~23절의 “셈의 자손” 명단에 언급되지 않은 벨렉(19절)이 등장하고 셈의 10대손으로 아브라함이 등장한다(24~27절). 이와 같은 기록으로 저자 에스라의 관심이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4. 아브라함의 자손들(28~37절)
아브라함 자손의 족보는 1:28~8:40까지 1~9장의 족보 단락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중 28절은 이삭과 이스마엘을 소개하고 29~31절에서 이스마엘 아들들의 이름이 야곱의 열두 아들처럼 나타난다. 32~33절은 그두라의 후손들을 소개하는데, 특이한 것은 창 25:1에서는 “부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본문은 “소실(첩)”이라고 표기하여 사라와 다른 신분이라는 것을 표시한다. 또, 그두라의 아들들은 아브라함의 아들들로 부르지 않는다. 수미쌍관법을 통해 그두라의 후손들을 구별한다. 34절의 이삭에 대해서는 “아브라함이 낳았다”라고 표현함으로써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강조한다. 이 역시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과 아브라함의 소실(첩) 그두라의 자손들 족보를 통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 약속한 자손의 번성이 성취되었음을 증거한다. 비록 이들은 이삭과 달리 선택받지 못한 자들이지만, 아브라함의 자손들로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아래 놓였고, 하나님의 축복에서 배제되지 않았음을 환기한다.
35절부터는 이삭의 아들 에서의 족보가 먼저 나오고 야곱, 즉 이스라엘의 족보는 2장에서 자세하게 언급된다. 에서의 족보는 다섯 명의 아들과 엘리바스의 아들 일곱 명으로 모두 열두 명의 이름이 나온다. 에서 족보도 이스마엘의 족보처럼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번성의 축복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5. 세일의 아들들과 에돔의 통치자들(38~54절)
세일 자손들의 명단은 역대기 족보상으로는 아브라함 후손과 연결점을 찾는 것이 어렵다. 세일은 에서가 거주하던 곳이기 때문에(창 36:8). 세일에 거주하는 민족의 이름이 거론된다. 한편, 창세기 36:20에서는 세일의 자손들을 호리 족속과 동일시하였다. 이는 족보가 혈통적인 것과 함께 장소적인 면도 고려하여 자신들과 연결된 주변 지역 사람들도 포함했음을 알 수 있다.
6. 에돔의 통치자들(43~54절)
이 단락은 에돔 통치자의 목록이다. 이 목록은 왕들과 족장들의 목록으로 나뉘는데, 왕은 전 왕이 죽고 새로운 왕이 등극하는 형식을 통해 세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에돔 왕의 명단은 하닷의 죽음에서 끝나는데, 이는 창세기 족보에는 언급하지 않는 후대의 정보를 기록한 것이다. 족장들의 목록은 에서가 에돔 족속의 조상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여기서 언급된 것이다. 이 명단은 창세기 36:40~43과 동일하다.
나는?
-역사가 주는 교훈이 있다. 역대기의 족보는 아담에서 시작하여 포로 후 공동체에 이르는 족보다. 이 족보는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요약한다. 이것은 회복된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경륜이 출애굽과 가나안 정착보다 훨씬 이전, 즉 인류 창조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에스라는 포로에서 돌아온 이들에게 창조와 회복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고, 그들의 지위와 정체와 사명을 일깨워주려 했다. 이 족보를 묵상하며 우리 역시 우리 자신과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과 계획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 속에서 나의 배역과 역할을 찾고, 그 역사에 참여하는 법을 배워나가야 한다.
-족보의 이름과 함께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1장은 아담에서 노아까지의 족보와 아브라함 후손들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이 시작하신 족보이고, 인간의 죄악과 반역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당신의 자비로 이어오신 역사다. 본문에는 사건은 없고 인물들만 나열되어 있지만, 이 이름들을 읽고 듣는 성도들은 이름마다 얽힌 이야기들을 떠올렸을 것이고, 그 인물들의 영웅담이 아니라 그들의 실패를 기억했을 것이다. 포로에서 귀환한 백성들이 이 이름들과 함께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다.
-본문은 큰 흐름으로 보면 아담부터 아브라함의 자손 중 에서의 자손까지 언급하였다. 아담부터 아브라함에 이르기까지 족보를 기록하면서 이스라엘 역사에 영향을 끼친 주변 민족들의 계보도 함께 언급하면서 대조를 이룬다. 이렇게 대조한 의도는 분명하다. 그들은 결국 끊어졌지만, 이스라엘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창세기의 족보들과 비교해 보면 홍수 심판과 바벨탑 사건이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는 결과를 가져오는데, 본문의 족보도 이 사건을 담아낸다. 특히 바벨탑 사건의 시작과 결과를 함의 자손 니므롯(10절)과 셈의 후손 벨렉(19절)에 각각 간단한 설명을 곁들여 기록을 남겼다. 아담에서 노아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번성하였으나 하나님을 떠난 번성이었다. 노아의 때에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가족을 제외한 전 인류를 그 땅에서 끊어 내셨다. 하나님을 떠난 죄악의 번성을 이룬 인류를 끊어 내신 것이다.
-홍수 이후 노아의 자손은 셈과 함과 야벳을 통해 이어진다. 흥미로운 것은 역대기 저자는 노아의 아들 중에 셈을 가장 먼저 언급한다. 막내이었음에도 노아의 뒤를 이을 장자로 기록한 것이다. 그러면서 장자였던 함의 계보를 먼저 기록한다. 하지만 함의 후손에게서 홍수 이후 새롭게 재창조된 세상에 다시 악의 싹을 틔운다. 악의 장자였다. 폭력의 계대가 시작된 것이다. 폭력의 세대가 이어지면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가나안 족속들이 나오게 된다. 또 특이한 점은 야벳의 자손에 대해서도 기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야벳의 후손들이 이스라엘과 접촉되지 않는 지역으로 흩어져 나갔기 때문일 것이다. 셈의 후손들을 기록할 때도 아브라함으로 이어지는 계대에 집중하였다.
-결국 1장은 아브라함으로 초점을 맞춰 족보를 기록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족보는 조상에게서 자손으로 이어지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동사 “낳고, 낳았으니”를 사용하였다.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 조상들의 이름들이 등장하나 결국 아담에서 노아까지 10대, 셈에서 아브라함까지 10대의 이름들을 중심으로 그사이에 조상에서 자손으로 이어지는 이름들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결국 끊어질 이름들(아담에서 노아까지를 제외한 전 인류, 함과 야벳의 후손들)과 계속해서 이어질 하나님의 나라(이스라엘) 후손들의 이름들을 기록한다.
*낳고 낳으며 결국 끊어질 번성한 이름들이 될 것인가? 낳고 낳으며 끈질기게 이어질 하나님의 나라 후손들의 이름이 될 것인가?
*죽음을 낳을 것인가? 생명을 낳을 것인가? 이는 곧 하나님을 떠난 조상들의 면면을 구체적으로 기록하면서 그들이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 같지만 결국 죽음에 이르는 번성의 길을 갔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을 떠나 아무리 자기의 힘의 능력으로 무수한 민족들을 이룬다고 할지라도 죄악의 번성을 잠시 허락하시나 반드시 그 죄에 대해 심판을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홍수 심판을 통해 경고하셨음에도 하나님을 떠난 죽음의 길을 다시 시작한 것이다.
*반면 많은 인류의 조상들이 하나님을 떠나 다시 죄의 번성을 이루는 길로 갔으나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세우시기까지 하나님의 나라(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어가게 하신다. 주변의 하나님을 떠난 훨씬 많은 사람들 속에서 꿋꿋이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길을 걸어가게 하심으로 이루어 주신 민족이다.
*이들은 철저하게 주변인이었다. 날로 힘을 합치고 세력을 강하게 하여 군림하던 하나님을 떠난 인류의 무력 앞에 드러나지 않게 유랑하며, 불가능한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로 자손들이 이어진 그야말로 소수들이었다. 그런데 이 소수의 자손이 이어져 하나님의 민족이 되게 하신 것이다.
*세상을 따라가는 생물학적인 번성을 추구하여 하나님을 외면한 크고 다양한 민족의 길을 갈 것인가? 그 강력한 무리들의 힘 앞에서도 그들에게 종속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들의 뜻과 힘의 논리에 굴복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약하디 약한(?) 왜소한 한 민족의 길로 갈 것인가?
*족보는 강성한 세력의 족보라도 그 끝이 분명하고, 보잘것없는 약한 족보라도 하나님의 길을 걸어간 조상과 자손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증언한다. 눈에 보이는 수를 늘이는 번성은 죽음을 낳은 번성이지만, 보잘 것 없는 소수라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며 낳고 낳는 것은 생명을 낳은 진정한 번성이라는 것이다.
*하나님 백성의 번성은 생명을 낳는 번성이어야 하겠다. 잠시의 힘과 권력을 누리거나 부리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꿋꿋이 살아가 조상과 자손이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이어지는 계대이어야 하리라.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산다는 것은 세상의 번성하는 사람들의 죽음으로 달려가는 번성이 아니라, 소수라도 하나님의 뜻이 이어지는 낳고 낳음이어야 할 것이다.
*나에게서 하나님의 나라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도록 나는 죽음을 낳지 않고 생명을 낳고 낳는 삶을 살아야겠다. 나의 자녀들에게 세상의 번성한 힘과 논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조롱하는 하나님의 나라 가치를 가르쳐야 하겠다. 세상의 가치를 가르치는 것은 눈에 보이는 번성을 누리도록 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죽음에 이르고 하나님의 나라 가치를 가르치는 것은 불편함이 될 수 있겠지만 결국 생명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나에게서 자손에게 생명의 흐름이 끊어지게 할 것인가? 이어지게 할 것인가?
*한명 한명 이름마다 남겨 놓으신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의 기록이 족보다. 지금도 하나님 나라 족보는 하나님께서 정리하고 계실 것이다. 나도 그 족보에 이미 이름이 올려졌으리라.
*주님, 한 명 한 명의 이름이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가 아니라면 기록에 남을 수 없는 이들이었음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모든 인생 가운데 개입하셔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가고 계심을 확인하게 됩니다. 주님 나라의 생명책에 저의 이름이 선명하게 기록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