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요단 동편 지파들과 레위 지파 자손들 [대상 5:1-6:81]
 – 2025년 06월 04일
– 2025년 06월 04일 –
역대상 5:1-6:81 요단 동편 지파들과 레위 지파 자손들
 
역대기의 족보는 다윗의 계보인 유다 지파의 계보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그 다음에 성전 제의를 담당하는 레위 지파를 중요하게 여기며 기록했다. 2~4장까지 다윗과 유다 지파의 계보를 정리한 다음 5장은 요단 동편에 거주한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 대한 계보를 간략하게 정리하고, 6장에서 상당히 길고 자세하게 레위 지파 계보를 이어나간다.
 
 
 
1. 요단 동편 지파들(5장 1~26절)
1~6절은 르우벤 자손의 계보를 소개한다. 에스라는 르우벤이 장자임에도 불구하고 장자의 권리를 갖지 못한 이유와 유다 대신 요셉이 장자의 권리를 갖게 된 이유와 또한 지도력이 뛰어난 유다가 아닌 요셉이 장자의 권리를 갖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이 모든 것은 야곱이 요셉을 선택한 창세기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다. 르우벤의 후손은 창세기 46:9에 언급된 하녹과 발루와 헤스론과 갈미보다 새로 등장한 요엘의 후손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특별하게 언급된 지도자는 주전 733년경 앗수르가 길르앗을 정복했을 때 포로로 끌려갔다고 밝힌다. 7~10절은 르우벤이 강성했을 때 차지한 지역이다. 8절의 아로엘과 느보와 바알므온은 요단 동편 남쪽 모압 접경 지역이다.
 
11~17절은 갓 지파의 족보다. 갓 지파는 르우벤 지파의 북쪽에 바로 붙어 있다. 이 지역은 느보 산에서 살르가까지이며 이곳을 역대기에서는 바산(11절), 혹은 길르앗 바산(16절)으로 부른다. 일반적으로 바산이라 부르는 지역은 갓 지파의 영역 위쪽에 있으며 여호수아 17:1에 따르면 므낫세 지파의 영역이다. 갓 지파에서 중요한 가문은 아비하일로 그를 중심으로 선조가 7대까지 언급되고, 일곱 명의 아들들의 이름도 언급된다. 모두 생소한 이름들이다. 에스라는 갓지파의 족보가 이스라엘 여로보암 때(대략 주전 786~746년)까지 라고 밝힌다.
 
18~22절은 요단 동편의 용사들의 숫자와 이들이 수행한 정복전쟁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 정복 전쟁의 핵심은 요단 동편 을 얻기 위해 싸울 때 하나님을 믿고 그에게 기도하였고 하나님께서 이 기도에 응답하셔서 그 땅을 이들 손에 넘겨 주셨다는 것이다. 이 전쟁에서 전쟁은 여호와의 손에 있다는 여호와의 전쟁 사상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여호와를 믿은 결과는 많은 노획물과 포로를 얻은 대승이다. 야베스의 기도 때처럼 여기서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즉각적인 응답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었을 때의 긍정적인 예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스라엘의 역사는 앗수르에게 멸망당하며 끝난다.
 
23~26절은 므낫세 반 지파의 자손에 대한 기록인데, 그들이 거한 지역과 유명한 지도자 일곱 명의 이름만 언급하며 가장 간단하게 처리한다. 동므낫세의 영역은 바산에서 헤르몬 산까지 요단 동편 북쪽 지역이다. 25~26절은 요다 동편 지파가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의 침입에 망하여 앗수르로 끌려갔고, 그들이 앗수르 여러 지역으로 이주해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들이 망한 이유는 다른 신을 섬겼기 때문이다. 여호와를 믿고 그에게 간구할 때는 땅을 얻고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지만,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면 여호와께서 적들을 일으켜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에스라도 역사의 주관자가 여호와이심을 고백한다.
 
 
르우벤 지파가 이스라엘의 혈통의 장자 지파임에도 그 권리를 갖지 못하고 요셉으로 대체된 이유를 설명한다. 르우벤 지파의 장자의 권리는 아버지 야곱의 첩과 동침함으로 상실되었다. 혈통으로 장자됨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가치관이 분명해야 하고 그 가치관은 하나님의 뜻에 근거해야 한다. 요단 동편을 차지한 세 지파(르우벤, 갓, 므낫세 반(1/2)가 누린 흥왕과 쇠락의 키(key)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이는 그들이 싸울때에  “하나님께 의뢰하고 부르짖으므로(5:20)”, “이 싸움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았음이라(5:22)” 하나님께서 진행하신 일을 하나님을 더욱 의뢰하고 부르짖으며 행할 때 흥왕한다. 
 
부흥(흥왕)이 무엇일까?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고, 그 뜻에 전심으로 의지하며 행하는 사람들의 실제적인 순종이다. 요단 동편의 세 지파는 굉장한 땅을 차지한다. 지리적으로 보자면 요단 서편의 아홉 지파가 차지한 땅만큼의 땅을 차지했다. 그들에게는 막강한 전투력의 용사들이 있었다. 그런데 막강한 그들이 가진 힘을 의지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더욱” 의뢰하고 부르짖으며 싸웠다. 그런데 그들이 가진 능력이 충분했다. ‘능히 방패, 칼, 활을 익숙하게 부리는 자만 44,760명’이었다. 힘을 합치면 두려울 것도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 힘만 의지 하지 않았다. “더욱” 의뢰하고 부르짖었다. 원문을 보니 이들이 하나님을 굳건하게 믿었기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간청을 들어주셨다로 밝힌다. 
 
반면에 망한 이야기도 함께 등장한다. ‘하나님께 범죄하여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서 멸하신 그 땅의 백성의 신들을 간음하듯 섬겼다(5:25절)’고 밝힌다. 원문은 배신과 불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그 굳건한 믿음을 저버림이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저버릴 때 필연적인 멸망이 함께 찾아온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일으킨 앗수르와 디글랏빌레셀를 통해 하나님꼐서 주신 유업을 빼앗기고 강제이주를 당하게 된다. 그들은 포로 귀환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그곳에 머물고 있다고 저자는 증언한다. 
 
굳건한 신뢰는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 그 뜻에 순종한다. 저버린 신뢰는 하나님의 뜻이 무너져 필멸한다. 하나님의 뜻을 감당하지 못한 자들에게서 유업을 환수하신다.  유업으로 주신 땅에서 쫓아내신다.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족보가 알려주는 흥망성쇠의 키(key)는 하나님을 굳게 믿고 그의 뜻에 순종하는 것에 있다. 
 
 
 
2. 레위 지파 자손들(6장 1~81절)
6장은 레위 자손의 족보와 그들이 얻은 성읍에 대한 기록이다. 무려 81절이나 되는 긴 목록이다. 그중에서 대제사장 계보인 아론의 계보는 두 번이나 반복하여 기록한다. 이는 에스라가 대제사장 혈통과 성전 봉사자들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1~15절은 레위부터 포로 전  마지막 대제사장인 여호사닥까지의 계보를 기록한다. 이 단락에서는 레위의 아들들 중에서 아론의 조상이 되는 그핫 자손을 중심으로 기록한다. 4~14절까지는 대제사장직을 이어받는 엘르아살의 직계만 기록했다. 이 족보의 특징은 솔로몬 성전을 지을 때 대제사장이 아사랴임을 밝힌다는 것이다. 족보는 아론에서 아히마아스까지 12대, 아사랴에서 여호사닥까지 12대로 구성한다. 즉, 솔로몬 성전 건축을 중심으로 12대씩 나누어 정리한 것이다. 한편 에스라 족보(스 7:1~5)에서는 아사랴를 중심으로 8대씩, 모두 16대로 정리한다. 족보의 정리는 저자의 의도에 따라 정리된 자료임을 알 수 있다.
 
16~30절은 형식적으로 레위의 아들들의 자손이 정리되어 있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게르손의 자손들과 므라리의 자손들은 2절씩 간략히 기록하고 그 중심엔 다시 그핫의 다른 아들인 암미나답의 후손을 소개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엘가나다. 세 명의 엘가나(앗실의 아들, 여로함의 아들, 마핫의 아들)가 등장한다. 모두 그핫 자손들로 사무엘의 선조와 아버지다. 이 족보는 사무엘의 아들 요엘과 아비야로 마무리한다. 에스라는 사무엘을 레위 지파 그핫 자손의 후손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33절에서 찬송을 담당하는 헤만의 족보를 통해서도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한편 사무엘서는 사무엘을 에브라임 지파 사람(삼상 1:1)으로 기록했지만, 에스라는 숩부터 시작해서 사무엘의 계보를 레위 지파의 그핫 자손으로 넣었다. 가장 보수적인 시각은 레위지파 사무엘의 집안이 에브라임 지역에 살았다고 이해한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사무엘상 1:1은 에브라임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에스라의 관점은 제사제도와 제사장의 자격과 직분은 매우 중요하기 떄문에 반드시 레위 지파 사람들이 제사장과 성전 봉사를 해야 한다고 보고 사무엘 가문의 족보를 레위 가문의 족보에 편입시켰다고 이해했다.
 
31~48절은 레위 지파 중에서 다윗 때 성막에서 찬송의 직분을 맡은 헤만의 족보와 아삽의 족보가 소개된다. 헤만은 사무엘의 손자이고 헤만의 족보는 야곱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삽은 레위의 아들 게르손까지 올라간다. 에단은 레위의 아들 므라리의 후손으로 소개된다. 역대상 15:19은 헤만과 아삽과 에단은 모두 성전에서 찬양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성전에서 봉사하며 찬양하는 사람들은 모두 레위의 후손으로 소개한다.
 
49~53절은 대제사장의 역할과 함께 다시 아론부터 시작되는 대제사장의 명단을 기록한다. 다만 성전이 지어지기 전 다윗 시대의 대제사장인 아히마아스까지만 기록되어 있다. 앞의 계보와 다른 것은 여기에는 제사장과 대제사장의 역할이 언급된 것이다.
 
54~81절은 레위인들이 열두 지파에게서 얻은 성읍의 명단으로 여호수아 21:1~41을 의존하고 있다. 이스라엘 각 지파는 네 성읍씩 모두 48성읍을 내어 주었고, 레위 지파는 아론, 므라리, 그핫, 게르손 자손이 각각 열두 개씩 나누어 가졌다.
 
 
6장의 레위 자손의 계보를 기록한 분명한 의도가 보인다. “성전중심의 삶과 율법(말씀)을 가르치는 것“이다.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난 멸망 전 이스라엘의 모습을 환기 시키고 그 공동체를 움직였던 가장 중요한 핵심을 되짚는 것이다. 오늘날의 익숙한 용어로 굳이 풀라면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이다.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으로 살아내기 위해 이스라엘은 조직을 만들었고 지역을 배분하였다. 백성들은 이를 기꺼이 스스로 자원하여 레위 사람들의 삶을 부담하였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여 지도록 기꺼이 삶의 체계를 하나님의 뜻대로 맞추었다. 그런데 이것이 얼마가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수리하고 정비하는 시간이 구조가 제대로 작동된 시간보다 훨씬 많았다. 급기야 그 구조를 완전히 파괴하셨다. 그러나 구조는 파괴하셨으나 사람은 남겨두셨다. 이제 저자는 남겨진 사람들,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에게 다시 시작하는 마당에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제시한다. “역사에서 길을 찾았다” 
 
두 갈래 길이다.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길과 반드시 지켜야 할 길이다.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길은 하나님을 떠나 간음하는 길이다. 이 길의 끝은 멸망이다. 반드시 지켜야 할 길은 신뢰하고 부르짖는 것이다. 삶의 경험, 지식, 예측을 아무리 출중하게 하는 능력이 있더라도 결국 하나님의 도우심을 철저하게 신뢰해야 한다. 신뢰하고 부르짖는 길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길은 구체적인 삶을 수반한다는 것이다. 자리 잡아야 할 지경이 있고 그곳에서 가르쳐야 할 율법, 지켜야 할 예배(제사)를 감당해야 했다. 가르침은 삶의 현장에서, 제사는 거룩하게 구별된 곳에서, 구별하여 세우신 자들을 통해….
 
 
 
나는?
-역사적으로 르우벤 지파는 자손의 번성(4~6절)과 부의 번영, 승전과 정복까지 역사에 남을 만한 부국강병을 누렸다. 갓 지파도 북이스라엘이 강성할 때 자신들의 족적을 남길만큼 위세를 펼쳤다. 하지만 그 자손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망각하고 타락하면서(25절)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고, 결국 모든 것을 빼앗긴 채 포로로 사로잡혀 갔다. 한때의 성공과 축복에만 머물다가 주의 은혜와 역사를 잊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윗에서 포로로 잡혀갈 때까지 유다 왕들의 계보에 이어(3장), 아론에서 포로로 잡혀갈 때까지 대제사장의 계보가 나온다. “다윗 왕조와 성전 예배”를 핵심 주제로 다루는 역대기에서 이 두 직분은 매우 중요하다. 물론 포로로잡혀간 것은 범죄로 인한 징계였지만, 언약은 폐기되지 않았고 하나님은 회복과 재건의 씨앗(6장 15절, 학 1:1)을 남겨 두셨다. 하나님은 이제 왕 같은 제사장인 하나님 나라 백성을 통해 이 땅에 예배가 온전히 회복되기를 바라신다.
 
-우상숭배를 주도하며 언약의 위기를 초래했던(출 32:4) 아론과 그 후손을 구별하여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언약의 회복을 위한 속죄제를 맡기신다. 은혜의 역설이며 신비다. 다윗은 블레셋에게 뻬앗긴 언약궤를 되찾고 예루살렘에 안치한 후(삼하 6장), 하나님의 집에서 찬송이 끊이지 않도록 찬송하는 이들을 레위 지파 가운데서 따로 세웠다. 다른 지파와 달리 기업을 받지 못한 레위 자손은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거처할 성읍과 목초지를 받았다(64절). 그들은 이스라엘 전역에 흩어져 살아야 했지만, 땅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고(수 13:14, 33) 주어진 자리에서 예배와 율법을 가르치는 책임과 사명을 다했다.
 
 
*곰곰히 읽다보니 5장~6장은 어떻게 살아왔나를 기록한 것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분명하게 알려준다. 하나님 나라 제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단순하다. 신뢰하고 부르짖으며, 말씀의 가르침을 받고, 구별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초점이 명쾌하다. 
 
*그런데 이 명쾌한 초점을 왜 그리 잘 못맞추는지 모르겠다. 흐릿 흐릿할 때가 참 많다.  믿음의 선진들의 믿음의 행보를 기억하고 이어받아(족보), 믿음의 발자취를 남기고, 후손들에게 뒤따르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에 기록된 족보의 목적은 분명하다. 신뢰하고 부르짖으며 말씀의 가르침을 기꺼이 받고, 받은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각각의 주어진 지역과 장소에서 주어진 사명을 가르침을 받은대로 살아가다 후손들에게 또한 그렇게 살아가도록 본을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땅을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의 제자는 자신의 삶의 목적을 통해 하나님의 의가 온전히 드러나도록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 간음하여 지경을 빼앗기고 돌아오지 못한 요단동편 지파들과 잠시의 배반으로 받은 징계는 있었으나 다시 돌아와 이전에 주어졌던 지경을 다시 회복하려는 이스라엘, 그리고 레위지파가 분명하게 비교된다. 족보는 이렇게 증거한다. 죄를 짓지 않을 수 없으나 벗하지 않고, 죄에 대한 심판은 확실하나, 회복의 약속과 함께 주어지는 심판은 희망이 있다. 
 
*역대기 족보의 목적이 보인다. 삶이다. 내가 아무리 능력이 출중하더라도 그보다 “더욱” 주님을 신뢰하고 부르짖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르침받고 그대로 살아내는 것이다. 특히나 나는 오늘날 말씀을 가르치는 레위와 같은 자리로 부르심을 받았다. 잘 가르치려면 더욱 가르침을 잘 받아야 한다. 지식의 가르침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성령님의 가르침이다. 그 가르침을 받아 나를 보내신 그 지역에서 묵묵히 살아가련다.
 
늘 신뢰하고, 늘 부르짖으며, 늘 성령님의 가르침을 받아, 늘 최선의 가르침으로 … 주님 도우소서.
 
 
 
*주님, 무수한 인물들이 걸어간 길이 각각 이었지만, 결국 하나님을 의지하고 따른 길을 보호하시며 이끄신 것을 깨닫습니다. 주님만 늘 의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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